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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오십시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티스 교단의 총 본산으로 찾아간 우리를 교주 자신이 맞이했다.
때는 아직 새벽. 혹시라도 늦으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약속보다 3~4시간은 일찍 방문한 우리를 맞이하는 그는 손님의 방문에 불쾌한 듯 보이지도 않았다.
나는 간단하게 목례했다.
《다시 뵙습니다. 약속대로 찾아왔습니다.》
《소식은 들었습니다. 옆에 계신 분은?》
《아내들입니다.》
나는 베로니카와 다나를 가리키며 소개했다.
원래는 베로니카 한 사람과 발퀴리에 몇 마리로 타협할까 했는데, 죽음의 신을 싫어한다는 여신의 앞에 오딘의 사병을 데려가는 건 미친 짓일 듯한 예감에 생각을 바꿔먹었던 게 오늘 아침의 일.
덕분에 전부 따라오겠다는 아내들을 말리는 데 고생했다.
─베로니카랑 내가 감시하다 올게.
가족 회의를 통해서 함께 가게 된 건 당사자인 베로니카와, 다나였다.
─네가 어디로 안 새도록 막으려면 네 고삐를 잘 잡을 사람이 필요하겠지? 그리고 우리 중에선 내가 제일 너를 좆으로 보고 있음. 따라서 논리적으로 봐도 내가 가는 게 맞다.
─남편을 좆으로 본다는 것도 어떤 의미로 사랑한단 뜻이 아닐까? 내가 가슴이 좀 없어도 눈나를 사랑하는 것처럼, 내가 좆만 남아도 계속 사랑하겠다는 뜻인 것이지.
─뒤지면 지옥에서 건져올 거야 씹탱아. 울어라 지옥참딜도!
─미친 년 아냐 이거.
그렇게 조금 투닥거리긴 했지만, 늦지 않게 올 수 있었으니까 다행인 걸로 치자.
《한 가지 질문드려도 되겠습니까?》
나는 교주를 따라가면서 그에게 물었다. 그러자 앞에서 걷는 그는 보폭을 조절하며 돌아볼 따름.
《제가 수렵신님과 만나뵙고 싶다고 부탁드렸을 때, 이런 방식이 되리라고 예상하고 계셨습니까?》
《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죠. 단지, 저희들도 여신님께 신탁을 받거나 하진 않습니다. 그 점은 다른 종교의 사제들과 다를 바 없지요.》
교주는 새벽녘의 어둠을 마나의 빛으로 밝히며 말했다.
《그저, 저나 오프툼처럼 극히 일부의 신도만이 수렵신님의 존재를 가까이서 느끼는 영예를 얻곤 합니다. 이 세상에서 신의 부재를 의심하지 않아도 된다는 건 크나큰 축복이죠.》
《다른 신도들이 과업을 이뤘을 때도 이런 식의 의식을 치릅니까?》
《아니오. 신도들의 축복을 받으며 잠들듯 떠납니다. 오프툼도 원래라면 그럴 예정이었습니다만, 이번에는 그의 요망에 따랐습니다. 여러분들께서는 다소의 배려를 받을 자격이 있으니.》
그럼 우리 때문에 오프툼은 가는 길을 쓸쓸하게 보내게 됐다는 말인가? 양심이 찔리다 못해 뒤질 것 같은 얘기였다.
《오, 왔나!》
나는 불쑥 위가 쓰리는 느낌에 입술을 꾹 닫고 말았는데, 정작 그 오프툼은 해맑게도 손을 마구 휘저으며 안녕하살법을 펼치고 있었다.
뭐지 시발, 혹시 오늘 상 치르는 게 나였나?
《으하하! 표정이 왜 그렇게 우중충한가! 울상 짓고 떠나 보내는 게 나중에 더 후회되는 법이라 그러지 않나! 웃어야지!》
오프툼은 수수한 흰옷을 입고 있었는데, 어딘지 모르게 수의(壽衣) 같았다. 아니, 자리가 자리이니 수의이기는 하겠지만 밝은 얼굴과 안 어울렸다.
내 생각을 눈치챈 듯 그는 옷을 들썩댔다.
《아, 이거? 역시 좀 그렇지? 섬기던 신을 처음 배알하는 자리인데, 기왕이면 멋진 옷을 입혀주면 어디 덧나나 싶긴 하더군.》
그는 향기 나는 오일 같은 걸 발랐는지 번들번들한 피부를 뽐내며 씩 웃었다. 옆에서 못 말리겠단 듯 고개를 젓는 교주가 인상 깊었다.
본인이 저렇게 웃는데 우리가 죽상을 하고 있을 수도 없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픽 웃었다.
《가시는 길 쓸쓸하지 말라고 와 드렸습니다.》
《흐흐. 안 왔어도 신도들이 편지를 잔뜩 써준 덕에 지루하진 않았지. 가서 보게. 꽃도 잔뜩 깔아줘서는, 누가 보면 내가 사제인 줄 알겠어.》
그의 말처럼 사티스의 여신상 아래에는 사막에 어울리지 않는 꽃들이 잔뜩 쌓여 있었다.
찌르르르…!
쓴웃음을 지으면서 그 광장으로 들어갔던 나는 순간적으로 영감을 스치는 어떤 위화감에 걷다가 멈칫했다. 그건 우리 아내들도 마찬가지였다.
다나는 소름이 돋은 듯 팔뚝을 문질렀다.
“뭐, 뭐야? 지금 그거? 등골이 섬칫했는데.”
“……다나. 언행을 신경 쓰거라.”
베로니카는 그 찌릿한 느낌이 뭔지 알아차린 듯, 광장의 타일을 구경하는 사람처럼 머리를 깊숙이 숙이며 걸었다.
“이미 여신의 어전이다.”
우리는 교주와 오프툼을 따라서 여신상 앞으로 걸어갔다.
분명 저번에도 걸어가 봤던 거리인데, 파라오의 궁전에서도 못 느꼈던 가슴의 웅성거림이 잦아들 기색이 없었다. 손에 살짝 땀이 배이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아마 시간대만의 차이는 아닐 것이었다.
《여러분께서는 때를 기다리십시오.》
교주는 여느 때와는 달리 엄숙하게 속삭였다.
《교주에게만 전해지는 경전에 따르명, 사냥의 여신께서 그럴 가치가 있다 여기시면 신탁 정도는 내려주실 것입니다. 그저 부디 경건한 자세를 잃지 마시길.》
잘 모르겠을 때는 전문가가 시키는대로 하는 게 맞겠지. 우리는 교주가 시키는대로 했고, 오프툼은 우리에게 웃으며 인사하고서 꽃투성이 관에 몸을 뉘였다.
교주의 축문이 이어지는 동안 나는 친척의 장례식에 갔을 때를 떠올리며, 공손하게 손을 모았다. 그건 누군지도 모를 여신에 대한 경의라기보다는 오프툼에 대한 예의였다.
“아우, 윽……?”
그런데 그때였다. 내 옆에 서 있던 다나가 자기 가슴을 붙잡으며 살짝 인상을 쓴 것은 말이다.
이 누나가 갑자기 그러지? 어디 아픈 건가? 내 아내의 유별난 반응에 남편으로서 걱정이 되는 게 당연했기에, 나는 그만 고개를 쳐들었다.
“……다나, 어디 아파?”
…절레절레.
마나를 써서 텔레파시를 하는 것과 귓속말 중에 뭐가 더 나을지 고민한 끝에 묻자, 그녀는 인상을 쓰면서 고개를 저었다.
확실히 아파할 때의 표정이랑은 거리가 멀었다. 다나는 조용히 속삭였다.
“왠지 기분이 조금…… 큭……”
육체적인 문제가 아닌 듯 싶었다.
혹시 예전에 이름 없는 여신의 힘으로 강해졌던 영적인 능력의 영향인가?
《오, 오오오오!》
내가 걱정되는 마음에 다나의 등을 쓰다듬으며 달랠 때였다. 축문을 다 외운 교주가 갑자기 몸을 던지듯 무릎을 꿇고 절을 바쳤다.
《수렵신께서 강림하십니다!!》
그런 외침이 울려퍼지며, 그렇지 않아도 별개의 공간처럼 느껴지던 여신상이 놓인 광장이 완전히 다른 세계가 된 것처럼 공기가 일변했다.
그리고 그 순간에, 나와 이세계 사람들의 인식 차이가 크게 드러났다.
다른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고개를 낮춘 반면에, 나는 여신이 강림한다는 얘기를 듣고 오히려 머릴 쳐들어버리고 만 것이었다.
일렁….
사막에 어울리지 않는 오로라가 여신상의 머리 뒤에 펼쳐지면서, 그 일곱 광채가 쏟아진 것처럼 여신상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진짜처럼 휘날리던 머리카락은 그 완성도가 무색해지게도 진짜 머리카락처럼 변해서 가라앉았다. 큼직한 여신상이 그대로 그녀의 임시 육신이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여신의 힘이 깃들었다는 여신상은 한때 봤던 베로니카의 스승, 아델라이데보다도 커다란 미녀가 되었다.
─번뜩.
그리고 하필이면, 멍청하게 혼자만 고개를 들고 쳐다보던 나와 정통으로 눈이 맞았다.
마나가 휘도는 듯한 눈동자가 내게로 움직였다. 나는 찬물을 뒤집어쓴 사람이 몸을 떨듯 눈치챘을 때는 이미 오딘의 눈을 키고 있었다.
신의 얼굴을 직접 보면 눈이 먼다던가 하는 건 어느 신화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얘기인데, 왜 그런 불길하기만 한 전설이 생겼는지 알 만도 했다.
─익숙한 눈이군.
염병, 조졌다.
사티스의 읊조림을 듣자마자 나는 얼른 고개를 숙였다. 여신이 내 눈깔을 보고 익숙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 그냥 처음부터 그랜절 박고 있을 걸.
여신상이 발을 내디뎠다. 저만한 질량 덩어리가 움직이는데 유령처럼 발소리 하나 나지 않았지만, 사냥의 여신이라면 당연히 그럴 만 했다.
“후우, 후우……”
다나가 숨을 몰아쉬었다. 되도록 참고는 있지만, 아까 전부터 느껴지던 몸의 이상이 사티스가 여신상에 빙의한 시점에서 더 강렬해진 듯 했다.
사티스가 고의로 압박하는 건 아니었다. 여신은 다른 이들에게는 큰 관심이 없었다. 눈길도 주고 있지 않았고 말이다.
이게 나쁜 일만은 아닐 것이다. 사제건 수녀건 신과 교감하는 능력은 중요하다. 다나에게 호의적이던 이름 없는 여신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어쩌면 다나에겐 이 경험으로 뭔가 좋은 영향이 생길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렇다고 진땀을 빼는 다나를 두고 보겠다는 뜻은 아니었다. 아마 내가 당장 앞으로 몇 보 내딛으면 해결될 문제기도 했다.
어떻게 아느냐고?
다른 이들이 모두 조용해진 지금, 내 뒤통수에 강렬하게 내려꽂히는 시선을 모를 수가 있겠는가.
지상에 개입을 꺼려하는 그녀가 여신상의 몸을 빌린다는 형식으로나마 강림한 것이었다. 이유가 있다면 빤히 쳐다보고 있는 나밖에 없을 것이고, 그건 나도 바라는 바였다.
“위대하신 사냥의 여신, 사티스 님을 뵙습니다.”
그렇기에 나는 때늦은 경의를 멈추고서 여신의 영전에 발을 디뎠다.
솔직한 감상을 말하자면, 의외로 할 만 했다.
반쪽짜리이긴 해도 〈인신〉들과 투닥거린 경험 덕분일 수도 있고, 아니면 꿈에서나마 진짜 신과 대화해 본 덕분일 수도 있겠지.
아무튼 개인적으로는 왕족이랑 대화할 때보다 더 편한 느낌.
─의무를 다한 아이를 거두러 온 곳에서, 심히 놀라운 광경을 보았다. 이에 과거에 남겼던 힘을 빌어 잠시 현계했다.
사티스는 진짜 조각상처럼 나를 굽어보며 그리 말했다.
─이지(理智)를 깨친 짐승의 아이야. 어인 일로 이방의 세계를 떠도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