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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드는 고기만두 그릇을 받자마자 음식 값을 치뤘다.
바로 방으로 가는 노르드와 일행. 마흐잔은 그 등을 허겁지겁 쫓아갔다.
『하, 하룻밤 머물다가 가실 겁니까?』
『저 친구가 또 오면 어쩌려고? 머물고 싶어도 일은 끝내고 쉬어야지.』
그렇다면 방은 왜 잡는다는 말인가?
마흐잔은 당황했지만 노르드와 그의 여자들은 별 질문도 없이 방으로 들어갔다. 혹시 그새 마흐잔만 빼놓고 심념으로 무언가 얘기라도 나누었나 싶을 정도였다.
─펄럭!
방문을 걸어잠근 노르드는 안주머니에서 옷감을 꺼냈다.
어딜 어떻게 생각해도 주머니에서 나올 크기가 아니었는데, 그런 신기한 일에 익숙해진 마흐잔은 놀라지 않고 지켜보았다. 노르드가 커텐을 둘렀다.
촤르륵─.
그러자 박음질도 안 돼 있던 옷감은 야행복으로 변했다.
번갯불에 콩 볶아먹듯 검은 옷의 살수로 변신한 노르드는 곧바로 금속가면을 얼굴에 뒤집어썼다. 곰을 본뜬 가면이었다.
가면을 쓴 순간부터 기척이 옅어진 그가 말했다.
“오래 안 걸려. 만두가 식기 전에 다녀올게.”
“혼자서?”
같이 가지 않아도 되겠냐는 뜻의 질문을 던지는 네페르티티. 노르드는 어깨를 으쓱했다.
“어려워 보이는 상대도 아니었는데요, 뭘.”
─통! 후드를 뒤집어쓴 그는 가볍게 뛰어서 창문 틀에 앉았다. 살갗을 완전히 가린 노르드는 마치 바람에 녹듯이 윤곽을 잃고 투명해졌다.
완벽한 투명화는 아니라서 주시하면 티가 나긴 했다.
하지만 그를 주시하고, 발견하려면 우선 저 작은 기척부터 알아차릴 수 있어야 할 것이었다. 일단 마흐잔은 그럴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검은 야행복은 대낮엔 오히려 눈에 띌 것 같다고 말하려던 그도 입을 다물었다.
“다녀올게.”
노르드는 발소리도 없이 사라졌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어버버 거리는 마흐잔이 부끄럽게도, 다른 일행은 재빠르게 흩어졌다. 네페르티티가 공간을 만들자 다나는 벽을 쳤다.
─콩, 콩!
“벽이 약간 못 미덥네. 좀 얇은 편이야.”
“확인해 보자꾸나.”
상의 한 마디 없이 문을 열고서 복도로 나가는 베로니카.
그녀가 방을 나가자 곧바로 비명이 울려퍼졌다.
“꺄아아아악!! 바퀴벌레 나왔어──!!”
다나는 눈을 감은 채 귀를 기울였고, 마흐잔만 바보처럼 입을 벌렸다.
…달칵. 베로니카는 태연한 얼굴로 문을 열었다.
“어떻더냐?”
“결계 쳐야겠다.”
“알겠느니라.”
─톡! 톡! 베로니카는 손바닥에 올린 알록달록한 돌멩이를 알까기 하듯 튕겼다. 룬 스톤은 방 안의 모서리마다 날아가서 자석처럼 붙었다.
“푸흐흐, 뭐야? 실력이 더 늘었네?”
“주인님을 감금하려면 이 정도론 모자라지.”
“아하. 절차탁마할 이유가 있었지, 참.”
“목표의식…… 성장의 원동력?”
침대를 밀어서 공간을 만든 네페르티티는 짐을 풀지도 않고 고개를 모로 꼬았다.
완전히 꿔다놓은 보릿자루가 된 마흐잔은 언제쯤 되야 뭐라도 물어볼 수 있을까 고민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영문을 모르던 그는 방 안에 소음 차단 결계가 깔리는 걸 깨닫고 일행의 목적을 한 발 늦게 눈치챘다.
─불쑥!
하지만 그가 간신히 입을 열 용기를 되찾았을 때, 별안간 다나의 주머니가 부풀었다. 다나는 눈을 살짝 찡그리며 미스릴 메달을 꺼냈다.
【마스터. 제 2명령권자로부터의 전언입니다.】
손바닥 만한 메달에서 은발의 발퀴리에가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누가 보면 다나가 발퀴리에의 목을 잘라서 들고 있는 것처럼 보일 광경이었지만, 다행히 마흐잔은 간신히 놀라지 않을 수 있었다.
‘화, 황야에서 야영할 때마다 보던 모습이고, 뭐.’
처음에는 노르드의 아내 중 1명인 줄 알았던 저 은발의 미녀는, 불침번부터 온갖 잡일을 능수능란하게 소화하는 인공정령 시녀였다.
노르드와 일행은 저들 정령 시녀를 무척 가볍게 대했는데, 마흐잔은 어쩐지 그 무기질적인 눈빛을 보기만 해도 등골이 오싹해졌다.
마치 상위포식자를 만난 초식동물처럼 본능적인 위기감!
발퀴리에의 눈동자에 소름이 돋은 그는 감히 그 이상 묻지는 못했다.
【뭐라든?】
【전언을 복기. “다 끝났어. 창문 열어둬.”…… 이상입니다.】
【알았어, 고마워.】
발퀴리에는 고개를 끄덕거리고 메달 안으로 돌아갔으며, 다나는 창문을 활짝 열었다.
떠나기 전에 남긴 말마따나, 오래 걸리진 않았다.
“내가 너무 빨리 왔어?”
아무 것도 없던 공간이 일그러지는 듯 하더니, 금속가면이 허공에 붕 떠올랐다.
노르드는 투명화를 해제하며 뭔가를 내던졌다.
─쿵!
투명하던 그것은 바닥을 구르자 커다란 망태의 모습을 드러냈는데, 망태에서 굴러나온 것은 다름 아닌 혀를 빼문 순검장이었다.
감전이라 당한 듯 삐쭉 솟은 머리카락에서 파란 정전기가 튀었다.
다나는 자기 회중시계를 힐끔 보고 중얼거렸다.
“5분이나 걸렸냐? 존나 앞으로는 남편놈 직업이 납치범이라고 말하고 다녀야겠네.”
“산타는 망태 할배의 툰드라 리전폼이지. 못된 아이한텐 벌이 필요한 법이고.”
가면과 겉옷을 벗어던진 노르드가 말했다.
“반찬투정을 하는 나쁜 엘프는 절대로 용서하지 않아요!”
─쏘옥!
노르드는 자기는 만두를 우물거리며, 순검장의 입에는 종이에 싸 온 굼벵이 튀김을 던져넣었다. 교본으로 남겨도 될 만큼 깔끔한 홀인원이었다.
“뭐, 뭘 어떻게 하셨래 이렇게 빨리……?”
마흐잔은 그가 순검장을 심문하려는 걸 깨닫고 드디어 질문을 입에 담았다.
“아, 아니. 그보다 어째서입니까? 이 자가 저희 일정에게 방해가 되긴 하겠지만, 데려와서 심문할 만큼 연고가 있진 않을 텐데…….”
새끼, 질문 한 번 많네.
노르드는 살짝 귀찮기는 했지만 당분간 어울릴 사람을 시공일관 무시할 성격은 못 됐기에, 피식 웃고서 반지를 튕겼다.
“이걸 썼다.”
날아온 반지를 마흐잔은 데자뷰를 느끼며 얼른 받았다.
아니나가 다를까, 바이츠니아 살수의 반지였다.
“쫓아가서 가볍게 머리에 던져주니까 낚아채선 문양을 알아보더라고? 그래서 등을 돌리고 튀는 척 하면서 분신을 깔았지. 아주 좋다고 쫓아오던데?”
뒷골목으로 유인하는 건 그거면 충분했다.
이 엘프는 자기 실력에 상당한 자신감이 있었던 듯한 태도였으며, 노르드는 그런 전사의 자부심을 못 알아볼 만큼 둔하지 않았다.
“덕분에 유인은 쉬웠지. 쫓아와서 분신의 팔을 대뜸 자르길래, 아. 이 새끼가 뭐가 있긴 있겠구만 싶어서 전기통닭으로 만들어갖고 데려왔어.”
“……뭘 물어보시려는 겁니까?”
“뭐긴? 너는 안 신기하냐? 얘는 너랑 같은 엘프인데 변발이 아니잖아.”
두서없는 질문에 마흐잔은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타타르니아의 엘프가 아니라, 바이츠니아 출신 하프이기 때문이겠죠.”
“그래. 차별을 딛고 꽤 높은 지위에 올라간 놈이 차별의 원인이 된 나라의 머리모양을 존중하지는 않겠지. 너희를 잡아다가 출세했다면 모를까.”
“바이츠니아에 충성을 보여주고자, 동족 첩자를 잡았다……?”
“인종차별의 딱지를 떼는 덴 그게 제일이지.”
노력한 보람은 있었던 건지, 그는 ‘불온분자’를 지목하는 사회적 지위를 손에 넣었다.
그 권력이 쓰기 나름으로는 얼마나 위험해지는 것인지, 마흐잔도 모르지는 않았다.
“여기까지만 보면 그냥 차별받다가 성공한, 지 출생을 원망하는 혼혈로 보이지. 그런데 점소이가 그랬잖아? 이 새낀 수도에서 와서 안도성 순검장이 된지 얼마 안 됐다고.”
“그게 뭐가 문제입니까?”
“존나 문제 그 자체지. 여긴 국경이니까 첩자가 많겠지만, 수도에서 굳이 얠 기용해서 첩자 찾는 일에 썼겠냐? 이중첩자일지 누가 알고.”
이만큼 큰 나라에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니다.
출신에 흠이 있는 데가가 ‘호오옥시?’ 하고 의심까지 받는 놈을 그런 중책에 앉힐까?
혹시 이 놈이 ‘잘 봐 둬라, 동지들. 권력의 힘은 이렇게 쓰는 거다’라며 수도에서 잡힌 첩자들을 놔 주거나 할 수도 있는 마당에, 굳이?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듯 마흐잔이 펄쩍 뛰었다.
“앗……! 그, 그렇다면!”
“그럼 당연히 수도 쪽에서 다른 일로 신임을 산 다음, 국경으로 보내진 새끼일 거 아냐.”
좌천을 당했든, 아니면 전시에 첩자를 잡으라고 파견했든.
안도성의 성주가 순검장 지위를 준 데엔 그만한 뒷거래가 있었을 것이었다.
성주에게 돈을 찔러줬을지, 칼을 내밀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거기에 특수부대의 문양까지 알아본다? 이건 뭐 빼박이지.”
기지개를 펴며 손가락을 뚜둑거리는 노르드.
마흐잔은 노르드가 자신보다 더 깊이 생각하고 행동했다는 것을 깨닫고 헛기침을 했다. 부끄러운 기분과 적지 않은 감탄이 섞인 시치미였다.
‘나, 나도 뭔가 도와드려야겠군.’
아무리 안내역 역할로 따라온 거라지만, 얹혀가기만 하는 건 너무 못난 짓 아닌가!
마흐잔은 그 또한 뭐라도 해 보고자 힘껏 주먹을 쥐었다.
“이 반지를 환금해 와 줬으면 좋겠구나.”
그리고 그때, 그런 마흐잔에게 베로니카가 손을 내밀었다.
그녀의 손에는 금 반지가 들려 있었다.
“……이건?”
“보이는대로, 금가락지이니라. 주인님이 꿔다 쓴 돈을 갚는 건 아내의 일이니.”
“아주 그냥 쮸인님을 쓰레기 새끼로 만드네.”
장갑을 끼고 순검장의 몸을 촉진하던 노르드는 넌더리를 내며 투덜거렸다.
금 반지는 무늬도 없는 밋밋한 모양이었다.
금은방에서도 의심하는 일 없이, 그냥 바이츠니아에서 만든 반지로 보고 돈으로 바꿔줄 것이다. 마흐잔은 당혹스러워 하는 한편으로 말에 실리지 않은 속뜻을 이해했다.
마흐잔은 심문 과정에 방해가 되는 것이었다.
“……예. 천천히 다녀오겠습니다.”
씁쓸하긴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종족을 구할 영웅이 보여주는 여러가지 놀라운 모습에 가슴이 뛰고, 모험담의 등장인물 중 1명이 된 듯한 흥분을 느끼지 않았다면 거짓말이 된다.
그래도 함께 가 주는 게 어디인가. 마흐잔은 금 반지를 챙기고 문고리를 쥐었다.
“아니, 잠깐만.”
그렇게 마흐잔이 문을 열려고 했을 때였다. 노르드가 그를 만류하듯 중얼거렸다.
사내 놈 몸을 만지기 싫어서 검은 장갑을 끼고 검진하던 그는, 심폐정지술의 요령으로 기절한 순검장의 몸을 훑다가 나지막하게 한숨을 쉬었다.
“아주 며칠 건너 며칠로 개지랄이네, 시발 놈들.”
“──쿠엑!!”
순검장의 입에서 굵은 벌레 다리가 튀어나왔다.
일전에 마흐잔의 동료였던 엘프가 보여주었던, 자폭의 전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