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선 1일차가 끝나고, 나는 영주 저택을 방문했다.
‘1일차 치고는 볼 거리가 있었지.’
특히 마지막 타자로 나온 엘 뭐시기 공방인가 하는 곳은 꽤 감탄스러웠다.
내가 뿌린 인공 미스릴을 얻지 못한 듯 한 이들이었는데도 1차전을 이겨냈기 때문이다. 대신에 골렘이 반파됐지만, 다음 대회까지 3일의 시간이 있기에 어떻게 고쳐넣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인공 미스릴 홍보는 대대적으로 됐고.’
이번 경연대회의 룰에는 한 가지 의도적으로 뚫어둔 틈이 있었다.
그건 바로, ‘인공적으로 만든 소재라면 기술의 일환으로 쳐 준다’는 점이다.
무슨 뜻이냐고? 쉽게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천연 미스릴? 돈을 쳐발라야 구할 수 있는 재료죠? 골렘 제작기술을 겨루는 대회의 취지에 안 맞죠? 기각이죠?
─근데 사람이 직접 만든 미스릴은 됨. 꼬우신가요? 그럼 니들도 인공 미스릴 만들던가. 혹시… 기술이 후달리시나?
어떤가. 알기 쉽지 않은가?
그래서 이번 본선은 사실 어떻게 굴러가든 우리 듀나미스 공방의 기술을 대대적으로 홍보 때릴 수 있는 자리였다.
물론 나와 클라라가 총력을 기울여서 만든 링링이 6호가 저 급조 미스릴 도금 골렘들에게 질 리도 없었고 말이다.
우리는 중간에 링링이 5호라는 시범체제를 거쳐서 6호에 도달했다, 이거야. 기술의 격차가 얼만데 지면 억울하지.
아무튼 그렇게 1일차 경쟁을 본 결과.
우리가 이 대회에 패배할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알리씨크의 영주가 시다나브에게 홀리기 전에 후원을 하던 모 길드도 라리루라와 비교할 급은 안 되더라.
“크흠. 안녕하십니까.”
“앗, 네! 안녕하세요! 시다나브에요! 잘 부탁드려요!”
그렇게 해서, 띠껍게 구는 영주 아들 톨리오를 피해서 첫 만남을 가진 하토르 교단의 고위 여사제는…… 뭐라고 해야 할까. 진짜 재능 하나로 지금 직위를 찍은 듯한 사람이었다.
다시 한 번 쉽게 말을 치환하자면, 사람이 표리일체로밖엔 보이지 않았다는 의미다.
‘다른 종교인들은 많으나 적으나 그 끕에 어울리는 노련한 태도가 있었는데.’
미스릴 클래스인 시냐티오나 내가 봤던 종교인들은 전부 다 전투력이나 정치력에서 한 끗발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나와 같은 테이블에 앉아서 헤벌쭉 웃는 여사제는 암만 뜯어봐도 속 깊은 사람 같지가 않았기에, 나로서는 좀 놀랍다 못해 황당하기까지 하다.
단지 그건 어디까지나 이태까지의 기준으로 비교했을 때나 그렇다는 거고, ‘특별함’이라는 점에서는 시다나브도 상당한 인물이었다.
‘……존나 미인이긴 하군.’
나 강북호는 세상에 우리 아내들보다 예쁜 여자는 없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꼴마초다.
하지만 시다나브는 그런 나를 두고도 ‘이 씨발, 님은 인정’ 소리가 절로 나오게 만드는 정도로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우리 아내들도 배우나 비쥬얼로 먹고 사는 아이돌 뺨따굴 왕복으로 후려갈겨도 소속사 사장이 명함부터 내밀 미녀들이지만, 시다나브는 말 그대로 경국지색급의 미녀였던 것이다.
오드리 햅번이나 전설 속의 양귀비처럼, 외모는 기본에다가 어딘가 눈을 사로잡는 귀태가 느껴질 정도였다.
“헤헤. 만나뵙는데 엄청 걸렸네요. 그래서 더 반가운가?”
아, 행동거지는 빼고.
나는 귀티 나는 미모랑 안 맞게 확 깨는 헤픈 미소에 쓴웃음을 지었다.
반쯤 고자 상태라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이만한 미인을 상대로 음욕이 솟지 않는 건 의외의 장점이었다.
“그 점은 죄송합니다. 영주님께서 소식을 전해주셨다면 더 빨리 돌아왔을 텐데, 연락책에서 누락이 있던 모양이라.”
자연스럽게 잘못을 영주와 그 아들내미에게 토스하는 나.
아니, 토스고 지랄이고 그 새끼들 잘못이 맞다.
‘보니까 그 씨팔럼들, 내가 조금이라도 더 늦게 돌아오도록 아예 연락도 안 한 것 같드만.’
영주는 오늘도 퍼질러 자고 있다니까 할 말도 없다.
진짜 헨네시스 부녀나 아르마알스 가문 사람들은 선녀야, 선녀.
“앗! 아아! 아니에요, 그런 뜻이 아니라! 만나뵐 수 있어서 기쁘다는 뜻이었어요!”
시다나브는 손을 저으며 말실수를 한 사람처럼 허둥댔다. 그러자 얇은 로브 안에 착용한 금 장신구들─팔찌며 발찌며 목걸이 등─이 부딪히며 짤랑거렸다.
‘……어딘지 모르게 프랑하고 닮은 것 같기도 하고.’
큰 가슴과 작은 키, 그리고 눈 색 같은 점에서 적지 않은 유사점이 눈에 띄었다.
조금 심약해 보이는 성격도 말이다.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저도 만나뵈서 기쁘군요. 좋지 못한 저주 때문에 영 고생하고 있어서.”
“네. 얘기는 들었어요. 제가 꼭 해주해 드릴게요!”
─불끈! 주먹을 쥔 시다나브는 치료실로 나를 데려갔다.
꽤 직책이 있는 여성일 텐데, 대동한 건 오직 한 사람밖에 없었다. 그 점이 신기해서 걷는 길에 물었다.
“호위는 없으십니까?”
“어, 그……. 옆에 있는 도리안도 무척 든든하답니다?”
약간 당황한 듯 대답하길래 말하기 싫은 화제라고 생각한 내가 이야기의 물꼬를 바꾸려고 하자, 그녀는 멋쩍은 듯 그 잠깐의 침묵을 못 참고 말했다.
“그게, 실은…… 알리씨크에서 불온한 기척을 느낀다고, 제 다른 호위가 말했거든요. 그래서 지금 그걸 찾아다녀 보겠단 얘기를 하고 슥 사라져 버렸어요.”
“……호위가 말입니까?”
“네! 아마 노르드 님도 아실 텐데…… 네페르티티라고 혹시 기억하세요?”
네페르티티?
나는 눈을 깜빡거리다가 즉답했다.
“기억하고 말고요. 잠깐, 설마 그 호위라는 분이……”
“맞아요. 네페르티티에요. 저희 교단의 든든한 전력이죠.”
그렇군.
며칠 동안 내 안에서 듣보였던 하토르 교단에 대해서, 베임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들어뒀다.
‘하토르는 신화에서 흑화했던 전적이 있는 신이고, 그 흑화 상태를 세크메트라고 부른다던가.’
그래서 나도 그 이름을 들었을 때, ‘혹시나’ 하며 그 인상 깊은 하늘색 머리카락의 여인을 떠올리긴 했었다.
이 이세계만큼 사람의 인연이라는 걸 실감하기 쉬운 곳도 없잖은가. 재회를 상상해 보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
실제로는 그녀는 나랑 만나는 것보다 도시 안의 치안이 더 신경쓰인 모양이지만 말이다.
호위 대상을 위해서라도 당연한 판단이다. 미끼를 뿌렸단 소식을 공유해 두는 게 나을까.
‘그나저나, 내가 알기로는 세크메트 길드는 프랑이 이름만 듣고도 바짝 쫄았을 만큼 사납기로 유명한 곳인데…….’
하토르 교단으로서 신도를 불리고, 세크메트 모험가 길드를 발족해서 세상에 뿌리를 뻗는 형식일까?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 신기한 점도 있다.
우선은 왜 멀쩡해 보이는 하토르 교단의 부속 단체인 세크메트 길드가 그렇게 막가파인지다.
‘교단과 길드 사이의 의견 충돌이라면 그나마 낫지. 어쩌면 하토르 교단 자체가 뿌리가 깊을지도 모를 일이고,’
단지 이쪽은 네페르티티를 보면 그럴 가능성은 적었다.
그 ‘예배’라는 것도 여신도들에게 강요하는 건 아니라니까.
그렇기에 가장 신기한 건, 왜 네페르티티는 하필 세크메트 모험가 길드를 골랐느냐는 점이다.
‘〈임모르탈리스〉에게 복수하려면 뇌에 흑마법사 레이더를 깔아주는 사티스 교단이 더 좋지 않나?’
혹시 가족을 잃은 것으로 보이는 그녀를 거두어준 이들이 하트로 교단이었을 수도 있지만 말이다.
“정화가 바로 끝나지는 않을 테구, 며칠 정도는 걸릴 걸로 예상돼요! 쉽게 말하면 오늘은 의식 첫째 날이란 뜻이에요!”
시다나브는 자기 지식을 뽐내듯 손가락을 세웠다. TV 속의 아나운서를 흉내내는 어린애 같았다.
“그러니까 경연대회 도중에 네페르티티랑도 만나뵐 기회가 있을 거에요! 제가 중간에서 어색하지 않게 봐 드릴게요!”
“그거 감사하신 말씀. 그나저나, 브리타니아 어가 무척이나 능숙하십니다?”
이세계에서도 언어의 장벽은 높다.
특히 나르메르-나일과 브리타니아의 언어는 거의 극과 극 수준으로 다른데, 생각보다 머리가 좋은 편인 모양이다. 시다나브는 얼굴을 펴면서 입을 가렸다.
“앗, 정말요? 포교에 도움이 될까 해서 열심히 배운 건데, 이상하지는 않아요?”
“네. 원어민 수준으로 아주 유창하십니다.”
“다행이에요! 현지인 분께 들으니까 자신감이 생기네요!”
─힐끔. 옆에 있는 호위가 불안한 듯 눈을 흘겼다. 자기가 못 알아듣는 말로 떠드는 그녀가 불안한 모양이다.
호위대상의 성격이 이러면 누구라도 걱정이 되겠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말을 실수하진 않을까 노심초사할 만도 했다.
“헤헤. 그치만 다행이에요. 아까 처음 뵀을 때는 아무 말도 없이 가만히 계시길래, 뭔가 잘못한 줄 알았다니까요.”
멀찍이 거리를 두고서 댁이 걸어올 때까지 오딘의 눈으로 보고 있었으니까 그렇지.
다행히 신경쓰지 않는 듯 시다나브는 미모를 빛내듯 활짝 웃었다. 아주 쉴새없이 웃고 또 웃는 사람이군 그래.
물에 물 탄 듯, 술에 물 탄 듯 한 성격은 저 종교 사람들 종특인가. 네페르티티도 애는 꽤 맹했던 것 같은데.
“앗, 벌써 도착했네요! 들어가죠!”
─우다다! 기운 차게도 달려간 시다나브는 석문을 힘겹게 열면서 안으로 들어갔다.
《저는 여기에서 대기하겠습니다.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불러주십시오.》
반듯한 호위는 깔끔한 복장만큼이나 품행단정하게 인사를 하고 문을 닫았다.
─끼이익, 쿵!
“으음, 향초는 이거면 됐고……”
시다나브는 석관에 뭔가를 깔고 향을 피우면서 무척 바빠 보였다.
“아, 거기 있는 옷으로 갈아입고 와 주실래요?”
“옙.”
“우선 노르드 님의 몸을 더럽히는 마나를 중화하고 밖으로 빼낼 거에요.”
옷을 갈아입고 와서 잠깐 기다리자 그녀는 나를 석관에다 눕도록 시키며 말했다.
성수가 찰랑이는 돌 욕조에 들어간 나는 꺼벙하게 물었다.
“밖으로요? 치료하는 게 아니고요?”
“네. 앗, 아뇨. 치료… 그러니까, 어둠과 음의 마나를 정화하는 건 맞지만요.”
─꽈악. 성수를 석관 주변에 두른 그녀가 성표를 쥐었다.
“체내에서 중화하는 건 육체의 마나 저항력 때문에 효율도 나쁘고 몸에도 안 좋아요. 그래서 마나를 바깥으로 몰아내면 그때 가서 이 항아리에 몰아넣는 거죠.”
“……왠지 미이라를 만드는 법하고 조금 닮은 것 같은데, 혹시 저한테 원한이 있으시면 말로 해 주십셔.”
물론 여기에는 날붙이 같은 건 없다.
시다나브도 오딘의 눈으로 관찰했지만 구신의 마나나, 어둠과 음의 마나 같은 건 흔적도 보이지 않는 상대였다. 변신 마법으로 본모습을 감춘 듯이 보이지도 않고 말이다.
그래도 갑자기 불길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석관 말고 좀 멀쩡한 침대 같은데에 눕게 해 주면 오죽 좀 좋냐고.
내가 농담처럼 말하자 시다나브는 꽃이 피듯 깔깔댔다.
“아하하, 원한이라뇨! 오히려 말씀드렸다시피 만나뵐 수가 있어서 기쁜걸요. 헌금도 받았으니, 저 열심히 할게요!”
시다나브는 그렇게 말하고서는 내 불안을 떨쳐내 주려는 듯 경건하게 주문을 외웠다.
《─그대의 행위가 선하기를 바란다면(ir mr.k nfr sSm.k).
그리고 모든 악으로부터 자신을 구하길 바란다면(nHm tw m-a Dwt nbt), 탐욕을 채울 기회를 뿌리쳐라(aHA tw Hr sp n awn ib).
그는 아내와 남편을 얽어매게 만들며(iw nS.s Hmt TAy), 모든 악을 부과하고(TAwt pw bint nbt), 모든 증오를 낳는 계기이리라(arf pw n xbdt nbt).》
시를 낭송하는 것처럼 운율에 맞추자, 시다나브가 흩뿌린 빛의 마나가 석관을 통해서 내 몸에 스며들었다.
약간 보습 크림을 바르는 것 같군. 문제는 땟국물이 조금 많이 나온다는 건데.
성수가 눈 깜짝할 사이에 검게 변했다. 몇 년만에 목욕을 하는 노숙자 같아서 꽤 쪽팔렸는데, 시다나브는 얼굴이 바짝 굳더니 웃음기가 사라져서는 마나를 계속 짜냈다.
《탐욕스러운 마음을 가진 사람을 위한 무덤은 없을 지며(nn wn is awn ib).
선한 신의 법도를 지키는 이는, 자신의 뜻을 행하는 이이다(wAH s aqA.f mAat Sm r nmtt.f).》
우르르르르……!
성수를 채운 석관이 마구 떨렸다.
‘씨발, 뭔가 잘못 돌아가는 느낌인데.’
나는 일어나지도 제대로 눕지도 못한 채로 동공에 지진을 일으켰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
내 어둠 속성의 재능은 규격 외의 경지에 있다. 그렇기에 망령도시에서도 부작용 없이 어둠과 음의 마나를 흡수하고, 그것을 다른 마나로 치환할 수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그런 내 허용량을 넘어서 쥬지에 영향을 일으킬 정도로 짙은 어둠과 음의 마나가 쉽게 해주될 리는 없었다.
‘근데 이건 좀…… 아니, 존나 지나친 것 같은데?’
해 봤자 부작용 1단계. 해 봤자 발기부전.
전문가인 오프툼에게 흑마법사로 의심받을 수준조차 안 될 만큼, 미약한 증세가 아니었던가?
아마도 나는 저번에 속성 검사를 거치고서도, 내가 가지고 있는 마법의 재능을── 다나를 축복해준 이름 없는 여신도 말했던, ‘그릇’이라는 것을 얕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콸콸콸콸─!!
더러워진 성수는 석관에 난 구멍으로부터 빠져나갔다. 검은 물은 항아리를 한참 전에 채우고 시다나브의 발치를 적시다 못해, 신성문자로 채운 의식의 장을 까맣게 적셨다.
시다나브는 목소리를 쥐어짜듯 말하다가, 성표를 들어올리면서 외쳤다.
《따라서 그대가 자신의 과오에 자비를 베푼다면(ir sf.k Hr sp xprw)── 벌레의 질병은 더 이상 악화되지 않으리라(xAt pw mrt nt btw, n xpr.n aq im.s)!!》
─쿠우우우앙!!
무슨 폐차기로 뚜껑을 닫는 것 같았다. 성수를 모아담아둔 항아리는 마구 소용돌이를 치면서 겉으로 보이는 용량보다 더 많은 성수를 빨아들이고 있었다.
시다나브가 얼굴을 밝히며 외쳤다.
“해냈다! 해치웠어요!”
“아.”
그녀의 활기찬 외마디에 내가 좆됐음을 이해했을 때였다.
정화가 시작하기 전까지는 시종 해맑기만 하던 시다나브의 눈이 커졌다.
“어, 어라? 이건 조금 상상 이상──”
─푸화아아악!!!
항아리는 안에서 쓰나미라도 몰아친 듯 역류하면서 천장에 닿을 정도로 시꺼먼 성수를 뿜어냈다.
후두두두두둑…….
물이 빠진 석관에 누운 나와 뒤로 나동그라진 시다나브는 검은 빗물을 맞으면서 옷과 얼굴을 까맣게 적셨다.
까맣게 변한 성수는 짭짤했다.
내 육수 맛은 아니라고 믿고 싶다.
“펫. 펫, 퉤엣! 크힝! 크흥! 힝, 짜…….”
입에 튄 검은 성수를 뱉으며 재채기를 해대던 시다나브는 나를 보면서 코를 훌쩍였다.
“……노르드 님. 이 성수, 잉크 맛이 나요.”
“……제가 먹물 좀 먹은 놈이라.”
첫날 째의 정화 의식은 보란 듯이 대실패였다.
됐어, 시발. 어차피 쉽게 안 풀릴 줄 알고 있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