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쯧.”
폭발의 기미가 발생한 찰나의 일이었다. 나는 야수회귀의 마나를 끌어올리며 팔을 휘둘렀다.
혈수마공(血手魔功)
스파이크 실드(Spiked Shield)
가시가 솟아난 마나의 방패를 커텐처럼 넓게 펼쳤다.
폭발하면서 확산한 미이라 폭탄의 유효 타격을 막아냈다. 꽤 위력적인 수위의 폭발이기는 했는데, 두꺼운 두께의 마나 코팅을 뚫을 수준은 아니다.
─츠팟!
에르제의 남편이 나 못지 않은 반응속도로 실드의 지척에 접근해 있었다.
나는 방해가 되지 않게 마법을 해제했다. 그의 칼집에서 예리해 보이는 구리빛 칼날이 빠져나왔다.
─으히히헤헤! 뭐냐, 싸움이냐! 아 이런 망할, 언데드잖아! 냄새 나, 젠장!
“시끄럽다.”
뽑혀나온 칼날이 징징 거리며 목소리를 토해냈다. 그는 그 요란스러운 목소리를 무시하고 검을 휘둘렀다.
─쾅!!
구리빛 칼이 크게 떨리면서 충격파가 뿜어졌다. 충격파는 문앞을 점거한 수십여 마리의 미이라들을 날려보냈다.
휘말린 문이 박살나면서 입구가 2배 가까이 넓어졌을 때는 나도 그 돌부스러기를 튕겨내며 그의 옆을 달리고 있었다.
“맥켄지!”
“출구를 뚫는다. 안에 있어도 위험하다. 따라와.”
에르제가 가명일 게 뻔한 이름을 부르자, 그는 할 말만 툭 던지고 돌격했다. 나는 팔을 뻗는 미이라를 맥켄지가 했듯이 후려쳐서 날려보냈다. 토막내봤자 폭발하면 마나만 날릴 것이었다.
─야, 무식한 칼잡이 놈아! 흑마법사를 찾아! 저것들을 조종하는 놈이 어딘가에.
“안다.”
─챙! 맥켄지는 듣지도 않고 칼집에 도로 칼을 넣었다. 그 상태로 휘둘러도 문제 없게 만든 아이템인지 그가 칼을 한 번 휘두르자 미이라 한 마리가 박살나서 터져나갔다.
말하는 검이라. 신기하긴 하군.
그치만 이제 와서 저런 것 갖고 놀라기엔 내 양판소 독서 경력과 이세계 짬밥이 너무 다사다난하지.
─투두두두!
에르제가 쏜 마법이 미이라 몇 마리를 사살했다.
움직임을 막기만 해도 의미는 있었다. 익숙한 대처를 보면 마냥 짐덩어리인 공주님은 아닌 모양이다.
‘그러고 보면 모험가 플레이트도 진짜랬던가.’
─슥.
0.1초마다 미이라를 격퇴하며 폭발시켜봤자 의미가 없도록 막고 있자, 근처 건물들의 위에서 그림자가 치솟았다.
오딘의 눈으로 훑자 전부 미이라였다. 하지만 뒤져나가는 놈들이랑은 다른 점도 있었다.
《쏴라!》
─콰과과광!
상부에서부터 이뤄진 포위망에서 흑마법이 쏟아졌다. 미이라들의 목숨을 대가로 한 공격 마법이었다.
‘알뜰살뜰한 씹새끼로군. 시체를 일회용 매직 아이템처럼 써?’
나랑 맥켄지는 각자 대처했다. 그의 몸에 흙의 마나가 자리잡으며 내 창에는 바람의 마나가 깃들었다.
샛노란 오러가 맥켄지의 검을 감쌌다. 불꽃처럼 뿜어지는 내 오러랑은 다르게 그의 오러는 흙의 속성을 띄고 대검처럼 검집을 뒤덮었는데, 맥켄지는 그것으로 마법을 쳐냈다.
─쿠르릉!!
나는 반대로 아르마알스 가문에서 습득했던 바람의 창술로 흑마법을 분쇄하고 건너편의 미이라들까지 분쇄했다.
미이라 병대에 빈틈이 생겼다.
‘바오 자켈가.’
나는 창에 번개와 충격파를 모아서 용 모양으로 만들고서, 그것을 자이언트 스윙으로 휘둘렀다. ─콰르르르 콰광!! 뇌룡이 원무를 추면서 미이라를 재로 만들었다.
“위로 가라. 나는 밑을 맡으마.”
“──죽이지만 마십쇼. 심문할 겁니다.”
오딘의 눈을 껐다 키느라 대답이 잠깐 늦어졌는데, 입과는 다르게 내 발은 이미 건물 위로 뛰어오르고 있었다. 그런데 언제 봤다고 반말이시죠. 씨발럼이.
─척!
위로 올라오자 로브의 후드를 깊이 눌러쓴 흑마법사가 두 손을 펼쳤다.
서로 말이라곤 없었지만 팔뚝에서 검은 붕대가 무슨 촉수 같은 느낌으로 꿈틀거렸다. 이 놈 뿐인가?
내가 눈을 옆으로 굴렸을 때, 가슴이 눈에 보이도록 부푼 흑마법사가 입을 쩍 벌렸다.
파스스스스스─!!
미친 놈이 주둥이에서 파리떼인지 뭔지를 뿜어냈다. 나는 눈을 반개했다.
감히 내 어릴 적 추억 속의 사오정을 더럽히다니? 하지만 건방진 벤치마킹을 빼고 보면 살인 파리는 충분히 위협적인 공격이었다. 작아서 피하기도 힘들고 흩어지면 위험하다.
팔을 파고들고 알이라도 까면 그게 무슨 참사인가. 야수회귀의 마나로 방어에 빈틈이 없는 나는 어쨌든, 우리 가족을 공격하는 절대 꼴은 못 봐주지.
혈수마공(血手魔功)
파이어 토네이도(Fire Tornado)
휘오오오오─!!
【게르튀르】의 반격기 제 2품새로 창을 풍차처럼 돌리며 그 회전력으로 불꽃 소용돌이를 만들었다.
회오리보다는 화살처럼 날아간 불꽃은 파리떼를 태우면서 흑마법사를 노렸고, 붕대를 감은 새끼는 후드가 젖혀지도록 피하면서 강철도 관통할 듯한 붕대를 쏟아부었다.
나야 오딘의 눈 때문에 언어장애 상태라지만, 이 개새끼는 싸우면서 말 한 마디도 안 하나? 할리우드 정신 위반이군.
나는 창을 회전시킨 김에 아예 오러를 감게 했다.
그야말로 믹서기가 된 창은 붕대를 갈아버리면서 피하려는 흑마법사의 오른쪽 다리도 갈아버렸다.
─쿠르르르르륵!!
《캬아악!!》
물기가 없는 다리는 모래처럼 분질러졌다.
붕대의 방어력은 갑옷 못지 않았지만, 오러가 상대여서는 의미가 없다.
‘가루가 돼? 자기 몸을 미이라처럼 만들었나.’
리치의 발끝에도 못 미칠 수준이겠지만 저거라면 흑마법의 부작용을 비교적 억제할 수 있겠지.
근데 이 새끼들은 지가 고른 흑마법이면서 왜 하나 같이 그 부작용을 억제하려고 온갖 똥꼬쇼를 다 하지. 악으로 깡으로 참고 부엽토가 되는 게 맞는 거 아닌가?
《커헉, 헉… 헉…!!》
그래도 완전한 언데드화는 아니었던 걸까. 고통은 있는 듯 기어이 비명을 지른 흑마법사 새끼는 붕대를 펴서 의족처럼 발의 균형을 잡고서, 어둠과 음의 마나를 쥐어짰다.
《오, 나의 주군이시여(ity nb.i)! 노쇠가 찾아왔고 세월이 내렸으매(tni xpr iAw hAw), 나약이 도래하며──》
“아가리(I got it).”
─으적!
오딘의 눈으로 해석해 본 결과 저주라는 걸 눈치깠기에, 내 창의 컴보(Combo)에는 자비가 없었다.
흑마법사의 턱은 창대에 박살나서 가루가 되었다.
《끄엑…! 악…!》
“You 블랙 매지션, 주문 외우고 싶어요? 그러나 당신 틀니 깜빡했다. 금이빨 원하면 Dynamis 공방으로 오십시오.”
개새끼가 안 그래도 저주 때문에 고생 중인데 푸짐하게 한 사발 더 얹으려 드네. 뒤질라고.
“ᛒ(Berkanan).”
─투두두두!! 나는 마나를 말뚝의 모양으로 만들어서 애미 터진 흑마법사를 건물 옥상에 박제해 두었다.
《어악!! 악──!!》
저항하길래 무시하고 꿰어놓았더니 사지가 만(卍) 자처럼 되었다. 이 새끼가 뒤져가는 와중에도 나치즘을 어필하다니? 어쩌면 이 놈처럼 즐기는 자 모드로 사는 것이 소소한 행복을 찾는 길일지도 몰랐다.
“으휴, 병신 새끼.”
건곤일척의 승부를 걸 거면 거리를 두고 했어야지.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심문은 미뤄두고 밑으로 뛰어내렸다.
─우뚝.
─우수수수.
내가 내려가자 미이라들이 쓰러졌다.
건물 밖으로 나와서 방진을 갖추던 사람들도 미이라들이 멈추자 안도하는 듯 했다. 나는 우리 마차를 끌던 낙타가 다 죽어버렸다는 걸 눈치채고 한숨을 쉬었다.
마침 맥켄지도 다른 흑마법사의 팔이랑 다리를 토막내놓은 참이었다. 그는 칼을 허리에 차지 않고 나한테 물었다.
“끝났나?”
“아직입니다.”
오딘의 눈으로 본 결과, 이 새끼들의 마법은 술자가 죽는 걸로 풀리는 타입이 아니었다.
‘미리 만들어놓고 흑마법으로 조종하는 형태다. 우리 손에 뒤진 놈들이 조종을 하던 거였으면, 지성 없는 언데드가 되서 우왕좌왕 거리다가 덤벼들었겠지.’
뭣보다 나를 죽일 생각이었다기엔 습격자의 질이 좀 낮다.
‘맥켄지라는 예상 못한 변수가 있었다지만 2마리 다 수준 미달이야.’
이세계는 잔혹하다. 사람의 강함을 명약관화한 기준을 두고 척도로 상하를 나누기 때문이다.
미스릴 클래스가 사방에 굴러다닌다지만 그건 내가 레벨을 올릴 때마다 사냥터를 바꾸듯 상대하는 이들의 레벨도 껑충 뛰기 때문이지, 미스릴 클래스가 좆밥이라서 그런 건 아니다.
‘습격을 가하는 게 목적이면 〈임모르탈리스〉 멤버가 둘 이상은 왔었어야지.’
시다바리들의 과잉 충성이 낳은 독단인가?
놈들이 그렇게 멍청할까? 아닐 것 같은데.
애1미. 암만 생각해 봐도 좆도 모르겠군.
‘그러면 물어보면 그만이지.’
나는 바닥을 쳐다봤다. 오딘의 눈이 은폐술식을 파훼했다.
소리도 없이 지중(地中)에서 헤엄치던 흑마법사 새끼가 저 미이라들을 죽은 척 시키고 튀고 있었다.
“오아아아아아아아시스으으으으!!”
오아시스 수맥을 쇠막대로 관통시키듯 투창했다. 옆에 있던 맥켄지가 흠칫 놀랐다.
─쿠슉!!
창은 모래바닥을 뚫고 깊숙이 박혔다. 파르르…! 꼭다리만 남을 만큼 깊게 박힌 창끝이 떨리다가 모래가 치솟았다.
《크허아아악!!》
흑마법사 새끼가 되서 아픈 것도 못 참은 병신이 바로 대굴빡과 몸을 빼꼼 내밀었다.
“어 시발.”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기척을 느끼지 못했을 만큼 개쩌는 은신이었기에 감으로 몸통을 노렸는데, 생각보다 체구가 좀 작아서 심장을 깔쌈하게 관통해버린 것이다.
‘시발, 저건 뒤지겄네.’
문제는 위에 있던 붕대 흑마법사도 턱주가리가 터졌으며, 맥켄지가 족친 놈도 성대가 박살났다.
주문을 외우게 둘 수는 없었으니까 어쩔 수 없나. 저 새낀 포기하고 나머지 둘한테 글을 써서 자백하게 시켜야겠다.
《크, 크흐흐. 흐크크크…. 내 은신을 간파해? 대단한 괴물 나셨군.》
《뭘 쪼개 씹새야. 정보 탐사가 목적이었냐? 근데 그런 것 치곤 제압한 놈들도 버림패로 쓸 실력은 아니었는데.》
《클클……. 평가가 좋군. 저 놈들도 기뻐하겠어.》
이 새끼 뭔데 이렇게 으스대? 나는 인상을 썼다.
저 심장 빵구는 치명상이다. 설마 리치도 아닐 텐데.
뇌에 좆박은 새끼라 뒤지는 것도 안 무서운 건가? 어쩐지 놓쳐선 안 될 위화감을 느끼던 나는 미이라의 시체다운 악취에 콧잔등을 찡그리다가, 그 문제를 눈치를 깠다.
《……너 이 새끼, 미이라인데 왜 피랑 내장을 안 뺐냐.》
《눈치챘나? 하지만 이미 늦었다.》
─홱! 이죽대는 병신을 무시하고 뒤를 돌아봤다.
그 벌레 새끼들의 동족이 아니라면 눈치채지도 못할 만큼 미세한 마나! 그게 뒤져나간 미이라들의 핏물에 가득했다.
《이 시발! 조디버그의 진액!》
《이 주변을 빙빙 돌다가 왔지. 거물이 걸리더군.》
맥켄지는 일이 돌아가는 꼬라지를 눈치챈 듯 혀를 차면서 그 땅굴 파는 새끼의 머리통을 후려갈겼다.
한 손으로 내가 꽂아둔 창을 뽑으며 검으로 머리를 치자, 그 새끼는 갈비뼈 안쪽으로 대가리가 수납되면서 즉사했다. 어차피 뒤질 새끼니까 놓칠 위험을 생각해서 확인사살을 한 것이었다.
우르르르르르─!!
“어, 어어?! 지, 지진이다──!!”
“시발!! 다들 후퇴!! 보스몹 옵니다! 템포 따라오세요!!”
내가 입을 털 것도 없었다. 도시의 바닥이 흔들거리자 딱 봐도 뭔가 흉악한 것이 올라오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가 알았다!
“아니 즈기요! 튀지만 말고 레이드 포지션 갖춰요 좀!!”
“레이드가 뭔데! 사막에서 지진이 나면 건물 위로──”
“이거 몬스터라고요!! 댁들이 잡으려던 대왕 벌레!!”
“뭐라고?! 이게?!”
에르제의 부하인 듯한 아재는 요란법석을 떨었다. 우리는 미치광이처럼 팬티 속 부랄을 떨어대며 흩어졌다.
─휙. 맥켄지가 어이 없다는 듯한 눈깔로 나한테 창을 던져줬다. 너 눈을 왜 그렇게 떠 씹새야. 형 나 싫어하죠?
아무튼 내 조언을 들은 에르제 일행은 당황하다가 진형을 갖췄다. 에르제가 외쳤다.
“저, 전투 준비!!”
콰과과과과──!!
《Kyuyyyyyyyyyyyyyyyyy─!!!》
모래사장이 폭발하듯 치솟으며 쓰나미처럼 넘쳐났다.
갑각 사이에서 모래가 줄줄 쏟아졌다. 튀어나온 몬스터는 전갈과 모래지옥 벌레의 혼종 같은 벌레였다. 오늘 봤던 그 새끼 조디버그랑 거의 똑같은 생김새다.
근데 따님들에 비해서 뻠삥을 쫌 많이 하셨네.
“어맛 시발 존나 커!”
나는 내 쥬지를 처음 본 티르시처럼 비명을 질렀다.
내가 밟고 있는 게 모래가 아니라 프로틴이었나. 몸 길이만 보면 내가 싸운 적들 중에서 랭킹 1위를 다툴 것이다.
엎드린 체형이라서 체고는 낮았는데, 예리한 독침이 붙은 꼬리 부분만 봐도 작은 건물 정도의 크기였다.
《Kyuyyyyyyyyyyyyy──!!!》
쿠과과과과과─!!
건물로 가로막힌 유령도시의 사막에 모래먼지를 빵야방야 일으켜가며, 한 마리의 꼬마 함선이 쇄도해 왔다!
저 육중한 갑각을 봐라! 벌레가 마치 항공모함 같구나!
나는 생물형 기동병기의 돌격에 경악하며 외쳤다.
《벌레 마망!! 우린 니 애새끼가 아니에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