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502화 (502/1,009)

알리씨크에서 3일 거리에 있는 어느 교역도시, 마할.

그 뒷골목에서 뱀으로 변한 나는 라리루라의 목에 감겨선 어느 중년인이 명단을 내미는 광경을 보고 있었다.

〈이게 지금까지 알려진 〈임모르탈리스〉의 명부요. 댁이 요청한대로 인근 도시의 권력자들의 정보도 모았고.〉

─슥.

아델라이데의 변신마법 목걸이로 정체를 숨긴 라리루라는 그 서류를 받고 무뚝뚝하게 말했다.

리스트라고 해 봤자 대략적인 정보다.

자칭하는 이름은 뭔지, 어떤 마법을 쓰고 어떤 피해를 낸 놈인지. 게임의 신캐 업데이트 유출 내역 같은 것보다 못할 뿐더러, 공신력은 찌라시 뉴스 이하다.

그래도 없는 것보다 나으니까 사둔 거지만.

〈가장 최근에 갱신된 정보가 맞겠지?〉

〈그래. 대타가 들어왔을지도 모르지만, 모든 인원을 다 알 수는 없수다. 거기 적힌 건 대외적으로 알려진 놈들 뿐.〉

〈충분해.〉

라리루라는 보수를 담은 주머니를 홱 던져줬다. 로마니아 출신의 정보상 아재는 확인한 금액을 여관 주인 같은 옷에다 쑤셔박고는 재밌다는 듯 말했다.

〈그나저나, 그런 걸 알아서 어쩌려고 그러시나 몰라?〉

〈궁금한 것도 많군. 정보상의 습성인가?〉

〈질문하는 거라면 공짜 아뇨? 아가씨가 또 나를 찾아올 것 같지도 않고.〉

〈일에 방해가 될 만한 놈을 알아두려는 것 뿐이야.〉

냉소적으로 대답한 라리루라는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내 오감에 사람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게 됐을 때가 되서야 변신 마법을 풀며 참았던 숨을 내뱉었다.

“푸하─ 오랜만에 하려니까 쫌 긴장해버렸어요!”

“수고했어. 신분 위장에는 이런 분장도 중요하니까.”

나는 서류를 받아들고 읽으며 말했다.

저번에 로마니아에서 프리모르를 만났을 때처럼, 우리들의 신분을 숨기면서 정보만 구매했던 것이다. 이 동네에도 나름 정보상이랄 사람들은 있더라.

인상미채 가면을 쓸까도 생각했지만, 그건 어떤 의미에서 인상에 깊게 남는다.

‘흐릿하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누군가’라니. 기본적인 정보 정도만 있어도 ‘새끼, 인상미채 둘렀네’ 하고 눈치를 깔 걸?

그러니까 일견 평범해 보이는 인상이 차라리 낫다. 라리루라는 눈가에 브이 자 손가락을 가져가며 웃었다.

“감사하실 것 없어요! 관광도 질리던 참이었으니까요!”

“피라미드가 재미 없든? 이틀 동안 지루했겠는걸. 나까지 깜빡 속아넘어갔어.”

나르메르-나일에는 왕가에서 직접 소유권을 갖고 관리하는 피라미드가 몇 개 있다.

외벽도 멀쩡해서, 겉은 석회암 같은 순백색에 꼭지점 맨끝에는 천년 퍼즐처럼 황금으로 장식한 예술품이었다. ‘왕릉’이라고 할 만 하다는 감상이 절로 들 정도로.

안쪽에 고대 파라오와 함께 순장한 예술품 등이 마법으로 보호받고 있어서, 그게 주요 관광 상품이다.

우리도 프랑의 마법 안목을 늘리기 위해서라도 구경하다가 왔다. 3일 동안 사막을 횡단한 것도 그것 때문이다.

모두 구경하면서 재밌어 하는 줄로만 알았는데, 라리루라는 별로 그렇지도 않았던 모양이다. 우리 후배님은 남들이 듣기 안 좋겠다는 듯 입술을 내밀었다.

“속이다뇨? 언니들이 즐거워 하시니까 분위기에 초를 치지 않으려 했던 거에요~. 예쁘긴 했지만 따분해서 금방 질렸어요.”

“그 점에서는 마음이 맞는군. 역사적 가치나 예술적 설계 같은 곳에서 흥미를 찾긴 힘들더라고, 나는.”

“피. 고고학자시면서.”

“고고학자니까 그렇지. 보란 듯이 진열한 역사적 유적지는 미술관보다 나을 게 없어. 가치 있는 유물은 다 챙겨갔으니. 결국 ‘사랑하는 사람과의 추억’ 이상의 가치는 찾기 힘들지.”

─탁. 서류를 닫으며 나는 웃었다.

“다시 말하면 지금 프리실라 너랑 둘이서만 있는 지금도, 피라미드 관광에 버금가게 즐거운 시간이기는 하지. 그렇게 생각하니까 갑자기 이런 음침한 골목에서 보내기는 아까워지는걸. 그만 나갈까?”

“……아핫♡ 그럴까요?”

라리루라는 뙤약볕에 방치한 젤리처럼 얼굴이 풀려서는 내 팔에 달라붙었다.

이 더운 날씨에도 체온이 차다. 체온 조절용 매직 아이템 덕분이겠지.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마나를 펑펑 써대면서 체온을 낮추면 감기 든다. 옷도 얇게 입고 말이야.”

“경연대회 전까지 컨디션 관리 정도는 할 거거든요~?”

“그런 걸 걱정할 거면 데리고 나오지도 않았지.”

존나 대충 딱밤을 먹여주자 라리루라는 거기 담긴 애정에 아주 좋아 죽으려 했다.

역시 애가 애정결핍 끼가 있군.

“에헤헤. 그래서, 다음은 어디인가요? 이 라리루라, 선배를 위해서라면 분골도 쇄신할 각오랍니다!”

“이제 어려운 일은 없어. 오늘은 리스트랑 어르신께서 픽업한 명부를 중심으로 귀족에게 먼저 접견 요청을 돌릴 거야. 잠깐 사업에 관련해서 회담이나 하자고 말이지.”

“흐응. 충분히 큰 일 같은데요?”

“아니, 쉬운 일이야. 작은 성의만 있으면 되거든.”

라리루라의 팔짱에 빼앗긴 팔 대신, 의수로 은화를 한 닢 꺼냈다. 깨끗하게 갈고 닦은 새 동전이다.

“이걸 받으면 그들 쪽에서 먼저 몸이 달아서 나를 만나고 싶어할 거야.”

“로마니아 은화잖아요? 이거 한 닢으로 만나줄까요?”

은화를 건네주자 라리루라는 고개를 모로 꼬았다. 나는 그 의아한 표정이 귀여워서 그만 큭큭 거렸다.

“단순한 은화로 보여?”

“네? ……어라?”

라리루라는 은화를 쥔 손을 꼭 쥐더니 눈을 깜빡였다.

“차갑네요?”

“트롤 킹 놈이 선물해준 기술의 힘이지. 세간에서 마나가 깃든 은을 뭐라고 부르는지 알아?”

“……어, 설마 이게?”

“그래. 내가 ‘만든’ 거지만.”

히죽 웃은 나는 앳된 아내의 손바닥에 올라간 은화를 꾸욱 눌렀다.

“어때? 흥미가 확 솟지?”

…끄덕.

라리루라는 귀신에 홀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

모월 모일. 나르메르-나일 남부의 대도시 마할.

마할에서 제일 가는 연회장에서는 여러 귀족들이 한 곳에 모여 근황에 대한 담소를 나누고, 친분을 확인하고 있었다.

《이야, 마할의 야경은 예나 지금이나 아름답군요. 저 하얀 피라미드가 그야말로 사막에 쌓인 눈 같습니다.》

《고맙네. 파라오께서 맡기신 물건이니만큼 열심히 지키고 있지.》

마할의 영주는 근처 영지의 영주가 하는 아부에 덤덤하게 대답했다.

맨손으로 사자도 목 졸라 죽일 듯한 근육이 심히 인상적인 사내였지만, 마할의 영주는 저리 보여도 통치에도 일가견이 있는 원숙한 영주였다. 왕가의 피라미드를 관리하는 중역을 맡았으니 그 이상의 설명은 무의미했다.

그리고 이 파티 홀에 모인 귀족들은, 전부 그와 영지끼리 연맹을 맺은 영주들이었다.

나르메르-나일의 영주들은 최소 3개 이상의 영지와 깊은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다.

야트라우 강처럼 풍부한 수자원이 없거나, 기껏 오아시스 등을 가지고도 몬스터를 포함한 다수의 위험에 노출된 영지는 많다. 독자적으로 유지하기 어렵기에 연맹은 필수적이었다.

물론 그 안에서도 많고 적은 알력 다툼이 생기는 건 인간이라는 종의 숙명이긴 하다.

하지만 여하튼 저 외국에서 말하는 혈맹, 연합 등과는 비교하기도 힘들 만큼 끈끈한 결속력이 있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었다. 그게 나르메르 인들이 대사막을 상대로 세운 유서 깊은 생존법인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노르드의 초청으로 한 자리에 초청받았을 때, 아스트레완 연맹의 영주들은 명백하게 세간에 밝히지 않은 ‘협력관계’가 모조리 불려왔다는 사실에 경악하며 목이 바짝 말랐다.

‘……연맹의 새로운 확장 대상으로 접촉 중이었던 엑시르 영주까지 초청했다고? 대체 어디서 정보가 흘러나갔지?’

‘이 회담, 우연은 아닐 터. 필시 상상도 못할 만큼 치밀한 사전 조사가 있었던 게야. 그것도 우리들 모르게!’

‘배신자인가? 아니, 연맹을 저버릴 이득이 없다. 과연 아르마알스 가문. 얕볼 수 없는 정보력이군.’

설마 동네 정보상에게 대충 구매한 정보로 이 면면을 모으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연일 가능성은 조금도 고려하지 않은 영주들은 긴장감을 가득 가지고 즉시 파티에 참석했다.

그들 전원이 귀족이라는 것과, 그들을 부른 인물이 외국인 출신의 평민이라는 걸 고려하면 놀랄 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그것도 당연한 결과였다.

아스트레완 연맹은 남부의 가장 큰 도시 마할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영지 연맹이다.

그렇기에 그 마할에서 가장 큰 파티장을 임대하는 건 적지 않은 금액이 든다. 아무리 자수성가형 모험가라도 후원자가 없다면 벌일 수 없는 무게감 있는 ‘초대’다.

친근하게 웃으며 담소를 나누는 연맹원들은 그렇기에 몰래 정보를 교환하며 결론을 내렸다.

‘상식적으로 이건 노르드가 아르마알스 가문에게 받은 비지니스 비용을 융통한 거라고 봐야겠지.’

다시 말해서, 이것은 아르마알스 가문으로부터의 제의다.

‘초대 원로원 가문에, 시민들의 입에도 오르내리는 달인급 전사. 무슨 제안이 됐든 접촉해서 손해볼 건 없다.’

‘물론 30살도 안 되서 그만한 경지를 달성한 전사가 협상 방면에까지 재능이 있을 리 있나. 높은 확률로 협상에는 저 늙은 원로가 신임하는 문관이 나올 터. 얕볼 수 없겠군.’

그렇게 머리가 터지도록 고민한 덕분일까.

연맹의 면면은 전원이 이 초대의 뒷면에 있는 원로원 상원의원의 진의를 깨닫고 있었다.

─너희 국가에서 당장이라도 불러들이고 싶은 남자는 벌써 우리 가문이 품어두었다. 이번 방문은 그 증명의 일환이다.

─〈임모르탈리스〉의 처단자라는 이름과, 그에 어울리는 ‘거래’를 준비했다.

─관심이 있다면 내 피후원자의 초대에 응하라.

그 유혹에 넘어가지 않은 연맹원은 없었다.

물론 그 결론이 절반밖에 들어맞지 않았다는 것과, 초대객 후보는 노르드의 막내 아내가 적당히 휙휙 고른 결과물이란 사실을 알아차린 이는 없었지만 말이다.

이유나 과정이 어찌 되었든, 결국 아스트레완 연맹원들은 오늘밤 이 자리에 모이고자 결정했다.

하지만 그들이 참석을 결정하게 된 결정타는 따로 있었다.

연맹원들은 각자 챙겨온 로마니아 동전의 무게와 냉기를 느낄 때마다 가슴이 한켠이 무거워졌다.

‘……로마니아의 은화 모양으로 주조된 미스릴.’

그것도 보통 미스릴과 다르게, 자체적으로 얼음의 마나를 품은── 인공(人工) 미스릴이었다.

이 사막국가에서 보온의 중요성을 모르는 영주는 없다.

당장 병사들의 사망률을 줄이기 위해 사들인 골렘병도 한창 대낮인 시간대에 운용하면 몇 시간을 못 버티고 퍼지는 마당 아닌가. 일반 병사만의 문제는 아니다.

때문에 지구에서 전차와 같은 병기가 지형과 기후에 맞는 개량을 거쳤듯, 나르메르-나일의 골렘에는 냉각장치가 필수적으로 붙고는 했다.

《하지만 돌에는 마법을 부여할 수 없고, 저렴한 나무에는 넣을 수 있는 마법의 숫자도 몹시 한정됩니다.》

목재 골렘을 양산했다가 피를 본 젊은 영주의 말에, 죽은 영주 대신 권한을 승계한 영부인이 끄덕였다.

《그래요. 재료에 골렘의 술식을 넣고 냉각장치까지 붙이면, 성능은 낮아지는데 비해 가격은 천정부지로 솟죠.》

《따라서 열을 잡고 성능을 높이면서도 가격은 낮추는 것. 그게 우리 조국에 요구되는 골렘의 제작기술이지요.》

긴장 탓에 도무지 술기운이 돌지 않던 다른 영주의 말이, 그 짧은 담화를 끝맺었다.

온도조절 기능이 있는 매직 아이템은 비싸다. 아무리 귀족이라도 병사들에게 하나씩 들려줄 가격은 아니다. 골렘이라 해도 그건 똑같이 겪게 되는 문제였다.

양산형 골렘에 부여할 수 있는 기술의 한계.

그게 현지 영주들이 직속 골렘 공방에 극복해주길 바라는 문제였다.

현실적으로 싸구려 소재에는 많은 마나를 부여할 수 없다.

나무 그릇에다 용암을 받는 게 어디 가당키나 한 일인가? 나약한 소재는 많은 마나를 감당하지 못했다.

반대로 많은 마나를 견딜 수 있는 고급 목재라면?

그 돈으로 실력 있는 병사를 고용하는 게 낫다. 그렇기에 골렘에 필요한 ‘졸병’이라는 역할에 어울리는 소재는 찾기도, 양산할 만큼 사들이기도 힘들었다.

냉각장치는 그중 가장 큰 문제였다.

얼음의 마나를 품은 소재 따위, 이 사막에서 구할 수 있는 방법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이 미스릴 주화는 어떤가?》

침음성을 흘리며 마할의 영주가 은색 동전을 꺼내들었다.

가장 영향력이 큰 이의 목소리에 좌중은 금방 조용해졌다.

《장인들에게도 몇 번인가 들었지. 금속 소재 중에 냉기를 품은 물건은 저 키타이의 북부 정도에서밖에 캐낼 수 없고, 그나마도 용광로에 넣고 주조하면 냉기가 사라진다고.》

차가운 물질은 뎁히면 뜨거워진다.

말하는 게 바보 같아질 만큼 당연한 상식이다.

자연적으로 냉기를 품은 금속이라고 해도 같다. 쇳물이 될 만큼 녹였다가 다시 틀에 넣고 굳히면, 그 물질이 원래 갖고 있던 냉기는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질 것이다.

얼음을 녹였다가 식힌다면 미지근한 물밖에 더 되겠는가.

《……아니지. 얼음은 차라리 나아. 미지근해져도 다시 얼리면 그만이니까. 그것뿐이라면 평생을 검과 군대의 통치밖에 모르고 산 나라도 할 수 있는 간단한 일이지.》

─우드득.

나르메르-나일의 국방에도 중책을 맡고 있는 마할의 영주는 미스릴 주화── 아니, ‘은화’를 손에 움켜쥐었다.

《하지만 이건 금속일세. 동전 모양으로 주조한, 평범한 은(銀)!》

처음에는 미스릴이라고 여기고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희귀금속에는 마법을 부여하기 쉽고, 차갑게 식히는 마법 따위를 부여한 기념 주화라고 여겼던 것이다.

하지만 장인에게 혹시 모를 위험을 검사하라고 지시한 당일, 마할의 영주는 그 장인 본인에게 급한 보고를 받았다.

─영주! 이건, 이건 단순한 은이었소! 은에 마나를 부여해 강도를 올린, 말하자면 사람이 만든 미스릴이었단 말이오!!!

은화의 냉기는 시원한 공기가 흐르는 파티 홀에서도 조금의 변함도 없이 시리도록 차가웠다.

소름이 돋을 만큼 말이다.

《누군가 아는 이가 있다면 말해주게. 대체 어떻게 단순한 은에 이만한 얼음의 마나를 부여했단 말인가?》

근육질의 손아귀를 벌리며 마할의 영주가 말했다.

단순한 은화 정도는 뭉개고도 남을 그의 악력을 상대로도, 인공 미스릴 주화는 꿈쩍도 없이 번쩍거리고 있었다.

《금속에 마나를 부여하는 기술은 저 황금시대의 유실된 기술이 아니었나? 우리 조국은 또다시 저 로마니아나 게르마니아에게 기술력으로 뒤쳐지고 만 것인가?》

좌중은 화려한 파티에 어울리지 않는 침묵으로 답했다.

이 은화 한 닢가 암시하는 터무니없는 가능성을 알아보지 못할 만큼 멍청한 이는, 결코 이 가혹한 사막국가의 영주가 될 수 없다. 마할의 영주 다음 가는 영지의 주인이 말했다.

《……그 기술력으로 무언가 제안하고자 하는 것이 있으니, 이렇게 우리를 불러모은 것 아니겠소?》

──특히 국방의 중책을 맡은 대장군인 당신에게.

늙은 영주가 입 밖으로 내지 않은 암묵의 발언을 알아채고 마할의 영주는 씁쓸하게 웃었다.

《아마 그렇겠지. 저 늙은 독수리…… 코르넬리우스 아르마알스다운 방식이야. 하지만 나는 부디 아니길 빌고 싶소.》

《그건 어째서요?》

《흐. 내가 신임하던 드워프 장인이 이 자그만 동전 하나에 오열하면서 부디 제작자를 만나게 해 달라고 간청하더군. 난 그의 그런 모습을 처음 봤소이다.》

드워프 장인은 영지의 대장장이를 총괄하는 이였으며, 영주인 그와도 막역하게 술잔을 나누는 사이였다.

그래서 그의 흐트러진 모습은 더욱 충격으로 다가왔다.

─영주! 이것이오! 이 기술이 있다면 내 아들처럼 싸우다가 목숨을 잃을 마할의 아들들을 구할 수 있소!

─이 금속으로 만든 골렘이 있으면! 아니, 하다 못해 이걸 사용한 골렘 코어와 냉각장치만 있어도 충분하오!

강철로 된 근육에 피 대신 쇳물이 흐르는 것 같던 장인의 뜨거운 눈물을 떠올리며 마할의 영주는 탄식했다.

그가 오열하며 집무실에 엎드린 순간, 이미 마할의 영주와 저 로마니아의 자택에 앉아서 담배나 태우고 있을 원로 사이의 갑을관계는 명확해졌던 것이다.

‘협상이나 거래를 제안해 온다면, 어떻게든 좋은 계약으로 낙찰받아야 한다.’

마할의 영주는 이를 악물었다.

이미 이 기술인지 천연 소재인지 모를 인공 미스릴은 필요불가결했다.

거절한다는 선택지는 없다.

관건은 어느 정도의 가격으로 공급받을지다.

상대방이 깔아놓은 덫에 제발로 들어가는 꼴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스트레완 연맹의 제일 가는 영주조차 그런 판국이다. 그밖의 영주들의 사정은 들어봤자 시간 낭비일 것이다. 마할의 영주는 그들의 표정을 읽고 두 눈을 감았다.

《우리 나르메르-나일은 또 타국에 뒤쳐지기만 하는군. 내 죽고 나서 어떤 얼굴로 선조들께 사죄해야 하겠는가.》

역사의 깊이로는 나르메르-나일을 따라올 국가는 없다.

저 게르마니아도 인류가 문명을 갖춘 시기를 논하면 그의 조국에 못 미치거늘, 왜 그의 조국은 황금시대의 찬란한 기술력도 새로운 혁명도 얻지 못한 채 쇠퇴하고만 있는가!

답은 알고 있다.

흑마법사다.

단순한 몬스터 무리와 가혹한 환경 뿐이라면 이 강건한 국민들이 극복해내지 못할 리 없다.

나라를 안에서 썩게 만드는 그 빌어먹을 종자들이, 신께서 굽어살피지 못하게 된 그의 조국을 망치고 있는 것이다.

그들 전원을 물리치지는 못해도, 하다 못해 그 수괴 격인 〈임모르탈리스〉만이라도 섬멸할 수 있다면!

채애애앵─!!

대장군의 한이 서린 고민을 타악기 소리가 절단했다.

새로 방문한 초대객의 입장을 알리는 조국의 전통이다.

그리고 이미 모든 초청객이 모인 지금, 등장할 사람이라곤 후원자의 입장을 고려해 늦게 모습을 드러낼 남자 뿐. 모든 연맹원들의 눈이 모인 곳으로 장신의 남자가 걸어들어왔다.

─터벅, 터벅.

좌우에 대동한 두 여인은 파트너인가, 혹은 비서인가.

낮도 밤도 타국의 3배는 밝고, 어두운 대사막의 밤보다 더 새까만 머리카락의 건장한 사내였다.

《……공방장 스스로?》

당연히 협상에 대동한 문관이 있을 거라 생각했던 영주가 작게 중얼거리는 사이, 그는 단상에 올라서서 말했다.

《반갑습니다, 존경하는 귀빈 여러분. 저는 고고학자인 노르드입니다. 오늘 이 중요한 자리에서 코르넬리우스 가주님을 대신하여 여러분을 만나뵙게 되어 더없는 영광입니다.》

좌중을 둘러본 그는, 협상가보다는 자기 논문을 설파하는 학자처럼 정중하게 말했다.

연맹원들이 절대적인 상하관계를 인지하고 있는 만큼, 그의 정중하기 짝이 없는 말투는 그들에게 일말의 여지조차 주지 않으려는 듯 들렸다.

얼음의 마나가 깃든 은화는 연맹원들의 가슴 주머니에서 그들의 심장을 지독하리만치 시리게 했다.

그리고 그들의 침묵을 목도한 키타이 인 학자는, 얼어붙은 분위기를 풀려는 듯 밝게 웃었다.

《……부디 잘 부탁드립니다.》

시발, 이 양반들 왤케 굳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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