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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틀란티스 레이드는 그로부터 5시간 뒤에 종식되었다.
기세를 탄 휴스로이트&바이콘 연합군─뭐라고 부를지 고민했다─의 여유로운 승리였다. 오히려 후반의 3시간은 숨어있는 어인들을 찾아내는 데 쓴 시간이다.
일의 뒷수습은 다른 사람들한테 맡겨뒀다.
암무나 호는 멀쩡하려나 몰라. 또 고치려면 왜 부숴먹었는지도 설명해야 하는데.
곤죽이 된 의회에서 걸어나온 나는 성지에서 못 맡아봤을 비린내에 질색하는 바이콘들과 만났다.
【구도자님! 어떻게 되었습니까!】
【저주의 근원은 멀쩡하더군요. 왜 이런 장소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요.】
어쩌다 바이콘족의 저주의 근원이 가라앉은 아틀란티스의 핵심부에 있었을까.
새삼 의문이긴 했지만, 사실 어느 정도는 상상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나는 길어지려는 추리를 제때 끊고 그들에게 손짓했다.
【가시죠. 저보다는 여러분이 보시는 게 안전할 것 같군요.】
【물론입니다! 이봐! 학식 있는 일족을 데려와!】
그리하여 편성된 연구팀에는 새침 뗴며 끼어든 베로니카도 있었다. 나는 픽 웃고 처음엔 창고로 생각했던 핵심부의 벽을 때려부쉈다.
【그, 그렇게 부숴도 됩니까?】
【공간이동으로 오가는 것도 귀찮죠. 문제없을 거라는 점은 제 눈으로 확인했습니다.】
내 눈이라기보단 오딘의 눈이지만, 뭐 아무튼.
창고로 들어가자 항해를 멈춘 크리스탈과 매우 눈에 띄는 보물들이 우릴 반겨주었다. 하지만 바이콘들은 누구도 보물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그들은 선도하는 나보다 먼저 달려가서는 내가 봤던 마도구 앞에 정렬했다.
【……이거로군요.】
【보기만 해도 아시겠습니까?】
【예. 보고 있자니 심장이 조여듭니다. 하지만, 그렇게 싫은 느낌은 아니군요.】
【구도자님과 당대 예지자도 분노나 증오심에서 나온 저주가 아니라셨으니……】
【……잠깐. 왜 나한테는 존칭이 없느냐?】
【애늙은이 같은 말투부터 고치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게.】
【시, 시시끄럽다! 내 말투가 뭐 어때서!】
그들은 재잘대다가도 표정을 심각하고 진지하게 지으며 마도구를 건드렸다.
그 동안 나는 이 레이드의 주역을 맡아준 발퀴리에들 대신에, 몸 쓰는 일이 특기인 바이콘들에게 보물을 나르게 시켰다. 석판에 전부 넣자니 약간 많더라고.
그러고 있자 금방 결과가 나왔다.
─구도자님. 분석이 끝났습니다.
말의 모습을 한 바이콘이 머리를 숙이며 말했다.
저주가 풀리는 걸 확인하고자 일부러 내 해주를 받지 않은 바이콘이 여기까지 왔던 것이다.
【어떻습니까?】
─저주의 근원을 포획하는 장치입니다. 어쩌면 일족의 저주를 연구하려 했던 걸지도 모릅니다.
【……연구라.】
모습을 변신시키는 신의 저주의 근원.
그걸 연구할 이유라는 게 그렇게 많아 보이지는 않는다.
‘핵심부의 중추에서 죽은 백골도 생각해보면….’
해답은 불 보듯 뻔한 수준이었다.
어인을 가두는 결계는 여기서 발동하고 있었다. 내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누군가가 건드린 듯 70% 가까이 해제된 참이었고 말이다.
‘더 늦장을 부렸다면 결계를 해제시킨 어인들이 육지에 상륙했겠지.’
서두르길 잘 했다고 생각하는 한편, 내러티브도 상상이 간다.
아틀란티스는 어인들에게 공격당했다가 멸망된 게 아니었다.
──이 어인들은 아틀란티스인이었던 것이다.
‘……호르샤의 선조, 훌드폴크랑 비슷하군.’
오우거나 트롤이 인간이 변이한 종족인 것처럼, 어인도 그랬던 걸까.
‘시대배경을 생각하면 거의 같은 시기.’
크라운 크라운이라는 이름을 생각하면 고대문명 후반 즈음이다.
단, 야수회귀에 의한 건 아니다. 그랬으면 내가 다른 어인들한테서 마나를 흡수할 수 있었을 텐데 그렇지는 않았으니까. 원인은 다른 거겠지.
【어인으로 변해가는 증상이 생겨서, 바이콘의 저주를 분석하려 했던 거군요.】
【흠. 우리 일족의 저주라고 알고 한 일일지는 불확실하다만.】
베로니카가 바스라진 연구일지를 들며 말했다.
…파스스. 집기만 해도 무너지는 연구 기록들은 어떻게 읽을 방법도 없었다.
하지만 크라운 크라운이라는 고대문명의 광대를 언급했을 정도다. 일부 어인은 고대부터 계속 저 해저에서 살아온 게 아닐까.
전원이 고대인은 아니어도 일단 촉수 어인만은 아틀란티스가 가라앉기 전의 인물이었겠지.
베로니카는 손을 털다가 문득 떠오른 듯 물었다.
【나의 그대여. 그대가 예르나에게 도난당했던 논문은 ‘기록이 남지 않은 고대문명의 국가’였던 것 아니었나? 혹시 이 아틀란티스가 그 나라더냐?】
【……아니. 여기가 아냐.】
내가 고개를 젓자 베로니카는 알겠다는 것처럼 질문을 멈췄다. 하긴, 지금 그녀에게 중요한 건 내 옛날 논문이 아닐 것이었다.
우웅─! 저주의 근원을 포착한 장치가 점멸했다.
【……구도자님. 장치를 멈췄습니다.】
바이콘이 몸을 낮추며 말했다.
저주의 근원이란 녀석은 차원의 틈새에 숨겨져 있다고 했던가. 저 장치는 그 근원을 옮기고 고정시키는 기구였던 듯 했다.
사티스의 화살촉은 입방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나는 무릎을 꿇은 바이콘들에게 물었다.
【……여러분께서 하시겠습니까?】
【터무니 없는 말씀입니다. 이제는 허울만 남은 예언일지라도, 당신이야말로 유일무이한 저희들의 구세주. 이 자리에 불러주신 것만도 과분합니다.】
아니, 내가 했다가 조질까 봐 무서워서 물어본 건데.
나는 머쓱하게 어깨를 으쓱했다. 유일하게 머릴 숙이지 않은 베로니카가─그녀가 그러는 걸 내가 싫어하는 걸 아니까─ 다정한 미소를 지었다.
【아직 반 년 하고 조금인데 벌써 여기까지 와 버렸군. 주인님은 인생을 너무 서두른다.】
【끝이 있는 일은 빨리 끝내는 게 좋지. 예외는 결혼생활이랑 인생 뿐이야.】
자신에게 들려주듯 말한 나는 룬을 발동했다.
저주의 근원이 있는 게 차원의 틈새라면 사용할 룬은 정해져 있었다.
“ᚱ(Raidō).”
알차게 써먹는 룬이 발동했다.
참된 뜻을 깨우친 룬이 내 몸을 공간의 틈새로 인도했다. 나는 색채가 흐릿해진 세상에서 거대한 주술의 술식을 볼 수 있었다.
오딘의 눈으로 해석을 해 봤지만, 눈알이 번쩍 뜨여지는 기분이 들며 새로운 마법의 영감이 생길 뿐. 흉내낼 수 있을 거라는 기분은 들지 않는다.
슈우우우우우…….
단지 기대되는 점이 있다면, 그 술식의 연료가 다름 아닌 구신의 마나라는 점일까.
“간만의 대어로군.”
자칭 딸내미의 강화에 투자하기 바빴던 나한테 복이 왔구만.
─홱!
나는 사티스의 화살촉을 저주의 근원에 던졌다.
눈에는 눈, 신의 권능에는 신의 권능.
우르르르─! 구신의 마나와 신성력이 격돌하며 공간이 일그러졌다.
대피할 필요는 없었다. 오딘의 눈이 아니었으면 쫄아가지고 얼른 튀었겠지만, 나한테는 그 결과가 눈에 선히 보였기 때문이다.
저주의 빛이 희미해지며 세상 방방곳곳으로 뻗어나가던 실이 끊어졌다. 그 실의 일부는 이 중심부 근처에 있던 바이콘들에게도 이어져 있었다.
나는 실들 중 하나를 건드렸다.
띠링─.
현악기 같은 소리를 내며 머나먼 경치의 풍경이 보였다.
고생이 많아 보이는 고고학자와, 그런 학자에게 안겨붙는 뿔 달린 여인이었다.
‘유니콘들한테 걸린 저주도 똑같은 거였나.’
나는 그녀들의 투닥거림을 보면서 픽 웃었다.
유니콘 쪽의 이름은 잊었지만 학자의 이름은 잘 기억났다. 다나에게 논문까지 선물했던 인물이고, 교수에 대한 내 선입견을 일부 깨준 인물이니 잊을 수가 없지.
“하이로메인 교수.”
무심코 중얼거리자 유니콘은 저주의 실이 끊긴 걸 느낀 듯 몸을 떨고 고개를 들었다.
천장밖에 안 보일 텐데도 내 모습이 보이기라도 한 듯 그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구도자님?〉
〈저주 풀었다. 너네 교수님 잡아먹지나 마.〉
한 마디를 하고 다른 실을 건드렸다.
언제였나. 프랑이랑 같이 탔던 하말들이 갑자기 눈이 돌아가서 밭을 갈아버리고 있었다. 음. 아마 내 기억이 맞으면 쟤들도 저주의 대상이었던가.
‘사람을 태우면 게으름을 피우게 되는 저주였지.’
쟤들은 슬레이프니르에 가까운지 저주가 풀려도 말의 형상이었다.
“히잉이히히힝힛!! (사람 태워주고 싶어!!)”
“히잉이히히힝힛!! (사람 태워주고 싶어!!)”
“이, 이것들이 갑자기 왜들 이래?! 니들 뭐 잘못 먹었냐?!”
의욕을 되찾은 하말들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난 모르겟소요. 일단 애시르의 혈통을 탄 신마 쯤 되는 놈들이고, 저주가 풀리면 앵간한 모험가들 뺨치게 세질지도 모른다.
그래도 인간을 노릴 놈들은 아니니까 어떻게든 되겠지.
키이이잉……!
그리고 그렇게 머나먼 거리를 구경하던 게, 내 눈에 어떤 영향을 줬던 걸까.
나는 차원의 틈새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거리의 제약을 무시하고 세상을 관조하는 감각에 눈가를 비볐다. 저주의 근원을 이루는 술식이 아주 조금 이해된 듯한 기분이었다.
─키에에에에에엑!!
내면세계에서 새의 울음소리가 났다.
내 구신의 마나의 화신체인 하얀 매가 날개짓을 하며 요란을 피웠다. 나는 무심코 눈을 감으면서 아내들이 있는 곳으로 몸을 돌렸다.
“……티르시?”
피곤한 얼굴로 기력회복 포션을 빠는 티르시의 모습.
거리와 공간의 제약을 뚫고 그녀의 모습을 보게 된 것이었다. 놀라던 나는 한층 입을 벌렸다. 티르시의 겉옷이 투시되면서 그녀의 속옷까지 보였던 것이다.
“쓰벌, 천리안이야?”
나도 모르게 중얼거린 순간, 저주의 근원이 완전하게 무너져내렸다.
슈와아아아아악──!!
막대한 마나가 흡수되면서 내 마나통을 거칠게 확장시켰다.
지금까지 울프헤딘으로 흡수했던 마나 중에서도 가장 양이 많았다. 순간 머리가 어지러웠을 정도였으니까 오죽했겠는가.
『……저주를 풀었다고?』
그렇기에 나는, 저주의 실 중 하나에서 들려온 목소리를 한순간 놓쳤다.
뿌얘진 시야로 실의 끝을 바라보자, 그 장소에 있던 것은 키타이── 그러니까 동방 느낌의 옷을 입은 인물이었다.
『네놈이었군. 아슈카트를 죽인 방해자.』
성별도 읽기 힘든 인물은 2개의 뿔을 기르고서 허공을 노려보았다.
『방치하지는 않겠다. 구세의 업은 우리의 신의 것이야.』
나는 인상을 쓰며 대꾸하려고 했는데, 그 순간 상대가 먼저 저주의 실을 끊어냈다.
─툭!
그걸로 모든 실이 끊어지고, 정신을 차린 나는 아틀란티스의 핵심부에 돌아와 있었다.
【오오, 오오오오!!! 저주가!!! 저주가 풀렸다!!!】
【해냈어!! 우리는 길고 외로운 싸움에서 이긴 거야!!】
야매 해주를 받지 않은 바이콘이 신족의 모습을 되찾자, 바이콘들은 눈물을 흘리며 감격했다. 존나 기뻐하는 건 보기 좋긴 한데……
【감사합니다! 구도자님, 감사합니다!!】
동족들의 손에 겉옷을 입혀진 바이콘(암컷)도 내 손을 붙잡고 엉엉 울음을 터트렸다.
나는 그녀를 대충 다독여주며 방금 전에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일들은 잠시 잊었다. 중요한 일들이 한꺼번에 터져나오긴 했지만, 그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
“베로니카!”
“그리 소리치지 않아도 들리느니라.”
소란을 피우는 이들의 모습에서 보이지 않아서 당황했는데, 그녀는 일족과 떨어진 곳에서 백골의 뼈를 거둬주고 있었다.
“……뭐해?”
“뭐긴. 시체의 수습이다. 우리 바이콘들과 얽힌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죽은 이의 넋은 달래줘야 할 것 아니더냐. 이대로는 조금 가엾으니.”
그녀는 뼈를 모아서 함에 넣고 나를 돌아봤다. 평소랑 별로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 표정. 나는 좀 헛방을 친 기분이어서 뺨을 긁적거렸다.
“……왠지 그다지 안 기뻐 보인다?”
“……딱히 그렇진 않다. 오히려 기쁨을 어떻게 표현하면 될지 모를 뿐이야.”
베로니카는 어색하게 웃고서 나를 끌어안았다.
“그도 그럴게, 그대의 것이 되고자 했을 때부터 이런 날이 오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으니까.”
“그렇게 말해주면 기쁘긴 한데…….”
“당연한 일에 기뻐하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다. 그저 앞으로는 일족의 예지자가 아니라, 그저 한 명의 신족인 베로니카로 살게 되는 게 약간 어색해질 것 같군.”
어깨를 움츠린 그녀는 능청스럽게 쿡쿡 거렸다.
“분위기를 잡는 것도 하루이틀이지. 이런 대화는 벌써 충분히 하지 않았느냐?”
“……뭐, 진지하기만 하면 따분해지기 쉽긴 해.”
나는 베로니카의 허리에 손을 감고서 환희하는 바이콘들의 옆을 몰래 빠져나왔다. 저 녀석들이야 자기들끼리 기뻐하게 두는 게 나을 것이었다.
베로니카는 다 알아차렸다는 듯 웃었다.
“이 섬은 별로로군. 몰래 빠져나가지 않겠느냐?”
“어쭈. 말하는 걸 보니 너만 다른 바이콘들이랑 기대하는 게 달랐구만?”
왠지 전혀 기뻐보이지를 않더라니, 그래서였나.
베로니카는 대답 대신에 마법을 영창했다. 남은 마나를 모조리 부었던 걸까. 이동한 곳은 거주인 전원이 출장을 나간 바이콘의 성지였다.
내 손을 놓은 베로니카는 그루터기에 앉아서는 손을 다리에 고이 포갰다.
“자, 지금보다 더 기다리게 할 것이냐?”
“이해 좀 해 주라. 그만큼 저주를 풀어주는 건 빨랐잖아?”
“음, 용서하마! 나는 주인님에게 관대하니까!”
으스대며 가슴을 펴는 우리 여신님. 누가 너를 말리겠냐. 나는 고개를 젓고서 석판 안에서 가장 엄중하게 감추고 보관한 물건을 꺼냈다.
야동이나 비상금보다 3배는 더 꼼꼼하게 숨겨둔 천연 미스릴 반지였다.
무릎을 꿇고 그녀의 손을 잡은 나는 픽 웃었다.
“나 잠깐 그럴싸한 멘트 좀 쳐도 돼?”
“아니, 불허한다. 한시가 급하느니라.”
누구더러 인생을 서두른다는 건지.
나는 준비한 멘트를 내던지고 베로니카의 왼손 약지에 반지를 끼웠다. 그녀의 손가락에 커스텀한 반지는 태양처럼 빛나는 심지를 번뜩거렸다.
여기서 반지가 지닌 장비로서의 성능을 읊는 건 촌스러운 짓이겠지.
“영주 대리의 권력을 쓰면 네 신분을 만드는 건 일도 아니야.”
나는 대신에 그녀가 가장 원할 말을 해 주었다.
“일주일 안으로 결혼 준비 끝내 놓을게. 이제 좀 만족해?”
“──아무렴, 아주 좋고 말고.”
─쪽. 반지 낀 손으로 턱을 붙잡은 베로니카는 열렬하게 입을 맞추고서 말했다.
“신마님의 피 탓인지, 주인님이 미적거리면 뻥 차 주고 싶어지거든.”
하긴, DNA는 어쩔 수 없지.
누구보다 빠른 신마를 선조루 둔 그녀다. 자기 목에 고삐를 채워놓고 늦장이나 부리는 주인님이 얼마나 보기 갑갑했겠는가.
‘아니 그치만, 반 년이면 연애-결혼까지 걸리는 시간 치고는 엄청 빠른 건데.’
나는 이제야 한껏 웃으며 기뻐하는 베로니카를 안아주면서, 그만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