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바보가. 안 된다고 했잖느냐?》
생각할 가치도 없다는 듯한 대답이었다. 세헤테피브라는 내 안색을 살피던 걸 멈추고 정색을 했다.
《죽은 자가 대가 없이 살아나서는 안 된다. 심지어 나는 파라오다. 생전에는 전통에 따라 부활을 바라기도 했으나, 이제는 이뤄질 수 없는 꿈이라는 걸 십분 이해하고 있노라.》
《쓰벌, 세상의 균형이란 게 그렇게 중요해?》
이 좆 같은 세상에서 까무러칠 정도의 고독에 사무치고도, 아직도 지킬 만큼?
존나 이해가 가질 않았다. 나는 며칠 있는 것만으로 360도 훼까닥 해서 제정신으로 돌아와버릴 것 같은 곳이 명계였다. 세헤테피브라는 거기서 생전의 수백 배의 시간을 보낸 것 아닌가.
다른 사람들만큼만 삶을 즐기다가 떠나도 뭐라 할 사람은 없을 텐데.
《납득이 안 가는 모양이지? 조금 더 설명해 주마.》
이해하지 못하는 나에게 세헤테피브라는 픽 웃어보였다.
《어디…… 마침 잘 보이는군. 자, 저길 보도록.》
세헤테피브라는 저 먼 발치에 있는 건물들 가리켰다.
내가 혹한지옥에 떨어지고 얼마 안 가서 발견했던, 사람의 손길이 느껴지는 건물들이었다.
《원래 이 니플헤임── 나의 조국에서는 두아트(Duat)라 불리던 명계는 이렇지 않았다. 춥고 척박하지만 신들의 가호 아래에서 영혼들이 안식을 취하던 세상이었다고 배웠어.》
《가 본 적이 있는 것처럼 말하네.》
《둘러야 봤지. 피라미드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면 어떻게 그 풍경을 재현했겠느냐. 아무튼 신을 잃고 영혼의 안식처란 존재의의를 상실해버린 게 지금의 명계이다.》
세헤테피브라는 허리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원래는 사후의 혼들이 쉴 장소였던 이곳은…… 죽은 뒤 1번 더 비참한 죽음을 겪어야 하는 도살장이 돼 버렸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설원 지하에 사는 거인들의 먹잇감이 돼 버린 영혼이 몇 개나 될련는지.》
《그래서 부활 못 하겠다는 거군.》
《당연하다. 명계의 법칙을 이유로 그들의 죽음을 사실 상 방임하던 내가, 이제 와서 혼자 부활한다? 웃기는군. 게다가 이승으로 돌아가봤자 나는 영혼 뿐인 존재이니, 하찮은 미옹일 뿐이로다.》
《니가 나섰다고 몇 명이나 구했겠냐. 그리고 그렇게 해야 할 의무도 없잖아.》
《의무는 없었지만, 능력은 있었을지도 모르지. 물론 내가 신을 대신하겠다는 포부를 품었다 한들, 결말이나 수단이 그 리치 놈과 비교해서 얼마나 나았겠느냐만.》
뭐가 재미있는지 깔깔대던 세헤테피브라는 내게 삿대질을 날렸다.
《그러니 나는 부활하지 않겠다. 알아들었으면 이만 돌아가거라. 피라미드도 권능의 힘도 거의 잃은 나는 이제 마법을 좀 쓸 줄 아는 평범한 계집이다. 다른 영혼들처럼 지당한 소멸을 기다려야겠지.》
나는 조금 거북한 느낌에 한숨을 쉬었다.
지당한 소멸 같은 소리 하고 앉았네. 우리가 떠나버리면 이 홈리스 잼민이 파라오가 어딜 가겠는가. 피라미드도 전부 다 부숴졌는데.
거인들에게 먹히거나 얼어죽을 게 뻔한데, 아무리 살아날 생각이 없다지만 비참한 것도 정도가 있다. 얘가 무슨 죽을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그래서 나는 끈질기게 몇 마디 더 말을 이어나갔다.
《질문이 조금 남았는데. 알프헤임을 돕지 못했던 건 네가 그 무렵에 살해당했던 탓이냐?》
《배려라고는 전혀 없는 물음이군. 뭐, 결과적으로 그다지 의미는 없었다지만 너는 내 생명의 은인이다. 대답하마. 나는 네 말대로 암살로 죽었느니라.》
《존나 쿨하게 말하네.》
《예전 일이니까. 별로 아무래도 상관 없을 정도로 길디 긴 시간이 지났지.》
《……범인은 알고?》
《그 발퀴리에가 한밤중에 몇 번 와서 경고하기는 했다만, 무시하면 그만이었다. 공격해 와도 내 신하들이 퇴치했었지. 이제 와서 생각하면 그건 저 레티티아라는 여자의 짓이었나 보구나.》
와! 좆찬대대, 또 너희야?
이 새끼들은 진짜 만악의 근원이다. 존나 어떻게 안 끼는 데가 없어?
‘……알프헤임 숲에 배치된 발퀴리에는 그게 원인이었나.’
편지를 주고 받아서 알고 있던 몬스터가 까꿍 튀어나와서 자기를 죽였으니, 그야 뭐 존나 쎈 몬스터로 시련에 배치할 만도…… 한가?
무슨 갬성인지 이해는 잘 안 되긴 하네.
아마 〈편찬대대〉는 알프헤임을 멸망시키려고 했을 거고, 거기에 훼방을 놓으려는 세헤테피브라가 거슬렸을 것이다.
나는 거기까지 생각했다가 눈을 크게 떴다.
《……근데 잠깐만. 격퇴했다고?》
《그래. 바깥 활동을 줄이게 만들려는 짓이었겠지. 정말로 죽일 생각이었다면 발퀴리에 몇 개체를 보내는 게 아니라 그 여자 자신이 스스로 죽이러 왔을 것이다.》
《으음……?》
그야 암살 시행범이 있다면 왕이 나대지 못하게 막을 수는 있을 것이었다.
강대국의 왕을 죽여버리는 건 여러 모로 큰 일이 될 거고. 당장 자기네 조직을 들킬 위험도 커질 게 뻔하잖은가.
‘근데, 그러면 세헤테피브라는 왜 죽은 거지?’
나는 거기까지 생각했다가 세헤테피브라의 얼굴을 보고서 입을 다물었다.
《어린 왕이 자기 머리 위에서 설치는 걸 불쾌해 하는 건 딱히 신기하지도 않은 일이야.》
세헤테피브라의 그런 군소리가 질문의 대답이었다.
외부에 원인이 없다면, 이유는 내부에 있었겠지.
백성의 신앙을 받는 어린 왕.
권력투쟁. 암살.
역사의 흐름에서는 흔하고, 개개인의 대화에서 선뜻 얘기하기엔 세헤테피브라의 말마따나 배려심이 없는 질문이다.
《죽은 뒤에는 생전에 완공해 놓은 피라미드에 안치됐다. 나야 나중에 명계의 문을 넘어온 신하들에게 들은 거다만.》
세헤테피브라의 말로는, 나중에 그녀의 미이라와 함께 매장된 신하들이 사후 일어난 일에 대해 설명해줬다고 한다.
알프헤임의 멸망이나, 그밖에 일어났던 일들까지.
파라오와 같이 묻히는 것. 당대에는 크나큰 영광으로 여겨지는 일이었댄다.
유족들에게 충분한 혜택도 있고 해서 신하들 간에 경쟁이 벌어질 정도라는데, 생각해 보면 지구의 역사에서도 없지는 않은 얘기다.
실제로 니플헤임이 이 꼴만 아니었어도 괜찮은 딜이었을 것 같고.
《그런데 정작 명계가 이 꼴 아니더냐. 신하들이 고생하는 걸 보기가 싫었던 터라, 내가 그들의 자결을 허락했다.》
자결.
이 경우엔 영혼의 영멸을 말하는 거겠지. 세헤테피브라는 무덤덤하게 말했다.
《떠날 거면 나를 욕하면서 가도 좋을 걸, 다들 나를 두고 먼저 성불하는 걸 울면서 사과하더군. 남는 입장에서 얼마나 불쾌하던지.》
《그만큼 너한테 미안했던 거겠지.》
《……흥. 정말 미안했다면, 떠나지 않는 게 충의잖느냐.》
세헤테피브라는 고개를 홱 돌렸다.
남아 있는 우리들에겐 짧지 않은 적막이 감돌았다.
《이만 가거라. 명계의 문은 앞으로 1~2시간 있으면 닫힐 것이다. 나도 돌아가마.》
세헤테피브라는 우리에게 등을 보이며 손을 저었다.
돌아간다는 말이 이렇게 씁쓸하게 들리기도 하는군. 나는 한숨을 쉬었다.
풀 한 포기 없고 거인들이 돌아다니는 명계의 허허벌판에 죽으러 돌아간다니.
아무 것도 없는 설원에서 죽을 날만을 기다리겠단 걸까.
더는 파라오도 뭣도 아니고, 책임감 같은 걸 느낄 이유도 없을 텐데.
충분할 만큼 고독에 시달려 놓고도, 아직도 이렇게 고집스러울 수가 있을까. 이제는 감탄스럽기까지 하다.
‘그치만 이렇게 끝내는 건 좀 에바지.’
실컷 개고생을 해놓고 이딴 뒷맛 나쁜 엔딩은 사절이다.
나는 머리를 긁으며 생각을 정리하고서, 불쑥 말했다.
《야, 세헤테피브라. 사실 나는 나랑 접촉한 영혼들을 성불시키는 능력이 있어.》
《……작별인사까지 해 놓고 집요하군.》
내가 말을 걸자 자기 힘으로 플라잉-설원에서 내려가려던 세헤테피브라는 조금 불쾌한 눈치였다. 그야 자꾸 가려는데 자꾸 말을 걸면 기분 나쁠 만 했다.
그녀 입장에선 미련이 남는 것도 원하지 않을 테고.
설원에 내려가서 혼자 훌쩍이는 한이 있어도, 이 고집 센 잼민이 파라오는 산뜻한 이별을 바랄 것이었다. 그녀는 뚱한 태도로 대답했다.
《나도 봤다. 그 리치 놈의 혼을 소멸시켰지 않느냐.》
《그래. 어떤 애꾸눈한테 듣기로는, 길을 잃은 영혼들에게 안식을 주는 힘이라고 하더라. 진짜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고통스럽게 성불하지는 않는 모양이더라고.》
최근에는 어느 정도 조절할 수도 있게 됐다.
애초에 닿기만 해도 무조건 성불시키는 거면 걍 미다스의 손이잖아. 그래서는 거의 저주 아니냐? 권능의 한 분류라면 내가 조절 가능한 것도 당연하다.
《……흐음. 그래서?》
《생각해 보니까, 네가 이승으로 돌아가는 문을 열어준 건 토트의 시련의 보수잖아? 아직 내가 너를 구해준 것에 대한 포상은 못 받았네~ 해서.》
나는 그렇게 말하고서 영주를 배알하기 위해서 배워두었던 예법을 취했다.
─척, 척!
내가 대표로 허리를 숙이자, 내가 지배하에 둔 발퀴리에들도 마치 충성스러운 기사단처럼 내 뒤에 도열하면서 무릎을 꿇었다.
시대는 다르고 지역도 다르지만, 동작에 담긴 경의는 아마 전해지겠지.
《위대한 파라오, 이원왕 세헤테피브라시여.》
누군가 숨을 삼키는 걸 들으면서 허리를 깊게 숙였던 나는 도로 고개를 들었다.
눈을 크게 뜬 세헤테피브라의 얼굴은 이제야 그 나이대의 또래로 보였다.
《당신의 사신 노르드가, 분부 받은대로 엘프의 왕국 알프헤임에 태양의 십자를 전하고 왔습니다.》
제 7계층에 세헤테피브라가 설계해 둔 시련.
아마도 죄책감이나 후회 탓에 도저히 자신의 손으로는 그 광경을 재현할 수가 없어서, 언젠가 찾아올 이들의 손으로 볼 수 있기를 기원하며 만들었을 알프헤임의 구원.
나는 그 이야기를 꺼내며 정중히 가슴에 손을 얹었다.
《이렇게 뵙기까지 천 년이나 걸려 죄송합니다. 허나, 만일 존경하는 이원왕 세헤테피브라께서 이 느려터진 사신에게 포상을 내려주실 만큼의 자비가 남아 있으시다면…….》
…피식. 참지 못하고 슬쩍 웃은 나는 손을 내밀었다.
《부디, 파라오의 손등에 키스할 영광을 주시겠나이까?》
세헤테피브라는 내가 내민 손을 바라보았다.
망자를 성불로 이끄는 손.
죽음의 신 오딘의 권능을 받은, 울프헤딘의 낫을 말이다.
《……잠깐의 꿈이 너무 길었구나.》
세헤테피브라는 그렇게 중얼거린 뒤, 내게 얼굴 앞에 아이처럼 작은 손을 내밀었다.
《고맙구나. 수고 많았다, 건방진 사신 녀석아.》
《저야말로 영광이었습니다, 파라오.》
─쪽.
기사처럼 그녀의 고사리 같은 손에 가볍게 입술을 맞췄다.
그 순간, 천 년의 고독을 겪으면서도 고결한 신념을 잃지 않았던 어린 파라오의 영혼은 햇살처럼 변하면서 하늘로 날아올랐다.
슬쩍 눈을 찌푸리자, 어딘지 모르게 어린 여자아이처럼도 보이는 햇살은 니플헤임의 구름 한 점 없는 하늘로 끊임없이 날아올랐다.
나도 그녀도, 서로 웃는 얼굴이길 잘 했다.
진심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이제 이런 광경을 보는 것도 익숙해졌네.’
죽음의 신의 의무가 영혼에게 안식을 주는 거라면, 오딘의 후계자인 울프헤딘은 혼의 성불을 지켜보는 게 하나의 일을 마무리하는 절차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성호를 긋고서 티르시와 네페르티티를 돌아보았다.
조금 놀랍게도, 네페르티티는 마치 당장에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가, 당황하는 듯한 그녀의 손짓발짓에 피식 웃었다.
“저희도 이만 돌아가죠. 사막의 더위가 다 그립네요.”
“……응.”
다행인지 불행인지 네페르티티는 눈물을 흘리진 않았다.
눈을 깜빡이며 원래 얼굴로 돌아온 그녀를 데리고, 우리는 명계의 문을 넘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