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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 떼러 왔다가 혹 붙이고 왔다.
낙담한 나는 일단 짐을 풀고 있던 클라라와 오드리를 호출했다.
‘거래처를 맺으려면 포트폴리오를 짜야 하는데, 나 혼자서 골렘 제작 기술을 짝짜꿍 할 수는 없잖아.’
프랑이 싸울 때 쓰는 임시 제작 골렘과 다르게, 로봇이나 마찬가지인 게 골렘 병사다.
원리로는 인공지능이 붙은 꼭두각시 인형이다.
아니, 역사의 깊이로 말하자면 꼭두각시가 인공지능을 뗀 골렘인가.
‘아무튼 돈 많은 사람들을 혹하게 만들려면 쌉오지는 퀄리티를 내는 게 필수조건이야.’
마나 부여 기술은 존재 자체가 터무니없는 만큼, 내 고향 지구의 게르마늄 음이온 녹즙 장사 같은 딴따라 한탕 사기로 여겨질 가능성이 컸다. 꼬투리 잡히면 귀찮잖은가.
그렇다고 나 혼자선 암만 지랄 브루스를 춰도 중과부적일 것이고 말이다.
‘라리루라의 꼭두각시도 만든 대장장이 듀오라면 거래처의 눈에 차는 상품을 뚝딱 만들 수 있겠지.’
물론 임자 있는 여인의 방에 찾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적당히 남는 방을 빌렸다. 메이드나 집사들이 앉아서 쉬라고 만들어둔 방이랜다. 복지도 좋지.
“그러면 저희도 나르메르-나일까지 가게 되는 건가요?”
설명을 끝내자 클라라는 눈을 빛내며 말했다.
로마니아 정도는 허리띠 졸라매고 여행비를 모아보면 워킹 홀리데이 비자 같은 느낌으로 기술을 배우러 갈 수 있지만, 나르메르-나일은 여행자제 국가 아닌가.
안전하게 가 볼 기회가 드문 만큼, 금속성애자 철충 클라라 선생께서 기대하는 건 당연했다.
오드리는 출장이 길어질 느낌에 개씹정색을 빨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래 주시면 좋겠습니다. 아니, 그래 주셔야 합니다. 조금 귀찮더라도 이게 가장 미래를 위한 방법이에요.”
“저는 좋아요! 좋고 말고요! 아, 남편한테 1~2주 정도 더 늦을지도 모른다고 편지만 써 둘게요!”
희희낙락 웃으며 클라라는 편지지에 펜을 달리게 했는데, 불현듯 머리에 어떠한 예감이 스쳤다.
“어…… 클라라 씨. 남편 분께 복귀일자는 타일러 두시고 오셨죠?”
“네? 그럼요. 원래는 10일 정도라고 말해뒀는데, 사업차 갈 출장이니까 1달 정도로 늘어날 거라고 전하려구요.”
“……허어어.”
나는 팔짱을 끼고 클라라의 남편 입장에서 생각을 해 봤다. 과몰입(Trace), 개시(On).
저 먼 외국에서 왔다는 근육빵방 모험가(거근). 먼 발치에서 힐끗 본 게 전부지만, 그 노르드라는 놈은 명성이나 재산이 장식이 아니라는 듯 후리고 다니는 여자도 한둘이 아니다.
풍문으로는 영주의 따님조차 신임하고 후원자를 자처하고 있다는, 잘 나가는 도내 최고 미남.
한량 새끼답게 아내만 넷이라는 고놈은 남편인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아내와 친해지더니, 그녀의 평생 가는 고민마저 보란 듯이 해결해 버렸다.
그렇게 아내는 아무 것도 못해준 자신과 달리 꿈을 이뤄준 양아치를 입이 마르도록 고놈을 칭찬하다가, 일 때문이라며 하루가 머다하고 만나더니 끝내는 집에까지 찾아가서는 해외 여행마저 쫓아간 상태.
괜찮을 거라며 스스로를 다독이지만, 돌아오리라 약속했던 날에도 그가 받은 것은 사랑하는 아내의 필적으로 급히 쓴 ‘며칠 더 늦을 것 같다’는 편지 뿐……
그렇게 피 마르는 일주일을 더 기다린 끝에 그녀는 집으로 돌아왔지만, 나르메르-나일의 강한 햇빛으로 피부를 태닝한 아내는 그새가 아쉽다는 듯 또다시 일터로 달려가고……
‘……홀리 쓋.’
불륜 막장 드라마 1편 뚝딱이네.
존나 시발 기막힌 이야기 실제상황이다. 화면 우측 상단에 ‘상황재연’이라고 적혀 있을 듯한 개막장 스토리로군.
‘이건 진짜 좀 많이 에반데.’
저런 막장 드라마가 미국이 열광하며 일본이 따라하고 중국까지 질투하는 우리 한국인의 얼이자 국뽕이라곤 하지만, 나 역시 한 명의 유부남이다. 암만 그래도 용납 못 할 일이 있다.
나도 우리 아내들이 사업 차 그 쥬지 왕자랑 외국에 간다 그러면 곧 죽어도 뜯어말릴 거라고.
“……아뇨. 클라라 씨는 여기 남으십시다.”
“네?! 어, 어째서죠?!”
청천벽력이라도 떨어진 듯한 리액션이군.
금속 > 남편인 걸 보면 이 사람 남편이 터미네이터는 아닌 모양이다. 금속성애자가 결혼한 사람이길래 로봇인가 했네.
“보고서는 어르신께 드렸고, 절 신임하셨기에 바로 인맥을 동원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누구 1명은 대표로 남아서 시범과 제작 과정 정도는 보여드리는 게 인지상정이잖아요?”
아마 이 저택에 살지는 않아도, 영지에서 일을 하는 장인 정도들도 있을 것이다.
고놈들을 불러다가 ‘아니?! 네놈─! 이 기술은 대체 뭐냐앗─?!’ 하고 이세계 국룰 전개 한 챕터 뽑고 오십쇼. 저는 그런 걸 너무 많이 봐서 직접 보면 현실웃음 터질 것 같네요.
“그, 그건 제가 아니어도 되잖아요! 오드리가 남으면 되죠!”
“그래! 나 말고 선생님을 데려가! 왜 우리를 싫다는 곳으로 데려가냐!”
장기출장을 바라는 유부녀와 칼퇴를 바라는 솔로녀의 야합이었다.
사원이 고작 둘인데 벌써 노조가 생겨부렀어야.
“적재적소입니다. 전문장인을 초청해서 시범을 보일 텐데, 아마추어인 오씨가 거기서 실수 안 자신 있어요?”
“……윽! 그, 그럼 하지 말자! 기술이 유출되면 어쩌게!”
“임마. 힐끗 봤다고 베낄 수 있는 새끼가 널렸으면 앞으로 직원들 고용은 어케 하냐? 너 평생 우리 셋이서 일할라고?”
마법이란 게 나처럼 만화경 오딘안을 가진 놈이 아니면 딱 보고 원리를 알아낼 수는 없는 기술 아닌가.
그냥 대놓고 보여주더라도 문제는 없다. 그렇지 않았으면 기밀 엄수 때문에 다른 장인들 고용도 못 할라.
─짝! 나는 반론을 받지 않고 박수를 쳐서 상황을 종료했다.
“대충 알아들었죠? 지금부터 둘 다 짐 싸요.”
클라라는 남았다가 융숭한 대우를 받고 빨리 집에 돌아갈 것이며, 오드리는 우릴 따라가서 상품 포트폴리오에 협력해 줘야겠다.
결코 나만 죽을 순 없다는 마음은 아니다. 일 해야지?
***
반론을 묵살하고 싸장님 권한을 휘둘렀으니, 며칠 정도는 비싼 저택에서 보내는 즐거운 휴양 타임이다.
아무리 어르신이 후원해 주는 기업을 쪽쪽 빨아먹는다지만 뱃여행을 막 끝낸 우리를 당일에 쫓아내지는 않았다. 애초에 그딴 짓을 했으면 우리 아내들 고생시킨다고 나도 개지랄을 떨었겠지.
물론 그렇다고 여기서 쉬는 게 나한테까지 편안한 휴식이 됐다는 건 아니고.
〈자, 어서! 대련장으로 가십시다! 저희 비검 기사단의 새 시대를 열 절기를 20개 가량 구상해 보았으니, 부디 노르드 님의 천재적인 안목으로 엄혹하게 선별해 주십시오!〉
〈와아, 딱 봐도 개쩔겠네요. 그니까 안 가면 안 될까요?〉
라임 좋게 대답했지만 결국 끌려가서 하루 종일 대련이나 하게 됐다.
나도 미스릴 클래스를 찍었으니까 괜찮겠지~ 하는 얄팍한 생각으로 쫓아갔다가 하루의 절반을 붕쯔붕쯔에 탕진했다. 난 주식 같은 건 하면 안 되는 타입이라는 걸 실감하고 말았다.
“아 시발. 실전 형식의 대련에서 ‘절기’라고 명명한 기술을 상대하면 개처럼 구르는 게 당연한데. 왜 생각을 못 했지.”
그렇게 끌려다닌 뒤에는 프리모르와 만났다.
듣기로는 양지 바른 곳에서 요양하다가 내 입국 소식에 마차 타고 달려왔다는 모양.
“프리모르 님 아니십니까. 몇 달만에 뵙습니다. 어떻게 잘 지내셨습니까?”
“네. 저도 저희 아이도 무척 건강해요. 덕분에 매일매일이 충실하고요.”
“그렇습니까? 고것 참 도련님이 장군감이로군요! 헤헤헤.”
남편의 사후 몇 개월이 지난 지금, 그녀는 완연한 임산부가 되어 있었다.
볼록 나온 그녀의 배를 어딘지 부러운 듯 보고 있던 우리 프랑이 존나 귀여웠다. 정작 프랑이 덜컥 임신하면 다른 건 제쳐두고 출산은 문제 없을지부터 걱정될 것 같은데.
아무튼 산모도 태아도 멀쩡한가. 임신 중인 사람을 험하게 굴렸던 몸으로서 존나 다행스러운 보고였다.
“잠깐 성묘를 갈까 하는데, 같이 가시겠어요?”
“영광입니다.”
비지니스에 도움도 되고 인륜적이기까지 한 제안이었기에, 나처럼 새 나라의 착한 청년은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프리모르의 남편 겸 어르신의 아드님과 저번에 그 흑마피아 새끼에게 살해당한 성기사 친구의 묘에 묵념도 하고 왔다. 저택 부지가 존나 넓어서 왕릉 같은 공동묘지가 안에 따로 있더라.
“나무아비타불, 엘리시온 왕생하소서.”
나는 따로 믿는 신이 없어서, 죽은 분들께서는 로마니아의 보편적인 천국에 가셨기를 빌었다.
그렇게 하고 나서야 하루 정도 푹 쉴 수 있었지만, 발기의 가능 여부는 어쨌건 후원자의 집에서 질펀하게 놀 수는 없는 게 사람된 도리 아닌가.
그냥 평범하게 먹고 자고 쉬고 땡이다. 나쁘진 않았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하루가 지나, 다음날.
나는 머리를 뒤로 젖혀야 꼭대기가 보이는 초호화 크루즈 선을 보고 입을 쩍 벌렸다.
어디 나만 그런가? 그나마 사치에 익숙할 터인 티르시조차 똑같은 리액션이었다.
쭉 뻗은 선체는 시꺼멓게 칠해져서 흑단처럼 번쩍였고, 저 가운데에 우뚝 솟은 마스트는 아침햇살을 반사하며 은은하게 이슬에 젖어 있었다.
〈신속하게 움직여라!! 귀빈께서 기다리신다!!〉
〈Aye Aye, Sir─!!〉
출항을 준비하는 선원들도 먹고 살기조차 바쁜 듯 수염이 덥수룩하거나 옷이 후줄근한 사람은 없다. 귀족가의 시종인 것처럼 품행단정하게 차리입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뿌우우우─!!!
소리 우렁찬 것 보소. 고래인 줄.
“……엔진 소리에요, 지금 거?”
“그, 그런 것 같구나.”
아내들은 소근거리다가 나더러 이거 괜찮냐는 듯한 눈빛을 보내왔다.
‘시발.’
어르신이 우리만 탑승할 전속 선박을 수배해 주겠다고 할 때 알아들었어야 했나. 부자라서 손도 크신가 보다.
넋이 나간 건 나도 마찬가지였지만, 가장 씩이나 돼 갖고 여기서 쫀 모습을 보이는 것도 안 좋을 터였다.
나는 사뭇 당연하다는 듯 너스레를 떨었다.
“다들 익숙해 져. 앞으로 이런 일이 자주 있을 텐데, 그럴 때마다 멍 때리면 부끄럽잖아?”
“선배. 침이나 닦고 말하시는 게 어떨까요.”
왁자지껄 거리면서 촌놈처럼 목소리를 낮추고 있자, 나르메르-나일의 지역색이 가득한 옷을 말쑥하게 차려입은 흑인이 찾아와서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현지에서도 안내를 맡을 짐나르다 베임입니다. 당분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세상에. 전속 집사까지 붙네. 이 미친 노인네가 얼마를 쓴 거야.
‘아니지 씨발. 비지니스 출장이니까 금박을 칠해준 거군.’
사업하러 가는 놈을 국내산 중고차(매매가 300만원) 따윌 태워서 보낼 순 없다 이건가.
거꾸로 되짚어보면 이 금칠의 결과가 허접하면 내 장사를 뒤에서 ‘돌봐 줄’ 예정이란 암시였다.
능력 없는 사장이 마냥 물고 있기엔 존나 큰 기술이니까.
“짐은 이리로 주십시오. 옮겨드리겠습니다.”
“아, 옙. 감사합니다.”
…흑인한테 짐을 나르라고 하는 건 인종차별인가?
아니지. 흑인한테는 절대 내 짐을 맡길 수 없다고 말하는 게 훨씬 인종차별이겠군.
나르메르-나일이 흑백인종의 혼성국가란 걸 알긴 했는데, 이렇게 뜬금 없이 어울리려니까 20년을 한국에서만 살다온 사이어인은 약간 어색한 기분이었다.
아무튼 붉은 피가 흐르는 생물에게 노동은 숭고한 것이다.
앉아서 재테크로 인생 날먹하는 사람들은 모르는 점이지만, 성스러운 부역을 치르고 노예에서 해방되어 석사가 된 나는 모든 노동자를 존경한다, 이 말씀.
─덜컹. 우리는 선원들에게 짐을 맡기고 승선했다.
올라타자마자 보이는 갑판의 수영장은 못 본 척 하자.
돈이 썩어나면 낭비하고 싶어지는 건 사람의 본능인 모양.
“출항 전에 각 방의 위치와 용도를 설명드리겠습니다.”
너무도 정중하게 말하며 허리를 숙이는 베임.
거래처에 갈 때도 안내를 받을 텐데, 이대로는 좋지 않다. 돈지랄에 익숙해지는 거랑 갑질을 하는 건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일 아닌가. 전자는 경제순환이지만 후자는 기삿감이다.
뭣보다 영업사원이 가이드한테 갑질하고 다니면 첫 인상 조지기 딱 좋다고.
“안내 고맙습니다. 베임 씨도 편하게 말씀하셔도 됩니다.”
“그리 말씀해 주셔서 영광입니다. 하지만 실례가 아니라면 이대로 모셔드릴 순 없겠습니까?”
아닌 척 하면서 딱 잘라 말하네.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직업윤리의 일환입니까?”
“아니오. 은인 분께 보이는 공경심입니다.”
“은인요?”
아무리 생각해도 초면인데.
카르미네 대학 시절을 포함해도 이세계에서 만난 나르메르-나일 인은 한 줌이 안 된다. 피부색 언급은 미안하지만, 그게 흑인이 되면 진짜 3~4명이 고작이고 말이다
그런데 은인이라니? 내가 의아해 하자 베임은 가슴에 손을 얹으며 허리를 숙였다.
“노르드 님께서 해치우셨던 〈임모르탈리스〉 흑마법사를 기억하고 계십니까?”
“……셋 중 어느 쪽 말씀이신지요?”
“예? 하하하하!!”
베임은 허를 찔린 듯 멍을 때리다가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하하하하! 직전의 말씀도 그렇고, 많이 소탈하신 분이셨군요. 예. 처음 쓰러트렸던 골렘 술사 얘기입니다.”
“아, 그 놈이라면 물론 기억합니다.”
잊을 리가 있나. 처음 싸웠던 미스릴 클래스의 적수인데.
그땐 진짜 뒤지는 줄 알았지. 골렘을 족쳐놨구만 본체가 멀쩡하게 연기에서 빠져나오길래 기겁을 했었다.
“그 놈, 아비두스-누비는 저희 고향에서 지독하게 악명을 떨치던 중악인(重惡人)이었습니다. 다른 흑마법사들보다 더한 놈이었죠. 시체와 영혼을 소모품으로 쓰고, 그걸 보충하고자 도시를 습격하던 놈이엇니까요.”
“……예. 잘 알고 있습니다.”
사르가디스도 그 새끼한테 좆될 뻔 했으니까.
흑마법의 부작용을 피하고자, 골렘에 시체를 반죽하고 그 시체의 영혼에게 대신 어둠과 음의 마나를 쓰게 하는 기술.
‘자신이 하기 싫고, 험한 일을 남에게 맡긴다.’
즉, 그 새끼 또한 사악한 교수였다.
자연스럽게 골렘에 갇힌 영혼들은 대학원생이 될 것이고 말이다.
그렇기에 죽어서도 끝없이 고통받던 영혼들은 나라는 창구(窓口)를 총구로 삼아, 그 새끼에게 목숨값을 받아내는 것을 도와줬었다.
초대형 골렘의 동력로를 폭주시킬 수 있었던 건 전부 그들의 조력 덕분이었고 말이다.
베임은 씩 웃으며 말했다.
“실은 저희 노부(老父)께서도 그 놈의 골렘에 밟혀 목숨을 잃으셨습니다. 제가 항해에 나가 있던 사이의 일이죠.”
“어……”
“하하하. 나르메르-나일에서는 흔한 일입니다.”
너무 순간적이라서 애도의 말도 나오지 않았다. 베임은 퍽 소리가 나도록 가슴을 치며 말했다.
“하지만…… 복수에 성공하는 일까지 흔하지는 않죠. 저희 배에도 노르드 님께 은혜를 입은 이들이 몇 명이나 됩디다.”
듣고 나서 둘러보자 확실히 돈이나 직업에 대한 자부심의 영역을 넘은 군기가 엿보였다.
군함이 아닌 일반 선박에서는 꿈도 못 꿀 빠릿빠릿함이다.
“그러니 제 과한 공경심을 부디 용서하시길. 돌아가신 아버지께 미처 못 전한 효심입니다.”
“……이해했습니다.”
한국인에게 효나 부모님 운운은 치트키다. 미국 사회에서 흑인 차별을 꺼내는 것 만큼이나 가불기라는 의미다.
부모의 은인에게 헌신하겠다는데 내가 어떻게 뭐라고 그래.
“감사합니다.”
베임은 한 번 웃고는 다시 성실하게 안내를 맡았다.
우리는 그대로 짐을 풀고, 베임의 안내를 쫄레쫄레 따라다니면서 머리로는 주판을 두들겼다.
“흐으음….”
요는 민심 문제다.
이미 입은 피해를 복구해도 돌아오지 않는 것은 있다.
죽은 사람들의 넋을 달래고 살아남은 시민들의 민심을 진정시키려면, 저 먼 땅에서 〈임모르탈리스〉 씹새들이 나가 뒤졌다는 호외는 아주 제격이었을 것이다.
그야말로 국중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올 만큼.
‘정치인들은 그걸 노리고, 민심 컨트롤에 내 이름을 가져다 썼다.’
호외요 호외 메타다.
한국인이라면 알겠지. ‘김치란 게 사실 중국에서 시작된 거거든요’라든지, 죠센징이 미국을 뒤에서 조종하고 있다든지 하는 얘기로 민심을 밖에 돌리는 정치 수사법말이다.
굳이 해외로 안 가도 국내정치에서도 그런 예는 잔뜩 있고.
“흐으으으음…….”
하지만 그건 반대로 말하자면 저 먼 사막나라의 영주들이 내 위업을 공짜로 팔아먹었다는 얘기 아닌가.
‘그렇게 올려치기를 갈긴 내 유명세에, 공짜 언플에 대한 마음의 빚까지 합쳐지면 어떻게 될까?’
물론 정치판은 은원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누구보다 남 통수를 잘 치는 사람이 정치인이지.
‘하지만 그랬다간 민심이 조져진다.’
여론은 쓰레기다 햣하를 외치는 계급사회라도 레볼루숑과 다른 권력자들의 눈총을 피하려면 은원을 잊고 살 수는 없는 법 아닌가. 염치가 없는 놈이랑 잘 지내고 싶은 사람은 없으니까.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무슨 말이 하고 싶냐면──.
‘──〈임모르탈리스〉의 더블 킬을 따낸 나는, 나르메르-나일에서 상상 이상으로 유명하다는 거네?’
그야말로 그 동네의 흑마법사 슬레이어 오프툼이 얼굴 함 보자고 찾아올 만큼 말이다.
“그러면…… 내가 흑마법사의 인명피해를 줄일 수단을 찾아냈다면서 찾아가면?”
사람들 눈치가 보여서라도 나쁘게는 못 대하겠네?
“……허미 씹.”
이거, 생각보다 일이 잘 풀리겠는데?
여윽시 우리 으르신이시다. 언제나 3수 앞을 내다보고 행동하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