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513화 (513/1,009)

일을 마친 나는 중앙성당을 나왔다.

《앞서 말씀을 나눈대로, 알리씨크에 오프툼과 사냥개를 몇 명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흑마법사에게 캐낸 정보도요.》

《감사합니다.》

교주와 작별하고 렛츠 이동.

가는 길에 성수만 몇 병 꽁으로 챙겼다. 비아그라, 중요.

“일은 다 보고 왔느냐?”

성당 밖으로 나오자 베로니카가 그새 뭔가를 양 볼 가득히 우물거리면서 말했다. 부푼 뺨은 몽블랑 같이 부드러울 것만 같아서 그녀의 지적이고 도도한 얼굴에 의외로 잘 어울렸다.

“……사막의 요리도 생각보다 맛있더구나. 먹겠느냐?”

쑥쓰러운지 괜히 변명하듯 말하는 베로니카.

나는 픽 웃으면서 그녀가 내민 간식을 받아먹었다. 아직은 확정된 것도 없었기에 해주에 대해 말하는 건 시기상조겠지.

참깨에 꿀이 섞인 빵 단맛은 잠깐의 고민을 잊을 만큼 달콤했다.

“맛있네. 건포도만 아니었으면 100점이겠어.”

“건포도도 나름 괜찮다고 본다만…….”

“넌 과일 좋아하니까. 근데 우리 여신님의 입맛에 안 맞는 요리는 뭐가 있나 몰라?”

“……………….”

“이걸 턱 짚고 고민하네.”

빵 터진 나는 내가 웃자 부루퉁해진 베로니카를 보며 한 번 더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교단에서 미술 작품이나 석상을 보며 돌아다니던 그녀들을 찾았다.

“앗, 노르.”

프랑은 날 보자마자 방실거리며 웃었다.

“수고했어. 왠지 미안하네. 노르는 뭔가 열심히 하는데 난 순 관광만 하구.”

“그런 걸로 신경 쓰지 마. 우리 신부님은 평소처럼 착하고 귀엽기만 하면 그만이지.”

“싫~ 어. 나도 노르가 의지할 수 있는 아내가 될 거다, 뭐.”

“뭐? 푸흐흐흐.”

장난스럽게 혀를 빼무는 프랑이 너무 의외여서 그만 웃고 마는 나였다. 아내님들이랑 돌아가면서 얘기만 나눠도 피곤한 게 전부 다 풀리네. 이게 인생이죠 씌바.

프랑은 내 얼굴을 보고 헤벌쭉 웃다가, 문득 뭔가 떠오른 듯 말했다.

“앗! 그나저나 노르. 나 있지, 여기 오고 나서 영감이 조금 떠오른 것 같아.”

“어? 진짜?”

“응. 저기 수렵신 님의 여신상 있지? 그걸 보니까 그게… 음…… 뭔가 만들고 싶어졌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래.”

말로 설명하기 힘든 필링을 표현하듯 프랑은 손을 조물딱 거리면서 고개를 모로 꼬았따.

프랑도 여신의 축복이 내렸다는 신상을 보고 드디어 감을 잡기 시작한 걸까? 좋은 일이라는 생각에 내가 얼굴을 밝게 하자, 프랑은 달려와서는 내게 손짓했다.

“그래서,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뭔데?”

내가 쪼그리며 귀를 기울이자 프랑은 그 애 취급을 하는 듯한 대우에 약간 입술을 삐죽대고서 속닥거렸다.

“그게…… 마나를……”

─소근소근.

“……엥?”

순식간에 뇌에 입력된 속삭임에 나는 몇 번 내용을 곱씹으면서 반추하다가, 입을 헤─ 소리가 나게 벌렸다.

“가능하지 않을까? 어, 그러니까 골렘 자체가 애초에 그런 식이니까 연습만 조금 하면……”

“진짜? 진짜 할 수 있을까?”

프랑은 얼굴이 확 밝아졌다.

전혀 생각 못한 발상이라 어안이 벙벙하군.

“으, 응. 보통 경우랑 다르게 재료도 필요 없을 것 같아. 와, 근데 나는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우리 프랑 천재네?”

“헤헤. 노르한테 배운 거야. 발상의 전환이랑 상상력은 다 노르 덕분인걸?”

나도 모르게 나온 칭찬에 프랑은 내 목을 끌어안았다.

─말랑.

음. 이 압도적인 모성. 틀림없는 사랑이다.

“프랑이 뭔가 감을 잡았다고?”

날 보고 걸어오던 다나는 얘기를 들었는지 한숨을 쉬었다. 나는 프랑을 안아들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누나는 왜? 결혼식 때 이후로 진척이 없어서?”

“그래, 새끼야. 뭐 내가 감을 잡을 계기가 있어야지. 재능? 인가 뭔가가 늘었다는데 말이 쉽지, 존나 내 재능이 늘어난 걸 어떻게 물리적으로 느끼냐?”

다나는 갑갑한지 머리카락을 검지에 꼬아댔다.

저 이름을 잃은 여신이 남긴 마지막 선물이 크게 실감으로 와닿지 않는 것 때문일까.

표정을 보면 강해질 기회를 놓치는 게 아까워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소멸을 택한 여신에게 미안해서 저러는 모양이다. 하여튼 참 착한 누나여.

“감 잡을 일이 있길 바라야지. 되도록 도와줄게.”

뭐 대충 3성 다나 베르베이아에게 6성, 각성, 신화 각성의 업데이트 패치가 깔린 거라고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당장은 힐탱 포지션에밖에 못 박아두지만, 승급을 하면서 각성을 계속하면 언젠가 SSR 다나 베르베이아(수영복) 같은 게 될지도 모를 일 아니겠는가.

“오? 진짜지? 누나 존나 기대한다? 니가 그렇게 얘기하면 열에 셋은 잘 풀리더라.”

“열에 셋은 비율이 너무 씹창이잖슴. 아닌가? 내 고향동네 스포츠에서 타율 3할이면 개씹쌉 유능한 선순데.”

“너희 고향엔 그런 문화가 있나 보군요. 학사 졸업시험도 오답률 3할이면 나가리인데 축복받은 대가리시네. 꺄앗! 열 문제 중에 3개나 맞추다니 우리 남편 존나 천재얏!”

“기적의 수학자 년이 기어이 연구 예산을 계산하다가 돌아버린 것인가? 이과의 자라다 만 발전도상 껌딱지 갬성으로 감히 예체능의 피와 땀을 평가하지 마시죠.”

“씹놈아. 젖탱이랑 두 자리 덧셈뺄셈이랑 무슨 상관이냐. 뒤진다?”

“내 미드 125 이상. 누나 미드 75 미만. 총 200의 찌찌둘레로 완벽한 수학식을 짜야 해.”

“뭐지? 아이큐가 50이 되고 싶음을 암시?”

아무튼 프랑이 뭔가 레벨업인가 2차 전직인가의 감을 잡기 시작한 듯 하다.

이 얼마나 좋은 날이란 말인가. 베로니카의 저주를 해주할 단서도 찾았으니, 오늘 하루는 아주 운수대통이군.

사티스 여신이 진짜로 축복이라도 한 웅큼 던져줬나? 존나 그런 거면 헌금 트럭 단위로 박치기 박을 자신 있는데.

“헌금을 하고 축복을요? 하하, 그럴지도 모를 일이죠.”

아내들이랑 돌아가면서 베임에게 그런 얘기를 넌지시 꺼냈더니만 그는 껄껄대며 말했다.

“수렵신 사티스 님께서는 죽음의 신들을 뼛속 깊이 혐오했다고 하니, 그들의 수하나 다름없는 흑마법사를 해치운 노르드 님은 가만히 계셔도 그만한 가호가 내리지 않겠습니까?”

“……그, 그럴까요? 그러면 좋겠네요.”

……오딘도 죽음의 신 아닌가? 쓰벌. 갑자기 쎄 해지네.

베임은 그냥 립 서비스를 날려준 거겠지만 나는 여신상을 슬쩍 올려봤다.

그 마녀모자 짝눈 여신이랑 저는 하등의 관계도 없습니다, 수렵신 님. 헌금이 좋으신 거면 기도로 연락 주십쇼.

저희집 여신님의 각성에 도움을 주시면 살짜쿵 더 투자해 드릴 용의 있음.

***

알리씨크로 돌아가기 전, 우리는 로도토스의 관광을 실컷 즐기고 초호화 호텔에 체크인했다.

흑마법사의 위험을 고려했기에 경계를 끌어올리긴 했지만, 설마 이 로도토스에 쳐들어올 병신 빡대갈통은 없을 거라는 생각에 조금 여행의 재미를 즐긴 것이었다.

“여기 있는 술 전부 주세요.”

“예? 아, 아! 옙!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당연하지만 이번에도 인맥 빨로 체크인을 한 곳이었기에, 거침없이 술과 안주와 식사를 주문했다.

“식당에 나가는 것보다는 방에서 먹는 게 낫겠지?”

“안전 상 그러는 게 낫겠군. 조금 아쉽긴 하지만……”

“여기서 먹는 것도 충분히 맛날 걸. 귀찮기도 하고.”

비싼 술을 잔뜩 주문한 다나는 베로니카를 달래면서 기분 좋게 웃었다.

그러던 다나가 갑자기 말했다.

“그러고 보면, 베로니카 니가 술 마시는 건 별로 못 본 것 같다?”

“응? 아, 그다지 즐기는 편은 아니니라.”

듣고 보면 그렇긴 하다. 예전에 바이콘 일족의 정원섬에서 잠깐 마시는 걸 본 정도로, 과음한 걸 본 적은 없네.

다나는 베로니카의 대답에 술고래답게 웃으며 말했다.

“마침 잘 됐네. 비싼 술도 많으니까 너도 마셔 봐. 싫다면 강요하지는 않겠지만, 술도 맛 들리면 좋은 취미다?”

“으, 으음. 그래 볼까…?”

“과음하지 않도록만 마셔. 비싼 술은 술을 빚는 재료부터 마나가 깃든 것들도 많아. 그만큼 술 기운도 세지고.”

내 눈치를 보면서 묻길래 그렇게 대답해 줬다.

술 기운도 간의 문제이므로, 취기는 물론이고 간에 생기는 병도 마법으로 해결할 수는 있다고 한다.

물론 치료자와 치료를 받는 사람 모두에게 그만한 강함이 요구되며 한계도 있지만, 우리 아내들이라면 괜찮겠지.

티르시는 가만히 있다가 중얼거렸다.

“……그것보다 걱정해야 하는 건 프랑 씨 아닌가요? 저번에 지저의 탑에 가기 전에 한 번 술자리를 가졌을 때 맥주 몇 잔 정도로 테이블에 엎어지셨던 거롤 기억하는데요.”

“윽. 그, 그래도 요즘은 막 기절하고 그러진 않거든요?”

하프 드워프면서 매번 도수가 센 술을 마시다 뻗어버리는 프랑의 항변에, 우리는 웃음보를 터트렸다.

다른 방을 각자 잡은 오드리와 베임도 같이 불렀다.

하지만 오드리는 몇 잔 마시더니 기절해서 도로 갖다놔야 했으며, 베임은 마차를 운전하는데 문제가 생길 거라며 사양했다. 아주 둘이 극과 극이야, 극과 극.

술판은 해가 저물기 조금 전에 시작해서 기온이 으슬으슬 해질 때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베로니카는 생각보다 술 버릇이 고약했다.

“아하하하!! 아하하하하핫!! 후후후, 헤후후후후후…! 어라? 주인님, 술잔이 비었지 않나. 한 잔 더 마시도록.”

“베로니카. 나 술잔 내려놓은지 5초도 안 지났어.”

“그런가? 그런 것보다 좀 덥구나. 사막은 성역과는 다르게 안주도 풍경도 삭막한 게 애석하군. 좋아, 벗으마.”

“빤스 벗지 마. 손가락에 걸고 빙빙 돌리지 마.”

“어라? 주인님, 술잔이 비었지 않나. 한 잔 더 마시도록.”

“혼자 회귀물 찍지 마. 빤스 든 손으로 공손하게 술 따르지 마.”

그렇게 베로니카는 안주의 70%를 대군을 상대로 돌진하는 항우처럼 혼자서 평정하고서 뒤로 벌러덩 쓰러졌다.

설마 베로니카한테 옷을 벗는 술버릇이 있었다니. 밖에서 술 마시는 일이 없어서 다행이라 해야 할까.

그래도 남들 있는 곳에선 취하게 두면 안 되겠군.

“흐냥.”

─풀썩.

나르메르-나일 전통 맥주의 펀치력에 기어이 다나마저도 픽 쓰러졌을 무렵, 이 전쟁터 같은 술판에 일어나 있는 것은 나 한 사람 뿐이었다.

“애~ 미.”

사막나라 술 존나 쎄네.

프랑과 라리루라는 레이디 킬러 종류의 칵테일을 얕봤다가 꿈나라로 직행한지 오래였다.

티르시도 눈을 잠깐 뗀 사이에 기절한 상태다. 이거 전멸각 아니냐? 우리 파티 개좆밥이네.

내 주변 사람들은 왜 이렇게 술에 그렇게 약한 걸까. 혹시 알코올 절제력이 후달리나.

“너희는 술이 다냐…? 나는 고생을 그렇게 했는데 여전히 쓰기만 하다….”

시발.

결국 술판의 뒷처리는 내 일이었다. 중화식 대협처럼 먹고 남은 음식을 대충 흩뿌려놓고 가 버릴까 했지만, 도저히 내 안의 도덕윤리가 용납하지 않았기에 혼자 정리를 했다.

─달그락, 달그락.

─꼴꼴꼴꼴.

침대가 가득한 빅 사이즈 방에다 아내들을 눕혀두고 대충 정리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방에서 베로니카가 걸어나왔다.

“베로니카?”

“……달그락, 달그락… 시끄러워….”

벌써 술이 깼나 해서 놀란 눈으로 쳐다보자 그녀는 몽유병 환자처럼 비척거리다가 가방을 뒤지더니, 갑자기 룬 스톤을 꺼내갖고는 좀비처럼 호텔 곳곳에 깔아댔다.

“흐흐. 갑자기 뭐함? 술이 덜 깬──”

스마트폰이 있었으면 촬영하고 싶을 만큼 웃긴 술버릇에 막 입을 열던 나는, 갑자기 목소리가 나오지 않자 깜짝 놀랐다.

혹시 내가 뭔가 당하기라도 한 줄 알았는데, 안주 그릇이 부딪히는 소리도 안 났다. 소음을 지우는 마법이었다.

…끄덕.

뭔가 해내기라도 한 듯 반쯤 감긴 눈으로 흡족스럽게 끄덕거리던 베로니카는 그대로 거실 소파에 누워버렸다.

‘야, 베로니카! 야! 이래놓고 자지 마!’

당황한 나는 그녀를 흔들고 깨워봤으나 반응도 없었다.

룬 스톤을 치워봤지만 이미 발동한 마법은 꺼지지 않았다. 원래 이걸 치우면 꺼지는 거 아니었나?

‘시발.’

입 밖으로 말을 내보냈는데 소리가 안 들리니 당황스럽기 짝이 없다. 방음 결계를 이런 식으로 쓰다니.

골치가 아파진 나는 일단 베로니카가 감기 들까 무서워서 도로 침대 방에 데려가 눕혔다.

아무튼 코앞이 간신히 보일만큼 어둑어둑한데 소리도 전혀 안 나니까 암실에서 자는 것처럼 푹 잘 수 있긴 하겠다.

대신 내일 베임이 깨우러 올 때 깰 수 있을지가 문제인데. 나는 거기까지 생각하다가 골치가 아파서 포기했다.

대회까지 시간은 있으니 좀 늦어도 어떻게든 되겠지.

이제 그 대회에 꼬여들 날파리를 나랑 사티스 교단의 흑마법사 전문 사냥꾼들로 몰래몰래 수색하면, 내가 이 나라에서 할 수 있는 노력은 대부분 끝난다.

어르신이 말한 후보들은 거의 다 맥을 터 놨다.

이제는 중간유통을 맡긴 어르신이 또 하청을 부려서 어떻게 사업의 크기를 부풀려가겠지.

‘진인사 대천명이라던가.’

사람이 할 만큼 노력하고 나서는 천명에 맡길 뿐.

할 수 있는 노력은 다 했다.

미끼에 낚일 좆밥 시다바리 흑마법사들에게 좋은 정보가 있기를── 그리고 사티스 여신이 내가 한 제안을 받아주고 진짜로 내 꿈에 나오든, 계시를 내려주든 해 주기를 빌 뿐이다.

‘후우…… 응?’

그렇게 내 침대를 찾아서 누우려고 했을 때였다.

우리 술고래 누나가 이불도 걷어내고 자는 중이었다.

잠옷도 안 입고, 여행지의 술자리답게 가벼운 옷차림으로 마시다가 잠들어서 흐트러진 다나는 상당히 야릇했다. 술에 취한 모습은 평소와는 다른 꼴림이 있었다.

무엇보다 본인의 의사가 전혀 없다는 점과, 멍한 표정으로 잠들어 있는 무방비한 얼굴이 술에 취한 나를 충동질했다.

‘……그러고 보면, 전에 다나한테 자는 걸 덮쳐도 된다고 허락을 받지 않았나?’

사전에 허가를 받아두기로 했다는 사실은 까맣게 잊고, 딱 나한테 형편이 좋은 생각만 머리에 떠올랐다.

시발, 우리 마누라 존나 대책없이 꼴려대네. 시건방지게.

‘합법 수면간은 못 참지.’

─퐁! 나는 매지컬 비아그라의 병을 땄다.

좆에 장애가 생겼다고 내 성생활에 지장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애송이.

나는 죽은 시체를 깨우는 그림자의 군주처럼 쥬지드라에다 비아그라를 부었다.

‘──일어나라.’

발기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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