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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척척석사 노루-525화 (525/1,009)

사막의 밤은 움직이기 딱 좋을 만큼 서늘했다.

‘어쩌다 보니 매번 밤에만 이런 지랄을 하게 되는군.’

고개를 저은 나는 룬 스톤을 땅에 던져두고 골목을 빠져나왔다. 밤 거리의 불빛이 뒷골목에 볕을 쬐듯 흘러들며 내 등을 핥고서 지나갔다.

사티스의 사냥개들이 잠복하며 특정한 공간은 요새처럼 떡 하니 세워진 민가였다.

영주 저택이나 공관(公館) 수준은 아니어도 앵간한 서민은 만족하고 살 만한 집이었다. 작은 저택이라고 해도 될까.

‘소문으로는 죽은 애비의 유산을 받은 깡패 새끼가, 존나게 사고를 치고 다니던 시절에 옛날에 엿을 멕인 사람들이 복수하지 못하도록 엄중하게 건축한 집이랬나?’

정확하게는 일부러 그런 소문을 흘린 거겠지.

저딴 삼엄한 저택을 세워도 의심하는 사람이 없게 말이다.

나무를 숨기려면 숲에 숨기라곤 하지만, 설마 이렇게나 노골적인 곳에 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좆 같은 씹새끼들이 꼴에 대범하기도 하지. 존나 폭탄 철거 마렵다.

하지만 연쇄 범죄를 저지르는 개좆 같은 새끼는 원래가 다 생각없이 대범하게 군다지 않는가.

자기 죄가 들키지 않은 걸 지가 유능해서인 줄 알고 점점 기고만장해 지다가, 꼬리를 잡혀서 씹좆망 엔딩.

그게 원래 범죄자들의 상투적인 말로였다.

─후욱!

나는 오프툼과 친구들이 찾아낸 장소의 주변에 룬 스톤을 두고 돌아왔다. 내가 가장 먼저 와 있었던 탓일까. 한 발 늦게 모여든 듯한 사티스 교단의 사냥개 몇 사람이 흠칫 놀랐다.

《뭐, 뭐하는 놈이냐!》

《댁들 고용준데요.》

나는 기척을 줄이려고 썼던 인상미채의 가면을 벗었다.

머쓱한 표정 짓지 마, 새끼들아. 긴장감 없게.

《……준비 끝?》

《예. 바로 결계를 치겠습니다.》

숨을 죽이며 기다리고 있던 네페르티티가 묻길래, 가면을 벗고 그렇게 대답했다.

계속 쓰고 있어도 되겠지만 어차피 좀 있으면 다 들킨다. 인상미채라면 모를까 은신 효과는 들킨 시점에서 노쓸모다.

《예정대로 지휘는 오프툼 씨가 맡아주십쇼. 전 싸우다가 보면 말수가 적어져서.》

《거짓말.》

《……그짓말 아니그등요?》

댁이랑 같이 싸울 때랑은 다르게, 오딘의 눈을 쓰면 말이 헛나온단 말이야.

네페르티티에게 반박하자 오프툼은 픽 웃었다.

《알겠네. 작전 개요는 숙지했겠지? 이번 습격대의 실질적 전력은 우리 대장 3명이니 실수하면 곤란해.》

《괜찮아.》

《넹. 가능하면 생포. 힘들면 즉시 사살. 문제 없슴다.》

《좋아. 시작하지. 결계를 쳐 주게.》

─끄덕.

대가릴 까딱하는 걸로 대답한 나는 수인을 맺으면서, 땅에 내려놓은 룬 스톤에 ᛈ(Perth)의 룬을 써갈겼다.

《결계인술: 자가격리의 술!》

─카칭!!

〈임모르탈리스〉의 따까리들이 숨어 있다는 건물에 무려 오러로 된 결계가 세워졌다.

ᛈ(Perth)의 룬은 ‘상자’와 사물의 안정, 견고함을 의미하는 룬이다.

이것 자체로는 결계 마법이 되지 않는데, 나의 만능 룬 ᛒ(Berkanan)이 더해지면 얘기가 또 다르단 말씀.

‘오러를 넓게 펴발라서 상자 모양을 만들었지.’

이렇게만 하면 닿기만 해도 몸이 갈려나가는 살인 결계의 완성이다. 마나를 좀 썼지만 도망치는 놈들을 막으려고 하는 짓이니까 필요한 소모였다.

건물은 삼엄한 반면 작아서 생각보다 마나 소모는 적은 편이었다.

결계는 땅 밑까지 파고들었기에 이제는 두더지처럼 땅굴을 파도 못 튄다.

─마법이다! 바깥이야!

─뭐하는 놈들이냐! 쫓아내!

하지만 이만한 마나의 행사를 숨길 수는 없었다.

건물 안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벽에 붙어서 때를 기다리던 나는 얼탱이가 없어서 웃음이 터졌다.

《쫓아내라니, 존나 온건도 하시군.》

《……아마 여기는 은신처 중 하나. 잃기 싫은 거야.》

네페르티티가 짧게 사족을 붙여줬다.

아하. 일단 상황을 보고 몽둥이 찜질 몇 번으로 끝날 문제라면 넘어가 주신다? 좆도 온건한 게 아니군 그래.

근데 우리는 오늘, 니들더러 봐 달라고 온 게 아니거든.

《쓰으읍…….》

허리에 손을 가져가며 집중하던 오프툼이 도움닫기를 하며 마법 소재로 만든 문짝에다 킥을 갈겼다.

《이야아압─!!》

─콰앙!!!

문짝이 박살나며 2개의 존나 큰 프레스비가 된 나무판들이 안으로 날아들었다. 멀쩡한 2층 저택의 입구에서 득시글대던 병신들이 거기에 맞고 비명을 질렀다.

동네 금수저 경비원답지 않게 몸을 피한 놈들이 눈을 찢어져라 떴다. 뭐, 우리 세 사람의 면면이 오죽 유명해야지.

《오프툼이다! 흑마법사 사냥꾼!》

《브리타니아의 노르드……! 거기다 저 년은!》

네페르티티는 건방진 삿대질에 쿨한 대답을 돌려줬다.

발도를 하듯 허리춤의 채찍을 뽑아내는 그녀. 내 눈에조차 순간 흐릿해지는 속도로 팔이 움직이자, 짧았던 채찍이 길게 늘어나면서 곳곳에 중구난방으로 서 있던 새끼들의 명치를 골고루 후려쳐댔다.

─슈샤샤샤샤샤샥!!!

억 소리도 못 내고 엎어지는 병신들!

오러를 감지도, 힘을 많이 쓰지도 않은 공격이었기에 죽은 놈들은 없었다. 가능하면 생포해야 한다는 얘기였으니까.

《……밑으로 가서 알려!!》

그래도 1명마다 위력을 다르게 한 건 아니었는지 운 좋게 기절을 면한 놈들도 있었다.

쿠확─! 놈들의 몸에서 어둠과 음의 마나가 치솟았다.

《제압해.》

《예!》

그런데 겉모습에 티가 안 날 정도로 흑마법을 갈고 닦지도 않은 경비병들이 상대라면 굳이 우리가 아니어도 되자너?

오프툼의 부하들이 화살을 쏘고 투척 도끼를 던져내며 길 앞을 막는 흑마법사들을 제압하고, 사살했다.

《노르드, 네페르티티. 우리는 밑으로 내려가지.》

《방향은?》

네페르티티가 날아온 흑마법의 불덩이를 쳐내며 묻자, 오프툼은 눈을 빠르게 움직였다.

《역시 건축 길드에 등록된 설계도와 상당히 다르군. 잠시 기다려 주게. 수렵신 님의 가호란 게 방향까지 알려주는 건 아니라서……》

《고간의 형벌! 하늘 아래 달콤한 누르하치!》

나는 창을 당구 큐대처럼 내질렀다. 아르마알스 가문에서 어쩌다 보니 만들어진 바람의 기둥이 뿜어져서 근처의 창고 문을 와장창 박살냈다.

《……막아!! 죽어서라도 저 놈들을 막아!!》

《그 분들이 있는 곳으로 보내면 죽는 것보다 더한 지옥을 겪게 될 거다!!》

오프툼의 부하들에게 대가리가 터지던 잡몹 흑마법사들이 안색이 파래져서 빼액댔다.

《오호. 정답인가 보군. 날카로운 감각이야.》

씩 웃는 오프툼에게 적당히 브이 자를 보여줬다. 사이어인 왕자 같은 제스쳐로군.

《……달콤한 누르하치?》

고개를 모로 꼬는 네페르티티를 무시하고, 우리는 창고 쪽 방향으로 달렸다.

나한테 씹힌 네페르티티는 오프툼한테 질문했다.

《‘그 분들’이라는 거, 누구 같아?》

《자네도 짐작하고 있지 않나? 저 놈들의 대장이겠지.》

《예비 〈임모르탈리스〉?》

《그래. 직속 수하들이겠지. 귀찮은 일들을 대신 맡아주고, 때때로 업적 나름으로 정규 멤버로 승급하는 놈들 말일세.》

《……그래.》

네페르티티는 채찍을 쥐며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그럼, 죽인다.》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빠르게 대쉬하며 지하로 달려갔다.

이세계의 병신들은 왜 이렇게 지하실을 좋아하나 몰라.

***

─콰앙!!

노르드의 창이 길을 막으려 들던 흑마법사의 가슴을 화약 터트리듯 폭발시켰다.

네페르티티는 폭발로 인해 터져나온 불꽃을 피하면서 바로 위의 천장을 박차며 채찍을 휘둘렀다. 살해당하고 좀비화 된 전사들의 목이 판매대의 막대사탕 꺼내듯 뽑혀나왔다.

《뻔하군. 불쾌한 느낌이 찌릿찌릿 해.》

─빠각. 오프툼은 붙잡은 흑마법사의 목을 분지르며 혀를 찼다.

결계 못지 않은 창고의 지하실 문을 박살내고 들어온 공간에서는 몇십 마리나 되는 좀비와 쟁쟁한 실력의 흑마법사가 바글거렸다. 3명의 달인급 전사가 3분 정도의 시간을 지체해 버리고 말았을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그런 장애물을 뚫고 드러난 철문의 건너에선 그의 축복을 따갑게 울리는 마기(魔氣)가 뿜어져나오는 중이었다.

‘……후우. 또 꽝인 모양이군.’

거기에서 그가 수렵신께 사냥을 맹세한 원수가 없다는 걸 눈치채자, 오프툼의 입에 아릿한 쓴맛이 피어났다.

《기분 나빠.》

네페르티티는 철문에 묻은 사람 손자국 모양의 피를 보며 아주 미세하게 눈을 찌푸렸다.

외길이었던 통로를 달려온 끝는 철판으로 만든 상자처럼 벽 전면에 두른 밀실이 있었다.

창문조차 없지만 크기는 저 위의 위장용 건물보다 큰 듯이 느껴졌다. 역겹기까지 한 것은 그 철판 주위가 마치 안에서 대화하고 있을 이들이 데려온 반송장들의 시쳇물이 튄 듯이 까맣게 물이 들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쿵쿵. 노르드는 서 있는 곳에서 발을 굴렀다.

매우 심하게 둔탁하기는 했지만, 두꺼운 철판을 두들기는 것처럼 속이 빈 반향(反響)이었다.

‘속이 비었나. 층간소음 오지겠네.’

이 텅 빈 소리. 밑으로도 또 지하가 있단 뜻이다.

오프툼도 말하지 않아도 깨달은 듯 턱을 쓰다듬었다.

《지하실이 있군. 단지 내려가는 계단은 안 보이는 걸. 흠, 그렇다면 계단이 있을 법한 곳은──》

《저기.》

네페르티티는 철판으로 감싸인 밀실을 가리켰다.

벽의 한면과 밀착한 암실. 저곳에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을 것이었다.

뚫으려면 뚫을 수도 있겠지만, 지하의 넓이도 모르는데 막 내려갈 수는 없었다.

설마 이 멤버로 갇혀 죽기야 하겠냐만, 혹시 누가 아는가? 수백 미터 높이의 지하 공간이 펼쳐져 있을지.

‘안에 여럿 있군. 20명 쯤 되나?’

탈출로가 없던 걸까. 아니면 어떠한 자존심이 그렇게 시킨 걸까. 문 건너에서는 인기척이 가득했다.

눈을 찌푸리던 노르드는 일행과 아이 컨택트를 나누고, 그 문고리에 손을 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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