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586화 (586/1,009)

“이건, 설마…… 마법이 완전히 해제되지 않은 건가요?”

티르시는 타고난 현명함과 〈강림〉 마법을 연구하던 경험을 살려서, 금새 나랑 같은 결론을 내린 듯 했다. 나는 턱을 쓰다듬었다.

“아무래도 그런 모양이네요. 확인을 좀 해 봐도 되겠습니까?”

“앗, 네. 부탁드려요.”

허가를 받은 나는 오딘의 눈을 켰다.

사족이지만, 저번에 폭주 상태에서 이성을 유지하며 버텼던 덕분일까. 오딘의 눈을 킨 상태로도 조리에 맞는 말이 가능해진 상태였다.

“농어촌전형에 튀겨야 앞뒤간격이 따사롭나.”

“네?”

“않이오, 암 것도 아님미다.”

물론 정신줄을 놓으면 개소리가 나온다는 점은 변함없다.

지이잉─.

눈에서 레이저가 나올 기세로 티르시의 가슴을 노려보았다.

ᚨ(Ansuz)의 룬도 켰다. 그녀의 영핵에 내가 설치해 놨던 마법 장벽이 남아 있을 것이다. 그걸 관찰한다면 영혼과 육체가 하나 되어 있는 산 자의 혼이라도 볼 수 있겠지.

‘이거군.’

예상은 맞아들었다. 나는 형광색의 마나에 포근하게 안겨 있는 티르시의 영핵이랄 걸 발견하고서 눈쌀을 찌푸렸다. 이유를 알았기 때문이다.

“……제가 티르시의 자아를 지키려고 설치했던 영핵 주변의 결계가, 티르시의 육체 통제권을 어지럽히고 있군요.”

“아…….”

말하자면 〈강림〉이라는 랜섬웨어 바이러스가 들어가지 못하게 영혼을 별도의 서버에 격리해둔 상태다. 이러니 티르시가 자신의 육체를 움직이지 못할 만 했다.

그녀의 영혼은 전파가 차단된 리모콘 상태다.

육체에 움직이라는 신호를 보내도, 그게 내가 깐 방화벽에 막혀서 몸에 전해지지 않고 있는 거겠지.

다행히 해결법은 간단했다.

“그냥 제가 걸었던 마법을 해제하면 돼요. 다시 쓰라고 하면 어렵겠지만, 해제하는 건 간단하죠. 제 마나로 이뤄진 마법이니까요.”

레시피를 안다고 장인의 맛을 따라하진 못하는 법이지만, 내가 만든 요리를 버리겠다는데 누가 날 말리겠는가? 마법의 해제는 누워서 떡 먹기였다.

그래서 나는 마법을 풀고자 손을 뻗었다.

“아뇨, 노르드. 그러지 마세요.”

띠용?

나는 뻗던 손을 엉거주춤 멈추고 멍을 때렸다.

티르시가 고개를 저어가며 단칼에 거절의 뜻을 드러냈던 것이다.

“노르드가 저번에 보여줬던 무위(武威)는 저도 흐릿하게나마 기억하고 있어요. 그때 에퀴녹스와 레티티아를 쓰러트렸던 힘, 조건이나 대가가 없는 힘은 아니시죠?”

“네, 뭐……. 발동은 가능해도 통제가 불가능할 겁니다.”

“그렇다면 안 돼요. 제 영핵을 감싼 장벽…… 〈영혼장벽〉이라고 부를까요? 이 〈영혼장벽〉은 남겨두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나는 그 속뜻을 알아차리고 되물었다.

“나중에 또 〈강림〉 마법을 쓰기 위해서요?”

“네. 명계의 문을 못 여니까 당장은 의미가 없겠지만, 가능성은 남겨 둬야죠. 다음에도 노르드가 제 자아를 지켜주실 수 있다는 보장은 없잖아요?”

그건 그렇다.

이 장벽 자체를 〈강림〉 마법의 페널티를 줄여주는 비장의 카드로서 남겨두겠다는 뜻이었다. 내 엘리트 대갈통이 빠르게 돌아갔다.

“그러면 육체의 통제권을 돌려드릴게요. 평소엔 직접 몸을 움직이시다가, 나중에 방법을 배우셔서 〈강림〉 마법을 쓸 때만 제게 빌려주세요.”

“그렇게 할게요. 속마음을 다 들킨 것 같아서 좀 부끄럽네요.”

티르시는 고개를 끄덕이고 약간 부끄러운 듯이 말했다.

“……그럼, 바로 부탁드려도 될까요?”

“아, 그럴게요.”

나는 거침없이 티르시의 명치에 손을 얹었다. 좀 다르게 말하면, 봉긋하게 솟은 그녀의 가슴 사이에 굵은 손가락을 갖다 댔다는 의미였다.

가까이서 접하지 않으면 통제권을 이동하는 건 힘들기 때문이다.

“읏…….”

티르시는 내 손이 간지러운 듯 움츠러들었는데, 몸을 피하지는 않았다.

아무렴 그렇겠지. 결혼하자는 얘기까지 해 놓고, 진도도 일반적인 썸을 가볍게 넘을 곳까지 뺐는데 이런 걸로 낯뜨거워 하는 게 더 이상했다.

‘흐으으음.’

그리 생각하자 슬쩍 짖궂은 마음이 드는 게 또 남자라는 생물의 비열함이다.

‘그러고 보면 진료라는 핑계로 나만 쪼물쪼물을 당했단 말이지.’

샘솟는 음심과 암묵의 허가, 그리고 무척이나 사랑스러운 티르시의 반응에 나는 시치미를 뚝 떼고 인내의 실을 끊었다.

제대로 말한 것 맞다. 끊어진 게 아니라 스스로 끊었다.

“이거 참, 가져오는 건 간단해도 돌려드리는 건 조금 어렵네요.”

“그, 그런가요?”

“네. 고생 깨나 해야겠어요.”

나는 되도 않는 핑계를 대면서 슬쩍 손을 가슴 사이에서 비비적댔다.

그녀의 가슴이 지휘에 맞춰오른쪽, 왼쪽 번갈아가며 고개를 내밀었다. 자그만 가슴이기에 그 완만한 움직임이 더 선명했다.

얇은 셔츠에 덮인 가슴에서 사랑스러운 돌기가 일어서기 시작했다.

티르시 역시 그걸 깨닫고 귀까지 새빨개졌다.

“저, 저기. 노르드? 혹시, 저, 지금 속옷이……?”

“아, 어제 용태를 보러 왔는데 마법이 풀려선지 입고 계신 장비가 사라지셨더군요. 손님용의 옷이 몇 벌 있길래 제가 갈아입혀 드렸습니다.”

“네, 넷?!”

“브래지어는 주무실 때 갑갑하실까 봐 베로니카가 벗겨둔 듯 합니다만, 팬티는 입고 계셨습니다. 그래도 그대로 주무시면 감기 드실 듯 해서요.”

“가, 앗, 에, 으…… 가, 감사합니다…….”

티르시는 손가락으로 찌르면 피가 배어나올 것 같을 만큼 새빨개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시집도 안 간 처녀가 남자에게 맨살을 보이고 감사까지 해야 한다니.

뭔지 모를 배덕감이 쥬지드라를 쿵쿵 자극했다. 이것이… 꼴림인가….

나는 죄책감과 미안함을 느끼면서도, 이 상황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고 있는 티르시의 진심에 더 가슴이 뛰는 걸 자각할 수 있었다.

“흠. 아무래도 좀 더 자세히 진찰해야겠습니다. 제가 멀쩡한 손이 하나 뿐이라, 티르시가 직접 상의를 좀 걷어 주시겠습니까?”

“아, 네. ……네?”

티르시는 한 박자 늦게 멍하니 되물었지만, 그녀의 몸은 나의 개소리를 전혀 의문스럽게 느끼지 않았다. ─훌렁. 얇은 셔츠가 위로 젖혀졌다.

“자, 자자, 잠깐만요?! 뭐하시는 거에요?!”

“뭐기는요. 진료인데요?”

“아으……. 아으아으…….”

‘진료’라는 말에 짚이는 게 많은 음란 연금술사 티 모 씨는 말을 잃었다.

외간 남자(유부남)의 자지를 대딸해주며 정액을 뒤집어쓴 아무개 씨에 비하면, 맨가슴을 진찰하는 것 쯤은 훨씬 일반적인 진료 아닌가.

“노, 노르드는 그쪽에 학위도 없으시면서!”

“제가 이래 봬도 고향에 있을 때는 의학을 공부했습니다.”

수의학이지만.

‘아니지. 사람도 포유류니까 수의사라도 사람을 진찰할 자격이 있지 않을까?’

원래 멘토 선배들도 ‘니가 개업하면 레퍼런스나 진료 기록도 없이 처음 보는 동물을 수술하느라고 임기응변만 늘 걸’이라고 곧잘 말하고 다녔다고.

수의사는 좀비 아포칼립스 사태에서 가장 능력 있는 의사라는 말도 있고, 심지어 거기다가 나는 동물과 대화하는 드루이드이기까지 하다.

드루이드 사제 마법을 습득한 다나가 힐러인데, 내가 의사 자격이 없다는 건 논리가 모순되는 것 아닐까?

─말캉.

그렇기에 나는 감각이 있는 왼손으로 주무르기 좋은 크기의 참젖을 허가도 없이 주물거리고서, 슥 물러나 짐짓 진지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발기를 숨기기 위해서 침대에 앉기까지 했다.

자기 손으로 셔츠를 걷어올린 티르시는 뭐라고 항의도 못하고 가쁜 숨만 쌕쌕 거렸다.

나한테 가슴을 보여진다는 상황에 수치심이 앞선 듯 했다. 핑크빛의 젖꼭지가 딱딱하게 굳어지는 게 여실히 눈에 띄었다.

“흐음. 외부 자극을 멈췄는데도 젖꼭지가 단단해지고 있네요. 단순한 생리작용이 아니라, 티르시의 성적인 흥분에 영향을 받은 모양입니다.”

“그런 정보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잖아요!!”

거의 울 것 같은 목소리였다. 나는 정색을 하며 부정했다.

“아뇨, 무척 중요한 정보입니다. 의식적으로 움직이지는 못 해도, 육체가 무의식 하에는 티르시의 마음에 반응하고 있다는 증거니까요.”

“제 가슴을 의학적으로 분석하지 말아주세요!!”

“이 핑크빛의 젖꼭지가 티르시의 마음을 비추는 창문인 셈이죠.”

“제 가슴을 문학적으로 은유하지 말아주세요!!”

안 되겠다, 꼴린 만큼 웃겨서 입꼬리가 파르르 떨린다.

나는 진심을 다한 신체 조율로 웃음을 참았다. 창술을 훈련할 때도 이만큼 몸의 근육의 움직임을 극한까지 통제하지는 않았다.

라리루라……! 네 가르침은 내 가슴 속에 살아 숨쉬고 있어……!

“어흠. 이쯤 하면 충분하겠군요.”

더 이상 했다간 진짜 울리겠다. 나는 티르시의 육체의 통제권을 그녀에게 돌려주었다.

스스로 옷을 걷어올린 모습과 싫어라 하는 태도 사이의 갭이 너무 지나치게 꼴려서, 이러다간 내가 못 참고 우리 마법사님의 소중한 첫 경험을 망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어서였다.

“흐으, 흐으…!!”

─팍! 티르시는 통제권이 돌아오자 바로 상의를 잡아당기면서 나를 째릿 째려보았다. 하지만 나는 손에 남은 감촉에 왼손을 주물거리느라 바빴다.

“……남의 가슴을 주물럭거린 여운에 잠겨 있지 말아 주실래요?”

“네? 아뇨, 그런 게 아니라……”

나는 고개를 모로 꼬았다가, 그녀에게 슬쩍 한 마디 했다.

“티르시. 몸 상태가 어떤지 좀 들려 주실래요?”

“유두가 셔츠에 스쳐서 아프고, 흥분한 탓인지 속옷도 젖어서 축축하고 기분 나빠요. 그래도 만져 주셔서 솔직히 조금 기분 좋았…… 어요……?”

티르시는 뭘 묻냐는 듯이 차분하게 대답했다가, 자기 입에서 나온 말을 곱씹고 얼굴이 하얘졌다. 그 낯빛이 도로 빨개졌을 때, 티르시는 번개처럼 내 팔을 붙들고 울음을 터트렸다.

“뭘 물어보시는 거에요!! 뭘 물어보시는 거에요!! 제 몸 돌려주세요!! 제발 더는 이상한 짓 시키지 말아 주세요!! 혀 깨물 거에요?! 저 진짜 죽어버릴 거에요?!”

“진정하세요, 티르시!! 통제권 돌려 드렸어요!!”

“뭘 돌려주셨다는 거에요?! 지금 제가 시킨대로 하는 거 못 보셨어요?!”

“진정하라고 했는데 전혀 진정 안 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제 명령을 따르는 거면 지금 흥분해서 소리 지르지도 못 하셨을 것 아녜요!!”

“흐, 으으으……?”

나를 앞뒤로 마구 흔들던 티르시는 내 말이 그럴싸하다고 생각한 듯 멈칫했다. 그러고서는 뒤로 슥 물러나서는 눈물을 비벼닦고 말했다.

“훌쩍…… 그럼 뭔가요, 방금 건?”

“어…… 가설이지만 들어보시겠습니까?”

“……부탁드릴게요. 어떤 가설이든, 제가 노르드에게 지시받으면 뭐든 곧이곧대로 따르는 변태녀라는 가설보다는 낫겠죠.”

나는 살짝 진땀을 뺐다가, 그걸 들키지 않고자 헛기침을 했다.

“티르시한테 통제권을 돌려드렸는데, 느낌이 좀 달랐습니다. 티르시의 육체를 통제하는 마법이 〈영혼장벽〉 안까지 침투하지 못하는 듯 했어요.”

“……그래서요?”

“말하자면 무의식에 관한 복잡한 가설이 되니, 장황하게 말하는 것보다는 실천하는 게 낫겠군요. 티르시. 지금 가장 하기 싫은 게 뭔가요?”

“방금 전의 그거요.”

“즉답…… 아, 몸 상태를 설명하는 거 말이죠?”

나는 무심코 티르시의 하의를 보았다. 만져져서 젖었다고 그랬지.

티르시는 얼음장처럼 차갑게 웃었다.

“노르드…? 어딜 보고 계시나요…?”

“아뇨, 아무 데도 안 봤는데요. 아무튼, 그러면 방금 전처럼 몸 상태를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이번에는 훨씬 더 자세하게요.”

…움찔!

티르시는 또 자기가 괜한 소리를 할까 봐 흠칫 하는 듯 했는데, 그녀의 입은 꾹 닫힌 채로 팬티 속에서 벌어진 노아의 대홍수에 대한 묘사를 거부했다.

“어때요? 제가 뭔가 지시해도 저항할 수 있죠?”

“……그렇네요. 뭐가 어떻게 된 건가요?”

나는 말을 고르고자 심사숙고를 했다. 한계까지 발기한 자지를 숨기고자 다리를 꼬아야 하는, 그런 결론이었기 때문이다.

“아까 전에 유두가 딱딱해졌을 때를 보면, 지금 티르시의 육체는 통제권 외에도 무의식의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티르시의 진심 속의 진심.

뇌를 거치고서 이성적으로 판단하지 않는, 즉각적인 ‘본심’에 말이다.

“……무의식적인 본심, 이요?”

“그렇습니다. 티르시, 손.”

“……저기 있잖아요? 제가 애완견도 아니고, 제 몸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상황에서까지 노르드한테 재롱을 부릴 리가──”

─톡.

티르시의 두 손이 내 손에 공손하게 올라왔다.

티르시의 얼굴은 아침에 일어나서 자기가 밤새 오줌을 지렸다는 걸 깨달은 어른처럼 멍해졌다.

“음…… 그래서, 이런 가설을 세웠는데요.”

나는 불편한 진실에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마법의 구조 상, 저한테도 남은 명목 상의 통제권은 남아 있긴 하거든요? 퍼센테이지로 따지자면 티르시가 99%고, 제가 1% 정도.”

이것마저 남겨두지 않으면 유사 시에 티르시가 스스로도 자기 몸을 컨트롤 할 수 없잖은가.

─괜찮겠지, 뭐. 설마 1%밖에 없는 통제권으로 티르시를 마음대로 조종하진 못할 테니까.

─티르시 본인이 내 명령에 저항하지 않는다면 모를까.

나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게 오산이었던 모양이다.

머리를 긁던 나는 얼굴이 뜨거워지는 걸 느끼며 말했다.

“그래서 그게, 음…… 티르시는 지금, 제 명령을 듣고 무의식적으로 ‘그 정도라면 따를 만 하겠다’ 싶을 때는 저항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해가, 잘, 안 되는, 데요?”

티르시는 녹슨 인형처럼 고개를 저었다.

이해가 안 되는 게 아니라, 이해하고 싶지 않은 거겠지.

나는 그걸 눈치챘기에, 좀 더 무자비한 표현을 입에 담았다.

“──티르시가 제 명령을 받고서도, ‘시키는대로 해야지’ 하고 생각해서 그런 거라구요.”

싫다고만 생각하면 저항할 수 있는데, 명령받는 걸 싫어하질 않는다.

그러니까 전혀 따를 필요 없는 명령조차 무의식적으로 따라버린다.

애완견처럼 손을 내밀게 만들건, 자기가 가슴을 만져져서 젖었다는 사실을 밝히건, 그 ‘명령받아서 한 것처럼’ 보이는 행동의 이면에는 티르시의 순종적인 본심이 존재했던 것이다.

‘큭큭. 입이랑은 달리 몸은 솔직하군? 의 영혼 버전인가.’

그녀 본인이 내게 저항할 마음이 전혀 없으니, 자기 몸에 대한 통제권을 99%나 가지고도 불과 1%의 통제권밖에 없는 내 명령에 따라 버린다.

다름 아닌, 그녀 자신의 무의식적인 본심으로.

─부탁드릴게요. 어떤 가설이든, 제가 노르드에게 지시받으면 뭐든 곧이곧대로 따르는 변태녀라는 가설보다는 낫겠죠.

티르시가 몇 분전에 했던 그 말이 핵심을 찌르고 있던 것이다.

아니, 무심코 자기 본심을 밝혔던 거겠지.

그녀 자신조차 깨닫지 못했던 본심을 말이다.

“요약하자면, 티르시가 동의해 줘야지만 통하는 명령권이네요.”

나는 돌처럼 굳어버린 티르시의 어깨에 두 손을 얹고 기쁘게 말했다.

“덕분에 티르시가 얼마나 절 사랑하고 있는지, 알 것도 같습니다.”

“…………아하, 아하하. 아하하하하하…….”

내가 어깨를 토닥여주자 티르시는 고장난 듯이 마른 웃음을 터트렸다.

자신은 〈강림〉 마법 같은 게 없더라도, 반한 남자의 부탁이라면 뭐든지 따라버리고 말 거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처럼 말이다.

“아하하하. 아하하하하하하, 하…… 죽을까.”

─픽.

티르시는 이 자리에서 도망치듯, 자신의 통제권으로 의식을 셧 다운했다.

“이크……. 푸흐흐흐.”

덕분에 나는 쓰러지는 그녀의 몸을 받쳐안으며, 그제껏 참았던 웃음을 터트릴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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