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615화 (614/1,009)

인기척이 없는 공터에는 벌레 울음 소리가 가득 찼다.

남들보다 일찍 부화한 벌레들은 줄창 울어대며 적막을 걷어내려는 듯 굴었다. 마치 인간이 오지 않는 이 공터가 그들의 오케스트라 연주장이라고 주장하는 것 같았다.

왜앵….

파리 한 마리가 꿈쩍도 않는 살수 대장을 알을 깔 만한 곳인지 보러 오기라도 한 듯 그의 귓볼에 앉아서 손을 비볐다.

그걸 지켜보던 나는 마나를 뭉쳐서 알까기처럼 쐈다.

─퍼석! 파리는 흔적도 없이 소멸했다.

알까기 대포에 휘말린 살수 대장의 귓볼이 살짝 터져나가며 피를 튀겼다. 그는 얼굴을 찡그리지도 않고 싸물었던 아가리를 열며 비웃음을 지었다.

“심문은 잘 못 하나 보군. 포로를 잡으면 일단 고문실로 데려가서 손톱부터 들춰야지.”

존나 꿀팁인걸. 하지만 자기 쪽에서 먼저 저런 제안을 하다니? 네놈, 그렇다는 건 마조로군?

당연히 나는 자신의 성 정체성을 호모나 게이로 규정하지 않기에 그의 이상성욕에 맞춰줄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어깨만 으쓱했다.

“나 같은 엘리트가 그런 짓을 하면 너무 남산의 부장들 같잖아.”

“남산? 어느 산을 말하지? 깡촌 놈이 생각하는 관직은 알아듣기가 어렵군.”

─퉷. 피 섞인 침을 뱉은 살수 대장이 실실대며 도발했다.

내가 빡쳐서 지를 죽이게 할 생각인가? 하지만 아무리 깝쳐봤자 넌 계왕신 손바닥 위의 사이어인인일 뿐이란다.

“어디긴. 니 군부대가 있는 산이지, 씹새야. 군바리가 고문에 간첩질이나 하면서 자랑스러워 해? 영 보기 좆 같은데 그래.”

“……우리더러 군인이라. 넘겨짚고 싶거든 심문부터 제대로 하고 나서 하시지.”

살수 대장은 병신처럼 당황하거나 목소리를 떨며 부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실실 쪼개며 말하다가 슥 정색하며 무표정이 되면 티가 날 뿐이다.

─툭툭. 나는 살수 대장의 칼집으로 놈의 뺨을 치며 말했다.

“네가 좆밥인데 비해서 장비는 꽤 좋더만. 군기 바짝 든 부하들이랑 다들 똑같은 검술까지 쓰면서 어딜 야부리를 털어? 뒤질라고.”

살수 대장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장님이나 일반인이 아니면 다 알아볼 수준인데 구라를 치는 꼴이 아주 추한걸?

귀찮아서 하나하나 말하진 않겠지만, 내 공격을 잠시나마 막을 만큼 단단한 갑옷과 그럴싸한 매직 아이템들이 어디 그리 흔할까.

그런 만큼 전후사정을 추리하는 것은 케이크를 먹는 것처럼 쉬웠다.

“너희들이 나랑 이 나라를 얕본 거랑은 별개로, 네 조국이 이 작전에 거는 기대와 가치는 높겠지. 위장이나 장비에 들인 품을 보면 돈 좀 깨졌겠다?”

이 살수들은 분명 포켓몬으로 치면 피죤투 정도 되는 수준이다.

레벨이 높아서 약하지는 않겠지만 더 고렙에다 전설의 포켓몬이기까지 한 이 몸, 노루기가스에겐 쨉도 안 된다는 말이지.

하지만 자기 포켓몬이 치코리타/부스터/피죤투 같은 노답 트리오라도, 체육관 관장에게 도전하기 전에는 상점에서 상처약이랑 기력의 조각을 잔뜩 사 가는 게 삶의 이치다.

이 피죤투 떼거리는 노루기가스를 어떻게 하기엔 한참 모자랐지만, 이 새끼를 파견보낸 놈들이 그런 결과를 바란 건 아니었을 것이다.

나름 철저하게 준비한다고 한 게 이 꼴이겠지.

‘하긴, 누가 마나도 느껴지지 않는 동물들이 다 자동 운영 CCTV라고 상상이나 했겠어.’

설마 이 놈 상관도 쪼렙 체육관으로 보고 대충 들이박은 곳에서 전설의 포켓몬이 기가기가 훙훙 낑깡낑깡 거면서 파괴광선을 쏴댈 줄 알았겠는가.

아무튼 표정을 봤으니 됐다. 나는 살수 대장의 뺨을 후려갈겼다.

─쩍!!

이빨이 팝콘처럼 쏟아졌다. 살수 대장은 입에서 뽑혀나온 이빨을 멍하니 보다가 물었다.

“……왜?”

“짬내 나서, 새끼야.”

얼이 빠진 그를 내려다보며 나는 통탄에 잠겼다.

“굳건이 맙소사. 군바리 놈이 민간인을 상대로 폭력을 쓰다니, 내가 군대에 있을 적에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건만. 나라가 대체 어떻게 되려고 이러는지…….”

변해가는 세상에 따라가기에 28살은 좀 나이가 많은 모양이었다.

“선인장에 꽃이 피었군.”

되도 않는 소리를 하며 주먹을 말아쥐었다.

나 강북호는 군바리 인식이 OECD 국가 최하위 수준을 내달리는 대한민국의 사나이. 군바리 학대파로서의 능력치는 미-개한 이세계랜드 야만인들 못지 않다고 자부한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스런 아내들이 잠들어 있던 민가를 짬내 나는 것들이 관음하게 뒀던 굴욕…… 보고 있었던 놈들은 절대로 용서하지 않아요!

─구쟈악!

짬내를 풍기는 살수 대장은 어안이 벙벙한 채로 명치를 얻어맞자 눈이 돌아가면서 기절했다. 꺅! 손에 짬 냄새 묻겠어!

“일단 묶어둔다?”

“어. 부탁해.”

나는 다나에게 포박을 맡기고, 〈정화(Clean)〉 마법으로 손을 닦으면서 일어섰다.

“프랑. 쥐약 먹고 자살한 새끼들은 어디야?”

“이쪽. 발퀴리에가 제압한 애들.”

프랑이 벽 쪽을 가리켰다. 굴러다니던 놈들 중 입 주변에 피 섞인 거품을 물고 있는 놈들이 있다. 쥐새끼에게 어울리는 모습이군. 구분하기는 쉽네.

“셋이나 뒤졌어? 심문하기 어렵진 않겠구만.”

프랑이 잡은 놈들은 소리치지 못하게 입을 막다 운 좋게 자살까지 막았는데, 정작 발퀴리에들한테 기절한 놈들은 뻗기 전에 독을 마신 모양이었다.

“ᚨ(Ansuz)”

아침해가 스멀스멀 기어올락 말락 하는 공터에 영혼이 솟아났다.

그 놈은 지금껏 심문한 영혼들처럼 사태파악이 안 된다는 듯 멍청하게 입만 벌리고 있었다. 물론 그건 마법을 걸어야 하는 나한테는 좋은 일이었다.

마나가 어둠을 잠시 물리쳤다가 사라지자, 우리 앞에는 ARS 자동응답머신이 된 사망자의 영혼만 남았다. 이젠 코 푸는 것보다 쉽구만.

“관등성명.”

─진련국 호국위연대! 보위(保衛)! 하오취안선!

“뎃?”

뭐지 시발. 또 번역기가 고장났나? 나는 프랑을 돌아봤다가 그녀는 못 들었을 거란 사실에 생각이 미쳐서 다시 대굴빡을 원위치시켰다.

“알아듣게 설명해. 하나하나 다.”

─진련국은 서방에서 말하는 바이츠니아입니다! 보위는 제 계급이고, 하오취안선이 이름입니다!

“……그래? 이름이 참 개성이 넘치는구나?”

사람 이름이 어떻게 하오취야 씨발.

나는 살짝 머리가 아파오는 걸 느끼다가, 일단 이 씹덕 만화의 설정보다 알아듣기 힘든 관등성명부터 해체하기로 했다.

“그래, 하오취. 오크처럼 취익 췩 거릴 것 같은 이름이군. 바이츠니아가 어디 있는 나라지?”

─서방에서 말하는 ‘키타이’의 중심, 중원입니다! 진련국은 동방의 대륙에서 가장 번성한 대국 중의 대국으로──

“그만. 누가 느그 나라 국뽕 트레일러 틀래?”

됐다, 바이츠니아가 어딘지 알 게 뭐람. 메모할 노트나 꺼내자.

“네 친구들 인적사항부터 불어 봐. 느그 대빵은 더 낱낱이, 부랄만한 치핵이 달려서 누워서는 못 잔다던가 하는 약점까지 전부 다 불어.”

─예, 알겠습니다!! 아, 저희 대장님의 성함은 부잉썬입니다!!

“씨팔럼들이 이름 한 번 존나 친근하네.”

이 새끼들 심문하려다 이름이 떠올라서 빵 터질 것 같잖아.

무협지처럼 한자식 음독으로 해석해 줄 것이지, 부잉썬이 뭐야 부잉썬이. 키타이 말이 하나부터 열까지 위썅썅따오 거릴 때부터 알아봐야 했는데.

혀를 차던 나는 인적사항을 받아적고서 노트를 넘겼다.

“그래, 하오취야. 우리 집엔 왜 왔니? 꽃 찾으러 온 거면 우리보단 느그들 이웃인 엘프 오랑캐들이 더 잘 알 텐데.”

아닌 밤 중에 홍두깨라고, 내가 살수들에게 노려질 이유가 있나?

내가 외국에 빈대 붙어서 탈아입구 성공가도를 달린다며 암살자를 보낸 거였으면 존나 개빡칠 것 같았다는 생각으로 왔었는데, 훔쳐 들어본 내용은 그게 아니었다.

‘뭔가 찾는 물건이 있댔지.’

그리고 바이츠니아라는 나라에게 상당히 중요한 물건일 것이다.

생판 남남인 나를 죽이고 빼앗아 갈 생각을 할 만큼 말이다.

그렇게 의문을 품고 한 질문에, 하오취는 하늘 같은 선임에게 대답하는 것처럼 빠릿빠릿하게 지 머릿속의 정보를 술술 불어냈다.

─저희 호국위연대의 이번 임무는, 목표에게서 엘프의 성물(聖物)을 회수하는 것입니다!

“……엘프의 성물?”

엘프랑 붙어먹니 어쩌니 하던데, 그런 의미에서 한 말이었나. 나는 눈쌀을 찌푸렸다.

“짐작 가는 게 없지는 않군. 근데 왜 니들이 그 성물을 가져가려고 들지? 니들 엘프랑 친하냐?”

─아닙니다! 타타르니아의 귀 긴 오랑캐들은 제 조국에게는 정벌 대상일 뿐입니다!

“적이니까 오히려 필요하다는 거군.”

성유물이고 지랄이고 지들이 손에 넣으면 유목 엘프들을 엿 먹이기 좋다는 발상인가.

적국에서 껌뻑 죽을 만큼 애지중지하는 성물?

아, 이건 못 참지. 당연히 빼돌리는 게 맞았다. 이건 오히려 안 빼돌리는 게 업무 태만이지. 그냥 냅뒀다가 외교부장관이 곤장을 맞아도 할 말 없을 것이다.

─저는 정확한 이유까지는 모르겠습니다! 따로 상관으로부터 하달받은 내용은 없습니다!

“기대도 안 했어, 이등병 말단 새끼야. 그나저나 어떻게 내가 그런 물건을 갖고 있다는 걸 알았지? 어디 소문을 내고 다닌 것도 아닌데.”

나는 이마를 긁적이며 고개를 모로 꼬았다.

우리는 사르가디스로 오기까지 늦장을 부렸다.

티르시의 귀족 취임식도 있었고, 로마니아에도 들렸다.

배가 많이 부푼 프리모르의 회임 상태를 보고, 출산일이 가까운 듯 하다길래 순산을 기도해주고 왔던가. 어르신의 멘탈을 위해서라도 건강하게 잘 낳아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무튼, 그런 연유로 우리가 나르메르-나일에서 볼 일을 다 보고 나서 브리타니아로 돌아오기까지 대충 1달 가량이 시간 낭비가 있던 셈이다.

그러니까 이 새끼들한테도 이동할 시간이 약간 있었겠지.

하지만 거리 상으론 이 놈들이 나랑 거의 같은 타이밍에 본국에서 나와야 하지 않나? 내가 언제 뭐를 가지고 어디로 가는지 어떻게 알고 쫓아왔단 말인가?

그렇게 묻자 하오취는 재깍재깍 대답했다.

─북벌 중에 사로잡은 엘프에게서 들었습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기에 바로 저희 호국위연대 4중대가 출발하여 브리타니아까지 왔습니다!

“엘프한테서? 그랬구만.”

나는 그런 대답을 듣고 생각하길 관뒀다.

뭔진 몰라도 방법이 있든가 하겠지. 마법 같은 게 얽혔을 게 뻔했다. 그리고 그런 이상에는 어떤 방법인지 생각해봤자 시간 낭비다.

추리의 기반이 되는 지식이나 증거가 없어서는 결론을 내 봤자 망상이나 다를 바 없을 것이었다.

“그러면 저 먼 곳에서 배를 타고 온 거냐?”

─아닙니다! 은밀한 임무이며 해양 몬스터들의 위험도 있었기에 황야를 건넜습니다! 최대한 빠른 길을 타고 왔기에 일부 낙오자도 있었습니다!

“왕복 코스가 있겠군. 읊어 봐, 참고하게.”

이번에도 필기 타임. 나는 빠르게 적어내렸다.

살수 대장 부잉썬의 말마따나 동틀녘이 가깝다. 시민들이 이 참상을 보고서 기겁하는 꼴은 피하고 싶었다.

“……노르, 지금 영혼한테 길을 묻는 거야?”

물론, 왜 갔다 오는 길 따위를 묻느냐는 듯 사백안으로 변한 프랑의 시선은 슬쩍 회피했다.

아니 그, 참고해 둘 수는 있는 거 아니겠어? 꼭 이 루트대로 동방에 가겠다는 건 아니고.

나는 그렇게 시치미를 떼면서도, 손으로는 하오취의 말을 일사분란하게 받아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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