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그 영혼, 영핵이 부숴졌어.”
네페르티티의 말이었다.
머리를 긁던 나는 하던 걸 멈추고 그녀를 돌아보았다.
“예? 영핵이요?”
“……영혼의 핵. 사람의 뇌, 심장과 같은 핵심.”
네페르티티는 성불해버린 데스 나이트의 영혼이 있던 곳을 가리켰다.
“그걸 저주가 감싸고 있어. 그 상태에서는 아무리 술식만 부숴도 무용지물.”
“저주가…… 감싸고 있다고요?”
꺼벙하게 되묻던 내 머리에 복잡한 생각이 스쳤다.
그리고 그게 어떤 결론을 내렸을 찰나, 또 다른 깨달음이 스쳤다.
‘영혼의 약점 같은 게 저주 안에 숨겨져 있다고?’
그랬다. 내가 창의 항마력으로 경솔하게 술식을 파괴하려 했을 때나, 아니면 저주의 껍데기를 부숴버렸을 때, 그 여파 자체가 저주의 내부로 빨려들어가는 듯이 보였었다.
혹시 그 안에 영혼의 CPU처럼 중요한 기관이 있었다면?
‘시발, 그거다!’
나는 엘리자베트를 속여먹으러 들었던 흑마법사의 영혼을 뽑아냈다.
입 막음의 저주는 영혼을 구속하듯 붙잡혀 있었고, 그래서 유체이탈을 한 영혼은 넋이 나간 사람처럼 눈에 초첨이 없는 상태였다. 심문 자체가 불가능한 건 그래서였다.
생각해 보면 그랬다. 내가 범죄자 새끼들의 영혼을 추출할 때, 그 놈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원래의 자아를 유지하면서 떠들거나 저항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에퀴녹스의 노예들에 한해서는 그런 일이 없었다.
영혼이 뽑히면 뽑히는대로, 성불당하면 성불당하는대로 걍 휘둘리기만 했다.
‘그 넋이 나간 꼬라지가, 영핵이라는 걸 붙잡혀서 자아랄 만한 것들이 봉인당했기에 나오는 모습이었다면?’
술식을 분석하는 것만으로는 모를 만 했다. 검의 구조를 잘 안다고 찔리는 사람의 급소까지 아는 건 아니니까. 나는 네페르티티의 조언을 살려서 저주의 해제법을 수정했다.
어둠과 음의 마나가 뭉쳐 있는 부분을 세심하고 정확하게 흐트러트린다.
그러면서 발생하는 영혼의 상처 정도는 감수하면 되었다. 바로 뒤지지만 않는다면 심문할 시간은 충분할 테니까.
─슈칵!
저주의 핵심 부분을 긁어냈다. 원래는 영혼 자체가 부숴질 게 무서워서 건드리지 않았던 부분을 창으로 베어버리자, 그 안쪽에서 망령 같은 게 튀어나왔다.
나는 그마저도 베어냈다. 개복 수술이라고 여기면 되겠지. 환자의 배를 가르는 건 미친 짓처럼 보이지만 병을 고치려면 어쩔 수 없는 수순인 것처럼, 저주의 파괴도 같은 것이다.
“떼얏!!”
─콰드득!
나는 그렇게 영혼의 명치 부분을 헤집어냈다.
사람이라면 모를까 영혼에게는 명치조차 급소가 아니었다. 흉측하게 가슴이 쩍 갈라지기는 했지만, 저주의 영향이 사라지자 그 놈의 눈에 생기가 돌아오기 시작했다.
─……눈이 부시군. 꿈인가…?
…퍼득!
잠이 덜 깬 것처럼 머리를 흔들던 흑마법사는 자신의 손이 반투명한 것을 눈치채고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 산 채로 회를 뜬 개구리처럼 훤히 열린 가슴팍도 발견했다.
당연히 밑에 굴러다니는 자기 시체도 발견했을 것이었다.
─내 몸이……?! 이런, 이 무슨?!
“드디어 성공했다, 이 개쌍놈의 새꺄!!”
나는 환호성을 지르며 놈을 야수회귀의 마나를 변형시켜서 만든 밧줄로 포박했다. 한 대 갈겨주고 싶었지만 내가 닿는 순간 성불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관뒀다.
─끄악!!
바로 영혼을 바닥에 패대기쳤다. 그 영혼의 모습을 볼 수 있던 건 영매에 적성이 있는 사람들 뿐이겠지만, 넘어트리는 소리와 비명은 들린 듯 엑스트라 4인조가 깜짝 놀랐다.
아마 이 새끼가 나름 실력 있는 흑마법사였던 거겠지.
존나 강하거나 원념이 깊은 영혼은 유령 몬스터처럼 눈에 보이거나, 세상에 잔류하거나 하니까.
“……아. 저, 저한테도 보이는 것 같아요!”
영핵을 봉인하던 저주가 풀려서인지, 티르시마저 흑마법사 새끼의 영혼을 가리키며 소리를 쳤다.
‘아니면 혹시 여기가 니플헤임인 게 관계가 있나?’
그렇다고 치기엔 다른 사람들은 못 보는 것 같은데?
지옥에서 영혼을 못 본다는 것도 웃기는 얘기긴 한데…… 이런 심령 분야는 내 전문 밖이다. 지금은 신경 끄자.
“여러분. 잠시 자리를 비워주시겠습니까?”
나는 일행에게 그렇게 말하며 퇴장을 요청했다.
심문하는 꼴을 보였다가 ‘이 새끼 사이코매트리 초능력자 아님? 잘 구슬리면 존나 쓸모 많겠는데?’ 하는 발상을 하면 내 인생이 고달파진다.
아내들이랑 뒹굴면서 차원이동 연구를 하기도 바쁜 나다. 굿하는 명탐정 유명한으로 불려다닐 시간 없다고.
“……그래 뭐, 모험가는 남한테 보여주기 싫은 비장의 수 정도는 있으니까.”
“나비는 가져가마. 알프헤임에서 기다리겠다.”
예전에 내가 호르샤의 의동생이라던 팔 4개 오우거 새끼를 심문하던 걸 봤던 티르시와, 어쩐지 나한테 은근히 호의적인 네페르티티 덕분에 설득은 어렵지 않았다.
어찌저찌 사람들을 보내고 티르시만 남았다.
나를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는 명목이었는데, 사실은 그냥 일행 중에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라서 그랬던 거다.
내 그런 생각을 눈치챈 듯, 티르시는 밝게 웃으며 말했다.
“심문하는 동안은 조용히 있을게요. 한 번 봤던 과정이니 걱정 붙들어 매세요!”
“부탁드립니다.”
이 간호사 씨 너무 좋아하네. 내가 다 미안하게.
겸연쩍게 웃고서 나는 자빠트린 흑마법사 앞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았다. 꼴마초라면 반드시 이렇게 앉아야 한다고 고사기에도 적혀 있다.
흑마법사는 콩으로 메주를 쑨대도 안 믿을 듯한 눈깔로 날 꼬라보는 중이었다.
《내 말 들리지? 새끼, 드디어 뭘 좀 물어볼 수 있겠네.》
《……저주를 풀다니, 믿겨지지 않는군. 하지만 그렇다고 내 충심마저 꺾을 수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마아아아아악──!?》
꽈아아악……!!
진부한 대사를 읊길래 밧줄을 살짝 조여줬다.
《새끼가 곧바로 빼액댈 거면서 어디서 허세야, 허세는.》
아니면 일부러 도발해서 빨리 뒤질 생각인가? 그런 거라면 머리 좀 썼다만, 의미 없는 짓이다.
《어차피 툭 쳐도 뒤질 것 같은 새끼를 고문할 생각 없어, 병신아.》
룬의 만다라를 띄웠다. 이제는 내 심문 코스의 국룰이 돼 버린 ᚦ(Thurisaz)의 룬이다. 흑마법사의 눈빛에서 도로 빛이 사라졌다. 속된 말로 뿅 가버린 것이었다.
《자, 이제 대답해 볼 마음이 좀 생겼나?》
《……싫다. 나는 주인님을 배신하지 않는다….》
《지금 그 주인님이 보고 계신다. 평소처럼 보고해 봐.》
나는 최면 기법을 가하듯 놈의 무의식을 유도했다. 빠르고 간편한 기억 추출도 나쁘지 않지만, 그건 영혼을 혹사시킨다. 지금은 이렇게 하는 편이 옳았다.
《보고……? 그래, 주인님께 보고해야…….》
밧줄을 풀어주자 흑마법사는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저희들 〈콩레가티오〉…… 주인님께서 주신 언데드로 제 7계층의 탐사를 속행 중입니다…….》
〈콩레가티오〉라. ‘팔다리’라는 뜻이군.
〈임모르탈리스〉 때도 그렇고, 에퀴녹스는 작명 센스라곤 쥐좆만큼도 없구만.
아니면 딱 그 놈한테 저 단체는 딱 그 정도의 가치밖에는 없는 집단이었던 건가.
《뭘 발견했지? 아, 아니지. 커흠, 무엇을 발견했죠?》
─예……. 파라오의 왕홀…… 그 모조품인 듯한 앙크를 발견했습니다…….
에퀴녹스의 말투를 흉내내자 이성이 마비된 흑마법사는 날 에퀴녹스로 여긴 듯 부복하며 대답했다. 크헤헤헤. 효과 존나 직빵이네.
그런데 왕홀의 모조품? 앙크?
‘……아, 태양의 십자!’
깜빡하고 있었다. 내 기억력 수준 시발. 대학 입시 때도 이 지랄이어서 개고생을 했는데, 10년 가깝게 지난 지금까지도 바뀌지를 않아요.
《커흠. 그래요. 그게 어디 있었죠?》
─……정체 모를 수호자가 서성이고 있길래, 그 수호자의 사살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회수에 실패했습니다. 때문에 그 앙크가 있는 곳에서 수호자가 움직이지 않게 됐습니다…….
《아니 씹, 야! 애미 뒤진 띨빡 새끼야! 니들 뒤질래?!》
나는 컨셉을 집어치우고 미칠 듯한 기분에 앉은 상태에서 팔짝 뛰었다.
빡대갈통 새끼들 트롤 짓 실화냐? 왜 데스 나이트를 옆에 대동하지 않고 딴 곳에 뒀나 했더니, 원래는 피해다녀야 할 시련의 강적한테 다짜고짜 선빵부터 쳤다고?
‘아, 염병 시발. 아…….’
나는 머리를 쥐어 뜯으며 한숨을 쉬다가 빡침을 털어냈다.
뒤진 새끼한테 죽여버리겠단 협박이 통하겠는가. 어쩔 수 없으니 포기하자.
《하, 씨발…… 그 수호자라는 새끼는 데스 나이트 둘로 못 잡았어? 아니, 못 잡겠어요?》
─아, 아닙니다. 사살할 수 있습니다. 단지 데스 나이트의 파손이 염려되어……
《팍 씨. 야부리 까지 말고. 구라 치면 손목 날아가요?》
─……저희들만으로는 버거울 듯 합니다.
아, 이 병신들 진짜. 지들이 싸지른 똥도 못 치우냐.
그나저나 데스 나이트 2마리로 못 잡겠다니, 수호자 존나 쎄네. 벽 뚫기 치트의 응용으로 삭제해버릴 수 있을까? 그게 가능하면 어떻게든 될 것 같은데.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제발 용서해 주십시오……!
내가 눈을 찌푸리며 킬각을 계산하고 있는데, 아직 이름도 안 물어본 흑마법사는 대가리를 박으며 설설 기었다. 몽유병 환자처럼 읊조리는 말투에는 공포가 가득했다.
이 새끼는 또 왜 이래? 나는 갑자기 스친 기회의 예감에 툭 던지듯 물었다.
《……당신, 이름이 뭐였죠?》
─주인님의 미천한 종, 귀스타보입니다…….
《아, 그래요. 귀스타보. 에퀴녹스가── 아니, 제가 어떤 벌을 내릴 것 같길래 그렇게 겁을 먹었죠?》
나는 집중하며 물었다. 이 새끼들이 왜 에퀴녹스를 그렇게 추종하는지 알 수 있을 절호의 기회였고, 어쩌면 그게 에퀴녹스라는 흑마법사의 목적과 관계가 있을지도 몰랐으니까.
─쿵, 쿵.
귀스타보라는 흑마법사 놈이 이마를 땅에 박았다. 음산한 소리가 무겁게 울려퍼지며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주인님……. 저는 죽어도 좋으니, 제 아들만은……
《……아들만은? 아들만은 뭐요?》
죽이지 말아달라는 걸까? 에퀴녹스 그 새끼, 졸렬하게 이 병신들의 가족을 인질로 잡고 협박하고 있다고?
‘지랄.’
그럴 리가 없었다.
〈콩레가티오〉라는 놈들은 충성을 강요받은 병신들 특유의 행동거지가 아니었다.
이 새끼들이 협박을 받아서 저런 충성심을 보여준 거라면 군대에 끌려가던 우리 육군 친구들도 간부들을 위해서 자기 목숨을 바치겠네, 시발. 말이 되는 소릴 해야지.
─부탁드립니다, 주인님! 무엇이든 명령해 주십시오! 어떤 일이든 수행하고, 누구든 상관없이 죽여 보이겠습니다!
내가 더욱 추궁하자, 귀스타보는 울면서 고개를 들었다. 그 눈빛은 사악한 흑마법사답지 않게 처연한 것이었다.
─그러니 제발, 제 아들놈만은 되살려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