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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시간을 돌려, 노르드와 시드나브가 의식 장소의 청소를 마무리 지었을 무렵.
영주 대리 톨리오는 초조함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다.
《제길…….》
─힐끗. 방의 시계를 쳐다보자 정화 의식이 시작된지 어언 3시간이 넘게 지난 상태였다.
해주나 정화 따위로 이렇게 오래 걸릴까?
그럴 리가. 시다나브는 하토르 교단에서 몸소 데려올 만큼 뛰어난 신성력을 가진 고위 사제 아닌가.
그러면 한 번에 끝내지 못할 만큼 강력한 저주여서일까?
설마. 그렇다고 해도 굳이 몇 시간이나 들여가며 재시도할 이유는 없었다.
오늘만 날도 아니고, 그만큼 강한 저주라면 신성력을 전부 사용해도 하루아침에는 끝낼 수 없었다.
그렇기에 톨리오는 이 3시간의 지연이 ‘예배’ 때문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톨리오로서는 설마 그들이 더럽힌 방을 청소하는데 시간을 쓰고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으니까.
《제길, 제길…….》
《톨리오, 톨리오는 있느냐.》
어쩌지도 못하는 기분을 토해내려는 그에게 방문자가 찾아왔다. 그의 아버지인 알리씨크의 영주였다.
《혹시 시다나브는 여기에……》
영주는 톨리오를 발견하고서는 바로 고개를 돌려 그의 방을 샅샅이 살피더니 혀를 찼다.
《……없는 모양이군. 네가 데려간 게 아니었나?》
《……설마요. 아직 예배 중이신 듯 합니다.》
《아직도?》
아버지의 얼굴이 꼴사납게 구겨지는 것을 보며 톨리오는 픽 웃음을 터트렸다.
그가 어디 화를 낼 처지던가? 그 역시 예배라는 수단 없이는 시다나브를 부르지 못하는 몸이잖은가.
《……그런가. 알겠다. 나는 내일 아침 일찍 그녀를 만나볼 테니, 너도 그리 알거라.》
혹시나가 역시나였다. 그나마 노르드를 욕하지 않을 만한 양심은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제 얼굴에 침 뱉기니까.
톨리오는 표정을 감추며 소파에 기댔다.
《알아두라뇨? 제가 아버지의 신앙 생활을 알아둘 이유가 있습니까? 게다가 아침 일찍이라니, 혹시 내일 있을 본선의 2일차 경기에도 참석은──》
《그래. 안 할 것이다.》
《……아버지. 당신은 알리씨크의 주인이십니다.》
《아니, 대회가 끝날 무렵부터는 네가 영주다.》
《예?》
비아냥대고 싶은 걸 꾹 참고 있던 톨리오는 당연하다는 듯 던져진 말에 황망해졌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는 그가 놀라건 말건 무뚝뚝하게 말했다.
《나도 이제 늙음을 실감하는 나이가 됐어. 나는 이만 은퇴하고, 여생은 노르드 님과의 무역 거래만 도맡으며 살겠다.》
《자, 잠시만요! 진심이십니까?!》
《그래. 아직 피곤하구나. 이만 쉬어야겠어.》
본론만 던져놓고 가버리는 아버지를 보며 톨리오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영주? 내가?’
꿈에서도 바라 마지 않던 일이었다.
오늘내일 하면서도 절대로 은퇴하지 않으려 드는 늙은 아버지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토록 원하던 자리를 손에 넣었건만, 남은 거라곤 혀를 불에 지진 듯 씁쓸한 뒷맛밖에 없었다.
《저 개 같은 인간이 진짜……!》
톨리오는 침대의 기둥을 두들겼다. 이건 미모의 사제에게 넋이 나가버린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아버지는 큰 돈줄이 될 미스릴 무역 건을 꽉 붙잡고 새로 세우고 있는 하토르 교단에만 몰두할 게 뻔했다.
그리고 그렇게 그 뒤에는 알리씨크라는 거대한 항구도시와 큰손의 신도와 유지해가기 위해서라도 하토르 교단은 그의 아버지가 부리는 억지를 들어줄 것이었다.
그건 톨리오가 영지를 관리하고 발전시켜 봤자, 그 모든 게 아버지가 뒤에서 여인을 희롱하는 것을 돕기 위한 수작질이 돼 버린다는 것을 시사했다.
《제기랄! 하나같이 계집질에 미쳐서는!》
영주라는 작자가 저딴 추태를 보이다니, 한심하기가 짝이 없는 일이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성을 내던 톨리오는 한숨을 크게 쉬고 일로 돌아갔다. 저 한심한 아버지가 본선의 업무를 수행하지 않는다면, 영주의 대리인인 그가 대신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오늘밤 중으로 밀린 업무를 처리한다. 전부 가져 와.》
《예. 도련…… 아니, 영주 대리님.》
문관의 대표는 시종들에게 서류를 옮기게 시키며 말했다.
《업무의 개요는 이 서류를 읽어주십시오.》
《쯧. 인수인계가 안 됐으니 일을 대신하기도 힘들군.》
《……대회나 영지 경영 중에 발생한 문제들은 서면상으로 추려두었습니다만, 한 가지 말씀드릴 사항이 있습니다.》
차기 영주가 현 영주를 욕하는 말을 노련하게 못 들은 척 하면서, 문관 대표는 서류 1장을 더 얹었다.
《노르드 님의 저주를 해주하는 중에 발생한 오염된 성수 건입니다. 하토르 교단에서 처분하고자 하니 보관을 부탁할 수 있느냐는 시다나브 님의 요청입니다.》
《알았다. 창고를 개방…… 아니, 다른 보물이 오염될 수가 있겠군. 병사를 시켜 관리하고 결계사를 초청해라. 교단에서 사람이 나올 때까지 대기를──》
능수능란하게 일을 처리하며 지시하던 톨리오가 멈칫했다.
《그만두지. 대회 본선으로 바쁜데 초청할 여력은 없잖나. 대회가 끝난 후에 우리 측에서 처분한다고 알리도록. 당장은 설립 중인 하토르 교단의 신전에 옮겨두도록. 소문이 흘러나가는 일 없도록 주의를 기울이고.》
《알겠습니다.》
《나가 보게. 밀린 업무는 3시간 안으로 정리하지.》
문관 대표를 내보낸 톨리오는 잉크를 묻혀 빈 종이에다가 묵묵히 글자를 적어내려갔다.
하지만 집중이 가능할 리가 없었다. 톨리오는 한숨을 쉬고 목걸이의 열쇠로 선반의 맨 아랫쪽을 열었다. 그리고 비밀의 서랍에 들어 있던 작은 액자를 꺼냈다.
액자에 든 것은 그가 직접 그린 노르드의 초상화였다.
초상화에는 선 1줄에마저 존경심이 알알이 깃들어 있었다. 그의 아버지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그림 솜씨였다.
《……노르드 님. 당신과 같은 영걸께서 세속적인 욕정에 휘둘려서는 안 됩니다.》
톨리오는 탄식하며 중얼거렸다.
이 남자가 누구인가. 적수공권에서 시작해서 눈부신 힘과 위업을 쌓아가고 있는 이 시대의 영웅 아닌가.
저 신대나 고대의 영웅이 혈육을 갖고 되살아난다고 해도, 이 복잡다난하고 사방이 꽉 틀어막힌 현대에서 노르드처럼 무언가를 원활하게 해낼 수는 없을 것이었다.
톨리오는 그것을 진심으로 확신하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의 업적은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다 치밀하게 계산된 행동이 분명하니까.
‘카르미네 대학의 졸업과 모험가 길드라는 발판은 자신의 실력을 살릴 기회를 잡으려 한 거겠지.’
영웅은 난세에서밖에 태어나지 않는다.
많은 정세가 안정된 현대에서 능력을 가진 자가 위대해질 기회를 붙잡으려면 위험에 발을 내디디는 용기가 필요했다.
그리고 〈임모르탈리스〉를 해치운 것으로, 노르드는 다른 이들은 얻지 못했던 기회를 잡았다.
손에 넣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자 ‘흑마법사 사냥꾼’이라는 이미지 메이킹을 시도한 것은 또 어떤가?
영주들이 허겁지겁 만들어낸 위상을 초상화를 헌상받는 왕처럼 코도 풀지 않고 전부 가져가서는, 이젠 나라의 중추를 파고들 기술력의 길드까지 설립할 듯이 보이지 않는가!
나르메르-나일의 신민들이 굶주려 있던, 흑마법사들을 없애버리고 평화를 가져다 줄 영웅!
단독으로 〈임모르탈리스〉를 2명이나 해치운 전사는 그를 빼면 사티스 교단의 사냥개 1마리밖에 없다.
‘아니, 그 오프툼조차 이런 단기간── 1년도 채 안 되는 시간만에 해내지는 못했다!’
귀족과의 커넥션을 다져가며 아르마알스라는 거물에게 초청받을 정도의 인맥마저 손에 넣고, 이제는 난세의 사막국가를 휘어잡으려는 그 원대한 야망이라니!
다른 이라면 몰라도 톨리오는 알 수 있었다.
저 불세출의 영웅을 그저 아르마알스의 심부름꾼으로서 돈 좀 벌어보려는 얄팍한 외국인이라 착각하는 멍청이들과는 본질을 보는 눈썰미에서부터 다른 것이었다.
《……뛰어난 능력을 가진 초인은, 그 한정된 수명을 1분 1초라도 더 유효하게 활용해야 합니다.》
톨리오는 존경하는 이에게 과도한 환상을 가지는 아이처럼 두 손을 모으며 기도했다.
시다나브. 그 빌어먹을 계집이 이 시대의 영웅을 색욕으로 망쳐놓지 않도록 말이다.
《여색이건 남색이건, 당신 같은 영웅께서 추잡한 육체적 쾌락에 시간을 탕진해서는 안 됩니다. 아시겠습니까?》
***
‘쓰벌. 멘탈 깨지니까 질펀한 섹스 마렵네.’
대략 2시간에 걸친 훈련을 마치고서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내 창이 가능충이었다는 사실에 절망하긴 했지만, 어쩔 수 없다면 포기하는 것도 한 가지 방편일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일단 내 창을 베로니카에게 맡기고 훈련을 재개했던 것이다.
만약 이대로 정든 무기를 바꿔야 한다면 그것도 슬픈 일이기는 한데, 내 바이오-스피어 쪽은 뭐 어떻게 갈아끼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은가.
이렇듯 사람은 아무리 슬프고 힘들어도 굳세게 살아가는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남은 성수는 섹스용으로 애껴둬야지.’
훈련에 쓰고 남은 성수를 쟁여두면서 나는 오염된 성수를 마저 정화하는 다나의 옆을 조용히 빠져나왔다. 해프닝이 좀 있기는 했지만, 집중 상태에 들어간 그녀를 방해하면 미안하니까 말이다.
─벌떡!
오래 앉아 있다가 일어나니까 피가 돌았는지, 허벅다리에 텐트가 쳐졌다.
성수의 약효가 남았기에 쥬지가 기운차게 따라 일어난 듯 했는데, 안타깝게도 당장은 어떻게 해줄 수가 없었다.
다나-프랑-라리루라는 훈련 중.
그리고 베로니카도 내 창에 대체 뭔 일이 일어났는지 분석해달라고 요청한 직후다. 갑자기 쳐들어가서 마 함 뜨자!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간만에 자위라도 하려자니 딸감도 없었고.
그렇게 고민하던 나는 사람의 기척이 느껴진 순간 자리에 빠르게 앉았다. 풀발한 자지 때문이었다.
“아, 노르드. 계셨네요. 지금 한가하세요?”
“예. 마침 한가해진 참입니다, 티르시.”
뭔가 연구자료 같은 걸 갖고 온 건 다름 아닌 티르시였다. 나는 그 파일첩에 시선을 향했다.
“혹시 〈강림(Descensus)〉의 연구자료입니까?”
“그쪽도 있고, 다른 쪽도 있어요. 둘 다 어느 정도 결과가 나온 듯 해서 들려주려고 왔죠.”
티르시는 내 맞은편에 앉으며 말했다.
내가 일하는 사이에 티르시도 연구를 계속해 주고 있었던 모양이다. 베로니카의 도움도 있었을 거고 말이다.
“그런데, 다른 쪽이요?”
“아, 네. 노르드의 몸에 있는 마나에 대해서……”
말하던 티르시가 갑자기 말을 멈췄다. 테이블이 없었기에 의자에 앉아서 다리를 꼰 내 풀발 쥬지가 뻔히 보여서겠지.
흐음. 아내들에게 보여줄 때랑은 다르게, 약간이기는 해도 수치심이랄 게 느껴지는군.
내 엘리트 대갈통에도 어쩌어찌 수치세포가 남아 있기는 한 모양이야.
─홱! 고개를 돌리며 손으로 눈을 가리는 티르시.
“죄, 죄송해요! 제가 안 좋을 때 찾아왔네요!”
“아뇨 뭐, 저는 괜찮습니다. 생리현상이니까요.”
“그, 그래요? 그럼 다행이구요.”
티르시는 몸을 옆으로 돌리면서 황망하게 말했다.
하지만 90도 돌아간 고개와는 다르게, 살짝 벌려진 손가락 틈새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눈동자는 말하는 중에도 내 우뚝 솟은 고간을 힐끔 거리고 있었다. 어허. 매너 눈 하셔야지.
가슴 큰 여자들이 자기 눈을 마주보면서 얘기하는 남자가 없다며 한탄하는 마음을 좀 알겠구만.
“그, 그래서 말이에요? 노르드의 몸 상태에 대해서…… 조, 조금만 더…… ‘연구’를 해 볼까 하는데요.”
티르시는 긴장한 듯이 허벅지를 비비다가, 치켜뜬 눈으로 속삭였다.
“제 연구…… 도와 주실래요?”
그럼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