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675화 (674/1,009)

아틀란티스를 타고 휴스로이트로 향했다.

〈공간이동〉을 쓸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저 망망대해에 이 귀하고 위험한 섬을 두고 가는 건 존나 쌉에바였으니까.

“근데 쓰버랄, 섬 전체가 어인 시체로 그득그득하구만.”

이 폭격 맞은 수산시장을 어느 세월에 치우지?

나는 절망적인 임무분담제 청소의 예감에 몸을 떨고 말았다. 그냥 바다에 한 번 담궜다가 뺄까? 어인 시체가 많으면 해양 생태계에도 도움이 될 것 같은데?

그렇게 고민하는 내게 답을 가져온 건 다나였다.

“잘 봐 둬라, 석사 놈아. [교수]의 힘은 이렇게 쓰는 거다.”

【명령 확인. 에인헤리에게 지시를 하달합니다.】

우르르르르르르─!!

다나가 가볍게 손짓하자 아직 성불을 못한 어인 에인헤리들이 몰려들어선 섬 전체를 청소하는 게 아닌가? 너무나도 경악스러운 광경이었다.

이것이 병사들을 부려 뒷산마저 밀어버린다는 [쌍성(Two Star)]의 권능…!

신의 힘이란 이런 것일까. 너무 커다란 존재가 되어버린 우리 빨래판 연구소장의 모습에 감탄을 금할 수가 없는 나였다. 나도 브류나크처럼 생모유 마시고 싶다.

나는 성불을 앞둔 에인헤리들의 대청소를 구경하다가 다나에게 물었다.

“눈나. 컨디션은 어때?”

“할 만 해. 적응하는 연습 중.”

다행히 다나에게 힘든 구석은 없어 보였다. 내 걱정을 불식하려는 듯 웃어줬을 정도다.

“오히려 이렇게 장대한 짓을 벌이는 중인데 난 전혀 피곤하지 않은 게 더 신통방통하네.”

“글쎄. 여신 프레이야의 이미지는 편하게 남을 부리는 쪽이지, 옆에서 같이 뛰면서 땀을 흘리는 느낌은 아니긴 해.”

신좌의 권능을 직접 사용하지 않고 발퀴리에를 부리는 거니까 말이다.

미희신-발퀴리에-에인헤리로 이어지는 피라미드 계급도인가.

“쓰벌, 우리 누나가 하청의 신이었다니.”

“아, 맞다. 손님? 여기 계약서에 사인하세요. 너 나중에 나랑 일 하나 같이 하자.”

“인텔리 야쿠자년.”

약속한대로 노르드 자유이용권(15금)을 선물한 나였다. 살다살다 자처해서 번역 노예로 돌아가게 생겼다. 시부랄 내 신세야.

─Chyeeee……

아무튼 청소가 끝날 무렵에는 에인헤리들도 다 소멸하게 되었다.

좋은 곳에 가길 기도해 주자니 악연이 깊었기에 별로 내키질 않는다. 그래도 적당히 성호 정도는 그어줬다. 나무아비타불. 극락왕생하거라.

티르시는 그 성스러운 광경을 지켜보다 말했다.

“……소멸한 에인헤리는 명계를 거치지 않고 영면에 드는 걸까요?”

“그렇겠죠. 사실 명계라는 구조는 이승에서 고생하던 영혼을 구제하는 거름망 같은 거고, 마지막 도착지는 다 비슷하지 않을까 합니다.”

옳은 일을 한 사람은 행복한 사후세계에 간다.

그 동화 같은 이야기를 신들의 존재과 결부해서 생각해보자.

“명계란 건 이승에서 가엾은 죽음을 맞았거나, 사후에도 등용할 만큼 재능 있는 사람들을 신들이 보살피는 곳이었을 겁니다.”

이세계에서는 영적인 죽음이 진짜 죽음이다.

육체가 죽어도 영혼은 남는다.

이승에 남아있지 못한 영혼은 명계로 흘러간다.

신대까지는 그렇게 흘러간 뒤에는 명계에서 눈을 뜨고 거길 지배하던 신의 비호를 받았겠지.

그래도 이제 명계는 적자생존의 시베리아 벌판 같은 곳이 되었다.

‘아마 대부분의 영혼은 명계에서 자아를 되찾기 전에 소멸하겠지.’

명계로 흘러간다는 것 자체가 이승에 남고 싶어하는 자아가 소실했다는 거니까.

게다가 육체가 파괴될 정도의 충격에서 영혼이 멀쩡한 것도 말이 안 되는 일.

환자가 신이라는 의사의 도움 없이 혼자 살아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에퀴녹스처럼 생전부터 강한 영혼이라면 모를까.

그러니까 영혼이 명계로 흘러가는 것은 죽음의 과정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었다.

발퀴리에처럼 영혼을 인도해줄 사신도 없고, 그 혹한의 환경에서 일반인의 혼백이 버틴다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강물이 바다로 흘러가는 것처럼 영혼은 명계로 흘러가서 온전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이세계의 영혼들이 겪는 자연스러운 결말이다.

신들이 다스리지 않는 세상다운 결말이긴 하다.

하지만 그걸 딱히 어떻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사후세계를 믿지 않았던 지구인한테 죽음=끝이라는 사고방식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그래도 최근엔 이승에서 편안하게 소멸하는 게 더 나을 거라는 생각도 들어요.”

티르시는 죽어서도 투쟁하는 에인헤리의 모습에 조금 감흥이 있었던 듯 중얼거렸다.

“생각해 보면, 죽은 뒤에서 무언가가 있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죠. 어쩌면 신들이라도 죽음을 지배하려는 건 오만했던 걸지도 모르고요.”

“사후의 낙원이라는 것도 통치자 입장에서 보면 속 편한 소리기는 합니다.”

그 낙원을 다스려야 하는 존재도 전지전능하진 못할 것이니까.

수만 년을 이어가던 사후세계도 파국에 이르른 게 증거였다. 세헤테피브라도 자기랑 같이 묻혀준 신하들에게 영면이라는 축복을 용인해줬다고 했고.

뭐 아무튼.

어인 에인헤리들은 연료가 다할 때까지 열심히 치우고 닦았고 소멸했다는 얘기다.

단지, 바다에 오랫동안 잠겨 있던 데다가 시체가 가득했던 아틀란티스는 청소가 끝난 뒤에도 상당히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아마 그래서였겠지.

“아아…… 「섬」이 보인다…….”

“뭐지? 환각인가? 애미 쓰벌, 진짜 같은디?”

“끄아아아악!! 진짜 섬이다!! 섬이 헤엄친다!!”

“끼에에에엑!! 유령섬이다──!!!”

휴스로이트까지 아틀란티스를 몰고 가는 길에, 마주치는 어부들이 전부 혼비백산하면서 빤쓰런한 것은 말이다.

“배를 버려라아아아아아─앗!!!!!”

“죽기 싫은데샤아아아아아악──!!”

아니 씹, 이거 혹시 내 잘못인가?

나는 외곽에서 들려오는 비명에 눈을 깜빡이다 외면하는 길을 택했다.

때마침 운 나쁘게 안개가 낀 게 나쁘다. 아무튼 우리 잘못은 0%에 수렴한다. 이건 천공신도 인정한 부분.

자기변호를 마친 나는 항구에서 적당히 떨어진 해안에 아틀란티스를 정박시켰다.

“여기서부터는 암무나 호를 타고 가자.”

바이콘들까지 합친 수십 명이서 크게 부숴지지 않은 암무나 호에 탑승했다.

‘아틀란티스를 땅에 붙여뒀다가 어부들의 배가 출항을 못 하면 큰일이니까.’

다행히 대충 근처의 아무 해안가에 붙여둬도 될 것 같긴 했다.

휴스로이트 밖의 해안도 전대 영주 가문의 영지였다. 저따가 짱박아두면 되겠지. 주차비까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건 행운이다.

“이, 이게 무슨 일입니까아아아악!!!”

소식을 들은 웨스턴은 졸도할 듯 경악하면서 내 앞으로 달려왔다.

“우, 우우, 울프헤딘 영주님!! 어떻게 된 일인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영주 대린데요.”

그리고 이 섬은 오다 주웠습니다.

그렇게 설명하려고 한 차에 웨스턴은 간질 환자처럼 몸을 떨며 외쳤다.

“암무나 호!! 암무나 호의 선체에 구멍이──!!”

“……아, 그쪽?”

쬐까 고장나긴 했는데. 머, 고쳐둘 테니까 너무 그러진 마십시다.

자동차도 배도 타다 보면 부숴지고 그러는 거야. 고(故)잉 암무나 호로 만들진 않을게요. 자, 약속.

그러니까 영지민 여러분께선 안심하시고 생업에 종사해 주시길 바랍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돌아온 영주와 헤엄치는 섬의 전설을 목도한 영지민들의 분위기를 살폈다. 혹시 무슨 이교도의 사악한 의식으로 여기면 약간 귀찮은데.

─풀썩.

영지민들이 무릎을 꿇었다. 그들은 제삿상에다 절을 하는 사람── 아니, 그 제삿상에 오르는 걸 기다리는 복날 씨암탉처럼 몸을 떨었다.

얼굴에 흉터가 난 우락부락한 어부가 외쳤다.

“영주님은…… 신이야!!!”

“울프헤딘 영주님이 신천지를 창조하셨다!!!!”

“경제를 살리는 창조의 기적이다!!”

“영주님께서 날 보셨어! 우리를 신천지로 데려가주실 거야!!”

아, 이쪽도 문제 없겠네.

대충 고개를 끄덕거리며 귀를 닫았다. 못 들은 셈 치자.

“창조경제! 신천지! 미스릴 클래스! 이걸로 우리 영주님을 뛰어넘는 귀족 나리는 없다는 게 증명되었다!!”

“이게… 영주? 그럼 내가 지금까지 봤던 건…?”

몰라 시발. 아무튼 내 일 아님.

나는 베로니카랑 결혼식 준비하기도 바쁘다고.

***

바쁘게 시간을 내며 후속 일처리에 몰두하던 나.

그런 내가 소리소문도 없이 방문한 엘리자베트 제 1왕녀님의 불시방문에 정통으로 얻어맞은 것은 베로니카가 유두만으로 절정하는 방법을 습득했던 날의 일이었다.

“혹시 어디 출마해?”

“뭐요?”

공주님 부부와 겸상을 한다는 영광스런 자리에 도저히 안 맞는 대답이었다. 같이 왔던 근위병이 옆에 있었으면 목숨을 걸고 나한테 덤볐겠지.

물론, 나랑 깐부를 맺은 공주님은 그냥 좋다고 낄낄댈 따름이시다.

“아니, 영지 안에서 네 지지도가 하늘을 찌를 듯 하길래. 꼭 로마니아 원로원이 투표자들한테 눈도장 찍는 거랑 비슷한 것 같아서.”

“윗사람의 윗사람이 와서 물어보는데 자기 영주 욕을 할 시민이 있습니까? 그보다 공주님도 국내 여기저길 돌아다니면서 자선행사 하신다매요.”

엘리자베트는 자선행사나 시민들의 생활을 보러 다니는 일을 한다고 캐서린한테서 들었다. 모험가 생활을 할 정도니까 어울린다고 생각했었지.

“민중의 지지를 모으는 건 공주님의 의무니까.”

엘리자베트는 생선 살을 입에 가져가며 말했다.

“공주가 몸소 옷에 흙을 묻히는 게 왜겠어? 다 국왕 전하의 방패 역할이지. ‘공주님만 봐도 왕실 전체가 나쁘진 않네’하고 생각하게 만들려고 하는 짓이지. 내치(內治)란 심오하네.”

“앗, 아아….”

쓰벌, 그런 정치적인 심모가 깔린 대답을 바란 건 아니었는데.

내가 혀를 내두르자 엘리자베트는 낄낄댔다.

“농담이야, 농담. 국민의 생활을 실제로 보는 게 얼마나 중요한데?”

“그래서 연락도 없이 백작따리 백작따의 영지에 날아오셨읍니까?”

네 이 년! 그 생선을 볶느라고 평생 흘릴 땀을 다 흘린 요리사가 불쌍하지도 않으냐! 동생이라는 놈도 그러더니만 존나 악질이야 진짜.

보는 눈이 없어서 편한 걸까. 엘리자베트는 등을 기대면서 칠칠맞게 늘어졌다.

“후우──. 역시 가끔씩 이렇게 숨을 돌려줘야 한다니까. 노르드. 앞으로도 자주 놀러와도 돼?”

“물론입죠. 오시기 전에 꼭 연통 주십쇼. 전 섬 타고 아내들이랑 피신해 있을게요.”

“아하하하!! 배도 아니고 섬을 탄다고? 차원이 다르네!!”

웃음 보따리가 터진 듯 깔깔대는 엘리자베트.

그 많던 근위병까지 전부 물려놓고 남편만 대동한 건 이래서였나. 내 침중한 눈초리를 받은 길다트는 능청스럽게 어깨를 으쓱했다.

“우리 아내가 썩 매력적이지?”

“아, 예. 제 다음 정도으로는 결혼 잘 하셨네요.”

길다트는 큭큭 거리며 낮게 웃었고, 그 사이에 엘리자베트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았다.

“별 수 없잖아. 나도 일정을 얼마나 캔슬하고 온 줄 알아?”

─쿵! 엘리자베트는 보는 사람을 불쾌하지 않게 만드는 익살을 부리며 테이블을 내려쳤다. 세상 억울해 하는 표정이 포인트다.

“도대체 뭔데, 저 섬은!! 이 나라 수도만한 땅이 바다에 떠 다니잖아!!”

“그러셨군요…… 가족분들도 알고 계신가요?”

“알지! 아바마마가 뭐라셨는지 알아?! 너한테 줄 영지를 고민 안 해도 될 테니 잘 됐대!!”

저도 가끔씩 그 사실을 깨닫고 놀라곤 한답니다.

나는 이마를 감싸쥐고 한숨을 쉬었다.

씨발, 그래. 알고 말고. 저 이동식 아일랜드의 땅문서도 만들어 둬야지.

소유권 분쟁이 대체 얼마나 손이 많이 가고 위험천만할지. 고생길이 훤하다, 훤해.

‘하청의 여신이시여, 저를 보우하소서.’

재발 인셍을 날로 먹을 수 잇개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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