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520화 (520/1,009)

나랑 티르시는 조용한 방으로 이동했다.

“이, 일단 개요부터 보고드릴게요? 괜찮죠?”

─허둥지둥. 티르시는 연구 결과를 적은 종이를 모으면서 말했다.

“천천히 하십셔. 바쁠 것 없습니다.”

내가 자리에 앉으면서 픽 웃자 티르시도 긴장이 풀린 듯이 어깨에 힘을 풀었다.

“그나저나 죄송합니다. 중간중간 보고를 받았어야 했는데.”

“으흠. 아시면 됐어요. 일이랑 병행하느라 고생했다구요?”

“헤헤, 고생하셨슴다. 월급이라도 쫌 드릴깝셔?”

“어머? 돈 좀 버셨다고 바로 그렇게 나오시기에요? 그래도 저는 오드리 씨처럼 험하게 구르긴 싫은데.”

짖궂게 웃던 티르시는 진지하게 말했다.

“일단은…… 〈강림〉 마법부터 설명 드리는 게 맞겠네요.”

“부탁드립니다. 진척은 어떻죠?”

“과정의 재현은 거의 완벽하게 가능할 거라고 생각해요. 단, 지금 사용하기엔 2개의 문제점이 있지만요. 게다가 양쪽 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짐작 가는 게 없구요.”

“어떤 문제입니까?”

내가 묻자 티르시는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종이에 그림을 그렸다. 금이 간 듯한 균열이었다.

“하나는 차원의 균열, 다시 말하자면 명계와 이어진 길을 만들어야 한다는 거에요.”

“……죽은 자의 힘을 빌려오는 마법이니 당연한 일이군요. 아, 이렇게 말하면 좀 흑마법 같나요? 죄송합니다.”

“아뇨. 본질은 비슷할지도 모르죠. 죽음을 숭고하게 여기는 문명도 있고, 이 마법도 흑마법사에게서 뺏은 거잖아요?”

“뭐, 하긴 그렇네요.”

다행히 술식에 어둠과 음의 마나가 개입할 일은 없기에, 이 마법의 시전자나 대상인 티르시에게 부작용은 안 나온다.

저 오프툼 같은 사냥개들에게 걸리지도 않겠고 말이다.

“두 번째 문제는…… 소유권을 제게 돌려놓더라도, 술식을 ‘완성’한 뒤에는 의미가 없을 듯 하다는 거죠.”

“……그건 또 무슨 뜻입니까?”

나는 별로 좋지 않은 소식에 눈을 찌푸렸다.

저번 싸움에서는 내가 디아볼로로부터 조종권을 빼앗아서 티르시에게 돌려줬었다.

그렇게 해서 티르시는 자의식을 되찾을 수 있었는데──

“──어, 잠깐만요. 그러고 보면 그때는 의식을 되찾자마자 〈강림〉 마법이 풀렸던 것 같은데?”

“네. 그게 바로 두 번째 문제에요. 제 자아와 ‘아르마 슈나스’의 힘은 양립하지 못한다는 얘기죠.”

─툭툭. 해석 결과를 건드리는 티르시.

“이 마법의 모토는 ‘아르마 슈나스’의 후손을 그녀의 분신 겸 조종자의 전쟁병기로 만드는 거에요. 원조 제작자의 이념과는 다소 멀어졌겠지만, 어쨌든 제 의식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는 〈강림〉 마법의 완성이 불가능할 거에요.”

“말하자면 안전 장치군요.”

“그래요. 힘을 얻은 전쟁병기에 자아가 남아 있으면 가장 먼저 자길 조종하려던 사람을 적대할 테니, 설계 단계서부터 의식 도중에 자의식이 돌아오면 술식이 붕괴하도록 해둔 것 같아요.”

“……그러면 그때 디아볼로 놈에게 조종 당하던 티르시는 〈강림〉 의식이 100% 끝난 게 아니었다는 뜻이겠네요?”

“확신할 순 없지만요. 일단 육체의 통제권을 부여한 걸로 제정신을 되찾기는 했으니, 그때까지는 제 자의식도 어떻게 남아 있기는 했던 것 아니겠어요?”

티르시가 끄덕거리자 나는 턱을 괴며 신음했다.

“즉, ‘아르마 슈나스’의 힘을 이어받은 상태에선 자의식이 없다? 그렇다면 〈강림〉 의식이 완료된 티르시에게 육체의 조종권을 부여해도……”

“소용 없겠죠. 스스로 뭔가를 할 의지가 없는 상태인걸요. 분명 실 끊긴 꼭두각시 인형처럼 서 있기만 할 거에요.”

“……끙.”

그건 그렇다.

이렇게 비유하기는 좀 미안한데, 〈강림〉 상태의 그녀는 무선조종 RC카 같은 것 아닌가.

‘RC카한테 리모콘을 건네준다고 갑자기 장난감에 자아가 생겨서 혼자 주행하지는 않지.’

RC카는 ‘주인에게 조종받는 것’을 전제하고 만드는 거니까.

이 문제를 극복하려면 〈강림〉 마법에다 티르시의 자아를 남겨두는 프로세스를 더해야 하는데, 그것도 어렵다.

그건 티르시라는 차를 튜닝해서 제작한 ‘아르마 슈나스’에 자율주행 기능까지 추가하는 일이다. 엔진을 바꾸거나 하는 수준의 튜닝─술식의 개조─ 정도와는 차원이 다르다.

온전히 여기에만 예산과 시간을 투자해도 1~2년 가지고는 어림도 없지 않을까.

“……어, 그러면 임시로 그 힘을 잠깐 빌려쓰는 것 정도는 가능하지 않을까요? 물론 명계와 연결됐을 때에 한해서.”

부정적인 결과만 말하면 노력한 그녀에게 미안한 만큼, 좀 억지를 부려서라도 좋게 말해보려는 나.

하지만 티르시는 얼굴이 살짝 굳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경우는…… 그다지 생각하고 싶지 않네요. 의식이 다 완료되었을 때, 제 영혼이나 자아랄 게 제대로 남아 있다곤 누구도 보증해 줄 수 없는 걸요. 오히려 방해되는 ‘기능’이니 즉각 소거하는 게 정상 아닐까요?”

“어…… 그, 그른가?”

틀린 말은 아니다.

티르시의 육체에 ‘아르마 슈나스’가 100% 다운로드된 뒤, ‘용량만 차지하는 바이러스 파일’은 삭제할 가능성도 크다.

티르시의 거부감도 십분 이해가 갔다.

‘내가 예르나 년을 족쳤을 때의 그 폭주 상태를 기피하는 것과 같은 이유겠지.’

대가 없는 힘은 없다.

원래의 나로 돌아올 수 있는가 하는 두려움.

그런 건 ‘내’가 내가 아니게 된 경험을 겪어본 사람만 공감할 수 있을 감정이었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미리 연구한 게 천만 다행이군.’

생각없이 사용했다가 티르시가 무선조종 식물인간이 되어 버렸다면, 그 얼마나 끔찍한 일이었겠는가.

사실상 살인이랑 다를 게 없다. 그것도 내 손으로 티르시를 죽이게 되는 것이다.

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자 티르시는 픽 웃었다.

“그치만 저는 이게 마냥 헛수고는 아니었다고 믿어요. 저 역시 마법을 배우는 몸으로서, 이 〈강림〉 마법이 얼마만큼 말도 안 되는 수준의 마법인지 실감할 수 있거든요.”

“그래요? 그만큼 사용하기 어렵단 건가요?”

“후후, 노르드도 참. 대단하다 = 쓰기 어렵다 라는 발상은 저나 당신 같은 먹물쟁이들의 자부심이 만든 편견이에요.”

티르시는 쿡쿡 웃다가 말했다.

“사람들은 쉽게 고위 마법이다~ 저위 마법이다~ 하지만요, 저는 정말로 굉장한 연구나 발견이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왜냐면 그저 알아내는데 그치지 않고, 남들도 알기 쉽게 정리까지 했다는 뜻이니까요.”

“……듣고 보니 그렇네요. 이거 한 방 먹었습니다.”

나는 할 말이 없어서 겸허하게 인정했다.

공부쟁이들 중 열에 아홉은 자기 노력과 성과를 올려치기 하는 못된 버릇이 있다. 파시즘과 또이또이한 엘리트 주의가 바로 그것인데, 이게 또 현실은 그렇지 않거든.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초인이라도 세상만사의 문제를 자기 혼자서 싸그리 해치울 순 없는 법!

이세계건 지구건, 진짜 존나 개쩐다 싶은 위대한 영웅들에게도 흠과 실패, 인간적 욕망과 능력의 한계는 있다.

‘서주대효자 조조나 애비 셋으로 트리플 코어를 돌리다 간 여포가 좋은 예시지.’

그런 빌런들 말고 진짜 영웅들도 그렇다.

킹갓 엠페러 이하생략 충무공께서도 원균이 그렇게 극한의 씹병신인 건 아셨지만 그 새끼가 트롤하는 것 자체는 막지 못하셨잖은가?

하지만 그걸 두고 그 분 능력이 모자라다고 하는 사람은 없듯이, 능력치 만렙을 찍은 초인도 힘에 부치는 일은 있다.

‘내가 내 머리를 엘리트 대갈통이라고 지칭하는 것도 그런 의미고.’

잘나 봤자 사람의 대갈통 1개일 뿐이다. 오만해지지 말자 이거지.

플라톤의 초인정치 같은, 영웅에 대한 갈망.

그건 곧 회의론적 패배주의와 일맥을 상통하지 않은가.

─나는 개쩌는 초인이 되서 뭐든지 해내진 못하겠으니까, 나 대신 다른 누군가가 내 몫까지 해 줬으면 좋겠다.

그런 바람이 응축된 것이 영웅과 초인에 대한 갈망이니까.

반대로 ‘내가 바로 그런 초인이다! 나는 세계를 지배할 수 있다!’ 하고 믿으면?

흐으음…… 그런 식으로 어필하던 분들이 정말 그걸 해낼 역사가 있기는 할까요?

당장 고삐리 시절 학생회장들도 온갖 야부리를 털어대면서 당선돼 놓고는 졸업할 때까지 뭣 하나 제대로 하는 꼴을 못 봤는데? 뭐지? 자아의 비대함을 어필?

누군가에 대한 맹목적인 기대와 응원은 삐뚤어지면 광기로 치닫는다.

내 최애캐가 그럴 리 없어! 빼애액! 하는 그거다.

‘……어쩌면, 신앙 또한 그럴지도 모를 일이고.’

고대의 로마니아가 신을 잃고도 신에 집착을 버리지 못한 끝에, 인간을 신으로 만든 것처럼 말이다.

남에게 기대를 떠맡기면 실패했을 때 후회나 반성을 하기보다는 그 사람의 허물을 욕하고 끝내 버리는 게 사람 심리다. 운명론이란 그런 ‘남 탓 하기’의 연장선이 아닐까?

물론 나도 결국 사람인 만큼 그런 부분에서는 딱히 예외가 아니다. 양 웬리, 당신이 옳았어.

“대단한 마법이에요. 조금 더 연구하면 다른 마법을 낳을 레퍼런스가 돼 줄지도 모르구요.”

“그렇군요. 손해가 아니었다면 다행입니다.”

티르시의 결론을 들은 나는 아쉬움을 털어냈다.

예르나를 해치웠을 때의 힘이 없어도 잘 성장해 온 나다. 티르시도 그렇게 될 수 있을 거라고 믿자.

“다음은 제 몸에 대해서 듣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네? 아, 무, 물론이죠.”

내가 화제를 바꾸자 당황하던 티르시는 심호흡을 했다.

“일단, 노르드의 체내에 있는 어둠과 음의 마나…… 조금 기니까 ‘오염’이라고 부를게요.”

─빠릿. 얼굴을 진지하게 하면서, 마치 비뇨기과 의사들이 환자의 증세를 설명할 때 같은 표정이 되는 티르시.

“이 오염이 좀 특이했어요. 몸에서 해독이 되거나 오염이 진행되면 팔다리 같은 말단으로 독기가 퍼져나가야 하는데, 이상할 정도로 체내에 흘러가지 않은 듯 하더라구요.”

“엥? 그런 걸 어떻게 아십니까?”

이건 그냥 증세만 듣고 넘겨짚어서 내도 될 결론이 아닌데? 혹시 내가 자는 사이에 바지 까고 검진이라도 했나?

그러자 티르시는 되려 당혹한 듯 더듬거렸다.

“어떻게라뇨? 그때 받아간 정액으로 연구한 거에요.”

“아.”

라리루라랑 같이 대딸해 줬을 때 튀었던 정액인가.

내가 입을 벌리자 티르시는 약간 삐진 듯 말했다.

“……노르드. ‘이건 의료행위’라고 그렇게나 강조했으면서, 제가 의료 목적으로 분석해 왔다니까 무지 놀라시네요?”

“어, 그게…….”

이번엔 진짜 아가리를 쌉칠 수밖에 없었다. 그때 부카게한 정액을 표본으로 진짜 연구를 해 줬을지 누가 알았겠는가?

‘썅, 당연히 그렇고 그런 핑계인 줄로만 알있지.’

상상도 못한 일이었지만 나는 잘 알겠다는 듯 대답했다.

“그게 뭐시냐, 제가 잠깐 깜빡했습니다. 그래서, 어땠나요?”

“……정액은 생명을 낳는 근원이에요. 마나가 깃든 건 아니지만 마법의 소재로 쓰일 만큼 내포한 생명력이 충만하죠. 잘 보존해서 분석하면 어느 정도는 건강 상태도 알 수 있어요.”

약간 삐진 듯 따박따박 말하는 티르시였다.

“그렇게 알아본 건데요…… 노르드의 정액에는 그런 오염 수위가 거의 없었어요. 심장을 통해서 그, 음경에까지 영향이 갔다면, 당연히 낭소에도 여파가 남아 있어야 하거든요.”

─휙. 서류를 펼치면서 몇 가지 표를 보여주는 티르시.

봐도 모르긴 하지만, 부연설명을 보자 다른 임상환자들의 경우보다 오염도가 낮다는 것만은 어떻게 알아봤다.

“제 정액이 생각보다 건강했다는 거군요?”

“그, 그렇게도 말할 수 있죠.”

티르시는 적나라한 말에 당황하다가 헛기침을 했다.

“아무튼 증세가 가벼운 건 다행스러운 일이지만요, 반대로 좋지 않을 수도 있어요. 노르드는 어둠 계열 마법에 재능이 뛰어난 것 같지만, 이대로 가면 몸이 그 오염된 상태에 적응해버릴 거에요.”

“제가 원치 않게 그쪽에 재능이 있긴 합니다.”

나는 간단하게 속성 검진기와 정화 의식의 먹물 건을 설명해줬다. 티르시는 조금 얼굴을 찌푸렸다.

“……그건 한층 안 좋은 소식이네요. 자칫하면 부작용처럼 눈에 띄는 현상 없이, 노르드가 흑마법사들처럼 자체적으로 어둠과 음의 마나를 생산하는 경지가 돼 버릴지도 몰라요.”

“넹? 그건 좀 위험한 거 아닙니까?”

“좀이 아니라, 많이 위험하죠. 그렇게 되면 흑마법을 배워 마나를 컨트롤하거나 하지 않으면 평생 발기부전이 계속될 거에요. 어둠과 음의 마나를 빼내도 다시 차오를 테니.”

옘병 씨발 세상에.

부작용이 적다면서 좋아하고 있었는데, 내 몸이 어느샌가 어둠과 음의 마나에 조교를 당해가고 있었단 말인가?

너무도 끔찍한 소식이었다. 존나 좆 됐다. 다나 애널을 수면조교할 때가 아니었네.

내 부랄이 공포에 쪼그라들기 시작했을 때, 티르시는 입을 가리며 곰곰히 생각하듯 말했다.

“몸 상태를 점검하려면 우선 지금의 몸 상태를 볼 표본이 필요하겠어요. 낭소가 이전보다 건강해졌다면, 그 오염에 더 적응한 상태겠죠. 일단은 정액의 상태를……”

진지하게 말하던 티르시는 다시 얼굴을 붉혔다가, 그렇게 부끄러워할 상황이 아니라고 여겼는지 헛기침을 했다.

“……노르드. 바지, 벗어주시겠어요?”

“……옙.”

내가 바지를 벗자 티르시는 가방에서 플라스크를 꺼냈다. 저따가 내 정액을 받아내려는 듯 했다.

세상에 이렇게 등골이 오싹해지는 대딸이 또 있을까.

존나 쥬지가 절로 옹졸해진다. 기분만 그런 게 아니라, 이 흥분할 거리 하나 없는 상황까지 합쳐지자 바지를 벗었는데 발기할 기색이 없었다.

자지를 주무르던 티르시는 곤란한 듯 말했다.

“그…… 노르드? 세워 주실래요?”

“……약효는 남아있을 텐데, 잘 안 되네요.”

시바, 이게 무슨 꼴이냐. 말로 하는 것 자체가 쪽팔려 뒤지겠다.

떨어지는 낙엽만 봐도 서던 정력이 거짓말 같구나. 허허허 웃는 나를 본 티르시가 당황한 듯 고개를 숙였다.

“그, 그렇죠? 아무래도 저로는……”

“아니!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십니까! 티르시가 얼마나 매력적인데요!”

“……그래요? 자지 씨는 별로 그렇지도 않는 것 같은데요.”

─물렁. 망치에 대가리가 터진 장어처럼 힘 빠진 좆기둥을 훑던 티르시는 볼을 부풀리며 중얼거렸다.

“……뭐, 좋아요. 안 되면 되게 하면 그만이니까.”

무슨 뜻이냐고 물을 새도 없었다. 두 손으로 자지를 받든 티르시가 입을 크게 벌렸다.

“하웁♡”

그리고, 귀두부터 앞을 한 입 가득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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