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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놈 안녕! 학회에서 통지서가 왔다면서?!”
─덜컹! 문을 열어젖히면서 들어온 다나는 자기 일처럼 기뻐하며 외쳤다.
아주 남편바라기라니까. 이러니 평소에 틱틱거려도 소용이 없을 수밖에. 나는 그런 다나를 보면서 픽 웃고 소파 옆자리를 권했다.
“그래. 같이 열어보자.”
“당연히 그래야지!”
다나랑 같이 서류를 뜯어보기로 했다. 아내들을 다 불러서 열어볼까 하는 생각도 했는데, 내용이 어떨지 모르는만큼 눈치껏 관뒀다.
‘결혼 준비 중인데 다른 일에 열을 올리는 꼴을 보여주자니 좀 그렇기도 하고.’
그나저나, 이게 뭐라고 긴장이 되는 것이지.
나는 호흡을 가다듬고 나이프로 서류의 인장을 잘라냈다. 편의점 알바부터 노예 3년형까지 겪은 나다. 테이프 자르는 건 숨 쉬는 것보다 쉽지.
“그나저나 쓰벌, 생각해 보면 꽤 빠른 거 아냐? 내가 석사 동장을 단지 이제 막 1년이 돼 가는 참인데. 아주 고속승진의 표본이여.”
“유물을 몇 개 던져 준 게 영향이 컸겠지.”
“역시 그러려나?”
세헤테피브라한테 받았던 분수나, 그밖의 일부 아이템을 가져다주고 정기 논문을 썼던 영향일까. 생각보다 빠르게 진급 얘기가 나왔다.
촤악─! 서류를 꺼냈다.
다나랑 어깨를 맞대고 첫장부터 읽어내렸다.
장문의 서론과 복잡한 서론을 제외하면, 내용은 대충 이러했다.
─이전의 학위논문 때에 비해 논문의 질이 현격하게 상승한 점. 현장직 고고학자로서 역사적인 사료를 손상없이 발굴해낸 기술력.
─그 외 복수의 건으로 보아, 대상자가 학계에 충분한 공헌을 했다고 판단함.
─그리하여 노르드 울프헤딘을 금년 진급시험의 대상자로 추천함. 60일 내로 은장학위논문, 혹은 시험 거절의 뜻을 삼은 서류를 반신(返信)할 것.
─은장학위논문의 제출기한은 금년 여름까지임.
─고고학위진급심사회장 아셰라드 신시아.
팔랑….
서명자의 이름을 읽고 종이를 넘겼지만, 내용은 그걸로 끝이었다.
“……이걸로 끝이야?”
다나는 울화통이 치민 것처럼 뇌까렸다.
“뭐야, 시발. 정기논문도 준수하게 제출했잖아! 받아처먹은 유물이 몇 갠데 석사 은장 정도 그냥 특진 시켜줘도 되는 거 아냐?!”
“전례를 남기는 건 안 좋지. 자칫하면 금전으로 학위를 사는 풍토가 생기잖아.”
그랬다간 기껏 딴 석박사 학위가 똥이 되겠지.
나처럼 돈 들어올 구석이 많은 새끼는 특히 더 그렇지 않은가? 내가 박사를 따서 자랑해도 ‘그거 돈 때려부어서 딴 거 아님?’하고 의심받으면 존나 꼴받겠지.
다나는 잠깐 말문이 막혔다가 이를 갈았다.
“아니 씹,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너는 화도 안 나냐? 존나 평소처럼 ‘끼에에에엑!! 이런 현실 받아들일 수 없어욧!!’하면서 항의라도 해 보던가!”
“크흐흐. 항의는 무슨.”
의식해서 낄낄대면서 엘리트 대갈통으로 이유를 분석했다.
‘여름까지인가. 꽤나 늦게 응시자격 커트라인에 걸린 모양인데.’
우리 눈나의 말마따나 자격은 충분히 있었다.
‘그런데도 통지서가 날아오는 건 늦어졌지.’
다시 말하자면, 한계까지 내 응시자격을 두고서 갑론을박이 있었다는 뜻이다.
서류를 찬찬히 훑었다.
양식화된 통지서였지만 나는 그 뒷편에서 언뜻 논쟁의 기색을 느꼈다.
‘……절대 말 못 하겠지만, 다나의 영향도 있을 것 같네.’
학연. 지연. 혈연.
세상을 건너도 통하는 인맥의 삼신기다.
하지만 인맥이란 게 대놓고 쓰면 불평등을 초래하는 물건 아닌가. 내가 떨어진 시험에 남이 인맥으로 붙는 꼴을 보면 눈이 돌아갈걸?
학계처럼 능력을 우선시하는 곳은 학연에 따른 악습을 피해야 한다.
‘다나랑 나는 같은 대학의 같은 랩실 출신이지.’
그런데 내가 현장직으로 나간지 얼마 안 가서, 우리 눈나가 내가 떠난 사르가디스에 연구소장의 신분으로 부임하지 않았는가.
‘게다가 그 전후로 내 논문의 질이 올랐고.’
나랑 학연을 맺은 다나가 내 아내로 들어왔고, 또 그 전후로 논문의 퀄리티가 급상승했다?
‘의심 안 하는 게 더 병신이지.’
총명한 여성 박사를 쥬지로 굴복시켜서 논문을 쓰게 만드는 씹새끼로 보여도 할 말이 없을 거다.
아니, 할 말이야 많긴 한데 아무튼 대충 그렇단 얘기다.
당연히 심사원들이 ‘우리가 좆으로 보여???’하고 퇴짜를 놔도 별 수 없는 일이었다. 사실 다나한테 퇴고 등을 도움 받은 것도 맞고.
“……논문 간의 퀄리티 편차가 원인일 거라고?”
“그래. 실력이 들쑥날쑥하니 진급을 시켜주기엔 불안했겠지.”
다나 때문이라는 얘기를 빼놓고 말해줬는데, 이 똑똑한 누나는 말로 하지 않은 부분까지 전부 다 눈치챈 듯 눈을 내리깔았다.
“오구오구. 우리 누나, 남편한테 미안해서 그래? 누나 잘못 아니니까 기분 풀어.”
“……뭐래.”
─토닥토닥. 신경 쓰지 말라며 그런 다나를 다독여줬다.
‘사실 이 점에서는 나도 억울한 점이 있긴 해.’
예르나. 그 씨팔련이 존나 빡시게 준비했던 내 학위논문을 쌔벼갔던 것.
그게 내가 학계에 데뷔하면서 쓴 논문 퀄리티가 씹창난 원인이었으니까.
‘덕분에 단기간에 허겁지겁 만들어서 완성도도 개판이었지.’
논문을 닌자당해서 제정신도 아닌 상태에서 쓴 거기도 했고 말이다.
그 결과가 지금의 석사 동장이란 학위다.
이건 거의 자격증 빨로 따낸 학위라는 뜻이었다.
존나 심혈을 기울이며 시간을 들인 논문과 멘탈 나간 상태로 시간에 쫓겨서 만든 논문은 퀄리티가 다를 수밖에 없다. 레포트만 써 봐도 알 일이다.
‘그래서 의심의 대상이 됐군.’
그렇게 보면 응시자격을 준 것 자체가 놀라웠다.
이번 기회에 능력을 증명해보라는 것일까.
‘……아니지. 그게 일의 전부일 것 같지는 않군.’
거기까지 생각하고 모든 일을 이해해서였을까.
나는 이 서류에서는 일언반구도 없던 교수들의 속내를 캐치했다.
“──마나부여기술.”
“뭐?”
듀나미스 공방의 핵심. 금속에 마나를 새겨넣는 기술.
그걸 논문으로 써 내보라는 암시였다.
“그리 생각하면 앞뒤가 맞네.”
몇 번인가 말했지만, 이세계 고고학은 고대문명 시절의 유물과 기술을 복원하는 학문이다. 그래서 실용적이고 선호도도 높았다.
은을 미스릴로 만드는 기술.
납을 금으로 만드는 연금술보다 더 수준 높은, 황금시대의 로스트 테크놀로지.
‘그걸 복원했다는 사실 자체가 고고학자로서는 엄청난 업적이지.’
내가 이걸 논문으로 정립하면, 아마도 그 즉시 박사를 넘어서 교수 학위를 때려줄지도 모른다.
그 정도의 가치가 있는 기술이니까 말이다.
“……하. 그런데 그쪽은 언급도 없다 이거지?”
내가 그걸 설명해주자 다나는 차갑게 읊조렸다.
“네가 그 기술로 논문을 쓴 게 아니라, 사업을 한 게 꽤 꼴받았나 본데?”
“그렇겠지.”
모험가 길드의 플래티넘 클래스와 같다.
그냥 실력만 있다고 마구 내주는 게 아니라, 그 인물이 ‘우리 소속’이라는 걸 확신해야만 내 주는 물건이라는 것이지.
그렇지 않았다간 다른 집단에서 일하는 이들이 워드 자격증처럼 고위 모험가 자격 정도는 하나씩 갖고 다니는 참사가 벌어진다.
심사가 허벌이 됐다간 그 자격증의 가치도 떨어지니까.
다나는 서류를 살피면서 말했다.
“이 시비, 여기 이 아셰라드 신시아라는 사람이 주동자인가?”
“시비랄 것도 없겠지만, 아마 아닐 거라고 봐.”
“왜?”
“주동자가 자기 이름을 깐다는 건 대놓고 덤벼 보라는 거야. 하지만 인공 미스릴 얘기는 추호도 없고, 간만 보면서 견제하는 게 딱 보이잖아?”
애둘러 한 설명에 다나는 깨달은 듯 말했다.
“네가 아니꼬운 장본인들은 숨어서 상황을 지켜보려고 하고 있다?”
“그렇겠지. 집단은 커지면 내부에서 분열하니까. 고고학계가 한 마음 한 뜻으로 날 어떻게 하려고 벼르고 있다기보단──”
“──널 삶아먹고 싶은 파벌이 심사회 내부에서 훼방을 놓은 거구나?”
“여윽시 우리 누나야. 척하면 척이지.”
이 진급시험의 뒤에는 높은 확률로 그런 전말이 있었을 것이다.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과, 지식을 중시하는 집단.
너무 흔한 대립구도라 딱히 감흥도 없다.
“내가 업적에 비해 진급이 더딘 것에 꼴받아서 빡치길 기대했겠지. 말했잖아. 간을 보고 있다고.”
나는 서류를 대충 정리하면서 이마를 문질렀다. 빡쳐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면 냉정을 유지하는 게 맞거든요? 이거 삶의 지혜니까 참고하십쇼.
“문제를 공론화하지 않으면 뒤탈없이 꼬투리를 잡기도 편하고, 내가 이 일을 잘 넘겨도 나중에 손바닥을 뒤집고 친한 척 굴 수도 있어. 손해보는 장사는 안 한다는 거지.”
장사라. 증말 딱 맞는 표현이구만.
말 그대로 학자가 아니라, 이해득실에 미쳐버린 장사꾼의 사고방식 같다.
엘리트 집단인 고고학계의 특성 상 별 수 없다. 연구보다 콩고물과 권익을 선호하는 학계의 일부가 중간에서 이간질을 하고 있다고 봐도 되겠지.
‘악감정을 만들게 하고, 제 3자인 척 접근해서 골수까지 빨아먹으시겠다?’
이 노련한 악행…… ‘교수’의 파동을 느낀다.
예르나 년이라는 전례로 예방접종── 아니지. 홍역을 치르지 않았다면 눈 뜨고 당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실제로 그 경험 때문에 하이로메인도 덮어놓고 의심했었고 말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헛방이 아니었던 모양이군.’
나는 예르나와 하이로메인이라는 상반된 교수들 사이에서 ‘교수’라는 존재의 양면성을 배웠다.
역설적인 일이었다. 모든 교수를 악이라고 규정하지 않았기에, 오히려 악의 교수가 파둔 함정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다니.
아마 양쪽 모두 겪어보지 않았다면 멍청하게도 이간질에 당해서 애먼 교수에게 증오를 불태웠을 것이다. 과거의 강북호는 100% ‘교수? 죽인다!’로 일관했을 거 아녀.
역시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고, 사람은 실수에서 배워나가는 생물인가 보다.
“으, 방식이 더럽게 음습해서 소름 돋아…….”
다나는 팔뚝을 쓸어내리며 혀를 내둘렀다.
그러고는 약간 자랑스러운 듯, 멋쩍은 듯 괜히 나를 툭툭 건드리면서 싱글벙글대는 것이었다.
“미리 눈치채서 다행이었네. 망할 남편놈 진짜, 평소에도 이러면 얼마나 좋아.”
“지금보다 더 보기 좋으면 우리 아내들이 눈이 멀까 봐 자제 중인 것.”
“선생님께선 두뇌활동이 아니라 지랄을 자제해 주셨으면 하네요. 아내들 콩깍지가 벗겨질락 말락 할 때마다 재봉합해버리는 거 굉장히 꼴받거든요?”
“사랑의 외과의라고 부르렴.”
통지서를 서랍에 넣고, 나는 하던 일로 돌아갔다.
당장 논문준비가 안 된 것도 아니다.
아틀란티스 소식을 들으면 오히려 학계에서 이 곳까지 달려올 게 뻔하고.
‘고고학자들이면 소유권 분쟁에 이용해먹을 수 있겠군.’
나는 흉계를 꾸미는 거물처럼 사악하게 웃었다. 옆에 끼고 있는 게 검은 고양이가 아니라 평탄한 미녀라는 게 살짝 옥에 티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아무튼, 모 브리타니아 황제도 말하지 않았는가.
펜을 놀려도 되는 건, 펜대에 맞을 각오가 되어 있는 자 뿐이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