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게 무슨 일입니까?》
소리를 듣고 달려온 시다나브의 호위가 황망하게 말했다. 나랑 시다나브는 한숨을 쉬었다.
《실패했어요. 일단 오염된 성수부터 정리할 거니까, 어디 가서 항아리 큰 거라도 빌려와 주실래요?》
《예, 예!》
시다나브는 그녀에게 지시를 내리고 옷을 쭉 짜더니, 잠깐 내 눈치를 봤다.
“……옷, 벗어도 돼요?”
“그러지 마십셔. 마법으로 말려드리겠슴다.”
존나 우리가 그럴 사이는 아니잖음? 내가 반사적으로 즉시 거절하자 시다나브는 알겠다는 듯 말했다.
“그럼 그냥 입고 있죠 뭐. 청소하기 힘들겠네요. 이걸 시종들에게 맡길 수는 없으니까.”
“저도 도와드리겠습니다.”
당연히 이건 내 책임도 있으니까 말이다. ‘잘못’이라고 하면 억울하긴 하겠지만.
나는 〈정화(Clean)〉 마법을 갈겼다. 편리한 마법으로 이 방의 청소를 원큐에 끝낼 생각이었다.
─푸쉬쉬.
“……뎃?”
하지만 내 믿음직스러운 섹스 후 청소 마법은 성수를 좆도 치워주지 않았다. 이건 또 머선 일이고?
“이 성수는 마나가 가득 차 있어서 마법으로 어떻게 하기도 힘들어요. 손으로 치워야 한단 얘기죠.”
“……그, 그럭군요.”
괜히 도와준다고 그랬네.
마법 한 방에 끝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씨발.
어쩔 수 없다. 달인의 체력과 함께라면 청소 정도는 할 만 할 것이었다.
나는 호위가 항아리를 가져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천장에 튄 오염된 성수를 걸레로 닦거나 퍼서 거기에 옮겨담았다.
“음?”
그렇게 셋이서 함께 청소를 하던 중이었다. 벽에 튄 검은 성수를 닦던 나는 거기에 새겨진 그림에 멈칫했다.
“헥, 헥……. 왜 그러세요?”
시다나브는 육체적 힘은 약한지 땀을 뻘뻘 흘려가며 일을 하다가 잠깐 쉬려는지 내게 질문을 꺼냈다. 나는 이 알리씨크답게 벽에 그려진 그림을 가리켰다.
회색 머리카락에 모자를 쓴, 애꾸눈의 노인이다.
문 쪽이었던 데다가 다른 벽화도 많았기에 들어온 다음에 문을 돌아보지 않았던 나는 지금까지 눈치채지 못했었다.
“짝눈 할배 신이라…… 이거, 오딘일까요?”
“……신의 존함을 그리 경망되게 부르셨다간 천벌 받아요, 노르드 님.”
여사제답게 잠깐 말이 없던 시다나브는 고개를 저었다.
아마도 저 입 안에서 설교가 머물다가 목울대를 타고 도로 안으로 쑥 들어갔을 것이다. 오딘이 너무 친근한 탓에 그만 애칭 및 경칭으로 부르고 만 내 실수였다.
“죄송합니다. 아무튼 그, 제가 학사 시절에 보던 벽화들과 꽤 닮았군요.”
젊은 마녀 모자의 여신이 아니라 수염이 성성한 늙은 남자라는 점에서는 그렇다. 시다나브가 말했다.
“아마 맞을 거에요. 게르마니아의 신화는 파란만장해서 꽤 인기가 많잖아요? 로마니아의 신님들만큼은 아니어도요. 저도 솔직히 신들 중에서는 게르마니아 신님들이 제일 좋답니다.”
“그렇군요. 영주님이 신자신 줄 알았습니다.”
“그냥 음유시인의 전설을 새기려는 생각이 아니었을까요? 뭣보다 당대 영주님도 물려받은 저택일 거구요.”
“아하.”
뭐, 생각해 보면 그건 그렇긴 하네.
나는 내가 아는 진짜와는 다른 오딘의 그림을 쳐다보다가 청소로 돌아갔다.
“후우, 얼추 끝났네요.”
시다나브는 청소를 끝내고서 석판을 들고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남아 있던 오염된 성수의 흔적이 사라졌다. 커다란 항아리─사람도 들어갈 크기─도 빵빵하게 찼고 말이다.
“아무래도 이 과정을 몇 번 더 반복해야 할 것 같아요.”
시다나브는 빈 성수 병을 모아둔 곳으로 가서 말했다.
“이번에 한 번에 완전히 해소하진 못했죠? 어느 정도 남은 것 같나요?”
“어…… 잠시만요.”
나는 내 안에 남은 어둠과 음의 마나를 점검했다. 하지만 성수의 도움 없이는 딱딱하게 늘러붙은 마나의 총량을 알기 어려웠다. 나 자신의 마나통이 아니니까 당연한 일이다.
“……잘 모르겠지만, 별로 안 줄은 것 같습니다.”
“흑마법에 대한 내성이 엄청나시네요. 〈임모르탈리스〉를 쓰러트릴 수 있으셨던 것도 그 덕분일까요?”
그건 아닐 것 같지만, 부정할 이유도 없어서 그런 걸로 해 뒀다. 시다나브는 빈 병에 검은 성수를 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봉인하는 형식보다는, 빼낸 다음에 오염된 성수 쪽을 정화하는 게 낫겠어요. 저 혼자 하기엔 마나가 벅차니 우선 제거해 둔 뒤에 교단 본부에서 사람을 부를게요.”
“번거롭게 해 드려서 죄송합니다.”
“뭘요. 〈임모르탈리스〉와 싸우다 얻은 저주라면 이 나라에서 사는 모든 종교인들이 발 벗고 도울 일이죠.”
아, 이 저주가 그런 식으로 얘기가 퍼졌구나.
인간으로 변신한 트롤이랑 싸우다가 이상한 그림자에 잠식당했다는 것보다는 설득력 있는 얘기였다. 나여도 깜빡 하면 이게 흑마법사 씹새들이 남기고 간 상처인 줄 알겠네.
“그런데 그 오염된 성수는 왜 담으십니까?”
“동방에는 이독제독이라는 말이 있죠?”
박학다식함을 자랑하며 시다나브는 성수 병을 다 채웠다.
“마나는 상반된 성질끼리 끌려요. 빛의 마나를 채워둔 이 성수가 어둠과 음의 마나에 상쇄되다 못해서 오염돼 버린 건 그것 때문이구요. 여기까진 이해 되시나요?”
“옙.”
“그러니까, 다음 번에는 물을 더 많이 뽑고 가실 수 있게 노르드 님 스스로 이 마나에 익숙해지시면 된답니다.”
……익숙해지라고?
그럼 나 빼박 흑마법사 되는 거 아냐?
“아, 마시거나 사용하라는 건 아니에요. 음…… 이열치열이라고 하면 좀 이해가 가실까요? 나르메르-나일에 있다가 돌아가면 브리타니아의 더위는 아무렇지도 않겠죠? 말하자면 선행연습이에요.”
내 의문은 지당한 거였는지, 시다나브는 묻기도 전에 그리 말했다.
말하자면 화생방 훈련인가. 빡세겠군.
어떻게 하는 건지 대충 설명을 듣고서 나는 오염된 성수를 챙겼다.
그래도 어떻게 전부 해소할 방법이 없는 건 아닌 듯 하니까 다행이라고 생각하자.
발기부전의 극복이 드디어 시야에 보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
호텔 스위트룸으로 돌아온 나는 바로 그 연습에 들어갔다.
─꼴꼴꼴꼴.
방 하나에 들어가서 가져온 검은 성수를 대야에 부었다.
“그 훈련이란 건 어떻게 하는 건데?”
같이 따라온 다나가 물었다. 빛의 마나를 다루는 훈련이라 말하니까 관심을 보였던 것이다.
마침 다나도 빛의 마나를 쓰는 수녀 비슷한 사제 아닌가. 프랑도 훈련 중이고, 같이 해서 나쁠 것 없다.
“쉬워. 성수를 마시고, 성수로 충전한 빛의 마나로 이 검은 마나를 정화하면 된대. 이 성수를 오염시킨 건 순수한 어둠과 음의 마나라서 어렵지 않을 거라대?”
내가 발기부전을 임시적으로 치료할 때와 원리는 똑같다.
훈련 방법도 간단했다. 상극이기에 상쇄되고, 이끌리는 두 종류의 마나를 다루는 연습이다.
“나는 따로 마실 필요 없겠네. 치유마법이면 되니까.”
다나는 손에서 힐을 뿜어내며 말했다. 그른가? 아, 맞겠네. 언데드 퇴치랑 비슷한 과정이니까.
이 연습을 하면 할 수록 내 몸에서 좆 같은 마나를 빼낼 때 능률을 올릴 수 있을 것이었다.
─부르르. 다나는 자기 대야에 손을 담그며 몸서리를 쳤다.
“씁, 남편놈 땟국물에 손 담그려니까 기분 영 개같네.”
“흐으음…. 정액을 야식으로 잡수시는 분께서 말씀하시니 설득력이 남다르군요. 그쪽 간(肝)도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병신아, 그거랑 같냐? 이건 오줌 같은 거잖아.”
“오줌에 손 담그는 여자가 아내라니 자랑스럽읍니다.”
“땟국물 바리바리 싸 온 놈만 할까. 암튼 남는 거 있으면 앞으로도 조금씩 갖고 와. 나 연습할 때 쓰게.”
“이런 시발, 이제는 정기배송까지 받잖아? 아내님 성벽에 쥬지가 쪼그라든다.”
원래 공부도 여친이랑 노가리를 까면서 하면 능률이 오르는 듯한 기분이 들지 않는가. 우리는 노닥대며 각자의 대야에다 손을 넣고, 빛의 마나로 성수를 맹물로 정화하려 했다.
그때였다.
웅웅웅웅웅웅웅웅…!!!!
내 왼팔── 정확하게는 거기에 찬 팔찌가 크게 진동하기 시작한 건 말이다.
다나랑 오순도순 노가리를 까기도 바빠서 빼 놓는 걸 깜빡했는데, 팔찌는 오염된 성수에 담그자마자 갑자기 변기물에 빠트린 핸드폰이 제 주인을 증오하는 것처럼 바이브레이션을 일으켰다!
시발! 오늘은 어째 되는 게 없네!
“갸아아악!! 내 몸에서 나가!!”
쫄려서 바로 팔찌를 벗었다. 안 그래도 오른팔을 잃어먹은 참인데 왼팔까지 날려먹을 수는 없었다.
공중을 춤추던 팔찌는 그대로 오염된 성수를 채운 대야에 빠졌다.
그리고.
──퍼엉!!!!
팔찌가 창으로 돌아가면서 대야가 폭발했다.
“애미야 물이 차다!!”
“아 뭔데 씨발?!”
대야가 터져나가자 우리는 기겁을 하며 뒤로 물러섰다.
둘 다 조금 오염된 마나 갖고 건강에 하자가 나올 사람은 아니었지만, 갑작스럽게 땟국물이 폭발사살을 하는데 가만히 있는 게 더 이상한 새끼 아니겠는가.
물러나서 관찰 모드 ON.
오딘의 눈을 키려던 나는 입을 딱 벌렸다. 다나가 얼탱이 없다는 듯 말했다.
“……야, 남편놈아. 저거 니 땟국물 쳐 마시는 거 같다?”
“뭐… 라고…?”
쪼오오옥….
마룻바닥에 넘쳐흐른 오염된 성수는 생리대를 던져놓은 듯 순식간에 표면적을 줄어갔다.
아니, 아니었다. 물어드는 것은 오염된 부분 뿐, 물은 마룻바닥에 흥건한 채로 남아 있었다.
원래 모습으로 돌아온 내 창이, 창대 부분에서 성수에 든 어둠과 음의 마나를 꿀떡거리며 마셔대고 있는 것이었다.
…키링!
그렇게 창대에 피어난 푸른 곰팡이…… 아니, 푸른 마나의 빛이 가라앉았을 때, 내 창은 그야말로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너무 그대로라서 내가 더 놀랍네.
시팔럼이 홀라당 쳐먹고 시치미 뚝 떼는 것 봐.
“미친 놈아, 왜 암거나 막 주워먹고 지랄이야!!”
나는 산책 시켜주던 개가 초콜렛을 쳐먹어버린 순간의 견주처럼 달려가 창을 안아들고 비명을 질렀다. 씨이발 축축해!!
“퉤!! 퉤 하자!! 그거 지지야, 지지!!”
“어우야, 피도 아니고 땟국물을 마시는 창이네. 니 창한텐 이게 업계 포상임?”
다나의 군소리와 애병(愛兵)의 특수성벽 커밍 아웃에 나는 존나 정신이 나가버릴 것 같았다.
진짜 오늘은 어떻게 제대로 되는 게 없냐.
여기서 라리루라까지 대회에서 광탈했었으면 진짜 자살을 고민했을 듯.
“……광합성이라도 하게 가끔씩 태양을 쬐어줄 걸.”
새끼가 밥 좀 안 줬다고 주인님 육수를 빨아마시네.
이 놈의 이세계는 무슨 무생물까지 성적 도착증이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