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저희가 휴일에 와이번들과 놀아주면 될까요?”
내 일장연설이 계속되길 잠시.
별의별 미사여구와 그럴싸한 멘트를 주워섬…… 아니, 벤치마킹한 강의를 끝내자 라이더들은 꽤나 높은 집중력을 보이며 말했다.
휴일을 반납하는 격이니까 당연히 내키지 않아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들은─내 말을 반신반의하는 이들을 빼면─ 기꺼이 그럴 용의가 있는 듯 했다.
“그럴 리 있겠습니까? 저는 휴일 출근이란 말을 들으면 경기를 일으키는 사람입니다.”
그런 새끼가 주말에 강의를 여냐는 와꾸들이군.
존나 그렇게 표정 썩창나지 마, 새꺄. 오늘 주말 낭비한 거 만회해 주면 되잖아. 사람 말은 끝까지 들어야 할 것 아녀.
전직 랩실 노예인 내가 휴일이 얼마나 소듕한지 모를까.
원래 강의는 마무리가 제일 중요한 법이지. 난 운송 길드의 싸장님을 정중하게 가리켰다.
“그런고로, 길드장님께 타진해서 휴일을 하루 더 받아냈습니다.”
휴일은 언제나 옳다.
이건 고사기에도 나와 있는 사실이다.
“휴일이 늘어난다구요!”
“그게 사실입니까!!”
“간격은요! 며칠 간격으로, 얼마나 유지되나요!”
역시나 바로 좋아 죽으려는 라이더들.
운송 길드장은 처음 이야기를 들었을 때까지만 해도 떨떠름해 하는 기색이 만연하더니, 길드원들 앞에서는 마치 성자처럼 인자한 웃음을 띄웠다.
“그렇게 흥분하지 않으셔도 전부 사실입니다. 매 휴일마다 하루씩 붙고, 당분간 지속할 생각입니다. 운행 능률을 늘릴 수만 있다면야 휴일 며칠이 뭐 아깝겠습니까?”
“이예!!”
“휴일이 늘어난다!!”
“단, 여러분이 와이번을 건성으로 보살펴서 일의 능률이 늘지 않는다면 길드장님께서도 언제든지 마음이 바뀌실 수 있습니다. 이유는 아시겠죠?”
나는 그들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듯 엄중하게 말했다.
능률이 늘어야 화물 운송량이 늘 텐데, 그러질 못하면 죽 쒀서 개 주는 꼴 아닌가. 우리도 자선 사업가는 아니다.
그리고 니들은 돈이라도 많이 받지, 씨발. 나는 무급으로 3년을 월화수목금금금이었다고. 좆 같네 진짜.
“휴일까지 줬는데 결과가 별로면 ‘쉴 틈도 없이 굴리는 편이 일을 더 잘 하네?’ 하고 여겨져도 할 말이 없겠죠? TO를 늘려서 후배도 받고, 휴일날 푹 쉬고 싶으면 뭘 해야 하겠습니까?”
“와이번들을 잘 돌봅니다!!”
그래, 이제야 이구동성으로 대답이 나오네.
교회 목사들이 엄마 손한테 끌려온 잼민이들을 달란트로 꾀어내는 이유가 있구만.
약간 도가 지나쳐서 운송 길드 유치원 와이번반 친구들이 된 것도 같지만, 휴일 앞에서는 예순 살 노인도 아기가 되는 법이지.
‘알아들었으면 빡세게 일 하라고.’
나는 귀족이 되도 영지 경영은 하기 귀찮다고.
애초에 내정받은 영지도 없겠다, 앞으로도 그냥 여러분이 날라다 준 엘릭서로 로열티나 뜯어먹고 살라니까. 우리 쿠팡맨들 화이팅!
***
강의 후에 목을 축인 우리는 축사로 이동했다.
남은 일은 쉬웠다. 와이번들이 자기네 주인들이 떼로 몰려오는 걸 보고 좋아 죽는 꼴을 보고, 또 그 녀석들이 원하는 걸 번역해줄 뿐이다.
“갸우르르르! (쮸인!)”
“으악!! 야!! 꼬리 털지 마! 흙탕물 튀잖아!”
“고즈! 산책 아니야! 산책 나가는 거 아니라고!”
“큐으? (산책?)”
“큐으!!! (산책!!!)”
“아아아악!! 미친 새끼야!! 애들 다 듣는데 산책 같은 말을 하면──”
“큐으으으으으!!! (산채애애애액!!)”
개판 3분 후.
딱 그런 표현이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어휴, 튀자.”
“응.”
나는 프랑과 네페르티티를 데리고 그 개판에서 슬그머니 빤스런을 쳤다. 남은 일이라고 해 봤자 별 거 있어? 걍 쓰다듬어 주고, 발톱 다듬고, 비늘 닦아주고 또 산책 나가주면 되지.
도망쳐서 사육실장이 있는 곳까지 갔다.
모든 와이번 라이더가 오늘 강의를 들으러 온 건 아니었기에, 남은 와이번들은 시무룩하게 꼬리를 내렸다. 뱀 눈깔에서 질투심이 다 보이네.
“옳지, 옳지~.”
그리고 라리루라는 그런 녀석들에게 달라붙어서 즐기는 중이다.
의외인 건 베로니카도 거기 꼽사리 껴 있었다는 점일까. 티르시만 ‘파충류는 좀……’이라며 한 발 물러서서 한가로운 목장의 한때를 찍고 있었다.
“뭐야? 넌 또 혼자냐?”
나는 그렇게 점심 산책 시간에도 혼자 떨어져서 웅크린 샤틀루카를 발견했다. 그 녀석은 내 말에 눈깔을 슬쩍 뜨는가 했는데, 곧 몸을 돌려버렸다.
“아, 손님! 돌아오셨군요!”
내 제안대로 과일류를 가져오던 사육실장은─이 과일류는 와이번들의 공통된 요청이었다─ 턱에 흐르던 땀을 닦고 웃었다.
“말씀하신대로 다들 의외로 과일을 좋아해서, 또 거리에 나가서 사온 참이었어요!”
“다행이군요. 비싸지는 않았습니까?”
“아무렴요! 민트도 수레 가득히 실어 왔답니다! 이젠 간간이 사료에도 민트를 팍팍 쳐서 구워볼까 해요!”
“앗, 예.”
민트라는 말만 들으면 조건반사로 거부감이 드는 나였는데, 그래도 육류의 잡내 제거에 쓰면 특유의 청량한 느낌은 거의 없어진다. 저건 보편적인 사용법이 맞았다.
그나저나 주인님이 먹는 고기처럼 민트를 쳐서 구워 달라고 하다니, 입맛도 고급이군.
하긴, 고기에다 민트를 쳐서 먹는 건 크롸롸롸 하고 우는 것만큼 드래곤의 근본이긴 하지. 와이번 라자…… 아니, 라이더들이 알아서 할 일이다.
사육실장도 와이번 애호 카페 회원이었던 걸까. 그녀는 무척 흥분해서는 떠들어댔다.
“루즈 뱅이 자기 몫의 과일을 가져다 주니까 샤틀루카도 조금 입에 댄 거 있죠! 저 애가 밥을 다 먹다니, 이게 며칠 만인지 모르겠어요!”
“루즈 뱅이요?”
“네! 와이번들 중에서 대장 노릇을 하는 녀석이에요!”
그렇게 사육실장의 대답이 돌아왔을 때였다. 호랑이도 부르면 온다고, 존나게 큰 와이번이 격리실 별실에서 두 발로 기어나왔다.
“쿠우우.”
존나 크다.
다른 와이번이 복서면 이 새끼는 천하장사 정돈 될 것 같았다. 혹시 너도 강씨니? 나는 그 덩치 큰 새끼랑 눈이 맞았다. 그리고 눈치챘다.
“새끼, 마나를 깨우쳤군.”
예전에 만난 워킹-고라니 킹이 떠오르는군.
본능적으로 비행에 마나를 쓰는 와이번이라도, 이만큼 덩치가 큰 놈이 딴 놈들 이상으로 능수능란하게 마나를 다루는 것이다. 대빵을 못 먹는 게 더 이상하겠지.
고놈은 지혜의 상징인 이족보행을 시전하며 두 발로 섰다.
그리고선 나를 보며 무심하게 울어댔다.
“후유 사사히─. (약한 사내다).”
뭐 이 시발?
대뜸 꽂히는 욕설에 나는 인상을 팍 썼다. 어디 외국에 나가서 그 나라 말로 인종차별을 들은 기분이었다. 씨팔럼이 내가 못 알아들을 줄 알았나?
“샤아 슈슈, 샤아 츠츠. (네 암컷, 널 걱정한다.)”
허락을 받고 한 대 쥐어박아줄까 생각하던 나는 계속되는 울음소리에 멈칫했다.
“호, 샤아 후유─. (왜? 네가 약하니까.)”
“……쓰벌?”
내가 입을 헤 벌리자 와이번은 나를 감시하듯, 걱정하듯 곁에서 떠날 줄을 모르는 프랑의 표정을 살폈다. 그러고서는 나를 보며 콧김마저 뿜는 게 안아닌가?
“후유 슈으르 시잇─. 슈슈 갸르르 호! 호 샤아 캬이잇. (약하면 다치고, 죽는다. 그러니까 암컷을 걱정시킨다. 네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나는 꽁꽁 얼려둔 삼다수로 뒤통수라도 맞은 듯 머리가 멍해졌다.
내가 약해서 아내들을 걱정시킨다니?
나보다 한참 약한 몬스터 새끼한테 들으면 자칫 열불이 뻗칠 법도 했지만, 이게 왠걸. 나는 분노가 치밀기는 커녕 머리가 차갑게 식는 것만 같았다.
야생 동물들은 간혹 그런 경우가 있다.
무리의 대장인 수컷이 농땡이만 부리며 암컷이 사냥해 온 먹이를 처먹기만 하는 경우가 말이다.
무리가 위험할 때 맞서 싸워야 하는 우두머리가 사냥 등으로 다치면 안 되서 그렇다던가. 처음엔 뭔 소리인가 싶다가도 설명을 들으면 화실히 그럴 만 한 얘기였다.
‘야생 동물의 사회에 힐러는 없으니까.’
다리라도 부러지면 가장 강한 수컷의 전투력이 떨어지고, 그건 빠르건 느리건 무리 전체의 파멸로 귀결되었다.
우두머리 수컷의 나태함은 야생 동물의 생존법인 것이었다.
하지만 그건 거꾸로 생각할 수도 있다! 솔직히 무리의 대빵 씩이나 되는 새끼가 사냥하다가 얻어맞고 불구가 될 만큼 약하다니, 말이나 되는가!
평범한 경우라면 어쩔 수 없다. 개인의 능력엔 언제나 한계가 있다.
그러나 나는 분에 넘치는 하렘을 꾸린 꼴마초!
나처럼 욕심 그득그득하게 행복을 누리는 놈이 병신처럼 어디 가서 얻어맞고, 팔 짤리고, 지옥에 떨어졌다가 돌아오기까지 하다니?
사냥하다 병신 된 수사자보다 한심하지 않은가.
아내만 다섯이나 되는 새끼가 그렇게 무능해도 될까?
‘아니, 절대로 안 되지.’
나는 자책이 섞인 침음성을 흘렸다.
평범한 사람은 그렇게 못 한다고?
병신 같은 핑계는 대지 말자. 평범한 사람들은 아내를 5명이나 못 들인다. 비교할 걸 비교해야지.
남들의 5배의 행복을 누리려면, 5배의 책임감과 능력이 필요한 법!
이게 일의 전말이었다.
모든 문제의 알파이자 오메가. 우리 아내들이 날 물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보며, 어디에도 못 가게 하려는 이유 말이다.
‘내가 하도 좆밥이라, 잠깐만 눈을 떼도 병신이 될 것 같으니까.’
만약 내가 어디 가서 맞고 다닐 일 없는 놈이면 외출 좀 나가는 정도로 아내들이 저렇게 정색하며 말리겠는가?
그녀들의 과한 걱정은 아내들에게 믿음을 주지 못했던 내 잘못이다. 자업자득인 것이다.
존나 당연한 결론이었지만,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학생 시절에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말을 들은 것처럼 실감이 잘 가지 않았던 것이다.
방금 전까지는 말이다. 나는 픽 웃었다.
“……와이번 축사에 투슬리스 대사부가 계셨군.”
“어? 와이번이 뭐라길래 그래?”
프랑의 질문마저 들리지 않았다. 나는 눈을 반개하며 팔짱을 꼈다.
공자왈 삼인행필이면 유아사언이라 했던가. 길에 3명 정도가 지나가고 있으면 그 중에 반드시 스승 삼을 만한 사람이 있다는 뜻이다.
팔십 살 먹은 노인네도 세 살 먹은 잼민이에게 배울 게 있다.
그러니까 내가 인간이 아닌 와이번에게서 어떤 깨달음을 얻어도 문제될 건 없을 것이었다.
붓다처럼 우유죽 한 사발 들이키고 보리수 나무 밑에서 깨우칠 수준은 못 되도, 옳은 말을 듣고도 현실을 부정하지는 말아야 할 것 아닌가.
“고맙다, 새끼야. 덕분에 눈이 뜨였다.”
나는 진심으로 와이번 대빵에게 감사를 전했다.
따로 와이번의 말도 아니지만 다 알아듣은 듯, 그 녀석은 무슨 관록 있는 대사부처럼 콧김을 뿜어내며 등을 돌렸다.
“새끼. 폼 잡기는.”
용문서의 참뜻을 깨달은 쿵푸 판다가 이런 기분이었을까. 나는 픽 웃었다.
“노르, 어디 아픈 건 아니지?”
갑자기 정색하자 걱정이라도 든 걸까. 나는 날 걱정스럽게 쳐다보는 프랑의 뺨을 괜스레 꼬집어 보았다. 프랑의 눈초리가 휘둥그레졌다.
뺨이 꼭 찹쌀떡 같네.
“머, 머 하는 거야!”
프랑은 팔을 휘저으며 버둥거렸다. 내가 이유가 있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는 것쯤은 얼굴만 봐도 다 안다는 듯, 살짝 뾰루퉁해진 눈치였다.
“흐흐, 그냥?”
“이잇!”
─홱! 팔을 잡아채고 뒤로 피하는 프랑. 예전의 프랑한테서는 절대로 못 봤을 몸놀림에, 새삼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뺨을 문지르던 프랑은─양손으로 그러고 있으니 꼭 애교라도 부리는 것 같았다─ 눈을 깜빡거리다 고개를 모로 꼬았다.
“……별 일 아닌 거 맞지?”
“어. 무슨 문제가 생기거나 한 건 아니고, 저기 저 와이번한테 한 방 먹었거든. 말빨로.”
“노르가 말싸움에서 질 때도 있구나. 와이번들, 생각보다 똑똑한 거 아니야?”
생뚱맞다면 생뚱맞은 말에 나는 그만 웃음보를 터트리고 말았다.
“어? 왜, 왜 웃어? 내가 이상한 말이라도 했어?”
그러자 프랑이 드물게도 날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길래, 나는 그게 웃겨서 조금 더 웃어댔다.
‘아내들이 날 걱정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
결국 하나부터 열까지 내가 못난 게 원인이다.
그런 그녀들의 마음 씀씀이가 은근 기쁘면서도 알게 모르게 갑갑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다 내 손으로 뿌린 씨앗이었던 것이다.
웃다가 새어나온 눈물을 슥 닦은 나는 심호흡을 깊게 했다.
“이만 가자. 일한 만큼 보상을 받았네.”
마스터 투슬리스에게 가르침을 받았으니까, 이 축사까지 온 것도 시간 낭비는 아니었다.
‘확실히 다양한 인생경험을 쌓는 게 성장의 밑거름이군.’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은 하기 싫다. 그건 쵸큼 많이 꼰대 같잖아?
그치만 해외여행처럼 견문을 넓히는 경험이 무의미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우리 프랑도 사티스의 여신상을 보고 자신의 성장 방향을 정했던 전적이 있다.
“길드장님! 저희도 이만 가 보겠습니다!”
“앗, 예! 배웅해 드리겠습니다!”
“아닙니다. 바쁜 분들을 번거롭게 할 순 없죠.”
나는 인삿말을 남기고 축사가 있는 길드 부지를 나섰다.
와이번을 빌리려도 된다는 약속은 받았다.
내 야매 강의에 따른 변화와 그 경과는 나중에 듣기로 하자. 축사를 나와서 프랑의 골렘 말들이 끄는 마차 마부석에 올라탄 나는 존나 깊은 고민에 빠졌다.
내 강함이 모자란가? 아니, 그렇지는 않았다.
미스릴 클래스는 겉치레가 아니다. 아마 이세계 방방곡곡을 다 뒤져도 나보다 강한 새끼는 앞에서 세는 게 빠를 것이었다.
그치만 그딴 사실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아무리 내가 객관적으로 강한 편에 속해 봤자, 우리 아내들은 1달이 머다 하고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남편놈 때문에 애가 타는데!
‘어찌 된 게 브딱실딱 시절보다 지금이 더 많이 다치는 거 같냐.’
아내들을 걱정하게 만드는 건, 내가 강함이랑은 별개로 걱정을 끼치는 일이 많아서다. 풀템 다 낀 타노스도 결국 어벤져스한테 지지 않았는가.
그러니까 이런 문제의 해결법이야 뻔했다.
어쩌다 싸울 일이 생겨도, 우리 아내들이 존윅을 보는 기분으로 ‘무슨 일이 생기기야 하겠어?’ 하는 신뢰를 가질 수 있도록 만들어 줄 수밖에.
잃을대로 잃은 신뢰를 되찾으려면 결과를 보일 수밖에 없었다.
“출발하자.”
나는 마부 일을 하는 발퀴리에에게 지시하고서 마부석의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맞바람이 시려울 만큼 선선해서 눈이 절로 번쩍 뜨였다.
천하의 강자들과 싸우면서도 다치지도, 힘겨워 하지도 않고, 가뿐하게 승리해서는 유유자적 돌아온다. 그리고 그게 당연하게 느껴질 정도의 힘을 가진다.
내 자유와, 아내들의 정신건강을 위해서 말이다.
그게 다섯이나 되는 품에 안은 남자로서 해야만 하는 의무였다.
그러니까 이대로여서는 안 된다.
“훨씬 더 강해져야만 하겠군.”
그래.
나는, 먼치킨을 동경하게 되었던 것이다!
투두두두두…!!
그렇게 마부석에 앉아 깨달음을 내면화 시키고 있으려니, 갑자기 무수한 발구름이 귓가를 때렸다. 마차의 바퀴 굴러가는 소리에 섞여서 소음이 나의 예민한 오감을 흔들었다.
‘앞인가?’
생각을 멈추고 마부석에서 일어났다.
일반인이라면 자살 마려운 사람이 인생 최후의 스탠드 액션을 시전하는 것과 다름없었겠지만, 내 균형감각은 평지에 선 듯 안정적이었다.
그 상태로 눈을 반개하며 집중하자 놀라운 것이 보였다.
“전방 500미터 앞, 유목 엘프 떼거리입니다.”
말을 타고 달려오는 집단은 틀림없이 흰 피부의 엘프들이었다.
지구인의 엘프관을 망치는 털옷은 옵션인가.
오랑캐 야만족 패션에 금발은 좆도 어울리지를 않았다. 남자들은 전부 모자를 뒤집어썼는데, 서넛 정도는 여자 엘프인 듯 보였다.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라던가. 반반한 덕분인지 그 희고 검고 갈색인 패션과 기마 자세도 무척 봐 줄 만 했다.
손에 붙든 칼이랑 활만 아니었으면 싸인이라도 부탁해 볼 법 했는데 말이지.
우리를 발견한 놈들은 지들끼리 쑥덕거렸다. 그 짧은 상의가 끝나자 여자 엘프년이 화살을 시위에 메기며 발퀴리에를 겨냥했다.
『ᚱ(Reið)─!!』
그년이 화살을 쏘며 룬을 외웠다.
여정, 생각의 변화, 이동, 해방과 자유를 뜻하는 룬이었다.
참된 뜻을 담은 룬은 아니다. 현대인들은 룬의 진짜 힘을 사용할 수 없도록 저주가 걸려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거기에 담긴 마나의 양까지 부족하지는 않았다.
패애앵──!!
말 그대로 쏜 살 그 자체인 화살은 각궁의 탄력으로 나올 수 없는 속도를 얻었다. 저대로 두면 이 마차가 주먹에 맞은 두부처럼 터져나갈 것이다.
─덜컹!
내가 창을 잡은 순간, 그것보다 먼저 마차 문을 박차고 네페르티티가 몸을 던졌다. 그녀는 정지한 마차에서 할래도 힘들 곡예로 마차 천장에 올라타 채찍을 휘둘렀다.
쩌어어엉─!!
초원의 풀을 원형으로 눕혀가며 채찍이 화살을 격추했다.
채찍을 되돌린 네페르티티는 머리를 고정한 채 물었다.
“……아는 엘프?”
“설마요. 친구끼리 저런 화살을 쏘러면 제가 저 엘프들 전재산을 갖고 튀기라도 해야 할 걸요.”
그리고 그딴 짓을 하면 더는 친구도 뭣도 아니게 됐겠지.
애초에 초면이기도 하고.
…카앙!!
그때 팔찌가 한계까지 당긴 고무줄이 끊어지듯 튕겨졌다.
창은 당연하다는 듯 내 손에 착 감기며 창대를 떨었다. 이번에야말로 자길 써 달라는 뜻 같았고, 나는 가만히 창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구신의 마나를 가진 유목 엘프인가……. 그래, 마침 마나를 늘리려는 참이었는데 잘 됐네.”
초면부터 지랄을 해대니 속이 편하기는 하군.
내가 그렇게 생각하며 창을 쥐자, 활을 꼬나쥔 유목 엘프들은 방금 건 인사치레였다는 것처럼 다 같이 활을 쏴댔다.
퓨퓨퓨퓽─!!
20명의 엘프가 동시에 스무 발.
막으려면 고생 깨나 하겠지만, 옆에 네페르티티까지 있는데 쫄아 있을 이유가 없다. 마나를 짜낸 내가 반격을 준비했을 때였다.
『막아라!!』
정 반대편에서 날아온 화살들이 불을 일으키며 스무 발의 화살을 여기저기로 튕겨냈다.
그 공격을 감지하고 있던 우리는 살짝 놀랐다. 저 놈들도 당연히 측면에서 공격해올 줄 알았지, 우리를 향한 공격을 걷어내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불화살을 쏴댄 엘프는 근처 둔덕에서 내려오며 외쳤다.
『놈들을 저지한다!! 세계수의 흔적을 지켜라──!!』
『끼에에에에에에엑──!!』
나는 카랑카랑한 고함성을 듣고 눈을 찌푸렸다.
“갈수록 가관이네.”
여기도 개판이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