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685화 (684/1,009)

마스터 클래스는 길드를 세울 수 있다.

물론 모든 길드가 마스터 클래스의 전사나 마법사의 손에 세워진 건 아니다.

단지 마스터 클래스로 공인받은 자는 원하기만 해도 대기업을 세울 자격이 생긴다. 투자를 받거나 후원자를 찾기도 쉽겠지.

대충 보면 한 분야에서 업적을 쌓은 인물을 존중해주는 듯한 체계로 보인다.

‘하지만 사실 그런 존경심 때문은 아니지.’

나는 손님을 맞을 준비를 하러 떠나는 웨스턴을 배웅하며 픽 웃었다.

예전에는 대충 표면적인 의미로만 이해했던 사실이지만, 정치적인 안목을 늘리고 마스터 클래스랑 붙어본 경험을 얻은 지금은 아니다.

나는 이 시스템에서 진실의 편린을 읽어낼 수가 있었던 것이다.

‘제지해도 트러블을 일으키면서 원하는 걸 이뤄낼 사람들.’

존나 강하다는 건 부차적인 부분이었다.

보통 수준의 달인만 돼도 쇠고집 하나는 인정해줘야 한다.

‘자기 심상을 확고하게 잡지 못하면 미스릴 클래스가 되기도 힘드니까.’

굴라나뢰크의 엘프 장로가 좋은 예시였다.

그리고 달인들의 고집을 신념이라고 불러주는 건 그 달인이랑 대적하지 않는 사람 뿐 아니겠는가.

그 달인이랑 이익을 두고 맞서는 사람들에게는 뭐라고 설득하고, 회유해도 통하지 않는 빌어먹을 꼰대로 보일 것이었다.

그러니까 적당한 기틀을 양보해주는 것이었다.

무력만 더럽게 강한 강자가 아니라, 사회에까지 영향을 끼치는 인물이 되고 싶다면 길드를 세워라. 힘만 가지고 일을 해결하지 마라.

왕과 귀족 같은 권력자들이 파워게임에서 선을 긋고 자리를 내준 것이다.

이것마저 거부하고서 선을 넘는다면 경우에 따라서는 최후통첩이 된다. 인간 세상에 남을 거라면 국가를 적으로 돌리는 건 좋지 않다. 이기건 지건 간에 말이다.

힘을 가지고 존재하는 것만으로 난해한 세상의 권력 투쟁에서 한 자리를 양보받을 수 있는 존재.

인간 세상에 남아서 활동하는 마스터 클래스란 그런 존재였다.

“대접이 소홀한 건 양해 바랍니다. 시종을 구할 여유가 없어서.”

나는 웨스턴이 차려준 자리에 그를 초대했다.

키아라 콜리도는 얼굴이 창백한 남자였다.

일행 1명 없이 혼자 온 것도 그렇고, 모험가 길드 연합의 최고 책임자라기보단 은퇴한 어쌔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키는 작은 편이군.’

신장이 낮은 게 신경 쓰이지 않을 만큼 인상이 독특해서 깨닫는 게 늦었다.

저 작은 체구를 마스터 클래스의 능력으로 활용한다면, 나랑 네페르티티의 감각을 홀연하게 빠져나가는 것도 가능한 걸까?

어쩌면 모험가라는 이미지에 가장 잘 어울리는 인물일지도 모르겠다.

“제가 좀 소름돋게 생기긴 했죠?”

아마 현존하는 모험가들 중 가장 강할 남자는 딱 그 생김새에 어울리는 느낌으로 미소지었다.

“예? 아뇨.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나는 터무니없다며 부정했다. 시발럼이 오또케 알았지?

“쿠흐흐. 기실 길드의 매니저한테도 ‘모험가라는 직종의 이미지를 낮추는 데 한 몫 보탤 것 같으니 되도록 대외활동을 줄여줄래?’라는 소리를 들었을 정도라서요.”

쓰벌, 대답하기 존나 어려운 멘트네. 내가 뭐라 대답해야 되냐? ‘하긴 생겨먹으신 게 존나게 좀비 같으니 저였어도 그렇게 말했겠어요!’라고 해 줘?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점은, 드워프나 엘프의 혼혈은 인간 부모의 특징을 덜 닮는다는 점이죠.”

제딴엔 농담이었던 걸까.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이 인간, 하프 드워프였나?’

쓰벌, 갑자기 호감이 가네.

동양인 남성 중에선 흑인 여성의 선호도가 낮은 거랑 같다. 인종차별이랑은 별개로, 그냥 기분적인 문제지. 자신의 마음에 거짓말은 할 수 없는 법이니까.

당당하게 말할 얘기는 못 되지만 말이다.

나는 일부러 어색한 미소를 짓고 나서─니 농담 매우 좆 같습니다라는 뜻인데, 전해졌음 좋겠다─ 관심이 간다는 양 말했다.

“저도 드워프 혼혈인 아내가 있습니다만, 그건 처음 듣는 이야기군요.”

혼혈은 엘프나 드워프의 특징을 이어받나?

생각해보면 키나 손재주, 긴 귀나 마법의 재능 같은 걸 물려받을 정도라면 당연히 그렇긴 하겠지.

그럼 우리 여신님이 내 아이를 낳아주면 어떨까.

우리 자식은 짧은 바이콘 뿔을 갖고 태어날려나?

“저는 어머니 쪽은 드워프셨지만, 다른 한 쪽은 아즈테카의 전사 계층이었다는 모양이라서요.”

삼천포로 빠지려는 나를 키아라의 말이 소파에 붙들었다.

“외견에 인간 쪽 부모의 특징이 나왔다면 제가 모험가로 살기 힘들지 않았겠습니까? 좋게 생각해 보면 장점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러셨군요.”

그런 농담이 있다.

식인종이 사는 무인도로 떠내려간 대학원생들 중, 건축학이나 예술처럼 식인종들에게 도움이 될 기술이나 학문을 가진 자는 잡아먹히지 않는다고.

그리고 드워프는 손재주를 타고 나는 종족.

감히 면전에 대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모험가의 최고 지위까지 올라간 남자의 과거사다. 별로 평탄하다고는 할 수 없을 듯 했다.

“오시는 길이 힘드셨을 텐데, 차부터 드시죠.”

나는 분위기를 타파하고자 차를 권했다.

귀족들 하는 짓이 옮았나. 기승전티타임을 애용하는 건 화제 거리가 없어서였던 모양. 한국인이 막연하게 ‘다음에 술 한 잔 하자’하는 거랑 똑같다.

“세상 곳곳을 여행하고 대접을 받으셨을 콜리도 경의 입맛에 맞을지는 모르겠으나, 아내가 좋아하는 찻잎과 다과를 준비했습니다.”

“사모님이요? 혹시 조금 전에도 말씀하신 동족 분이신가요?”

“다른 쪽입니다. 소문은 돌고 있지 않나요? 전 바이콘의 정신적 대표자와 혼약을 맺었습니다. 더 정확한 표현으로는 그녀를 위해서 신대의 저주를 풀었죠.”

“신대의 저주입니까…….”

감탄했다는 듯이 중얼거리는 키아라였다.

“저보다도 모험가다우시군요. 아아, 그리고 결혼 축하드립니다.”

“감사하신 말씀.”

살짝 견제를 넣어봤지만, 마스터 클래스의 모험가가 이까짓 밑밥에 꿈틀할 리가 없었다. 100년은 묵은 메기를 송충이 갖고 낚으려는 짓이지, 이건.

그렇게 적당한 담소를 나누었다.

키아라는 사람 좋게 응하면서도─외모랑 안 어울려서 섬뜩했다─ 딱히 즐거워 보이지는 않았다. 그 미묘한 간극을 두는 언동도 굉장히 능숙하다.

무례를 트집 잡히지 않으면서 호불호를 전하는 건 보통 요령이 아니거든.

소강상태를 거친 끝에 키아라는 용건을 꺼냈다.

“저는 울프헤딘 경을 도와드리려 왔습니다.”

거침없는 만큼 미심쩍은 이야기였다.

내 눈이 반개하는 걸 본 그는 미소를 지었다.

“신뢰받기 힘드리란 건 압니다. 생긴 게 이래서 꽤 익숙하죠.”

“저는 콜리도 경의 농담을 좋아합니다만, 별로 시의적절한 농담은 아니었던 듯 하군요. 저를 도와주러 오셨다는 건 무슨 뜻이실까요?”

“저는 싸울 때 외에는 속임수를 쓰지 않습니다.”

키아라는 익숙한 듯 단언했다.

어째서일까. 그 말만은 굉장한 신뢰도를 가지고 내 가슴에 와닿았다. 이성적으로는 신뢰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는데도 말이다.

“가끔, 어떤 일들은 노력만으로 극복할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출신, 잃어버린 신뢰…… 그런 것들이요. 살다 보면 싫어도 알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스스로에게 맹세했습니다. 죽고 죽일 때 외에는 결코 거짓을 말하지 않겠노라고.”

그를 마스터 클래스로 만들어준 신념이었을까.

무덤덤한 말에는 전사의 심금을 떨게 하는 천근만근의 무게가 담겨 있는 듯 했다. 나는 눈초리에 들어간 힘을 풀었다.

“울프헤딘 경. 저는 머리가 나빠서 명확한 기승전결을 좋아합니다.”

“복잡한 얘길 좋아하는 사람은 없죠. 좋습니다. 마저 듣겠습니다.”

하여튼, 적대해서 좋을 게 없는 상대기는 하다.

키아라는 표정을 무겁게 한 채로 말했다.

“저는 결코, ‘권위를 내세우면 탐험가의 수확을 찬탈할 수 있다’는 전례를 남기고 싶지 않습니다.”

“전례입니까?”

못 알아들을 얘기는 아니다.

그리고 조금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얘기였다. 나는 가볍게 물었다.

“혹시 찾으시는 물건이 있으십니까?”

본인의 말처럼 기승전결이 확실하지 않은가.

‘내가 아틀란티스의 소유권을 남에게 빼앗기면, 자기도 가치 있는 물건을 얻었을 때 시비를 걸릴 게 뻔하다고 생각한 거겠지.’

그리고 그런 염려를 한다는 건 높은 확률로 이 남자도 ‘남이 눈독 들일 만큼 가치 있는 물건들’을 찾고 있다는 결론으로 이어지지 않겠는가.

“대단히…… 사고력이 뛰어나시군요. 예. 그렇습니다.”

키아라는 놀란 듯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저는 후사를 보고 싶습니다.”

“후사…… 요?”

자식을 얻고 싶다는 얘긴가? 나는 너무 짤막한 대답에 곤란해졌다.

“……실례가 아니라면 어떤 사정이신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제 나이가 어연 일흔입니다. 나이를 빼고도 전 예전부터 후사를 보기 힘든 몸이었고요. 그렇기에 이 나이를 먹고 새삼스러운 꿈이 생긴 것입니다.”

저 얼굴로 70대인가.

놀라기에는 다른 마스터 클래스의 나잇대가 막 1천 살을 가볍게 웃돌아서 감흥이 없다. 나는 잠깐 턱을 쓰다듬다가 말했다.

“혹시 병이나 상처가 있으신지요?”

만약 그런 거면 엘릭서 몇 병 드릴까요?

그걸로 마스터 클래스의 모험가랑 친해질 수 있으면 투자 정도로 여기고 선물할 생각은 있는데. 엘릭서 몇 병이면 사라진 좆과 발기부전도 고칠 수 있을걸?

“그런 건 아닙니다.”

키아라는 음울한 얼굴에 웃음을 띄우고 어깨를 으쓱했다.

하긴 그런가. 돈이 부족할 사람도 아니다. 엘릭서 몇 병 정도는 사고도 남을 재산이 있을 모험가가 아닌가. 아마도 다른 이유일 것이었다.

“저는 모험가들이 손에 넣은 획득물에, 국가나 그 밖의 작자들이 손을 뻗을 여지를 남기고 싶지 않습니다. 무슨 물건인지 검열하는 것 정도는 용인할 수 있습니다만.”

다른 사람들한테도 말해 온 얘기일까. 키아라는 익숙하게 이야기했다.

“그래서 지금은 모험가 연합의 총 길드장이라는 직책까지 맡고 있지요. 모험가의 권익 향상을 위해서지만, 동시에 저 자신을 돕는 일이 되니까요.”

“사정은 이해했습니다. 그 정도라면 제가 거부할 이유는 없군요.”

아무튼 도와주겠다는데 사양할 게 뭐 있나.

토의에서 절대 적이 되지 않는 사람이 있는 건 든든하기 마련이니까.

“단지, 그게 콜리도 경에게 모든 걸 털어놓겠단 뜻은 아닙니다. 대략적인 사정은 추후 참관인들의 앞에서 설명할 시간이 있을 테고요.”

“알겠습니다. 저도 제 속사정 하나로 여러분의 완전한 신뢰를 사고, 일련탁생의 관계를 얻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지금의 대답으로 충분합니다.”

키아라 콜리도는 그렇게 악수만 하고 돌아갔다.

나는 그에게 숙박할 곳을 내줬다. 저택에 묵게 하는 게 귀족으로서 좋을지도 모르겠지만, 상황이 상황이니 그도 이해한 듯 승낙했다.

─벌컥!

자리에 남아서 기다리자 엘리자베트가 키아라와 교대하는 것처럼 들어왔다.

“어떻게 됐어?”

“협력하러 왔다더군요.”

“들려줘.”

─풀썩! 그녀는 공주답지 않게 앉았다. 나는 좀 전의 얘기를 되풀이했다.

엘리자베트는 턱을 괴고 듣다가 말했다.

“한 방 먹었어. 모험가의 입국은 따로 검문하지 않으니까. 홀라당 입국해서 들어와서 바로 여기로 올 줄이야. 예상 못할 급습이었네.”

“그래도 총장 쯤 되는 인물이면 검문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습니까?”

“괴짜답게 혼자 모험을 하고 다니는 인간이라서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겠지. 애초에 이 일이 벌어지기 전부터 국경 근처에 있었다고 해.”

“소식을 듣고 검문을 강화할 시간이 없었군요. 때가 안 좋았어요.”

나 개인적으로도 바람직하지 못한 문제였다.

그도 그럴게, 외부의 침입을 막으려고 나름대로 대비해뒀는데 제대로 효과를 보지 못했다는 의미 아닌가. 적이 많은 나로서는 바람직하지 않았다.

‘……내가 보거나 싸웠던 적들이 저렇게 숨어다니는 타입이 아니었다는 문제도 있지만, 어쨌든지 개선해야 할 필요는 있겠군.’

적어도 레티티아나 에퀴녹스 같은 적은 걸러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무리 달인도 각자 특기가 천차만별이라고는 하지만, 키아라가 그 대비책을 유유히 빠져나왔다는 건 대범하게 웃어넘기기 힘든 일이었다.

‘혼자 탐험하는 모험가라면 숨어다니는 게 특기일 거라는 추론을 세울 수 있지만, 비슷한 타입의 적이 나타날 가능성도 적지 않아.’

바이콘들에게 따로 보안을 강화할 부탁을 해야 할 듯 하다.

‘어떤 의미로는 이게 가장 큰 수확인가.’

보안 대책이 뚫렸는데 아무 탈이 없다니? 보통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해킹을 당했는데 컴퓨터의 파일이 멀쩡한 거랑 똑같잖아.

혹시 이건 키아라 나름대로의 배려였을까.

저 정도의 실력자라면 경계망의 존재를 모를 리 없으니, ‘여기가 부족합니다’하고 조언해 줄 생각이었을지도 모른다. 대놓고 지적하기엔 별로 친하지 않으니까.

“……선의를 보이다가 미움을 사는 타입이군.”

드워프의 피가 흐르는 사람은 다 이런 식인가?

장인정신을 형성하는 사고구조는 저 성실함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프랑부터가 남을 보살펴주는 걸 삶의 보람으로 아는 타입인걸.

“뭐라고 말했어?”

“아뇨, 혼잣말입니다.”

난 거기까지 생각하고서 엘리자베트에게 물었다.

“다른 방문객들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습니까?”

“다른 나라의 중추에서는 사절단을 보내고 있어. 아바마마가 수도에 계신 건 그걸 한 번 솎아내서 시간을 벌고 이쪽에 보내주시려는 거였고.”

그녀는 노골적으로 혀를 찼다.

“이미 몇 개인가의 나라나 단체에서 입국했어. 아바마마께서도 어중이떠중이는 걸러내셨겠지만, 일은 이제부터 시작이야.”

“사절단들이 찾아올 만한 시간이 되기는 했죠.”

내가 그렇게 말했을 때였다.

─콩콩. 전서구가 창문을 두들겼다. 기척을 읽고 있던 나는 창문을 열고 그 녀석의 다리에서 쪽지 한 장을 꺼냈다. 캐서린의 필적이었다.

“무슨 편지야?”

─화륵. 혈수마공으로 편지를 태우고 대답했다.

“낯선 배들이 몇 척, 항구로 들어오고 있다네요.”

사절단의 등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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