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방향에서 달려오는 엘프들을 눈으로 체크.
열심히 주시하자 어느 새끼고 몸에다가 노란색 부적 같은 걸 붙이고 있었다. 눈을 내리자 화살에 붙어 있는 것도 같은 부적이다. 룬이다.
쓰벌, 아마 저 부적에디 룬을 새겨놓고 마법을 쓰는 모양이었다.
현대 마법처럼 룬을 기초로 개량한 술식이겠지. 오딘의 눈을 뜨고 달려드는 놈들을 훑자 몇 명이 120도 예각으로 턴하며 다른 엘프에게 붙었다.
『ᛁ(Isa)──!!』
그 놈들이 외치며 부적을 찢어발겼다.
엘프들의 마나가 천지를 흔들며 달려오던 다른 엘프 무리의 말을 느리게 만들었다. 마나량 하나는 많은 모양이었다.
더 놀라운 건 다른 엘프들은 저 새끼들보다 더 마나통이 큰 듯 하다는 점이었다. 시팔럼들 진짜 나 못지 않은 마나 졸부들이네.
“가장 약한 셋.”
네페르티티가 맞바람을 뚫고 말했다.
따로 떨어진 셋을 말하는 것이었다.
“별동대라기보단 특공대군요. 죽으러 가나?”
“시간 끌기.”
저 자살특공대가 다른 엘프 무리를 뒤져라 막는 동안 우리를 제압하겠다고? 좀 멍청한 짓 같은데.
“상당히 얕보였네요.”
“자신이 있어 보여.”
네페르티티의 말대로라면 실력 차이를 극복해낼 전술이 있는 걸까. 거기까지 생각하고 있으려니까 마차 창문의 빗살이 열렸다. 티르시다.
“노르드. 마차를 멈출까요?”
“그러죠. 떨쳐내기엔 상대가 꽤 빠르네요.”
나는 아드레날린 중독자가 아니라서 이 마차는 시속 수백 킬로미터로 못 달린다. 저 새끼들 말과 레이스를 벌여줄 생각도 없고.
발퀴리에는 묵묵하게 마차를 멈추었고, 일행이 내렸다.
“마차만 탔다 하면 싸울 일이 생기는 것 같애.”
“인적이 드문 시외를 이동하는 것이다. 노려질 확률도 높겠지.”
프랑이랑 베로니카는 말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마법을 일으켰다. 백 미터 이상 떨어진 곳에까지 프랑의 나이프가 날아가서 꽂혔다.
엘프들이 비뚜름하게 웃었다. 빗나간 줄 안 걸까.
병신들. 노리던 곳에 맞춘 게 맞는데.
그 놈들의 말이 나이프가 꽂힌 지반에 올라타는 순간, 프랑과 베로니카가 동시에 주문을 외웠다.
─쩌쩌적! 초원에 커다란 금이 내달렸다.
그리고 우리는 봤다…… 아니, 우리는 느꼈다.
대지가 잠시 꺼졌다.
쿠구구궁─!!!!
『지, 지진인가!』
『땅이 무너진다! 피해라─!!』
쩍 하고 갈라지며 내려앉는 지반!
골렘 코어 나이프를 통해서 지면으로 침투한 마나가 사람 10명 쯤은 가뿐히 빠트릴 너비의 크레바스를 발생시킨 것이었다. 프랑과 베로니카의 합동기였다.
『뛰어넘어라!!』
타앗─!
그래도 발치가 무너진 정도로 전멸할 만큼 상병신은 아니었던 걸까. 그렇게 큰 균열이 아니었던 탓에 거기에 빠진 건 3명 정도였다.
물론 그 3인의 병신은 말과 함께 앞으로 자빠져서는 균열에 머릴 박고 목이 꺾여지거나, 다리가 부러진 말에 깔리거나 본인이 먼저 떨어져서 즉사했다.
그러게 누가 일반도로에서 과속하래?
『이랴!!』
나머지는 놀랍게도 땅이 꺼지기 전에 점프해서 균열을 피해냈다.
뭔 씨발, 이제는 날아다니네. 플라잉-엘프다!
그래도 우회하지 않고 속도를 유지하며 점프한 판단은 옳았다. 딱 거기까지만 말이다.
파파팡팡─!!!
가죽 풍선을 터트리는 듯한 효과음이 들리는가?
맞다. 네페르티티가 공중에 뜬 병신들을 터트려버리는 소리였다. 세로열로 둥글게 휘두른 채찍이 또 몇몇을 오러로 갈아버렸다.
『ᚹ(Wunjo)!!』
엘프들은 전의를 잃지 않고 몸을 강화하는 룬을 발동시켰다.
그런 엘프들에게 추가로 링링이 6호와 티르시의 마법이 날아갔다. 엘프들은 말을 버리려는 것처럼 안장을 박차고 낮게 도약했다.
땅에 몸을 던지듯 구른 놈들이 주문을 외웠다.
『ᛚ(Lögr) ─ ᛈ(Perth) ─ ᚺ(Hagall)!!』
─꾸르르륵! 우리 마차가 늪에 잠겼다.
물, 악운, 재앙을 의미하는 3개의 룬을 엮여낸 마법이다. 도망치지 못하게 할 생각인가.
“독늪이에요! 빠지지 마세요!”
티르시가 인상을 쓰며 외쳤다.
나는 훌쩍 뛰어서 임전태세인 네페르티티 옆에 착지했다. 아내들도 잘 피한 듯 했다. 링링이 6호에게 안긴 베로니카가 살짝 불쾌한 듯 좆프들을 노려보고 있긴 했지만 말이다.
이런 상황이니까 아내들도 내가 싸우는 걸 뭐라 하지는 않겠지.
“분단을 노리는군요. 어울려 줍시다.”
“그래.”
말도 잃었겠다, 이젠 백병전 뿐이다. 나랑 네페르티티, 발퀴리에는 보폭을 맞춰 돌진했다.
자신할 만한 근거는 있었는지 엘프들도 전위와 후위로 나뉘어서 진형을 갖추었다. 4명이 한 명씩 마법을 쏘아대며 우리를 차륜진에 가두려 들었다.
발퀴리에는 막고, 네페르티티는 피했다.
그녀의 채찍이 곤두박질치며 죽은 말 시체를 홱 낚아챘다.
“후우우…….”
네페르티티의 여성미로 넘치는 팔뚝이 질주하기 직전의 표범처럼 웅크렸다.
외형만 보면 가냘프다고 말해도 좋을 팔이었다. 근육이 살짝 돋아나더라도 충분히 그렇게 부를 수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들끓는 마나는 그 어설픈 생각을 단호히 부정했다.
─틱, 틱! 마법 술식을 방불케 하는 섬세한 마나 컨트롤이 그녀의 몸을 재빠르게 관통했다.
그녀는 모닝 스타라도 된 것처럼 수백 킬로그램 가량의 말 시체를 잡아당기고, 내려쳤다.
슈우우웅──!! 콰아아앙!!
기다란 유성처럼 빛을 그리며 꽂히는 말 시체!
그건 오러와는 또 다른 무게의 폭력이었다. 그 비현실적인 광경에 뛰어난 전사인 듯 하던 엘프도 멍하니 입을 벌리고, 그대로 박살이 났다.
살육의 여신의 이름을 씌운 길드의 모험가는 그 이름값을 톡톡히 했다.
나르메르-나일과 타타르니아의 스플래터 배틀이라니. 이게 대체 무슨 스너프 필름이냐. 싸우는데 더 잔인하고 덜 잔인하고 하는 구분이 있겠냐만은.
─피융!!
잠깐 한 눈을 팔자 공격이 날아왔다. 팔로 막고 방향을 읽었다.
먼 곳도 아니었다. 열 걸음 정도 떨어진 장소에 손바닥을 쭉 뻗은 엘프가 서 있었기 때문이다.
쿠구과광─!!
다시 한 번 룬 마법의 일점사격이 쏟아졌다.
창의 항마력으로 마법을 쳐내자 털모자를 눌러 쓴 엘프 남자가 손바닥을 허리춤에 모았다. 그는 좀 전에 말과 혼연일체가 된 엘프 때문인지 눈에 핏발이 서 있었다.
『뒈져라, 바이츠니아 야만인!!』
『씨발, 누구? 나?』
지랄. 예수게이 운운 좀 했답시고 애먼 사람을 이중국적자로 만드네. 나라를 잃은 동양인은 어디 서러워서 살겠나.
─텅! 털모자 엘프의 장타가 공기를 때렸다.
마나가 날아오지 않아서 뭔가 했는데, 순간 내 오감이 바람을 감지하고 창을 들어서 방어했다. 텅─! 창을 허깨비처럼 통과한 충격이 가슴을 쳤다.
물론 상처는 쥐뿔도 없었다.
『애미, 이건 또 뭐야?』
나는 눈 하나 꿈쩍 않고 창을 휘둘렀다.
막지 못할 걸 미리 눈치채고 야수회귀의 마나를 두껍게 해서 망정이지, 무슨 텔레포트 펀치냐? 그 마법을 분석하는 사이에 창이 엘프의 어깨를 가슴께까지 갈랐다.
그 놈은 자기 공격이 전혀 통하지 않자 놀라는 듯 했는데, 그러면서도 창을 막지 않고 붙잡았다. 못 막을 걸 알고 몸을 던져 발을 묶은 것이다.
『잡았다! ᚹ(Wunjo)!』
바로 대가릴 깨버리려던 내 주먹을 손이 박살나면서 받아낸 엘프가 또 룬을 외웠다. 이 좆프놈이 내 손을 통해서 마나를 쑤셔넣은 것이었다.
쿠구구구구……!!
누누이 말하지만, 마나의 대소(大小)는 이세계의 전투력과 같았다.
엘프가 죽음을 앞두고 뿜어낸 마나가 내 몸으로 파고들었다. 당연히 나도 마나로 맞불을 놓으면서 저항했지만 한순간 발이 멈출 수밖에 없었다.
무협지의 내력싸움 같은 건가? 에너지의 흐름을 뜻하는 룬으로 시간을 끌고 남은 놈들이 내게로 또 룬 부적을 찢으며 마법을 쏴댔다.
『ᛁ(Isa)!!』
합창으로 들릴 정도로 동시에 뻗어온 마나가 내 몸을 덮었다.
얼음, 정지, 무(無)를 의미하는 룬! 그것은 아까 우리를 도우려 왔다가 발이 묶인 엘프들의 말처럼 내 몸을 느리게 만들었다. 디버프 마법인 듯 했다.
시간이 느려진 것처럼 풍경이 느리게 보였다.
나를 둘러싼 엘프들은 8배속으로 가속한 두더지 잡기처럼 빠르게 돌아다니며 마법을 외우려 했고, 내 몸은 바다 깊이 잠긴 것처럼 느릿했다.
그리고 내 머리도 찬물에 빠진 듯 냉정했다.
창대를 비틀어 뽑으면서 구신의 마나를 룬으로 전환했다.
새 룬을 배울 때가 왔다.
뭘 배워야 할지는 이미 실컷 봤다. 나는 하얗던 구신의 마나를 형광색으로 밝히며, 엘프들과 달리 아무 주문 매개체도 없이 룬 마법을 발동했다.
내 마나통에서 용솟음치던 마나는 문자가 되어 피어났다.
『ᚱ(Raidō).』
시간에 흐름에 따라 왜곡된 룬의 진짜 발음.
천공신 오딘이 자기 자신을 제물로 얻어낸, 이 세상의 진리를 함축한 문자 중 한 개였다.
단지, 기원이 그따구라 그런지 룬 문자는 원체 복잡한 뜻을 가진다.
기본적인 의미는 공유하되, 용례는 화자(話者)가 쓰기 나름이다.
그건 생각하기 나름으로는 룬 문자가 마법이라는 용도로 잘 만들어진 문자라는 증거였다.
위대한 킹 세종께서 창제하신 훈민정음처럼 습득하거나 해석하기 쉬운 문자는 아니지만, 단 24개 짜리 문자로 많은 표현에 활용 가능하니까.
그리고 지금, ᚱ(Raidō)의 룬은 느려졌던 속도를 다시 빠르게 만드는 데 일조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가속’이다.
─푸확!!
느려졌던 시간이 돌아왔다.
피보라에서 창을 뽑아내고 나를 노리던 열풍을 베어냈다.
아직 내 깨달음이 부족해서 참된 뜻을 이해할 정도는 아니었는데, 별로 상관은 없었다. 사용법은 저 엘프들이 가르쳐 주었으니까.
‘헤이스트 마법은 판타지에선 약방의 감초지.’
열풍이 부는 방향으로 달려들었다. 평소보다 좀 늦지만 디버프에 걸린 게 거짓말 같은 속도였다.
쇳물처럼 뜨거운 바람을 뛰어넘자 놀란 엘프의 얼굴이 보였다.
『헬로? 아임 코리안!』
『Haga──』
─투콱! 턱 째로 머리를 부숴서 주문을 막았다.
마법이 풀리며 속도가 조금 더 빨라졌고, 나는 ᚱ(Raidō)의 룬에 들어가는 마나를 조금 줄였다.
‘사용법이 조잡했나. 몸에 걸리는 부담이 크군.’
빨라진다는 점만 보고 신나서 마나를 퍼붓다간 내 체력이 먼저 바닥나게 생겼다.
내가 룬을 파고들지 않았던 건 이유가 이거다.
‘참된 뜻을 깨닫지 못한 룬은 단독으로는 별로 쓰기 좋지가 않아.’
성능도 약간 나사가 빠졌거나 전투용으로는 좀 미흡하다.
베로니카처럼 추가로 주문을 외운다면 모를까, 그 경지에 도달하려면 바이콘들도 성체의 나이─300살 정도─를 기준으로 잡는다지 않았는가.
출력은 약해도 쓰기 좋게 가공한 현대 마법에 더 눈이 팔리고 말았던 건, 부족한 위력을 마나빨로 커버하면 된다고 여겨서였다.
‘지금부터는 아니지만.’
베로니카만 봐도 저주가 걸리지 않은 숙련된 룬 마법사의 힘은 확실하다. 파고들 가치는 있었다.
ᚱ(Raidō)의 룬은 몸의 부담이 크다고?
‘그러면 내 몸에다가 안 쓰면 그만이지.’
나는 빠르게 창대에 룬을 새겼다. 아 씨발, 이거 룬 어 기록물을 번역할 때 줄창 써서 그런지 약간 PTSD 도지네. 이것도 다 주변에 좆프들이 많아서 그렇다.
『──윤고딕 72pt!!』
룬을 새긴 창으로 【게르튀르】의 투창 초식을 전개했다.
눈 감고도 펼칠 수 있는 투창이었는데, 속도가 남달랐다.
창은 몸체를 울리는 마나의 역류에 성깔을 부리듯 떨다가도 적을 향해서 날아간다는 것에 환희를 토해냈다. 창에 감긴 오러가 불꽃처럼 타올랐다.
『ᛁ(Isa)!!』
노려진 엘프는 눈치 빠르게 투창에다 디버프를 걸었지만, 항마력에 튕겨져나갔다. 쟤 마나를 줄창 처먹더니만 항마력도 더 쎄진 거 같은데?
퍼퍼펑─!!
엘프의 심장을 꿰뚫고 여력이 남은 투창은 내가 룬으로 인도하는 방향으로 바람을 탔다.
투콰콰콰콱─!! 후열에 있던 엘프를 공격해대자 전황이 더 빠르게 기울었다. 이기어검 존나 쩐다.
나랑 같이 달려든 두 사람…… 아니, 1마리와 한 사람도 승기를 잡은 듯 무난하게 이겨내고 있었다.
시간을 끌던 엘프들도 뒤진 걸까. 적의 후위에 다른 엘프들의 룬 마법이 꽂혔다. 혼자 남은 변발 엘프는 전황을 둘러보고 이를 갈았다.
『제길…….』
『생각보다 나쁘진 않았다.』
쐐애액─ 착! 창은 한 바퀴 돌며 내 손으로 돌아왔다.
나를 노리러 온 주제에 오러를 쓸 줄 아는 놈이 한 명도 없다는 건 한심하긴 한데, 이 좆프놈들도 생각보다 숙련된 전사였다.
나도 미스릴 클래스를 찍기 전에 오러를 써대는 놈들을 이긴 전적이 2번이나 있지 않은가? 미스릴 클래스도 절대무적의 강자는 아니었다.
발퀴리에와 네페르티티가 없었으면 꽤 귀찮았을 것이다.
변발 엘프는 눈을 부라리며 으르렁댔다.
『웃기는군. 네놈에게 우리들의 분투를 평가할 자격은 없다.』
『그, 그럭군요……. 그럼 저희를 죽일 자격증은 어디서 발급받고 오셨나요?』
『뭐라?』
창을 어깨에 얹은 나는 똑같이 으르렁거렸다.
딱히 빡친 건 아니고, 그냥 저 새끼 꼴받으라고 한 흉내였다.
『인사도 안 하고 활부터 쏴제낀 새끼들이 뭐가 잘나서 평가하지 말라고 떽떽대? 넌 무슨 자격이 있어서 우리 죽이려 드는데? 좆병신련.』
『……역시 대화할 가치도 없는 놈이었군.』
변발 엘프는 이를 박박 갈다가 혀를 찼다.
병신이 눈 굴러가유~ 하고 티를 다 내네.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너희 말은 니 동족들이 불화살로 웰던 육회를 만들어 놨단다.
『그래…… 너는 엄마가 태교를 하면서 말을 안 걸어줬구나……. 엄마가 기승위로 말 타느라 뱃속에서 탯줄에 목이라도 졸렸니?』
얘! 너 약간 지능장애? 로 태어난 것 같애! 난 덜 풀린 감속 디버프의 감각을 평소 상태까지 돌려놓고자 덤벼드는 대신 숨을 골랐다.
도주할 수 없는 상황에서 모욕까지 당하자 변발 엘프는 머리부터 정수리까지 빨개졌다. 살려둘까? 죽일까? 이 새끼들 하는 꼴을 보면 죽이는 게 더 안전하겠군.
엘프는 검을 던져버리고서 손가락에 힘을 줬다.
『황야를 건너기 전부터 죽음 정도야 각오했다. 내 동귀어진이 후발대를 승리로 이끈다면 그 또한 바라던 바다.』
…쿡쿡! 콱콱콱!
변발 엘프가 빠르게 자기 몸을 찔러댔다.
놈의 룬 부적이 싸그리 타올랐다. 관자놀이, 두 어깨, 갈비뼈, 명치를 지 검지와 엄지로 찔러대는 엘프! 한 마디씩 푹푹 파고드는데 아프지도 않은 듯 싸늘한 표정이었다.
파스스스…!!
엘프의 남은 머리털이 빠지며 혈색이 나빠졌다.
그리고 그 생명력과 바꾸기라도 한 듯, 그렇지 않아도 실력에 비해 많은 편이던 엘프의 마나가 2~3배로 부풀어올랐다.
나는 경악하며 숨을 삼켰다. 변발, 아니 이제는 대머리가 된 엘프는 내 리액션이 마음에 든 듯이 입술을 길게 찢으며 웃었다.
『이것이 타타르니아에 전해져 내려오는 점혈법, 독라멸진(獨羅滅盡)!!』
시시각각 생명력을 소진하며 대머리 엘프는 지 눈을 뱀처럼 좁혔다.
『영광으로 여겨라. 이 점혈을 사용할 수 있는 자는 우리 중에서도──』
『야!!!! 니 머리털 다 빠졌어!!!!』
나는 경악을 참지 못하고 고함을 터트렸다.
싸움이 막바지에 가까웠던 탓에 전투를 벌이던 사람들의 내 고함이 눈길을 빼앗겼다.
덤벼들던 엘프를 처리한 네페르티티는 배려없이 말했다.
“……탈모?”
머리에서 김을 뿜어내던 엘프가 돌처럼 굳었다.
적에게 배려하라는 게 더 말도 안 되는 얘기긴 했지만, 나는 그의 끔찍한 말로에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앰뒤 씨발……!! 탈모권법이라니, 너무너무 끔찍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