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538화 (538/1,009)

《거, 건방진 방문자로구나! 파라오의 말을 끊지 말거라!》

화를 내며 노려보는 자칭 파라오 잼민이.

하지만 유교이즘에 기반한 내 사고방식은 나보다 나이가 더 어린 사람을 상대로 할 때, 약 3배의 추가 보너스를 받는다. 다시 말하자면 잼민이가 노려봐도 무섭지는 않다~ 이거다.

《아, 이거 참 죄송했습니다. 말씀 마저 하십시오.》

물론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

자칭도 그렇고 등장법도 그렇고, 저 잼민이가 피라미드의 주인이라는 건 틀림이 없을 것이다.

왕릉에 안치될 만한 나이로는 보이지 않았지만, 이세계는 겉으로 보이는 나이가 그다지 의미가 없다. 일부러 척을 질 이유도 없으니 적당히 달래주면 그만이다.

구태여 예의 바른 자세를 취하자─실제 나이 차이를 생각해 보면 쪽팔린 것도 아니었다─, 자칭 파라오는 미심쩍어 하는 눈빛이었다. 왜? 믿기 힘드신가?

《……뭐, 알았다. 으흠!》

하지만 내 머릿속을 들여다 보는 건 이만한 공간을 만들고, 지배하는 그녀로서도 불가능한 일이었을까. 소녀는 헛기침을 하고선 다시 한 번 말을 내뱉었다.

《나의 이름은 이원왕 세헤테피브라! 오만방자한 왕묘의 침범자여! 그대가 현세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노라면, 내가 내리는 토트의 시련을 초극(超克)해 보여라!》

《……토트의 시련이 뭡니까?》

《잘 물어보았다! 토트란 역사를 기록하는 신! 고로 토트의 시련이란 역사 속 영웅들이 거쳐온 발자취를 되짚는 시련을 의미하느니라!》

─척! 팔을 쉴새없이 팔딱거리며 말하는 세헤테 뭐시기.

《용맹함은 힘이 부족할 때 만용이 되며, 오만함은 실력이 뒷받침 될 때 야망으로 불리운다! 나의 메르(Mer)를 침범한 그대들에게는 그 오만불손함을 용사의 단호함이라 증명해야 하는 의무가 있는 것이다!》

‘메르’라는 것은 피라미드의 옛날 표현이었다. 내 대갈통 속 파파고 번역기는 잼민이 파라오가 말하는 고대어를 원활하게 번역해주고 있었다. 언제나 충성충성이다.

그나저나 대충 듣기로는 누가 더 오만한지 모를 발언이다. 군주제 국가의 반인반신답게 폭군의 기질이 있다고 해도 별 반박은 하지 못하지 않을까.

하지만 나는 고개까지 끄덕이며 내심으로는 안도하고 있는 상태였다.

‘자비로운 판결이군.’

딱히 비아냥 같은 게 아니라, 진심이었다.

소녀가 보기에 우리는 남의 묘지를 침범해 와서는 생전에 소중히 하던 보물까지 쌔벼가는 씹새들이다. 나 같으면 그런 씨팔럼들에게 저런 서비스는 해 주지 않았을 것이었다.

이것도 가치관─아니, 사생관(死生觀)─의 차이일까.

《그 의무인지 뭔지를 채우면 현세로 돌려보내주십니까?》

《마땅히 그리 하고 말고! 이는 파라오의 천명이니라!》

《……죽은 자의 부활이 그렇게 쉬운 줄은 몰랐습니다.》

《응? 핫핫핫핫!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놈이로다! 좋아! 이는 세계의 중대한 비밀이긴 하나, 시련이 도전하는 그대는 알 자격이 있겠지!》

내가 좀 미덥지 않아 하는 걸 눈치깐 듯, 세헤테피브라는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봤자 꼬맹이여서 위엄은 없지만 말이다.

《오시리스를 위시로 한 명계의 신들은 ‘신들의 황혼’에서 명을 달리했다. 죽어 없어졌다는 의미다. 이 몸이 살아 있던 무렵부터 이미 그러했다. 이것이 신대의 비사이지.》

그렇게 말하고는 어때? 놀랍지~ 하며 눈썹을 까딱이는 그 잼민이 파라오..

《어, 엄청난 비밀이닷……!! 저승세계의 신들이 모두 죽고 말았다는 말입니까~~앗!!》

나는 몰래 눈을 굴리다가 경악하며 떠는 연기를 했다.

나야 다 아는 사실이긴 한데, 아까 리액션을 제때 못해준 것도 있었기에 일부러라도 자지러지는 반응을 보여주기로 한 것이다.

《그래! 놀랍지? 놀랐겠지? 하지만 그게 사실이다! 명계를 통치하는 이는 이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세헤테피브라는 어른이 자기랑 놀아줄 때의 잼민이들처럼 흥분 모드에 들어갔다.

역시 일본 만화식 리액션은 세계구급으로 먹히는군. 빵만 주워먹어도 달심이 되는 나라는 뭐가 달라도 달라.

근데 다른 탐험가들은 별로 리액션을 안 해 줬나? 눈치를 보니까 그런 것 같은데.

《하지만 이 몸이 누구더냐! 나는 파라오 세헤테피브라! 저 오시리스와 이시스의 아들, 호루스의 화신! 인간의 육신이란 굴레에 얽매였을 뿐, 본질적으론 위대하디 위대한 신이니라!》

《명계신의 자손! 그렇다면 혹시?》

《깨달은 모양이구나! 바로 맞추었다! 오시리스와 이시스는 명계의 터를 지배하는 신! 고로, 이 몸 역시 죽음을 사역하는 권능을 가졌느니라!》

세헤테피브라는 그 손에 에메랄드 비석을 소환했다. 뭐지? 듀얼 디스크인가?

《애시당초 그대들의 운명의 별에는 아직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우지 아니하였다! 죽은 자의 영혼이 현세에 있어서는 안 되듯, 산 자의 혼육(魂肉)이 명계를 떠돌아서는 안 되는 법!》

태블릿을 조작하는 것처럼 비석을 만지던 그녀가 말했다.

아마 저 태블릿으로 사람의 죽음이니 뭐니 하는 걸 볼 수 있는 걸까? 그러고 보면 다나의 반지에는 지금 내 몸 상태가 어떻게 뜨고 있으려나 몰라.

《따라서 그대들이 침입자가 아닌, 파라오가 자비를 베풀 가치가 있는 영웅임을 증명한다면──》

에메랄드 비석을 다시 소환 해제한 세헤테피브라는 뜨거운 태양열이 힘들지도 않은 듯, 갈색 피부를 생기발랄하게 빛내가며 포즈를 취했다.

《이 몸은 이승의 지배자이자 명계신의 대리인, 파라오 된 자로서! 그대들이 나의 메르에서 금은보화를 가지고 현세로 돌아가는 것을 허가하겠다!》

***

푸드덕─!

간단한 듯 복잡한 설명을 끝내고, 세헤테피브라는 사라졌다. 등장했을 때처럼 화려한 연출이 가미된 퇴장이었다. 새 떼가 사라지는 모습은 과연 새대가리 신의 화신다운 연출이로군.

“어디, 그러니까…….”

나는 들었던 얘기를 노트에 필기했다.

요약하자면 일종의 스테이지 공략 게임 같은 거겠지.

‘우리는 저승에 떨어졌을 뿐이지 죽지는 않았고, 그러니까 자기 눈에 차는 실력을 보여주면 이승으로 되돌려 주겠다는 얘긴가. 알기 쉬워서 좋긴 하군.’

걱정되는 점은 있다. 그 시련이란 게 내가 못 깰 만큼 난이도가 미쳐버렸을 경우다.

하지만 사실 그다지 큰 걱정거리는 아니었다.

‘도전자가 공략하지 못하는 게임은 쓰레기니까.’

제 1왕녀와 우연히 만나서 그녀의 사정을 들었을 때부터, 나는 생각했었다.

‘독샘을 성배에 채워서 다음 맵으로 넘어간다? 게임이라면 평범한 구조지만, 유적에서는 오히려 보기 드물지. 침입자가 다음 맵으로 넘어가도록 하는 기믹을 넣을 이유가 없잖아?’

게다가 90%의 유적은 과거에 처음 세워졌을 때는 평범한 건물에 불과하지 않은가.

당장 우리 집도 천 년 정도 지나면 유적이 되겠지. 하지만 어디 그 안에다가 스위치를 여러 개 조작해야 열리는 문 같은 걸 만들어뒀던가?

물론 그럴 능력은 되지만, 그럴 이유가 없다.

‘기믹 따윈 만들어봤자 일상생활에 거추장스러울 뿐이지.’

완전히 ‘들어오지 못하게’ 만들 생각이면 예전에 공략했던 지저의 탑처럼 아예 지하 깊숙이 쳐박고, 쳐들어왔을 때만을 대비한 함정만 설치해 두면 충분했다.

‘다시 말해서…… 이 피라미드는 공략이 가능하도록 만든 곳이다.’

피라미드가 털리던 건 어제 오늘에만 그런 게 아니다.

‘세헤테피브라의 시대에도 과거의 피라미드를 발견하면 그 안을 털기는 했겠지. 애초에 막는 건 불가능하다고 여기고서 자기 미이라가 안치된 후의 놀이터로 설계한 거야.’

다시 말하자면 이곳은 일종의 초대형 방탈출 맵 같은 것!

퍼즐이나 기믹을 해제하고 넘어가는 시스템이다. 도전자가 못 깨게 만들었을 리가 없다.

미스릴 클래스 정도의 실력을 가진 나라면 어떻게든 몸을 비틀어가며 깰 수 있겠지. 그 이상의 실력을 요구한다면 이미 시련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살인 함정이니까.

‘21세기 현대 방탈출 같은 안전선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게 낫겠지만.’

세헤테피브라는 저렇게 보여도 고대의 군주이다.

신대만큼은 아니어도, 삶과 죽음의 차이에 별 의미를 두지 않았던 시대의 인물!

자기 묘지를 헤집는 도굴꾼들마저 환대하는 사람이었지만, 거꾸로 말하면 지금의 자유로운 운신은 그녀의 자비에서 비롯되는 것이었다.

‘도굴꾼은 묘지의 주인에게 죽더라도 불만을 말할 처지는 아니지. 정색하고 죽이려 들어도 당해줄 생각은 없지만.’

품 안에서 룬 매직 아이템의 존재를 확인하는 나.

나는 다른 이들과는 다르게 흑심을 품고 들어온 게 아니긴 한데, 자택에 침입해 놓고 그딴 변명을 주워섬겨봤자 존나 뻔뻔하게 들리기만 할 것이다.

그럴 바에야 그냥 실력으로 뚫고 나가는 게 낫다.

호루루루─!

그때였다. 내 손바닥에 조금 전에도 봤던 에메랄드 비석이 떠오른 것은 말이다.

《◇ 목표: 제 4계층에 존재하는 문을 찾아 다음 계층으로 넘어가시오.》

《◆ 보상: 제 4계층에서 획득할 수 있는 모든 것.》

엄맛 씨발, 이게 뭐람?

나는 비석에 적힌 글을 읽고서, 감추지 못할 환희를 담아 비명을 내질렀다.

“이것은…… 상태창!!!!!”

이 존나 어줍짢은 이세계에서 그렇게나 찾아 헤매던 나의 상태창이 드디어 등장한 것인가!!

“열려라, 상태창!!”

1초도 아깝다는 듯 내 상태창을 열고자 소리친 나였지만, 에메랄드 비석은 아무런 대답도 해 주지 않았다.

쓰벌, 왜 안 되는 것이지?

“상태창!! 창태상!! 시스템!! 스테이터스!! 포켓몬 도감!!”

사막에서 덩그러니 지랄을 떨어봐도 에메랄드 비석이 내가 가진 스탯과 스킬 리스트를 보여주는 일은 없었다.

그쯤 되자 이해할 수 있었다.

이건 상태창이 아니라, 여기 없는 세헤테피브라가 배부한 공략지침서라는 걸.

“옘병. 상태창이 아니라 가정통지서였냐고.”

실망감에 몸서리를 치던 내 손에서 비석이 사라졌다. 존나 제행무상을 깨달을 것 같군.

한숨을 쉬며 아쉬움을 털어냈다.

우리 아내님들을 생각하면 이러고 있을 수만도 없다. 만약 저 상태창이 진짜였다면 내 오토매틱 자소서로서 쓸모가 있었겠지만, 한낱 미몽에 불과하지 않았는가.

‘일단 눈에 보이는 저 유적 쪽으로 이동해야…… 아니지.’

그렇게 생각하다가 스스로의 결론에 트집을 잡았다.

‘……방금, 이 층에 존재하는 문을 찾으라고 하지 않았나?’

시련의 목표가 그거였는데, 문의 위치가 저렇게 뻔한 곳에 있을까?

저 유적 어딘가에 철저히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쓸데없는 시간 낭비를 피하고자, 나는 코트를 벗었다. 존나 안 그래도 더워 뒤질 것 같은 참이었으니 잘 됐다.

펄럭─!

룬 마법으로 코트를 열기구처럼 변신시켰다.

거기에 마법의 술식 결합으로 간단한 상승기류를 만들자, 내 몸은 열기구처럼 하늘로 날아올랐다. 비행이 불가능하니 조금 볼품은 없어도 이렇게 하는 게 나았다.

유적을 내려다볼 정도까지 올라간 나는 인을 맺었다.

“안개 분신술.”

펑─!

수증기가 모이며 내 분신을 만들었다. 기체였기에 공중을 날아다닐 수 있는 분신이다.

앞으로 끌어당겨서 바람 마법에 마나를 방출하는 힘으로 저 멀리 있는 유적에 발사했다.

“지금의 너는 인간 드론이다. 캐터펄트 사출!”

“우오오오오아아!!”

내 분신은 미사일처럼 날아갔다.

원래는 거리가 떨어지면 형태를 유지하기 힘들지만 룬과 야수회귀의 마나로 고정시켰다.

버드 미사일이 된 분신이 유적의 벽에 격돌했다.

푸욱─!

아, 정정하자. 격돌하지는 않았다. 신기루처럼 벽을 관통한 분신은 모래사장에 쳐박혔다. 내가 어렵사리 조작해서 일으킨 분신은 유적을 유령처럼 통과하며 쏘다녔다.

“신기루였군.”

나는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안 그래도 일대가 사막이라 랜드마크로 삼을 게 내려오는 입구와 유적 뿐인데, 잘못해서 길이라도 잃었다간 봐라. 그냥 그대로 영원히 사막의 미아로서 좆돼 버렸을지도 몰랐다.

90년대 초글링들의 필독서 ‘사막에서 살아남기’에서 배운 지식 덕분이다.

‘……문제는 내가 신기루를 간파하는 방법을 모른단 건데.’

어떻게 생각해 봐도 방법이 없었기에, 그냥 마나를 써서 내 분신을 더욱 만들었다. 인해전술은 호카게도 인정한 고독을 달래기 위한 인술 아니던가.

“노르르르르──”

분신들은 뿔뿔이 흩어져서 사방을 뒤졌다.

동물이 있을 리 없으니까 내 마나를 쓰는 수밖에 없다. 이 높은 위치에서 대기하고 있자니 공포는 없어도 뙤약볕 땜에 뒤질 것 같았지만, 이러는 편이 효율적이니 참아야 했다.

─슥.

그렇게 잠깐 여유가 생기자마자, 나는 석판에서 노트부터 꺼냈다.

메세지를 적은지 2~30분 쯤 지났다. 내려오기 전에 살짝 봤을 때는 아직 답장이 없었지만, 그때로부터 10분은 가뿐히 지났으니까 아내님들이 봤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오!”

그리고 내 기대는 들어맞았다. 노트에 못 본 문구가 있다. 다나의 필체였다.

페이지 양면을 차지할 정도로 큰 글씨체에 허겁지겁 갈겨 쓴 듯 난잡한 악팔이었다. 나는 메리 포핀스처럼 한 손으로 열기구를 잡고 날아댕기며 노트에 적힌 글을 읽었다.

─야 씨발 좆 같은 새끼야!!! 개씨발 새끼야!!!

─니 지금 어디야 빌어먹을 새끼야!!!

“오.”

우리 눈나 어휘력 존나 낮아진 것 봐.

대체 얼마나 정신이 없었으면 그랬을까. 혹시 반지에는 내 상태가 뒤짐으로 뜨나?

와이파이 권외 지역을 넘어서, 진짜 픽 뒤진 놈들만 가는 세상에 있으니까 그렇게 뜰 만도 했다. 반지의 매커니즘이 내 영혼의 수신호를 지옥에서 받고 있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일단 내려가서 답장을…… 음?’

마침 그때 분신 16호가 중소기업에서 만든 자동 사냥 A.I.처럼 빈 공간에서 대쉬를 하고 있는 걸 발견했다. 마치 눈에 안 보이는 벽에 가로막힌 게임 캐릭터 같다.

저기인가. 나는 열기구를 글라이더로 바꿨다.

쐐애애애액─! 헤스왈드 자매에게 배웠던 글라이더 이동을 사용해서 착지. 다시 코트로 바꾼 옷을 해군 대위처럼 어깨 견장에 대충 붙여놓고 빈 공간을 발로 깠다.

─퍼석!

돌담이 무너지면서 안의 공간이 드러났다.

보란 듯이 무지 커다란 문이 있다. 양옆의 석상은 세월에 깎여나간 것처럼 이목구비가 없지만 위풍당당한 자세였다.

‘딱 봐도 그냥은 안 열리게 생겼군.’

아마 유적 곳곳을 돌아댕겨서 문을 여는 시스템을 찾는 식이겠지.

─털썩. 근처 그늘의 돌에 앉아서 답장부터 썼다.

지금 어쩌다 보니까 저승세계에 있고, 피라미드를 통해서 이승으로 돌아갈 방법을 찾아냈다는 내용의 메세지다. 대충 간략하게 설명하려다가 아내들이 눈 돌아갈 것 같아서 그냥 알아낸 사실을 전부 받아썼다.

─추신: 지금 첫 번째 맵부터 공략 중임.

그녀들의 안전을 묻는 말의 뒤로 그렇게 추신을 남겼다.

노트를 돌려놓고 석판을 뒤져봤다. 내가 부탁한 포션이나 식량이 거의 산처럼 쌓여 있었다. 빠르기도 하지.

물을 꺼내 마시고 건식으로 배를 채운 뒤에, 기상.

‘……문은 닫혀 있지만, 들은 바로는 나 외에 앞서 내려간 사람들이 있댔지.’

턱을 닦으면서 생각했다.

그들이 전부 사막의 어딘가에서 헤매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기 힘들다. 나보다 더 전문가인 이들이니까 어떻게든 여길 찾아내고도 남았을 것이었다.

‘그렇다는 건 이미 공략이 끝난 맵이란 소리인데.’

그러면 문은 왜 닫혀 있을까.

세헤테피브라가 닫은 걸까? 가능성은 있었지만 눈을 조금 부라려보자 그것보다 더 그럴싸한 증거를 발견할 수 있었다.

문 근처의 발자국을 찾아냈다.

바람이 부는 사막인데 이런 얕은 발자국이 남아 있다니?

여기에 들렀던 사람들이 흔적을 완전히 치우지는 못했다는 거다. 그리고 지나간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했었고 말이다.

‘답장이 돌아온 걸 보면 아내들은 안전하겠지.’

그러니 더는 급할 건 없었지만…… 굳이 빙빙 돌아갈 것도 없다.

오딘의 눈으로 여기 와서 처음으로 마법의 흔적을 발견한 나는 창에 오러를 담아서 휘둘렀다. 형광색 마나가 큼직하게 반월을 그리면서 바위를 갈아버리고자 날아들었다.

─콰앙!!

하지만 문의 분쇄에는 이르지 못했다.

문이 단단해서가 아니다. 옆에서 끼어든 창이 막은 것이다.

쿠구구구…….

석상은 이목구비도 없는 주제에 날 정확하게 겨누었다.

내 허리보다 굵은 창에다, 키도 무식하게 커서 서리 거인들보다 더 거인 같다.

“빙고.”

그래도 나는 흐뭇하게 웃었다. 애시당초 노리고 있었던 건 좌우에 서서 문을 지키는 석상이었다.

골렘은 아니다. 오딘의 눈에 걸렸던 기척은 다른 것이었다.

파사사삭─!!

석상의 표피가 무너지고 원래 모습을 드러냈다.

모래 정령, 아니면 샌드맨 쯤 되려나.

‘문을 닫은 건 이 녀석들이었겠군.’

먼저 왔던 이들은 어떻게 유적 어딘가에 있는 장치를 건드려서 열었겠지.

저기 있는 샌드맨들은 석상인 척 그들을 보내주고, 나중에 시치미를 떼며 문을 닫았던 게 아닐까?

“그런데 말이야, 너희가 문을 닫았다는 건──”

창에 오러를 감았다.

느껴지는 프레셔는 얕봐도 되는 적은 아니었지만, 질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기믹을 쓰지 않고, 그냥 부숴도 열린다는 뜻이지?”

나는 히죽 웃었다. 잼민이 파라오의 분노를 살 일은 없을 것이다. 이것도 공략법의 한 가지다. 수호자를 세웠다는 건, 힘으로 뚫는 상대를 염두했다는 뜻이니까.

만약 힘으로 뚫리지 않기를 바랐다면, 세헤테피브라는 이 문을 절대 부술 수 없는 재료로 만들 능력도 됐을 것이었다. 여기는 그런 세계니까.

무엇보다 유적의 공략법 중에, 능력이 되는 한 가장 빠른 수단은 힘으로 전부 때려부수는 방법 아닌가!

나는 예상이 맞아들어간 것에 미소를 짓고, 번개처럼 창을 내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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