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670화 (669/1,009)

건강한 몸은 아침을 개운하게 만들어준다.

“으음.”

편하게 기상한 나는 잠든 라리루라가 일어나지 않게 조심하면서 샤워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이 전시상황에서 훈련은 멍청한 짓이니까 생략.

“좋은 아침.”

식사하기에 앞서 회의실에 들어간 나였지만, 그 자리에는 불편한 침묵이 내려앉아 있었다. 뭐지? 어젯밤까지만 해도 좋은 분위기였는디?

베로니카는 침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왔구나.”

“……아틀란티스 쪽에 변화라도 있었어?”

“그래. 섬이 사라졌다.”

사라졌다고?

나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자다 깨서 졸려하는 엘리트 대갈통을 일하게 시키지 않아도 그 의미를 모를 정도는 아니었다.

─쪼르륵. 찻잔에 따른 물을 들이키고 혀를 차는 나.

“섬을 움직였다고? 그게 가능하면 왜 지금까지 하지 않았지?”

“가설은 여러 개 세울 수 있지만, 급한 문제는 그쪽이 아니겠구나. 일단 새로 변신할 수 있거나 날개를 만들 수 있는 바이콘들이 탐색을 나갔다.”

“결과는?”

“곧 돌아올 것이다.”

실제로 그랬다. 베로니카는 몇 분 뒤에 마법진을 발동하자 아델라이데가 걸어나왔다. 이 회의실의 크기에 맞춘 듯 우아한 철새로 변한 그녀였다.

【말씀하신 섬을 발견했사옵니다. 현재 놀라운 속도로 북상 중이옵니다.】

【북상?】

【……아무래도 육지를 향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사옵니다.】

휴스로이트에 온다고?

아니지. 무슨 GPS를 단 것도 아닌데 우리 위치까진 모를 것이다. 어느 곳이든 대륙을 찾아다가 아틀란티스를 부딪혀버릴 생각인 걸까.

【……지상이랑 인접하면 결계를 해결할 방법이라도 있나?】

【모르겠구나. 다만, 굳이 이 땅이 아니어도 인간들의 나라에 쳐들어가는 것은 방관할 수 없지.】

【상공에서 보이는 어인들은 어딘가로 이동하고 있었습니다. 침입자가 결계를 부숴주거나, 그밖에 상황이 변할 때까지 숨어 있으려는 듯 싶습니다.】

【이판사판이라는 거군요.】

쓰벌, 무식한 발버둥이지만 웃어넘기기 힘들다.

나는 관자놀이 부근을 두들겼다.

‘하지만 왜 지금이지?’

우리가 쳐들어가기 전까지는 섬을 옮기지도 않고 있다가, 한 방 먹은 지금에 와서야 옮겼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렇게는 보이지 않는다.

어인들은 우리를 엿먹이거나 죽이기보다는 자기들의 자유를 찾는 걸 더 중요하게 여겼다.

‘아틀란티스를 옮길 거면 우리가 돌아오기 전에 옮겼겠지.’

언제 본진이 공격당할지 모르는 상황에서야 누구라도 그럴 수밖에 없다.

‘전략적으로 보면 그게 당연해. 함정을 파 두는 것보단 〈공간이동〉 마법진을 지키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다. 어인 새끼들도 그걸 모르진 않을 거야.’

어인들이 쌉병신일 가능성을 제외한다면, 이런 상황이 벌어진 이유도 대충 알 만 하다.

【……새로운 요소가 생겼군.】

어인들에게 지금까지 없던 무언가가 생겼다.

‘우리한테는 불안요소밖에 안 되는 무언가가.’

나는 거기까지 생각하고 아델라이데에게 말했다.

【정찰은 가능할까요?】

【말씀드리기 송구하오나, 조금 어렵습니다. 숨어있는 적을 찾기 위해서는 좁은 공간으로 들어가야 하기에…… 물론 명령하신다면 당장에라도 실행하겠사옵니다.】

【아니오, 관둡시다. 섬 위에서 관측한 어인들의 모습은 어땠죠?】

【제가 기존의 그들을 모르기에, 심히 대략적인 표현이 됩니다만──】

나는 이어지는 아델라이데의 보고를 듣고 바로 결론을 내렸다.

‘어인족 전체에 일어난 포괄적인 변화는 아니야.’

막 어인들이 2~3배로 강해졌거나 하지는 않은 듯 했다. 면밀한 비교를 거칠 필요가 있기는 한데, 그런 말도 안 되는 강화폭은 상식적으로 불가능하기도 하고.

그렇다면 변수는 하나 뿐.

‘아틀란티스의 항해기능을 다룰 수 있는 녀석이 나타난 거다.’

어떻게 그런 게 가능했는가는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건 그 변화가 전투력에 끼친 영향이지.

원래다 실질적인 전투력이 나아진 게 아니라면 좆도 상관 없는 문제라고 치부해도 된다. 하지만 혹시 그 누군가가 뒤지게 강해지거나 했다면?

【……발퀴리에를 정찰로 보내자. 그리고 아틀란티스의 이동속도를 토대로 육지에 도달할 시간을 계산해 줘. 나도 이것저것 시험해보고 올게.】

【알겠느니라.】

나는 베로니카에게 부탁을 맡겨놓고 일어섰다.

【장기전은 접는다. 아틀란티스가 육지에 닿기 전에 끝내자.】

느긋하게 아침이나 먹을 때가 아니네, 쓰벌.

***

반드시 해야 하는 점검을 거치고 나서, 우리는 회의실에 다시 모였다.

“상황은 앞서 설명한대로야. 지금 아틀란티스는 쾌속선 뺨치는 속도로 북상 중이지.”

나는 지시봉으로 지도를 가리켰다.

“섬의 이동속도랑 거리를 계산하면 육지에 닿은 때까지 남은 시간은 약 4~5일. 저게 최고속도가 아닐 가능성과, 도착 1~2일 전부터 항구에 혼란을 일으킬 걸 생각하면 주어진 유예는 얼마 없지.”

선원들이나 어부들이 돌진해오는 아틀란티스를 발견하고 죽거나 도망쳐 와서 소문을 낸다?

처음 1~2번이라면 넘어가도, 계속 반복되면 그 얘기가 사실이라는 걸 모를 수 없게 된다. 그러면 해안지방은 너나 할 것 없이 혼란, 파괴, 망각에 빠져버리겠지.

“도의적인 부분을 제외하고 봐도, 이 사건으로 민간피해이 발생한다면 저희들도 책임을 피할 수 없어요. 귀족의 딜레마죠.”

티르시의 의견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었다.

‘날 등용시켜준 엘리자베트한테도 피해가 간다.’

인간적으로, 그리고 마초적으로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어인들을 해치웠는데 질척질척한 좆간 정치질에 휘말리는 것도 빡돌 거고.

‘물론 승산을 높이기 위해서라면 그 정도야 일고할 가치가 있긴 해.’

그런데 고작 하루 이틀 늘어난다고 승산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까?

우리는 그럴 가능성은 없다고 봤다.

‘차라리 정치적인 문제로 휴스로이트의 문호를 개방당하거나, 우리 가족의 신분이 억류됐을 때 〈편찬대대〉가 까꿍 튀어나오는 게 더 위험하지.’

천하대장부로 유명하던 장수들도 정치나 암살에 당하면 죽는다.

어인이나 아틀란티스 같은 가시적인 위협보다도 이쪽이 더 위험하다고 봐도 좋다.

바이콘들과 대화를 나누고 온 베로니카는 혀를 차고 싶어 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 일족도 저주에서 벗어나자마자 죄인이란 멍에를 쓰고 싶지는 않구나. 해주를 위해서 아틀란티스를 건드렸다는 소식이 퍼졌다간 100년은 너끈하게 비난받겠지.”

“……흔한 경우기는 해. 피라미드를 잘못 건드렸다가 안의 미이라들이 넘쳐나게 만든 탐험가들이 형별과 비난으로 몰락하는 거.”

“……다나야. 아무리 사실이래도 꼭 그런 얘길 해야겠느냐?”

“참고해 두라는 거지. 자기 일이라고 생각해야 네 동족들도 더 힘낼 것 아냐.”

“끄응…….”

“거기. EBS 교육방송 끄고, 다들 집중.”

─짝짝! 나는 박수로 이목을 다시 그러모았다.

“상황이 이러니 시간은 이제 우리 편이 아니야. 승산을 끌어올리는 것 외에 낭비할 시간은 없고, 다행히 우리는 벌써 할 수 있는 대비를 끝냈어.”

지금보다 시간을 한참 들인다고 해도, 듀나미스 공방 나르메르-나일 지부에서 골렘을 운송해오는 것 정도가 고작이다.

‘원자재 상태로 받아서 조립하고 할 걸 감안하면 최소 1달 이상이다. 현실성이 없어.’

전력은 끌어모았다. 이제는 믿고 부딪힐 뿐.

나는 픽 웃으면서 빛의 마나를 주물럭대는 우리 눈나를 돌아보았다.

“누나. 이젠 누나만 믿을게?”

“……씁. 부담 좀 주지 마, 기둥서방 새끼야.”

“떽. 승리의 여신님은 계속 싱글벙글 하셔야지. 만약 우리가 지면 그건 전부 누나 표정이 썩창난 탓이니까 처신 잘 하라고.”

“야 이 씨, 웃는 게 그렇게 말처럼 쉽냐?”

남편이랑 달리 비지니스 스마일에 약한 다나는 한참을 투덜대다가, 뭔가 생각난 듯 턱을 괬다.

“……그러고보면 출근 사정 때문에 연구소 일이 상당히 밀렸는데, 누가 도와주면 좋겠네~. 그래만 주면 최소 반나절 정도는 실실 웃을 수 있는데~.”

“……시발, 그래. 까짓거 도와준다.”

벌레 씹은 표정을 지으며 딜을 받자 다나는 썩 기뻐하며 미소를 지었다.

그래. 저 스마일을 볼 수만 있다면 남편놈의 PTSD 정도는 저렴한 대가지.

나는 그 뒤로 3시간을 투자해서 작전의 개요와 지도를 대조해가며 상세한 설명을 끝내고, 브류나크를 곧추세우며 마법진에 올라섰다.

“다들 준비됐지? 전 인원, 각자 위치로.”

─척척! 움직이는 일행들.

각 팀마다 발퀴리에를 3체씩 배치해서 6개조로 나눴다.

마지막 7조는 나, 베로니카, 네페르티티다.

딜탱을 오가는 달인 콤비와 광역 섬멸이 가능한 마법사의 조합이다.

‘우리 목표는 중앙구획의 컨트롤 타워.’

아틀란티스의 항해기능을 멈추고, 혹시라도 잠수 따위를 당하지 않도록 하는 역할이다.

가장 중요하면서도 또 위험한 곳.

그렇기에 원활하게 협동이 가능한 조합으로 선별했다.

나는 당장에라도 싸울 수 있도록 신경을 돋구세우며 호령했다.

“돌입한다.”

─파앗!

급하게 〈공간이동〉 마법을 습득한 바이콘들이 마법을 발동했다. 마법진은 베로니카가 그려줬으니 어렵지 않고, 여차할 때의 후퇴를 위한 배치다.

직후, 곤두세운 후각이 비릿한 악취를 맡았다.

…탕!!!!

해조류 냄새가 비강을 파고들자, 나는 빛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앞으로 달려들었다. 어인들도 이 빛이 〈공간이동〉의 전조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촤악─!!

하지만 미처 마르지 않은 물살을 일으키며 정지했을 때, 우리가 본 것은 충격적인 광경이었다.

─으드득! 까드드득!!

사람의 것이 아닌 혈액. 그걸로 그려진 마법진 중앙에서 산제물을 해치우듯 어인을 잡아먹는 웬 어인. 아틀란티스 의회의 앞마당은 야만스러운 의식의 제단처럼 더럽혀져 있었다.

─까드드득. 까득.

등을 돌리고 동족을 처먹는 어인의 발치로 뼛조각이 튀었다.

그 꼬라지는 ‘혐오스럽다’는 말로 축약 가능했다.

등을 뚫고 자라난 듯한 시뻘건 촉수와 일그러진 몸뚱이. 다리는 밧줄 다발을 이어붙인 것처럼 생겨먹어서는 꿈틀거리며 피웅덩이에 파문을 일으킨다.

이빨이 돋아난 입은 허리와 목덜미에도 나갖고 어인의 손을 우적거렸다.

…우뚝. 이형의 어인이 동작을 멈췄다.

독액이 흐르는 촉수가 채찍처럼 움직였다. 나는 브류나크에 바람을 휘감고 휘둘렀다. 독과 어인의 턱뼈가 바람에 튕겨져서 날아갔다.

“소오오오오오, 소오오오오오오오오오…….”

어인의 사지가 뒤틀리며 발가락이 이쪽으로 돌아섰다.

─대롱, 대롱.

덜렁거리던 척추 뼈가 뚜껑을 열어젖혀진 깜짝 인형처럼 솟으며 나무에 걸린 시체처럼 우리들을 눈에 담았다. 그 새끼의 눈은 보통 어인보다 중구난방으로 3개 더 붙어 있어서, 눈알만 5개였다.

“……쿼끄끄끄끄끄! 쿼끄끄끄!!!”

치어(穉魚)의 머리로 된 이빨이 새 먹이에 흥분한 듯 펄떡거렸다.

화상이 난 아가미가 입처럼 쩍 벌어지는 게 인상적이었다.

“이 무슨……”

그 흉측한 자태에 베로니카는 욕지기를 참으며 지팡이를 겨눴다. 네페르티티가 얼마나 강한지도 예상하기 힘든 적을 경계하듯 발을 벌렸다.

“……내류, 긴?”

─뒤룩. 어인의 눈깔이 나를 겨눴다. 나는 무척 비틀린 그 목소리가 어딘지 낯익다고 생각했다가, 뒤이어 눈치챌 수가 있었다.

──이 새끼, 암무나 호에서 나를 노리던 덩치 큰 어인이다.

“내류인? 내륙긴? 아둘? 아둘? 제믈? 해신님? 왜?”

촉수 어인은 두통에 시달리는 것처럼 초롱아귀 촉수처럼 덜렁거리는 머리를 붙잡았다.

“왜? 왜? 가짜? 해신님? 왜?” “아니야. 미안해. 그치만아니야. 가짜?” “아들. 내 아들. 해신님? 왜?” “목이 말라. 목이 말라. 폐하, 나 목이 말라.”

하지만 그 새끼의 아가미와 몸의 주둥이는 자기 머리를 내버려두고 쉼없이 떠들었다.

공기가 극적으로 바뀌었다.

고도가 높은 산의 정상에 올라온 것처럼 호흡이 어려워졌다. 아니, 산처럼 고결하고 웅장한 느낌이 아니다. 더 축축하고 끔찍한 폐쇄감이다.

맞다. 이 공간은 마치 심해처럼 문드러져갔다.

직감에 맡겨 오러권을 사용했다. 내 입이 낮게 속삭였다.

“베로니카. 잠수 마법 펼쳐.”

“──가짜?”

촉수 어인의 다섯 눈이 뒤룩거리며 날 겨눴다. 다른 사람을 노리는 것보단 낫네.

“너.어도 가. 짜냐.?”

이해하기 힘든 질문은 대답을 바라지 않는다는 증거다.

나는 가라앉은 눈으로 감흥을 중얼거렸다.

“초장도 없이 회를 처먹나. 새끼, 맛잘알이군.”

촉수 어인으로부터 검은 파도가 넘실댔다.

파도 안에서 녹색 안광들이 수백 쌍이나 꿈틀거렸다. 녹슨 실톱에 긁히는 것만 같은 살기와 정반대로, 촉수를 뻗은 어인은 우릴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죽순없이 춤바람 삼키는 크라운 크라운?”

“……뭐 시발?”

내가 귀동냥이 있는 이름에 정신이 팔린 찰나.

─퐁당.

덮쳐온 검은 해일이 지상을 심해로 뒤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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