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훅 들어온 이름에 눈을 끔뻑거렸다.
“어…… 유령 몬스터가 나와서 유령도시인 건 아니죠?”
“아, 물론 아닙니다. 유래는 다소 좋지 않습니다만, 내실은 평범하게 버려진 낡은 도시입니다. 어쩌시겠습니까?”
“끙.”
어쩌고 자시고 마차에서는 우리 전원이 누워서 잘 자리도 없다. 사막의 하룻밤은 너무 춥고, 위험하고 말이다.
‘고민할 가치도 없군.’
이 대사막을 건너다닌 것 치고는 요 며칠 동안 너무 아무 일도 없긴 했지.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별 수 없군요. 그리로 가십시다.”
“양해 감사드립니다.”
베임은 내 쓴웃음에 이끌린 듯 바로 제독 작업에 들어갔다.
나는 돌아서는 그의 모습을 오딘의 눈으로 스캔했다가 내 의심병에 픽 웃었다.
‘……함정은 아니군.’
안전불감증도 문제지만, 의심병도 이쯤 되면 중증이다.
뭐, 이런 사건사고 역시 여행의 일부 아니겠는가. 낙담하는 라리루라를 토닥이며 일행에게 어찌된 일인지 설명했다.
“으, 진짜냐. 마차 바퀴가 부숴지지 않은 게 다행인가.”
“나무라서 부숴졌으면 수리도 못 했을 테니까.”
그나마 긍정적인 마인드로 사정을 이해한 아내들은 마차에 들어가서 대기했다.
“수리 완료했습니다! 출발하겠습니다!”
정확하게 2시간 반 쯤 지나서, 우리는 유령도시로 마차의 고삐를 돌렸다.
실수를 만회하고자 하던 베임이 눈을 부라리며 집중한 덕분이었을까. 폐허의 도시까지 이동하는 동안 알인지 함정인지 하는 것에 걸리는 일은 두 번 다시 없었다.
“이곳입니다.”
버려진 도시에 도착해서 하차한 나는 주변을 둘러보고 좀 음산한 느낌에 입을 뻐끔거렸다.
야밤의 사막을 배경으로 안내하는 현지인 가이드와, 그의 뒤로 쫙 깔린 무너진 도시의 조합이라.
갑자기 자동차에 문제가 생기는 것도 그렇고, 호러 장르의 프롤로그 같다고 생각하는 건 나 뿐일까.
“흐이, 흐이이이…….”
다행히 나만 그런 건 아니었는지, 티르시는 다리를 떨면서 내 뒤에 찰싹 달라붙었다. 꼭 쥔 완드가 애처롭다.
평소의 그녀라면 절대 하지 않을 짓이었다. 이세계인들도 유령은 무서워하는 걸까.
하긴, 여기도 사후세계의 실존은 증명하지 못했으니까.
“티르시. 혼자 마차에서 주무셔도 됩니다. 괜히 주체 못 할 마나량으로 마법을 뻥뻥 터트리시거나 하면……”
“같이!!! 같이 잘래요! 같이 자게 해 주세요!”
놀릴 생각은 아니었는데. 나는 알겠다고 대답하면서 앞장 서서 일행을 인솔했다.
“아, 여러분. 이 도시는 수십 년 전에 멸망한 채로 방치된 곳이므로 혹 수원(水源)이 보이더라도 손 대시면 안 됩니다.”
뒤따라서 길을 알려주던 베임이 일행에게 들려주듯 말했다.
“오아시스부터 끌어올리는 우물은 전부 오랜 시간 고이고 오염되서 사실상 독극물에 가까운 실정입니다.”
“……예. 그래 보입니다.”
수도관이 터졌는지 보라색과 검은색이 뒤섞인 웅덩이가 저 멀리에 가득하네요. 진짜 안전한 것 맞나 몰라.
고삐로 마차를 끌던 베임은 면목이 없다는 듯 말했다.
“그래도 몬스터가 모여들 수 있는 사막 한복판보다는 나을 겁니다. 정기 캐러밴이 오가기 때문에 정돈된 거처도 빌릴 수 있습니다. 선객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선객이라. 확실히 몇 명 있나 보군요.”
“네?”
나는 팔을 세워서 베임과 일행을 멈추었다.
귀가 예민한 프랑은 내 대처를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인지 곧바로 앞으로 나왔다. 부부다운 이심전심이었다.
사막의 하늘이 저렇게나 청명했기에, 그 밑에 솟아난 낡은 폐허의 도시는 모순적이게도 더욱 어두웠다. 비행기에서 불야성의 야경을 내려다본 광경을 거꾸로 뒤집어놓은 듯 했다.
나와 프랑은 무기에 손을 얹으며 한 곳을 바라봤다.
건물과 말라 비틀어진 나무의 사이에 사람의 기척이 있다.
“뉘십니까? 숨어 계시면 공연한 의심만 삽니다.”
경계를 낮추지 않고 말을 걸었다.
몬스터 따위가 아니다. 냉철한 지성으로 관찰하는 눈이다. 별빛이 안 닿는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우리를 먼저 발견하고 유심히 바라보고 있던 것이었다.
다짜고짜 전투태세에 들어가지 않은 건, 상대방 역시 숨을 죽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습을 노렸다고 보자니, 느껴지는 프레셔에 비해 은신한 솜씨가 너무 엉성하다.
말하자면 저들이 먼저 ‘서로 경계한 채로 마주치자’고 제안해 온 셈이었다.
“아…… 미안, 미안. 이 늦은 밤에 우르르 몰려오길래 그만 경계부터 해 버렸네.”
친근하게 사과하면서 나타난 것은 두 남녀였다.
어느 쪽도 성인이다. 거리감이 가까운 걸 보면 친구 사이는 아닐 듯 했는데, 베테랑 여행객 같은 옷차림이랑 다르게 짐이 없다. 우리보다 먼저 와서 짐을 풀고 있었던 듯 했다.
“알다시피 이 나라에는 범죄자가 많잖아? 몇 달 묵었다고 안 놓은 버릇이 들었나 봐. 진짜 미안해~.”
여성 쪽이 대표로 말을 걸며 후드를 벗었다.
사막의 밤의 추위를 막기 위해서였을까. 후드를 눌러썼던 그녀는 눌린 머리카락을 헤집다가 해맑게 웃었다.
“그래도 위험한 사람들은 아닐 듯 해서 안심했어! 아무튼 안녕! 난 에르제 릴리베트야! 직업은 모험가고, 이쪽은 우리 남편! 그리고 이건 내 모험가 플레이트!”
─홱! 말을 쏟아내고 먼저 신분증을 던지는 그녀.
이미 오딘의 눈을 켜뒀던 나는 날아오는 플레이트를 빨리 훑었다.
재질은 백금이다. 플래티넘 클래스인가.
시험까지 쳐 가며 실력과 인품을 고루 증명해낸 모험가가 아니면 얻지 못하는 등급이다.
마법적인 위험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 낚아챘다. 당연하지만 이런 걸 봐 줄 사람은 프랑밖에 없다.
─파앗!
프랑이 볼 수 있게 〈수사의 랜턴(Friar's Lantern)〉으로 빛을 켜 줬다.
그녀는 도적과 드워프의 눈썰미로 군번줄 같은 백금 목걸이를 훑다가 금방 결론을 내렸다.
“……플래티넘 모험가의 플레이트를 본 적은 없지만, 이게 가짜라면 굉장한 솜씨의 장인이 손수 만든 위조품일 거야.”
“아하하하! 플래티넘 쯤 되면 사칭범도 늘어서 플레이트를 만드는 데 드는 제작 기술도 엄청 높아지거든. 그치만 그걸 알아보다니, 눈썰미가 만만치 않은걸. 혹시 너도 모험가야?”
친화력 좋은 것 보게. 라리루라랑 둘이 냅두면 1시간 안에 찐친 먹겠네.
비교적 아싸 타입인 프랑은 어버버 거리다가 대답했다.
“아, 네. 등급은 실버밖에 안 되지만요.”
“에이. 그게 어디 중요한가? 타지에서 만나면 하나의 인연! 다 같은 모험가 동료잖아!”
벌써부터 경계를 푼 듯 쾌활하게 웃는 에르제.
하지만 아까 전부터 한 마디도 없이 오딘의 눈으로 그녀와 옆에 있는 남성을 쳐다보던 나는, 그때 쯤 되서 그들의 ‘진짜 얼굴’을 간파하고 입을 꾹 닫았다.
──저들의 얼굴에는 변신 마법이 걸려 있었다.
에르제라고 자칭한 여성은 갈색 머리카락의 평범한 모험가 같은 외모를 하고 있었지만, 그 이면에 가려진 진짜 얼굴은 흰 피부와 치렁치렁한 머리카락의 미인이었다.
남자 쪽은 일단 외모 면에서 특이한 점은 없다.
변신 후보다 잘생긴 얼굴과, 힐끗 봐도 나랑 필적하는 빡고수라는 점을 빼면 말이다.
‘애미. 또 미스릴 급이야?’
존나 내가 좆밥이었던 때부터 하도 많이 쳐 나와서 그런가. 이젠 미스릴이고 뭐고 놀랍지도 않네.
분명 나도 온갖 개고생을 하면서 팔까지 짤라먹고 찍은 빡고수의 경지일 텐데 참 초라해 보인다.
하지만 그 뜬금없는 고수의 등장도 어색하지 않았다.
매일매일 손수 컬을 넣은 듯 풍성한 금발의 미녀.
에르제라고 자칭한 저 귀족적인 아가씨의 얼굴은, 저번에 마법사 길드에서 만났던 음악가 같은 남자── 브리타니아의 조지 왕자를 쏙 빼닮았던 것이다.
신분을 숨긴 묘령의 유부녀는 익살맞게 헛기침을 했다.
“엣헴. 내 플레이트 확인했으면 이만 돌려줄래? 하는 김에 너희 이름도 들려주면 좋고.”
“……노르드입니다. 이쪽은 제 아내고요.”
“프란체스카 에이트리넨이에요.”
“응? 노르드?”
우리 대답에 에르제는 입을 가리며 놀랐다.
“잠깐만, 노르드라고? 혹시 그러면 네가 그 노르드야?!”
“그 노르드가 어떤 노르드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당대에 저보다 유명한 노르드는 없을 듯 하네요.”
나는 영혼 없이 대꾸하면서 눈을 질끈 감았다.
에르제. 에르제인가.
‘……피부에 구멍이 숭숭 난 흑마법사나, 인간으로 변장한 유령 몬스터 같은 게 차라리 나았겠군.’
들어본 기억이 있다.
에르제라는 이름은 여성의 이름으로 곧잘 쓰이지만, 브리타니아에서는 ‘엘리자베트’의 애칭으로도 쓰인다던가.
‘그리고 분명, 브리타니아 제 1왕녀의 이름이──’
──‘엘리자베트’ 플로리나 트리스 브리타니아였던 것 같다.
설마 이게 전부 다 우연일까? 나그는 아닐 것 같은데??
“아하하! 우연이네! 이런 외진 사막에서 너 같은 유명인을 다 만나고!”
브리타니아의 공주님은 자신의 변신이 절대로 들키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는 듯, 쾌활하게 말했다.
“그치만 이렇게 어두울 때는 경솔하게 돌아다니면 못 써. 도시 꼴이 꼴이니만큼 그다지 좋은 잠자리는 못 되겠지만, 괜찮으면 너희도 묵고 가지 그래?”
“……예. 안 그래도 그럴까 하던 차였습니다.”
이세계에서 처음 만난 공주가 유부녀라니.
내 이세계 생활은 역시 어딘가 나사가 빠졌다. 진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