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507화 (507/1,009)

─위험한 상대는 아닐 거야. 따라 가자.

나는 우선 베임을 제외한 일행에게 ᚨ(Ansuz)의 룬으로 텔레파시를 쏴 두었다.

공주라는 건 일단 말하지 않았다. 긴장하는 건 나 혼자면 충분할 것이었다.

그리고 베임을 뺀 건 다른 이유가 아니라, 그냥 이 양반은 내 룬 마법을 모르니까 놀란 티를 풀풀 낼 것 같아서다.

“이쪽에 작은 캠프를 쳐 놨어!”

에르제는 기운차게 말하며 앞장을 섰다.

그녀의 말마따나 그나마 멀쩡해 보이는 건물 안에 사람이 몇 명 정도 모여 있었다. 이들은 변신 마법이 걸려 있지 않았는데, 대충 보니까 공주의 호위인 듯 했다.

“에르제? 저 사람들은?”

“우연히 만났어! 너도 말했었지? 저 사람이 그 노르드래!”

“그 노르드입니다. 잘 부탁해요.”

놀라는 그들에게 적당하게 인사를 하고 바닥에 앉았다.

버려진 건물의 벽을 헐어서 만든 듯한 장소였는데, 덕분에 일행이 10명을 넘는데도 충분히 넓다.

낯선 사람들과의 합석이지만 큰 걱정은 되지 않았다.

몬스터가 있을 게 뻔한 밤의 폐허와 지 신분을 숨기고 미행 중인 공주 일행.

어느 쪽이 위험할지는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엔간하면 여기가 더 안전할 것이었다. 수상쩍게 헤어지려 들었다가 반대로 의심을 사는 것도 우리가 원하는 바는 아니다.

에르제는 털털하게 앉아서 손을 저었다.

“만난 건 반갑지만, 아무래도 밥은 각자 먹는 게 낫겠지?”

“아무래도 그 편이 서로 마음 편하겠죠.”

“좋아. 그치만 대화 정도는 하지 않을래? 밥 먹는데 아무 말도 없이 먹어야 하면 속에 얹혀버릴 거야.”

“그 정도라면 상관 없습니다. 프랑, 요리 도와줄게.”

우리도 자리를 빌려서 불을 피우고 재료를 꺼냈다.

지구에서도 부자를 캠핑카를 써서 편하게 여행을 하듯, 이 이세계에서도 능력과 돈이 되면 야영은 쉽다. 나는 마법으로 오래 가는 불꽃을 피우고 석판에서 식재료를 잔뜩 꺼냈다.

아공간에 넣어둔 소형 냉동고에서 싱싱한 잎채소와 육류가 쏟아져나오자, 말려 굳힌 스프 블럭 같은 거에 육포를 넣던 에르제 일행이 입을 헤 벌렸다.

“……굉장하네. 그거 유물이야?”

“넹. 모험하다가 운 좋게 주웠는디요.”

나는 덤덤하게 말했다. 공간 계열의 아이템은 프랑의 가죽 갑옷이 그랬듯 마이너 카피가 존재하는 만큼, ‘고대문명의 유물’이라고 퉁치면 끝날 일이었다.

보란 듯이 도마까지 꺼내서 조리를 시작하는 우리.

어르신의 연구비로 산 마법 재료를 융통해서 만든 석판은 이전보다 내부 공간이 넓어졌다.

베로니카와 프랑의 손을 거친 수제인 만큼 제작 가성비는 원본보다 높았을 테지만, 어차피 처분이 곤란하던 시약들을 쓴 것이었기에 문제는 없다. 식재료를 넣고 다니게 된 이유다.

─송송송송!

─보글보글.

조리를 시작하자 기분 좋은 향기가 솔솔 피어났다.

프랑은 메인 셰프를 맡았다. 나는 당연히 재료 손실이다.

“도와드릴게요.”

의외였던 건 티르시도 식칼을 잘 다뤘다는 점일까. 나는 내 식칼을 건네주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오? 티르시, 의외로 요리에 소질이?”

“음…… 그냥 남들만큼은요?”

“흐흐. 감동스럽네요. 그 ‘남들만큼’마저 못 하는 사람들이 가족 중에 많아서.”

“언니들. 가만히 있었는데 선배가 때려요.”

“존나 팩트라 반박도 못 하겠네.”

티르시는 피식피식 웃으면서 잎채소의 마른 부분을 쳐냈다.

아마 약초 같은 걸 다듬을 일이 많아서 손에 익은 걸까. 좀 의외의 면모이긴 했지만 그것도 그녀의 장점이겠지.

“프랑 양. 메뉴는요?”

“하루 종일 마차에서 시달렸으니 든든하게 차려볼까 해요. 혹시 불만 있는 분…?”

프랑의 조심스러운 질문에 불만이 있을 리 있냐는 것처럼 고개를 젓는 일행.

“……끙.”

아, 가족 중에는 없었지만 에르제의 일행 중에는 있었다.

마차를 타고 개꿀을 빨던 놈들은 저렇게 잘만 쳐먹는데, 왜 낙타를 타고 온 우리는 짬이나 쳐먹고 있나~ 하는 눈빛이다. 암, 건조식량의 맛은 나도 잘 알지. 노예 시절에 뒤지도록 쳐먹어 봤걸랑.

그런 만큼 향신료도 충분히 친 멀쩡한 음식의 유혹은 무척 크겠지.

충분한 양을 완성한 나는 수저를 물고 침을 삼키는 에르제에게 말했다.

“한 그릇 드실래요? 저희들에 대한 신용이나 해독 포션이 있으시다면 나눠 드려도 상관 없는데요.”

“진짜?! 먹을래!!”

공주 맞나? 혹시 왕자와 거지 동화의 성전환 버전 아냐?

망설임 없이 고기와 스프를 받아간 에르제는 일행과 양을 똑같이 나눴다.

그녀들이 안심하도록 우리가 먼저 수저를 떴다.

‘어차피 얼마 하지도 않는 거, 이미지라도 좋게 따 두지 뭐.’

회장님의 친딸이 신입사원으로 신분을 위장하고 있다? 아, 이건 못 놓치지.

K-드라마로 단련된 호감도 작업을 충실하게 이행하는 나.

신분을 숨기고 있으니 나중에 아는 척을 하진 않겠지만, 내 이미지를 차기 여왕님께 플러스 방향으로 쌓아둘 기회였다. 음식 몇 점으로 얻을 수 있는 이득 치고는 훌륭하지 않을까?

“으음…!! 맛있어─!!”

에르제는 식기를 달그락거리면서 빵빵해진 볼을 우걱댔다. 다른 일행과 비교해도 독보적으로 소탈한 식사법이었다.

“입에 맞으셨다니 다행이군요. 음식으로 마찰을 피해갈 수 있다면 남는 장사죠.”

“빈말이 아니라 진짜 맛있어! 이 나라는 채소가 드무니까. 이 풍성한 스프의 담백함, 그야말로 고향의 맛이야!”

브리타니아 같은 맛이라니. 그건 좆도 칭찬이 아닌데.

아무튼 맛있는 밥 덕분에 우리는 비교적 온건한 분위기로 담소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금수저가 짝짝이로 짤린 쌍쌍바를 두고 싸우지 않듯, 돈도 능력도 충분한 모험가끼리 사생결단을 벌이는 경우는 희소하니까. 비싼 유물이나 안전이 걸린 것도 아니니만큼 싸워봤자 우리도 그들도 잃을 게 더 많았다.

남편이라던 남자가 뺨에 튄 국물을 닦아주는 사이, 에르제 양은 시시덕거리며 말했다.

“밥이 맛있으니까 휑─ 한 장소도 운치 있게 보이네. 근데 우리야 이래저래 여기나 근처의 영지에 들릴 일이 있다지만, 너흰 어쩌다 이런 곳까지 왔대?”

“무슨 이상한 몬스터 때문에 일정에 차질이 생겨서요.”

“어, 나 알 것 같아! 조디버그 맞지? 우리도 그 놈 때문에 함정에 빠질 뻔 했다니까. 으으, 대사막은 진짜 최악이야.”

“그러십니까? 혹시 저 놈들의 서식지가 이 근처일지도 모르겠군요.”

“아마 그럴 걸? 우리도 그것 때문에 왔거든.”

“넹?”

푸하─. 물을 거침없이 들이킨 에르제는 벽에 세워둔 가방에서 뭔가를 꺼냈다. 잔뜩 접어둔 종이였다.

“원래 우리는 피라미드 탐사대에 참가하려고 이 나라에 온 거야. 그래서 원래는 여기가 아니라 새로 발견된 피라미드에 있었는데, 일이 있어서 사막을 횡단하는 길이었지.”

“탐사대요?”

익숙한 화제인만큼 티르시가 반응을 보이자, 에르제는 그 종이를 펼치며 대답했다.

“응. 말로는 탐사대지만 정확하게는 두 종류로 나뉘어. 탐험가끼리 연대하는 벨코트 탐사대랑, 돈 많은 고용주한테 돈을 받고 고용된 우리 시리우스 탐사태지.”

“흐음…… 듣기만 해도 경쟁이 심할 듯 하네요. 여기에 온 것도 그 일환입니까?”

“그래. 탐험가 팀의 연합인 벨코트에 비해 우리는 모색이 좀 달라서.”

“돈 많은 사람에게 고용됐다고 하셨죠.”

“히히, 피고용자의 애환이지 뭐. 우리 고용주님은 ‘보물은 찾는 놈들에게 넘겨준다. 원하면 후방지원도 해 준다. 그러니 피라미드 탐사의 공적은 전부 내게 넘겨라’ 라는 스탠스거든.”

“그렇군요.”

얘기를 들어보면 티르시가 참여하려고 했던 건 벨코트라는 탐사대 쪽일 듯 했다.

‘피라미드 탐사’라는 공동목표를 두고, 서로 싸우지 않도록 하는 중재팀.

그리고 겸사겸사 개인 탐험가에게 팀을 찾아주는 식인가. 티르시는 저 탐사대를 통해서 공을 올리고 귀족 작위를 노릴 생각으로 로마니아를 향했다고 했었다.

나는 스프를 그릇 째로 마시다가 생각을 정리하고 물었다.

“……여러분의 고용주는 귀족 작위가 목표겠습니다?”

“응. 부자가 인맥 없이 신분 상승을 노리는 것 같아. 돈을 펑펑 쓰는 걸 보면 자신은 있겠지.”

“대원들의 의욕도 처음부터 기한이 정해진 셈이었겠고요.”

“그렇지 뭐. 초반엔 보물에 눈이 팔려서 빡세게 구르더니, 점점 위험에 비해 보물을 주울 일이 줄기 시작하니까 밍기적 거리더라고. 어차피 공략을 마쳐도 공적은 고용주 거지, 지들 건 아니라는 심보인가 보더라.”

나는 듣기만 해도 열 뻗치는 기분에 에르제의 성난 표정에 공감이 갔다.

화장실에 들어갈 때랑 나올 때가 다르다더니, 딱 이 짝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계약에 묶여서 튀지는 못하겠지만 이제 목숨을 걸고 탐사하기는 또 싫어진 거겠지.

사람이라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다 알고 계약을 맺은 주제에 태세전환을 하는 씹새들도 보기 안 좋긴 했다.

에르제는 입술을 비쭉대며 투덜거렸다.

“같은 모험가로서 짜증난다니까. 이번 피라미드는 함정이 빡세긴 했지만, 그다지 침입자에 대한 살의로 가득찬 수준은 아니었거든? 그런데 다른 놈들이 빈둥대는 만큼 탐사가 늦어지더라고.”

“그 피라미드가 발견된지도 꽤 지나지 않았습니까? 탐험도 슬슬 막바지겠군요.”

“숨겨진 공간이 없다면 그럴 거야. 그래서 우리끼리 열을 올려서 탐사하던 중이었는데, 이런 힌트를 찾은 거 있지?”

─촥! 그녀가 펼친 것은 고대 나르메르-나일 어와, 그릇이 그려진 스케치였다.

“우리 파티의 언어학자가 해석해 보니까, 피라미드의 하층으로 내려가는 방법인 듯 해. 문을 열려면 강력한 극독을 이 성배에 채워야 한다더라구.”

“……그런 문구가 유적 안에 있었다고요? 함정 아닙니까?”

나는 벙쪄서 솔직하게 물어보았다.

던전이나 유적을 설계하는 입장에서, 21세기 지구인들에게 익숙한 게임 디자이너와 실제 던전 제작자는 크게 다르다.

현실과 창작물의 가장 큰 차이는 ‘침입자에게 유적을 돌파하길 바라지 않는다’는 점일까.

말로 하면 당연한 건데, 여기다 현실미를 몇 스푼 첨가하면 진짜 좆 같음의 극한이 된다.

게임조차 제작자가 깨지 말라고 만들어 놓은 던전은 심히 좆 같기 마련!

그런데 실제로 ‘뒤져라 햣하’ 하면서 좆빠지게 만든 던전이라니? 살인마가 내 목에 칼을 들이밀면서 이 똥겜을 못 깨면 죽여버린다고 하는 게 차라리 나을 듯.

에르제는 당연히 안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따.

“너무 뻔해서 그럴 가능성은 적겠지만, 함정이어도 사람이 아니라 마법이나 골렘으로 시험해 보면 그만이지.”

─휘릭.

그녀가 손가락을 휘젓자 바람이 새 모양으로 뭉쳐졌다.

예전에 프랑도 베로니카의 도움을 받아서 쓴 적이 있었던 정령화의 술식인가 하는 마법이었다. 우리 파티에서는 나의 드루이드 파파고가 너무 씹사기라서 사장된 정찰기다.

그렇구만. 저런 걸로 안전한 곳에서 함정 해제에만 도전해 보시겠다? 정석적인 방법이군.

“그래서, 우리는 이 지역에 있을 조디버그의 여왕 벌레의 독샘을 뜯어내러 왔단 말씀! 이 성배에 채울 만한 강력한 독이라고 하면, 역시 대사막의 몬스터 아니겠어?”

─탁! 하고 이게 결론이라는 듯 무르팍을 치는 에르제였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웃음을 터트렸다.

“과연. 그렇다면 갖고 온 해독 포션이 많으시겠군요. 왠지 저희가 드린 요리를 거침없이 드시더니.”

“히히. 덕분에 맛있었어. 고마워.”

에르제는 들켜버렸냐는 듯 웃었다.

우리가 준 음식에 독이 들어 있어도 포션으로 회복을 못할 만한 극독은 아닐 거고, 그러면 포션을 빨고 씹새끼들이 잘 걸렸다며 싸우면 된다고 생각했던 모양.

에르제는 빈 그릇을 땅에 두며 고개를 저었다.

“당연하지만 나르메르-나일에서도 독극물은 법적으로 판매금지니까. 뒷사회에라도 가지 않으면 유통되지 않는데, 극독이라고 할 만한 독을 범법적으로 사고 싶지는 않았거든.”

“그래서 1달 이상을 기다려 왕가로부터 독극물의 유통허가증을 받아냈다. 사유서까지 작성해가면서.”

처음으로 에르제의 남편이라는 남자가 말했다.

하도 과묵해갖고 말을 못 하는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그건 아닌 듯 하군. 진짜 엘리자베트 왕녀의 남편이 맞다면 분명 이 남자도 만만찮은 고위 귀족일 것이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다. 정보가 흘러나갔는지 좀도둑과 강도가 습격을 해 오더군.”

“아마 다른 탐험가 놈들이 우리가 찾아낸 정보를 훔치려는 것 같아. 벨로트나 시리우스, 그밖의 누구든 간에.”

“그렇게나 탐사에 열을 올리던 분들이 갑자기 피라미드를 벗어난 것 아닙니까. 1달이나 걸렸다면 뒷조사를 해서 일이 돌아가는 걸 대충 눈치챌 만 하군요.”

대충 결론을 눈치챈 나는 한숨을 쉬었다.

“처음에는 저희더러 조디버그의 여왕이라는 몬스터를 사냥하는 걸 도와달라시는 줄 알았습니다만…… 여러분의 표정을 보니 아무래도 저희까지 습격에 휘말릴 수 있다는 얘기가 하고 싶으셨던 듯 하군요.”

“응. 캐러밴이 정리해둔 건물은 한 곳 더 있거든. 그렇지만 다짜고짜 너희는 거기로 가 줘~ 하고 말하면 100% 의심할 것 아냐. 함정을 파 놓은 도적단으로 볼지도 모르고.”

그건 그렇다. 나도 저 공주의 정체를 몰랐다면 아직까지도 쭉 의심하고 있었을 것이었다.

에르제는 속이 후련하다는 듯 말했다.

“실제로 습격을 당한 뒤에 설명하면 악감정이나 의심만 더 커질 게 뻔하잖아? 그래서 우리 사정을 들어줬으면 했어.”

“그 점은 감사합니다. 사정은 이해했습니다. 저희도 근처에 댄 마차를 끌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겠습니다.”

“그래 줄래? 그래야 서로 켕길 것 없이 편할 것 같거든.”

나는 눈짓으로 일행의 의견을 묻고 고개를 끄덕였다.

왜 브리타니아의 공주가 탐사대 따위에 참가하고 있는지도 몇 가지 생각나는 가능성이 있지만, 여기서 헤어지면 잊어도 될 문제였다. 굳이 이들 사정에 휘말릴 이유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우리는 그 계획을 세운지 5분도 안 되서 철회하게 되고 말았다.

그릇을 정리하고 제대로 풀지도 않은 짐을 다시 챙기려고 했을 때, 이 건물로 다가오는 발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사박, 사박.

─똑똑.

그 방문자는 문 앞에 멈추더니 무려 노크까지 했다.

나는 일행의 대표로서 에르제에게 눈을 돌렸다.

“상당히 신사적인 불청객입니다만, 그 도둑놈들도 저렇게 매너가 있었습니까?”

“……아니, 그렇지는 않았는데.”

“흐음. 혹시 모르지 않습니까? 훔치기가 힘들다는 걸 알고 여러분들과 협상을 나눌 생각일 수도요.”

“피차 불가능하다는 건 우리보다 그 놈들이 더 잘 알 걸.”

“과연. 잘 알았습니다.”

나는 왼팔의 팔찌에 손가락을 걸었다.

“그렇다면 아무래도, 제 손님인 듯 하군요.”

우드득…!

이 유령도시에서 그나마 멀쩡하던 문고리가 잠금쇠 째 박살났다. 억지로 문을 비틀어 열자 거기 있던 사람이 음침하기 짝이 없는 도시의 별빛을 받으며 걸어들어왔다.

아니지. 앞서 한 말을 정정하자.

저건 사람이 아니다. 언데드다.

끼리릭…… 끼리릭…… 끼릭?

몸에 붕대를 칭칭 감은 언데드는 목각 인형처럼 뻣뻣하게 우리를 둘러보다── 나를 발견한 즉시, 풍선처럼 부풀었다.

─퍼어어엉!!!

검붉은 피와 살덩이가 수류탄을 터트린 듯 우리를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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