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게뭉게── 개틀링건!!!』
압축 증기를 폭발시키며 마법을 섞은 주먹질을 쏟아냈다.
투과과과─!! 팔 한짝이 몸과 함께 채찍에 묶인 노땅이었기에 내 뭉게뭉게 개틀링건은 몇 발인가 유효타를 냈다. 사람 피부 같지 않은 감촉이었다.
『치이잇!』
『우리 오리아나들의 복수다, 알프헤임 광화문 할배!!』
착하고 성실하던 발퀴리에들을 죽인 죗값! 몇 년 안 남은 목숨으로 값아라!
한손으로 권타를 쳐내는 아슈카트. 금나수로 내 손을 낚아채려는 모양인데, 같은 기술에 두 번 세 번 당해줄 만큼 허접하지는 않다!
‘직접 닿지 않으면 마법은 유지된다.’
닿은 순간 오러도 마나 코팅도 벗겨지지만, 저 틀딱에게 직접 접촉하지 않은 팔꿈치의 증기에는 영향이 없었다.
‘베로니카의 〈공간이동〉을 막았을 때처럼 틈을 주지 않으면──’
틀딱 엘프는 킬각을 잡으려다가 흐트러진 집중을 놓치지 않았다.
─쩍! 몸을 비틀며 날아온 킥이 내 팔을 후렸다.
정확하게는 머리를 노린 걸 팔로 막은 거였는데, 틀딱 엘프는 그 반동으로 내 팔을 낚아챘다. 무슨 압착기에 걸린 것처럼 팔이 아릿해졌다.
『하하하! 이대로 부러트려 주랴?』
『좆이나 까 잡숴, 치매 틀딱! 누굴 뒤진 샌드백 할매랑 착각하냐!』
『가장 처참한 망각은 죽음이지. 어디 오늘이 네 마지막 기억이 되지 않게 노력해 보아라!』
─뚜둑! 팔 관절을 뽑아서 채찍에 묶였던 팔을 꺼내는 틀딱.
추락까지 약 2~3초. 우리 수준엔 승패가 나도 이상하지 않은 시간!
이런 초근접 거리의 인파이트는 특기가 아니다! 달인끼리의 싸움이기에 오히려 전문분야의 차이가 무시할 수 없었다. 솔직히 좀 위험했다.
기술이 많았기에 오히려 순간 떠오르는 전법이 적다! 물딜 마딜 하이브리드인 나는 마나 활용이 막히면 육탄전 기술은 비교적 후달린다!
“──그 손 놔.”
그때였다. 채찍을 내려찍으며 스스로도 도약한 네페르티티가 서늘하게 뇌까리며 틀딱의 머리통에 사커킥을 갈겼다.
『끄우우욱!!』
『노인공경 펀-치!』
옆으로 젖혀지는 적의 머리통! 나는 그 틈에 두 주먹을 뻗었다.
공중에서 부딪힌 3인의 달인은 순식간에 초수를 겨루었다.
투파파파파팟──!!
─쿵!!
“아악! 팔 존나 아파!!”
나는 피멍도 안 들었을 손으로 엄살을 부리면서 창을 호출했다.
틀딱이 네페르티티에게 발차기를 날렸다. 그녀가 피해내는 순간, 몸을 비틀며 연속동작으로 낮아진 몸이 턱을 노리고 뻗었다.
속도 차이를 파악하고 날린 불의의 일격!
나는 네페르티티의 뒷목을 잡아당겨서 공격에서 몸을 빼 주었다. ─팡!! 빗나간 권각술의 끊어치기 동작이 공기를 터트렸다.
네페르티티는 내 어깨를 붙잡고 그대로 다리로 발차기를 연발했다.
『허, 연계가 썩 노련하구나!』
추좌좌좌좍─!!
틀딱은 후퇴하며 막아내고 지 목에 걸린 그녀의 채찍을 쌍절곤처럼 휘둘렀다. 킥의 연계가 끊긴 네페르티티의 발이 채찍에 딱 붙잡혔다.
하지만 그때는 내가 그녀의 디딤대 노릇을 하며 모은 마나를 터트렸다.
마나라고 방심하던 틀딱은 내가 발로 수류탄을 까듯 터트린 지면의 흙과 돌멩이가 총알세례처럼 몸을 때리자 혀 차는 소리를 냈다.
『옆으로 비켜요!』
고함을 지르자 팔 힘만으로 내 어깨를 딛고 몸을 피하는 네페르티티.
나는 팔에 모은 마나를 마나로 뿜었다. 내 오른팔이 굵직한 기둥처럼 오러에 덮이면서 아름다울 만큼 찬란한 빛을 튀겨댔다.
틀딱의 주먹이나 발길질이 닿지 않는 거리이며, 동시에 내가 오러를 빚어내는 틈을 줄 거리!
하지만 반대로 저 늙은이가 그 자리에서 공격을 날리면, 이번엔 반대로 내가 위험해질 수도 있는 거리였다. 나는 그 위험을 감수하고 오러를 크게 쥐어짰다.
아슈카트는 움직이지 않았다.
단지 발을 무겁게 디디고 내 빈틈을 자신의 반격기를 갈무리하는 시간으로 쓸 뿐.
정면에서 맞겨룰 생각인가. 바라는 바였다. 나이 처먹을대로 처먹을 새끼를 상대로 힘 싸움에서 빼 버리면 어디 가서 마초 소리는 하지도 못 한다.
『빛이 되어라──!!』
『실패에서 배울 줄을 모르는군!』
거의 미사일 폭격이나 다름 없는 권격에도 틀딱 엘프는 코웃음을 치며 양팔을 돌렸다.
사람 몸통 만한 오러에도 조금도 공포나 위협을 느끼지 못 한다는 듯한 자세! 좌우의 팔이 텅 빈 우물처럼 모든 걸 빨아들일 듯이 굽이쳤다.
나는 그런 그의 심상에서 황야를 보았다.
아무런 것도 낳지 못하고 쇠퇴할 운명의 자연.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반대로 악의 역시도 꽃피지 못하는 무(無)의 극치였다.
우리는 양자 모두 회피를 고려하지 않고 오의의 맞겨룸에 나섰다.
─챙!!
분명히 주먹끼리의 부딪힘이었는데, 살기로 날이 세워진 격돌은 무슨 날붙이끼리 부딪히며 깨지는 것만 같은 소음을 만들어냈다.
풀밭이 ○자 두 개를 겹친 밴다이어그램처럼 뻥 뚫리고, 우리의 위치가 뒤바뀌었다.
휘리리릭─!
80년대 홍콩 영화처럼 회전하던 할배가 초원에 자라난 낮은 나무의 끝에 한쪽 발로 섰다. 나는 숨 쉴 틈도 없이 몰아치던 공방을 멈추며 이제야 좀 숨을 골랐다.
전투에 휘말렸던 들판의 이파리가 팔랑거렸다.
『……그 잠깐 사이에 많이도 꾀했구나.』
나무에 서서 한손을 뒷짐 진 아슈카트가 감탄을 흘렸다.
뚝, 뚝….
그가 들어올린 손바닥은 핏방울을 흘렸다. 내가 내지른 회심의 일격이 손을 스쳐지나가면서 남긴 자상이었다.
치이이이이익…….
내 팔꿈치에서 염산을 끼얹은 듯 살벌한 연기가 뿜어졌다.
공격과 공격이 격돌하는 찰나, 나는 내 오러를 〈구름 소환(Summon Cloud)〉의 술식에 때려박고 싸그리 증기의 가속력으로 바꿨다.
눈에 확 들어오게 만든 오러는 페이크였다.
아슈카트는 즉시 그걸 눈치채고 내 증기 가속의 마나를 파훼했지만, 단 한순간이라도 저 틀딱보다 속도와 위력을 올릴 수 있다면 충분했다.
내 목표는 이기는 게 아니라, 적의 약점을 찾는 거였으니까.
아슈카트가 살벌하게 입술을 당겼다.
『구태여 권각이 닿지 않는 거리에서 제 빈틈을 드러내? 내가 일촉즉발의 승부에서 격공장(隔空掌)의 묘리를 펼치나 보겠다는 일념으로?』
『그 격공이라는 게 뭐건, 니가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지는 확인하고 싶었거든.』
패애앵─ 착! 나는 창을 손에 되돌리며 말했다. 네페르티티도 발로 차올린 채찍을 낚아챘다.
전사라고 해도 떨어진 상대를 공격하는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물론 성향에 따라서 ‘참격 같은 씹게이 짓 말고 거리를 좁혀서 싸워야 진짜 전사지!’ 라는 생각을 가지는 사람도 있기는 할 것이었다.
하지만 거리를 좁히는 것보다 빠른 견제나 선쿨 없는 즉발 공격이 유효할 때도, 저 틀딱은 어쨌든 거리부터 좁히려고 들었다.
피 흐르는 주먹을 움켜쥔 틀딱이 낮게 웃었다.
『그래서, 어떻더냐?』
『네 언밸런스한 강함에 대한 호기심이 풀렸지.』
내 엘리트 대갈통에 물음표가 뜬 건, 처음 발퀴리에들이 당했을 때부터였다.
‘너무 맥없이 당했어. 마나가 충분했는데도.’
첫 등장 시에 강하던 양산형이 전투력 측정기가 되는 것!
만화나 영화라면 마땅한 일이다. 주조연들보다 엑스트라에게 더 비중을 줄 수는 없잖은가?
단, 그게 현실에서 벌어진 것이라면 문제가 크다.
‘저 틀딱이 초월적으로 강하다면 또 모를까.’
그랬다면 발퀴리에들의 돌연사도 말이 되었다.
하지만 실태는 어떻던가? 저 틀딱 엘프는 비현실적인 마나량과 굉장한 무술을 보여줬지만, 우리가 도무지 상대조차 안 될 만한 강자는 아니었다.
‘……아직 나한테 마스터 클래스 전사의 강함은 상상의 영역에 불과하다.’
내가 싸웠던 마스터 클래스의 존재들은 전사가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그래도 나랑 네페르티티가 대항할 수 있는 한, 이 점만은 확고한 사실이었다.
──저 틀딱 엘프는 마스터 클래스가 아니다.
그저, 최상위 중의 최상위 급으로 강한 미스릴 클래스의 전사일 뿐.
『계산 착오는 전제가 틀렸거나 논리가 비약할 때 생겨나지.』
그럼 왜 저 새끼에게 발퀴리에들이 당했는가?
몇 번이고 마법을 파훼해버리던 걸 생각하면, 또 내가 수를 겨루며 느꼈던 저 틀딱의 심상이랄 걸 생각하면, 대충 알 만 했다.
『니새끼의 강함은 고매한 경지 덕분이 아니다. 마나를 증발, 아니 고갈시키는 그 특수한 기술에서 나오는 거지.』
모든 마나를 자신의 몸을 매개체로 고갈시키는 기술.
아슈카트가 보여준 무예는 그런 것이었다.
저 새끼나 이 초원에서 일말의 생명력조차 느껴지지 않는 것도, 내가 베로니카의 마나를 고갈시키려는 걸 눈치채지 못한 것도 같은 이유였을까.
‘기술에서 마나 자체가 느껴지지 않으니 달인의 감각이고 지랄이고 좆도 의미가 없지.’
그리고 발퀴리에들은 창을 붙잡힌 뒤에, 나라도 피할 수 있는 공격을 피하지 못했다.
그건 왜인가?
『발퀴리에는 정령과 비슷한 마법생물이다. 네 손에 잡혀서 기술의 권역에 들어간 순간부터, 창 자체의 위력부터 몸의 기능까지 전부 정지한 모양이더군.』
인간은 마취를 당하면 의식이 있어도 이도저도 못하고 쓰러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움직이는 것에도 마나가 필요한 발퀴리에들은 저 틀딱과 상성이 최악이었다.
저 기이한 기술을 펼친 순간부터 발퀴리에들은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되니 말이다.
말을 달리 하면, 저 기술은 완전히 발퀴리에를 죽이기 위한 기술이란 뜻이었다.
알프헤임을 불태웠던 발퀴리에들에게 설욕하기 위한, 그런 기술 말이다.
‘어디 그것만인가.’
저 기술은 발퀴리에의 수장이자, 프레이야의 〈인신〉인 레티티아에게도 치명적이다.
아니, 레티티아한테만 그런 게 아니다.
외부에 흐르는 마나 자체를 제거하는 기술이다.
내가 싸워본 2명의 〈인신〉 모두에게 유효할 것이었다.
『구갈명경(求渴明憬)이라고 이름 붙였지.』
고향을 잃고 도망친지 어연 천 년. 집념만으로 초인적인 경지에 오른 엘프는 황야처럼 생명력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낯짝으로 말했다.
달인의 무예는 그들 자신의 신념의 발현이다.
고향을 잃고 황야로 도망쳐, 메마른 대지에 홀로 남아서 모르는 신을 섬기며 쌓은 고갈의 무예.
그 집념의 원동력이 무엇일지도 상상이 갔다.
『의식해서 도달한 경지는 아니다. 가르쳐주고 싶어도 배우질 못하더군.』
『당연히 그렇겠지. 너 같은 정신병자가 흔하면 어디 다른 엘프들이 살 맛 나겠냐.』
모든 무예는 사용자에 따라서 성향이 바뀐다.
그런데 저런 아무 것도 없는 심상에서 자연스레 발현된 기술을 흉내낸다? 차라리 고양이가 하늘을 나는 게 더 말이 될 것이었다.
보통 사람은 저딴 텅 빈 감성을 가질 수 없다.
생명의 강함의 근원이 되는 게 마나다. 거기엔 전사, 마법사의 구분도 없다.
그런데 그런 마나를 그걸 통째로 봉인한다고?
‘진짜 별 애미 뒤진 씹사기 기술도 다 있네.’
자기 몸에서 마나를 뿜어내지 못하는 건 아마 그 기술의 부작용이다.
솔직히 저만한 기술의 대가라면 당연한 수준일 것이다. 부작용이라고 부르는 것도 아깝다.
‘……저 틀딱 엘프는 마스터 클래스가 아니다.’
어떤 반반뼈치킨 리치랑 달리, 천 년을 들여도 그 영역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하지만 실제로 아슈카트가 에퀴녹스와 싸운다면?
마스터 클래스는 자신보다 못한 이들에겐 결코 지지 않는다고 했지만── 아직 그 경지에 이르지 못한 내 관점에서 보자면, 충분히 승산이 있을 것 같았다.
그만한 마나량, 그만한 기술이다.
비록 강함의 경지로서 정의하지는 못하겠지만, 황야와도 같이 메마른 고갈(枯渴)의 무예는 거의 모든 마법사를 상대로 우위에 설 수 있었다.
『마법의 신을 주신으로 섬기던 엘프가 이제는 마법 자체를 부정하시겠다? 그거 가관이군.』
『신은 죽었다. 이미 내가 섬기는 이는 오직 한 분 뿐이니라.』
살기조차 흘리지 않고, 모든 마나를 자기 안에 갈무리하는 아슈카트.
나는 이제까지 이상으로 온 신경을 집중했다.
나한테 쪽도 못 쓰고 뒤졌던 엘프 살수들이랑은 달랐다. 아슈카트는 자신의 강한 의지로 헤니르를 따르고 있었다.
저 말도 안 되는 경지, 구갈명경은 천 년의 가혹한 단련으로 빚어낸 기술이었다.
마법사가 마법으로 뜻을 펼치듯, 아슈카트는 저 메마르다 못해 아무런 기적도 용납하지 않는 심상을 자기 손발과 무예로 현실에 펼쳐내는 것이었다.
‘차라리 전투에 특화한 창세의 권능 수준이군.’
1명의 엘프가 단련만으로 얻을 경지라곤 상상도 못할 정도였다.
존나 비겁한 건, 그러면서 자기는 마나를 실컷 쓴다는 것이었다.
마법? 안 돼. 오러? 안 돼.
근데 내가 마나로 몸을 강화해서 패는 건 돼.
상대하는 입장에서 더럽게 꼴받는 전법이었다.
『네 기술이 마법이나 몸 밖으로 뿜어낸 마나를 파훼한다는 건 이해했다.』
하지만 나는 되려 웃음을 지었다. 적이 인성질 좀 해댔다고 찡찡댈 거면 달인 딱지 떼야지.
『그렇지만 몸 속에서 운용하는 마나는 어떻게 하지 못하는 모양이지?』
『누구나 자신의 손과 발로 세상에 맞설 자격은 있을 터.』
무기도 없이 공방을 준비한 아슈카트는 덤덤한 얼굴로 말했다.
자기 손의 상처가 증거였으니 따로 부정해봤자 소용 없다는 생각일까. 아니면 저기까지가 저 틀딱의 가치관인 건가.
진짜 말 하나하나에서 쉰내가 나는 것 같구만. 우욱, 아재 무공에서 틀내 나욧!
『운명에 저항하는 좆간을 혐오하는 것 치고는 포용력 넓은 의견인걸.』
하지만 그 덕분에, 나는 저 틀딱의 황야에 남은 스크래치가 뭔지 감이 잡혔다.
『대쪽 같으시군. 여왕이고 왕녀고 뒤지건 말건 알 바 아니실 만 해.』
이거 인성질이라면 내가 한 수 위인 것 같지?
내 정중한 팩트에 틀딱 엘프의 얼굴에서 표정이 눈 녹듯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