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해 기능?’
설마 이 섬이 움직이기라도 한다는 말인가?
시발, 그게 물리적으로 가능해? 이만한 질량을 옮길 힘이려면 지각변동 수준이여야 할 것이었다. 핵폭탄 따위는 명함도 못 내밀 출력이 필요하겠지.
아니면 뭔가 마법적인 작용이라도 되는 걸까? 난 백골의 시체를 살폈다.
‘느낌 상, 아마도 이 백골은 자기부상기능을 잘 모르는 사람이었을 거다.’
대충 그런 기능이 있다~ 수준의 지식이었겠지.
그러니까 이런 기밀문서를 들고 핵심 중추까지 온 게 아닐까? 그리고 갇혀서 사망했다는 건 끝내 그 기능을 사용하지 못했던 듯 했다.
‘……아니면 사용한 결과가 이거거나.’
섬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면 잠수시킬 수도 있었겠지.
이 해구에 섬을 가라앉게 만든 건 이 백골일지 몰랐다. 나는 종이에 눈을 돌렸다.
《아틀란티스를 다스릴 자격은 왕에게만 있다.》
《대해의 왕에게는 응분의 자격이 요구된다.》
《제왕의 자격을 가진 자, 혼으로써 증명하라.》
그렇게 적힌 목차의 뒤로는 사용법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전문서적 같은 글이었기에 나는 그 내용을 살피기보다 목차에 주목했다.
“자격이라.”
니미럴 놈들. 결국 여기서도 혈통빨 문제냐.
그럼 솔직히 그림의 떡일 뿐이었다. 무슨 아틀란티스의 왕족 같은 게 있기라도 한 게 아니고서야 현대 이세계인이 섬을 조종할 수는 없을 것이니까.
‘차라리 그게 나을지도 몰라.’
이 섬이 정말로 배처럼 움직일 수 있다면, 그건 개인이 소유하기에는 너무 차원이 다른 힘이었다. 병기로 사용하지 못하더라도 그랬다.
지구에서도 섬 하나를 두고 영토 분쟁을 일으키려고 떼를 쓰는 종자들이 있는데,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이동식 아일랜드라고?
존나 각국 왕들이 칼 들고 일어날 걸.
천공신이 대수냐. 좆간 사회는 하늘보다는 땅이 더 값진 세상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브류나크를 찬 왼손으로 장치를 매만졌다.
그러다가 불현듯 깨달았다.
“……시발?”
웅웅웅웅……!!!
브류나크도 나랑 같은 걸 눈치챈 듯 몸을 떨며 울어댔다.
내 영혼의 일부가, 이 차가운 마도구 장치에게 이끌리고 있다.
웅웅웅웅─!!
정확하게 말하면, 브류나크에게 맡겼던 어둠과 음의 마나가 말이다.
나와 하나가 된 브류나크 덕분에 나는 에퀴녹스와 싸울 때처럼 그 마나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가 있었다. 어지간한 흑마법사보다 나을지도 몰랐다.
“……잠깐만.”
서둘러서 석판에서 오리할콘 기둥을 꺼냈다.
예르나를 족치고 얻었던 오리할콘 원기둥! 나는 신경이 쓰이던 장치의 뚜껑을 열고 그 오리할콘을 거침없이 삽입했다.
─찰칵!
오리할콘 기둥은 빈틈없이 들어갔다.
마치 원래 이곳에서 유래한 물건이었다는 듯이.
남은 건 마나 뿐이었다. 혈인을 찍는 것처럼 내 손가락 끝에 먹물 같은 마나가 묻어나왔다. 전에 레티티아의 손으로도 적출되었던 사악한 마나다.
─똑.
먹물 같은 마나의 응고체가 장치에 꽂힌 기둥에 떨어졌다.
──찰나의 정적.
…쿠구구구구구구구궁!!!!!!!
그리고 그 순간의 정적이 거짓말처럼, 가라앉은 섬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기겁을 하며 석판에다가 대고 째지는 목소리로 외쳤다.
“베로니카, 미안!!!! 끌어올려줘!!!!”
이 시발, 난 아무 것도 안 만졌는데!!
랜섬웨어를 깐 컴맹들의 상투구를 읊자 내 몸이 빛에 감싸였다. 잠깐 눈을 감았다가 뜨자 나랑 내 일행이었던 발퀴리에들은 암무나 호에 있었다.
하지만 그 암무나 호도 평화롭진 않았다.
촤좌좌좌좌좌좌좌─!!!!
“아아악!! 이 미친 석사 새꺄!! 니 뭐 건드렸어!!”
다나가 갑판에서 아무 거나 붙들고 외쳤다. 저 밑의 바다에서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해수면에도 엄청난 파도가 일어나고 있었다!!
“시발!! 잠깐 만졌다고 이 지랄 나는 게 말이 돼?! 난 잘못 없어!!”
전부 빌게이츠가 나쁘다. 난 그냥 평소처럼 일 좀 해 보려고 했는데 지가 멋대로 고장난 거라고! 전문지식이 없는 사용자를 고려해서 만들었어야지!
“그거 누가 들어도 선배가 잘못한 경우에요!!”
“뱃, 배배배배뱃!! 배!! 배부터 움직이자──!!”
“꺄아아아아아아아악!!! 노르드얼른요이러다가배뒤집히겠어요──!!!”
간만에 당황하는 프랑과 티르시 콤비였다.
경악스런 성장을 이룬 그녀들에게 옛날 하수도 시절을 방불케 하는 비명을 지르게 할 정도로 이 파도는 만만치 않았다! 나는 서둘러서 마나를 끌어올렸다.
“다들 아무 거나 꽉 붙잡아!!”
오른손과 왼손에 고열과 냉기를 회전!
아내들이 제대로 매달린 걸 확인하고 대마법을 발동했다.
“──꾸 드 버스트!!”
천공절대영역의 폭발을 암무나 호에 갈겼다. 난 부지불식간에 이 선박의 강도와 실드라면 견딜 수 있으리라고 봤고, 내 예상은 적중했다.
쿵─!!!
미라클 선장 캐논을 추진력 삼아서 암무나 호가 가속했다.
근데 배의 엔진이 없으면 멀리 못 가는데! 내가 발 뒤꿈치를 돌리려고 할 때, 때마침 네페르티티가 항해실에서 뛰쳐나왔다.
“자동 항해 기능, 켜 뒀어.”
“잘 하셨어요!! 이제 이대로 좀 물러나자!!”
“그래서 뭔데!! 밑에서 뭐가 올라오는데?! 존나 뱀장어 드래곤이라도 깨웠냐?!”
“섬이야, 섬!! 아틀란티스가 부상한댄다!!”
혼란스럽게 외치면서 나는 위화감을 느꼈다.
시발, 천공신인 오딘하고 바다 밑의 섬이 당최 뭔 연관이 있지?
이건 뭔가 아니다. 평소와는 달랐다.
오딘이나, 그 후계자인 울프헤딘.
그도 아니면 로두르=로키의 파파고 번역능력.
내가 일으켰던 대부분의 ‘뎃?’ 싶은 일들은 전부 거기서 유래한 것이었다.
하지만 아틀란티스의 항해 기능은 다르다.
그 셋 중 어느 것과도 연관이 없는 장소!
‘그런데도 내 마나에 반응한다고? 왜?’
머리를 헤집는 의문은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올라오느니라!!”
겁도 없이 갑판 난간을 붙잡고 밑을 보던 베로니카가 외쳤다. 쿠웅─!! 해수면이 높이 뜨면서 거친 파도에 베로니카의 몸이 붕 떴다
“네페르티티!”
“응!”
─휘리릭!
채찍이 뻗어서 베로니카를 낚아챘다. 하지만 그 우악스런 힘에 끌려가면서도 베로니카의 눈은 막 떠오르는 반달 형태의 도심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다시 찰나, 부유감.
콰아앙─!!
쓰나미에 휩쓸린 듯 공중부양한 배는 얼마 못 가 바다에 부상한 아틀란티스에 추락했다. 애먼 건물 몇 개를 부수며 거리 한복판에 떨어진 것이다.
애미. 배에 실드가 없었으면 기껏 고친 함선 또 박살났겠네.
“고장난 놀이공원 바이킹데샤아아앗──!!!”
“꺄아아아아악──!!”
라리루라가 눈물 고인 눈으로 날 끌어안았다. 그 낙하의 충격에 우리는 채에서 물기를 터는 콩나물처럼 갑판에 내동댕이쳐졌다.
쿵─!
바이킹 놀이기구가 중간에 끊어진 듯한 충격!
무식한 착지에 두 발로 버틸 수 있었던 건 달인 이상의 전사들 뿐이었다.
나, 네페르티티, 발퀴리에랑 그들에게 달라붙은 아내들 정도다.
가엾게도 프랑하고 다나는 거기 속하지 못했던 듯, 짭짤판 바닷물이 들이닥친 갑판에서 흠뻑 젖어서는 엉덩이와 머리를 부여잡았다.
“아윽……. 머리 찧었어…….”
“아파라…….”
그래도 좋게 보자면 바닥에 떨어지거나 심각한 부상을 입은 사람은 없다.
하긴, 이 정도로 다칠 만큼 나약한 아내님들이 아니었지. 나는 놀랬는지 덜덜 떠는 막내 아내님을 다독이듯 안아주면서 충격에서 벗어났다.
여기서 말하는 ‘충격’이란 물리적인 의미이기도 했고, 정신적인 의미이기도 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베로니카. 〈공간이동〉 준비해.”
“으, 아래로 내려가자는 것이냐? 그거라면──”
“그쪽 말고! 휴스로이트든 어디든 내륙으로!”
내 목소리가 컸던 걸까. 약간 긴장이 풀려가던 아내들은 눈을 부릅뜨며 일어났다. 내가 아무 이유 없이 자기들한테 소리를 칠 리 없다는 걸 알기에 나온 반응이었다.
발퀴리에의 품에서 벗어난 티르시는 아틀란티스 시내를 보며 절구했다.
“……세상에, 저게 다 뭐에요?”
수백, 어쩌면 수천 마리일지도 모르는 괴인들이 집집마다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니미 씹, 너무 징그러!!”
나는 기겁하며 외쳤다.
인간의 이성과 감성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듯한 꼬라지였다. 기괴하게 생긴 매끈매끈한 괴물들이 집집마다 창문과 문 밖으로 그 대가리를 꺼내놓고 있다니?
‘──설마 내가 저길 돌아다닐 때도?’
저들은 쭉 집 안에서 나를 보고 있었단 말인가?
─오싹.
생리적인 공포가 척추를 헤집었다.
그 공포가 생리적인 수준을 넘어, 실제 위협이 되기까지는 1분도 필요하지 않았다.
“Uearthy?”
“Uearthy?”
“……Tha Uearthy!!”
“Uearthy!” “Uearthy!” “Uearthy!” “Uearthy!” “Uearthy!” “Uearthy!” “Uearthy!” “Uearthy!” “Uearthy!” “Uearthy!” “Uearthy!” “Uearthy!” “Uearthy!” “Uearthy!” “Uearthy!”
“Kil Uearthy─!!!”
괴인들이 따개비 창을 들고 뛰쳐나왔다.
숫자는 그야말로 대도시 1개의 주민에 필적하는 인구!
아무리 우리가 달인과 실력자로 구성된 파티라 해도 평지에서 개길 수준이 아니다!!
저들 중 10%라도 처음 족쳤던 어인 수준이라면 인생 씹창 엔딩이다!!
퓨퓨퓨퓨퓨퓨퓽─!!!!
내가 그렇게 전율한 순간, 수백 여개의 따개비 창이 배를 노리고 날아왔다!
“갸아아아아아악!!! 돔황챠──!!!”
콰과과광─!!
다시 절대천공영역을 발동해서 그걸 걷어내고서 아내들을 데리고 마법진 위로 달려갔다. 지팡이를 쥔 베로니카가 속사포 랩을 하듯 주문을 외웠고, 강렬한 빛이 눈앞에 번쩍였다.
─쿵!!
빛이 가라앉았을 때, 우리가 떨어진 곳은 휴스로이트 영주 저택의 잔디밭이었다.
“으겍.”
“꺄윽!”
“흐익!”
데굴데굴─!!
우리 가족은 한 데 뭉쳐서 바닥을 굴렀다.
오죽하면 순간 텔레포트 실험 실패로 하나가 돼 버린 줄로만 알았다. 거의 한 덩어리로 뭉쳐갖고 굴러갔으니 저절로 그런 생각이 다 들더라.
다행히 착각이었다. 손을 움직이자 그립감이 끝내주는 탱글탱글한 엉덩이가 잡혔으니까.
운동으로 다져진 이 애플 힙…… 라리루라의 19살 빵댕이가 분명했다.
“어서 오십시오, 주인님.”
마당을 쓸던 메이드-발퀴리에가 정말이지 기품 넘치게 인사했다.
존나 얘들도 참 한결같애.
내 배에 올라타서 기진맥진해 하던 라리루라는 반쯤 풀린 눈으로 물었다.
“……어떻게 좀 편하게 가는 날이 없어요?”
“나도 몰라, 시발.”
존나 섬에 내릴 때마다 원주민이랑 싸워야 하네.
지랄 좆 빠는 언럭키 콩키스타도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