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492화 (492/1,009)

새롭게 꼭두각시 인형을 만들게 된 배경을 밝히려면, 대략 2달 정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다.

연구원들을 데리고 알윈에 도착한 당일의 일이다.

마법사 길드에서 왕자를 만났던 날, 나는 우리 프랑의 마법 재능을 확인할 생각으로 마법 적성 검진기를 사 왔었다. 겸사겸사 다른 아내들의 몫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그리고 문제는 그날 밤에 발생했다.

****

“이게 그 적성 검진기야.”

아내들이랑 장인어른 댁의 남는 방에 모인 나는 리트머스 용지 같은 종이조각을 보여주며 말했다.

‘건강검진 할 때 오줌을 뿌리는 그거랑 좀 닮았군.’

총 4칸으로 나뉘어 있고 안에는 얄게 핀 면봉 심 같은 게 들어 있다.

파피루스를 만지면 이런 질감일까? 생긴 건 게임의 경험치 바랑도 비슷한 느낌도 든다.

프랑은 그 종이를 앞뒤로 돌려보며 물었다.

“으응…… 노르, 이건 어떻게 쓰는 거야?”

“필터를 잡고 마나를 불어넣어. 그러면 정해진 분량만큼의 마나가 불의 마나로 변환되서 검진기를 태울 거야.”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나는 내 몫의 검진기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화륵!

적당히 불어넣자 필요 이상의 마나는 필터에서 흩어지고, 소량의 마나가 불꽃으로 바뀌었다.

빨간 불꽃은 4칸 있는 검진기의 3번째 칸에서 멈췄다.

─훅. 나는 촛불 불듯 입김으로 꺼트렸다.

“자. 다들 잘 봐. 검진기의 이 칸들은 필터에 가까울 수록 불에 잘 타고, 떨어질 수록 화기에 강해져. 다시 말해서 이걸 어디까지 태울 수 있는지로 해당 속성의 적성이 드러나지.”

“흐응. 끝까지 태울 수록 불꽃 계열 마법에 적성이 높다는 뜻이겠네? 우리 남편놈은 평균보다 위인 거고?”

“에사크타(정답)!”

검진기에 10의 마나를 넣든, 100의 마나를 넣든 같다.

필터는 불어넣은 마나에서 딱 10만큼의 마나를 흡수하고 검사자의 재능만큼의 불꽃을 피워낸다.

“음…… 그러니까, ‘똑같은 마나를 써서 얼만큼 강한 불을 만드는가’ 하는 검사네요?”

“그렇지. 다른 속성의 검진기도 도긴개긴한 원리래.”

나는 설명서를 펼치며 말했다.

이 검진기의 기준은 마법사 길드가 지원자를 모아서 만든 물건이라고 한다.

즉, 이 강북호님은 불꽃 타입 재능이 마법사들의 평균보다 더 높으시다~ 이 말이지. 크, 혈수마공 뽕 찬다.

“들어보니까 4단계를 찍는 사람도 거의 없고, 3단계만 해도 그 속성을 전공해서 먹고 살 정도는 된다더라고. 사랑하는 울 아내님들, 이제 이 서방님의 위대함을 좀 아시겠읍니까?”

“그대여. 내 검진기는 심지까지 다 타 버렸다만. 혹시 내 건 불량품으로 줬느냐?”

“아하. 그건 니 재능이에요.”

4단계를 넘어서 타지 말라고 넣어둔 심지까지 태워버리신 여신님의 위용에 나는 머리를 조아렸다. 나빴어 진짜.

뻗대다가 바로 턱주가리가 날아간 나는 주섬거리며 아내들 쓸 검진기를 보따리에서 풀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MBTI 성격 검사를 하듯 화기애애하게 검사에 들어갔다.

“아윽.”

프랑은 처음으로 도전한 검진기─불꽃 타입이었다─가 중간에도 미치지 못하자 신음을 흘렸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이 혈통빨 이세계에서는 태생과 환경으로 적성이 결정되는 경향이 크기 때문이다.

듣기로는 드워프들은 주로 불과 땅에 적성을 가진댄다.

그런데 정작 하프 드워프인 프랑이 불꽃 속성에 별 재능이 없다니. 그녀가 좌절하는 것도 당연했다.

“실망하지 마. 마법이란 게 재능만 갖고 전부 일사천리로 풀리는 것도 아니고, 이런 검사로 알 수 있는 적성이라곤 다 기초 원소쪽 재능 뿐이니까.”

나는 프랑의 등을 쓰다듬으며 그녀를 다독였다.

낙심할 것 없다. 고작 이런 검사로 자신의 모든 재능이나 장래성까지 알아내려는 게 더 과욕 아니겠어?

“마음 편히 잡고 마저 해 보자. 여기, 흙 속성 검진기.”

“……응.”

프랑은 심호흡을 하며 기합을 넣고 검사를 속행했다.

내가 사 온 속성 검진기는 총 6종류다.

불, 물, 얼음, 땅, 바람, 빛.

보편적인 속성이지만 심리학이랑 정신의학이 별개이듯이, 파고들면 여러가지 부분에서 차이가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얼음이랑 물은 자주 겹치지만 세부 분파에서는 크게 갈린다.

‘얼음 타입에 재능이 있는 마법사들은 공간 속성에 재능을 보이는 경우가 많댔던가?’

공간 마법만이 아니라 뇌의 공간지각능력, 그리고 상대를 속박하는 마법 등도 포함해서 말이다.

‘이상한 듯 하면서도 납득이 가는 이유였지.’

우리가 말하는 ‘냉기’라는 건 에너지의 일종이 아니잖은가?

냉기란 ‘특정한 공간에 열 에너지가 없는 상태’다. 지구의 위대한 발명품 에어컨이 집에서 열기를 빼내는 가전제품이듯 얼음 계열 마법은 공간에서 열을 배제하는 술식이다.

“원소라는 건 복잡하다. 전혀 상반된 속성끼리도 얽히기도 하지.”

베로니카는 검진기를 집으며 말했다.

“특히 빛과 어둠의 두 속성은 적지 않은 원소에 영향력을 끼치지. 뜨거운 불꽃, 차가운 냉기. 둘 다 죽음을 연상시키는 속성인 한편, 생명에게 꼭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어둠 속성 검진기 같은 건 팔지도 않고, 살 생각도 없음.”

유치원 교사가 “와! 아드님은 테러와 선동에 재능이 있는 것 같아요!” 라며 칭찬하면 턱 돌아갈 게 뻔하듯, 어둠 계열 마법의 재능을 확인하는 검진기는 어디에도 팔지 않았다.

그렇게 아내들의 적성이 하나씩 밝혀졌다.

우선 말해봤자 입 아픈 베로니카.

특출나게 높은 불꽃과 빛을 중심으로 골고루 높다. 종족의 차이가 확연하군.

“빛 속성이 높게 나오긴 했다만, 나는 치유 마법에서는 별 재미를 못 봤다. 원래 불과 빛, 얼음과 공간 속성은 바이콘의 보편적인 마법 자질이니까.”

“같은 속성이어도 또 소분류로 나뉜다는 거군. 이해가 가긴 하지만…… 얼음 속성은 꽤 낮네?”

“공간=얼음인 건 아니니까. 공간 쪽 재능은 신마님 덕분이겠지.”

그런가? 하긴, 발굽을 좀 찍어서 수천 년 넘게 유지되는 〈공간이동〉 마법진을 만든 신이니까.

베로니카 본인의 말로는, 자신처럼 마법체계가 다르다면 이 검사로 실제 실력을 100% 파악하긴 어려울 거랜다.

그도 그렇다. 진짜 딱 성격 검사 수준의 신뢰도라고 하면 되려나.

그래도 프랑처럼 틀을 잡아가는 초심자에겐 적절한 가이드라인이 되겠지.

“……나야 흙 속성을 빼면 전체적으로 낮지만.”

“뭘. 하나라도 재능을 찾았으면 충분해.”

결국 3단계를 찍은 건 흙 속성 뿐이었던 프랑은 실망한 듯 어깨를 떨궜지만, 나로서는 그거면 충분하다고 본다.

요즘 같은 시대에는 한 우물만 파면 바보라지만, 프랑의 주 전법에서 잡다한 스킬 트리를 끼워넣을 필요는 없다. 틀에서 벗어나지 않게 몇 종류 더 추가하면 족하지 않을까.

티르시에게 부탁해서 본격적인 기틀만 잡아주도록 하자.

‘이세계에서는 도적이 마법을 쓰는 것도 평범한 일이니까.’

당장 자물쇠를 만들거나 보안을 신경쓰는 사람들은 전부 마법을 써대는데, 도적이라고 락픽만 써서 마법을 건 함정을 해체해야 할 이유가 뭐란 말인가?

아마 그런 락픽 원리주의자는 싹 다 깜빵에 갇혔던가 던전에서 함정에 치여 죽었을 듯.

“흠흠. 다음 가자, 다음.”

다음 차례는 다나다.

특출난 건 당연히 빛. 그리고 의외로 물이다.

성씨의 유래인 ‘베르베이아’부터가 강의 여신이니까 그렇게 의외랄 건 없을까?

하지만 그 물 속성도 빛 속성에 비하면 낮고, 전체적으로 재능은 있는 편이지만 본인이 마법사가 될 생각이 없더라.

“현대 마법은 배우기 늦었고, 우리 고향의 마법은 문신을 새기기 싫으니까 패스. 있는 거나 더 잘하면 되지.”

“옳으신 말씀.”

그야말로 힐탱의 귀감이로다.

원래 힐러가 공격에 신경 쓰면 겜 터진다. 지금처럼만 잘 막고 잘 치료해주면 1인분 이상이란 말씀.

“이제 남은 건…… 라리루라 뿐인가?”

나? 내 몫은 처음에 쓴 불꽃 타입 검진기가 다였다.

내 성장 방향은 다 잡혀있기에 새삼 새 우물을 팔 가치가 없다고 생각해서다.

절대 돈이 아깝다거나 ‘아내들이랑 비교해서 재능이 크게 후달리면 어쩌지?’ 하는 밴댕이 소갈딱지 같은 소인배 심보가 아니다. 아무렴 아니고 말고.

……그래서, 대망의 마지막.

나는 검진기를 들고 혼이 빠져나간 라리루라를 보고 눈을 질끈 감았다. 존나 여섯 쌍둥이를 임신해도 저런 표정은 안 지을 것 같은 얼굴이었다.

베로니카 이상의 개쩌는 재능이 있어서? 아니다.

다나의 물 속성 재능처럼 의외의 적성이 있어서? 틀렸다.

어…… 아니. 아니지. 의외성이라면 있긴 했다.

불, 물, 얼음, 땅, 바람, 빛.

이세계 현대 마법에서 재능의 기준이 되는 속성들.

라리루라는 그 6속성 전부가── 평균 이하였던 것이다.

“……선배? 장난이라면 지금 말해주실래요? 제가 엉엉 우는 모습이 보고 싶으신 거면 프로포즈 때 노력하시는 편이 향후 원만한 부부 관계에 보탬이 될 거라고 조언하고 싶은데요.”

“미안. 나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

“기탄없는 진심이 너무하신 것 아녜요? 뭐에요? 괴롭힘의 일종이에요? 어떻게 하면 귀신같이 여섯 개 전부 꽝일 수가 있죠?! 이 검사에서 모종의 악의를 느끼는데요!! 그보다 선배 혼자만 은근슬쩍 재능 비교평가에 빠져나가지 말아주실래요!!”

라리루라는 머리가 훼까닥 돌아서는 꺅꺅 거리다가 가지고 있던 검진기를 내 의수에 막 들이밀기 시작했다. 나는 깜짝 놀라서 그녀의 얼굴을 되밀었다.

“야! 이거 비싼 거야! 기름종이도 아니고 남의 팔에는 왜 또 비벼대!”

“그 의수를 움직이는 게 선배 마나잖아요! 여따가 문지르면 알아서 마나 먹고 결과가 나오겠죠!”

머리 존나 잘 돌아가는 것 봐. 위기상황이면 머리통이 평소 3배 출력으로 회전하는 게 존나 낯익네.

“프리실라, 떽! 손! 앉아! 엎드려!”

“아르르르르! 멍멍!”

─우르르 쾅쾅!! 나는 흥분한 멍멍이를 달래듯 라리루라와 처가를 굴러대며 소란을 피워댔다.

이 시발. 내가 얼마나 좆빠지게 변명거리를 준비해 왔는데 이렇게 허망하게 내 재능을 까발릴 순 없지 않은가!

“꼬, 꼭두각시! 네 꼭두각시 새로 만들어줄게! 저번에 너 줄 선물 생각하고 있다고 했잖아! 그게 그거였어! 마나 금속을 써서 만든 세상에서 유일한 신상품이야!”

로마니아에서 개발된 꼭두각시 인형.

‘술자가 직접 조종하는 골렘’이란 구조 상 90%가 나무로 만들어진다. 보통은 금속에 마나를 부여할 수 없기 때문에, 해 봤자 겉을 철로 만들고 안에 나무를 받치거나 하는 수준이 고작이다.

하지만 그걸 완전한 금속, 그것도 실전되었던 고대 문명의 기술로 재현한다면?

똑같은 코어라도 기존보다는 훨씬 성능이 향상될 것이다.

“그거 만들어줄 테니까 참아! 이 의수도 너 쓸 꼭두각시에 쓸 데이터를 모으려고 만든 시제품이었다고!”

“……새 꼭두각시… 링링이의 업그레이드?”

라리루라는 자기가 인형이 된 듯 움직임을 뚝 그쳤다.

‘쓰벌, 해치웠나?’

아니, 방심하지 말고 입을 털어서 내려오게 만들어야겠다.

어차피 베로니카도 말했듯, 이 검사로 알 수 있는 건 마법 재능의 일부 뿐이다.

이 녀석도 〈꼭두극〉이나 술식 결합을 쓴 서커스는 잘만 했지 않은가. 마나를 다루는 능력이라면 틀림 없이 우리 가족에서도 1위를 다툴 것이었다.

“아, 선배가 맨날 거짓말 할 때 짓는 표정.”

“뎃? 그게 티가 난다고?”

그런데 그런 칭찬을 입에 담아서 구슬려 삶으려던 나는 툭 던져진 말에 무심코 뺨을 만졌다.

“역시.”

그리고 눈을 좁히는 라리루라를 보고서야 눈치를 깠다.

옘병. 유도심문이었나.

“……들켬?”

“저라고 평생 속고만 살 줄 아세요?”

내.

솔직히 그럴 줄 알았어요.

“자, 가만히 계세요! 저만 이런 굴욕을 겪을 순 없다구요! 마법으로 먹고 살던 전직 서커스 걸로서 트라우마 감이에요! 선배도 저랑 같이 좌절감을 나눠주세요! 부부잖아요!!!”

“구와아악!! 마음의 준비! 마음의 준비 좀 하고!”

아니 씹, 눈물 물귀신 작전 에반데!

차마 귀하디 귀한 우리집 아내님을 밀쳐서 넘어트릴 수는 없었기에, 나는 강압적인 라리루라의 밑에 깔려서 은색의 의수를 구동시키는 마나를 고대로 검진기에 묻혔고──

“……어?”

흙 속성의 검진기는 까맣게 물들어서 바스라졌다.

의수에 쏟아진 까만 재에 라리루라는 뭔 일이 일어났나~ 하는 것처럼 눈을 깜박거리다가, 확 하고 안색이 밝아졌다.

“역시! 이것 보세요! 이상하죠? 제 검진기에만 하자가 있던 거라구요!”

“아니야, 라리루라. 그런 게 아닌 것 같애.”

─팔랑. 설명서를 읽던 프랑이 말했다.

“……‘흙 속성 검진기를 사용할 때의 주의사항’.”

프랑은 페이지에 적힌 글을 복창하며 보기 드물게 인상을 찌푸렸다.

그녀의 곤혹스러움이 찡그린 눈썹에 그대로 드러났다.

“‘순수한 원소의 마나는 결합과 반발 현상을 일으킵니다. 흙 속성은 특히 많은 원소가 호상성을 보이므로, 이하의 현상은 해당 속성에 막대한 재능을 가졌음을 의미합니다’.”

프랑은 천천히 설명서를 읽어내렸다.

검진기가 말라붙으면 불.

젖거나 녹아내리면 물.

곰팡이나 미생물이 증식하면 빛.

그리고 또 하나.

“끝으로, 검은색으로 변색되는 경우는── 흑마법에 관한 재능입니다.”

─히끅.

프랑은 놀란 듯 딸꾹질을 하고 나서 읊조렸다.

“위와 같은 현상이 일어났을 시에는, 즉시 가까운 교단과 마법사 길드를 찾아주시길 바랍니다… 래.”

내가 라리루라에게 역강간 당하는 걸 보며 팝콘을 뜯던 세 사람은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검게 변색…… 이요? 가루가 됐는데요……?”

라리루라는 흔적도 안 남고 바스라진 새까만 재를 보면서 입을 벙긋거렸다.

흙 속성 검진기에까지 영향을 끼칠 만큼의 막대한 재능이, 고작 ‘검게 변색되는 것’.

그러면…… 검진기가 뼈대까지 바스라질 정도의 영향력은, 대체 얼마만큼의 재능이 있어야 벌어지는 일일까.

불편한 침묵 속, 나는 길고 긴 고민 끝에 말했다.

“와우.”

사랑하는 어머니 아버지. 건강하십니까?

불초 아들 강북호는 이세계 적성 검사에서 초고교급 테러리스트의 재능을 발견한 듯 합니다.

어째 〈임모르탈리스〉의 대빵 같은 놈이 팜플렛부터 던져주더니만. 존나 스카웃 제의였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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