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욱, 후욱……!!》
세헤테피브라는 언데드들에게 팔을 붙잡힌 채 무릎을 꿇려지고 있었다.
그녀는 포박당했으면서도 눈빛만은 꺾이지 않고 에퀴녹스를 노려보고 있었지만, 인간 반 뼈 반의 반반 후라이드 씹새끼는 그런 어린 파라오를 동네 개라도 보듯 한심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먼저 와 있었던 건가? 우리보다?〉
내가 문에서 물러났을 때, 오프툼이 상대에게서 느껴지는 마나를 느낀 듯 힘겹게 주먹을 쥐었다.
에퀴녹스는 한손으로 신성력 덩어리를 가지고 놀며 분노를 억누르는 그에게 말했다.
〈네. 전부 여러분 덕분입니다.〉
〈……뭐?〉
〈제가 이 계층에 도착했을 무렵부터, 그녀는 절 피하고자 마지막 시련의 장소를── 자신의 혼이 있는 이 피라미드를 드러내질 않더군요.〉
에퀴녹스가 신성력 덩어리를 사람 부분의 살에 갖다댔다.
─슈우욱.
명치에 화살 자국이 있는 갈색 피부에 빛이 흡수되었다. 저 리치년…… 그 창세의 권능이라는 힘을 강탈한 것인가?
〈그래서 누군가가 시련을 끝내주기를 기다렸습니다. 저의 친구들이건, 아니면 그 밖의 누구건 좋았죠. 사후의 파라오는 육신이라는 껍질을 벗고 신에 가까워진 존재이며, 신은 자신이 정한 룰을 어기지 못하거든요.〉
에퀴녹스가 시큰둥하게 말하자, 네페르티티는 다친 어깨를 억지로 움직이며 싸울 준비를 하고 되물었다.
〈……룰?〉
〈시련을 통과한 자를 부활시켜 주겠다는 약속 말이에요. 그렇기에 여러분이 여기 온 순간, 여기 있는 파라오는 피라미드를 드러내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세헤테피브라는 우리가 여기에 왔기 때문에 숨어 있지 못하게 됐고, 그래서 이렇게 붙잡혀 버렸다는 말인가?
〈당신들을 살려주고 싶었다면 시련 따위는 꾸리지 말고 그저 되살려버렸으면 그만이었겠지만, 대가 없이는 기적을 일으켜주지 않는 게 신이라는 존재의 비애니까요.〉
〈멍청한, 소리……!!〉
그때 죽어가는 몸에서 힘을 짜내듯 세헤테피브라가 말했다.
〈신에 준하는 힘을 가진 자는, 그렇기에 더욱 규율을 어겨서는 안 돼……!! 죽은 자를 살리는 기적을 아무런 대가조차 없이 행한다면, 생명과 죽음의 밸런스가…… 커흑!〉
세헤테피브라의 말은 목을 쥐어비트는 손뼈에 막혔다. 에퀴녹스가 눈길도 주지 않고 그녀의 목을 붙잡은 탓이었다.
에퀴녹스는 무표정으로 말했다.
〈그렇겠죠. 니플헤임과 【중간 가지】의 조화. 무너져선 안 될 일이고 말고요. 개인의 목숨, 개인의 죽음보다 몇 곱절은 중대한 일입니다.〉
〈커흑, 큭……!〉
〈중력은 아끼던 새의 추락사를 막아주지 못하죠. 파도가 아무리 어부를 사랑하더라도 그의 배가 있는 곳에만 폭풍우를 그치게 할 수는 없어요. 쏘아진 화살도 주인의 딸을 알아보고 멈추지는 못하고요.〉
까드드득……!!
영체가 아니라면 목뼈가 꺾였어도 이상하지 않을 악력으로 어린 파라오의 목을 조르며, 에퀴녹스는 덤덤하게 말했다.
〈그게 신이라는 존재의 딜레마겠죠. 필연과 질서의 화신. 인과율이라는 한계에 묶인 절대자. 운명을 거스르지 못하고, 스스로 만든 세계에서 바람처럼 자유로워 보인들, 결국 정해진 법칙을 어기지 못하는 가엾은 창조주들.〉
나는 그 얘기에 라그나로크로 파멸한 오딘을 떠올렸다.
신들은 태어날 때부터 세계의 법칙과도 같은 강력한 힘을 가졌기에, 반대로 운명이라는 필연적인 질서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일까.
평소에는 무엇보다도 굳건하지만, 거센 바람을 흘러넘기지 못하고 뿌리째 뽑혀버리는 굵은 나무처럼 말이다.
에퀴녹스는 사람 형태가 남은 왼쪽 손으로 지팡이를 땅에 찍었다.
〈여러분께 내린 시련도 같은 이유였겠죠. 말하자면 시련 자체가 부활에 필요한 과정이었던 겁니다. 역경을 거쳐 되살아나는 영웅들…… 신화에서는 흔한 얘기잖아요?〉
〈그래……! 그렇기에, 부활을 바라는 자는 명계에서 살아 돌아갈 자격이 있음을 증명해야 하는 것이다……! 신조차도 아무런 대가 없이 부활을 이루지는 못해……!〉
세헤테피브라는 팔을 뒤로 꺾는 언데드들에게 저항하며, 쉰 목소리로 고함쳤다.
〈그게 당신이 어리석다는 증거입니다. 고대의 파라오.〉
하지만 에퀴녹스는 대답하는 경멸을 드러낼 뿐이었다.
〈죽음은 곧 영면(永眠)이고, 영면은 곧 꿈이죠. 니플헤임 역시 저승의 신들이 자신의 꿈을 실체화시켜 만들어낸 세계입니다.〉
에퀴녹스는 목을 조르던 손을 놓고, 세헤테피브라 대신에 우리에게 말했다.
〈이 권능을 활용하면 명계를 지배하고, 원한다면 더 훌륭하게 가꿀 수도 있었을 텐데. 저들은 제 신념이며 규칙에 얽매일 뿐더러 뜻과 능력조차 결여돼 있어요. 그러니까 신들이 죽고 방치된 명계를 개선할 엄두조차 내질 못하는 겁니다.〉
〈……잠깐, ‘저들’이라고?〉
길다트가 눈을 반개하며 묻는 질문에 에퀴녹스는 싱긋 미소지었다.
〈잘 눈치채 주셨습니다. 이만큼 귀찮은 파라오 사냥은 제 1000년의 삶에서도 처음이었습니다만…… 이로써 66명 째. 드디어 진짜에 가까운 창세의 권능을 손에 넣게 되었군요.〉
─스르르륵.
그렇게 말하는 에퀴녹스의 등 뒤로 육망성이 펼쳐졌다.
그 마법진은 달빛 같은 빛을 꼭지점 삼아서 크기를 증폭시키며, 부유하는 에퀴녹스의 등에 기하학적인 문양을 그렸다.
〈파라오가 가진 창세의 권능은 오시리스에 비하면 그 질이 한참 모자라죠. 그렇기에 저는 니플헤임에 피라미드를 세운 파라오들을 사냥하고, 그들의 힘을 몇 번이나 손에 넣어 왔습니다.〉
육망성은 껍질을 감싸듯이 크기를 키우며 계속 중첩됐다.
그 숫자는 11개에서 멈췄다. 에퀴녹스의 말이 사실이라면, 저 육망성의 꼭지점이 되는 창세의 권능은 전부 66개.
저게 전부, 다른 파라오에게서 빼앗은 신의 힘인 것이었다.
〈1000년을 들여서 고작 66명. 역대 파라오 전원을 찾진 못했지만, 드디어 저 또한 태초의 신들처럼 창세의 권능을 휘두를 자격을 가지게 된 셈입니다.〉
─까딱. 신과 같은 힘을 등에 업은 에퀴녹스는 손가락 뼈를 까딱거렸다.
〈──그럼 어디, 간단한 실연을 보여드릴까요.〉
에퀴녹스가 조종하는 언데드가 세헤테피브라를 우리들에게 던졌다. 나는 그녀의 작은 몸을 낚아채서 뒤로 뛰었다.
그때였다.
─쿵!!
에퀴녹스의 손짓 한 번에 피라미드가 붕괴했다.
플라스틱 벌레통에 들어간 벌레의 입장이 되서 부숴지는 통을 보고 있는 기분이었다. 아니, 피라미드만이 아니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피라미드의 계층이 뜯겨나가자, 훤히 드러난 제 8계층의 하늘에도 금이 가고 있었다.
우르르르르……!!
그 공간의 파괴는 찰나로 그치지 않았다.
하늘이 무너지며 건너편에서 엘프의 숲이 일그러진 공간에 빨려들며 쏟아졌다.
층층이 쌓아놓은 개미집을 막대를 꽂고 뒤집어 엎듯이 공간으로 격리된 사막 계층의 모래까지 하늘 위에서 헤엄쳤다.
창세의 권능으로 만들어진 피라미드의 세계가 무너져 가는 것이었다.
〈우와아아아악!!!〉
《세, 세상이 무너진다!!》
공간의 파괴에 휘말린 위 계층의 탐험가들이 떨어져내렸다.
우리가 서 있던 공간도 예외는 아니었다. 땅바닥이 들춰지면서 저 블랙홀과 같은 하늘의 중심에서 고고하게 땅을 굽어보는 에퀴녹스와 11개의 마법진이 우주를 비틀어댔다.
〈우선, 이 경멸스러운 도피처부터 걷어드릴까요.〉
소름 돋게 쿡쿡 웃은 에퀴녹스가 가루를 날려보내려는 듯 입김을 불었다.
─쏴아아아!!
폭발이 터져나간 것처럼, 세헤테피브라의 꿈을 재현한 피라미드는 모래가 되어 뒤편으로 쓸려날아갔다.
황금을 덮은 피라미드의 건축자재와 엘프의 숲이 뒤섞이며 날아가고, 권능으로 만들어졌던 환상 속의 알프헤임은 공간의 소용돌이에 말려들어간 것처럼 비틀리며 소멸했다.
〈아……!〉
세헤테피브라는 눈 녹듯이 사라지는 엘프의 왕국에 신음을 흘렸다가, 파괴의 여파에 부는 차가운 바람에 몸을 떨었다.
나는 제 8계층과 별 차이를 느낄 수 없는── 하지만 이번에야말로 진짜 니플헤임의 추위에 눈앞을 가렸다.
에퀴녹스가 피라미드를 소멸시키고, 그 안에 있던 우리를 바깥으로 끄집어낸 것이었다.
〈……말도 안 돼.〉
─풀썩. 엘리자베트가 전의를 잃은 듯 힘을 잃고 쓰러졌다.
〈이런 걸 상대로, 어떻게 싸우란 말이야…….〉
쓰러지듯 주저앉아버린 그녀는 헛웃음까지 흘렸다. 자신의 몸에 일어난 위해는 단 1번도 없었지만, 너무나도 격이 다른 위업의 행사에 맞설 의지가 사라진 거겠지.
그 밖에 파티원들도 다를 건 없었다. 크고 작은 차이는 있었지만 모두 상대할 수 없을 거라는 직감을 한 듯, 몸의 떨림을 주체하지 못하고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놀라실 것 없습니다. 지금의 니플헤임은 이 세상을 반씩 나누어 지배하던 오시리스와 헬라가 사라진 무주공산(無主空山). 폭거에 항의할 지배자가 없는 세계란 이토록 무력하죠.〉
에퀴녹스는 니플헤임의 하늘을 자전시키며 그 중심에 군림하듯 속삭였다.
〈여러분들은 지금 저의 꿈에 들어와 있는 것과 같습니다. 물론…… 목숨을 잃더라도 깨어나는 일 없이, 그대로 죽음을 맞이하는 꿈이지만요.〉
우우우우우……!
어둠에 빨려들어가듯 나선으로 회전하는 하늘의 건너편에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웠다. 그것은 하늘 너머에서 걸어오는 듯한, 행성보다 큰 악마였다.
저만한 질량의 괴물이 주먹이라도 휘두른다면 별 하나쯤은 가뿐하게 부숴버리고도 남을 것이었다.
에퀴녹스는 조롱하듯 지팡이를 내리그었다.
〈이만 작별하도록 하죠. 부디 좋은 악몽이셨기를.〉
하늘을 뒤덮은 악마는 우주에서부터 뻗어오듯 원근감마저 아득해지는 거리감으로 우리에게 손을 향했다.
세상은 그 손바닥만으로 완전히 가려졌다. 지평선보다 먼 곳에 악마의 손목이 있었다. 달이 운석이 되서 떨어져도 이것보다는 작을 것이었다.
접근하는 손바닥에 밀린 공기가 바람을 일으켰다. 풍압이 서 있지 못할 만큼 강력했다. 마찰열로 타오르는 손 주변의 공기는 세상의 종말을 형상화한 것 같았다.
“노르드!!!!”
티르시는 무의미하다는 걸 알면서도 나를 감싸안았다.
그녀의 몸에 폭발하는 화산과도 같은 마나가 모여들었다. 니플헤임의 하늘에서 빛나던 얼음의 태양이 한순간 손바닥 너머로 보이는 듯 했다.
그렇게 피라미드에서 쫓겨난 탐험가들이 초유의 대재앙에 유언조차 되지 않을 단말마를 지르는 와중.
나는 그런 티르시의 등에 마나를 흘려넣어서 그녀가 하려는 짓을 멈추었다.
그리고, 손을 들어올렸다.
니플헤임을 으깨버릴 듯한 손바닥이 내 손과 맞닿아──
〈──뻥카를 칠 꺼면 좀 실감나게 쳐라, 띨띨한 년아.〉
─쿵! 묵직한 소리를 내며 정지했다.
〈──────.〉
대륙보다 커다란 손바닥은 이미 손바닥으로 보이지도 않는 거리였다.
현실의 물리법칙과 격절된 권능의 행사다.
죽음을 앞두고 전율하던 사람들은 개꿈을 꾸다가 침대에서 굴러떨어진 사람처럼 멍하니 입을 벌렸다. 나를 끌어안으며 떨던 티르시는 눈이 콩알만해졌다가, 목울대를 울렸다.
〈……딸꾹.〉
〈……티르시. 지금 이거 현실이기는 하니까, 그렇게 세게 조르면 제 허리 부숴져요.〉
내가 그녀의 등을 두들기며 말하자, 티르시는 얼떨떨하게 물러섰다. 나는 죽음의 공포에 질린 듯 하얘졌던 티르시의 얼굴에 천천히 피가 돌아오자 픽 웃었다.
〈흐흐. 이번엔 오줌은 안 지렸어요?〉
〈……언젯적 얘기에요, 진짜….〉
티르시는 흑역사를 들추는 얘기에 눈물을 찔끔 흘렸다. 난 대충 어깨를 으쓱이고 룬의 만다라를 펼쳤다.
휘리리리릭──!!
─쿵!!!
내 발 밑에 전개된 녹색의 빛이 악마의 손바닥을 밀쳤다. 손바닥 씨름에서 밀린 것처럼 악마는 뒤로 나자빠졌다.
시야를 가리던 게 사라지자 비틀린 하늘에서 마법진을 띄워놓은 에퀴녹스가 드러났다. 그 뼈와 살이 반반 섞인 얼굴엔 불쾌함보다는 재미있어 하는 듯한 분위기가 있었다.
나는 들리지 않을 거리의 그 년에게 이죽대며 뇌까렸다.
〈피라미드는 부술 수 있어도, 단 한 명의 인간은 죽일 수 없는 모양이군.〉
〈……놀랐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만큼은 아니어도, 여러분들을 짓눌러 죽일 정도의 마나는 사용했을 생각인데요.〉
〈꿈을 현실로 만들려면 그만한 노력이 필요한 법이지. 천 년 정도로는 한참 모자랐던 것 같으니, 조금 더 노오오오력 해 보는 게 어떨까?〉
에퀴녹스는 차가운 미소로 도발에 대답했다.
사람이라면 누구든 원하는 꿈을 꿀 수 있다.
아무리 허무맹랑한 것이라도 꿈 속에서라면 가능하니까.
이 세상에 안 계시는 부모님들을 만나뵙거나, 혹은 그 부모님으로 위장한 애꾸눈의 신이랑 담화를 나누거나.
고향에서 아내랑 영화를 보고 치킨을 뜯거나 하는 것도 꿈속에서라면 누워서 떡 먹기 아니겠는가.
〈겉보기로는 존나 현실감 넘치는 광경이더군. 근데 나도 꿈속에서 아내랑 실컷 놀고 먹으면서 꿈과 현실을 구분하는 요령은 충분히 쌓았거든.〉
나는 손가락을 들어서 거대한 악마를 가리켰다.
〈물론 네 말대로, 창세의 권능은 이 세상을 창조한 힘이 맞겠지.〉
이 이세계, 아스가르드, 니플헤임── 그리고 내 고향 지구.
그 모든 세계는 창세의 권능으로 만들어졌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 권능은 전지전능이 아냐. 만약 그렇다면 내가 이딴 괴물을 막을 수 있을 리가 없지.〉
나는 입꼬리를 비틀며 의식해서 비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한낱 인간 흑마법사에 지나지 않는 니가 이따위 괴물을 만드는 것도 절대 불가능하겠고.〉
그렇게 말하는 중에도 내 마나는 상당히 깎여나간 상태다.
방금 전의 공격을 막으며 쓴 마나가 너무 많았다.
하지만 그건 별을 부술 수 있는 코즈믹 호러 느낌의 괴물 새끼를 저지하기엔 턱없이 모자란 힘이었다.
굳이 말하자면── 아주 아주 강력한 흑마법사의 흑마법을 막고 있는 정도의 소모에 불과하다.
〈Bang!〉
나는 악마에게 손가락 총을 겨누고 격발했다.
─펑!
대륙보다 거대하던 악마는 눈 깜짝할 사이에 시야에서 소멸했다. 두 눈을 훤히 뜨고 보면서도, 이게 현실이라는 게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허무한 최후였다.
그리고 그런 초월적인 일을 벌이고도, 내가 소모한 마나는 드래곤을 날려보냈을 때보다 조금 적은 정도였다.
결국, 에퀴녹스가 창조한 악마란 딱 그 정도의 무게에 불과한 것이다.
나는 손가락 총을 내리고 창끝으로 에퀴녹스를 가리켰다.
〈니가 만든 괴물이 아무리 강력하게 보인들, 그걸 꿈에서 현실로 전환하려면 그만한 마나가 필요하지. 지금의 전투도 단순히 너랑 나 사이의 마나량 싸움에 불과하고.〉
창세의 권능이란 시전자의 꿈을 현실에 투영하는 능력이다.
하지만 거기에는 마나가 필요하다. 꿈에서 존나 큰 괴물을 만들어낼 수는 있겠지만, 그걸 현실에 불러내봤자 그만큼의 마나를 부여해주지 않으면 백일몽으로 끝날 뿐이다.
원초의 대마도인지 뭔지는 몰라도, 저 미친년이 이 세상을 주무를 수 있다고 믿는 거랑, 내가 그 궤변에 어울려주는 건 별개의 일 아니겠는가.
‘꼴랑 권능 하나 갖고 세상을 지 좆대로 주무를 수 있다고?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
창세의 권능으로도 시전자의 능력을 초월하는 현상을 일으킬 수는 없다.
그럴 만도 했다. 몇 번이고 말했듯, 이 이세계는 형평성에 맞지 않는 기적을 용인해 줄 만큼 자애롭지 않다.
에퀴녹스가 별을 부수는 악마를 만들고 싶다면, 에퀴녹스 자신이 그게 가능할 정도의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창세의 권능을 사용한다 한들 꿈결 같은 환상에 불과한 것이다.
〈그리고 내가 보기에, 너는 신을 자칭하기엔 카리스마가 모자라.〉
나는 정신병자의 헛소리를 씹는 마음으로 피식 웃었다.
〈분에 넘치는 망상은 작작 하고, 꿈 깨라. 뼈다구 년아.〉
창을 휘둘렀다. 에퀴녹스가 덧씌운 환상의 공간을 거리와 공간의 제약을 넘어서 때려부쉈다. 룬의 힘으로 에퀴녹스가 현실에 덧씌운 내면세계의 개입한 것이었다.
─콰직!
니플헤임에 텍스쳐를 씌우듯 만든 하늘의 왜곡이 소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