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 리치의 뼈가 설원에 떨어졌다.
인간의 죽음을 초월한 괴물에게도 괴물의 죽음이 있다. 지 몸을 뼈와 살의 반반무마니 샌즈로 만들어놓은 에퀴녹스조차 영원불멸한 존재는 아닌 것이다.
그러니까 오프툼에게 영혼을 반파당한 이때, 에퀴녹스는 그 목숨의 경각을 맞이했다.
〈전부 끝났다, 에퀴녹스.〉
내가 지켜보는 가운데, 오프툼은 입에서 피를 흘리는 에퀴녹스에게 팔을 꽂고 오러 차크람을 새롭게 만들어냈다.
〈지옥에서 소멸한 영혼이 향하는 곳이 있다면, 그곳에서 네가 죽인 이들에게 사죄해라!〉
위이이이잉─!!
파괴의 마나가 믹서기처럼 회전하면서 에퀴녹스의 머리를 박살냈다. 미녀의 얼굴과 보란 듯이 드러난 두개골이 가루가 되면서 오러 차크람이 가슴 속에 있던 영혼을 갈아버렸다.
카가가가각……!!
하지만 영혼은 부숴지지 않았다.
뒤통수를 후려깔 때랑은 다르게, 몸이 박살나고도 영혼에 남은 마나로 권능을 전개한 것이었다.
〈큭!〉
─죽을까 보냐……!! 여기까지 와서, 천 년의 기다림 끝에 간신히 시작선에 섰는데……!! 이렇게 죽을 수는 없어!!!!
입도 없는 몸으로 에퀴녹스가 포효했다. 그건 영혼이 직접 내지르는 망령의 비명소리였다.
─내가 바꿔주마……!! 이 빌어먹을 얼음 투성이의 명계도, 인간 따위가 신을 대신하려는 이승도, 거만하게 세상을 굽어보는 남은 신들도!!
〈씨팔!〉
몰아치는 마나의 파도가 몸을 겨누기 힘들 정도였다.
창에 남은 마나는 내 원래 마나보다 2~3배 많은 정도! 내 힘으로는 저항하기 힘들었다.
─아무 것도 아니었던 내가!! 한낱 인간의 손으로!! 올바른 명계를 만들어 보이겠다!!
슥─.
그런 해일 같은 프레셔에서 홀연히 움직인 건 티르시였다. 그녀는 자신에게 남은 마나로 눈을 뜨는 것조차 힘든 마나의 파도를 가르며 오프툼을 피해 에퀴녹스의 영혼을 노렸다.
쿠과과곽…!!
얼음 기둥이 형이상적인 오브제처럼 엉망진창 박살난 에퀴녹스의 몸을 개박살냈다. 당연히 육체 안에 있는 영혼도 그 자비심 없는 마법에 구멍이 숭숭 뚫렸고 말이다.
─아아, 아, Aa, aAAAaaa■■■■!!!!
쿵─!!!! 지축이 큰 파괴음을 내며 갈라졌다.
느닷없는 부유감에 나는 혀를 찼다.
고장난 브라운관 TV와 같은 시야와, 눈에 보이는 것과는 전혀 다르게 흔들거리는 지면! 얌전히 있기만 해도 멀미가 날 정도라서 서 있는 것조차 어지러웠다.
이 니플헤임이 시공의 변천을 일으키는 것이었다.
〈끈질긴 놈! 아직도 저항할 생각이냐!!〉
〈오프툼 씨! 거기 있다간 좆 될 각이니까 일단 피해요!〉
나는 마나의 밧줄로 오프툼을 뒤로 잡아당겼다. 그러면서 나 역시 창세의 권능을 전개하려다가, 익숙하지 않은 느낌에 혀를 차고 그냥 룬 마법을 발동했다.
영혼만 남은 에퀴녹스는 공간을 찢어발기며 권능을 펼쳤다.
─빠직!
콰르르릉─!!!!
직소 퍼즐을 바닥에 내친 것처럼 세상이 조각났다.
중력이 사라지며 니플헤임의 설원이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엔더 월드 멈춰!〉
나와 티르시는 손을 내밀고 공간의 재구축에 저항했다. 룬 마법을 발동한 나에게 티르시가 마나를 전해주는 식이었다. 레티시아를 족치고 나서 남은 마나가 거의 없어서였다.
스우우우우우……!!
우주 공간처럼 뭉개진 세상에 빛이 수만 줄기로 뻗어갔다. 나는 흑마법사의 최후라기엔 성스럽기까지 한 광경에 눈쌀을 찌푸렸다.
명계의 법칙이 다시 쓰여지고 있었다.
〈……마지막 발악인가? 뭘 하려는 거지?〉
내가 모르는 사이에 기절해 있던 엘리자베트를 안으며 길다트가 말했다.
아내를 챙기기엔 싸움이 완전히 끝난 건 아니었는데, 나는 그러려니 했다. 우리는 뜯겨져나간 지면에 올라타서 하늘 위를 나는 중이잖은가. 뭐 별달리 할 일이 있던 것도 아니고.
나는 오딘의 눈으로 원근감이 사라진 세계를 관찰했다.
〈니플헤임의 시간과 공간을 과거로 돌리고 있습니다.〉
〈……요 몇 시간은 계속 놀랄 일 뿐이군. 그런 게 가능하다고?〉
〈이론 상으로는…… 가능하다…….〉
그렇게 대답한 사람은 의외의 인물이었다.
〈시간도 공간도…… 원초적으론 동일하느니라. 공간마저 비틀 수 있다면, 충분한 힘을 들이는 것으로 시간도 되돌릴 수 있고 말고…….〉
세헤테피브라는 다른 탐험가들의 부축을 받으며 말했다.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다나의 힐 마법을 재현해서 치료하려던 나는 간신히 참았다.
상대는 영혼이다. 빛의 마나로 이뤄지는 힐을 걸었다가는 그대로 성불해버릴 것이었다.
오프툼이 왜곡의 중심을 노려보았다.
〈스스로 부활이라도 할 셈인가?〉
〈설마…. 리치처럼 육체와 혼이 별개의 존재라면 모를까, 저 권능은 자기 몸과 혼에는 쓸 수 없다……. 혼만 남은 채 남은 마나로 발버둥이라도 치고 있는 모양이군…….〉
〈어쩌면, 발버둥이 아닐 수도 있고요.〉
나는 무심코 중얼거렸다. 길다트는 무심코 자기 칼을 손에 쥐는 듯 했다.
〈발버둥이 아니다?〉
〈처음부터 이게 마지막 목표였을지도 모르죠. 니플헤임의 시간을 과거로 돌린다면, 이 세상에서 소멸해버린 영혼들을 되살릴 수 있을지도요.〉
나는 에퀴녹스가 펼친 창세의 권능을 역으로 지배하면서, 저 빛살들을 가리켰다.
그 빛은 전부 어떤 영혼의 기억이었다.
빛 자체가 필름인 것처럼 기억의 단편이 모아지고 있었다. 에퀴녹스가 옛적에 소멸한 영혼을 시간을 역행하며 조립하고 있는 것이었다.
〈……거창한 부활법이군. 그 권능이란 걸로 영혼을 만들어버리면 되지 않나. 육체를 만들듯 생전과 완전히 똑같은 혼을 만들어버리면 부활이나 다름없을 텐데.〉
〈그렇지 않아.〉
네페르티티는 들을 가치도 없다는 듯 대답했다.
〈아무리 닮았어도, 그건 다른 사람. 죽었던 사람이 되살아난 게 아냐.〉
〈……틀린 말은 아니군.〉
〈응. ……닮았을 뿐인 남에게 그리운 사람의 모습을 비춰보는 건, 떠난 사람한테도, 그 사람한테도 실례.〉
네페르티티는 나를 보며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고잉메리호의 역설과도 닮은 얘기였다.
조각을 뜯어내서 만든 배는 원래 배와 동일한 존재인가?
그렇게 만들어진 2개의 배를 같은 존재로 여길 수 있는가?
자신과 100% 동일한 클론을 나 자신이라 볼 수 있는가?
SF 특유의 질문이었지만 영혼 같은 경우도 같았다. 창세의 권능으로 예르나의 클론을 만들어봤자, 그건 내가 꿈에서 본 어머니 아버지와 똑같은 백일몽일 뿐이다.
단지── 시간을 돌려서 커피에 각설탕을 타는 영상을 역재생하듯 니플헤임에서 죽은 자의 영혼을 완전히 복원할 수가 있다면 얘기는 조금 다르다.
완전히 새로 만드는 게 아니라, 시간을 돌려서 소멸해버린 혼을 되살린다면 그건 진정할 부활이 맞다.
타임머신을 타고 예르나가 나한테 뒤지기 전에 데려와서 내 앞에 세워놓으면?
그건 예르나 그 썅년 본인이 맞지 않은가.
〈하지만…… 시간을 지배하는 건 신이라도 불가능하다.〉
세헤테피브라는 일그러진 시공을 보며 그렇게 말했다. 나도 동감이다.
영혼을 만들어낸다? 그런 건 인간한텐 불가능하다. 영혼을 달고나 만들듯 찍어낼 수 있었으면 인류를 만들어낸 게 신들 사이에서도 위업일 리가 있겠냐고.
진짜 진짜 주신급. 신들 중의 신들.
그런 놈들이나 가능한 게 생명의 창조다.
육체를 빚고 영혼을 만들어서 생명을 창조하려면, 지금 내 옆에 살아남은 발퀴리에들을 만드는 것보다 훨씬 더 고차원의 힘이 필요할 것이었다.
‘시간 여행은 말할 것도 없고.’
파라오 66명의 권능을 모아서 전개한 창세의 권능으로도 니플헤임의 시간을 역주행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 비틀린 명계가 증거였다.
〈신들조차 미래를 엿보는 건 가능했지만,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었습니다.〉
나는 공중에 뜬 설원을 지배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에퀴녹스의 말마따나 신의 권능을 몇 번 더 잡아먹어도, 니플헤임이 이승보다 법칙이 느슨하고 권능을 발휘하기 좋은 환경이라도, 아마 소멸해버린 혼의 부활은 어려울 겁니다.〉
지옥의 시간을 되돌려서 소멸한 영혼을 되살린다?
아, 그래. 실천만 해내면 가능은 하겠지. 근데 그렇게 치면 우리집 고양이 테레사도 국영수 위주로 공부를 존나 시키면 죽기 전에 인서울 대학에 붙을 수 있겠네.
〈그렇다면 그 리치는 왜 이딴 짓을 한 건가요?〉
세헤테피브라를 부축하던 탐험가 중 1명이 물었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기분으로 상황을 전부 이해한 건 아니겠지만, 우리 대화를 듣고 전황을 지켜본 걸로 어느 정도는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대답하지 못했다.
짐작은 할 수 있었지만, 단언하는 게 저어되었던 것이다.
〈……포기하지 못했던 거다.〉
그래서였을까. 대답한 건 이번에도 세헤테피브라였다.
〈안 될 거라고 알면서도 차마 희망을 접지 못하고, 만에 하나, 백만에 하나를 기대하며 물고 늘어지는 것.〉
그녀는 점차 가까워진 시공의 왜곡의 중심을 보며 말했다.
〈그런 걸, 사람은 꿈이라고 부르지.〉
그녀가 바라보는 곳에는 거대한 영혼이 떠 있었다.
11개의 마법진이 둘러싼 영혼은 마나로 타올랐다. 영혼의 주변에는 낙원이라도 되는 것처럼 아늑한 공간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마치 그곳에서부터 새로운 세계가 만들어지는 것만 같았다.
─쿠웅. 설원을 에퀴녹스의 내면세계에 접선시켰다.
나는 망설임없이 내렸다. 티르시가 당연하다는 듯 따라왔다.
이 세계에 혼까지 얼어붙을 듯한 추위는 코빼기도 없었다. 심지어는 따듯한 햇살마저 느낄 수 있었다.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죽은 뒤에 이런 곳으로 가고 싶어할 법한, 그런 평화로운 세계였다.
그리고 추위를 물리치는 태양빛의 근원은 다름 아닌 에퀴녹스의 영혼이었다.
영혼의 빛은 꼭 사막의 태양처럼 뜨거웠지만, 이 추운 명계에는 저 정도가 적당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티르시.〉
내가 말하자 티르시는 손가락을 내리그었다.
─쩌억!! 에퀴녹스의 영혼을 지키던 마법진이 붕괴했다. 난 얼마 안 남은 창의 마나를 빌려서, 하늘 높이 떠 있는 태양 같은 영혼을 움켜쥐었다.
수면에 뜬 달을 잡는 듯한 행동! 하지만 내 손에는 명확한 온기가 붙잡혔다.
여기는 에퀴녹스의 꿈 속. 그녀의 내면세계.
현실의 법칙은 강한 정신력 앞에 비틀리는 세계였다.
나는 그대로 울프헤딘의 힘을 사용했다.
화르르르륵─.
손에 붙잡힌 에퀴녹스의 영혼이 도깨비불처럼 변해갔다.
울프헤딘의 힘.
오딘으로부터 계승받은 그 권능에 따라 그 혼이 성불하는 것이었다.
‘그 추악한 년의 마음 속이라고는 믿기 힘든 아늑함이군.’
따스하기까지 한 광경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게 에퀴녹스가 만들고자 했던 사후세계일까.
에퀴녹스는 명계에서 고통받던 영혼들을 되살리고, 앞으로 죽어서 저승에 떨어질 이들까지 전부 이 낙원으로 데려와서 보살필 생각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그 마음 속에 품은 뜻이 고결하든, 행동에 윤리가 수반되지 않으면 악행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선량한 사람도 사람을 해칠 수 있으며, 극악무도한 범죄자 새끼도 자기 자식은 아끼기도 하는 게 세상의 이치 아닌가.
정신의 고결함이 그 자의 악행을 선행으로 만들어주는 건 아니니까.
물론 에퀴녹스는 자기가 해친 사람들의 영혼도 언젠가 부활시킬 수 있을 거라고 믿었을지도 모른다.
테이블을 청소하기 전에 물건을 치워놓는 정도의 심정이었을던 걸 수도 있고.
하지만 ‘나중에 돌려줄게’라는 말로 남의 인생을 송두리 째 박살내 버리다니?
창조에 앞서서는 파괴가 필요하든가, 대의를 위한 희생이라든가, 존나 개새끼 그 자체의 사고방식 아닌가. 나는 추호도 저 미친 언데드 년의 ‘선함’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리 정당한 핑계와 필사적인 마음이 있었다고 해도, 남의 논문을 빼앗아서 자신의 꿈을 이루면 안 되는 법이지.〉
나는 에퀴녹스의 영멸에 맞춰서 무너지는 세계에서 영혼의 기억을 추출했다.
슈르르르르─!!
아직 오딘 모드(가칭)의 능력이 꺼진 건 아니었기에 평소에 비해 훨씬 많은 기억이 룬 스톤에 저장됐다. 뭐라도 건질 게 있겠지.
1000년을 산 언데드의 기억에서 유익한 순간이 얼마나 될 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파앗……!!
66개나 되던 창세의 권능 덩어리들은 흑마법의 구속에서 벗어나자 드래곤볼처럼 흩어졌다. 날아가는 중에 별똥별처럼 소멸하고 있다. 어떻게 건질 수도 없는 힘이니 포기해야겠지.
슈와아아아악─!!!!!
다만 문제는 어둠과 음의 마나였다.
에퀴녹스 년의 영혼에서 추출된 시꺼먼 마나가 내 창으로 빨려들고 있던 것이었다. 나는 화들짝 놀라서 창과의 연결을 끊어버렸다.
스륵─.
그러자 내가 신이라도 된 듯한 고차원적인 영감과 지혜가 눈 녹듯 사라졌다. 꿈에서 인피니티 스톤을 들고 깝치다가 깬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단지 아직 현실이라는 걸 증명해주려는 듯, 내 창에는 웬 꺼먼 마나가 스멀거리다가 가라앉았다. 이 씹새가 반항기냐? 내가 하지 말라는 것만 무한 반복하고 지랄이네.
“으, 디스거스팅.”
나는 정신이 나가 버릴 것만 같은 피로감을 느끼며, 창을 팔찌로 만들어갖고 석판에 넣어버렸다.
그도 그럴게, 팔에 차기는 쵸큼 그렇잖어?
〈……후우. 이걸로 정말로 다 끝난 듯 하군.〉
오프툼은 피로 범벅이 된 옷을 쥐어짜며 말했다.
길다트는 창세의 권능이 소멸했는데도 티르시의 마법으로 공중에 떠 있는 설원을 황당한 듯 보다가 끄덕거렸다.
〈노르드가 여기 있는 걸 보면 시다나브…… 아니, 레티티아라는 여자도 해치운 모양이지. 이제 남은 건 돌아가는 것 뿐이군.〉
그의 그런 이야기에 우리들은 세헤테피브라를 바라보았다.
〈……어흠! 크흠!〉
그녀는 잠시 당황한 듯 헛기침을 하다가 표정을 추스르고 폼을 잡았다.
〈불멸의 흑마법사와 거짓된 여신로부터 이 파라오를 구해낸 영웅들이여! 이원왕 세헤테페브라의 이름으로 그 위대한 투쟁을 치하하며, 베품받은 은혜에 무한한 감사를 보내겠노라!!〉
〈이번에는 나르메르-나일 어가 아니군?〉
〈흠. 그러고 보면 어느샌가부터 현대 로마니아 어였군. 뭐, 영혼이니까 마법이나 뭐 그런 거지 않겠나.〉
길다트랑 오프툼은 같이 죽을 뻔한 위기를 넘고 사이가 꽤 좋아졌는지, 똥통 고등학교의 부랄친구가 교사의 수업을 한 귀로 흘리듯 자기들끼리 속닥거렸다.
것보다 차기 여왕 남편인데 존나 반말하네. 나도 걍 반말 하기로 할 걸.
세헤테피브라는 위엄 있는 얼굴─이라고 본인만 생각하고 있을 우쭐한 얼굴─에 삐걱거리는 웃음을 띄웠다.
〈……그, 그대들의 투쟁은 미래영겁 신화적인 위업으로써 전해질 가치가 있었느니라! 그러므로 이 파라오는 이곳에서 그대들 모두가 토트의 시련을 끝마쳤음을 선포한다!!〉
〈오, 오오오……?〉
〈서, 성공했…… 나?〉
짝짝짝짝짝…?
별로 한 게 없던 다른 탐험가들은 기뻐하면 되는 건지 모르겠다는 눈치로 박수를 쳤다. 이 새끼들 양심은 있는 것 보소. 버스 타 놓고 뻔뻔스럽게 기뻐하지 않을 생각머리는 있네.
〈……시련을 통과했으니 문을 열겠다. 지나가든가 말든가 해라.〉
세헤테피브라는 기분이 축 쳐진 것처럼 대충 문을 열었다.
─우우웅. 하늘을 나는 플라잉-설국에 명계의 문이 생겼다. 피라미드에 있으면 어울릴 것 같은 모양이었다.
〈여길 지나가면 피라미드로 나오나?〉
〈흥. 그래. 입구…… 아니, 출구인가. 아무튼 거기로 나올 것이다. 얼른 가 버리도록.〉
〈그거 좋군. 자, 자. 다들 이리로 줄 서게!〉
오프툼이 박수를 치며 다른 탐험가들을 안내했다. 눈깔에 구멍이 뚫렸다가 엘릭서 급 치트 회복으로 나은 사람으로는 안 보이는군.
〈아, 지나가는 김에 양심껏 가진 건 내놓고 가게. 솔직히 댁들은 공짜로 살아돌아가는 셈 아닌가? 딱 댁들이 생각하는 자기들 목숨값 만큼만 내놓으면 좋겠군 그래.〉
그러면서 히죽 웃으며 무슨 수금까지 하고 있다.
나는 저 미친 흑인이 인종차별에 한층 나쁜 영향을 끼칠 것 같은 짓을 하고 있자 조금 눈쌀을 찌푸렸다가, 곧바로 들린 길다트의 속삭임에 표정을 풀었다.
〈목숨값이라. 그렇다면 저기서 걷은 건 전부 너한테 주마. 우리가 개인적으로 주는 것과는 별도로, 부수입 정도로 생각해 둬.〉
─끄덕끄덕.
달인만 들을 수 있는 작은 음성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거 돈은 얼마 안 될지도 모르겠지만, 아이템이니 뭐니 챙길 수 있다면 킹정이지.
길다트는 그렇게 말하고서 엘리자베트를 안았다.
공주님을 공주님 안기로 안는다니, 이게 그 적재적소인가 뭔가 하는 그거구마잉.
〈아내가 이 꼴이니 우리는 먼저 가마. 이건 약속했던 내 보수와, 우리 몫의 목숨값은 이승에서 갚지.〉
〈먹고 튀면 받으러 갈 겁니다?〉
〈그렇게 해라. 안 오면 우리가 널 찾아가야 할 테니.〉
어휴, 그러면 꼭 가야지. 왕자님 온다고 사르가디스 영주가 개 지랄 브루스를 떨던데, 헨네시스 영애한테 혼날라.
그렇게 오프툼, 길다트 부부와 탐험가들은 이승으로 가는 문으로 지나갔다.
남은 건 세헤테피브라와 나, 그리고 아직 여신 모드인 티르시와 네페르티티 뿐.
“……티르시는 일단 옷부터.”
네페르티티는 오프툼이 수금하고 두고 간 것들 중에 망토 같은 걸 가져와서 티르시에게 둘러줬다. 생전의 아르마 슈나스가 쓰던 장비는 시대상도 있어서 좀 남사스러웠던 탓이다.
나는 그 광경을 보며 헛기침을 하고, 세헤테피브라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뭐냐?》
내가 걸어오자 잼민이 파라오는 고개를 모로 꼬다가, 뭔가 눈치챈 듯 손뼉을 쳤다.
《아, 네가 얻은 보상이라면 사라지지 않았을 거다. 창세의 권능으로 만든 태양의 십자는 어쨌든, 그밖의 것들은 죽을 때 같이 묻혔던 보물들이다. 실물이니 가지고 갈 수 있겠지.》
《거 듣던 중에 다행이군.》
나는 그 대답을 듣고도 계속 그녀를 쳐다보았다.
《무, 무엇 때문에 그러는 게냐? 말을 해라, 말을.》
파라오란 직함에 어울리지 않게 내 눈치를 보기 시작하는 세헤테피브라.
나는 그런 잼민이 파라오에게 툭 던지듯 물었다.
《너는 같이 안 가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