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십자 회수에는 저희 넷이서만 갑니다.”
존나 짧고 굵게 개꿀잠을 자고 일어난 나는 일행을 모아서 그렇게 설명했다.
나, 티르시, 네페르티티, 길다트 4인팟을 빼면 나머지는 이 시련의 휴식 공간인 알프헤임에 남는 것이다. 왜냐고 물으면 실력 차이가 커서 데려와도 큰 도움은 안 될 것 같아서다.
아니 방해만 안 된다면 도움이 전혀 안 되지는 않겠다만, 같은 마초로서 길다트를 배려한 것이었다. 나 같아도 억지로 아내들을 데리고 가서 싸우면 신경이 쓰일 것이니까.
그렇게 우리는 다시 숲으로 나왔다.
“상대가 강적이라곤 해도, 데스 나이트 2마리가 어떻게 큰 상처를 입힐 정도면 저희 넷이서 잡기는 충분하겠죠.”
길다트에게서 얼마 안 되는 목격 정보를 들었는데, 데스 나이트와 싸우던 모습을 보면 위험하기는 해도 그렇게 강력한 적은 아니라고 한다. 기본적인 창술이 뛰어나다는 것만 들은 참이다.
“……방심은 금물.”
네페르티티가 걱정스럽다는 듯 말하길래─당연히 무표정이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그런 느낌이었다─, 나는 픽 웃었다.
“흐흐. 조언 감사합니다. 네페르티티 씨는 이거다 싶은 게 있으면 채찍으로 회수해 주십셔.”
“응.”
일행과 함께 장애물을 걷어가며 목적지까지 걸었다. 내가 시계방향으로 돌아다니며 흑마법사 슬레이어로 활동하던 이 숲에서 유일하게 가지 않았던 방향이다.
숲의 안개는 원래라면 눈부셨을 숲을 음산하게 만들었다. 시야를 걷어내도 풍경 자체가 우중충해서 사람이 맛이 가기 딱 좋을 것 같은 풍경이다.
스모그로 가득한 런던을 수도로 삼은 영국 놈들이 제국주의자로 진화한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거로군.
─저벅, 저벅.
방향감각을 확실하게 잡고 걷자 내 석사 워킹에서도 이젠 어엿한 모험가 테가 났다.
근데 생각해 보면 나 모험가로는 아직도 존나 실딱이인데, 골드로 승급은 할 수 있나. 학위야 여기서 루팅한 유물이나 몇 개 던져주면 은장을 찍을 것 같지만 모험가는 조금 다른 얘기인데.
시험 같은 걸 쳐야 하면 나랑 경쟁한 예비 골딱이들이 좀 불쌍하지 않은가. 중급닌자 시험에 나루토가 구미호랑 나선 수리검 던져대며 입시하는 수준 아닌가?
옆에 사람이 늘어서 그런지 조금 태평한 생각을 하며 걷던 나는 다리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놓치기도 힘들 만한 프레셔 같은 게 전방에서 찌르듯 뿜어졌다.
그곳에는 안개가 머물지 않고 있었다. 대신 태양의 조각이 떨어져 내린 듯 으스한 새벽녘인데도 이상하게 밝았으며, 그 빛을 접근하기 전까지는 보지 못하는 결계마저 있었다.
피부를 핥는 열기는 뜨겁다. 마치 이곳만 사막인 듯 하다.
“이 앞이군.”
길다트의 중얼거림에 우리는 누구라 할 것 없이 공감했다. 의견을 나눌 것도 없이 무기를 뽑았다.
─휘오오오.
티르시도 전투를 준비했다. 예전에 도적 놈들한테 논문을 빼앗겼을 때, 나한테 걸어줬던 마법을 자신에게 걸고 바람의 방어막을 둘렀다. 술식 융합이다.
양판소에서 말하는 플라이 마법 같은 걸까. 맞아도 괜찮을 방어력과 빠른 이동이 가능하다면 마법 실력이 뛰어난 티르시라면 거의 부스터 달린 탱크 같은 느낌일 것이었다.
나는 일행의 시선이 모이길 기다렸다가 텔레파시로 외쳤다.
─돌격!!! WAAAGH!!!!!!!!
선빵 필승이다. 번개처럼 뛰쳐나가는 우리 위로 티르시의 무영창 마법이 날아갔다. 나도 오러권을 켜지 않으면 데미지 좀 받을 것 같은 고드름 랜스 차징이다.
【──적성존재를 인식했습니다.】
상대는 0.1초도 되지 않는 찰나에 반응했다.
적의 와꾸를 살피려는 내 앞에 5개의 룬 문자가 맞물리며 만다라가 펼쳐졌다. 그 하얀 빛 건너편에서 손바닥을 펼치며 무기를 드는 갑옷의 기사가 보였다.
“존나 룬 마법이 마이너하다는 거 구라지, 씨발!”
성능이 봉인당하지만 않으면 한 시대를 풍미한 마법 체계라지만, 아무리 그래도 또 룬이란 말인가? 나는 기습의 이점을 살리지 못할 걸 눈치깐 순간 성질부터 내며 이목을 모았다.
─휘릭! 티르시의 고드름 창이 적에게 꽂혔다.
하지만 막대한 마나가 깃든 공격 마법은 4조각이 나며 딴 곳으로 흘러넘겨졌다. 5개나 되는 룬이 동시에 발동하며 그 기습을 우아하게 흘러넘긴 것이었다.
상관없다. 마법을 방어했다는 건 다시 말해서 셋이나 되는 달인의 기습을 대처할 시간을 놓쳤다는 것이니까.
네페르티티의 유물 채찍이 뻗어서 적의 뒤쪽에서 번쩍대는 아이템을 향해 날아갔다. 내가 그 추이를 살피기도 전에 룬 만다라가 걷혔다.
“기간틱 드릴 스팅거!”
원콤으로 끝낼 심보로 【게르튀르】의 찌르기를 넣었다.
길다트와 시간 차를 둔 연속 공격! 달인의 콤비네이션이다.
─펄럭! 한쪽 날개를 망토처럼 당긴 적이 대응했다.
【적성존재의 소질을 확인합니다.】
갑옷의 기사는 몸을 비틀면서 빛의 창을 내 발치에 찔렀다. 그렇게 손쉽게 내 돌진을 멈춰버리고서, 창대로는 연속해서 날아드는 길다트의 팔을 눌러버렸다.
그렇게 적을 향해 휘두르려던 검과 창이, 창 1자루에 어정쩡한 상태로 정지했다!
“뭐?”
“시발 머여!”
방어 한 동작. 고작 그걸로 미스릴 클래스의 전사들이 억류당하다니?
알파고가 신의 한 수로 바둑판의 기보를 제압하듯이, 하얀 갑옷의 기사는 우리 2명의 기습을 터무니없이 완전무결하게 대처한 것이었다!
【종족 판단…… 인간족 남성 2체. 여성 2체.】
공격을 막아놓고 기사는 헛소리를 했다. 접근한 탓에 혼자 중얼대는 그 새끼의 얼굴이 가까이에서 보였다.
사람답지 않게 생긴 미모! 무거운 중장갑을 입은 여성형의 존재였다. 투구의 페이스 가드가 없어서 5대 5로 나눈 금발 머리의 인상이 드러났다. 인형처럼 차가운 얼굴이었다.
그 놈의 날개에서 떨어진 깃털이 우리 얼굴 사이를 미끄러지듯 팔랑거렸다.
【개체별 에인헤리 적성 스캔……】
그 놈은 언어 자체를 룬 어로 내뱉으면서, 유리알처럼 텅 빈 눈깔로 우리 일행을 뒤룩거리며 살폈다. 미모의 얼굴이 아니었다면 섬뜩하기까지 했을, 인간적이지 않은 무빙이다.
【──3체 합격. 적성존재로 규정하고 수확하겠습니다.】
뭐라고 내뱉는 말을 들으면서, 당연히 나랑 길다트는 멍청하게 서 있지만은 않았다. 길다트가 힘으로 창을 떨쳐냈다. 난 후퇴하듯 신창 밑창을 미끄러트리면서 찌르기를 연발했다.
─채앵!
기사는 능력치로는 우리랑 큰 차이가 나지 않는지, 힘으로 밀쳐내자 간단하게 밀렸다.
하지만 뒤이은 반격까지 간단한 것은 아니었다. 빛의 창이 회전하면서 길다트의 중검을 흘러넘기고, 그 동작이 공격의 선딜이었다는 것처럼 내 찌르기를 똑같이 받아쳤다.
“뭔 이런 씨불쟝?!”
그렇기에 나는 눈을 부릅떠야만 했다. 그 기사의 창술이 내 눈에 몹시 낯익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빛의 창이 날끝을 회전시켰다. 휘핑기를 젓듯 동그라미를 그린 창날이 【게르튀르】의 마나 운용을 따르며, 효율적인 순간 폭발력으로 무수하게 뻗어나왔다.
【게르튀르】의 고등 응용기! 그것도 내가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조합이었다.
퓨샤샤샤샤샤샤─!!!
마치 샤워기에 접근한 햄스터가 샤워 호스의 물줄기에 딱 노출되듯, 내 전면에 창의 폭풍이 몰아쳤다. 나는 오러를 큰 폭으로 짜내서 반격기 제 2품새를 사용했다.
풍차처럼 회전하는 창대는 오러를 감자 거의 믹서기처럼 저 빛의 창을 갈아버렸다. 원래는 무기를 막는 기술은 아니지만 오러 빨로 공격기처럼 사용한 것이었다.
“큭!”
검이 미끄러진 길다트는 달인답게 하체를 운용해서 헛발을 디디는 낭비를 최소화했지만, 갑옷 기사는 그런 그보다도 더 뛰어났다.
기사는 1초 미만의 타임 로스를 이용하듯 날개를 펄럭이며 접근해서 어깨빵을 날렸다. 길다트는 발을 디디며 뒤쪽으로 크게 기울었다.
─슈칵!
그는 뒤로 휘청이면서 반격했지만 아무리 오러를 감은 검이라도 허릿심이 빠졌으니 위력이 반감됐다. 기사는 팔의 건틀렛으로 가볍게 막고는 내게 창을 찔렀다.
【게르튀르】의 공격기 제 2품새. 정통적인 찌르기 1발.
빠르다. 그리고 창으로는 찌르기를 막기 어렵다. 막 풍차를 돌리던 중이었기에 더 그렇다. 어쩔 도리도 없이 맞아야 하는 기습에 나는 룬 스톤을 가동했다.
“야매 그림자 지우개 ON!!”
장애물을 없애던 효과를 그대로 전개하자, 빛의 창은 가슴팍을 찔러들어오다 말고 소멸했다. 이 녀석도 세헤테피브라의 기억으로 만들어진 놈이니까.
─쾅!!
“……니미?!”
그런데 놀랍게도 이 새끼의 주먹은 창과 다르게 소멸하지 않고, 내 오러권과 야수회귀의 마나를 두들겼다.
호르샤 따까리들에게서 루팅한 매직 아이템까지 포함하면 방어력 하나는 끝내주는 나였기에, 충격은 적었다. 하지만 저 기사는 그마저도 예측한 듯 내 몸은 공중에 떴다.
처음부터 날 띄우는 게 목적이었던 것이다.
부우우웅─!!!
찰나지간에 발이 멈춘 사이, 날개의 힘으로 360도 회전한 갑옷 기사는 네페르티티의 채찍과 우리 2명을 모조리 창술의 범위 안에 넣고 휘둘렀다.
─팅! 서걱! 빠지직!
채찍이 튕겨지고 창이 내 배를 긁으며, 동작의 마무리에서 길다트의 옆구리를 창대로 찍었다.
마치 살인 머신처럼 냉정침착하고 정확한 창술! 그 360도 회오리 어택에 바람이 불었다. 공격을 읽고 배에 방어력을 풀 집중하지 않았으면 존나 뒤지게 아팠을 게 분명했다.
나랑 길다트는 바닥을 구르고 덤블링을 하며 착지했다.
“……새삼 굉장한 창술이군. 강적이라고 명시할 만 해.”
─퉷. 길다트는 입에 들어간 흙먼지를 뱉으며 말했다. 상처에서 피가 흘러나와서 붕대를 적셨지만 마초이즘을 발휘하며 참고 있는 듯 했다.
그는 적을 주시하며 물었다.
“그런데 노르드. 저 자가 제대로 창술의 절기를 펼치는 건 처음 봤지만…… 네 창술과 닮아 보이는데, 내 착각인가?”
“전혀 착각 아닌데요. 존나 같은 타입의 스탠다드임.”
길다트는 한 사람의 전사로서 나름 감탄하는 모양이지만, 그가 느낀 경악은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의 절반도 안 될 것이었다. 나는 눈을 반개하며 입술을 닦았다.
【……야, 플라잉 게르만. 너 대화는 통하냐?】
순수한 룬 어로 질문했지만 날개 달린 갑옷 기사는 쥐뿔도 대꾸하지 않았다.
단지 다친 날개로 자신의 반신과 창끝을 가리면서 우리를 쏘아보고 있을 뿐이었다. 날개의 틈새에서 드러난 금색 눈은 인간적인 감정을 추호도 갖고 있지 않았다.
나는 오만상을 쓰며 질문했다.
“혹시 저게 뭐 하는 새끼인지 감 좀 잡히시는 분? 지옥에 떨어진 타천사 쯤 되나요?”
“타천사? 그건 뭐하는 몬스터지?”
“아저씨 어릴 적에 공부 잘 안 했죠.”
나도 모르게 그렇게 질문했지만, 내 지식이 맞다면 히브리 계통의 신화를 근간으로 하는 ‘천사(Angel)’라는 단어는 이세계에 없을 것이었다.
그럼 대체 뭐지? 싶다가도 아까 저 놈이 지껄였던 단어를 해석해 보면 감이 올 것도 같았다.
에인헤리.
분명 어느 하프 인간인지 하프 오크인지 했었던 개새끼의 장래 희망이었지.
“……발키리?”
“맞는 것 같네요.”
티르시가 마법을 세팅하며 말했다. 적을 공격할 때만 기다리는 듯한 얼음 송곳들이 섬뜩할 만큼 든든하다.
“정확한 발음은 【발퀴리아(Valkyrja)】. 발할라에 데려갈 자질이 있는 전사들의 영혼을 수확한다는 게르마니아 신들의 전령인 걸로 아는데…… 왜 그런 존재가 이런 곳에 있죠?”
“그걸 모티브로 만든 소환수나 인조정령일 수도 있지. 꼭 배경에 맞는 존재를 배치했을 거라는 생각은 편견이다.”
길다트의 말이 맞기는 했다. 그냥 세헤테피브라가 아는 적 중에서 쎈 놈을 무작위로 꽂아넣었을 가능성도 있긴 했으니.
아무튼 내가 룬으로 저 놈을 소멸시키려고 했을 때, 창은 사라져도 저 새끼의 육체는 사라지지 않았다.
세헤테피브라가 룬 마법의 출력으로 삭제하기 빡셀 정도로 많은 마나를 저 발퀴리에에게 보내고 있다는 뜻이었다.
‘정공법으로 잡아야 하나. 좀 빡센데.’
능력치가 뛰어난 건 아니다. 하지만 창술이라는 점에서는 길다트도 나도 밀려버릴 정도로 뛰어나다.
미스릴 클래스라고 해도 실력에 편차가 있다는 건 알지만, 저 발퀴리에인가 하는 놈의 창술은 그 정도가 아니다. 인공지능을 상대로 바둑을 두는 것처럼 동작 간의 연결에서 추호의 망설임이나 판단 미스가 없는 것이었다.
그 치밀함에 탄탄한 기본기까지 합쳐지자 상대하기 힘들다.
우리들이 데스 나이트처럼 죽음을 불사하지 않고, 또 몸에 익힌 무예가 뛰어난 달인인 만큼 오히려 상성이 안 좋았다.
‘……그나저나, 정령이라.’
나는 오딘의 눈을 켰다. 강적이 뭔지는 몰라도 마법사라곤 생각하기 힘들어서 끄고 있었는데, 영적인 존재라면 이 눈을 써서 볼 가치가 충분했다.
오딘의 눈을 켜자 놈의 구조가 보였다.
역시 마법적 존재이긴 했는데, 분석은 어렵다.
존나 양면 인쇄로 빼곡한 수학 계산식 같은 걸 보고 있는 느낌이다. 그래도 그 술식 중에서 본 적이 있는 구조는 건질 수 있었다. 바로 어제에도 봤던 녀석이다.
‘정령화의 술식.’
말하자면 저 새끼는 사막 계층의 문을 지키던 샌드맨이랑 비슷한 존재였다.
인공적인 정령. 아니 신령(神靈)이라고 하는 게 맞을까.
보통 정령과 다른 점은 애시르 신족이 친히 만들었다는 점 아닐까. 내가 잡은 샌드맨이 양산기면 저 놈은 건담 쯤 되나 보다.
“마법.”
네페르티티가 또 짧게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존나 신기해서, 작고 나지막한데도 귀를 기울이게 되는 마력이 있었다. 웅변술을 배웠다면 나라를 쥐락펴락 했을지도 모르겠다.
“마법이 효율적. 티르시가 해.”
“……방금 전에도 간단하게 막혔는데요? 조금 자신이 생기려는 차였는데.”
“……괜찮아. 마법 실력은 센스가 절반.”
조금 자신이 없어 보이는 티르시. 네페르티티는 말을 잠깐 않고 있다가, 그녀를 보며 말했다.
“나는 처음 만난 날에도, 네 마법을 봤어. 너라면 가능해.”
아, 그러고 보면 그랬었지.
티르시가 그 유니콘 흑마법사 새끼의 주의를 돌려줘서 내 막타가 놈의 가슴을 꿰뚫었던가. 그러고 보면 이 두 사람의 인연은 그때부터 시작됐었던 것이다.
우리의 눈이 자신을 향하자, 티르시는 조금 고민했다. 그리고서 도망치기 싫다는 것처럼 눈에 힘을 주었다.
“……좋아요. 해내 보이죠. 여러분은 주의만 끌어주세요.”
“믿습니다. 언제나처럼요.”
티르시에게 윙크를 해 주자, 존나 평생 해 본 적도 없었던 어색한 윙크였는데도 그녀는 얼굴이 발그레 해져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작 나는 저질러 놓고 쪽팔렸지만 본인이 기운을 받았다면 다행이다.
아무튼 나도 질 수만은 없다. 일단 하이브리드 잡캐이기는 해도, 나 역시 마법사 아닌가.
발퀴리에는 말이 없다. 날개에 숨은 창은 무슨 망토 뒤에 총을 숨기고 겨눈 것만 같아서 적의 움직임을 예측하지 못하겠다.
그래도 오딘의 눈을 켜면 예측도 가능하겠지. 겁 먹을 건 하나도 없다.
데스 나이트 새끼들의 트롤만 아니었어도 피해가면서 템만 챙겨가면 됐을 텐데, 안타까운 일이다. 나는 그 발퀴리에 뒤쪽에서 공중부양하는 태양의 십자를 훔쳐보았다.
흔히 앙크(Ankh)라고 부르는 태양신의 신물(神物)!
그 태양처럼 불타오르는 앙크가 내 영감을 자극했다.
마침 마법 딜링이 필요한 참이라면, 이건 하늘의 계시렸다.
“……때가 되었나.”
“……노르드?”
나는 티르시의 의아한 목소리를 한 귀로 흘리며 룬 마법을 발동했다.
자기를 써 달라는 듯한 느낌이 창대에서 전해져온다. 그에 호응하듯 창에 룬을 걸었다.
“이제부터 보시는 건 모두에게는 비밀입니다? 제가 비밀이 좀 많은 남자라서.”
─철컥!
변신 마법으로 창을 너클로 만들어서 왼손에 꼈다. 그리고 오른팔의 강철 의수를 드러냈다.
그렇게 금속의 광채가 번쩍이며 내 팔을 장식했다. 스프링 솔져 모드 전개인 것이다.
‘이 무공은 오랜만이군.’
가짜 신분이 탄로날까 봐 참았지만, 어차피 같은 창술로는 상대가 안 되는 상황!
그러니까 나처럼 다재다능한 꼴마초는 봉인해 뒀던 기술을 꺼내는 게 옳을 것이었다.
화르르르륵─!!
강철의 두 주먹에 불꽃이 피어올랐다. 그 푸른 불꽃은 내 오러를 바탕으로 속성을 변화시키며, 파괴의 권화와도 같은 화력으로 내 등에 불꽃의 날개를 펼쳤다.
오러와 조합해서 사용하는 건 처음이지만, 뭐 괜찮겠지.
“기나긴 은둔과 창술의 시간…… 지긋지긋하던 차였다.”
나는 오랫 동안 봉인해 뒀던 무공을 사용하는 은둔 고수의 심정으로 외쳤다.
“〔키타이〕의 예수게이로 돌아갈 때다!”
나는 전신에 두른 오러를 손아귀에 모아서, 초장부터 화산파의 절기를 펼쳤다.
혈수마공(血手魔功)
크로스파이어 허리케인(Crossfire Hurricane)!
푸른 불꽃이 폭풍처럼 회전하며 발퀴리에를 집어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