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686화 (685/1,009)

***

카에디 사비로나는 옷의 단추를 여몄다. 고르갈리아 외교관의 브로치가 파도에 익숙해진 것처럼 그녀의 가슴에서 흔들거렸다.

본국에서 배를 탄지 며칠.

고르갈리아의 사절단은 휴스로이트의 항구를 눈 앞에 두고 있었다.

〈정박에 앞서서 마지막 브리핑을 실시한다. 이 이후 현지에서 브리핑을 재개할 일은 없을 테니, 넋 놓고 있지 말고 집중하도록.〉

르싱 호의 선실에 앉은 외무대신이 말했다.

일국의 대신이 소국, 그것도 변방의 도시에 찾아온 것은 저 ‘떠다니는 섬’이 가진 의의를 의미했다. 고르갈리아가 브리타니아와 엇비슷한 국력이라는 건 잠시 잊고서라도 말이다.

〈우리 목표는 문제의 섬, 아틀란티스의 획득이 아니다.〉

신경질적으로 눈두덩이를 주무르던 외무대신은 출항 전, 의회에서도 했던 목적의식을 제창했다.

〈본국에게 있어서 가장 후환이 없는 선택은 저 섬에 몇 가지 강력한 조약을 걸어두는 것이다. 섬 자체를 빼앗는 건 틀림없이 과욕이야.〉

〈트집 잡을 수단도 없으니까요.〉

〈소국의 애환이지. 브리타니아가 부러운걸. 저 울프헤딘 같은 남자가 귀화하다니. 기왕 하는 거 우리 나라에 왔으면 내 딸도 내줬을 텐데.〉

부하가 농담조로 한 말에 외무대신은 엄격하던 얼굴을 지우고 픽 웃었다.

〈본국의 역사학자들이 ‘사실 아틀란티스라는 게 우리 나라에서 가라앉은 거거든요’하고 증거라도 찾아줬으면 좋았을 텐데 말입니다.〉

〈그건 그것대로 곤란하지. 로마니아나 게르마니아가 눈독을 들일 게 뻔한데, 어떻게 지켜내게?〉

카에디는 틀린 말은 아니라며 질색했다.

‘사실 다른 나라라고 뾰족한 수가 있겠냐만.’

만약 아틀란티스에 눈독을 들이더라도, 확고한 역사적 사료가 없으면 억지를 부릴 수밖에 없다. 이 점은 강대국이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린다면 모를까.’

듣는 사람이 황당해져서 반박하기도 힘들 만한 억지를 말이다.

‘……내가 무슨 소리래.’

카에디는 짧은 생각을 자책했다. 억지를 부리며 트집잡는 상대는 외교의 자리에서 흔히 보이는 일 아닌가.

‘혹시 알아? 비난받을 마음으로 억지를 부리는 사절단이 나올지.’

별로 적절한 선택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해서 빼앗아도 아틀란티스를 움직일 수 있는 건 울프헤딘 백작 뿐이라는 얘기였으니까.’

브리타니아 왕을 만나고 온 사신의 이야기였다.

그게 사실인지는 이제부터 확인하면 그만이다. 카에디의 일은 단지, 저 비현실적인 섬이 잠재적 적국의 전쟁병기가 되지 않게 막는 것이었으니까.

〈작전 목표는 요약해서 둘.〉

외무대신은 다시 냉혈한 같은 표정을 지었다.

포커페이스는 외교관이라면 당연히 갖춰둬야 할 능력이었다.

〈하나. 브리타니아에 귀속시키고, 무기 배치나 운영을 억류하는 조약을 맺는다. 둘. 아틀란티스가 타국의 손에 넘어가지 않게 막는다. 이상.〉

회의는 그걸로 끝이었다.

일정을 재확인할 뿐인데 길어질 이유가 없다. 곧 상륙해야 하기도 했고.

〈……응?〉

그때, 카에디는 불현듯 위화감을 느끼고 천장을 보았다.

〈왜 그러십니까?〉

〈……아니, 꼭 누군가가 우리를 보고 있는 것 같아서.〉

카에디의 말을 부정하는 인물은 없었다. 그녀는 영적인 능력이 뛰어난 귀족 가문의 출신이었으니.

〈총원 동작 정지.〉

─치링! 외무대신은 망설임없이 마법을 펼쳤다.

생명의 반응을 탐지하는 고르갈리아의 비전 마법이었다. 정해진 공간에서밖에 사용할 수 없지만, 그 대신 벌레 같은 작은 생물까지 찾아낼 수 있다.

저 외무대신을 신경질적으로 만든 원인은 다름 아닌 저것이겠지. 벌레나 곰팡이가 우글거리는 걸 매번 봐야 한다면 누구여도 결벽증이 생길 것이다.

외무대신은 그렇게 몇 분이나 마법을 펼치다가 눈을 떴다.

〈착각이었군.〉

〈……후우.〉

사절단의 인원들은 안심했다는 듯 숨을 골랐다. 착각이어서 다행이라며 카에디의 어깨를 두드리는 이도 있었다.

〈하하. 새도 아니고 항해 중인 배에 누가 올라타겠습니까? 그리고 새라면 외무대신님의 마법에 걸렸겠죠. 신경과민이십니다.〉

기술적으로 봐서 그런 게 가능할 거라고는 생각하기 힘들었다.

신화에 나오는 천공신의 천리안이라면 모를까.

〈게다가 암호로 얘기 중이지 않았습니까. 들킬 가능성은 낮습니다.〉

외무대신의 마법을 빠져나갈 수 있어도 암호로 이야기를 나눴는데 어떻게 내용을 이해하겠는가?

세상 모든 나라의 언어를 다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이 있더라도, 설마 암호까지 해석하지는 못할 것이었다. 정말로 그런 짓이 가능하다면 백기를 흔들 수밖에 없다.

외무대신은 부하들의 너스레에 인상을 썼다.

〈방심하지 말게. 그러는 자네들은 몇 달 전에 ‘금속에 마나를 부여할 수 있다’는 말을 합리적인 가설이라고 생각하고 들었나?〉

〈……실례했습니다.〉

〈늘 긴장하고 있게. 여긴 이미 적진이야.〉

입으로 나누는 대화까지 암호를 쓰도록 지시한 외무대신이다. 불평을 말할 정도로 눈치가 없거나 생각이 부족한 외교관은 없었다.

〈사절단 여러분! 곧 상륙합니다!〉

〈올라가지. 항만에서부터 얼굴을 비춰둬야 해.〉

사절단은 갑판에 서서 간단한 검문을 받았다.

국가 간의 외교는 입국 전에 절차를 마쳐둔다. 그렇기에 검문은 신분 확인 과정에 불과했지만, 그 일을 맡은 게 기사들이라면 얘기가 좀 다르다.

‘왕실기사단이 검문을?’

‘브리타니아 왕, 아니 공주인가. 작정을 했군.’

외교관들의 생각이 어쨌건, 신분을 확인한 기사들은 방향을 가리켰다.

〈정박하신 직후에 죄송합니다만, 사절단께서는 가능하다면 아틀란티스에 머물러 주시길 바란다는 울프헤딘 경의 요청입니다.〉

〈아틀란티스에 말이오? 어째서요?〉

울프헤딘 백작이 무력시위로 나올 가능성은 고려할 가치도 없다.

하지만 굳이 저 섬에 머물러야 하는 이유가 어디 있다는 말인가? 비록 이번 방문의 목적이라도, 섬 안에는 인프라가 갖춰지지도 않았을 텐데?

그들의 눈총을 받은 기사는 영지를 가리켰다.

〈휴스로이트에는 남은 여관방이 없습니다.〉

〈……………….〉

확실히 최소 20명씩 뭉쳐다니는 각국 사절단을 모두 묵게 하기엔 부족해 보이는 건물 상태였다.

영주관은 이 기사들과 공주를 맞이하기도 벅찰 테고.

〈급작스러운 방문이므로, 어느 정도의 불편은 양해해 주시겠다는 합의는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부디 양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아니, 이쪽이야말로 실례했소.〉

브리타니아에게 시간을 줄 수 없다며 이 나라의 왕성에서 ‘되도록 빠른 방문을 바란다’며 떼를 쓴 것. 다른 누구도 아닌 각국의 사절단의 업보였다.

사절단은 별 수 없다며 다시 배에 올라탔다.

시작하기도 전에 기세가 한 풀 꺾인 느낌이었다.

***

‘사절단들의 반응은 다 대동소이하군.’

나는 감았던 눈을 떴다.

저택에서 각국 사절단의 반응을 관찰하던 것을 멈췄다. 눈이 뻐근하다.

‘그래도 오딘의 눈이 레벨 업해서 다행이었네.’

바이콘 신족의 저주를 풀어주면서 얻은 천리안 능력은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쓸모가 있었다. 원거리에서도 일방적으로 감청이 가능했으니까.

약간 범죄를 저지르는 기분이 들어서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

그래도 저들이 내 입장이라면 당연히 훔쳐봤을 것이다. 으으 음습한 것 봐. 역시 외교다. 더럽다 더러워.

“노르, 밥 안 먹어?”

같이 밥을 먹던 프랑이 고개를 모로 꼬았다.

가능하다면 한 곳에 모여서 밥을 먹는 게 우리 가족의 철칙이었는데, 이런 상황에선 식사 시간을 맞추기가 좀 어려웠다.

덕분에 식사가 늦어진 나랑 프랑만 한 발 늦게 밥을 먹게 되었던 것이다.

나는 노트에 사절단들의 스탠스를 적다가 말고 수저를 들었다.

“먹을 거야. 발퀴리에들이 요리한 거잖아? 맛을 봐 줘야지.”

“내가 같이 요리하면서 가르쳐줬는데, 전혀 흠 잡을 데가 없던 거 있지? 엄청 빠르게 배우더라. 나도 알려주다가 깜짝 놀랐어.”

“흐흐. 요리사가 따로 필요 없겠네.”

음식에 독이 들어갈 가능성도 있으니까 말이다.

‘안 그래도 어르신이 결혼 선물로 독이 있는지 확인해주는 매직 아이템 식기 세트 같은 걸 보내주셔서 존나 섬칫했는데 말이야.’

참석 못 해서 미안하다면서, 이번에 찾아와 준 부하가 건네줬다.

본인이 직접 오지 않은 건, 어차피 내 후원자인 걸 세상이 다 알기 때문이다.

‘엘리자베트가 있는 와중에 어르신까지 오셔봤자거든.’

내 편인 걸 세상 사람들이 다들 안다. 토론에서 뭐라 발언하셔도 설득력이 부족해질 수밖에.

덕분에 신뢰하는 로마니아 귀족을 보내주셨다. 문관 출신의 자작이었다.

프랑은 수저를 입에 물듯이 핥고 말했다.

“이거, 마나를 부여한 금속으로 만든 거랬지?”

“응. 은에 마나를 넣었으니까 이게 미스릴이지 뭐. 몇 덩이 선물해주고 왔더니 드워프 장인들이 만들어줬대. 무슨 무역도 아니고 좀 웃기지?”

“웃기기는? 이런 숟가락 하나도 노르가 열심히 살아온 증거인걸. 그래도 무지 예쁘다. 헤헤.”

“예쁜 건 프랑 너랑, 네 말투가 제일 예쁘지.”

프랑 너무 귀여워. 역시 우리 프랑은 내 마음의 안식처다.

주저없이 테에엥~ 마망~ 할 수 있는 모성은 이 하늘 아래 프랑한테밖에 찾아볼 수 없단 말이지.

처녀 마망 네 모씨는 마망~ 거리면 내가 맛이 간 줄 알고 치료사─다나─를 데려올 것 같거든.

그때 프랑이 즐거운 듯 밥을 먹다가 말했다.

“노르, 좀 이따가 또 일하러 가야 돼?”

“응? 뭐, 그렇지. 사절단들한테 인사해야지.”

항구에서 맞이하려다가, 얕보이면 안 된다면서 엘리자베트에게 저지당했다.

‘상대의 신분이 나보다 높아도, 왕족이 아니라면 굳이 마중나갈 필요는 없다던가.’

그래도 얼굴을 비추지 않는 건 실례다. 귀찮은 예법이지만 왜 그래야 하는지 물어볼 건 없다. 걍 까라는대로 까면 중간은 갈 것이니까.

식사를 마친 프랑은 안타깝다는 듯 입을 닦았다.

“노르도 힘들겠다.”

“그래. 나 죽도록 힘들어. 왜 우리 프랑을 두고 하등 관심없는 아줌마아저씨들 얼굴을 보러 가야 하는 것이지. 눈물 난다, 진짜.”

나는 프랑을 끌어안고 찡찡거렸다. 프랑은 헤실거리면서 나를 다독여줬다.

내 어리광을 받아주는 걸 좋아하는 프랑이니까 이것도 대충 윈윈 아닐까?

“몸이 10개면 좋겠는레후…… 9개는 일 시키고 나는 여기 남아서 프랑이랑 놀고 싶은레후…….”

“으응……. 그럼 있지, 내가 도와줄 건 없을까?”

“건강하게 옆에 있어주기만 해도 위로가 돼.”

브리타니아 제일 찌찌 최고야…….

그렇게 안락한 시간을 보내던 나였지만, 솔직히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다. 복 받은 만큼 좆 박는 내 인생이 이렇게 순탄할 리가 없다는 걸.

또 캐서린의 전서구를 받은 나는 오만상을 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노르? 왜?”

“……바이츠니아 황족이 찾아왔다네.”

“……화, 황족?!”

프랑은 화들짝 놀라서 일어났다.

말이 씨가 된다고, 동양의 용처럼 생긴 생물이 이끄는 배가 목격됐댄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겉옷을 입으면서도 혀를 찼다.

‘뭔 시발, 바이츠니아가 무슨 자격으로 끼겠다는 거야?’

내가 키타이 인이라는 걸로 돼 있기는 한데, 이 나라의 귀족이 된 순간부터 연은 끊어졌다. 설령 내가 황제의 사생아여도 이미 남남인 것이다.

그런데 바이츠니아에서 사람을 보냈다?

그냥 아틀란티스가 무기로 사용될 염려가 있기 때문일까?

존나 개소리 말라 그래라. 그럴 거면 황족이나 되는 놈이 찾아오겠냐고.

무슨 수작인지는 몰라도,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나, 나도 같이 나가는 게 좋을까?”

“바로 말을 취소해서 미안하지만, 좀 부탁할게. 나도 일단 귀족이니까 아내도 한 명 동반하는 게 예의에 맞을 거라더라.”

나는 옷을 입고 프랑도 드레스로 갈아입혀줬다.

편안한 옷일 때에 비해서 가슴이 좀 줄어들어서 아쉬웠지만, 어쩌겠는가. 남자 황족이면 100% 울 프랑의 가슴에서 눈을 못 뗄 텐데, 그랬다간 내가 브류나크를 뽑아버릴지도 모른다.

“히르히힝─! (밥 먹고 있었는데─!)”

발퀴리에가 이끄는 마차를 타고 항만에 향했다. 엘리자베트는 사절단 쪽의 관리를 맡고 있었기에 시간에 맞지 못했다. 상대의 배가 너무 빨랐다.

프랑은 머리를 만지면서 바이츠니아 국기를 건 배랑, 배를 이끄는 생물을 보고 움츠러들었다.

“드, 드래곤이야?”

“아냐. 그 정도로 강하진 않네.”

이로치 블랙 갸라도스 정도 되려나.

쟤들도 잉어에서 진화한 걸까? 바다를 헤엄치는 걸 보면 맞을 것이었다.

나는 엘리자베트의 기사들에게 절차를 일임하고 당당하게 자리를 지켰다.

『리앤 유이링(蓮 雨灵) 황녀님의 행차입니다!!』

거창하고, 어떤 의미로 무례하기까지 한 뿔삐리 소리였다. 눈쌀이 찌푸려지는 걸 막고 있자 선박으로부터 가마를 탄 여성이 내렸다.

어린 여자애인가?

아니, 나이는 잘 모르겠다.

얼굴은 성숙하고 손, 발도 꽤 길다. 키를 빼놓고 비율만 보면 성인처럼 보였다.

키는 프랑보다 작고 머리카락은 검은색이었다. 그래도 신장이 작아서일까. 황족의 옷을 차려입은 인형 같은 여인이었다.

문화 차이를 고려해도 예의는 지킬 생각인지, 천것들이 황족의 얼굴을 보지 못하게 가마에 쳐 놓은 듯한 발─커텐 같은 것─은 전부 걷어놓았다.

【……언니?】

그래서였다.

그 황녀가 우리를 발견하고서 눈을 크게 뜰 수 있었던 것은 말이다.

【프란체스카 언니? 프란체스카 언니 맞죠?!】

“……뎃?”

나랑 프랑은 멍하니 입을 벌렸다.

언니? 언니라니, 시발 그게 뭔 소리여?

내 머리는 븅신처럼 블루스크린을 띄우고 같은 단어를 반복하다가, 몇 분 지나서 간신히 그 사전적인 의미를 인풋했다.

“………………프랑의 여동생!!!!!”

나는 화들짝 놀라서 프랑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보면 남은 가족이 어딘가에서 살고 있단 얘기는 들었었다!!

프랑의 아버지도 일부다처제의 혜택을 받은 연금술사였으니까!!

붕붕붕붕붕─!!

우리 프랑은 고개를 막 저으며 온몸으로 ‘처음 보는 사람이야!!’하고 항변했다. 두 눈엔 거짓말 못 하는 사람이 오해를 받았을 때의 눈물로 가득했다.

여동생이 아니라고? 존나 다행이다. 이게 아침 드라마면 난 5화 쯤 뒤에 교통사고로 뒤졌을 듯.

‘애미 쓰벌, 지금 그딴 소리나 할 때가 아니지.’

저 애가 프랑의 여동생이 아니면, 이건 대체 먼 일이란 말인가?

【언니! 이렇게 뵐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극도의 대혼란에 빠진 우리에게, 자기가 여동생이라고 착각하는 황녀병자는 가마에서 뛰어내리듯 달려왔다. 짧은 발을 놀리는 속도가 엄청나다.

와락─! 프랑에게 안기는 황녀.

황족을 상대로 피하거나 쳐낼 수도 없던 프랑은 돌처럼 굳어버렸다. 나는 나대로 이 미친 황녀가 위해를 가하지는 않을까 경계하느라고 제정신이 아니었다.

굳어버린 프랑이 복화술 인형처럼 질문했다.

【저, 저, 혹시 어어디서 뵌, 적이 있나나, 요?】

그때였다.

나는 만언신 파파고의 우월한 번역능력에 의해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었던, 어느 진실에 눈치챘다.

같은 영어라도 영국식하고 미국식은 꽤 다르다.

그거랑 마찬가지로── 이 두 사람이 사용하는 게르마니아 어에는 니다벨리르의 독특한 억양이나 발음이 섞여 있는 것이 아닌가?

성숙한 얼굴에 비해 작은 키. 비슷한 머리색.

절대 자기 여동생이 아니라는 프랑의 말.

이걸 조합해서 아틀란티스라는 가장 큰 문제에 억지로 결합하면, 정해져 있는 결과로부터 과정을 역산할 수 있었다.

쉽게 말해서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았다는 뜻이다.

나는 그제서야 저 멀리 중원의 황족들이 생각해낸 개소리를 이해했다.

이해했기에, 넋이 나가버리고 말았다.

‘진심이야? 완전 대가리에 총 맞은 발상인데?’

키아라 콜리도는 말했다. 혼혈은 인간 쪽 부모 형질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고 말이다.

그리고 이 세상에 친자감별검사 같은 건 없다.

있다고 하더라도 하루 이틀만에 끝나진 않겠지.

다시 말하자면, 바이츠니아의 황제는 우리가 ‘개소리 좀 하지 마라’면서 빼도 박도 못한 증거를 가져올 때까지 이렇게 주장할 수 있는 것이었다.

─보다시피 내 아내들 중에는 드워프가 있다.

─실종된 줄로만 알았던 자식이 황야를 건너서 살아남고, 그 이름을 ‘프란체스카’로 개명했다.

정말로 실종된 하프 드워프 황녀가 있다면 그걸 증거로 삼을 수도 있었다.

바이츠니아는 황야를 사이에 두고 니다벨리르랑 인접한 국가니까.

‘그래서 프랑을 자기 딸이라고 주장하겠다고?’

그걸로 이미 브리타니아 인이 된 나 대신, 울프헤딘 가문── 아틀란티스의 소유권 분쟁에 손을 뻗어 보겠다는 심보였다.

그야말로 이세계식 내선일체 겸 동북공정.

혹은…… 하나의 바이츠니아!!!

【아아, 저도 참! 초면에 실례했어요!】

혹시나가 역시나. 드워프의 피가 흐르는 황녀는 기품 있게 물러섰다. 그리고 황족이 외국의 귀족을 상대로 보일 리 없는 겸손한 인사를 올렸다.

【처음 뵈어요, 프란체스카 언니! 저는 진련국 제 9황녀, 리앤 유이링! 언니와 같은 어머니를 둔… 당신의 여동생이에요!】

내가 눈빛을 가라앉히며 바라보는 걸 모르는지, 하프 드워프 황족은 순진무구하게 눈을 빛냈다.

마치 황제의 거짓말을 정말로 믿는 것처럼.

그도 아니면, 죽은 언니를 다시 만날 수 있어서 기쁘다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황망해진 프랑의 등을 두드리며, 분노하다 못해서 임계점을 넘어 냉정해진 이성으로 바이츠니아의 사절단을 찬찬히 살폈다.

이 하프 드워프 황녀가 대표일 가능성은 0%다.

그렇다면 대표는 누구냐?

무슨 웃기지도 않은 생각으로 저딴 얼척이 없는 변명을 준비했지?

“사전에 설명도 없이 실례했습니다.”

내 눈빛을 받자 사절단에서 한 남자가 나섰다.

그는 반듯하게 넘긴 머리와 주름살 없이 다려낸 관복을 입은 사내였다.

“천문관 장즈췬입니다.”

평생 붓 외에는 들어본 적 없을 것 같은 남자가 포권하며 허리를 숙였다.

“현재는 황제 폐하를 대신하여 유이링 황녀님을 보필하는 중임을 맡았습니다. 황녀님께서 재회에 겨워 충동적으로 구신 점, 부디 저로부터도 사죄드리고 싶습니다.”

“……과연. 그러셨군요.”

나는 그때가 되서야 웃음을 지을 수 있었다.

투시능력을 깨우친 오딘의 눈이 보여주었다.

장즈췬의 몸속에서 바글거리는, 몹시 낯이 익은 벌레 무리를 말이다.

‘바이츠니아에 침투한 굴라나뢰크의 벌레 술사.’

별명이 분명 충왕대군이라고 했던가.

꽤 대범한 수를 쓰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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