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539화 (539/1,009)

***

“우리는 존나 남자를 잘못 골랐어.”

노트에서 눈을 뗀 다나가 읊조렸다. 울거나 망연자실하게 쓰러져 있던 여인들은 시간의 차이는 있어도 모두 그 지나친 발언에 잠시나마 공감해 버리고 말았다.

정작 말한 본인은 공감을 바란 건 아니었다는 듯, 다나는 가족들의 손에서 구겨진 노트에 아득바득 답장을 쓰며 눈을 비벼댔다. 빨갛게 충혈된 흰자는 분노와 슬픔의 흔적이다.

“사람 걱정 시키는 것도 유분수지. 하다하다 이제는 진짜 뒤지기까지 해? 시발, 개 같은 새끼. 돌아오면 아무 데도 못 가도록 꽁꽁 묶어놓고 돌아가며 감시할 거야.”

“……죽었다는 소식이 착각이어서 다행이네요. 아니, 어떤 의미로는 죽은 게 맞긴 할지도 모르지만요.”

감정의 급락과 급등에 사고능력이 따라가지 못한 티르시가 지리멸렬하게 중얼거렸다.

지옥에 갔다면 그게 죽은 것과 얼마나 다르겠는가? 베로니카도 그 말에 묵묵히 공감했다.

그가 죽었다는 생각을 했을 때만 해도, 베로니카는 심장이 얼어붙는 것만 같았다.

그대로 10분만 더 지났더라면 그녀는 모든 장래의 목적을 철폐하고 흑마법사의 절멸에 신족의 기나긴 삶을 전부 쏟아부었을지도 몰랐다.

실제로 어떻게 하면 저 코뤤투스라는 인간을 부활시켰다는 방법을 손에 넣을지 고민하고 있던 참에, 수시로 노트를 확인하던 다나가 답장이 돌아왔다며 괴성을 지른 게 지금까지의 전말이었다.

“존나 개 병신 같은 반지.”

어제까지만 해도 보물 중의 보물이었던 반지를 재평가하며 노트를 메달 안에 던져넣는 다나였다.

화가 나서 차마 못할 말까지 했지만, 따지고 보면 이번엔 노르드의 잘못은 아니다.

노력했는데도 그런 결과가 된 것 아닌가. 아내로서 지금은 죄없는 남편에게 불평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

숨을 고른 다나는 일행에게 물었다.

“……갈 거지?”

“응.”

프랑이 대답했다. 누구보다 빠른 즉답이었다.

다나는─그녀 역시 그럴 생각이었는데도─ 그 외에는 아무 대답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만 같은 즉답에 무심코 부정적인 의견을 내뱉었다.

“따라갔다가 못 돌아오면 동반 자살이다?”

“가만히만 있다가 노르가 못 돌아오면 미망인인걸?”

다나는 조용해졌다. 어쩌면 저렇게 그녀와 생각이 똑같은 걸까. 남자 취향이 비슷하면 생각하는 것도 비슷한 건가?

정말 하등 쓸모 없는 생각이 머리에 스치길래 다나는 대충 머리를 털어냈다.

“니들은…… 그래, 너희들도 갈 생각인가 보네.”

질문을 반복할 것도 없었다.

다른 일행들도 같은 의견으로밖에는 보이지 않았으니까.

“그래도 전원이 가는 건 바보 짓이에요.”

라리루라는 부끄러운 듯 눈물 자국을 닦으며 말했다. 눈물콧물을 쏙 뺐다가 노르드의 답장에 광희난무하며 다시 울던 꼴이 생각나서였다.

“저승이랑 연결이 된다면서요? 그러면 제가 남을게요. 제 링링이 6호는…… 하루 아침에 복구하긴 힘들 듯 해서.”

오러에 노출된 꼭두각시는 내부에서부터 심한 부담을 지고 말았다.

파괴는 면했지만 부러질락 말락 하는 검을 들고 돌아오지 못할 도전에 덤벼드는 건 어리석은 짓이었다. 그리고 또, 이 현실 쪽에 보급을 맡을 인물은 남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투기장에 있던 포션과 식량을 영주 대리의 멱살을 잡듯이 강탈해 와서 전부 아공간에 처넣었지만, 그걸로 충분하리란 낙관은 할 수 없었다.

혼자 생각하던 티르시가 말했다.

“그보다 베로니카. 아공간이 연결된다면 노르드를 데려올 수는 없나요?”

“……아공간의 연결과 죽은 자를 차원 너머로 데려오는 건 차원이 다른 얘기다. 솔직히 부활 자체도 방금 직접 보았던 흑마법사의 존재가 아니었으면 회의적이었을 테지.”

베로니카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생물이 통과할 수 없는 공간 간의 연결과, 완전히 다른 두 세계 간의 연결.

이 2개는 전혀 다른 일이었다. 전자가 국에서 기름을 뜨는 정도의 기술이라면 후자는 기름에 볶은 야채를 땅에 심어서 열매를 맺도록 하는 일이나 마찬가지잖은가.

공간을 이동하는 마법 정도로 어떻게 해낼 문제가 아니다.

“그래도 가망은 있다.”

베로니카는 목소리를 낮췄다.

“내 선조의 고향, 애시르 신족의 땅 아스가르드와 이곳은 신대까지만 해도 교류가 잦았다. 세계 간의 이동이 가능했단 의미지. 죽은 자들의 세계라고는 해도 우리 주인님은 육신이 멀쩡하게 남았다고 하고.”

“노르드가 얘기해준 자칭 파라오의 말도 허황되기만 한 건 아니라는 거군요.”

“아마도. 피라미드에 안치된 미이라라는 것부터가 그렇다. 미이라란 파라오가 사후에 이승에 돌아올 수 있도록 영혼에 맞는 본인의 육신을 보존하는 것이니, 영(靈)과 육(肉)이 멀쩡하다면 되살아날 가망은 커.”

어떤 의미로 생사관에 가장 초탈한 것이 바로 나르메르의 신화다.

이 사막의 신들에게 죽음과 삶은 표리일체다. 부활이라는 위업을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이들은 신들을 포함해도 이곳 외에는 달리 없을 것이었다.

“아, 진짜! 됐어! 말 뿐인 얘기는 이쯤 하자!”

다나가 머리를 헝클어트렸다. 그녀의 머리카락을 개털처럼 만드는 주된 버릇이었다.

“일단 그 피라미드라는 곳으로 가고 나서 다시 생각하자. 여기서 백날 토론해봤자 무슨 소용이야?”

“……그렇긴 하지. 우리 주인님이 무신경한 것과는 별개로 말이다.”

노트의 글귀를 생각한 베로니카는 조금 머뭇대다가 말했다.

자기가 죽은 판국에 저런 긴장감 없는 필적과 말투는 대체 뭐란 말인가? 너무 태평해서 반대로 아무런 의심도 없이 노르드가 맞다고 받아들일 수는 있었지만 말이다.

“그치만 가는 길에 호위는 있어야 해요.”

코를 훌쩍이던 라리루라가 첨언했다.

새로운 피라미드에는 아직 가 보지 않았다. 〈공간 이동〉은 사용할 수 없다.

다시 말하면, 도보로 이동해야 한다.

그리고 사막만큼 사람을 해치우고 묻기 좋은 곳도 없었다.

〈임모르탈리스〉의 남은 인원이나 습격 이유도 확실하지 않은 지금, 호위는 꼭 필요했다.

“……그 문제는 나한테 맡겨 줘.”

그렇게 말한 건 프랑이었다.

프랑은 다른 파티원들이 뭐라고 채 대답하기도 전에 발을 움직였다.

발길이 향한 곳은 구석에서 조용하게 눈을 반개하고 있는 네페르티티의 앞이었다.

“노르가 없어지는 순간을 목격했다고 하셨죠.”

프랑은 다짜고짜 물었다. 몇 분 전에 다급하게 투기장으로 달려왔던 미스릴 클래스의 모험가는 작은 입을 우물거렸다.

그렇게 오래 전도 아닌 예전에, 노르드와 저 하프 드워프 여인을 만난 기억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에 떨고만 있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눈빛에 네페르티티는 드물게 말문이 막혔다.

〈미안하다. 코앞에서 사라지는 걸 놓치고 말았어.〉

그런 네페르티티와 교대하듯 오프툼이 대답했다.

〈임모르탈리스〉의 정규 멤버를 마무리 지었을 때였다. 그 이름도 제대로 모를 흑마법사에게서 심장 박동이 그쳤을 때, 노르드는 눈 녹듯 지하의 밀실에서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그야말로 한순간. 꿈이 깨는 것처럼 사라져버렸기 때문에 오프툼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환상 마법에 속아넘어간 게 아닌지 경계해 버렸을 정도였다.

〈처음엔 아가씨들이 위험하다는 얘기에 어떤 방법을 써서 바로 이동한 줄로만 알았는데…….〉

오프툼은 그쯤에서 말을 줄였다.

핑계를 대는 건 무의미하다. 이 이상 말해봤자 변명밖에 더 되겠는가.

남편을 잃은─아직 완전히 잃은 건 아니지만─ 여인에게는 위로도 되지 않을 자기변호다.

급하게 투기장으로 달려오고서야 상황을 듣고, 어떻게 노르드와 연락을 취했다는 얘기에 그나마 마음을 놓은 게 고작 몇 분 전이었다. 상황에 어울리는 말은 아니었다.

─끄덕.

프랑은 그 로마니아 어를 전부 알아듣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미 지나간 사건의 자세한 흐름 같은 건 그녀가 알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노르드가 멀쩡하게만 돌아온다면, 이 일도 술자리의 안주 거리로 쓸 체험담 정도로 그칠 것이었으니 말이다.

“부탁드려요. 저희랑 같이, 노르를 도와주세요.”

프랑은 네페르티티에게로 얼굴을 향했다.

“보수는 원하는대로 드릴게요. 저랑 저희 가족들의 목숨만 아니라면 뭐든지 괜찮아요.”

언어의 장벽에 막힌 오프툼은 그나마 브리타니아 어를 할 수 있는 네페르티티에게 눈짓을 했다.

표정과 분위기로 프랑이 어떤 요구를 하고 있는 것인지는 알았다. 그렇기 때문에 네페르티티에게 답변을 맡긴 것이다.

“……………….”

네페르티티는 아주 잠깐, 그야말로 5초도 되지 않는 잠시 동안 입을 다물었다.

아직까지도 말문이 막혔거나, 고민을 하는 것일까.

“갈게.”

프랑이 속이 타들어가는 듯한 기분이 되기 직전, 네페르티티는 두 눈을 어딘가로 향하며 말했다.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없는 눈빛이었다.

“그 사람은, 살아 있었으면 하니까.”

***

“엄마 씨발 나 쥬거!!”

패애앵─!! 발리스타처럼 꽂히는 창을 피하며 나는 트리플 액셀을 밟았다.

몸에 스핀을 넣어서 다른 쪽 샌드맨의 창을 후려깠다. 저 덩치가 거짓말처럼 내 회전 회오리 홀인원 어택에 샌드맨의 몸이 뒤로 젖혀지며 치명적인 틈을 드러냈다.

“독수리 슛 슈슉 시발럼아!!”

─푸확! 훤히 드러난 틈을 노리고 공격.

모래를 상대로 불이나 번개는 좆도 의미가 없을 것이니, 내 오러를 바람의 마나로 전환해서 내지르는 람각이었다. 발끝에 회돌던 폭풍이 샌드맨의 머리통을 토막냈다.

파스스…….

하지만 대갈통이 무화과처럼 쪼개져도 샌드맨은 그러거나 말거나 하며 반격을 날려댔다.

‘저 씨팔 새끼는 애미가 이유식을 엘릭서로 처먹였나.’

가슴은 불평을 하더라도 머리는 냉정하게. 이치에 맞도록 적을 분석하며 짧게 혀를 찼다.

‘땅 계열의 마법 정령인가.’

사람이 만든 인조 정령이다. 핵을 부수지 않으면 뒤지지도 않을 것이었다.

약점으로 보이는 곳을 열심히 노려봤지만 데미지가 통하질 않는다.

‘아직 노리지 못했던 곳은…… 가슴.’

남은 곳 중에는 이상하게 뻠삥된 가슴팍이 가장 수상하다.

설마 적을 공격해대는 팔다리에 정령핵이 있지는 않겠지. 부랄이나 쥬지로 공격을 가하는 것만큼 미련한 짓이잖은가.

“ᚨ(Ansuz).”

촤악─!

창에 오러를 망치처럼 감았다. 절대천공영역으로 만드는 짭 묠니르의 어레인지다.

오러 덕분에 파괴력은 4~50% 쯤 될 것이다. 나는 형광색 망치를 들고 완전히 동귀어진의 기세로 돌격했다. 당연하게도 샌드맨 2마리는 내 대쉬를 예측하고 창을 휘둘렀다.

하지만 동귀어진의 기세랬지, 진짜 같이 죽자는 마인드는 아니란 말이지.

카가가각─!!

무쇠 같은 바위창을 살을 깎듯 피했다.

종이 한 장 차이라기보단 전공서적 1권 오차로 몸을 내준 수준이었는데, 우주방어 상태의 내 오러-마나 코팅을 뚫기는 위력이 모자랐다. 방어력만 믿고 달려드는 무식한 전법은 꽤 유효했다.

‘니들 창술 수준은 봤다.’

무시하기에 충분한 수준이다. 나는 망치로 무식하게 샌드맨 1마리의 가슴을 두들겼다.

“빛이 되어라!!”

─콰앙!! 뭔 폭탄 터진 듯 모래가 비산하면서 가슴 안에서 푸르스름한 뭔가가 보였다.

즉시 오러를 끄고 손을 넣어서 적출했다.

“앗 씨발 따가!!”

손바닥에 잠깐 통증이 있었다. 피가 흐르는 느낌도 들었다.

당황한 나는 눈을 빠르게 굴렸다.

‘쓰벌, 웬 선인장?’

퍼런 선인장이다. 자체적으로 빛을 뿜는 물건이었는데, 그 마나량이 예사롭지 않았다. 야수회귀의 마나로 지켜지는 내 손바닥을 뚫어버렸을 정도다.

우르르르…….

정령핵을 뺏긴 샌드맨이 무너졌다.

선인장을 챙기며 다른 쪽도 똑같이 해치웠다. 투콰앙─!!! 낙뢰의 천둥 소리를 폭발이 대신하며 사막에 꽂힌 번개처럼 유적이 몸에 쌓은 먼지며 모래를 떨어트리게 만들었다.

모래 연기는 폭발이 일으킨 바람에 걷혔다. 바닥이 파문을 그리며 넓은 잔물결을 그렸다.

“거 쓰벌럼이 준내 따갑네.”

그리고 나는 또 뽑아낸 선인장에 손가락을 뚫렸다. 빠르게 적출하다 보니까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요 좆만한 게 얼마나 마나를 품고 있으면 해봤자 식물에 불과한 선인장의 가시가 내 믿음직스러운 마나 코팅을 간단하게 뚫어버린다는 말인가?

‘독은 없겠지?’

은근히 쫄려서 손아귀의 마나 코팅을 더 두껍게 하는 나.

지가 암만 날카로워 봤자 길이는 짧다. 이렇게만 해도 내 손바닥이 찔릴 걱정은 없었다.

호루루루─.

혹시 몰라서 매지컬-해독 포션을 입에 가져가는 내 앞에 또 에메랄드 비석이 떠올랐다.

공중을 부양하는 비석의 글귀가 번쩍거리며 몇 줄 늘었다.

《◆ 모래의 정령(Jin)의 심장.》

《무분별한 사냥의 끝에, 사막의 정령들은 신대의 종언과 함께 멸종했다.

인류는 또 1명의 보모를 세상에서 지웠다. 방만한 혼돈을 자유로서 즐길 자격이 그들에게 있는지는, 이제는 없는 신들만이 알리라.》

《섭취 시, 체질에 따라 마나량의 상승을 도모할 수 있다.》

‘……마나량 상승?’

나는 눈이 주먹만 해졌다.

설마 먹기만 해도 사람의 내공을 증진시켜주는 영약이다, 이 말인가?

이세계에서 4년을 살면서 처음 보는 물건이었다. 존나 이 판타지의 국룰을 거의 지키지 않는 똥망 이세계에도 이렇게 간편하고 편의성 좋은 아이템이 존재했다니!

‘아니네 씨팔. 신대에 멸종했다고?’

비석이 새겨진 중2병 같은 글을 다시 읽고 혀를 차는 나.

개미가 주식이 오른다고 눈치챘을 때는 이미 늦었다던가?

이세계인 새끼들도 그거랑 똑같은 모양이었다. 세헤테피브라가 고심 끝에 생각해냈을 시적인 글은 이 선인장이 현대에서는 구할 수 없는 물건이라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

‘이걸 양식하는 건…… 씨발, 됐다. 포기하는 게 맞겠지.’

욕심은 들지만, 불가능할 거라는 견적이 나오니 곱게 포기하기로 했다.

아마 정령이란 게 어디에 깃들었다 뒤져야 이런 아이템이 만들어지는 모양인데, 내가 잡은 샌드맨들은 용케 남아 있던 선인장을 토대로 만든 인공 정령인 것 같았다.

‘양식이 가능했으면 골렘이 만들어지지도 않았을 거고. 걍 얌전히 챙겨가자.’

체질에 따라서~ 라는 설명은 바로 이해가 갔다. 또 속성의 적성 얘기겠지.

DNA 좆망겜 같으니. 조금만 알아보고 문제가 없다면 프랑한테 주자. 선인장을 뭘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는 좆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나는 대충 드랍템만 챙기고 비석의 윗줄을 다시 읽었다.

나도 유적은 인생역전의 기회라고 누누이 말하긴 했는데, 이 유적은 역시 그중에서도 조금 많이 특이한 편이었다.

《◆ 보상: 제 4계층에서 획득할 수 있는 모든 것.》

아까는 경황이 없어서 별 생각이 없었는데, 다시 보자 참 어이가 없는 글 아닌가.

유적이란 게 결국 시간 문제일 뿐, 전부 털려서 내용물을 뱉어낼 운명인 건 맞다.

하지만 자기 입으로 보물을 가져가도 좋다고 말하는 유적 주인이라니? 하해와 같은 마음가짐에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그런데…… 이게 꼭 좋지만은 않을 것 같단 말이지.’

나는 혀를 차고 노트를 꺼냈다. 아내들에게 전언을 남기기 위해서였다.

지상에 소식이 전해지지 않는다면 큰 문제다. 먼저 여기에 온 탐험대는 물론이요, 나중에 올 탐험가들도 좋다고 들어왔다가 그 인원 그대로 밑으로 내려가게 될 것이다.

하지만 세헤테피브라의 호의 덕에, 이 피라미드는 보물과 목숨이 걸린 서바이벌의 전쟁터가 될지도 몰랐다.

물론 그렇다고 보물까지 시원스럽게 내주는 잼민이 파라오에게 도굴꾼들의 안전한 귀환까지 보장해 달라는 건 너무나 양심 터진 소리였다.

‘루브르 박물관을 빵빵하게 채운 옛날 도굴학자들도 그딴 개소리는 안 읊었겠다.’

애초에 그녀는 시련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나도 귀환을 목적으로 발을 들이고 보물을 챙긴 순간부터 다른 도굴꾼들을 나무랄 자격은 없었다.

이 세계에선 과거의 유적을 터는 게 미덕이라지만 호의를 권리로 여길 정도로 양심이 없지는 않다. 그런 건 교수 슬레이어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 짓이었으니까.

‘좀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는데, 자주 연락할 테니까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 됐다.’

─끼적끼적, 텁.

노트를 덮은 나는 문을 부수고 다음 계층으로 내려갔다.

유적 탐험이라. 생각해 보면 오랜만에 고고학자다운 일이 되겠군.

‘여기서 주운 걸로 최소한 석사 금장은 딴다.’

새로운 장작을 의욕의 불길로 삼아, 나는 길을 나아갔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