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 왜 그러세요? 멍- 하니 계셔선.”
나는 라리루라가 눈앞에 손을 흔들자 정신을 차렸다.
2달 전의 일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설마 죽음의 신의 후계자라는 사실이 흑마법의 재능에도 영향을 끼치다니.’
내가 태어날 때부터 그런 재능을 타고 났을 거라고는 딱히 생각하기 어려운만큼, 설득력 있는 인과관계는 그것이다.
‘날 후계자로 지목한 오딘의 영향으로 얻은 재능이겠지.’
예르나를 상대로 미쳐날뛰었을 때도 그랬다.
그때는 대충 뭔가 내러티브가 있겠거니~ 하고 넘어갔는데, 따져 보면 그때에도 역시 어둠과 음의 마나를 휘어잡고 실컷 다뤘지만 이제까지 아무 부작용도 없었잖은가.
혹시 내가 흑마법을 습득하면 이 좆쩌는 재능빨로 달달한 꿀을 빨 수 있는 게 아닐까?
그렇게만 하면 사이어인 옐로를 초월한 사이어인 블랙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같은 생각을 안 했다면 거짓말이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건 쫌 아니야.’
그야 신대나 고대 문명 초기의 마법 체계 때는 흑마법이냐 아니냐 하는 구분은 짓지 않았다는 건 안다.
하지만 어디 지금 시대에도 그런가? 멕시코가 암만 평화로웠던 시기가 있었다고 해도 현대 지구에선 여행자제지역이란 불명예의 낙인이 찍힌 것처럼, 흑마법사는 테러리스트다.
한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는 내가 흑마법사가 될 수는 없다, 이 말이다.
‘당연하지만 그 재능을 시험해 보는 것도 개병신 짓이겠고.’
나는 몸에 스며든 어둠과 음의 마나 때문에 세미-고자가 된 상태가 아닌가.
섹스 한 판 뛸 때마다 스팀팩 빨듯 성수를 마시고 마나를 막 써가며 나흘 굶은 자식에게 풀죽 먹이듯 꼬츄를 일으켜야 한다니? 이것만 해도 좆 같기가 개불딜도보다 더하다.
그런데 지금 이상으로 부작용이 생기면 어쩌자고 흑마법을 쓰란 말인가?
‘뭣보다 흑마법사 특화 궁예놈이 나르메르-나일에 있는데, 내가 미쳤다고 흑마법을 배워?’
그러니까 이 재능은 봉인이다.
볕 들 날이 올지는 모르겠지만, 죽는 날까지 봉인을 풀 일 없기를 바라자. 판도라의 상자…… 는 시발 열릴 것 같으니까 대충 마봉파 정도로 해 두자.
나는 길 듯 짧은 생각을 치워버리고 말했다.
“별 건 아니고, 걍 저걸 조립할 생각을 하니 까마득해서.”
“조립 자체는 쉽답니다? 방법만 알면 간단해요. 저도 할 줄 아는 걸요.”
“네 무기인데 그건 당연한 게 아닐까?”
그렇게 컴퓨터 조립 첫 경험 떼주듯 말해도 말이지.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벌써 작업에 착수 중인 클라라와 오드리를 따라가서 앉았다. 텐트 안은 뭘 했다고 벌써 후끈후끈했다.
이 후덥지근한 열기는 아마 클라라의 것이겠지.
“작은 부품은 없네요? 이 정도면 누워서 떡먹기겠어요.”
“전용 거푸집도 없는데 이걸 어떻게 만들게? 딴 꼭두각시 인형은 거의 나무를 깎아 만든 거니까, 어디 빌릴 데도……”
면밀히 따지던 오드리는 클라라의 웃음을 보고 입을 굳게 다물었다.
“……마, 만들자고? 이걸? 거푸집부터?”
“돈이 있는데 뭐가 문제에요! 많은 돈은 시간을 단축하게 해 주는 마법의 비약이에요!”
“허, 헛소리 마! 지금 일할 사람이 나랑 댁 말고 더 있어?! 좀 있으면 로마니아도 가야 한다며! 야근이라도 하게?!”
“못할 건 뭐에요!”
오드리는 꺄아악 크아악 거리면서 날뛰었지만 도저히 우리 월클클 씨를 이겨내지는 못했다.
아마추어 괴도가 찡찡대는 정도로 이 사람 고집이 꺾였으면 옛적에 딴 일감을 찾아서 승승장구하고 있었을 걸?
“우선 견본부터 만들죠! 오드리! 임시 파츠!”
“젠장, 젠장……. 생각 좀 하고 취직할 걸…….”
“노르드 씨, 마나 회로의 집적 공식은 기억하시죠? 인형의 양팔에만 5중선을 그어주실래요?”
“아쉽게도 까먹었어요.”
“……엊그제 배우셨잖아요?”
“이야. 머리를 안 쓰고 산지 좀 됐더니 잘 안 굴러가네요.”
본의가 아니니 아무튼 내 잘못은 아니다. 착한 사이어인의 법이라고 명명하자.
물론 일 자체는 성실하게 했다. 장르에 대한 부족한 지식 및 그에 따른 건망증은 보고서를 읽으면서 커버하면서, 나는 옆에서 쫑알대는 라리루라의 말을 한 귀로 흘렸다.
“디자인은 그대로 유지하고 싶지만 아무래도 철이면 질감에서부터 차이가 나겠죠? 도색도 그래요. 나무랑 다르게 칠이 벗겨지거나 안 묻기도 할 테니까 고민이네요☆!”
“커미션 주고 계속 트집이나 잡는 손님은 뒤에서 욕 먹지 않을까?”
투덜거리면서 견본에 선을 긋고 마나를 불어넣었다. 원리 자체는 내 의수와 똑같다.
쿠오오오오…!!
용접하듯 기세 좋게 금속에 흡수되는 마나!
색 자체가 용광로에 넣었다가 뺀 것처럼 나의 마나 컬러인 녹색으로 변했다. 만지면 화상 입을 것 같다. 위에다가 고기 몇 점 올려두고 싶어지네.
“봐도 봐도 미친 놈. 저걸 맨몸으로 하네.”
링링이 4.5호의 부품 치수를 재던 오드리는 혀를 내둘렀다.
“나랑 선생님은 마나 방출기를 들고 돌아가면서 뼈 삭도록 죽어라 고생해서 채우는 걸 앉아서 쭉쭉 뚫어버린다고? 니가 사람이냐? 사람이 양심이 있으면 오러 쓰는 놈들은 몬스터라 자칭해야 돼.”
“지랄 말고 뺑끼 칠 시간에 일이나 해, 오씨. 내가 명색이 싸장님인데 외노자보다 못하겠냐?”
“쳇.”
몇 번 꼽을 주면 알아서 조용해진다는 점이 오드리의 장점 아닌 장점이다. 우리는 기초 설계를 후딱 끝냈다.
“ᛒ(Berkanan).”
─휘리리릭!
레고보다 무식하게 생겼던 견본 팔에 내 변신 마법의 룬이 닿았다. 시범작이 새끈하게 바뀌는 건 순식간이었다.
“걍 이걸로 처음부터 끝까지 만들지?”
“킹치만 싸우다 풀리면 좆되는걸?”
편법만 찾으면 성장 못 한다. 나야 편법 존나 찾고 치트 써 가면서 개꿀 빨 거지만, 여러분은 건실하게 일해서 이세계의 기술 발전에 이바지 해야지?
“라리루라. 시범작이다. 움직여 봐.”
“네!”
─슈르르륵!
골무를 낀 라리루라의 손에서 마나의 실이 뻗어나와서 막 만든 견본 팔에 닿았다.
“임시 코어랑 연결할게요. 뻑뻑한가만 봐 주세요.”
클라라가 그 유니콘 흑마법사의 거대 골렘 코어와 연결을 완료했다.
끼릭…!! 팔은 아무 문제없이 움직였다. 성공이었다.
“좋았어!! 역시 선을 많이 긋는 게 비용은 들어더라도 제일 확실하네요!”
클라라는 자기 무기라도 완성된 듯 신나서 춤을 춰댔다. 거 보는 사람도 기뻐지는 리액션이로군.
“곧장 컨셉 제작에 들어가죠! 손님도 이리로 오세요!”
“물론이에요♡!”
─팍! 설계도를 펼친 클라라는 빠르게 그림을 그렸다.
전공이 아니기에 약간 조잡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갑옷의 설계도처럼 그려놓자 알아보기 편했다. 나는 약간 재밌어질 듯한 예감에 눈을 반짝였다.
예산을 도외시한 프로토타입 0번 기체 제작이라니! 쥬지를 달고 태어난 수컷으로서 이걸 어떻게 참으란 말인가.
갑옷과 로봇은 남자의 로망.
즉, 마초이즘이다. 시험에는 안 나온다.
“일단 손가락을 배출구로 <마법의 화살(Magic Missile)>을 쏘는 기능은 꼭 넣어주셔야 해요?”
“네, 알고 있어요. 하지만 통짜 마나 금속이면 부여 가능한 마법의 질과 양도 훌쩍 뛸 거에요. 그것 말고도 인형 안에다 여러가지 기믹을 추가해 보자구요!”
“잠만여. 주 무장은 부속품으로 넣으면 되지 않아요? 이건 역시 출력을 강화할 동력원을 추가하고 빔 분사구를 사지에 달아야죠. 허벅지나 어깨에 미사일도 넣읍시다.”
클라라는 내가 끼어들자 턱을 쓰다듬었다. 곤란해 하는 게 아니고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좋네요! 금속의 강도를 살리는 멋진 설계에요! 아예 의수 장비에도 추가했던 과부하 기능도…… 하지만 그 설계대로면 장비가 너무 무거워지는데요?”
“앗! 그 점이라면 걱정 붙들어매시라!”
라리루라는 기다렸다는 듯 보석을 꺼냈다. 낯익은 놈이군.
“그건?”
“얼스터 인들에게 받았던, 몸을 가볍게 해 주는 유물이요. 원래는 제가 맨몸으로 싸울 때 쓰곤 했는데, 생각해 보면 저 아이의 전위가 뚫리는 사태를 대비하는 건 미련해 보여서요.”
─끼릭. 보석을 간이로 파둔 홈에 끼워넣는 라리루라.
“제가 몸을 지켜야 할 상황을 걱정하기보단, 그 상황이 안 오게 하는 게 더 중요하잖아요?”
“당연하지. 원래 꼭두각시 술사는 자기 몸의 안전은 실드 매직 아이템이나 꼭두각시 2호기에게 맡긴다고.”
우리가 떠드는 걸 질린 듯 보던 오드리가 한 마디 했다.
“너도 소형의 호신용을 만들던가 네 몸을 지킬 추가 장비 정도는 갖고 다녀. 인형이랑 제 몸을 동시에 챙기려고 구는 놈들 치고 움직임이 꼬이지 않는 멍청이가 없더라.”
“음…… 저는 별로 그런 경험이 없어서…….”
“나도 아직 죽어본 적은 없어. 근데 칼에 찔리면 죽겠지? 남보다 잘났다고 실패하지 않는다는 법은 없어. 잘 나가기만 하던 놈들도 망할 때는 훅 가더라.”
꼭두각시 술사의 본고장 로마니아에서 그들을 피하며 괴도 짓을 하던 언니 괴도의 말에는 묘한 실감이 있었다. 자기가 한 말처럼 실수 한 번에 훅 가서 지금 여기 있는 처지니까 더 그런 느낌.
“조언 고맙습니다~. 고려할게요.”
─끄덕.
원소 마법만 빼면 많은 분야에서 재능충인 라리루라는 잘 알겠다는 듯 굴었다. 오드리의 말이 맞다고 생각했나 보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따라 마나량이니, 마법 재능이니 하는 걸로 자꾸 승부욕을 자극하는 일이 잦아서♡”
내 쪽 쳐다보면서 말하지 마라.
그게 내 잘못은 아니잖아, 쓰벌.
“암튼 설계를 포함해서 보고서를 완성해 갑시다. 프로젝트 명은 뭘로 할까요?”
“링링──”
“응, 그 이름 안 써줄 거야. 예산이 걸린 정식 보고서인데 남편 사업길 다 끊어먹을라고?”
“왜요 또! 링링이가 어때서요!”
“어떠시기는요. 들을 가치도 없어서요 요년아.”
굳이 붙일 거면 샬롯 링링 정도 같은 이름으로 짓는 게 더 낫겠다.
샬롯 링링. 여성미 넘치면서 존나 쎄 보이는 이름 아닌가. 그야말로 강철 풍선 같은 필링이다.
“로마니아 대귀족님한테 드릴 보고서죠? 로마니아 단어로 만드는 게 좋겠네요.”
“아예 그걸 길드명 삼아 버려. 당장은 설립 못 할 테지만, 이것 만한 기술력이면 머지 않아 길드를 만들게 될 거야.”
“창업 파트너 여러분. 양옆에서 프레셔 주지 마십시다.”
나는 고민하며 팔짱을 꼈다. 텐트 밖을 쳐다보자 봄이 와 싹튼 풀잎이 보였다. 적당히 하나 꺾자, 그새 벌레한테라도 파 먹힌 듯 구멍이 뻥 뚫려 있었다.
“앞면과 뒷면이 같은…… 진솔함.”
이 길드의 모토가 될 표어였다.
이 마나 부여 기술 산업은 우리 가정의 평화를 유지해 줄 희대의 자동 충전 ATM이었다.
궤도에 오른 뒤에는 내가 구태여 손을 쓸 것도 없이 매달 내 통장에 흑자 폭탄이 떨어지겠지.
평화. 평화라. 나는 나뭇잎의 구멍으로 부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평화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게 뭘까요?”
“힘이죠?”
“돈이지.”
금속 장비의 시대를 찾아 돈을 져버린 대장장이와, 금속을 다루는 기술로 악독한 부자의 돈을 훔치던 괴도.
출신과 과거에 걸맞게 정반대의 대답이었다.
물론 어느 것도 정답이긴 하다.
‘그치만 내가 쓸 돈은 여러분이 벌어다 주실 거잖아요?’
그러니까 붙일 이름은 정해져 있던 셈이다. 설마 길드 명을 ‘돈 낳는 자판기’라고 지을 순 없으니까.
나는 고민을 끝내고 말했다.
“듀나미스(Dýnămis).”
‘힘’과 ‘잠재력’ 등을 의미하는 고대 로마니어 어였다.
현대 어휘에서도 종종 사용되기 때문에, 현지인들한텐 꽤 직관적인 암시로도 들릴 것이었다.
‘우리는 존나 개쩝니다’라는 뜻으로 말이다.
“프로젝트의 이름은 〈마리오네트 듀나미스〉로 하죠.”
그런 만큼 후일 세울 길드의 이름은 자연스럽게 ‘듀나미스 길드’가 될 것이었다.
이미 누가 사용 중인 이름이 아니라면, 말이지만.
“듀나미스! 멋진 이름이네요! 한 건 해치웠겠다, 일이 전부 끝나고 돌아가면 제가 한 턱 쏠게요!”
“……나도 길드가 세워지면 결혼할 수 있으려나. 일단 로마니아로 돌아가면 고향의 원조 마르게리따부터 먹을랜다.”
내게 작명을 맡겼던 대장장이 듀오는 먼 뒷 일을 생각하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반론은 나오지 않았기에, 우리는 빠듯한 일정으로 시간표를 짜서 새 꼭두각시의 제작을 시마이쳤다.
그리고 일을 끝낸 바로 다다음날에는 로마니아 행 선박에 올랐다. 너무 스폰서를 기다리게 하는 것도 좋지 않으니까.
목적지는 우리의 흑…… 후원자 어르신이 계신 아르마알스 가문의 영지. 에투르 라스나.
“발기부전을 치료하기 전에, 정정당당하게 돈부터 좀 꾸러 가자.”
어르신. 민폐는 안 끼칠 테니 보증 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