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619화 (618/1,009)

***

허락보다 용서가 쉽다.

유부남이 뭔가를 살 때 자주 듣는 명언이었다. 아내에게 허락 받고 뭔가를 사는 것보다는 일단 사버린 뒤에 용서받는 게 쉽다는 얘기던가.

‘설마 내가 이 말에 공감하는 날이 올 줄이야.’

와이번 축사에 도착한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아닌 척 하면서도 내가 하고 싶은 건 다 하게 해 주던 우리 아내들이다. 그런데 다른 것도 아니고 이런 가까운 출장 정도로 토라질 줄은 몰랐다.

특히 다나는 밀려 있던 연구소 일 때문에 오지 못하자 무척 아쉬운 듯 했다. 참고로 그녀 이외의 아내들은 전부 따라왔다. 볼 일 < 내 걱정인 모양.

“크네.”

네페르티티의 말이었다. 여전히 말수가 적었던 그녀는 울타리 건너편에 누워 있는 와이번을 신기한 듯 구경하고 있었다.

그러다 나랑 눈이 마주치자 얼른 눈을 피했다. 왜 저러는가 몰라.

축사라는 말이 우습게도 와이번들이 있는 곳은 거의 목장이었다. 넓은 풀밭에 비바람을 피할 수 있게 축사가 깔렸다.

앵간한 실딱이 모험가보다 잘 사는데?

‘그런데, 울타리?’

하늘을 나는 녀석들한테 이런 지상의 울타리가 의미가 있나? 날아가면 어떡해. 억 소리가 나오는 값비싼 몸인데, 날개를 묶어둔 정도로 되나?

“울타리는 영역을 구분짓는 역할을 하죠. 말을 잘 듣는 애들이라서 이 정도면 충분해요.”

내가 신경이 쓰여서 물어봤더니 와이번 막사의 사육실장은 웃음을 터트렸다. 얼굴은 평범했는데, 그에 비해 가슴은 엄청 커다란 여성이었다.

혼자 왔다면 솔직히 눈길이 안 가도록 하는 데 노력을 기울여야겠지만, 옆에 그녀보다 더 빵빵한 프랑이 있어서 별로 흥미는 솟지 않았다. 내가 참 여복이 넘치긴 해.

“……쳇.”

은근히 그녀의 가슴을 흘기던 티르시는 웃옷을 여며가며 물었다.

“와이번들이 울타리를 넘나들지는 않나요?”

“주인을 두고 가 버릴 정도라면 애초에 기승용 와이번이 되지 못해요. 라이더와 와이번은 신뢰로 묶인 관계니까요. 주인을 보고 울타리를 넘어가서 안기는 일은 있지만요.”

와이번에게 살코기 한 덩이를 던져주며 말하는 그녀.

“갸우! (냠!)”

와이번은 호쾌하게 몸을 뒤틀면서 받아먹었다. 베로니카가 돌고래 쇼라도 구경하듯 박수를 치는 모습이 사랑스러워서 미소가 절로 나왔다.

“저기, 저기! 쓰다듬어 봐도 되나요!”

동물을 좋아하는 라리루라는 벌써 흥분해갖고서 방방 뛰었다.

거수까지 하는 라리루라의 열의에, 사육실장은 즐거운 듯 말했다.

“낯선 사람의 터치를 허락하는 아이는 많지만, 귀중한 손님이라고 들었으니 절대 난폭하게 안 굴 법한 녀석한테로 안내해 드릴게요. 이쪽이에요.”

“정말요?! 선배, 얼른 가 봐요!”

“잡아 끌지 마. 옷 늘어날라.”

라리루라에게 끌려가듯 간 곳은 축사 안에서 또 별도로 분리된 곳이었다. 사육실장은 그 중에서도 덩치가 크고 하품을 하던 녀석을 가리켰다.

“암컷들이 쉬는 곳이에요. 여기 이 에뉴란 애가 제일 얌전하죠. 쓰다듬어 보실래요?”

“네!”

신이 난 라리루라가 조심조심 다가가 그 녀석의 등을 쓰다듬었다.

“입 주변을 만지시는 건 괜찮지만, 올라타시면 안 되요! 주인이 아닌 사람이 타는 걸 무척 싫어하니까, 떨어트려지실 수도 있어요!”

“조심할게요~!”

기운차게 대답한 라리루라가 턱을 간지럽히자, 와이번은 울음 소리 한 번 없이 한쪽 눈을 살짜쿵 떴다가 다시 감았다. 얌전하긴 하네.

하지만 여기서 가장 얌전한 건 쟤가 아니었다.

와이번 여군 휴게실 구석에서, 웅크린 채 낯선 사람들에게 눈길도 주지 않는 녀석이 있었다. 따로 분리된 축사의 밥그릇에는 손도 안 댄 것 같았다.

“그 애 이름은 샤틀루카에요. 얼마 전에 주인을 잃었죠.”

내가 바라보는 걸 눈치챈 사육실장이 말했다.

“주인을요?”

“추락사였대요. 공중을 나는 몬스터에게 노려져서요.”

“아아.”

내가 이해하고 끄덕거리자 그녀는 안쓰러운 듯 중얼거렸다.

“와이번들은 알에서 태어나기도 전부터 주인의 품에서 자라나죠. 그렇게 교감을 거듭한 끝에야 제 등에 사람을 태우는 걸 허락하는 아이들이구요.”

“그렇습니까. 정이 많은 녀석이군요. 눈만 봐도 알겠습니다.”

동물도 표정이 있듯, 이 녀석도 눈이 그렁그렁한 게 죽은 주인을 그리워 하는 모양이다. 사육실장은 딱하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맞아요. 그런 녀석이 평생 같이 살아온 주인을 잃었으니, 끼니도 거르고 있어요. 위로를 받아도 별 반응이 없구요. 시간만이 해결해 줄 문제겠죠.”

“그래서 별도로 격리돼 있군요.”

나는 그 녀석이 남긴 밥을 확인했다. 익힌 고기인 듯 했다.

진짜 실딱이보다 잘 사네. 하긴 지구에서도 몸값 비싼 명마는 냉동 정자만 수억씩 했지.

“사료는 어떤 재료를 쓰죠?”

“주로 돼지고기랑 소고기를 섞어요. 매일 같은 퀄리티를 유지하죠.”

그렇구만. 와이번들의 눈치를 보면 먹기 싫은 건 아닌 듯 한데.

“그치만 짬이 아무리 맛있어봤자 짬밥이지.”

“네? 뭔가 말하셨나요?”

사육실장이 내 혼잣말을 듣고서 되물었다.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개랑 고양이한테는 간식이 필요하단 얘깁니다.”

그럼 본격적인 설문을 시작하자.

내가 와이번과 네이티브처럼 토킹하는 걸 보면 또 자지러지며 난리를 피울 게 뻔했기에, 사육실장은 아내들이 대인 마크를 하도록 부탁했다.

나도 못 빠져나오는 포위망이니 못해도 1시간은 벌어 주겠지.

“갸갸우 샤악? (뭐 힘든 일 없냐?)”

그렇게 시간을 벌고 와이번들과 상담 시작.

암컷 수컷에게 의견을 들어가며 결론을 내렸다. 원인은 간단했다. 몬스터에 가까운 와이번들인데 의외로 보통 동물과 비슷한 이유여서 놀라긴 했진말 말이다.

나는 함께 왔던 운송 길드 길드장을 호출했다.

“길드장 님! 잠시만 와 주시겠습니까!”

“예, 노르드 님!”

내가 손짓하자 그 살찐 매── 아니, 타조처럼 달려왔다. 천천히 오셔. 누가 쫓아온대?

“허억, 허억……. 무슨 일이십니까?”

“와이번들한테 간식 같은 걸 챙겨주십쇼. 종류를 자주 바꾸는 게 낫겠습니다. 이빨도 튼튼해 뵈던데, 적당히 생뼈 같은 것도 주시고요. 아, 하지만 삶은 뼈는 안 됩니다.”

혹시 모르지만 닭뼈처럼 날카롭게 부러질 수도 있잖은가.

설마 와이번 씩이나 되는 몬스터의 위장 가죽이 닭뼈에 찢어지기는 하겠냐만, 군마보다 더 값비싼 놈들이 죽기라도 하면 큰일이고.

운송 길드 길드장은 곤혹스럽다는 듯 말했다.

“특식이라면 자주 챙겨주긴 합니다만……”

“기념일 같을 때 말고는 맨날 같은 종류로 주신다고 들었습니다. 밥이 1년 내내 똑같은 메뉴로만 나왔다가는 충성심 높은 군인들도 사기가 뚝 떨어질 걸요.”

“타당한 말씀입니다. 식사는 중요하죠.”

돈과 시간을 발라서 키운 뱃살을 출렁대며 깊이 수긍하는 운송 길드장이었다.

이걸 원큐에 공감대 형성을 성공해 버리네. 역시 남자가 여자보다 공감능력이 딸린다는 건 구라가 아닐까? 우리 수컷들은 제육, 돈까스, 국밥이라는 칼라로 연결돼 있다고.

당연히 이게 모든 문제의 원인은 아니다.

‘대충 훑어보니까 주된 원인은 스트레스더만.’

살짝 대화해 본 바로는 그랬다.

배우다 만 의학만큼 위험한 것도 없지만, 이런 문제 정도라면 내 선에서 해결이 가능할 듯 했다. 말이 통한다는 게 존나 대단하긴 해.

“식량사정부터 개량해 보십시다. 솔직히 얘네 몸값이 일반 병사들보다 더 높잖아요? 돈을 써서라도 문제를 호전시킬 수 있다면 바라는 바시죠?”

“물론입니다. 야생 와이번들이 잘 먹는 것들로 알아보죠. 마법사 길드나 어디 한가한 몬스터 학자들한테 연통 좀 돌리면 금방 해결될 겁니다.”

운송 길드장은 곧바로 내 제안을 승낙했다.

CEO를 불러놓고 말을 흘려들을 만큼 대갈텅텅 사업가는 아닌 모양이다. 간만에 말이 통하는 분을 만나니 기분이 좋네요.

그럼 남은 문제들도 후딱 해결해버리고, 와이번 1마리라도 빌릴 수 있나 물어봐야겠다.

***

“와이번 라이더 분들을 좀 불러주시겠습니까?”

내가 그렇게 말하자 운송 길드장은 반나절만에 준비를 마쳐줬다.

그 일솜씨를 보면 이 사람 믿을 수 있나~ 하고 고민했던 게 바보 같았다. 능력 있는 사람은 맞군. 그러니까 운송 길드의 대빵을 감당하는 거겠지만.

“……근데 왜 프랑하고 네페르티티야?”

따라오는 면면이 좀 의외여서 질문하는 나.

프랑은 네페르티티를 쳐다봤다. 그래서 그녀는 눈을 피하며 말했다.

“……호위 의뢰.”

“호위? 저를 말입니까?”

“응. 고용주는 이 사람.”

생각보다 공손하게 프랑을 가리키는 네페르티티. 난폭하기로 유명한 세크메트 길드의 모험가들답지 않은 태도였다.

“이왕 같이 따라와 주신 거, 내가 부탁드려봤어. 여긴 감시도 허술하구, 혹시 모르니까.”

프랑은 안경테를 밀어올리며 말했다.

니는 운송 길드의 축사에 오기 전에 영지 바깥 동물들이랑도 적당히 감시 체제를 확립해 뒀다.

그 설득은 많은 육포와 2시간 정도로 충분하긴 했지만, 그야말로 빅 브라더 자체인 사르가디스의 감시망에 비하면 못 미덥긴 했다.

“그건 뭐 알겠는데…… 갑자기 웬 안경?”

“지적으로 보일까 해서! 어때? 어른스러워?”

그렇게 말하며 슬쩍 옆머리를 넘기는 프랑.

작은 키 때문에 같이 있으면 견학에 쫓아온 딸 같을 거라고 생각하기라도 한 걸까.

솔직히 안경 좀 썼다고 어른스러워 보이진 않았지만, 현실의 냉혹함을 굳이 알릴 필요는 없겠지. 아내의 컴플렉스를 자극하는 짓은 좋은 남편이 할 일이 못 되잖은가.

“응. 진짜 잘 어울려. 똑똑해 보이네.”

“헤헤.”

프랑은 자기가 말해놓고 칭찬을 받자 쑥쓰러운 듯 목을 매만졌다.

그보다 한때는 네페르티티를 보고 떨던 프랑이 그녀를 고용하기까지 하다니. 상전벽해로군.

그때 네페르티티가 자기 눈가를 만지는 게 보였는데, 내가 입을 열려던 순간 운송 길드장이 찾아왔다. 준비가 끝난 듯 했다.

“우선 말씀드려야 할 것이, 와이번 라이더들의 일은 굉장히 고되다는 사실입니다.”

길드장은 나를 데려다주기에 앞서 말했다.

“그리고 뱃사람들만 봐도 그렇다시피 험한 일을 하는 사람들은 고집과 자존심이 비대하죠. 다행히 저희 길드원들은 그 정도는 아니지만요.”

“적당한 고집은 소신으로 봐줄 만 하죠. 줏대가 너무 없는 것도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좋다고 봅니다.”

내가 무슨 얘기일까 하면서 추임새를 넣어주자 그는 어색하게 웃었다. 상인이니만큼 저 어색함은 의도적인 것이겠지.

“하지만 그런 라이더들을 휴일 날에 모여달라고 부탁했으니만큼, 그…… 약간 토라져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 점은 부디 어떻게 양해해 주시면……”

“별로 상관 없습니다. 하늘의 기수들이 얼마나 용감한지 기대되네요.”

이해는 간다. 쉬는 날에 특강? 안 빡치고는 못 배기지.

‘그치만 필요한 절차인걸? 너희들 평일에는 못 쉬잖아.’

별 수 있나. 빡센 스케쥴에 갈려나가는 이들은 모두 대학원생이니, 이 또한 대학원생의 애환이다.

근데 씨발, 그렇게 생각하면 난 교수인 셈인가?

‘존나 에반데.’

교수 말고 강사인 걸로 하자. 특강 일타 강사다.

와! 적당히 1~2시간 강의해주고 돈만 받아가면 될 것 같은 편견이 샘솟는걸? 하긴 원래 단상에서 떠드는 사람은 아이돌이 아니고서야 호감을 사기 힘들긴 해.

드르륵─.

강당에 문을 열고 들어가자 중구난방으로 앉은 남녀가 보였다.

인상은 제각각이지만 다들 뚱~ 한 얼굴이시군.

“어흠, 어흠!”

길드장도 내 위신을 위해서인지 같이 들어왔다. 싸장님이 오니까 얼른 자세 바로잡는 것 보게. 거 중대장이 보는 가운데 병사들 교육하는 외부 초청 강사가 된 기분이고만.

프랑과 네페르티티도 조용히 내 뒤에 기립했다.

나는 친절한 웃음을 띄우고 단상에 섰다.

“안녕하십니까? 오늘 여러분들과 간단한 대화를 나누고자 찾아온 노르드라고 합니다. 하루나마 잘 부탁드립니다.”

말은 친절하게, 하지만 기백은 강렬하게.

살기나 투쟁심을 끓어올릴 것도 없었다. 사자가 앞에서 하품만 해도 토끼는 스트레스로 죽는 법.

이 위험천만한 이세계에서 별의별 보물을 들고 날아다니는 사람들이 그 정도 눈치도 없을까.

옹고집이 뇌 주름 빽빽이 들이찬 꼰대가 아니고서야, 마초는 자기보다 뛰어난 마초에게 감화되는 법이다. 해병대 기수 문화가 좋은예시다. ……아니, 나쁜 예시인가?

여자 라이더도 있긴 하지만, 아무튼 불만스럽게 쳐다보던 그들은 생각보다 한 가락 하는 놈이 강사랍시고 나타나자 자세를 바꿨다. 좋은 징후구만.

나는 좌중을 보며 어깨를 움츠렸다.

“제가 여러분보다 와이번에 해박하다곤 말하지 않겠습니다만, 부디 오늘 제 이야기가 여러분께도 좋은 밑거름이 된다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서로 아이 컨택트를 하다가 고개를 끄덕거리는 라이더들.

내가 만만해 보이는 샌님이 아닌 걸 알자, 무슨 얘기를 하려는지 들어나 보려는 자세가 된 듯 한 모습이었다. 시작으로는 나쁘지 않다.

휴일에 끌려나온 회사 특강에서 이것보다 더한 집중력을 바라는 게 사치지. 나도 양심은 있다.

나는 그들과 간단하게 몇 마디를 나누다가 입을 열었다.

“여러분의 일이 얼마나 힘들지는 상상이 갑니다. 거친 풍량. 몬스터의 위협. 와이번의 식량 보급과 휴식 때를 빼면 내려오지도 못하는 장거리 운송. 벌써 3개가 넘네요. 혹시 그밖에도 있나요?”

잠깐 웅성거리던 그들은 평소 쌓인 울분을 토해내듯 대답했다.

“아직은 영지에 내려설 때마다 절차가 힘들죠. 몬스터의 일종인 와이번을 타고 착륙하는 저희를 거수자, 변신한 괴물 등으로 여길 때도 많습니다.”

“미신을 믿는 시골일 수록 더 그렇겠군요?”

“덕분에 평소 안 가 본 곳으로 운행하는 건 좀 꺼려집니다. 보급하러 내려갈 때마다 오지(奧地)의 원시인들이랑 조우하는 기분이에요.”

“저나 동료들은 그게 싫어서라도 일부러 보급을 안 하고 버티기도 합니다. 굶으면 그만인 저희랑 다르게 와이번의 밥 때문에라도 보급이 꼭 필요하지만요.”

술술 나오는구만. 평소에도 이거 갖고 호박씨를 깠나 본데.

하긴 나라도 좆밥 시절에 하늘에서 야매 드래곤이 내려왔으면 자지러졌을 텐데 뭘. 나는 공감하는 표정을 만들면서 어깨를 떨어트렸다.

“참담한 현실입니다. 이러니 시간 여유가 생길 때마다 라이더 여러분이 평소에 못했던 즐거움에 눈길을 빼앗기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죠.”

“당당하게 자부하긴 부끄럽습니다만, 아무래도 그렇죠.”

“그래도 여러분들은 빼어난 능력과 가혹한 노동량에 걸맞는 보상을 받습니다. 맞나요?”

라이더들은 자부심 가득한 얼굴로 끄덕거렸다.

근데 씨발럼들이 80%는 대답을 안 하네. 고딩 때 교사들이 제발 대답 좀 해 달라고 부탁하던 게 이래서였나. 존나 이 강당에 사람만 서른 명인데 혼잣말 하는 것 같잖아.

옛날 성체 잼민이 시절의 역지사지를 당하며 난 대갈통 속에서 척척 주판을 두들겼다.

‘와이번 쿠팡맨의 월급은 평균 1200쿠퍼.’

원금에서 세금이나 기타 관리비를 다 뗀 월급이 그 정도랜다.

와이번들의 관리비를 포함해서 길드가 40%나 떼 간다는데, 축사의 퀄리티를 보면 그것도 납득이다. 주인이라곤 해도 와이번을 혼자 감당하진 못할 게 뻔하니까.

1200쿠퍼면 노르드 환율로 약 1200만원.

약 1200만원. 연봉으로는 1억 4천이다.

배달의 민족 라이더들도 부러워서 배알이 꼴릴 월급이네? 억지로 현실에 빗대자면 미국의 장거리 트럭 운전수들 쯤 되는 운송업자일까.

“여러분 월급이 2000쿠퍼에요. 그러면 길드가 40% 떼어 가면 얼마입니까? 1200쿠퍼 남죠.”

그렇게 뗄 거 떼고 받은 월급으로 와이번 라이더들은 자기네의 인생을 향유한다. 일이 빡센 만큼 휴일을 만끽하고 싶은 건 당연한 심리 아닌가.

하지만 문제의 원인이 바로 그거였다.

“근데 와이번에겐 뭐가 있죠? 주인밖에 없어요.”

나는 단상을 잡고 종교를 전파하는 선교사처럼 말했다.

“와이번은 여러분만 보고 삽니다. 그게 그들의 신뢰 방식에요. 그래서 녀석들은 운행을 마치고 제 축사로 돌아가면, 줄창 여러분들만 기다려요.”

라이더들은 생각도 못 해봤다는 것처럼 눈알을 동그랗게 키워댔다.

존나 분리불안이 별거냐? 이세계에선 낯선 사고방식이겠지만, 외로움을 안 타는 생물이 세상천지 어디에 있다고 그래?

그때 라이더 한 명이 거수하며 말했다.

“저희 축사는 여타 목장보다도 훨씬 넓은데요. 놀 거리도 많고, 밥도 잘 나옵니다.”

“이 강당도 꽤 넓군요. 우리 다음 운행이 잡힐 때까지 널따란 강당에서 대화나 할까요?”

“아닙니다!!!”

새끼가 어딜 깝쳐. 나는 테이블을 살짝 쳤다.

“와이번의 휴식! 그게 문제입니다. 몸만 쉰다고 다 되는 게 아니에요. 저 녀석들은 여러분들이랑 다시 만날 때만 기다리는데, 여러분이 축사에 오는 때는 언제죠?”

“사, 산책할 때……?”

“운행할 때죠. 그리고 그렇게 운행하러 나가면 어떻다셨죠? 와이번을 낯설어 하는 시민들이 빽빽 소리를 질러댄다고 하셨잖습니까?”

“……예, 맞습니다.”

“와이번들은 그럴 때마다 피로가 안 쌓일까요? 걔들은 사람 말도 못 알아듣는데?”

“으음…….”

내가 일장연설을 해대자 라이더들도 조금씩 이 강의의 의미를 곱씹기 시작한 듯 했다.

그럴 수밖에 없지. 개를 유기하는 무개념 견주들이랑 다르게, 와이번 라이더들은 와이번과 교감을 하지 못하면 그들의 등에 타지 못하니까.

무책임한 와이번 맘은 이 자리에 없는 것이었다.

“맛있는 먹이? 산책 비행? 그걸론 모자랍니다! 주인님 바라기인 와이번들에게 필요한 힐링! 그건 오직 주인님과의 편안한 시간 뿐입니다!”

도입부의 끝이 가까운 걸 느낄 걸까. 사람들의 눈이 내게 모였다.

어찌 된 게 하나같이 자신의 안일함을 반성하는 표정이다.

길드의 축사로 돌아간 와이번들이 자기네처럼 즐거운 휴일을 보낼 거라고 맹신했던 걸 후회하는 듯 했다. 이게 와이번 라이더들이냐, 애견카페 회원들이냐?

“따라서 저는, 최근 의욕을 잃고 무기력해졌던 와이번들에 대해서 이렇게 감평하겠습니다.”

나는 그들의 몰입이 깨지지 않게 정색한 상태로 선언했다.

“세상에 나쁜 와이번은 없다.”

미안합니다, 개통령님. 멘트 좀 빌려 쓸게요.

어디 공파(公派)신지는 몰라도, 같은 강씨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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