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554화 (554/1,009)

자기 아들을 되살려 달라고?

‘……아, 그런 건가.’

이 놈들이 왜 그렇게 충성스러운 노예를 자처했는지 대충 알 것 같았다.

21세기에서도 회사의 사장들은 목 놓아 부르짖곤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애사심’이라는 건 사실 개 풀 뜯어먹는 소리나 마찬가지였다.

회사에 자부심을 가지면 그게 정신병이지, 애사심이냐? 딱 그런 식으로 부심을 가진 사람들이 도가 지나쳐서 대기업을 다닌다며 남들을 무시하다가 인생 좆 되고 그러는 것이다.

업무란 뭐든 중간이 최고이며, 애사심은 명백하게 뇌절의 영역이다.

그런데 아주 가끔, 진짜 필사적으로 회사에 충성하는 사람들도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엇나간 자부심을 가졌거나──

‘아니면 그밖에는 어디에서도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거나.’

사람의 갈망과 필사적인 마음은 풍요로움이 아니라 절박함에서 나온다. 빵빵한 곳간에서 나오는 건 인심이지, 스웩으로 가득한 랩 정신이 아닌 것이다.

사람들이 눈물 젖은 빵을 먹어 봐야 인생을 안다던가, 예술가들은 굶주려야 한다거나, 마감이 널널하면 그림이 안 그려진다는 자학을 하는 건 그게 원인이 아닐까?

잠깐 멈칫한 나는 눈을 반개하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죽은 이의 부활. 그렇군. ‘저’는 뭘 하면 그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약속했죠?》

─제가 당신을 따른다면! 당신께서 바라는 세상을 이승에 펼치는 날이 온다면, 저희가 다시 만나고자 하는 사람들과의 재회를 성취해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쿵, 쿵! 기꺼이 고행하는 광신도처럼 손을 모으며 귀스타보는 머리를 박았다.

이미 한 톨의 무게도 없는 영혼이지만, 그 영혼에 담겨진 마음은 얼마나 무거운지 머리를 조아리는 소리는 마치 돌이 떨어지는 듯 했다.

《……당신은 죽은 아들을 되살리려고 흑마법을 배웠군요. 그렇죠?》

나는 직감과 추리를 통해서 결론을 냈다.

흑마법의 장점은 강력한 위력과 죽은 자를 다룬다는 점이 전부다.

그래도 힘을 원했다면 에퀴녹스를 따르기보단 디아볼로가 흡수했던 6명의 따까리들처럼 제 살 길을 찾았을 것이었다.

강해질 방법은 그밖에도 많은데 흑마법을 선택했다는 건, 그만큼 탐욕적이고 물불을 가리지 않는 사이코패스라는 뜻!

당연히 그런 놈들은 이런 충성스러운 부하가 될 수 없다.

그게 에퀴녹스가 〈임모르탈리스〉를 만든 이유다.

그렇다고 에퀴녹스가 노예들을 모아서 친히 흑마법 특강을 치르며 일타강사 흉내를 내줬을 리가 없으니, 귀스타보는 그 놈과 만나기 전부터 흑마법을 배웠다는 말이 되지 않겠는가.

─예! 저희들은 오직 떠나버린 이들과의 재회만을 위해 흑마법을 배웠습니다!

혹시나가 역시나라고, 귀스타보는 숨 가쁘게 대굴빡을 끄덕거렸다.

─그러나 그럴진대, 가진 재능이 부족해 잃어버린 것들을 되찾지 못했습니다! 온 세상에서 배척받고 쫓겨가며 흑마법을 익혀도, 저는 아들을 되살릴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가능하죠. 죽은 이의 영혼을 되살리는 걸 보여주고, 믿음과 희망을 줘서 따르게 했습니다. 맞죠?》

─그렇습니다! 이는 오직 주인님만이 가능한 기적입니다!

기적은 지랄이. 그딴 저딴 끔찍한 저주와 언데드를 만드는 놈이 일으키는 건 기적을 빙자한 사기일 뿐인데.

하긴 그딴 걸 구분할 능력이 되면 지 가족을 살리겠다고 딴 사람들의 가족을 쳐죽이는 빡대가리 짓은 안 했겠지. 이 새끼한테는 비극적이라는 표현도 아깝다.

나는 차가워진 눈빛으로 웅크리는 흑마법사를 노려봤다.

《하지만 어떻게? 당신이 죽은 아들의 영혼이라고 가지고 있습니까? 영혼마저 파괴되고 사라진 자는 되살리지 못하는 것 아닌가요?》

내 추리대로라면 그럴 텐데. 이 새끼들이 속고 있나?

─어,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분명 가능할 것이라고 하셨잖습니까!!

솟아난 의문을 그대로 묻자, 귀스타보는 명치의 상처에서 마나를 줄줄 흘리며 비명을 질렀다.

친가와 등져가며 선택한 마누라가 부랄친구와 바람이 나서 등산하러 떠나버린 기러기 아빠처럼 절망 어린 비명!

─영혼마저 사라진 이들조차 살려내 보일 거라고! 그것이 육망성의 좌의 목표라고! 〈임모르탈리스〉도, 피라미드에서 파라오의 영혼을 사냥하는 것도, 전부 그걸 위해서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어머 시발. 내가 그랬어요?》

─크아아아악!! 속인 거냐!! 우리를 속인 거냐!!

엄마 깜짝아. 나는 덤벼들려는 귀스타보를 마나의 밧줄로 묶어서 대충 패대기쳤다.

새끼가 소리는 왜 질러? 그나마 영혼이라 다행이네. 침은 안 튀겨서.

그런데 ‘육망성의 좌’라. 그거 오랜만에 듣는 호칭이구만. 흥분한 귀스타보를 다시 룬 마법으로 억지로 진정시켜 놓고, 다시 질문 타임이다.

《그러니까, 당신이 알기로는 ‘저’의 목적도 완전하게 죽어버린 영혼의 부활이다?》

─후윽, 후욱……. 예…….

귀스타보는 헉헉대며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납득은 갔다. 이 니플헤임이라는 곳은 우리가 존나 문지방 넘듯 가볍게 돌아다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만, 21세기의 지구인이 생각하는 저세상과는 쬐까 거리가 있다.

‘죽은 자들이 가는 세상이기는 해도, 영멸을 맞이하는 곳이라고는 할 수 없지.’

영혼에게도 죽음이 있다. 데스 나이트가 내 손에 소멸하고 픽트 인 마을의 숲에서 이름 없는 여신이 성불한 것처럼, 이 이세계에서 육체의 죽음과 영혼의 죽음이 별개인 것이다.

영혼의 소멸.

그게 바로 육체적 죽음의 뒤에 찾아오는, 진짜 죽음이다.

내가 예상했듯, 뒤진 코뤤투스를 부활시켰던 에퀴녹스조차 그렇게 완전한 영멸을 맞이한 영혼을 되살릴 수 없는 거다.

진짜 그 새끼의 목적이 완전한 부활을 가능케 하는 건지는 모른다.

하지만 일단 따까리들은 진심으로 그렇게 믿게 만들 만큼 그 목표에 걸맞은 행동을 취하고 있는 건 맞을 것 같았다.

나는 뽕 맞은 마약쟁이처럼 눈이 풀린 귀스타보를 창대로 툭툭 건드렸다.

《파라오의 영혼을 사냥한다 그랬죠? 그러면 지금쯤 ‘저’는 어디에 있을까요?》

─8계층에 계십니다…… 니플헤임과 동일한 환경의 이상한 세계에…….

그렇단 말이지. 다음 층에서 유유자적 대기 타고 있으시다?

아무튼 혼자 돌아다니는 걸로 뭐가 해결되지는 않을 테니, 부하들을 시키고 최종관문에서 다른 도전자들을 처리하는 건 효율적인 작전이었다.

‘하지만 그건 반대로 말하면 우리한테도 시간적인 여유가 있다는 소리지.’

나는 귀스타보에게 그밖에 신경 쓰이는 것들을 물었다.

필요한 정보를 전부 들어서 노트에 적었다. 이 씹새끼들이 보고하러 내려가지 않아서, 에퀴녹스가 시발 뭔 일이지 싶은 마음에 움직일 때까지 넉넉 잡아 약 이틀 정도.

그밖에 콩 뭐시기인가 하는 따까리들은 없고, 사실상 여기 모인 이들이 전부. 나랑 길다트의 손에 모조리 뒤졌으니까 딱 깔끔하게 전멸이랜다.

〈임모르탈리스〉의 정규 멤버도 더는 없다.

미스릴 클래스쯤 되는 흑마법사라는 건 산삼 같은 거라서 있기도 힘들고, 찾기도 힘들다.

니플헤임에서 마법만 연구하는 에퀴녹스를 대신해서 그들의 정보를 찾는 것 역시 귀스타보와 친구들의 일이지만, 아직은 정규 멤버급의 흑우를 찾지 못했다.

─떠벌떠벌. 귀스타보는 점점 흐릿해져 가며 그렇게 아는 사실을 싹 다 뱉어냈다.

에퀴녹스는 지가 건 입막음의 저주가 앵간치 믿음직스러웠는지, 이 놈 하나한테서도 알짜 정보가 잔뜩 나왔던 것이다.

─……‘육망성의 좌’란 주인님께 실력과 뜻을 인정받고서, 사자소생(死者蘇生)의 마법을 연구하는 이들을 가리킵니다.

《〈임모르탈리스〉의 간부가 아니라, 사실 상의 상부조직쯤 되는 거군요.》

말하자면 임원진이다. 선별 기준이야 에퀴녹스만이 알겠지.

《하지만 그 놈들도 이미 전멸했다?》

─그렇습니다…….

귀스타보가 아는 한, 1명은 한참 전에 로마니아에서.

그리고 다른 1명은 최근에 게르마니아의 망령도시 모즈리운에서 픽 하고 소리 소문 없이 뒤져버렸다는 모양이다.

그 말에 나는 옛 기억을 되살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예르나 년이 숨어 있던 지하에서 발견한 시체인가.’

썅년이 씹년을 죽였던 거군. 이게 그 손자 병법인가 뭔가 하는 그거구마잉.

나로서는 어부지리 개꿀이라고밖엔 할 말이 없다.

어쩌면 디아볼로도 ‘육망성의 좌’의 후보였을지도 모르지.

《아무튼 결론을 말하면, 여기서 에퀴녹스마저 뒤져뿌면 〈임모르탈리스〉라는 조직과 그 비선실세인 ‘육망성의 좌’, 그리고 니들까지 모조리 뿌리를 뽑을 수 있겠네?》

─……예?

귀스타보가 얼빠지게 반문했다. 아무리 대가리의 나사가 싹 풀린 상태여도 이 말은 흘려듣기 힘들었던 모양이다.

《협력 땡큐였다. ‘진짜’ 저세상이 있다면, 거기서 네 아들이랑 만나라.》

그 저세상에 지옥과 천국의 이분법이 없다면 말이지.

나는 귀스타보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딱히 본질이 비틀린 영혼은 아니었기에 울프헤딘의 힘으로도 증발되진 않았는데, 의식해서 마나를 흘려넣자 그냥 평범하게 성불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좋은 말이야.”

즉, 충분히 괴롭힌 놈을 굳이 뒤진 뒤에도 능지처참하지는 말란 뜻이겠지.

내가 무교라서 잘 모르지만 아무튼 그런 뜻일 듯.

─폴짝!

나는 그렇게 알찬 정보 수집을 마치고 흐뭇하게 일어났다. 이렇게 단번에 정보를 싸그리 긁어모으다니, 내 이세계 심문 라이프에서 이만큼 월척을 낚았던 적이 있었나?

아니, 단언컨대 없다.

내 엘리트 대갈통의 추리력과 범인에게 강제로 자백을 시킨다는 매지컬 심문법의 콤보가 만든 결과였다.

그렇게 노트를 덮은 나는 싱글벙글 웃으며 티르시를 돌아보려다가, 화들짝 놀랐다.

이 왜곡된 공간을 용케 빠져나왔는지, 하늘색 머리카락의 달인이 나무 위에 고양이처럼 숨어 있었다. 그녀는 나랑 딱 눈이 마주치자 자다가 뺨 맞아서 깬 아기처럼 펄쩍 뛰었다.

…데굴데굴.

어색하게 눈을 굴리던 네페르티티는 답지 않게 조심하면서 나무에서 내려오더니, 놀란 티르시와 반달눈이 된 내게 머뭇거리며 말했다.

“……그게, 길을 잃어서.”

“그걸 변명이라고 하시는 건 아니죠?”

“……으. 죄송해요.”

아니, 사과하라는 뜻은 아닌데.

“뭐, 그래요. 길을 잃으셨다면 어쩔 수 없죠.”

나는 솔직히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던 만큼, 피식 거리면서 웃어버렸다.

“같이 돌아가시죠. 정보에 따르면, 다행히 잠깐 쉬어도 될 정도의 여유는 있을 듯 하니.”

“……안 물어 봐?”

네페르티티는 어쩔 줄 모르며 발가락을 꼼질거리다, 그만 눈까지 내리깔며 물었다.

왜 자기가 혼자서 돌아와서 훔쳐 보고 있었는지 물어보지 않냐는 건가. 나는 어깨를 으쓱이고서, 티르시를 데리고 네페르티티의 어깨를 가볍게 톡 쳤다.

“안 물어봅니다. 대충 눈치챘거든요.”

“……으.”

“뭐, 걱정 않으셔도 혹시 이 사람 흑마법사 아닌가~ 하는 의심은 않습니다. 그런 식으로 의심하자면 저도 뭐라고 말할 처지는 아니고요.”

몸에 어둠과 음의 마나가 있고, 영혼을 조종해서 아는 걸 실토하게 만드는 마법사?

존나 흑마법사 그 자체잖아. 의심이 아니라 십자가에다가 매달아도 뭐라 반박은 못 하고 그냥 튀어야겠네.

나는 털털하게 웃으며 네페르티티에게 말했다.

“저 놈들이 뻘짓을 해 놔서 또 대판 싸워야 할 듯 합니다. 이유가 어찌됐든 네페르티티 씨는 또 저희들과 함께 싸우러 와 주셨으니, 저는 그 정도만으로도 충분히 기쁩니다.”

……끄덕.

네페르티티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고, 내 겉옷 옷자락을 살짝 잡았다.

그리고 꼭 어린애가 아는 오빠를 따라가듯, 눈을 내리깔고 조용히 나를 따라왔다.

“……으흠!”

약간 토라진 듯, 혹은 오싹한 듯 내 손을 낚아채며 붙잡는 티르시가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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