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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척척석사 노루-570화 (570/1,009)

피잉─!!

나와 레티티아는 같은 평행선 상에 놓고 쏘아진 총알처럼, 일직선으로 돌진했다.

…끼릭!

그리고 그때, 서로 죽고 죽이던 발퀴리에들이 싸그리 날아올랐다.

기감으로 감지한 58마리. 대치 상태에서 소멸한 9마리를 뺀 49마리의 발퀴리에를 모두 지배해서 레티티아에게 덤비게 한 것이었다. 마나 소모는 크지만 상관 없었다.

〈그 정도도 예상 못 했을 줄 아시나요!!〉

그걸 기다렸다는 듯 레티티아가 준비한 첫 번째 수가 펼쳐졌다.

빛의 창이 50자루나 그 년을 두르며 만들어졌다. 그야말로 빛의 가시를 두른 고슴도치 같다. 발퀴리에들이 피하지도 못 할 속도와 즉사시킬 만큼의 위력을 가진 마법이었다.

저 위력이면 발퀴리에들을 전멸시킨 뒤에도 나를 포위하며 공격할 수 있을 것이다.

단, 전멸시킬 수 있다면.

붕붕붕붕붕붕──!!!

레티티아가 눈을 부릅떴다. 돌격해 오는 발퀴리에 50마리 전원이, 하라는 공격 준비는 하지 않고 한 손으로 창을 풍차 돌리듯 회전시키고 있던 것이다.

마나를 이용한 공격을 흡수해서 반격하는 【게르튀르】의 응용기!

내가 싸웠던 발퀴리에도 썼던 기술이었다.

감히 프레이야의 〈인신〉을 상대로는 자동차에게 태극권을 걸려는 중국인처럼 못 버티고 죽을 듯 했지만, 상관없다.

저 반격기를 뚫고 발퀴리에까지 죽이면 나를 공격할 만한 출력은 남지 않는다.

〈──제가 찾던 킬각 여기 있네요.〉

그리고 다구리의 묘미는 남이 1대 칠 때, 나는 2대를 칠 수 있다는 점이다.

나는 모든 마나를 가속력에 퍼붓고, 창과 한 몸이 되어서 바람보다 빠르게 비행했다.

발퀴리에들이 터져나갔다. 레티티아에겐 내가 기를 모으며 준비한 몸통박치기+찌르기를 막아낼 시간적 여유가 없다. 첫 번째 겨루기는 내가 한 수 위였던 것이다.

─통제되지 않는 신좌는, 존재해선 안 됩니다.

그 1초도 되지 않는 찰나에, 나는 레티티아의 말을 들었다.

─신들의 시대는 끝났습니다. 구신의 재림은 있어서는 안 됩니다……!

룬 마법의 텔레파시가 뇌리를 스쳐지나간 순간이었다.

─인류의 황금시대는 저물지 않아요! 저의 손으로, 그렇게 만들겠어요!!

…으직!!

두 손을 움켜쥔 레티티아가 창세의 권능을 발휘했다. 내가 뚫고 지나가려던 10미터의 공간이 블랙홀처럼 일그러졌다.

공간 자체가 비틀리며 물리적인 경지를 넘은 압력이 나를 짓뭉갰다.

파리지옥처럼 감싼 무색의 무언가가 빛을 왜곡하며 눈앞을 시꺼멓게 물들였다.

룬의 부적이 권능에 저항했지만 출력이 모자랐다. 레티티아가 효율을 무시하고 엄청난 마나를 퍼붓고 있던 것이다.

그야말로 포크레인으로 젓가락질을 하는 듯한 멍청한 짓!

하지만 마나 효율이란 확실한 승기가 없을 때를 대비하는 전략이다.

폰이랑 나이트가 얼마나 남았든 킹이 죽으면 게임 셋이지 않은가. 적을 100% 죽일 수 있다면 마나가 얼마만큼 사라지건 무슨 상관이겠는가.

건전한 사람이 보기에는 틀림없는 광기과 독선일 지언정, 저 여자의 집념은 확고부동한 신념의 경지였다.

내면세계의 바람을 현실로 만들어버릴 만큼의 신념 말이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공간 마법으로도 빠져나갈 방법이 없는 치명적인 권능의 발현이 눈 앞까지 다가오는 순간에도 단지 눈을 감고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보았다.

능력이 호각이고 노력이 비슷하다면 정신력이 우열을 가른다던가. 나는 정신론을 혐오하지만 악에 받친 인간의 무서움까지 부인하지는 않았다.

감았던 눈을 떴다.

그리고, 현실을 목도한 채로 꿈을 꾸었다.

─슈왁!

비틀린 공간이 청소기에 빨려들어가는 비닐처럼 구겨지며 무력화되었다. 레티티아가 피를 흘리며 경악했다.

〈창세의 권능……?!〉

─우지끈! 마나를 지나치게 짜낸 창이 버티지 못한 듯 삐그덕거렸다.

나는 공간의 왜곡에 쌓인 채 창을 던졌다. 창은 던진 즉시 공간을 뛰어넘어 적의 심장에 닿았다.

관성으로 속도를 유지한 채로 〈공간이동〉으로 비거리를 초월하며, 던진 힘 그대로 레티티아의 가슴에 꽂힌 것이었다. 처음 레티티아를 여기까지 데려왔을 때와 같은 방법이다.

투척이 곧 적중. 절대 빗나가지 않는 필중의 투창이다.

─카앙!!!!!

하지만 레티티아는 그마저도 읽었다.

내가 자신과의 속도 차이를 알고 있다는 걸 확신하고, 피할 수 없는 공격을 가해올 거라고 예상한 것처럼 가슴의 방어에 몰두한 것이었다.

레티티아는 충격에 움푹 파인 가슴 갑옷을 붙잡으며 이를 악물었다.

〈똑같은 수에 2번은 당하지──〉

──않아요, 라는 말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1초가 10초와 같이 늘어지는 순간, 레티티아는 그 가슴에 부딪혔다가 튀어오른 창대를 보고 말을 잃었다.

조금 전, 내 창은 우지끈 하고 두 쪽으로 부러졌다.

그렇기 때문에 공간의 왜곡을 빠져나가기 전에, 페이크로 창대 부분을 던진 것이다. 레티티아가 방어할 게 뻔했으니까.

당연하지 않은가? 지금 내가 쓰는 마나는 전부 창에서 가져오는 것. 투창이라니 어불성설이다.

실패하거나 빗나가지 않는 공격은, 창대를 꽉 붙잡고 적의 품에 파고들어 심장을 관통하는 것 뿐.

마치 지금처럼 말이다.

─푸욱!

창세의 권능으로 공간의 압착을 중화하고 빠져나와서 레티티아의 심장에 쑤셔박았다.

피이이이이이잉─!!!

심장을 관통한 감각을 느낀 순간, 세상이 일변했다. 구름 위 궁전 같던 풍경이 사라지고 지옥의 하늘에 낙원처럼 푸르른 초원이 펼쳐진 것이었다.

내가 셰이드의 꿈을 꿀 때마다 보던 광경이었다.

〈아아아아아아악……!!!!!!!! 끄으으, 흐으윽……!!〉

심장이 짓이겨진 레티티아가 비명을 지르며 내 창을 힘껏 붙들었다. 손에 힘은 거의 없었다. 몸에 걸친 장비마저 색을 잃고 회색으로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커흑, 케흑!! 아, 윽……!!〉

〈아프냐? 그럼 다행이군.〉

고통스러워 하는 미친년을 내려다보며 창을 비틀었다.

동정심이 솟을 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이 년이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모를 망상과 독선에 죽어나간 사람이 몇이며, 그들 사이에 프랑의 아버지마저 있었는데 불쌍할 리가 없었다.

…툭.

한동안 레티티아는 그렇게 미련이 남은 듯이 창을 붙잡고 있었지만, 더는 방법이 없다는 걸 깨달은 것처럼 몸의 힘을 뺐다. 내 창이 육체만이 아니라 영혼도 관통했던 것이다.

나는 잠시 눈을 찌푸렸다. 힘이 길항하던 탓에 죽이지 않을 여유가 없었다고는 하지만, 이런 상태여서는 영혼을 심문하는 것도 불가능할 것이었다.

〈……이게, 당신이 꾸는 꿈속의 세상인가요?〉

─파스스. 매의 날개옷과 갑옷을 잃어가며 레티티아가 툭 던지듯 물었다.

〈그런가 보더군.〉

〈……아무 것도 없네요. 그래도 평화로운 곳.〉

그 여자의 심장에서 창을 뽑아냈다. 지지대를 잃은 레티티아는 휘청거렸지만 마지막 자존심으로 넘어지지는 않았다. 텅 빈 눈을 비비던 레티티아가 중얼거렸다.

〈새까만 바다 같을 줄 알았는데……. 조금 의외에요…….〉

〈바다는 별로 안 좋아해. 좋은 기억이 좆도 없어서.〉

벌레 천국의 바다에 떨어지거나, 기껏 건넜더니 거인이랑 싸우거나, 바다에서 기어나온 말대가리 괴물들한테 뒤질 뻔 하거나, 하여튼 좋은 기억이 손에 꼽았다.

그나마 있는 게 아내들이랑 수영한 정도인가.

〈흐응……. 마음이 맞네요. 진짜, 아쉽다…….〉

오래 살아서였을까. 죽음을 받아들이고 나자 초연해진 듯, 그 년은 딱 거기까지만 말하고 심장에서 신성력의 덩어리를 뽑아냈다.

뚜둑, 뚜둑…! 생살을 뜯어내는 것만 같은 소리가 났지만, 당사자는 눈도 꿈쩍하지 않았다.

〈착각하지 마세요. 당신이 마음에 들어서, 주는 거니까.〉

그리고 내가 뭘 어떻게 하기도 전에, 남의 손에다가 그걸 떠넘기듯 건넸다.

〈원래는 남한테 줄 게 못 되지만, 지옥에다 두고 갈 순…… 없기도 하고…….〉

서늘한 빛 덩어리는 금색의 열쇠로 변했다.

열쇠 자체가 신물(神物) 같은 건가. 나는 인상을 팍 썼다.

〈뭔지도 모르겠는데, 버려도 되냐? 이걸 되찾겠다고 느그 친구들이 몰려올 것 같다?〉

〈후후. 그럼 저한테 하신 것처럼, 물리치시면 되죠…….〉

─툭. 레티티아의 팔이 가루가 되며 떨어졌다.

1000년의 시간을 갑자기 받아버린 듯, 황금 가루로 만든 모래성처럼 영혼과 육체가 녹아내리는 것이었다.

오딘의 눈으로 살핀 그 죽음을 살핀 나는 열쇠를 챙겼다.

마법 능력이 임시적으로 폭증된 덕분이었을까. 나는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하는 것처럼 건네받은 황금 열쇠를 내면세계에 집어넣을 수 있었다.

셰이드의 꿈으로 진입하는 몽중세계(Dreamland)에 열쇠가 툭 떨어졌다.

〈그럼 이제 끝이군. 죄질 만큼 대가를 치르게 못 하는 건 아쉽지만, 내가 바쁜 몸이라서.〉

1000년 묵은 미친 할망구의 마무리를 지을 준비를 했다. 가만히 둬도 끝이 나겠지만, 시작한 이상 끝을 내야 하니까.

레티티아는 바스라지며 말했다. ─파스스. 무너지는 얼굴에 맞춰서 눈에서도 빛이 꺼져가는 게 보였다.

〈신좌는, 비어서는 안 돼요……. 아무리 적격이 아니어도, 누군가는 앉아 있어야 한답니다……. 그건 인류의 누군가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에요…….〉

〈그래. 통수를 갈긴 걸로 모자라서, 마지막까지 빌어먹을 짐덩이 고맙다.〉

〈후, 후후. 별, 말씀을……〉

─파사삭!!

반쪽난 창을 휘두르자 레티티아는 가루가 되며 무너졌다.

1000년을 살아온 역사 뒤편의 반신이 맞이한 최후라기엔 썩 허망한 죽음이었다.

〈……쯧.〉

나는 초원에 널브러진 황금 가루를 보며 혀를 찼다.

차라리 내가 어디 하나 다치더라도 지랄맞게 추하게 굴며 끝까지 저항하면 좋았을 걸, 마지막에 초탈한 듯 구니까 영 기분이 찝찝했다.

끔찍한 살인자 주제에 자꾸 친근하게 구는 것도 불쾌해진 이유였다.

이런 말은 어떨까 싶지만, 죽여버리고 싶은 놈한테 호의를 받는다는 것도 제정신으로 할 짓은 아닌 것 같았다.

─쿠르르릉!

형광색 빛이 번쩍이며 초원을 흔들었다. 내 마나로 펼쳐진 환상 반 현실 반의 공간은 그걸로 힘이 바닥난 듯 무너졌다. 내가 창세의 권능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탓이었다.

‘마나는 얼마 안 남았나.’

부숴진 창대를 쥐고 회복 마법으로 이어붙였다.

저번처럼 모든 마법을 완전하게 다룰 수 있는 건 아닌지 애매하게 붙다 만 것도 같았지만, 당장 쓸 수는 있을 듯 하니 괜찮겠지.

무기를 고친 나는 지면을 향해 곤두박질 치듯 낙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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