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602화 (602/1,009)

아니 씨부랄, 뭐요?

나는 한순간 놀란 나머지 입을 떡 벌려 버리고 말았다.

오딘이 라그나로크의 원인이라니? 아까는 우리 베로니카의 선조의 선조가 원인이라고 했잖은가.

‘……아. 시작이랬지, 원인이라곤 안 했구나.’

허미 씹.

마치 선수를 교대하는 것처럼 사티스의 입술이 열리고, 내 입은 닫혔다.

─네 말이 전부 맞다, 천공신의 후예야. 그년이 하찮은 지식욕으로 봐서는 안 될 것을 엿본 탓에 신대의 결말은 파멸로 확정되었지.

사티스는 나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그게 그렇게 되는 걸까? 언젠가 꿈에서 오딘을 처음 만났을 때 생각한 것처럼, 신들의 미래라는 건 관측하는 것으로 확정되는 것일지 몰랐다.

대학 중퇴생의 머리로는 미처 이해하기 힘들다. 염병, 양자역학 비슷한 거라면 더 전문적인 이과 학자를 데려왔어야 하는데!

이과 대표로 나선 게 수의대 중퇴생이라 판타지 신화를 과학적으로 해석하려는 시도는 여기서 좌절해버리고 말았다. 눈물을 금할 수 없군 그래.

─나의 벗은 모두 죽고, 오딘 자신을 비롯해 【중간 가지】를 창조해낸 이들도 세상을 떠났다. 부숴진 세상을 고쳐내고 파국을 막을 자가 없다. 세계가 스스로 회복되길 기다릴 뿐이지.

마주 보는 눈에서 눈으로 어떤 풍경이 전해지는 듯 했다.

환시(幻視)에서 거대한 빛의 손이 하늘을 뚫고 지상을 휘저었다.

스스로 그은 듯한 피가 대지에 쏟아지자, 그게 양분이 된 것처럼 가뭄으로 황폐화된 대지가 힘을 되찾았다. 자신을 희생해서 땅을 되살린 듯 보였다.

여신의 손은 그렇게 인간들이 경작하는 농지에 힘을 불어넣고 떠났다.

하지만 손이 휘젓고 간 하늘에는 뻥 하니 구멍이 뚫린 상태였다.

─하물며 그 날 이후로, 나는 【중간 가지】에 쉬이 개입할 수도 없게 되었다. 분쟁 한 번을 막기 위해서는 곪아버린 가지가 꺾일 위험을 감수해야 했어.

어항의 유리가 깨진 것처럼 구멍에서 밤하늘이 쏟아졌다.

별을 수놓은 밤하늘이 물감처럼 쏟아지며 땅을 적셨다. 마치 하늘과 땅을 둘로 나누는 경계선이 사라져 버리는 듯 했다.

─그럴 수는 없었다. 한 줌의 신도를 비탄에서 구하고자 모든 생명에게 재앙을 불러 일으키다니, 그런 독선은 아무리 신이라도 궤변에 불과하겠지.

타르를 담았다가 깨진 어항이 이러할까.

그렇게 구멍이 숭숭 뚫린 하늘에서는 밤하늘이 쏟아지고, 그 압력을 견디지 못한 것처럼 하늘은 완전히 무너져내렸다. 불길하거나 신성한 별들도 싸그리 땅에 쏟아졌다.

그중에는 사티스를 닮은 별빛도 있었다.

기껏 회복한 대지는 물론이고, 멀쩡하던 땅까지 까맣게 변했다.

세상이 별빛이 혼재된 어둠에 뒤덮여버리고 만 것이었다.

─네가 아느냐? 사냥밖에 하지 못하는 년이 저 혼자 살아남아 그 사실을 알았을 때의 기분을? 내 귀에 곧잘 들려오는 기도와 슬픔을, 부숴질 듯이 얇은 하늘에 달라붙어서 지켜만 봐야 하는 마음을 아느냐?

어둠에서 일어난 거대한 인간형의 별빛은 나를 손바닥에 올려서 들었다.

─내 이름을 빌려 설치는 종자들을, 내 개입에 의해 무너질 균형이 두려워서 용인해야 했던 나의 심정을 알겠느냐?

시꺼먼 진흙이 사티스의 목소리로 말하며 붉은 액체를 쏟아냈다.

─끝내 무너져버린 내 신도가 고칠 방법이 없는 하늘을 부숴버리기 전에, 내 손으로 그 딸과 함께 벌했다.

온통 새까맣게 변해버린 세상에서, 흘러넘치는 피눈물이 빨갛게 강을 이루었다.

─그가 그리도 하늘의 균열을 넓히려 들 줄 알았다면, 차라리 처음부터 그렇게 했어야 했다. 그리 했다면 적어도 인간의 아이들이 죽을 일은 없었을 터였어.

시꺼먼 환상의 세상에서 사티스였던 것은 나를 손바닥에 올리고 쉴새없이 피눈물을 흘렸다.

그리하여, 나는 다물고 있던 입을 열었다.

“실수를 후회하고 계시군요. 오딘이 그랬듯이.”

피눈물이 멎었다.

후회 투성이의 여신께서는 내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셨다. 나는 멋쩍는 느낌에 뒷목을 긁었다.

“앞날을 알지 못하는 건 예언자라도 같은 모양입니다. 선택을 틀려서 실수하는 건, 사실 누구라도 저지를 법한 잘못이죠.”

나만 해도 남말할 처지가 아니다.

이세계에 올 줄 알았으면 군대에 가지 말고 펑펑 놀기나 했을 것이며, 대학에서도 번역 노예가 될 거라는 생각은 꿈에도 모른 채 만언신의 파파고를 커밍아웃 했잖은가.

하물며 그렇게 좆빠지게 고생하면서 쓴 논문을 예르나 년한테 맡겼다가 도둑맞기까지 했는데, 내 주제에 누구한테 왜 실수했냐고 타박하겠는가.

“사티스 님의 행적을 우연히 알게 되어서 확신을 얻었습니다.”

나는 에퀴녹스와 그 애비의 기억을 반추하면서 말했다.

그 기억 속에서 사티스는 상당히 우스꽝스러운 존재였다.

신은 쉽사리 인간 세상에 개입하면 안 된다면서 정작 개입은 개입대로 하고, 그러면서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도 못했다. 말과 행적이 모순된 것도 정도가 있다.

하지만 선학들이 증명했듯, 세상에 모순 같은 건 없다.

모순이 보인다면 그건 아직 증명되지 않은 무언가가 있다는 뜻이다.

온갖 이과 법칙이 그러했듯, 모순은 그 논리의 에러를 경쾌하게 해명해줄 한 줄의 공식이 비어 있기에 모순으로 보이는 것이었다.

‘에퀴녹스의 기억은 단편적이었지.’

그 년은 지 애비의 기억을 전해받았을 뿐이다.

게다가 그 최초의 사냥꾼도 사티스 신도들의 소식은 풍문으로 들은 게 전부다. 당시 그의 관심은 딸의 장례를 치뤄줄 방법에 쏠려 있었지 않은가.

그렇게 건너건너 들은 단편적인 정보로 ‘수렵신 사티스는 옛날 얘기에나 나올 법한 무능한 여신’이라고 못 박는 건 쉬운 일이다.

거기에 맞춰서 악감정이 섞인 결론을 내는 것도 말이다.

‘킹치만…… 그건 너무 답정너잖아?’

악감정은 때때로 인지부조화를 일으킨다.

평범하게 그녀의 무능에 분노하는 일반인이라면 어쨌든, 나 같은 먹물쟁이가 취할 태도는 아니라고 생각하걸랑.

옛날 얘기를 조금 주워듣고 결론을 짓기엔 아직 일렀다.

별의별 3류 찌라시에 시달린 21세기 지구인의 의심 깊은 사고방식을 얕보지 말라, 이거야.

‘뭣보다 쓰벌, 사티스=개씹썅년 가설이 정설로 부상하면 바이콘들 저주는 누가 풀어줘?’

나로서는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두뇌 풀가동 모드에 들어갈 수밖에 없단 말이지.

나는 픽 웃고 얘기를 꺼냈다.

“그렇게 머릴 쓰다 보니까 알겠더라구요. 수렵신께서 명백하게 【중간 가지】에 개입한 건, 딱 2번 뿐이었단 걸요.”

타락하기 전의 에퀴녹스 애비한테 권능을 줬을 때.

인류 간의 분쟁 수준을 넘어서, 세헤테피브라도 말했던 이승과 명계의 균형을 좆창내려고 했을 때.

이렇게 2번이다.

“에퀴녹스 부활 의식처럼 부득불 개입해야 할 때 외에는 오히려 개입하면 안 된다는 법칙을 최대한 지켰습니다. 예외는 에퀴녹스의 부친에게 첫 권능을 내려줬을 때가 전부였죠.”

그 이유는 본인의 입으로도 말했다.

자신의 신실한 신도였던 그 놈과 에퀴녹스에게 벌어진 비극에 책임감과 연민을 느껴서다.

결국 최대의 모순은 개입을 해선 안 된다면서, 에퀴녹스의 애비만이 아니라 후에 나타난 사냥개들에게도 하위호환 권능을 잔뜩 내려줬다는 점이다.

사람 보는 눈이 없는 것도 정도가 있지, 눈깔이 삔 게 아니고서야 그딴 미친 놈들한테까지 권능을 주다니? 이건 빼박 중죄가 맞았다.

그 권능을 준 게 사티스가 맞다면, 말이다.

“그래서 앞뒤가 맞지를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오딘의 눈을 키고, 개소리가 나오지 않게 집중하며 눈알을 가리켰다.

“왜 사냥감의 본질을 알아보는 눈을── 휘하의 사냥개들보다 뛰어난 권능을 가진 당신께서, 그런 광신도들의 포악한 본질도 못 알아봤을까요.”

이상하지 않은가? 사티스는 나랑 베로니카의 정체도 단박에 알아봤는데.

에퀴녹스의 애비가 신앙심을 버리게 된 계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광신도들 때문이었다.

그 전까진 그 새끼도 흑마법사가 되려는 생각이 없었다. 에퀴녹스를 쏴 죽인 건 에퀴녹스의 애비 본인이기도 했고.

딱 그 새끼한테까지만 권능을 내주고 끝냈다면 마음 약한 여신과 불행한 사냥꾼의 비극으로 끝날 문제였다.

“그래서 지금까지 하신 말씀까지 더해서, 이런 추측을 해 봤습니다.”

나는 손가락을 세우며 말했다.

“사티스 님이 지상에 개입하지 못하시는 동안, 그 당신의 신도들은 최초의 사냥개에게 하사했던 권능을 흉내냈던 것 아닙니까? 자신들이 쌓은 신성력을 사용해서요.”

신을 흉내내는 마법은 신기한 것도 아니잖은가?

라그나로크 이후에 뛰어난 인간을 신으로 섬긴, 고대 로마니아 인들이라는 예시도 있다.

‘그리고 내 야수회귀도 좋은 예시지.’

천공신께 기도하라(yáǵeswō deiwōm dyēus).

웃기는 기도문이다. 오딘은 진즉 죽었고, 그나마 있는 망령도 마법으로 남긴 A.I. 비서일 뿐인데.

죽은 신에게 기도해 봤자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사티스는 눈 꾹 감고 개입이라도 할 수 있지, 그 신들은 죽어서 아무 것도 못하지 않은가.

하지만 나는 이 마법을 잘만 써먹고 있다. 이미 죽은 구신의 마나도 내 마나통 안에 빵빵하다.

왜 이런 모순이 존재하는가.

그건 언젠가 베로니카랑 얘기했듯, 야수회귀가 오딘에게 힘을 받는 마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마법은 그녀를 ‘흉내내는’ 기술이다.

오딘의 힘을 내려받는 구조가 아니기에, 그녀가 죽은 뒤에도 이렇듯 잘만 써먹을 수 있는 것이다.

‘구신의 마나도 그래. 이 마나는 구신들이 전부 다 나가 뒤진 지금도 얼마든지 쌓을 수 있지.’

같은 원리로, 사티스가 힘을 나눠주지 않아도 그 신도들은 사티스의 마나와 닮은 마나를 훈련으로 쌓을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렇지 않으면 하토르 교단처럼 옛적에 목숨을 잃은 신들의 종교가 남아 있을 리 없고.’

신이 죽었다고 마나를 쌓을 수가 없다면 걔들을 믿는 사람들이 좆이나 남아 있겠다.

존나 극한의 존버충이랑 신앙심 깊은 사람들만 남겠지.

똑같은 노력을 들여도 나는 아무 것도 못 얻고 있는데, 옆집 불교도들은 여래신장을 배웠다더라~ 하면 당장 라인을 갈아타는 게 정상 아닌가?

“그래서 당신께서는 최초의 사냥꾼을 흉내내는 이들에게 목숨을 대가로 거셨습니다. 징벌이면서 경고의 의미로요.”

사실 직접 개입하지 못하는 그녀 입장에서는 그 방법이 제일 나았다.

그녀가 지상에 내려와서 벌하는 것보다는, 저들 스스로가 쥐방울만한 혼을 갖고 그녀의 앞에까지 오는 게 이세계에도 부담이 덜 갔을 테니까.

‘그런데도 사티스의 눈을 흉내내는 신성마법은 현대까지 전해져 내려왔다.’

사티스가 최근에 자기 앞으로 온 영혼을 어떻게 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예전의 광신도들에게 한 것처럼 벌하진 않았겠지.

지금의 사냥개들은 올바른 뜻을 가진 이들이고, 사티스도 과업을 이룬 용사라며 노력을 인정한단 투로 말했으니까.

“그래서 저는 딱히 사티스 님을 옳다, 나쁘다로 구분 지을 생각이 없습니다. 사실 그럴 자격 씩이나 있는 놈도 못 되고요.”

손바닥에 올라탄 나는 그녀를 가리키며 말했다.

자신의 신도에게 책임을 느끼고 권능을 내려준 것.

그것 자체가 사티스의 행동에 악의가 없었다는 증거였다.

죽은 사람을 되살려 줘서는 안 된다. 또 어쩌면 사냥의 신인 그녀에게는 죽은 자를 되살릴 능력이 없었을 수도 있겠고.

그래서 앞으로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권능을 내려줬던 것이다.

물론 현명한 선택이었다고는 말하기 힘들다.

세상에 개입해서는 안 됐다지만, 자기 신도들의 폭주를 막지 못했다는 도의적 책임도 있다.

‘하지만 그걸 벌하는 건 교수 슬레이어의 일이 아니지.’

만약 그 결말에 사티스 자신의 이기적인 악의가 조금이라도 섞여 있었다면, 나는 이 여신을 그저 한 마리의 사악한 교수로 간주했을 것이었다.

당장 벌을 내릴 능력은 안 되도 장차 그 대가를 치루게 해 줬겠지.

하지만 사티스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 남을 이용해먹는 교수 짓을 한 게 아니다. 단지 잘 되기를 바라며 벌인 일이 치명적으로 실패한 것 뿐이다.

여건이 나쁘고 능력이 부족했던 게 잘못이라고 한다면, 그저 그것 뿐인 이야기다. 나는 복잡한 마음으로 눈을 감았다.

‘교수 슬레이어가 벌해도 되는 건 교수 뿐이다.’

실수로 인한 죄를 벌할 자격은 내게 없다.

사냥학 박사 사씨가 저지른 잘못을 당사자조차 아닌 내가 뭐라고 하겠는가. 그건 틀림없이 오만 그 이상의 오지랖이었다.

사티스가 인간이었다면 사회의 법치에 심판을 맡겼겠지만, 신을 벌하는 법률이 있을 턱도 없다.

“그저, 아이러니한 일이긴 하군요.”

그래서였을까. 나는 깨달았을 땐 교수 슬레이어 강북호가 아니라, 그저 오딘의 후계자 노르드로서 고개를 젓고 있었다.

“운명의 장난 같은 건 신화 속에서만 있었으면 했어요.”

오딘의 실수로 라그나로크가 일어났고, 그 탓에 온갖 것을 잃고 신도들을 보살피지도 못하게 됐던 사티스다.

그런 그녀의 분노를 알아차린 신도들이 일선을 넘어서 흑마법사 마녀 사냥 같은 일을 벌였던 것.

사티스가 스스로 정한 규칙마저 어겨가면서 그 비극을 보살피려 했다가 실패했던 것.

그렇게 규칙을 어긴 결과가 최악의 결말로 돌아왔기에 스스로 끝맺음을 맺고, 처음처럼 인간들의 세상에 개입하지 않는 자세로 돌아간 것.

무고한 사람을 흑마법사로 몰아 세우던 과거의 미친개들이, 지금은 믿음직스러운 사냥개가 돼서 이 나라의 평화에 일조하고 있는 것.

이 모든 게 운명의 악질적인 장난 같지 않은가.

돌고 돌아서 입장이 바뀌는, 그런 아이러니였다.

흑마법을 다루며 자신에게 끝없는 고통을 줬던 오딘을 원망하던 사티스가, 지금은 그녀와 비슷한 죄와 자책을 짊어지고 있다니.

다시 한 번 운명이라는 말에 진절머리가 나는군 그래.

─……그렇군. 너는.

사티스가 중얼거렸다.

─너는, 나를 관찰하러 온 것이었구나.

피눈물을 멈춘 그녀가 그리 읊조렸을 때, 나는 어느새 여신상이 세워진 광장으로 돌아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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