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552화 (552/1,009)

“네. 사실 오프툼 씨도 같이 왔는데…… 아직 못 만났어요.”

내가 니플헤임의 널널한 입장컷에 싱숭생숭해 하고 있자, 티르시가 그렇게 말했다.

존나 오프툼도 따라 왔다고? 나는 살짝 인상을 쓰고 있자 길다트가 말했다.

“아마 8계층에 있겠군. 그렇다면 올라오지 못할 만하다. 저 층은 복잡하진 않지만 지독히도 혹독하고, 넓으니.”

8계층의 정보는 며칠 사이에 대충 들었다.

바람이 불지 않는 설원이라 하는데, 아마 니플헤임이겠지. 이 피라미드는 밑의 계층으로 갈수록 세헤테피브라의 삶을 재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역시 8계층이 최후의 시련이겠지.

그 잼민이 파라오에게 니플헤임 이후의 종착역은 존재하지 않았을 테니까.

거기까지 생각한 나는 한숨을 쉬었다.

“……제가 할 말은 아니지만, 세 분 다 너무 생각이 없으신 것 아닙니까? 죽는 건 쉽더라도 되살아나는 것도 똑같이 쉬우리란 보장은 없는데요.”

“〈임모르탈리스〉의 본진이 여기 있다면.”

네페르티티가 툭 던지듯 말했다. 자신도 모르게 말을 꺼낸 것인지, 표정 변화가 없는 그녀는 뒤에 덧붙일 말을 노심초사하며 고르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어차피 왔었을 거야. 그도 나처럼, 그걸 위해서라면 죽어도 상관 없다고 생각할 테니까.”

“에퀴녹스에게 책임을 묻는 것도 좋습니다만, 그…… 놈을 해치우는 것이 삶의 전부는 아니시잖습니까? 사실 〈임모르탈리스〉에 소속한 흑마법사는 그밖에도 많고요.”

살짜쿵 주저하며 질문했다.

나는 네페르티티의 사정을 모른다. 그렇기에 이 화제는 막 가볍게 묻기에는 상당히 민감한 사안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르긴 몰라도 그녀와 오프툼은 〈임모르탈리스〉 새끼들에게 막대한 분노와 증오를 품고 있을 것이었다. 논문을 닌자당한 내가 교수들에게 품었던 분노의 몇 배에 달하는 큰 복수심을 말이다.

그렇지 않다면 일부러 놈들을 찾아다니며 죽일 리가 없다.

“……………….”

네페르티티는 조용히 나를 쳐다보기만 했다. 화를 내는 건 아닌 듯, 예전에 비슷한 질문을 했을 때에 비하면 리액션이 희미했다.

나는 불편한 침묵에 뺨을 긁었다. 말해주기가 싫은 것인지, 혹은 말하지 못할 내용인지.

아무튼 지금은 너무 한가하게만 굴기도 좀 그랬다. 고개를 저은 나는 말을 정정했다.

“알겠습니다. 어쨌거나 여기까지 와 주신 이상 이미 지난 일이죠. 밀린 일부터 합시다.”

“어떤 일이죠?”

“이 놈들의 영혼을 심문할 겁니다. 우선은…… 이 놈부터 해 볼까요.”

나는 영혼을 성불시키지 않은 데스 나이트─민찌까스가 된 새끼─의 주변에 룬을 새겼다.

영혼과 접신하는 ᚨ(Ansuz)의 룬이 데스 나이트의 혼을 불러내자, 마침 눈치를 보며 워프 게이트 밖으로 나오던 엘리자베트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뭐 하는 거야? 영혼을 꺼낸 거야?”

“엥? 혹시 공주님한테도 보이십니까?”

보통 이 룬 마법으로 접신한 영혼은 다른 사람들은 볼 수 없다고 그랬는데.

그 유니콘 흑마법사처럼 강령술에 빠삭해서 원래 영혼들이 보이거나, 기감이 예민한 사람이 심령 사진 보듯 희미하게 볼 수 있는 게 고작인 걸로 아는데?

엘리자베트는 정확하게 영혼이 있는 곳을 보며 말했다.

“희끄무레한 정도지만, 대충은. 나도 일단은 정령술사니까. 그런데 그거 흑마법은 아니지?”

“설마요.”

아 거 영혼만 만지면 다 흑마법이래. 어둠과 음의 마나도 안 쓰는데 왜 흑마법이야, 시발.

나는 속으로만 투덜거리며 길다트한테도 했던 설명을 되풀이했다.

“자, 공주님. 여기 보이십니까? 이 마법은 룬입니다. 현대 마법체계의 오리지널이 되는 문자죠. 기원이 깔끔한 신대의 원초적인 마법으로, 돈만 내면 배울 수 있는 것들입니다.”

“아, 그렇구나. 룬…… 그런데 그걸로 뭘 하게?”

“흠. 제 고향에서는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합니다. 시범을 보여드릴 테니, 질문은 그때 몰아서 하시는 편이 효율적일 듯 하군요. 어떠십니까?”

“응. 방해했구나. 실례했어.”

마법을 발동시키며 하는 말에서 약간 서두르는 기척을 느낀 걸까. 엘리자베트는 눈치 좋게 입을 다물었다. 하긴 질문도 내 방해가 안 될 정도로 짤막하긴 했네.

나는 데스 나이트에게서 영혼을 뽑아냈다.

그 영혼에는 오딘의 눈이 아니어도 보일 만큼 끔찍한 흑마법이 걸려 있었는데, 당연하다는 것처럼 심문을 막는 마법도 덧씌워진 상태였다. 보안이 아주 철저하시군.

“……술식의 구조가 상당히 선명하네.”

나는 이래서야 입막음의 저주를 파괴해도 이 새끼한테선 뭔 말을 못 듣겠구나~ 하고 빠르게 포기했는데, 그 흑마법을 관찰하던 엘리자베트가 진지하게 말했다.

아마 영혼은 제대로 안 보여도, 거기에 딸려 있는 흑마법은 보이는 걸까.

마치 뭔가 아는 듯한 반응이었기에 잠깐 비켜주자, 그녀는 옛날 로마니아의 갑옷을 입은 영혼을 360도 돌아보았다.

턱을 쓰다듬던 엘리자베트는 눈을 떼지 않고 물었다.

“혹시 언데드를 만드는 흑마법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

“글쎄요. 마법의 분파는 종류가 너무 많아서.”

흑마법은 자물쇠 따기 기술 같은 거니까 더 그렇다. 아는 게 더 이상하다, 이 말이다.

다른 사람들의 대답도 비슷했다. 엘리자베트는 그렇게 대답할 줄 알았다는 듯이 혼자서 중얼거렸다.

“좀 전에 노르드가 한 말을 빌리자면, 이건 룬만큼 오래된 기술 같아.”

“구분이 가십니까?”

“응. 이 언데드는 정령화 술식── 아, 자연의 원소를 정령으로 바꾸는 마법인데, 그 마법이랑 술식의 기능이 중복되는 곳이 있어.”

“정령화의 술식입니까?”

나는 팔짱을 끼며 고개를 모로 꼬았다.

이 이세계에서 정령은 자연적으로 발생하기도 하지만, 정령화의 술식이라는 마법을 써서 자연지물을 인공적인 정령으로 만들 수도 있다.

자연에서 거짓된 생명을 창조하는 마법.

어떤 의미로는 골렘의 원류였다. 골렘 소환술이 씹덕 피규어면 정령화의 술식은 다산을 기원하는 점토 인형 정도려나. 거의 궤를 달리 하는 물건이지만 기원은 대충 비슷하다.

‘내가 그 마법으로 처음으로 봤던 건 우리 프랑이 베로니카에게 배워서 골렘 드론을 날렸을 때였던가.’

프랑은 그 정령화의 술식과 골렘 소환에 내가 알려준 마나 부여 기술을 접목해서 〈백토인형〉이라는 새 마법을 만들어내려고 있었다. 잘 됐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응. 이 언데드를 만든 흑마법사는 진짜 진짜 옛날 기술을 사용했다는 얘기겠지.”

그렇게 결론을 낸 엘리자베트는 자기 남편을 돌아봤다.

“맥켄지. 네 검 좀 줘 볼래?”

“본명으로 불러도 된다. 어차피 얼굴도 다 들켰으니까.”

길다트가 에고 소드를 건네주자 엘리자베트는 슬쩍 코등이 부분만 날을 노출시켰다. 시끄러운 에고 소드는 곧장 주둥이─그렇게 부를 만한 파츠가 있다면─ 부분을 나불거렸다.

─뭐냐, 뭐냐? 이번엔 망령 몬스터잖아? 벨 맛이 안 나는 놈이 상대일 때는 차라리 뽑지 말라고!

“그게 아냐, 바보 멜마르트. 이 갑옷 양식, 알아보겠어?”

─으응? 뭐야. 이제 보니까 그냥 영혼이구만?

에고 소드에게 품평을 맡기는 건가? 나는 길다트에게 슬쩍 질문했다.

“관심이 안 가서 걍 넘어갔었는데, 저 검은 또 뭡니까?”

“내 친가의 보물고에서 찾아낸 녀석이다. 고대 문명 때에 만들어진 유물이라 아는 건 많은데, 헛소리가 잦고 치매 끼가 있어서 평소에는 닥치게 해 두지.”

“넹. 칼 모양 나무위키군요. 알겠습니다.”

─그래, 기억 났다!

내가 대충 이해하자 그 에고 소드가 빼액 소리를 질렀다. 저 새끼도 영혼을 볼 수 있는 건가? 검의 영혼이나 정령 같은 거니까 당연할지도 모르겠군.

─이건 로마니아의 왕가 직속 친위대 놈들이 쓰는 장비다! 오오, 그립구나! 밀려드는 적군! 그 너머에서 칼을 휘두르는 지휘관! 일점돌파로 적 지휘관에게 접근해 놈의 목을 썰었던 그 승리의 순간! 그립다, 그리워!

“브리타니아에 있던 네가 왜 로마니아의 친위대랑 싸웠어? 말도 안 되는 소리.”

─말이 안 되긴! 아무튼…… 아무튼 어쩌다 그렇게 됐는지 기억은 잘 안 나지만! 내가 그렇다면 그런 줄 알아!

“네~ 네~ 알겠습니다~.”

엘리자베트는 딱 인터넷 위키 사이트 정도의 신뢰만 주는 건지, 에고 소드를 도로 칼집에 넣어버렸다. 저렇게 보니까 좀 불쌍하긴 하군.

“그렇다네. 믿기는 힘들지만 친위대의 갑옷이라는데? 너무 옛날 느낌이라서 도저히 문명이 융성하던 고대 문명 시절의 갑옷인 것 같지는 않지?”

“디자인이랑 성능이 비례하진 않지만, 그 말씀에는 공감이 가는군요.”

만약 이 데스 나이트가 정말로 고대 로마니아의 왕가 친위대의 기사다? 그러면 신대가 끝난 직후의 기사였겠지.

신들이 대충 멸망하고, 인류의 문명이 제대로 번성하기 전.

이세계 인류 최대의 암흑기. 인류의 테크놀로지도 후달리고 신들이 뒤를 봐 주지도 않았던 무렵의 약간 모자란 갑옷 쯤 된다면 대충 말은 된다.

‘에퀴녹스는 고대 기사의 시체를 어디 유적에서 주웠나?’

설마 자기가 직접 해치우고 언데드로 삼았을 리도 없는데. 나는 노트에 그런 정보만 기입해 두고서, 창을 꺼내서 입막음의 저주를 해주해 보았다.

이 영혼은 어차피 정보를 건지긴 글렀으니까, 연습용으로 써 보는 것이다.

“쓰으읍…….”

3일 동안 에퀴녹스의 따까리들을 잔뜩 족치며, 이 저주의 파괴 작업도 상당히 손에 익었다.

하지만 여전히 완벽하게는 풀어낼 수 없다. 나는 전투마법 말고는 마법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으니까 그럴 만은 했는데, 이대로라면 아무 것도 못 건질지도 몰랐다.

─타닥!

조졌네. 나는 저주로부터 스파크가 튀자 혀를 찼다. 실패의 징조였다.

또 흑마법의 마나가 공격해 오기 전에 손을 내저었다.

파앗─!

내 손가락에 닿자 데스 나이트의 영혼은 원큐에 성불했다. 정령술사인 만큼 영혼이 보이는 엘리자베트가 그 모습에 놀랐지만, 다행히 일일히 질문하지는 않았다. 매너가 있는 공주님이시군.

하지만 나는 여전히 입맛이 썼다.

‘대체 왜 실패하는 거지?’

3일 동안 연습은 충분히 했다.

에퀴녹스의 흑마법의 구조는 전부 파악했고, 술식의 파괴 속도도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늘었다.

엘리자베트를 속이려 간 놈들이 떠벌대는 사이에 흑마법사 5명을 족치고 해주를 시도할 만큼 빨라졌다. 하지만 저주를 풀지는 못하고 있다.

내가 술식을 신속하게 파괴할수록 어둠과 음의 마나가 역류하는 속도도 빨라지는 것이었다. 풍선을 밟으면 다른 쪽으로 공기가 모여서 부푸는 것처럼 빠르건 느리건 결과는 같았다.

“……영핵.”

그렇게 한숨을 쉬려고 숨을 살짝 들이켰을 때였다. 조용한 목소리가 이상하도록 선명하게 귓바퀴를 스치고 지나갔다.

“지금 그 영혼…… 영핵이 부숴졌어.”

네페르티티의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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