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510화 (510/1,009)

“심문은 하지 않는 것이냐?”

건물로 들어가서 잘 준비를 하기 전, 생포한 흑마법사를 더 단단히 묶어두는 내게 베로니카가 말했다.

“안 돼. 영혼을 추출하면 뒤지는 주박이 걸려 있더라.”

영혼에 걸어둔 데다가 술식의 수준도 높아서 싸우는 중엔 해석할 수 없었는데, 이 새끼 몸에서 느껴지는 어둠과 음의 마나에서는 자기 몸을 언데드로 바꾸는 술식 말고도 입을 무겁게 하는 저주도 걸려 있었다.

“아마 〈임모르탈리스〉가 건 거겠지. 이 새끼의 실력보다 더 수준이 높아.”

다시 말해서, 나는 당첨을 뽑은 것이다.

‘거의 틀림없이 노려지고 있군. 〈임모르탈리스〉나 그 시다바리 조직에게.’

좋다고 하면 좋고 나쁘다고 하면 나쁜 일이었다.

이 새끼를 남에게 넘기거나 죽게 만들어도 다른 새끼들이 날 노릴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 아닌가. 귀찮고 위험하지만 더 많은 정보원을 생포할 기회가 주어졌다는 뜻이었다.

다행히 흑마법사 놈들이 정체를 숨기고서 접근해도 오딘의 눈으로 가만히 쳐다보면 대충 알 수 있다.

마법으로 어둠과 음의 마나를 잘 숨길 수는 있겠지만, 그 마나를 감추는 술식까지 감출 수는 없을 것이니까.

“아무튼 술식은 알아냈는데, 해주는 불가능하겠더라.”

“확실히 그건 흑마법이나 신성마법이 되겠군. 주인님이 쓸 수 있는 마법은 아니겠어.”

“넹 맞워용.”

현대 마법처럼 분석하고 이해해봤자 좆도 무쓸모다.

라면을 끓이는 법을 알았다고 다 끓은 라면을 봉지 안에 있던 그 모양 그대로 되돌리는 건 불가능하지 않은가. 내가 이 흑마법의 저주를 사용할 것도 아니고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불침번을 서면서 딥 슬립 모드의 흑마법사 새끼를 봐 가며 하룻밤을 샜으며, 다음날에는 에르제 일행의 낙타를 빌려서 사티스 교단이 있는 영지에 도착했다.

지명으로는 로도토스라고 한다.

영주부터가 독실한 사티스 신도라는데…… 저번에 나한테 미스릴을 받아간 귀족들 중에 섞여 있던 사람일 걸?

“……이 놈이 흑마법사라고요?”

“못 믿으시겠으면 영주님을 불러주십쇼. 제 이름을 대면 알 겁니다.”

덕분에 수상한 새끼를 데리고 들어가는데도 어려워질 일은 없었다.

인맥 만만세다. 검문소를 사복으로 통과하는 연대장이 된 기분이야.

“흐음.”

똑같이 인맥 빨로 맨몸으로 통과한 베로니카는, 마차에서 내려서 도시를 굽어보다가 중얼거렸다.

“어쩐지 나르메르-나일의 도시는 다 비슷해 보이는구나. 한가운데에 서 있는 신상을 빼면.”

“오아시스를 중심으로 세웠고, 건물도 거의 비슷한 재료를 쓰니까요. 내륙지방은 대개 양식도 구조도 비슷합니다.”

베임은 짐을 정리하면서─독샘 주머니의 인계를 도와주고 있었다─ 설명했다.

“저 신상은 수렵신 님의 신상이군요. 일반인이 들어갈 수 있는 구역이기에 직접 구경하실 수는 있습니다만, 워낙 크다 보니 멀리서 보는 편이 더 장엄하고 아름답습니다.”

“그런가. 아쉬운 일이야.”

관광도 취미 중의 하나인 베로니카는 말로는 투덜거렸지만 눈은 흥미로운 듯 반짝이고 있었다.

하긴, 나랑 만나기 전엔 세계를 돌아다녔어도 차마 인간의 도시 안까지는 못 들어왔을 것 아닌가.

아다 알레르기를 견디고서라도 구경할 맛이 나겠지. 여행의 참맛을 알아가는 사춘기 소녀 같은 모습이었다.

“우리는 이만 여기서 작별이네. 왠지 섭섭하다.”

자기 일행의 낙타를 마차에서 풀며 에르제가 말했다.

“우리는 여기서 보급하고 쉬었다가 피라미드 근처에 세운 야영지로 돌아가려고.”

“그렇군요. 저도 아쉽습니다만 어쩔 수 없겠습니다.”

나는 냅다 고개를 끄덕였다.

우연한 만남이었지만 이 공주님이랑 오래 붙어있는 건 딱히 좋을 게 없다. 아마 하룻밤 밥 한 끼 같이 하면서 그럭저럭 좋은 인상을 주긴 했을 것이니, 얼른 헤어지도록 하자.

“그래. 먼 타지에서 고향 사람을 만나서 기뻤어.”

“흐흐. 사실 저희 가족 중에 진짜 브리타니아 인이라고는 다나 한 사람밖에 없습니다만.”

“뭐 어때! 우리 나라에서 살고 있다면 태어난 곳이 어디건 같은 브리타니아 인이지!”

그거 참 배포가 큰 말씀. 에르제는 피식 웃고서는 쪽지를 내밀었다.

“이건 선물. 나중에 날 보러 올 때는 초대장 대용으로도 쓸 수 있을 거야. 어디로 찾아오건 간에.”

“네? 아, 감사합니다. 제가 직접 하기 곤란한 일이 생기면 의뢰하러 가죠. 그런데 어느 모험가 길드십니까?”

“길피 길드야.”

─홱! 낙타에 올라탄 그녀는 손을 저으며 말했다.

“그리고 혹시 우리 남편 때문에 기분이 상했으면 미안해! 내가 억지로 끌고 다닌 탓에 날이 선 상태니까, 원망할 거면 날 원망해 줘~! 나중에 사과 받으러 찾아와도 좋고!”

“네. 조심해서 들어가십쇼.”

나는 그렇게 일행을 배웅한 뒤, 마차를 여관의 대면서 그 쪽지를 읽었다.

그리고 그만 나도 모르게 흠칫했다.

─너무 그렇게 윗사람 모시듯 대하면 당연히 눈치 채지.

─그래도 모르는 척 해 줘서 고마워! 이게 있으면 어디로 오건 ‘날’ 만날 수 있을 거야!

유려하기 짝이 없는 필기체는 필적을 숨기려는 거였을까. 고맙다는 말 옆에 그려진 강아지 그림이 큐트하다.

제 1왕녀나 플래티넘 모험가와 직빵으로 통하는 프리패스 알현권이라. 존나 쓸모 많겠네. 영광스럽기도 하지.

그렇지만 나는 티르시랑 프리모르에게 신분을 숨기려 들었다가 들켰을 때가 떠올라서, 그만 두 눈두덩이를 가리며 탄식하고 말았다.

“그래서 눈치 빠른 귀족들은 싫다니까.”

이 세상 귀족들은 열에 아홉은 눈치가 귀신인 것 같다.

아니면 내가 거짓말을 못하나?

쓰읍. 그럴 리는 없는데.

***

피곤한 기분을 달랜 나는 바로 사티스 교단의 본 교단으로 직행했다. 아직 대낮이었기 때문이다.

일반인들이 진입할 수 있는 구역까지는 일행과 함께 왔다. 베로니카가 관심을 보이는데 내버려 두고 가는 건 남편으로서 못할 짓이기도 했고, 아무래도 이쪽이 덜 위험할 것 아닌가.

“오오.”

성당 중앙에 우뚝 선 신상은 확실히 임팩트가 있었다.

활의 시위를 당기는 여신의 모습을 세밀하게 조각한 신상이었다.

특이한 점은 활 시위가 겨누는 게 성당 쪽이라는 점인데, 그 이상한 각도를 눈 감아주지 않아도 충분히 멋졌다.

미국의 상징인 자유의 여신상 급은 아니어도 상당히 컸다. 영세 아파트 정도는 되지 않을까.

밑에서 보니까 가슴 때문에 사티스의 얼굴이 안 보일 정도였으니, 남자라면 그 장대한 사이즈에 감이 올 것이었다.

“……근데 칠이 벗겨지기는 커녕 녹도 안 슬었네? 어떻게 만든 거지?”

“응. 그것도 그런데, 저 활시위 좀 봐. 크기를 감안하면 저 활시위도 꽤 크겠지만 어떻게 안 부숴졌을까?”

다나랑 프랑은 믿겨지지 않는다는 듯 감상했다. 이번에도 베임에게 눈이 가자 그는 즐겁게 말했다.

“수렵신 님의 가호가 내린 겁니다. 실제로 보존기술이 뛰어나지 않았던 신대에 만들었다고 전해지는데, 수렵신께서 저 신상을 마음에 들어 하셔서 축복을 내렸다고 합니다.”

“저, 정말요?”

“하하. 그거야 모르죠. 하지만 덕분에 우상숭배다 뭐다 시끄럽게 구는 사람들도 있지만 허물지는 않고 있다더랍니다.”

“그렇구나…….”

프랑은 신상을 올려다보다가, 다른 사람들이 꽃을 올리며 기도하는 것을 따라했다. 꽃 가격은 약간 바가지였지만 저기 담긴 여분의 금액은 신의 축복이 내리는 가챠를 돌리는 가격이라고 치자.

“다들 여기 있어. 나는 잠깐 이 새끼를 인도해 주고, 따로 볼 일도 보고 올게.”

나는 이틀째 기절 중인 흑마법사를 가리키며 말했다.

존나 눈에 너무 띄어서 관광하는데 방해가 될 것도 같고, 라리루라한테 말했듯 나는 원체 관광에 관심이 없어서.

그렇게 난 일반 관광객이나 신도는 들어가지 못하는 성당 안쪽으로 걸어갔다.

《멈춰라!》

《우리는 문을 지키고 있는 성기사다! 이름을 밝혀라!》

《노르드.》

《……어디로 가는 길이오?》

《본 교단.》

《신분증은 갖고 있겠지?》

《통행증이 없다면 중앙성당엔 갈 수 없다!》

나는 파티 때 영주에게 뜯어냈던 추천장을 던져주고 바로 통과를 허락받았다.

“하이패스 굿.”

이 동네에서는 진짜 인맥 빨을 톡톡히 보는군.

갑자기 차기 여왕님의 친필 사인(댕댕이 낙서)의 무게가 한 10배 정도로 늘어난 듯한 느낌인데 그래.

《소식은 들었습니다. 이리로.》

파티에서 로도토스의 영주한테 부탁한대로 이쪽에도 따로 얘기가 전해져 있었던 모양이다. 성기사가 얘기를 전해받자 곧바로 추기경이라는 사람이 튀어나왔다.

《사티스 교단은 노르드 님의 방문을 환대합니다. 영웅의 앞길에 축복이 있길.》

《《영웅의 앞길에 축복이 있길!!》》

머리가 휑한 그는 일반적이지 않으면서도 어딘가 성스러운 사제복을 입고 고개를 숙였다. 그가 대동한 사제들이 2줄로 서서 그를 따라하듯 허리를 숙였다.

인간 레드 카펫인가. 부담스럽네.

《환대 감사합니다. 여기 이 놈은 오는 길에 잡은 흑마법사입니다만, 심문을 맡겨도 되겠습니까?》

《……호오. 심문이라면, 어떤?》

추기경은 바로 눈을 빛냈다.

나는 그들이 준비했다는 환영식을 사양하고, 보는 사람의 눈이 없는 자리로 이동했다.

《……〈임모르탈리스〉의 끄나풀?》

내 설명이 이어질수록 그의 눈빛에는 경멸이 깃들었다.

《이해했습니다. 이 이단의 종자에게서 〈임모르탈리스〉의 정보를 캐내면 되는 거군요?》

어허. 기분은 이해하지만 저를 쳐다볼 때까지 눈을 그렇게 만들진 말아줬음 좋겠습니다?

거 눈빛만 갖고 사람 하나 잡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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