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567화 (567/1,009)

***

니플헤임의 설원에, 순수한 얼음 결정처럼 하얀 빛의 기둥이 솟았을 때.

레티티아는 두 눈을 부릅뜨며 날개옷으로 크게 물러났다.

〈이 마법은…… 옛 황실의 위신(僞神) 병기!!〉

〈흥.〉

레티티아가 경악하며 대처에 들어가려 한 것과 상반되게, 에퀴녹스는 코웃음을 쳤다.

디아볼로가 연구한 〈강림〉 마법에 대해서는 그녀 역시 잘 알고 있었다.

고대 문명의 가장 오래된 인공신?

이윽고 〈인신〉의 토대가 된 희대의 대마법 의식?

그딴 것, 조종자만 죽이면 아무 의미 없다. 발동 도중에 그 통제권을 갖고 있을 노르드만 해치워 버리면 무위로 돌아갈 소꿉장난에 불과하다.

아니, 에퀴녹스는 오히려 레티티아의 경계심과 군대가 창세의 권능조차 없는 가짜 신에게 쏠린 이 틈에, 그녀에게 기습을 가할 계획마저 있었다.

휘오오오오─.

하지만 흑마법사 언데드들과 데스 나이트 궁수의 화살비를 레티티아에게 겨누려던 에퀴녹스는, 명계 곳곳의 어둠과 음의 마나가 소용돌이치며 한곳으로 모이는 것을 깨닫고 눈을 부릅떴다.

누군가가 대기 중의 어둠과 음의 마나를 흡수하고 있다.

그것 자체만으로도 경악할 일이었지만, 어차피 농도는 별 볼 일 없다. 저승세계라고는 해도 니플헤임은 1000년도 전부터 신들에게 방치되어 영혼들이 머물지도 못하는 세계였다.

딱히 어둠과 음의 마나가 고일 만한 환경도 아니었기에, 그 양은 하찮을 뿐이다.

하지만── 그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방향이 문제였다.

〈……하나부터 열까지 최악의 사태만 일어나서는!〉

에퀴녹스는 공격의 대상을 노르드로 바꿨다. 그녀가 가장 경계하던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모여들고 있는 마나가 문제가 아냐. 만약 그가 자기 몸에 깃든 마나를 사용할 줄 알게 되면……!’

노르드의 몸에 고여 있던 어둠과 음의 마나.

그 농도와 양은 에퀴녹스도 얕볼 수 없었다. 대체 어디서 그런 농밀한 죽음의 기운을 쌓아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눈에 띄게 쌓인 마나는 반신의 경지에 올라선 에퀴녹스로 하여금 신중한 태도를 견지하게 만들었다.

만약 세헤티피브라의 환상세계를 조종해서 공간을 도약해 온 후, 에퀴녹스를 상대로 그 마나를 ‘사용’했다면?

패배하지는 않더라도 넘어갈 수 없는 손실이다. 그렇기에 그녀는 노르드를 원거리에서 견제했고, 조우한 순간에는 가장 먼저 세헤테피브라의 피라미드부터 부수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에퀴녹스에게 있어서도 이건 최악의 사태였다.

〈……해치우세요!〉

에퀴녹스는 레티티아의 공격에 노출될 걸 각오하고 노르드에게 공격했다.

기습을 당해도 피해는 수습할 수 있다. 노르드를 가만히 놔두는 것보다는 낫다.

〈아, 정말! 얌전히 죽어주면 어디가 덧나시나요!〉

비록 대상은 달랐지만 그런 마음은 레티티아 역시 같았다.

발퀴리에들이 질서정연하게 줄을 서서 창을 투창했다. 반신의 군대가 가진 힘을 쏟아부으며 한낱 인간에 불과한 2개의 그림자에게 폭격을 가하는 것이었다.

하얗고 새까만 마나. 색깔은 반대였지만 죽음을 다룬다는 본질만은 동일하다.

그리고 마나가 바닥난 자신이 막지 못할 공격을 바라보며, 노르드는 끓어오르는 마나를 풀어헤치고 있었다.

가만히 눈을 감고 분노를 해방하면, 그것은 찾아온다.

다른 어딘가에서 도래하는 것도 같고, 그의 가슴 속에서 쭉 짜내듯 새어나오는 것도 같았다. 오감이 감지하는 색은 새까맣지만 어둠과 음의 마나보다 더 어두웠다.

─스멀.

그것은 분노를 양분 삼아서 나타났다.

시간이 느려진 듯한 세상에서 어둠이 기어와서는 노르드의 다리에 감겼다. 몸에 남아 있던 어둠과 음의 마나는 바닷물에 섞은 먹물처럼 움츠러들었던 기세를 되찾았다.

분노에 의식이 흐릿해지자, 이를 드러낸 입술이 짐승처럼 난폭한 울음소리를 흘렸다.

새까만 마나는 뇌수를 애무하는 것처럼 쓰다듬었다.

호르샤 때처럼 그 진입을 막아줄 오딘의 안배도 이미 없다. 남은 건 한때 망령도시에서처럼── 아니, 그때보다 더한 폭주 뿐이겠지.

“뭘 이런 걸 다.”

하지만 노르드는 의식을 침범하는 뜨거운 숨결을 느끼며, 창을 들고 담담하게 속삭였다.

“마음만 받을게요. 두고 가십쇼.”

─쿠샥!!

들어올린 창이 살점을 꿰뚫었다.

창날이 관통한 것은 그들을 공격하려던 적병인가?

아니다. 미스릴 창은 다름 아닌 주인의 가슴에 박혀 있었다.

노르드는 창을 역수로 들고, 자신의 심장을 찔렀던 것이다.

──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달리던 자동차에 급 브레이크를 밟는 것 같은 비명 소리가 터져나왔다.

노르드의 등 뒤로 나뭇가지처럼 거대한 마나가 터져나왔다. 나무의 형상이 한때 비슷한 짓을 했던 신을 흉내내듯 자신의 창에 심장을 관통시킨 노르드의 등에 우주를 덧씌웠다.

의식을 오염시키던 어둠과 음의 마나가 창에 흡수되었다. 노르드의 시야가 선명해졌다.

울프헤딘의 권능을 모방한 창의 힘.

그리고 에퀴녹스의 수족들이 보여줬던 것. 무기에 어둠과 음의 마나를 넣는 마장(魔裝) 마법.

그 마법을 사용해서 노르드는 몸에 남아 있던 것은 물론, 방금 막 새롭게 침범하려던 어둠과 음의 마나까지 전부 자기 창에 쑤셔박았던 것이다.

그렇게 흡수한 마나의 양은── 명백하게 하늘에 떠 있는 반신에게 필적했다.

투콰과과과과과과──!!!

예상을 웃도는 양에 에퀴녹스와 레티티아는 세 번째 적을 묻어버리고자 폭격을 증가시켰다. 지반을 경작기처럼 들추고 작은 도시가 통째로 들어갈 크레이터를 만들 만한 위력이다.

그렇게 날아든 무수한 공격이 2개의 빛 기둥에 닿았을 때.

“〈대소멸(Big Crunch).〉”

기계처럼 감정없는 주문이 들려오면서, 니플헤임을 차가운 마나가 가렸다.

파스스스슥─!!

얼음의 마나는 장막처럼 못 미덥게 흔들거렸지만, 보이는 것처럼 나약하지 않았다. 오히려 소름이 끼칠 정도로 강력한 초고위 마법이었다.

장막이 닿은 공격은 전부 소멸했다. 비유도 뭣도 아니고, 그 공간의 파괴에 휘말려 입자도 남기지 않고 사라진 것이었다.

얼음 계열 마법의 궁극점은 시공간의 조작이다.

어느 한 곳에서 열을 옮기고 조작해서 결핍시키는 수준을 넘어, 공간 그 자체에 개입하는 경지의 대마법.

그걸 주문도 없이 사용하는 마법사라면 감히 신을 자칭할 수도 있을까.

그 오만한 물음에 답해줄 사람은 없다. 한때 가장 위대한 대마법사였던 이는 죽고, 그를 신으로 추앙하려던 자들도 뜻을 이루지 못한 채로 목숨을 잃었다.

그런 과거의 역사를 아는 것도 이제는 한 줌의 인간 뿐.

그중 한 사람인 레티티아는 감탄하듯 박수를 쳤다.

〈아하하! 대단하세요, 노르드 님! 그 인간 계집앨 〈인신〉으로 만드셨군요!〉

〈신은 개뿔. 우리 마법사님은 그냥 인간이야.〉

─촤악.

모든 것을 소멸시키는 얼음의 장막을 농담처럼 걷어내며, 노르드가 말했다.

〈충전 끝. 블랙 매지션 노르드다, 이거에요.〉

─부웅!!

노르드는 용광로처럼 검은 마나를 토해내는 창을 가뿐하게 휘둘렀다.

얼음의 장막이 창에 재단되듯 갈라졌다.

현실적이지 않은 광경이었지만, 그럴 만도 했다.

한쪽 눈을 감고 스스로가 ‘오딘의 눈’이라고 명명한 권능을 평소 이상으로 개화시킨 그였다. 지배권까지 손에 쥔 상대의 대마법 쯤 아무렇지 않았다.

에퀴녹스는 노르드의 창에 부여된 마법을 알아차리고 소스라칠 만큼 놀랐다.

〈마장 마법……! 그 며칠 사이에 분석과 습득까지 끝냈다고요?!〉

〈어. 고맙다, 씹탱아. 느그 부하들을 사냥한 덕분에 이런 걸 다 해 보네.〉

─삐걱, 삐걱!

허용량을 넘은 마나에 창대가 무섭도록 삐걱거렸다.

이 마장 마법은 그만큼 편법이었다. 창에 쑤셔박은 마나는 소모성의 일회용이다. 2번 다시는 쓰지 못할, 리치 에퀴녹스만을 위해서 준비했던 노르드의 비수(匕首)인 것이다.

문제 없다. 앞으로 더 건실하게 성장을 이루면 그만이다.

지금 사용하고 버릴 힘이라고 치면 아쉬울 것 없다.

─촤악.

그런 노르드의 뒤를 잇듯이 대소멸의 장막을 가르는 손이 있었다.

〈……………….〉

티르시는 얼음처럼 싸늘한 눈빛으로, 온갖 빛으로 물든 두 눈을 반개했다.

그런 그녀의 옷차림은 어느새 조신하던 로브 차림에서 일변한 상태였다. 〈편찬대대〉의 〈유사신화형〉처럼 신좌의 주인이 생전에 다루던 장비를 소환한 것이었다.

겉으로 보이는 장비는 고대의 대마법사가 사용하던 것들로 일변했지만, 진짜 변화는 외면이 아닌 내면이었다.

〈강림〉 마법의 작용으로 모든 자의식은 사라지고, 그저 주인의 명령을 따를 뿐인 기계로 변한 모습.

하지만 그게 ‘티르시’라고 하는 인격의 소멸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그녀의 영핵을 굳건히 감싸고 있는 형광색의 마나가 아르마 슈나스의 마나로부터 티르시의 자아를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르드는 추호도 아쉬울 것이 없었다.

이 싸움 후에 없어질 힘이기는 해도, 그와 그녀의 마나는 티르시의 결심과 네페르티티의 지식, 자신의 1번 뿐인 편법이 만들어낸 최상의 결과였으니까.

오딘의 눈으로 〈강림〉 마법에 개입해서, 티르시의 혼이 상하지 않게 지켰다.

아무 것도 잃을 것 없이 혼자 싸우려 했을 때보다 완벽한 계획을 이뤄낸 것이다.

〈……………….〉

잠시 원래의 인격이 잠든 티르시가 에퀴녹스와 레티티아를 바라보았다. 그 무심한 시선에서 막대한 마나를 감지하고서 레티티아는 얼음장처럼 눈빛을 가라앉혔다.

〈인신〉은 막대한 마나를 대가로 신의 권능을 일부 휘두를 수 있는 존재다.

토르의 〈인신〉은 묠니르와 신의 번개를.

프레이야의 〈인신〉은 브리싱가멘과 발퀴리에를.

그렇다면 아르마 슈나스의 〈인신〉이 가진 힘이 뭘지는 불 보듯 뻔했다.

〈생전의 마도신이 가졌던 마법 실력과, 마나량.〉

그 힘을 그대로 승계받는 게, 〈강림〉 마법이다.

고대의 대마법사가 실제 신에 필적하는 강함이 없었더라도 상관없다.

진짜 신만큼 강대하지 못한 것은 레티티아도 같다. 어쩌면 자의식의 소멸을 대가로 완전한 아르마 슈나스의 힘을 손에 넣은 티르시가, 힘의 총량은 그녀보다 더 뛰어날지도 몰랐다.

생전과 전혀 변함 없는, 신에 준하는 힘.

신의 경지에 도달했던 고대의 대마법사가 재림한 모습.

가장 유서 깊은 〈만들어진 신(Deus Ex Machina)〉.

‘마도신’, 아르마 슈나스.

〈티르시. 저 해골 대가리 년은 맡길게요. 다른 사람들한테 마나를 나눠주면서 사이 좋게 족쳐버려요.〉

노르드는 티르시에게 훌두폴크의 옥새를 던졌다.

티르시는 미동도 하지 않고 그저 명령에 복종했다. 영혼과 육체가 차단된 그녀에게 자아는 없고, 지금은 단지 소유주인 노르드에게 맹목적으로 따를 뿐인 병기나 다름 없었다.

그 사실에 조금 씁쓸함을 느끼면서도, 노르드는 일이 끝난 뒤에 다시 만날 티르시를 생각하며 픽 웃었다.

파앗─! 동료들의 상처에 치유 마법을 걸었다.

다나가 사용하던 걸 봤던 기억을 극한까지 강화된 마법의 적성과 이해력으로 재조립한 것이었다. 일행의 상처는 눈이 녹듯이 사라졌다.

이런 기적적인 능력도 몇 시간 뒤에는 기억과 함께 사라지겠지.

하지만 그렇게 되는 게 옳았다.

이 사랑스러운 연금술사 아가씨의 마음과, 신의 힘.

어느 게 더 가치 있느냐고 물으면, 당연히 전자였으니까.

〈네페르티티? 저희 마법사 님 좀 부탁합니다. 제 미래의 아내님이거든요.〉

〈아, 응…….〉

티르시가 마나를 계속 공급하며 싸운다면 승산은 높았다. 어깨의 상처가 나은 네페르티티에게 윙크를 한 노르드는 조금 침울해진 그녀의 얼굴은 깨닫지 못하고 등을 돌렸다.

〈길다트. 공주님. 오프툼 씨. 다들 아직 정신머리 붙들고 있죠? 거기 두 분은 일 끝나고 저한테 보수 주셔야 하니까 꼭 살아남으셔야 되고, 오프툼 씨도 복수를 마저 해야죠?〉

〈그래. 당연한 소리지.〉

그렇게 대답한 오프툼은 노르드가 사용한 마장 마법에 대해 생각했다.

노르드의 몸에 어둠과 음의 마나가 있다는 건 들었으며, 오프툼은 이렇게 된 상황에서 흑마법에 준하는 마법을 사용했다고 뭐라고 할 정도로 염치가 없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고맙네. 저 정신 나간 싸움을 보고, 나 따위가 뭘 할 수 있을지 체념하려던 차였어.〉

〈왜 이러실까, 흑마법사 슬레이어 선배님께서 그런 약한 모습을 보여주시면 안 되죠.〉

그의 냉정함과 판단력에 진심으로 존경과 감사의 뜻을 품은 오프툼에게, 노르드는 픽 웃으며 말했다. 길다트는 멀쩡해진 팔로 오러를 발동하며 어깨를 돌렸다.

〈우리가 에퀴녹스를 해치운다고 치고, 노르드 너는?〉

〈제 귀여운 아내님의 복수를 대신 할 겁니다. 마침 적도 2명이잖습니까.〉

─스릉. 새까맣게 날이 선 창을 들며 노르드는 갈 데 없는 분노를 외안에 띄웠다.

형광색 마나로 번뜩이는 눈이 사신의 여왕을 겨누었다.

〈저는, 저기 저 젖만 커다란 개썅년을 족치고 오죠.〉

그렇게만 내뱉은 노르드는 창에서 마나를 뽑아 쓰며 땅을 박찼다.

***

진각을 밟으면서 대쉬.

빛살처럼 달리며, 가속이 최대 스피드에 도달하기도 전에 〈공간 이동〉을 시전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나타난 씨팔련의 모가지를 콱 잡고, 또 〈공간 이동〉.

땅에서 하늘 위의 궁전까지 1초만에 도달한 나는, 모가질 잡은 레티티아를 바닥에 메쳤다.

〈꺄아아아악!!!!〉

바람을 너무 많이 넣은 농구공처럼 바운스를 일으키며 통 통 튀는 레티티아.

가슴은 또 존나 커서 갑옷 째로 흔들리는 게 왠지 더럽게 꼴 보기 싫었다. 이딴 미친년을 상대로 프랑이 생각나서 그런 걸까.

그래도 개 같은 년이 굴러대면서 지랄 바운스를 하는 꼴은 존나 꼬숩다. 엉망이 된 머리를 쓸어넘기고 레티티아가 나를 멍하니 쳐다봤다.

아니, 내가 아니라 내가 든 창을 쳐다보고 있는 것이었다.

〈……그거, 뭐에요?〉

〈물어보면 대답해 준대?〉

〈왜요? 저는 대답해 드렸잖아요?〉

이 미친년은 이런 상황이 되서도 나한테 적의랄 걸 보이질 않았다.

살기는 찌릿찌릿하지만, 놀랍게도 살의와 적개심이 쥐뿔도 비례하지 않는 것이었다. 존나 나보다 이 새끼가 광기의 신 타이틀에 어울리지 않을까? 으으, 넘모 무섭다… 똘게이련….

〈이건 너랑 나만의 비밀인데, 사실 울 엄마가 오딘임.〉

분노가 지나쳐서 오히려 냉정해진 나는 질색팔색을 하며 구라를 깠다. 레티티아는 싱긋 웃었다.

〈그걸 말하시려면 아빠 아닐까요?〉

〈몰라 씨발아. 아무튼 기왕이면 여신이 좋지. 남신은 쵸큼 징그러울 것 같자너.〉

〈흐응……? 그럴 리가 없는데.〉

뭐가 그렇게 신기한지 고개를 좌우로 갸웃거리던 미친년은 아무렴 어떠냐 하는 식으로 웃었다. 그리고서 날개옷을 활짝 펼치며 궁전에서 서른 이상의 발퀴리에를 뽑아냈다.

─데구르르. 나는 눈을 굴리다가 말했다.

〈발퀴리에의 바겐 세일이군. 그거 하나 잡겠다고 좆고생 했는데, 밑에 있는 것까지 합치면 쉰은 넘지 않냐?〉

〈만들려면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구요? 그게 프레이야의 권능이죠.〉

─척, 척. 발퀴리에가 나를 둘러쌌다.

에인헤리는 꺼내들지 않는 건가. 하긴, 이 구름 위의 궁전에서는 물량만 많아봤자 자기가 움직이기 힘들어지겠지.

〈아, 그래도 조금 부담이 되니까 밑에 있는 애들은 회수했어요. 아르마 슈나스라면 《용아병단》의 힘을 깎든가 해 줄 테니까요.〉

〈새끼가 요령 부리긴. 존나 가라로 일하네.〉

〈어머? 저는 체력이나 힘도 좋은데요? 테크닉 말고도 잘 하는 게 많답니다.〉

〈쏘리. 내가 처녀충이라.〉

나는 이번에도 구라를 까며 흘러넘겼다. 아무튼 구라 맞다. 결과론적인 관점이지만 어쩌다 보니까 처녀 헌터가 돼 버린 나 자신에게 묵념이다.

딱히 정조로 사람을 차별하진 않는데, 왜 이렇게 된 것이지.

〈후후후. 이 궁전에는 좋은 침대가 많답니다? 무려 신의 권능으로 만든 거에요.〉

그 말이 신호인 것처럼 발퀴리에의 포위진이 완성됐다.

풀 버프 덕분인지 혓바닥은 멀쩡하지만 오딘의 눈은 켜둔 상태다. 그리고 내가 벡안으로 보건대, 저 발퀴리에의 전술은 처음부터 타고 나는 것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레티티아는 발퀴리에 공장의 마스터 키를 쥔 상태라고 할 수 있을까.

그거야 숨풍숨풍 뽑아서 정찰용으로 뿌려둘 만도 하군. 내 생각이 그쯤을 헤엄칠 무렵, 발퀴리에들이 창을 낮췄다. 레티티아는 팔을 벌리며 환하게 웃었다.

〈자! 제 품에 안기세요! 영혼의 마지막 한 톨까지 사랑해 드릴게요!〉

영혼의 단위가 톨(㐋)인가? 내가 고개를 모로 꼬았을 때, 발퀴리에들이 프레스기처럼 포위망을 좁혔다. 날개쟁이들답게 하늘까지 포위했다. 피해낼 공간도 없을 만큼 치밀한 진형이었다.

1마리만 해도 그렇게 좆 빠지던 새끼들이다. 내가 아무리 치트 ON 상태여도, 제식을 맞춘 발퀴리에 떼를 상대로 맞장을 뜨는 건 귀찮기 그지 없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창을 바닥에 찧으며 말했다.

〈앉아!!〉

─우뚝!

내가 호령을 내린 순간, 살기등등하게 포위망을 좁혀오던 무표정한 플라잉 여전사들 전원이 일시 정지했다. 마치 실컷 달리던 로봇 청소기가 벽에 부딪힌 것처럼 말이다.

그들은 급제동을 건 날개를 퍼덕이며 착지하고는, 지시한 그대로 다소곳하게 무릎을 꿇었다.

〈……어?〉

〈아니, 사실 발퀴리에를 봤을 때부터 생각했던 건데.〉

발퀴리에의 지배권을 탈취해낸 나는 동상처럼 굳어 있는 놈 1마리를 창끝으로 건드렸다. 티르시의 조종권을 갖는 마법을 개조해서 즉석에서 개발한 마법이었다.

다 똑같은 얼굴을 한 발퀴리에는 내가 심념으로 지시하자 일어섰다.

〈발퀴리에는, 오딘을 섬기는 럭키 술 시종 아니냐?〉

발할라에서 오딘과 그의 전사들에게 술을 따르며, 오딘을 섬기는 여전사.

그게 발퀴리에의 존재 의의 중 하나였다.

출처는 카르미네 대학의 연구자료다. 존나 내가 석사 아니었으면 어쩔 뻔 했어? 고고학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도 대학원생은 좋은 직업임이 분명하다.

─처억!

내가 심념으로 명령하자 30마리의 발퀴리에는 내게 등을 돌리며 레티티아에게 창을 겨눴다. 레티티아는 급히 새롭게 발퀴리에를 뽑아내며 파란 얼굴로 중얼거렸다.

〈제 발퀴리에의, 통제권을…!!〉

〈오딘! 그녀는 신이야! 천공신 펀치! 천공신 펀치!〉

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기쁨의 눈물을 뽑아내며 빈 공간에 주먹을 내질렀다.

흑흑, 여신님…… 후계자한테 군대 같은 거 안 남겨뒀냐고 찡찡대서 미안합니다……. 다 역사서에 남겨두셨는데 저어는 이런 줄도 모르고…….

인맥과 치트 빨로 발할라 랩실 친구들과 친분을 다진 나는 창을 한 바퀴 돌렸다.

레티티아가 암만 순산 머신처럼 저 발퀴리에 떼를 뽑아내 봤자, 나는 국방부처럼 징병 시즌이 되면 신검도 없이 남의 집 발퀴리에를 낚아채가면 그만이었다.

여성징병제라니, 역시 이세계는 남녀평등국가가 맞다.

느그 딸들은 이제 제 겁니다. 제 소대원이 된 겁니다.

그래도 자살특공이나 시키는 저 빡통보다는 낫을 듯. 아암, 그렇고 말고.

‘아무튼, 인정할 건 인정해야겠지.’

나는 레티티아라는 미친 년에게도 쓸모가 있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며, 그년의 노고를 치하해주는 마음으로 말했다.

〈국가에 헌신하는 그 모습…… 아스가르드 마망다운 희생정신이로군. 칭찬해 주마.〉

그럼 할 말도 끝났겠다, 이제 볼 장 다 봤다.

그만 지옥으로 돌아가도록, 씨팔년(Woman Selling See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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