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618화 (617/1,009)

해명과 설득에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왜냐고? 끝까지 오해를 못 풀었거든.

“영웅은 색을 밝히는 법이죠! 그래도 현관 문은 과연 조심하시는 게 좋겠네요! 나쁜 소문이 도는 건 본의가 아니시겠죠?”

“씨발, 됐슴다. 걍 그런 걸로 합시다.”

나는 옷을 챙겨입고, 어쩐지 아무 감정도 읽을 수 없는 네페르티티를 아내들에게 맡기고서 손님 2명을 거실로 안내했다.

“여러분을 맞이하기엔 좀 부족한 장소입니다만, 편히 계십시오.”

“아뇨, 아뇨! 단란해서 좋기만 한 걸요!”

비아냥이 아니라 진심인 게 대단하군

일단 차 정도는 좋은 걸로 내놓고 말의 물꼬를 틀었다. 신변잡기, 인사치레, 그밖의 서론을 길게 끌다가 드디어 중요한 이야기에 들어갔다.

“여기, 완성된 엘릭서에요!”

그렇게 말하며 내놓은 것은 고풍스러운 병에 든 포션이었다.

“이건 사업 파트너를 위한 제 선물이에요! 부디 받아주시길!”

“감사합니다. 어째 셀레나 양과는 엘릭서를 주고 받을 일이 많네요.”

“그러게나 말이에요! 아─ 하하하핫!!”

여전히 웃음 소리가 우렁차시구만. 우리 집 무너지면 재건축 각이냐? 돈으로 주면 이사갈 때 보태 쓸 텐데, 차라리 무너트려 주지.

‘그런데, 꼴랑 1병?’

나는 엘릭서를 챙기면서─같이 있어주던 다나가 내 대신 챙겨준 거지만─ 고개를 모로 꼬았다.

그야 이걸로도 내 오른팔 정도는 붙긴 할 거다. 봉인 해제 절차를 밟아야 해서 며칠 걸리겠지만, 그거야 마법사 길드에 돈 주고 맡기면 땡이니까.

그리고, 솔직히 엘릭서만 배달하고 가버릴 거면 시간이 금보다 귀중할 셀레나가 몸소 왔겠냐고. 난 턱을 쓰다듬다가 물었다.

“제작 과정에서 뭔가 문제가 있었나 보군요.”

“역시 척 하면 척이시네요. 네, 큰 소리로 말할 내용은 못 되지만…… 효능을 구성하는 데 쓰이는 재료를 밝혀내긴 했는데, 구하기가 어려워서요.”

셀레나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현관에서 아내들 시중을 받으며 탈피하는 놈을 보면서도 웃던 아가씨가 이렇게 한숨을 쉰다고? 또 뭔 문제길래 그러지?

“재료가 많이 희귀합니까?”

“가격은 별 문제가 아니에요. 하지만 재배하기가 어려운 약초도 있고, 각국의 여기저기에서 나는 재료들이 필요해요. 최대 문제는 용액 쪽이구요.”

“용액이요?”

“마나가 깃든 물이에요. 그것도 불순물이 절대 없어야 하고요.”

하아….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는 셀레나.

“그런데 제가 알아본 바로는, 그런 물이 샘솟는 장소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어요. 찾았다 싶은 곳이 하필이면 원래 엘릭서를 생산하던 가문이 떡 하니 알을 박은 곳이었구요.”

“아마 그래서 더 엘릭서의 복제가 불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같이 따라온 남자가 말했다. 셀레나는 그를 슥 쳐다보고 말했다.

“정말이에요. 불순물 없는 물도 희귀한데, 그에 더불어서 마나까지 깃들어야 한다뇨? 대체 그런 걸 어디서 상용화 가능할 만큼 구해야 할지 막막…… 왜 그러세요?”

말하다 말고 약을 잘못 먹었나~ 하며 쳐다보는 셀레나.

그럴 만도 한 게, 그녀 딴에는 심각하단 얘기를 하고 있구만 정작 듣는 내가 실실 쪼개고 있었기 때문이다. 돈 들인 로얄티 사업이 좆망해서 미친 건가 하는 시선들이시군.

“마나가 깃든 액체라고 하셨죠?”

마침 딱 맞는 기술이 있는데, 이걸 좀 연구해서 상용화하면 되겠는걸?

내가 하는 건 귀찮고, 우리 셀레나 아가씨가 돈 뿌려가며 사람 좀 고용해 줄래요? 계약 단계에서 그런 조정은 미리 다 해 뒀잖슴?

“맙소사! 역시 제가 직접 오길 잘 했어요!”

내가 그렇게 얘기하자 그녀의 얼굴에 꽃이 피는 듯 했다.

“저희가 1달 이상 질질 끌던 고민을 단칼에 날려주셨네요! 이래서 믿을 수 있는 사업 파트너라는 건 천금만금보다 소중한 거에요!”

“흐흐, 제가 좀 잘나긴 했죠. 이번엔 운이 좋은 덕도 있고요.”

피라미드에서 챙겨온 분수를 해석한 글이야 걍 옮겨 적으면 끝이다.

이걸 건네주면 알아서 하든가 하겠지. 셀레나는 행복하게 웃다가도 살짝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혹시 분수 자체를 받을 수 없을까요?”

“이미 늦었는데요, 학계에 보내버려서. 마법사를 고용하지 않아도 적당한 물건에 〈부여〉하면 될 일이고, 부디 투자비용인 셈 쳐 주십셔.”

“별 수 없네요. 양산하려면 거쳐야 할 절차기도 하니까요.”

셀레나는 알겠다면서 집사에게 이것저것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흐음, 이쯤 되니까 내가 타오르는 태양의 나라, 나르메르-나일까지 출장을 다녀온 것에도 어떠한 필연적인 운명이 있었던 건 아닐까 싶군.

“이것이 버닝썬즈 게이트의 선택인가. 엘프 사이 콩가루…….”

“네?”

“아뇨, 암것도 아님미다. 혹시 그밖에도 문제가 있습니까?”

“없지는 않지만, 돈으로 해결 가능한 문제에요!”

내가 쌉진지한 와꾸로 묻자 셀레나는 계속해서 못난 모습만 보이기는 싫은 듯 포부 있게 외쳤다. 근데 그 시간 낭비가 바로 제 손해로 이어지는 건 알고 그러시는 거 맞지?

“들려주시겠습니까? 아낄 수 있는 돈과 시간은 되도록 애껴야죠.”

“당장 큰 문제는 아니에요. 극복할 방법을 검토 중이죠.”

“지금 장부에 빵꾸가 나고 있다먼 그것도 문제 아니겠습니까. 미래를 팔아서 현재의 수익을 사는 게 아니라, 현재를 팔아서 미래의 성공을 사는 게 자본운영의 기본이라고 하잖아요?”

“오오, 멋진 철학이십니다!! 제가 오늘 좋은 걸 배워가는군요.”

어느 주식 유튜브 같은 곳에서 주워들은 얘기를 읊자, 그녀와 같이 온 풍채 좋은─나쁘게 말하면 살이 찐─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아까부터 신경 쓰였는데…… 댁은 뉘셔?

“아, 이거 제 소개가 늦었군요. 전 운송 길드의 길드장인 귀니우스 포르베우스라고 합니다.”

“아아, 반갑습니다. 노르드입니다.”

이건 또 거물이군. 지부장도 아니고 진짜 길드 대표야?

엘릭서 건으로 협력 중인 사람인가? 자기 소개를 한 운송 길드장은 덤덤하게 손수건으로 땀을 닦아내며 말했다.

“말씀을 주셨으니 하는 말입니다만…… 각국의 희귀소재를 안전하게 옮기려면 운송 중에 생기는 사고를 최대한 줄여야 하는 실정입니다.”

“정말이지 그렇습니다. 문외한인 제가 봐도 알 것 같군요.”

씨발, 아직도 생각나네. 내 논문을 태운 마차가 도둑놈들한테 닌자당했던 날의 충격은 마치 어제 일어난 것처럼 생생하다.

운송 길드장은 손수건을 주머니에 넣었다.

“워낙 비싼 재료고, 또 신선도도 중요한 만큼 제 길드의 우량 상품인 와이번 라이더들에게 운송을 맡길 예정이었습니다.”

“와이번을요? 말이 아니구요?”

저번에 우리 어르신도 썼던 와이번-쿠팡맨이 이 사람 길드에서 나온 거였나? 근데 새삼 신기하네. 그런 게 일개 길드에서 감당이 되나?

“사실 처음에는 우여곡절이 많긴 했죠.”

당연히 이윤 창출은 되겠지만, 그 과정이 순탄하지는 않았는지 운송 길드장은 쓴웃음을 지었다. 난 그 미소에 쓴웃음을 짓다가 호기심에 물었다.

“그런데 어쩌다 와이번 라이더들을 운송에 쓰실 생각을 하셨습니까? 보통 기사단 같은 곳에서나 볼 법한 게 와이번 라이더들일 텐데요.”

“지인이 ‘말을 잔뜩 살 돈이면 조금 더 보태서 군마를 사고 말지’라더군요. 듣고 보니 그런 것도 같더군요. 그래서 마음을 바꿨습죠.”

않이 시발, 아깐 와이번이라매요. 웬 군마?

내가 빤히 쳐다보자 그는 다시 손수건으로 땀을 닦았다.

“군마를 사들일 돈이면 좀 더 보태서 와이번을 사는 게 낫다길래…….”

옘병, 사람 사는 데 다 똑같네.

이 햄 휴먼 괜찮은 거 맞아? 괜히 협력했다가 내 황금알 낳는 거위가 북경 오리 한 상 차림이 되면 빡쳐서 반 년은 꿈에 나올 것 같은데?

내가 미심쩍게 자길 쳐다보자 셀레나는 당황한 듯 설명했다.

“운송 길드를 빼고 운행했다간 배보다 배꼽이 더 커져요! 완성품은 저희 본점에서 판매할 테니 큰 문제는 안 될 거구요!”

……뭐, 그렇다면야.

나는 전문가의 일처리를 의심하기보단 그냥 알겠다고 하고 넘어갔다.

만약 이 양반이 똥볼을 차대도 셀레나가 수습한다고 하니, 나야 믿고 맡기면 될 일 아닌가. 아~ 돈만 갖다 바치라고~ 로얄티로 꿀 빨고 싶다고~.

“아무튼 와이번 라이더들은 우수한 실적을 내는 한편 운송 사고 비율도 지극히 낮은, 아주 우수한 운반책입니다. 엘릭서 재료를 옮기는 데 있어서는 그들만한 운반책이 없을 겁니다.”

그런데 좀 전에는 옮길 예정이었습니다~ 라매?

과거형이잖아. 뭐 트러블이 생긴 모양이군.

내가 눈치를 주자 그는 띄엄띄엄 말했다.

“사실은 요즘 와이번들의 건강 상태가 영 좋지 않습니다. 라이더들의 얘기를 들어보니, 사고율과 집중력, 체력 모두 떨어지고만 있다더군요.”

“모든 와이번들이 다 말입니까?”

“부끄럽습니다만…… 예. 그렇습니다.”

그건 확실히 문제다. 당장 불순물 농도 정도로 성공 여부가 갈리는 게 엘릭서 제작인데, 재료의 신선도가 낮아지는 게 보통 문제인가?

신선도 하락을 감수하고 마차를 쓰려고 해도 또 문제다.

‘존나게 비싼 희귀소재를 정기적으로 옮겨대는 마차?’

뭐지? 도둑 놈들 맛집인가? 이세계식 트럭 장사라도 시작하려고?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진 그딴 꼴 못 보지.

그럼 마차를 지키려고 호위를 늘린다?

거따 쓴 돈은 조상님이 내 주냐? 중간유통 절차에서 가격이 뻥튀기 되는 거야 우유 한 팩이 3천원 하는 나라에서 사는 우리 K-피플은 다 아는 사실이라고.

나는 생각을 정리하면서 말했다.

“와이번들이 묵는 막사에 돌림병이라도 도는 건 아닐까요?”

“다방면에 걸쳐서 조사했지만 그건 아니더군요. 그래서 엘릭서 재료 운반에는 새 와이번이나 막사 이동 등등의 다른 수단을 강구하고 있습니다.”

그렇군. 그래서 셀레나가 굳이 꺼내지 않으려고 한 거였어.

내가 잘났다고는 해도 설마 와이번의 건강 악화까지 어떻게 해 줄 거라곤 생각하기 힘들었겠지. 그녀 말대로 시간과 돈으로 해결할 문제기도 하고.

‘하지만 뭘 모르는군.’

나 강북호는 수의대생 겸 드루이드다.

애견인들 사이에서 돌던 얘기가 있다. 자기 강아지가 사람 말을 할 수 있게 된다면, 다른 것보다 ‘쮸인님 나 아파요’라는 말이 듣고 싶다던가.

‘그러면 내가 대신 어디 아픈 곳이라도 있는지 물어봐 주면 되겠네?’

와이번 본인들한테 말이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픽 웃었고, 아까와 같은 웃음에 셀레나와 운송 길드장도 은근 기대하는 듯 했다.

그런데 너무 그렇게 기대해도 곤란한데. 와이번 새끼들도 왜 아픈지 모를 수도 있다고.

‘음, 그보다…… 와이번이라.’

와이번.

몬스터의 일종. 플라잉-도마뱀인 언럭키 드래곤.

아니, 판타지 소설에서 허구헌 날 심장 뺏기고 뼈, 가죽, 눈깔, 불알까지 싹싹 긁어서 재활용되는 드래곤보단 나은가?

와이번. 와이번…….

‘……좋은데?’

예로부터 날개 아바타와 플라잉 라이딩 펫은 한국인의 본능이었다.

하늘을 나는 탈것. 황야를 건너는 데 딱이잖아? 그 뭐냐, 옛말에도 하늘을 지배하는 자가 전장을 지배한다 했다고.

비행기의 장점이 뭐겠는가.

험준한 산맥, 바다, 강과 황야, 그 외의 ETC…… 그런 하늘 아래의 위험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점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저 머나먼 황야를 하늘을 날면서 유유자적 건널 수 있다는 건 상당한 장점 아닐까?

“혹시 그 와이번들의 막사가 좀 멉니까?”

“아니오. 각국마다 하나씩 있습니다. 현재는 이 브리타니아에 대부분의 와이번이 머물고 있죠.”

그거 마침 잘 됐네. 그 정도면 우리 아내님들도 절대 못 보낸다고 하지는 않겠어.

당연히 따라오긴 하겠지만, 갈 수라도 있는 게 어디인가?

“크흠. 또 어디 다쳤을 때를 대비해서 엘릭서를 비축해 두고 싶은데. 괜찮지?”

내가 그렇게 의견을 제시하자, 한 발 물러서서 듣고 있던 다나는 못난 남편의 얼굴을 뚫어지도록 바라보다가 얼스터의 말로 말했다.

[허락 없이 애완동물 같은 거 사오면 뒤진다.]

“……테에엥.”

왜지. 우리 아버지가 새 차를 사려다 혼나시던 게 생각나네.

그치만 너네 남편, 아직 자가용도 없잖아. 용 한 마리 정도는 사도 되지 않을까?

내가 똥도 치우고, 산책도 꼬박꼬박 갈게.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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