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494화 (494/1,009)

브리타니아 서부에서 로마니아까지 배로 약 3일 반.

그 3일 동안을 항해하면서 트러블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이세계의 바다는 험악하니까.

“해적 준내 많네. 캐서방 새끼들.”

그런데 이 판타지 바닥의 국룰과는 다르게, 습격해 온 건 99%가 몬스터가 아닌 해적이었다.

아니지. 해적도 대충 인간형 몬스터 카테고리에 넣어도 될 것 같다. 잡으면 경험치랑 잡템을 떨구는 거지.

【끄악!! 때, 때리지 마쇼!!】

【씨발! 민간선에 왜 미스릴 클래스가 타고 있어!】

〈뭐라는 거야, 해적 새끼들이! 유언을 남기고 싶으면 로마니아 말로 지껄여!〉

우르르르─.

나는 선원둘이 로마니아로 오는 길에 포로로 삼은 해적을 경비대에 넘기는 것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일주일도 안 되는 항해 사이에 우리가 탄 민간선을 노리는 배가 몇 척이었는지 모른다.

그나마 선원들이 잔뼈가 굵은 배였고 해적들이 씹병신들이었기에 우리가 나설 일은 거의 없었지만, 싸움 소리가 들릴 때마다 클라라가 바짝 쫄아갖고는 말도 못 걸 정도였다.

덕분에 이 사람 남편은 어디서 뭘 하는 건지 좀 궁금해지고 만 나였다.

“……어째서 역사도 깊고 기술도 뛰어난 게르마니아를 3대 야만족인가 하는 멸칭으로 부르는가 했더니, 이제 이해가 좀 가는군. 어찌 배를 탈 때마다 해적은 죄 게르마니아 인인지.”

애시르 신족인 베로니카는 구신을 섬기는 대표적인 국가의 실태에 탄식을 금치 못했다.

이웃 국가 출신인 프랑까지 괜히 어깨가 좁아지는 게 보기 안쓰럽다. 나는 프랑의 어깨를 토닥여줬다.

“땅이 크니까 지역색이 나오는 거죠. 그나마 고대의 바이킹들은 바다의 모험가들도 많았다지만, 현대의 바이킹은 이름만 따라하는 사략선이나 해적이에요.”

마법사 길드에 퇴직서를 쾌척하고 같이 와준 티르시는 못 볼 것을 봤다는 듯 수염을 기른 해적들을 외면했다.

나는 끌려가는 뿔 투구 해적들을 배웅하며 짐을 들었다.

‘생긴 건 진짜 내 상상 속 바이킹 그대로네.’

하지만 겉멋에 불과하다. 속알맹이는 옛날 조선 시대의 왜구 같은 새끼들이다.

강대국이라고 다 체면을 차리는 게 아니라는 사실은 나의 고향 지구의 현대인들이라면 다 알 것이다.

딱히 동서양을 가릴 것도 없다. 국가 정도 되는 거대한 단체는 다 그런 식으로 돌아가니 말이다.

“그나마 저것들은 사략선은 아닙니다. 게르마니아 왕가는 자국이나 우호국 선박만 안 건드리면 방치하기 때문에, 저런 약탈 해적들은 주로 저희 나라를 오가는 선박을 노리죠.”

어르신 가문에서 나온 집사가 화제에 끼며 말했다.

“전시인 것도 아닌데 민간 선박을 건들면 저희 로마니아도 가만히는 안 있습니다. ‘게르마니아도 피해를 입고 있다’라는 면피가 있으니까 강하게 몰아세우지는 못합니다만….”

“국제 정치라는 게 그렇죠. 한쪽이 뻔뻔하게 나오면 외교 보복 같은 것 말고는 대처하기도 힘들다 하더군요.”

“허허. 실감이 있는 말투십니다. 혹시 노르드 님의 고향도?”

“사람 사는 곳이 어디건 비슷하지 않겠습니까.”

엊그제 바로 통수친 국가에서도 수입도 하고 수출도 하며 그러는 거지 뭐. 한 손으로 악수하면서 다른 손으론 나이프 파이팅을 하는 게 국제정치라고 누가 그러더라.

민간인이 고생 좀 한다고 전쟁을 불사할 수도 없으니까.

그리고 정치판에는 100% 착한 놈도 100% 나쁜 놈도 없지 않은가.

나는 골치 아파지는 외국 정세에 관심을 끄기로 했다. 투표라도 할 수 있다면 모를까, 여기는 왕정국가 중세랜드잖아? 이 이상은 틀림없는 TMI일 것이다.

우리의 도착 소식을 듣고 바로 달려온 집사를 따라 아르마알스 저택을 향했다. 인원은 우리 가족 풀 파티에 티르시와 대장장이 듀오다. 거의 패키지 여행 수준의 인파로군.

그리고 나는 저택에 도착하자마자 당연하다는 듯 바로 집무실로 끌려갔다.

“어서 오게. 뱃여행은 할 만 하던가?”

정말 주옥 같다. 이 할아버지 내가 철인이라고 사람 대충 막 회사 비품 굴리는 듯 굴리는 것 봐. 오드리 년은 나한테 감사해야 한다. 진짜로.

“해적이 얼마나 많은지, 선원들에게 존경심이 샘솟는 여행길이더랍니다.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어르신.”

나는 슬픔을 삼키고 인사부터 박았다.

집무실은 몇 달 전과 다를 게 없었다.

그럴 만도 하다. 역사가 배어든 방이 하루아침에 뒤바뀌는 일이 있다면, 좋은 일보다는 나쁜 일일 가능성이 더 크겠지.

적당히 아부와 허례허식을 섞은 토크를 나눈 끝에 어르신께서는 자리를 권했다.

“고생 많았겠군. 편히 앉게. 아, 가이우스 자네는 일 보러 가고. 노르드가 설마 나한테 꼬장이라도 부리겠나.”

“예.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어딘지 할 말이 많아 보이는 기사단장님은 나를 지나쳐서 방을 나갔다. 몇 달 사이에 내가 던져준 떡밥으로 뭔가 해낸 눈치였는데, 그걸 말할 틈이 없어서 아쉬웠던 모양이다.

─딸랑! 상석에서 일어난 어르신은 벨을 울렸다.

“자네도 차보다는 술을 좋아하겠지만…… 아직 낮이니 그건 곤란하겠군. 담배는 피우나?”

“아니오. 가끔씩은 배워볼까 싶다가도 아내들 생각이 나서 멈칫하게 되더랍니다. 아, 물론 제 앞에선 피우셔도 됩니다.”

돈 꾸러 와서 간접흡연 싫다고 뻐팅길 만큼 생각이 없지는 않다. 어르신은 고맙다는 파안대소를 하시곤 담배를 말았다.

“그래, 잘 생각했군. 이런 몹쓸 건 애당초 손도 대지 않는 게 제일이지. 나이 먹고 고생하거든.”

나이 잡수실 만큼 잡수셔놓고 무호흡으로 사람을 줘 패던 분이 하실 말씀은 아닌 듯.

나는 어깨를 움츠리다가 귀를 세웠다. 기사단장의 기척은 정말로 이 방에서 멀리 떨어져가고 있었다.

로마니아에서 탑 10에 들어갈 권력자와 독대라.

마치 ‘나는 호위 없이도 너랑 만날 수 있음’이라는 무언의 신뢰를 드러내는 것만 같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이 집무실 곳곳에 깔린 호신용 매직 아이템과 유물들을.

분명 이것 자체가 일종의 호감도 상승 작업이겠지.

‘카리스마 넘치는 권력자에게 은연중에 인정받는다? 아, 뽕 안 차고는 못 배기지.’

사람이라면 당연히 가지는 인정욕을 살살 긁어주는 밑밥 깔기라니! 아, 권력자 너무 무섭다.

물론 별로 나쁘게 보이지는 않았다. 따지고 보면 이것도 커뮤니케이션의 일종 아닌가. 날 함정에 빠트리지만 않으면 이것 자체가 호의의 표시로 여겨도 좋을 것이었다.

─똑똑.

그렇게 생각하고 있자 문을 두들기고 누군가가 들어왔다. 무려 가주가 있는 방에 허가도 묻지 않고 말이다.

당혹스러워하던 나는 그 방문자의 정체를 보고 더 놀랐다. 왠 키 작은 나무 골렘이 다과를 옮겨왔기 때문이었다.

‘……골렘 메이드?’

잘 만든 인형이었기에 나무 골렘이란 걸 알 수 있었던 건 달인의 감각 덕분이었다. 뭘로 채색했길래 딱딱해 보이는 저 피부에 생기마저 느껴지는 건지, 만지면 살이 보드라울 것도 같았다.

─끼릭, 끼리리릭.

─달그락.

다과를 세팅한 골렘은 로봇처럼 허리를 숙이고 떠나갔다. 나는 헤~ 벌려진 입을 의식해서 원상복귀시켰다.

“……개성 있는 메이드군요. 말도 할 줄 압니까?”

“아니. 아쉬운 일이지. 말벗까지 돼 주면 나 같은 독거노인들 호주머니를 털어오도록 생산 라인부터 증설했을 텐데.”

아이고. 농담으로 안 들리네.

골렘 안드로이드라니. 얼굴만 좀 됐으면 솔로 시절의 나도 적금 깨서 사고 싶은 충동에 시달렸을지도 몰랐다.

…후우. 어르신이 뱉은 담배연기가 퍼져나갔다.

“요즘 상류층에 한 바탕 유행이 돌더군. 그래서 나도 몇 대 사 봤네. 자고로 좋은 귀족이란 다른 귀족의 집에서 포크가 몇 개 없어졌는지도 알아야 하는 법이거든.”

말 한 번 살벌하구만. 남의 집에 첩자라도 심나.

진짜 심을 것 같긴 한데.

“많이 유능합니까?”

“전혀. 아직 멀었지. 메뉴얼을 정해두고 시키는 걸 간신히 하는 정도일세. 하지만 덕분에 병사로는 곧잘 쓰인다더군.”

그래 보인다. 아직 스카이넷인지 골렘 닷컴인지 하는 기술 특이점은 멀었겠지.

지구의 안드로이드 산업보다 발달해 보이는 게 조금 곤혹스럽기는 한데, 마법이 과학기술보다 편리한 건 어제 오늘 일도 아니니까 걍 털어내고 잊기로 했다.

“골렘을 만드는 주요 재질이 뭔지 아나?”

딴 생각을 하던 중에 훅 들어온 질문이 송곳처럼 날카롭다.

사업 얘기로군. 그대로인 듯 변한 분위기를 캐치한 나는 내 표정이나 몸짓이 보이는 인상까지 신경 쓰며 대답했다.

“흙이나 바위, 나무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 그게 가장 평범한 방법일세. 하지만 흙이나 바위는 일회용의 임시 골렘이나, 최상품질의 특주품 골렘을 만드는 일에나 쓸만한 소재야. 두고두고 쓸 상품에는 걸맞지 않지.”

그렇다고 하신다.

하긴, 그 골렘 전문가였던 유니콘 흑마법사도 잡몹 골렘은 결계 마법으로 강화하고, 자기는 SSS급 거대 골렘을 타고서 싸웠던가. 이세계에서 골렘=바위라는 건 편견인 모양이다.

“마나가 깃든 목재, 아니면 몬스터 소재.”

─치익. 어르신은 담배에 불을 붙였다.

“현대의 골렘을 만드는 주요 재료일세. 꼭두각시 장인들이 그렇듯 외장을 철로 덮고 내부의 마법진과 회로는 목판으로 만들곤 하지. 비용 대비 완성도가 높은 방법이지.”

“……가주님도 골렘 병사 도입을 고려 중이십니까?”

“전혀. 나는 심장이 뛰지 않는 놈에게 믿음을 주지 않거든.”

메이드도 있겠다, 골렘 병사도 혹시? 하는 마음으로 물은 건데, 어르신은 가당찮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제 아무리 대단한 발명품도 본질은 도구일세. 권력자라면 남을 믿을 줄도 알아야지. 어디 사람이 혼자서 뭐든 해낼 수 있는 생물이던가? 신뢰란 자네처럼 뜨거운 심장을 가진 이들에게 어울리는 찬사일세.”

크, 말 존나 멋지게 하시는 것 보게.

그러면서 속뜻은 ‘통수칠 걱정은 똑같고 인맥도 쌓기 힘든 골렘은 고용주 입장에서 개쓰레기다’이니, 그야말로 한 글자 한 글자에 현기가 가득한 말씀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군.

게다가 어미에 칭찬이 물 흐르듯 섞이는 건 또 어떻고? 저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는 존경할 만 했다.

원로원 자리는 메소 익스플로젼으로 딴 게 아니다, 이건가. 내가 무례하지 않을 정도로만 웃자 어르신도 클클댔다.

“그런데 세상에는 내가 이렇게 혹평한 골렘조차 너무도 귀하게 여기는 나라가 있다네.”

“흠……. 나르메르-나일입니까?”

“호오. 이유는?”

어르신은 흥미가 동한 듯 담배를 문 입술을 당겨올렸다.

이유고 뭐고 있나. 내가 여기 온 이유가 예산 땡기는 거랑 나르메르-나일 가는 뱃편 잡으러 온 건데.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인명피해죠. 나르메르-나일에서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은 야트라우 강과 오아시스 뿐. 그 땅의 권력자들은 그런 좁은 땅의 시민이나, 사막을 오가면서 고집만 세진 전사들 중에서 자기 호위를 골라야 합니다.”

“내가 사람 보는 눈이 아직 죽진 않았군. 그래. 유지비가 좀 들더라도 병력을 보수/유지하기 쉬운 건 골렘의 장점이지.”

어르신은 아주 좋다는 듯, 기본이 돼 있는 새 중대장을 본 연대장처럼 껄껄댔다. 소름 돋게 그러지 맙시다.

가만 보면 안다. 일부러 벨을 울려서 골렘 메이드를 부른 것도 다 밑밥이었다는 걸 말이다.

“인간 병사들 대신에 골렘을 쓰는 거군요. 괜찮은 장인이 있다는 전제만 채우면 회수한 자재로 재활용도 되겠고요.”

“그렇고 말고. 저 사막국가는 인명이 귀한 나라니까.”

말에 뼈가 있으시네 그래.

인명이 귀하다.

그건 거꾸로 말하면 인명이 가볍다는 뜻으로도 볼 수 있다.

‘사막은 물이 귀하다는 말이랑 똑같지.’

‘존엄하니까 귀중하다’가 아니다.

‘적기 때문에 희귀하다’는 의미인 것이다.

그만큼 나르메르-나일은 매일이 불모한 대자연과의 투쟁인 국가였다.

도무지 통제 하에 넣을 수 없는 척박한 모래 지옥과 거기 사는 몬스터.

그 사막의 곳곳에 숨어 노략질을 하는 알리바바와 친구들.

그리고 거기 숨어서 인체실험을 하는 흑마법사 십새끼들도 있다. 라면에 밥처럼 꼭 세트로 따라오는 놈들이다.

새삼 거기서 사는 사람들에 대해 무한한 리스펙트의 마음이 치솟는군. 저러고도 강대국의 반열에 드는 수준이니 나르메르-나일 인들은 국민 전원이 뮤턴트인 게 틀림없다.

“인명이 희귀하다면 돈만 쓰면 손에 넣을 수 있는 골렘은 졸병으로는 아주 좋겠죠. 하지만 나르메르-나일은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는 만큼 목재가 심각하게 부족한 국가잖습니까?”

나는 손바닥을 펼치며 고개를 저었다.

“남아 있는 정글이나 삼림을 유지하기도 바쁜데 벌목해서 골렘으로 만든다? 국법으로도 금지됐는데? 불가능한 일이죠.”

“하지만 그렇다고 몬스터 소재를 구하는 것도 한계가 있지. 아니면 저 땅의 마나가 충만한 바위들로 골렘을 만들 건가? 바다 건너에서 관세를 매긴 목재나 골렘을 수입해 올 건가?”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겠죠. 질도 낮아질 테고 말입니다.”

“딜레마지. 사람 목숨을 돈으로 사려면 금화가 많이 드는 법이니.”

서로 알만큼 아니까 얘기가 휙휙 지나가서 참 아주 좋다. 벌서부터 낙착점이 다 보일 지경이니.

나라고 외국에 나가는데 조사도 없이 맨땅에 헤딩했겠어? 만능 조사원 캐서린과 석사증이 있으면 외국의 현황이나 신문 정도는 군고구마 한 트럭 구울 만큼 얻을 수 있다고.

하지만 문제는 그 낙착점에 볼록 솟은 암초였다.

‘애미. 착륙할 활주로에 에펠탑이 서 있는 기분이에요.’

예감이 별로 좋지 않다.

어르신이 데려가는 결론으로 유도되고 있다는 걸 아는데, 또 그걸 무시할 수도 없는 느낌.

“허면, 그런 나라가 가장 좋아할 법한 신기술은 뭐겠나?”

혹시나가 역시나였다. 대공포를 장착한 에펠탑을 세워놓은 어르신이 씩 웃으며 말씀하시자, 나는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자국에서 많이 나오는 구리와 화강암을 1급 골렘 소재로 만들어줄…… 마나 부여 기술이겠죠.”

이 흐름에서 나올 결론이 그것 말고 더 있나.

목마른 놈이 우물 판다고, 3급 재료에 현금술을 써서 짱쎈 골렘을 만들 수 있다면 달려들 놈들은 존나 많을 것이다.

내 새로운 사업의 물꼬를 틀기에는 적당한 시장인 건 맞다.

마나 금속 무기보다는 신뢰받기도 쉬울 거고, 납품처가 될 시장도 존나 크니까.

근데 씌이발…… 이제 갓 출범한 스타트업 기업이 골렘으로 병대를 짤 자산가나 재벌을 상대로 계약을 맺으라고요?

“바로 맞췄네. 하지만 이 귀한 기술 자체를 팔아넘길 수는 없지. 누구 좋으라고 그런 짓을 하겠나? 계약을 맺고 현지에 가공한 재료를 납풉하는 게 훨씬 낫지.”

어르신은 다 피운 담배를 비벼끄셨다. 비싼 담배는 으지직 으게겍 하고 비명을 지르면서 찌부러졌다.

“상업은 발로 뛰는 걸세. 큰 계약건이 되겠군. 힘내게.”

“……아니 그, 잘 못 들었습니다?”

“어허. 자네 정도의 달인이 귀를 먹지는 않았잖은가. 혹시 알아듣기 힘들었나? 그러면 그냥 짧게 말해주지.”

검지를 세우며 웃는 명망 높은 대귀족의 얼굴이 악마처럼 보였다.

“내 이름으로 자네들 대장간의 독립성을 인정하고 적절한 장인과 후원자를 붙여주겠네. 단.”

“……단?”

“자네가, 내가 골라준 길드나 귀족과 계약을 뚫고 온다면 말이야.”

꼬츄 치료하려고 가는 의료관광이 왜 평소처럼 대모험의 프롤로그가 돼 가는 기분이지.

‘맨몸으로 자수성가 한 번 하기가 이렇게 힘들구나.’

흙수저로 전이할 게 아니라, 금수저로 환생을 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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