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653화 (652/1,009)

***

룬 마법 탐지기는 생각보다 평범한 생김새였다.

『은인이시여. 사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아, 여기 제 아내한테 설명 부탁드립니다.』

여신 사티스의 화살촉을 사용할 사람은 같이 온 베로니카다.

‘베로니카가 직접 봐야 〈공간이동〉이 가능할 테니까.’

장로들은 알겠다는 듯 베로니카에게 설명했고, 우리 여신님은 총명하게 금방 알아들었다. 일족의 미래가 걸린 일이라서 집중력에 3배 버프가 걸린 모양.

『일족의 규칙 상 저희도 지켜봐야 합니다만, 이 자리에서 일어난 일은 결코 발설하지 않겠노라고 맹세하겠습니다. 양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예. 당연한 일이죠.』

일족의 규칙이라고 해 봤자 댁들이 천 년 동안 직접 만든 거 아녀? 하고 따질 수도 있었지만, 난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나라에 하나 뿐인 슈퍼 컴퓨터 레이더다. 빌려준 것만 해도 고마워 해야지.’

우릴 믿고 맡겼다가 고장이라도 나면 귀찮다.

아, 여기서 귀찮다는 건 우리가 그렇단 뜻이다. 장로나 다른 엘프들은 거품을 물며 기절할 텐데, 귀찮다는 말로는 안 끝날 대사건이지.

스스스스─.

베로니카가 화살촉을 올리고 주문을 외우자, 그 탐지기의 거울에 영상이 떠올랐다.

‘아, 우리도 영상으로 볼 수 있구만.’

이런 거면 굳이 베로니카가 안 해도 됐겠네.

나랑 다나가 해도 문제 없었겠지만, 누구보다도 이 일에 집중할 수 있는 건 역시 베로니카겠지. 난 우리 아내님을 믿었고, 그녀는 결과로 보답했다.

촤아아아─!!

거울 속 영상이 엄청난 속도로 움직였다.

마치 핸드폰 동영상 촬영을 켜고 휘두른 것처럼 풍경을 읽을 수조차 없는 속도!

물리적인 속도로는 소리보다 빠른, 진짜 전투기조차도 비교가 안 될 속도였다.

‘……얼마나 먼 거야?’

그렇기에 나는 멈출 생각도 없이 몇 분이고 쭉 이동하는 화면이 무척 당황스러웠다.

‘이 정도면 거의 대륙횡단 정도의 거리 아닌가?’

지켜보는 우리가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멀다. 이미 대륙을 벗어나서 바다 위였다. 탐지기에 떠 있는 화살촉이 가리키는 방향은 줄곧 남서쪽이다.

‘타타르니아에서 남서쪽으로, 바다를 건너 수만 킬로미터.’

그런 곳에 대륙은 없다.

브리타니아에서 화살촉을 썼을 때는 분명 고르갈리아와 게르마니아 사이의 어딘가였다. 하지만 내 머리에 지도를 펼쳐봐도 뭔가 이상했다.

바다 위의 어떤 무인도 같은 곳이라도 되나? 그 선지자의 분신이 있던 정원섬처럼?

─우뚝!

거기까지 생각한 나는 망망대해에 우뚝 멈춰선 화면을 보고 입을 벌렸다.

베로니카가 시점을 360도 돌렸지만 섬 같은 건 있지도 않다. 진짜 말 그대로 물 반 공기 반으로 구성된 푸른 바다였던 것이다.

『……찾으시는 물건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바다 밑에 가라앉은 듯 합니다.』

엘프 장로 중의 1명이 말하기 어렵다는 듯 이야기했다.

『찾으시는 물건을 옮기던 배가 난파당했거나, 강, 바다를 타고 흘러간 끝에 저런 망망대해까지 가 버린 게 아니겠습니까?』

『만약 파도에 휩쓸릴 정도로 작은 물건이라면 찾기 어려우실지도 모릅니다. 저 장소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다른 곳으로 쓸려갔을지도……』

『쉿. 잠시만요.』

손가락을 세우며 그들을 조용히 시켰다. 탐지기 위의 화살촉이 밑을 향하며 우뚝 서 있다. 저기서 바로 90도 아래쪽에 저주의 근원이 있는 것이다.

베로니카가 전지적 레이더 시점을 이동했다.

‘해구(海溝)?’

화살촉은 유인하는 것처럼 바다 아래의 커다란 해구로 내려가고 있었다.

뉴스에서 맨날 말하는 ‘여의도의 몇 배 크기’란 표현은 그다지 실감가지 않던 나였지만, 저 해구는 틀림없이 여의도 10배 면적은 들어가고도 남겠지.

하지만 자연의 웅대함에 경외심을 품기도 잠시. 나는 바로 위화감을 눈치챘다.

‘……광조량이 이상하군.’

아직 심해라고 할 만큼 내려가지도 않았는데, 그 해구 안쪽은 너무 어두웠다. 태양광이 닿지 않을 깊이나 각도가 아닌데도 말이다.

“관찰하기 어렵군. 빛을 켜도 괜찮겠나?”

베로니카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질문했다.

브리타니아 어를 할 줄 알는 장로는 곤란한 듯 목을 움츠렸다.

“탐지기 근처에서 마법을 써도 되겠느냐는 뜻이라면, 괜찮습니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빛을 켜도 저 거울 속의 경치가 밝아지지는 않습니다.”

“상관없다는 뜻으로 듣지.”

손바닥 사이에 빛을 피워내는 베로니카.

─팟! 빛은 한순간 엄청나게 압축된 섬광탄처럼 빛나다가 사라졌다. 그리고 거울 속 바다 밑에서 빛이 터져나왔다. 엘프 장로가 입을 벌렸다.

『……수 만리는 떨어져 있을 해저에 어떻게?』

어떻게긴. 〈공간이동〉이지.

‘마법으로 만든 빛을 저쪽에 날려보냈군.’

빛을 구성하는 광자의 무게는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던가.

그렇다면 저런 거리를 마법진 없이 이동시켜도 마나 부담은 적었을 것이다. 순식간에 그런 판단을 해내다니, 역시 우리 여신님도 머리 좋기로는 어디 가서 꿀릴 일은 없겠다.

‘좀 생뚱맞은 면이 있어서 그렇지.’

빛을 날려서 해구 안을 밝힌 베로니카는 장로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거울을 노려보았다. 왜 그러는 것인지는 바로 알 수 있었다.

파스스스…….

『빛이……?』

베로니카가 피워낸 빛은 마치 그림자가 아니라, 다른 무언가에 뒤덮이는 것처럼 어둠에 파묻혔다. 당연히 해구 안쪽을 밝히지도 못했고 말이다.

“……자연스러운 어둠이 아니구나.”

“마법이라는 얘기? 저만한 넓이를 통째로?”

다나는 베로니카의 읊조림에 반신반의하듯 질문했는데, 베로니카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듯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바닷물을 매개체로서 해구 자체를 결계의 권역으로 삼은 듯 하다. 만약 저 망망대해를 헤엄치는 지성체가 있어도 내부를 알아차리지 못하게.”

“고고학자로서 흥미로운 소식이네. 도와줄게.”

다나는 바로 일어나서 베로니카의 손을 잡았다. 미녀 둘이 저렇고 있으니 참 보기 좋았지만, 나는 아쉬움을 달래고 거울 쪽에 눈을 돌렸다.

파아아아아아앗─!!!

다나가 피워낸 빛이 해저에 폭발했다.

빛의 마나와 적성이 높은 다나의 힘을 빌리자, 이번에는 심해 같은 어둠을 몰아내고 해구 안쪽을 마나의 스포트라이트로 밝힐 수가 있었다.

그리고 드러난 것은 놀라운 광경이었다.

해구 안쪽에는 섬이 1개 틀어박혀 있었다.

『성?! 아니, 도시인가!』

『성이라기보다는, 섬…… 인 듯 한데.』

『해저에 도시국가가 가라앉아 있단 말이오?!』

거울을 지켜보는 좌중이 경악에 휩쓸렸다.

나는 달인의 동체시력을 최대한 발휘했다. 나를 제외한 만물이 느려지고, 그 찰나를 잡아 늘리는 체감시간 속에서 빠르게 섬을 훑었다.

원근감이 아득해질 거리지만, 못 알아볼 건 없다.

‘주민을 위해서 거리와 건물의 구획이 나뉘어져 있다면, 그걸 기준으로 대략적인 섬의 크기를 알 수 있을 거다.’

비교할 대상이 있다면 측량은 어렵지 않다

이 역시 고고학자로서 갖춰야 할 대략적인 덕목 중의 하나였다. 도로와 건물을 살펴보던 나는 나 자신이 저기에 서 있다고 가정하고 계산식을 세워보았다.

결론은 금방 나왔다.

‘……믿겨지지 않을 만큼 넓다.’

내가 공식을 잘못 세웠나 싶을 정도의 넓이다.

‘제주도 면적이 1800㎢였나 하지 않았나?’

그리고 저 섬은 그것보다 더 컸다.

도로를 기준으로 눈대중하면 구획 하나가 거의 사르가디스의 2~3배 정도!

그런 구획이 동북으로 4개 씩.

게다가 동북 구획보다 더 큰 중앙구획도 있다.

계산이 틀리지 않다면 아마 브리타니의 북부의 절반 이상의 크기였다. 게다가 내가 보기에, 섬의 모양은 배의 조타륜이나 차 핸들처럼 생긴 구획이 절반 이하로 쪼개진 것 같기도 했다.

만약 그 생각이 사실이라면 완전한 섬의 크기는 최소 저 3배 이상.

총 면적은…… 브리타니아의 40% 쯤 될까.

‘……장난이 아니네.’

지금 있는 섬도 로마니아-게르마니아에선 후작령 쯤 되야 간신히 가능한 넓이다.

아르마알스 가문의 땅과 비슷하거나 조금 작은 정도.

지저에 가라앉은 섬의 크기에 무슨 의미가 있겠냐만…… 저런 섬이 바다 밑에 가라앉아 있는데, 그걸 이세계의 누구도 모르고 있었다니?

고고학자인 나랑 다나조차 모르는 문명의 흔적, 그것도 최소 고대문명의 섬 도시국가.

바이콘의 저주의 근원이 그런 곳에 있었다니?

나는 상식인으로서의 혼란과 학자로서의 흥분, 그리고 여신의 남편─겸 주인님─으로서의 곤란함 등이 뒤섞인 감정에 그만 이상한 표정을 짓고 말았다.

─카칭!

우리의 당혹을 가라앉혀 주기라도 하겠다는 듯, 붉은 화살촉은 덫이 닫히는 것처럼 입방체로 변신했다. 언외로 ‘여기가 목적지다’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달칵.

입방체를 탐지기에서 떼어내는 베로니카.

그러자 입방체는 다시 화살촉의 형태를 갖췄고, 거울 속의 영상이 꺼졌다. 찬물을 끼얹어진 사람들처럼 조용해진 천막에서 베로니카가 말했다.

“기나긴 장정의 대미를 장식하기에 적합한 무대로구나.”

그녀는 내게 걸어와서는 장난스럽게 웃었다.

“우선 헤엄부터 배워야겠군. 가르쳐 주겠느냐?”

“……미안, 사실 나도 수영 못 해.”

이 세상에 오기 전까지는 비행기를 타 본 적도 한 손에 꼽는다고.

차라리 바다 위를 달리면 달렸지, 바다 밑 수백 미터는 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