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으로 나간 에퀴녹스는 마스터 클래스의 기감을 펼쳤다.
마법은 치밀한 법칙에 따라서 움직이고, 치밀할 수록 대마법사의 경지에 오른 에퀴녹스는 그것을 알아차리기 쉽다. 필체를 구분하는 것보다 더.
《혼백 공명──》
그렇게 에퀴녹스는 혹시라도 그 엘프가 공간계 마법으로 이곳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위치를 찾아내서 구속하고자 마법을 발동했다.
그리고, 자신을 관찰하는 시선을 눈치채고서 마법을 취소했다.
《……과연, 치밀한 엘프군요.》
에퀴녹스는 눈을 반개했다. 그녀의 마법은 겉에 표가 날 만큼 요란하기 않았기에, 길 한가운데에 서 있는 그녀를 피해가며 사람들은 거리를 오갔다.
《회담이 실패하면 자신의 소속을 캐내고자 쫓아올 걸 알고, 일부러 ‘공통의 적’이라는 자들을 불러놓았다……. 이용당한 기분이라 썩 불쾌한걸요.》
읊조리는 그녀의 옆을 한 명의 소녀가 달려갔다.
물색 머리카락의 소녀였다.
그녀는 품에 약초 바구니를 안고 도시 한 곳에 있는 하토르 교단으로 향하는 듯 했다. 에퀴녹스는 문득 그 약초 내음이 낯익은 나머지, 상황도 잊고 고개를 돌렸다.
〈──신좌에 도달할 가능성 다대(多大).〉
그렇게 뒤돌아 선 에퀴녹스는── 그리고 나는, 어린 날의 네페르티티가 달려가는 방향에 서 있는 1명의 남자를 보았다.
그게 에퀴녹스에게 어떻게 보였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최소한 내 눈에, 거리에 서 있는 남자는 하얀 불꽃으로 이뤄진 그림자로밖에 안 보였다. 실루엣으로 간신히 남자라는 것과 창을 들었다는 것만 어렴풋이 분간할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그 실루엣이 어쩐지 익숙했다.
오딘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 빌렸던, 내 구신의 마나의 화신체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나는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으로 오만상을 썼다.
──이 씹새끼, 교수 슬레이어랑 똑같이 생겼다.
〈따라서, 너를 제 1급 척살대상으로 규정한다.〉
그 단어의 묶음이 말로 자아진 찰나, 희고 검은 마나가 격돌했다.
콰아아아앙──!!!
지면을 짓밟은 에퀴녹스의 발치에서 명계의 문이 열리듯 엄청난 숫자의 언데드가 튀어나왔다. 그건 그녀가 지난 세월 동안 모아온 군세였다.
하늘로 뛰쳐오른 하얀 그림자는 등 뒤에 수십 개 상당의 룬 만다라를 펼쳤다. 그것들은 각자 다른 마법으로 회전하며 창끝을 따라 마법을 쏟아냈다.
《끄아아아아아──!!》
《캬아아아아아아악──!!!》
《엄마, 엄마아아!!》
그리고 자연스럽게, 무자비한 대마법의 교환에 휘말린 사람들은 죽음과 맞딱드렸다. 어둠과 음의 마나가 부딪히는 전장에 피와 살점이 쏟아졌다.
하얀 그림자가 폭풍을 뿜어냈다. 그 바람은 처음에는 투명했지만, 도로의 돌 부스러기와 피해자들을 휘감아 진물린 붉은색으로 변하며 하토르 신전을 두들겼다.
쿠우우우웅……!!!
조촐한 신상이 무너져내렸다. 사망한 시민들은 에퀴녹스의 손에서 언데드로 되살아나서, 마법에 갈려나가며 한 번 더 강제적인 죽음을 겪었다.
대도시 하나가 불길에 휘감기는 데는 3분도 필요하지 않았다.
“쓰으읍……!!”
그리고 나는 욕설을 내뱉으며 그 전화를 꿰뚫고 달렸다.
분명 손을 잡고 있었는데, 네페르티티가 어느새 곁에서 없어져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그녀가 먼저 내 손을 놓고 사라져버린 듯 했다.
떨어진 시점은 확실하다. 에퀴녹스가 예르나의 분신을 죽이고 밖으로 나와서, 어린 날의 네페르티티가 그 년의 옆을 스쳐지나간 순간이다.
설마 이 도시를 불태울 싸움이 터지기 직전에, 네페르티티가 그 옆을 지나가고 있었다니?
운명의 장난이래도 지나치게 좆 같은 일이었다.
“네페르티티!! 어딨어요, 네페르티티!!”
나는 대가리 위에서 쏟아지는 마법을 꿈이라고 되뇌이며 달렸다. 물색의 머리카락이 달려가는 내 시야 한 구석에 잡혔다.
몸을 던져서 손을 뻗었다는데, 손이 통과했다.
생기발랄하던 얼굴에 눈물이 가득한 소녀가 휙 돌아가는 내 시야에 들어왔다. 물색 머리카락은 맞았는데, 어린 시절의 네페르티티였던 것이다.
심지어 발을 헛디딘 곳이 바로 지하계단이었다.
“애미 씹……!!”
나는 몸을 던지듯 일부러 한 바퀴 굴렀다.
촤아악─! 깔끔한 낙법을 취하면서 착지한 나는 그대로 위로 올라가려고 했다가 멈칫했다. 계단을 달려 내려온 어린 날의 네페르티티가 보여서였다.
《오빠!!》
어린 네페르티티는 돌 무더기에 하반신이 깔린 남자에게 달려갔다. 나처럼 검은 머리카락과 검은 눈이었지만, 얼굴 생김새는 이 나라 토박이였다.
《오빠, 정신 차려! 오빠!》
《쿨럭…… 네피……? 왜 여기에……》
그는 아무래도 신관인 듯 했지만, 허리 밑으로 뭉개진 몸을 회복시키지는 못하고 있었다. 어린 네페르티티는 감정이 복받친 듯 엉엉 울었다.
《오, 오빠가…… 약초, 두고 갔으니까……》
《아…… 그랬군. 깜빡했어. 고맙다, 네피.》
네페르티티의 오빠는 커다란 손으로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달각, 달각.
그때였다. 전투 중에 여기까지 굴러 떨어진 듯한 스켈레톤 1마리가 구석에서 몸을 일으켰다.
아마 내가 이 기억을 볼 수 있는 건, 저 스켈레톤이 에퀴녹스와 연결된 상태이기 때문일 것이다. 말하자면 언데드 카메라인 셈이다.
《꺄아아앗……!!》
오빠에게 안긴 네페르티티는 새된 비명을 지르며 몸을 웅크렸다. 여동생을 안은 그녀의 오빠는 눈을 부라리며 주먹을 쥐었다.
《눈치껏 굴어, 좆 같은 자식아. 남매의 마지막 순간이잖냐!》
파앗─!!
그의 주먹에서 터져나온 빛의 마나가 스켈레톤의 몸통을 박살냈다. 스켈레톤은 머리통만 남아서는 바닥을 데굴거리며 굴렀다.
《쿨럭, 쿨럭! 커흑……!》
그는 그걸로 마지막 힘을 사용한 듯 각혈했다. 피가 어린 네페르티티의 옷에 튀었다.
《자, 잠깐만 있어! 내가 다른 신관님을……!!》
《……아니, 기다려.》
서둘러서 도움을 부르려는 그녀의 어깨를 남자가 잡아서 멈춰세웠다.
입술을 깨물면서 눈물을 참던 네페르티티는 그 힘에 주저앉고 말았다.
《바깥은…… 아니, 물어봤자겠구나. 그래, 마침 잘 됐다.》
그는 겉으로 보이는 눈빛만큼이나 현명한 걸까. 네페르티티에게 따로 묻지 않아도 지상의 상황을 짐작한 듯 입을 다물었다.
그는 운 좋게 바위에 깔리지 않은 손으로, 평소 갖고 다니는 듯한 조각상을 꺼냈다.
파란 보옥을 감싸는 도마뱀 모양의 조각이었다.
《받아. 늘 갖고 싶다고 졸랐지? 이젠 네 거야.》
《……오빠? 왜, 왜?》
멍하게 묻는 네페르티티는 툭 떨어지는 오빠의 팔을 보고 멍하니 물었다. 그는 이미 앞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중얼거렸다.
《거기에…… 메시지를 남겨뒀어. 믿어도 되는 사람을 만나렴……. 우리처럼 영매의 자질이 높은 사람이나, 네가 가정을 꾸려서 아이를 낳으면…… 메시지를 읽을 수……》
《시, 싫어! 이런 거 필요 없어! 오빠, 죽지 마! 오빠!》
─쿠르르릉!!
소녀의 울음보다 커다란 소리가 땅을 흔들었다. 네페르티티의 오빠는 흐릿한 눈으로 중얼거렸다.
《곁에 있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네피…….》
지하실 천장이 무너졌다. 지표면에 있던 건물이 어린 날의 네페르티티와 남자의 시신에 쏟아졌다.
키잉─!!
일촉즉발의 순간, 조각상이 펼쳐낸 실드 마법이 네페르티티를 압사에서 구해냈다. 그녀의 오빠가 부여한 마법이었을 것이다.
나는 저 뒤의 미래를 안다.
어린 날의 네페르티티는 다친 곳 없이 살아난다.
며칠 안에 근처 도시에서 구조대는 올 것이고, 사람의 기척을 탐지해서 지하에 갇힌 소녀 1명을 구해내겠지.
그리고 그 소녀는 오빠를 따라서 하토르 교단에 몸을 의탁할 것이었다.
《흐윽, 흐으으…….》
그리고 그때까지 장장 며칠.
빛이라곤 실드 마법에서 뿜어지는 빛 밖에 없는 어두컴컴한 공간에서, 어린 네페르티티는 목숨을 잃은 오빠의 시체 곁을 쭉 지켜야 했을 것이다.
마음 속 모든 감정이란 감정을 슬픔으로 바꿔, 전부 눈물로 쏟아낼 만큼의 시간을 말이다.
“……염병.”
그 꼴을 지켜보던 나는 간신히 정신을 되찾았다.
눈앞의 그녀에게서 눈을 떼기 어려웠지만,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저건 과거의 일이다. 내가 이제 와서 어떻게 해줄 수는 없었다.
진짜 네페르티티 쪽이 걱정이었다.
나는 몇 초 더 망설인 끝에, 계단을 뛰쳐올랐다.
지상은 완전히 불지옥이나 다름없었다. 단지 차갑기만 했던 니플헤임보다는 여기가 내가 상상하는 지옥에 가까웠다.
그새 에퀴녹스와 하얀 그림자의 싸움은 끝났던 것일까.
“아, 씨발 진짜!!”
어쩔 수 없이 꿈을 조작해서 하늘로 날아올랐다.
불길에 감싸이고 싸움이 벌어지는 탓에 날아봤자 그녀를 찾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시야에 방해되는 것들이 거의 없었다.
휘오오오오─!
시뻘겋게 타오르는 배경에서 물색의 머리카락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다행이다. 정 못 찾겠으면 아예 꿈을 지워버릴까 생각하던 차였다. 그렇게 그녀의 근처까지 날아간 내가 땅에 내려섰다.
하지만 쉽게 말을 걸 수가 없었다.
나한테 등을 보인 그녀는, 타오르는 도시가 한 눈에 들어오는 언덕의 초입에 서 있었다.
“……무너진 도시에 남겨진 흔적은, 어둠과 음의 마나 뿐이었어.”
네페르티티는 돌아선 상태로 말했다.
“그래서, 우리는 당연히 〈임모르탈리스〉라고 생각했어. 그 뒤에 가장 활동이 두드러진 흑마법사들이었으니까. 나도,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밖에 의심하지 않았어.”
“……………….”
“하지만 몇 명을 죽여도 아니었어. 오빠가 있는 신전을 부숴버렸던, 그 검은 폭풍이 아니었어. 난 줄곧 그때 느꼈던 마나를 찾지 못하고 있었어.”
나는 불현듯, 니플헤임의 기억이 떠올랐다.
복수의 끝이 가깝다며 좋아하던 오프툼과 달리, 네페르티티는 어딘지 차분해 보였다. 달아오르는 살기를 가라앉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초연하게만 느껴졌다.
그건 사실상 마지막 〈임모르탈리스〉라고 할 수 있을 에퀴녹스를 상대로도 그녀가 찾던 마나를 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내가 모르는 어딘가에서, 내가 아닌 누군가의 손에 죽었을지도 몰라. 아니면 그저 숨어 살면서 악행을 저지른 흑마법사였을지도 몰라. 그냥 그렇게만 생각했어.”
하지만 아니었다.
가장 흑마법사가 많은 나르메르-나일이었기에, 반대로 시야가 좁아져 있었던 걸지도 몰랐다.
“도시를 멸망시킬 만큼 강대한 흑마법사가── 꼭 이 나라에만 있는 건 아닌데도.”
언덕의 정상에 하얀 그림자가 서 있었다.
지독하리만치 짙은, 어둠과 음의 마나를 전신에 감은 채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