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르가디스여, 나는 돌아왔다!”
왔노라, 보았노라, 졸리노라.
체감 상으로는 1년도 더 돌아오지 못했던 듯한 그리운 내 집으로 돌아오자, 나는 기쁨의 함성을 주체하지 못하고 마당에서 트리플 썸머솔트킥을 뿜어냈다.
“와 씨발, 잡초 무성한 것 봐. 치우려면 하루론 모자라겠는데?”
“헤헤, 골렘들한테 맡기면 되지.”
우리 아내님들도 각각 그리운 듯한 느낌으로 이 집에 익숙하게 들어갔다.
일행에서 이 집을 어색해 하는 사람은 티르시와 네페르티티 뿐이었는데, 여기서 우리 사차원 아가씨는 또다시 전략적 식견을 뽐냈다.
“마을 여관에 묵을게. 필요할 때 불러.”
내 얼굴을 10초 이상 못 보는 병에 걸린 네페르티티는 36계 줄행량을 펼쳤다. 내가 돌려준 보옥 도마뱀 조각상만 챙겨서 줄행랑을 친 것이었다.
집들이 때나 그밖에 가끔 방문한 게 고작이었던 티르시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다가 뻘쭘하게 헛기침을 했다.
“시, 실례하겠습니다.”
“프냥─. (왔냥─.)”
우리 집의 집냥이 테레사의 환영을 받으며 입주.
그 녀석에게 적당히 간식을 주며 우리가 없었던 사이에 뭔가 일이 일어났느냐고 물으려고 했는데, 뭔가 잘못한 강아지처럼 제자리를 빙빙 돌던 베로니카가 내 곁으로 다가왔다.
“그대여. 잠시 성지에 다녀올까 한다만, 그래도 되겠느냐?”
“성지? 아, 해주 때문이지? 같이 가자.”
짐도 풀지 않고 테레사랑 장난감으로 놀아주던 내가 대답하자, 베로니카는 정색하며 말했다.
“해주 때문만은 아니다. 그 이전의 절차다.”
“절차? 뭔가 전통이나 예언 같은 게 있나?”
“비슷하지만 다르다. 내가 신뢰성 높은 서적을 참조한 바, 대개 이런 흐름에서는 ‘천공신의 허가? 인정할 수 없어!’ 라며 귀찮게 구는 멍청한 것들이 나오기 마련이더군.”
“그 신뢰성 있는 서적이란 게 네가 방금 짐에서 꺼낸 전기소설(傳記小說)은 아니지?”
“나는 그대의 아내이자 주인님의 하인, 그리고 선지자님의 뜻을 계승하는 【예지자】로서 그따위 방만한 행위를 일체 용납해서는 아니 되느니라.”
질문에 대답해 요년아.
“하여, 그 놈들이 찍 소리도 못 하도록 그대의 방문에 앞서 기강을 다질 필요성이 생겼다. 내가 성지에 잠시 들렀다 오려는 건 그 때문이다.”
“네가 필요하다고 느낀다면야. 근데 너 혼자서 갈래도 호위로 발퀴리에들 정돈 데리고…… 아하.”
말하다가 말고 픽 웃었다. 그런 거구만.
“발퀴리에는 천공신 오딘의 몸종이었지?”
“그렇고 말고. 태만하고 불만 많은 노인네들을 조용히 시키고 오마.”
마주 웃은 베로니카는 동족들이 현실부정을 못 할 증인 겸 증거들을 데리고서 바이콘의 성지로 〈공간이동〉을 했다. 며칠씩 걸리지는 않을 거라는 게 그녀의 의견이었다.
물론 나랍시고 돌아와서 편안히 꿀잠을 자기만 했던 건 아니다.
캐서린의 보고를 듣고, 몇 시간 정도 상의한 뒤 헨네시스 영애와 면담 일정을 잡았다. 그 과정을 쫓아다니는 첩보-와이프들은 덤이다.
“여보님들? 노르드는 이제 스물 여덟쨜이에요. 심부름 혼자서 할 수 있어요. 카르미네 대학……? 에 다니고 있거든요?”
“서방님은 대학 졸업했다지 않았나요?”
“이 새끼 이거 물가에 내놓은 병아리 같네.”
테에에엥! 프랑에몽! 티르시랑 다나가 괴롭혀!
하필이면 비유를 해도 병아리라니, 내가 옐로우 스킨이라고 차별하는 것?
싀부랄, 너희들이 28청춘 시즌 2도 끝날 나이에 아내님들이랑 손 꼭 잡고 돌아다녀야 하는 남편 기분을 알어?
‘물론 존나 째지지.’
뭘 봐, 새끼들아. 부랄보다 아내가 더 많은 사람 처음 봐?
“하늘 천, 땅 지. 검을 현, 누를 황…….”
나는 천자문을 읊으며 마음을 달랬다. 황인종의 노랑(黃)과 흑인의 검정(玄)만 들어 있는 걸 보면 천자문이란 레이시즘 역전세계를 암시하는 고대의 경문이렸다.
하늘의 황인, 땅의 흑인.
국어 B형 1등급에 빛나는 강북호의 지문해석능력에 의하면 이는 소수민족의 애환을 달래는 노래임이 분명하다. 어리석은 문과 놈들. 이과생마저 알 수 있는 당연한 결론을 왜 수능 지문에 추가하지 않는 것이지?
“근데 시발 생각해 보니까 나도 이젠 문과네.”
치킨집으로 귀결되는 이과의 운명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의대를 택했건만, 어인 일로 문과 테크를 탄 끝에 이세계 인문학자가 돼 버린 것?
만류귀종이라고 했던가. 여윽시 내 재능은 시적 표현력과 수학적 사고력을 자유롭게 오가는 범우주적인 히치하이커인 모양이군.
개소리는 그만 하고, 본론으로 돌아가자.
오프툼과 조이드는 로마니아에 남았다.
일단 본격적인 활동은 몇 주에서 몇 달 정도는 뒤다. 지금은 소강 기간 겸 때이른 여름 휴가라고 할 수 있겠지.
역시 노르드루이드 컴퍼니는 사원복지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기업이라니까. 다들 어서 취직하자! 지금이라면 CEO 겸 회장님이 이력서를 친히 읽어줄 찬스라고!
“그럼 싸장님, 오드리도 휴가 주세요. 싱글녀는 복지가 필요해요. 이 대장장이는 순간의 허락으로 빠른 연휴를 원합니다.”
“회사 돈으로 출장 가서 호의호식 하다 온 년이 무슨 놈의 휴가야. 꿀 많이 빨았지? 이제 개처럼 일하렴 하하하하!”
“싸장님 좆 같애! 이럴 거면 오프툼 씨라도 데려와!”
오드리는 아예 대장간 바닥에 드러누워선 빼액 거리며 우리 듀나미스 길드의 기념할 만한 첫 파업을 시전했다. 이 년이 아주 혼자서 이세계의 노조 역사를 새로 쓰려 드네.
클라라 씨, 당신 도제 좀 말려 봐요.
“옳소, 옳소! 저흴 아르마알스 가문으로 돌려보내 주세요!”
“아니 시발 댁도야?”
유부녀 클라라도 그녀 안의 드워프가 워커 홀릭으로 살아가라고 속삭이는지 가정마저 내팽개치고 몇 주 머무른 로마니아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방심했다. 사원이 둘인데 노동‘조합’이 생겼단 건 모든 사원들이 노조에 가입했다는 뜻이었다! 이거 시발 전형적인 스타트업 좆소가 망하는 과정 아녀?
“그보다 아줌마, 집에 돌아온지 얼마 됐다고 또 저 먼 나라까지 가고 싶다고 빼애액 거려요?”
아내가 외국 연수를 갔다 오고서부터 해외의 그 길고 딱딱한 맛에서 헤어나오지 못 하고 있다니, 남편 분 억장이 무너져버리면 어떡할려고 그래.
잠시 마누라가 금속과 바람난 남편 분을 위하여 애도의 시간을 갖겠습니다.
“테에에엥! 평생직장이면 직원의 연애사도 책임져라! 돈 많고 짱 쎈데다 유머러스하고 애절한 과거사까지 가진 흑인 중년남 존나 그윽하죠? 결혼 퇴직 각 빨딱 섰죠?”
“더는 이런 빈약한 실줄로는 만족 못 해요오옷! 여보 미아내애애애!! 나 이제 반자동 게르마니아 마도구가 없는 생활로는 못 돌아가요오오오옷!!”
“사원님들, 서라운드로 염병하기 있기 없기?”
이게…… 차세대 금속 가공 기술을 선도할 듀나미스 길드의 설립 멤버……?
혹시 나는 사람 보는 눈이 없는 게 아닐까? 나 무서워…… 제발 그만해……. 이러다가는 5등분의 신부로 봉인된 섹조디아 라이프를 즐기는 영주와 그 휘하의 슬라네쉬 교단이잖아…….
광기의 신 이름값을 하며 길드원들을 크레이지 스미스 시스터즈로 만들어버린 나는 도망치듯이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미안! 내 몸이 좀 바빠서!
***
집으로 돌아왔으니, 오랜만에 훈련을 좀 했다.
훈련 상대는 발퀴리에다. 최근에 힘의 경지를 좀 단락적으로 나누게 된 경향이 있는데, 같은 미스릴 클래스라도 힘의 차이는 있는 법이었다.
‘이 녀석들은 【게르튀르】를 연습할 상대로는 딱 좋지.’
여러모로 아주 쓸모가 많은 로봇 강아지였다.
아니지, 이쯤 되면 로봇 메이드라고 해도 된다. 마부도 해, 심부름도 해, 신분 증명에 보디가드에 훈련 상대에 마법 스승까지 못 하는 게 없군.
“그런데 노르, 창은 안 써?”
“응? 아, 실전도 아닌데 뭘.”
구경하던 프랑이 묻길래 나는 대걸레 막대기를 닮은 목창을 휘두르다가 말고 대답했다. 그렇지만 아마 프랑도 그런 의미에서 한 질문은 아니겠지.
“게다가 아직 좀 찝찝하기도 하고.”
명계에서 싸운 뒤로부터 나는 내 창을 휘두르질 않았다. 단 한 번도 말이다.
별로 저주받은 무기가 되거나 한 것도 아니지만 영 그렇지 않은가. 마치 부랄친구(남자)가 콧구멍 피어싱과 문신을 하고 나타나서 거리감을 잡기가 힘들어진 상황 같다.
그래서 팔찌로 만들어서 가방에 던져두고 쭈욱 방치 상태다.
시간이 해결해줄 문제로 여길 따름이다.
─슉. 슈슈슈슉!
내가 훈련하는 모습을 보고 같이 하자고 온 프랑이랑도 땀을 흘렸다.
그리고는 명상하는 다나를 방해…… 아니, 도와주면서 노닥거리다가 첫째 날은 잠들기로 했다. 첫 날부터 빡세게 싸돌아다닐 만큼 일이 밀린 처지도 아니었고 말이다.
참고로 야매 모유는 신줏단지 모시듯 모셔놨다. 나중에 각 잡아서 호로록 빨아마셔버려야지. 계속 보관하다가 상하기라도 하면 평생 후회할 테니까.
그리고 당연히 바쁠 일 없이 여유가 있는 만큼 밤일에도 충실해지는 나였다.
“아욱♡ 윽♡”
─쮸붑, 쮸붑♡!
수줍게 찾아온 프랑에게 올라타, 요청받은대로 다른 아내들도 있을 때는 하기 힘든 격렬한 플레이까지 수행했다. 목 조르기로 시작하는 풀 코스다.
그렇게 기절한 프랑을 업어서 방에 눕혀놓고, 난 나대로 침실로 돌아와서 시트를 정리하고 누웠다.
“흐아아암…….”
비싼 여관도 좋긴 좋지만, 역시 익숙한 우리 집 침대가 제일이다.
스위트 룸의 편의를 느끼기에도 이세계의 문화 레벨이 높지가 않다. 버튼 하나로 온갖 서비스가 배달되고 침대에 누워서 뭐든 할 수 있는 21세기 환경도 아니잖은가.
“결국 집이 최고구만.”
문제는 그 집이 별로 크지 않다는 점이었다.
아니지 시발. 처음에는 이 집도 남는 방이 무척 많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적으면 적었지 많지는 않게 여기게 돼 버렸다.
부자들의 저택을 오가며 안목에도 인플레이션이 일어난 걸까.
아내들이 늘어난 것도 있어서 조금 좁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메크성 이후의 야무치가 돼 버린 내 첫 신혼집이 불쌍해지는군.
영지가 생기건 말건 이사를 갈 생각을 하는 게 나을까?
나는 그런 느긋한 생각을 하며, 잠드는 과정이 보통 그렇듯 정신을 차렸을 때는 꿈나라로 여행을 떠나버리고 말았다.
─꿈뻑, 꿈뻑.
비유가 아니다. 정말로 꿈나라에 와 버렸던 것이었다.
“……셰이드의 꿈?”
나는 익숙한 초원의 낯선 모습에 아연해졌다.
하늘이 검다.
별빛조차 없었다. 내 고향 지구의 환경 오염에 응기잇 해 버린 밤하늘처럼 검었는데, 내 구신의 마나가 형상화된 하얀 태양조차 코빼기도 보이질 않는 상태였다.
당황이나 놀람은 천천히 경계심으로 바뀌었다.
셰이드의 꿈에 익숙해진 뒤, 원하지 않게 내면세계로 진입하게 되는 현상은 없어졌다.
그런데 오늘은 내가 바라지도 않았는데 이곳에 와 버렸다.
뭔가 원인이 있겠지. 변수라고 하면 프레이야의 신좌의 열쇠였지만, 확인해 봐도 별로 문제랄 건 찾을 수가 없었다. 평범하게 작동했다.
하지만 아무런 이유도 없을 리가 없다.
그리고 내 예상은 적중했다.
푸드덕─!
생각을 정리하고 있자, 문득 하늘에서 2마리의 까마귀가 날개짓을 하며 내려서는 게 아닌가? 그 모습을 태연하게 보던 나는 생각보다 큰 덩치에 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희고 검은 한 쌍의 까마귀들이 나를 꼬라봤다.
하얀 쪽은 괜찮다. 저 불길 같은 마나의 정체는 이해가 갔으니까.
하늘에 있어야 할 구신의 마나의 태양이 어디로 갔나 했더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한 마리의 새가 되어서 자유라도 만끽하고 있던 모양이다.
그렇다면 검은 쪽은?
나는 날개를 접을 생각이 없는 검은 까마귀에게 눈을 돌렸다.
【까아아아악──!!!!】
이 놈은 조금 달랐다. 흰 까마귀가 나한테 별로 관심이 없는 듯 하면서도 일단 호의랄 걸 가진 듯 보이는 반면에, 검은 쪽은 적지 않은 분노를 느낄 수 있었다.
─푸드덕! 푸드더더덕!!
마치 분노조절장애에 걸린 까마귀가 주인놈에게 모이가 더럽게 맛없는데 니가 쳐먹어 보라는 듯이 성을 내는 것처럼 날개를 홰치는 새대가리였다.
‘위협? 아니, 항의인가.’
뭐가 그렇게나 불만인가 하는 생각에 그 놈에게 몸을 돌렸다.
검은 까마귀는 눈알부터 깃털 하나까지 싸그리 시꺼맸다.
까맣지 않은 건 부리가 유일했는데, 그 부리는 은색의 금속질 광택으로 빛나며 한쪽에 룬 문자의 ᚨ(Ansuz)가 새겨져 있었다.
“……뎃?”
그래서였다. 내가 그 놈의 정체를 눈치챈 건.
【까아악!! 까아아아악──!!!】
쐐애액─!!
검은색 까마귀는 누굴 닮았는지 거칠게 성질을 부리며 내게 달려들었다.
그건 꼭 무성영화에서 크리쳐에게 습격 당하는 순간의 연출 같았다. 화면이 전환되는 것처럼 내 의식은 눈 깜짝할 사이에 꿈에서 깨어났다.
─덜컥!
눈을 번뜩 뜨고 기상하려던 나는 허벅지에 걸린 막대를 툭 치고 말았다.
지렛대처럼 고개를 치켜든 은색의 섬광이 내 귓볼을 스쳤다.
싸아악….
최근에 날을 갈아주지도 않았는데 면도날보다 더 예리해진 창날은 내 머리카락을 살짝 잘라냈다. 몇 가닥의 구렛나룻이 심각한 탈모인이 수면 도중에 잃은 모근처럼 침대맡으로 쏟아졌다.
나는 창밖을 보고 새벽인 걸 확인하고, 멍하니 내 침대 위에 올라온 불청객을 집어들었다.
이름도 안 지어줬던 창이 저절로 가방에서 빠져나와서 내 몸 위에 올라탄 것이었다. 팔찌 상태로 변신시키는 마법도 저절로 풀려버린 듯 했다.
창대를 집어든 나는 그 꼴을 보다가 못 참고 헛웃음을 흘렸다.
“……이게 토이 스토리였으면 니는 진작에 우디한테 허리 꺾였겠다.”
참을성 모자란 새끼 같으니라고. 연기할 생각은 있냐?
그래 뭐, 쑥이랑 마늘이라도 사다 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