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척척석사 노루-688화 (687/1,009)

***

【황녀님은 저희 저택으로 모시겠습니다.】

사절단에게 구태여 과장된 쇼를 보여주고서, 난 프랑을 훔쳐보는 유이링에게 친절하게 제안했다.

【상세한 사정은 모르겠으나, 저희 아내가 황녀님의 누이가 맞는지는 대화를 나눠보면 알겠지요. 하룻밤 정도 터놓고 대화해 보시면 어떻습니까?】

【그, 그래도 될까요?】

유이링은 기뻐했지만 여기서 아무 말 않을 정도였으면 보필하러 오지도 않았겠지. 장즈쥔은 절대 가당치도 않다는 표정으로 끼어들었다.

【송구합니다만, 황녀 전하. 다른 사절단들처럼 별도로 건물을 받는 것이 옳은 줄 압니다.】

【……왜 그래야만 하나요?】

【백작의 저택에서 저희 나라 병사가 좋을대로 움직일 수는 없습니다. 그건 심각한 무례이며, 또 피차간 불편할 뿐입니다. 그러니 경비 책임을 저희들의 소관으로 끝마칠 수 있는 장소가 낫습니다.】

나는 성실한 자세로 열변하는 장즈쥔을 보았다.

그는 정말로 나와 황녀를 동등하게 생각하고, 이 자리에서 제일 나은 방법을 고심하는 것 같았다.

【저택 본저 근처에 건물을 세우지요.】

그래서 나는 눈빛이 가라앉지 않도록 주의하며 말했다.

【……뭐라고 하셨습니까?】

【이미 보셨다시피 건축 정도는 손쉽습니다.】

나는 걸어온 길을 가리키며 능청스럽게 굴었다.

굳이 저렇게 퍼레이드 하듯 건물을 세우고, 이 영지의 기술력을 과시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솔직히 그다지 하고 싶은 짓은 아니었지만.’

생각해 보길 바란다.

현관 앞 CCTV에 야구방망이를 안고 서성이는 사람이 찍혔을 때, 그게 9살 여자애인 거랑 모자를 눌러쓴 190cm 거한인 거랑은 느낌이 다르잖은가.

내 영지의 포텐셜은 후자였다. 야구방망이는 이 아틀란티스고.

아틀란티스를 꽉 쥐고 자기 나라 코앞을 오가게 될 인물!

그게 좆밥♡허접인 백작따리 동양인인가, 그도 아니면 뒤지게 강대한 세력을 가진 공작(진)인가는 당하는 입장에서 차이가 굉장히 크지 않은가.

‘사절단들이 불편해 하거나 내 영지를 위험으로 여기면 손해밖에 더 돼?’

그런고로 기술력 어필은 나한테는 나쁜 영향을 줄 수도 있는 뻘짓거리다.

하지만 그걸 감수하고 저런 짓을 할 가치가 2개 정도 있었다.

【제 저택이야말로 영지 내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며, 왕녀님께서 저택에 머물고 계시는데 타국의 황녀님을 안전을 이유로 쫓아내서야 제 부덕이 아니겠습니까.】

그중 하나가 이 설득을 위해서였다.

‘신용할 수 없는 십새들이라면 가까이에 둬야지.’

그게 키아라처럼 힘으로 대처하기 힘든 상대가 아니라면 더욱 그랬다.

사절단 근처에 뒀다가 벌레라도 먹였다간 존나 큰일이기도 하고.

【과연. 브리타니아의 왕녀님께서도 저택에…… 그렇습니까.】

내 논리정연한 말에 장즈췬은 눈빛을 가라앉힐 뿐, 반론하지 못했다.

대답 못하는 게 당연하잖아. 자기 나라 황족이 타국 왕족보다 한 끕 낮게 취급당한다. 황실에서 근무하는 사람으로서 가장 큰 굴욕이지?

‘지가 어쩔 거야? 여기서 안 된다고 하면 자기 황족<남의 왕족이 되는데.’

똑같은 왕(황제)의 딸에, 똑같은 손님인 처지.

그런데 한쪽은 저택에 초대하고, 다른 쪽은 막 지은 건물에 묵게 한다?

여기서 차별 대우와 미묘한 선 긋기를 못 느끼겠다면 부디 입대를 권한다. 너, 전업군인의 소질이 있을지도?

─힐끔. 사절단 전원을 오딘의 눈으로 살피고서 나는 미소지었다.

【저와 아내의 체면을 위해서라도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 정 그러시다면 어쩔 수 없겠네요. 좋아요. 이번만큼은 형부이신 경에게 양보해 드리지요!】

장츠쥔이 말없이 끄덕이자 유이링은 즉답했다.

너무 좋아서 죽겠다는 듯한 표정을 하고 그렇게 말해봤자지. 나는 픽 웃으며 황녀 유이링의 몸을 몰래 살폈다. 대놓고 볼 수는 없었으니까.

‘……음.’

투시력 조절이 실패해서 순간 배가 보였는데, 뭐 엄한 부위는 안 봤으니까 괜찮겠지.

암튼 신경 쓰이던 사실은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유이링의 몸에는 벌레가 심어져 있지 않다.’

그러면 됐다. 프랑과 같은 방에서 얘길 나누게 둬도 비교적 안심이다.

나는 거기까지 생각하고 텔레파시를 흘렸다.

─프랑, 미안해. 이런 일을 맡겨서.

─또 사과한다. 그러지 마. 나는 노르가 의지해 줘서 무지 기쁘려던 참이었단 말야.

유이링과 대화하다가 살짝 웃는 프랑.

프랑에게 있어서 가족이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진 단어인지는 나도 잘 안다. 프랑이 나보다 더 화가 나 있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

하지만 위험과 안전을 저울질하면 이게 가장 옳은 선택이었다.

─네 안전은 보증할게. 마침 새 마법도 배웠고.

나는 몰래 머리에서 되뇌이던 술식을 반복했다.

고르갈리아의 사절단을 천리안으로 구경하다가 봤던 탐지마법.

국가기밀 수준으로 굉장한 성능이던 그 마법을 오딘의 눈으로 보지 않았는가. 나는 못 쓰겠지만 감지능력이 뛰어난 프랑이라면 빠르게 습득할 수 있을 것이었다.

유이링을 만나러 가기 전에 완성해서 프랑한테 알려주자.

─나는 괜찮아. 나도 꼭 이 애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구.

프랑이 자기 얘기에 웃은 줄 알고 기뻐하는 유이링을 좀 미안하다는듯 바라보면서, 그녀는 양보 못 할 선을 긋듯 중얼거렸다.

─가족을 잃어버린 상처를 거짓말의 방편으로 쓰다니, 용서할 수 없는걸.

그녀의 단호한 의지에 나는 고개만 끄덕거렸다.

권중암투에 뼈가 굵은 엘리자베트도 그랬잖은가.

자신의 의지로 싸움에 임하는 자는 강하다고.

***

황녀를 포함한 사절단이 찾아온 날.

노르드와 엘리자베트는 바이츠니아의 사절단과 회담을 나누었다.

【저희로부터는 이상입니다, 울프헤딘 백작.】

【충분히 상식적인 요청이군요. 수용하죠.】

회담은 목청을 키울 것도 없었다. 경비 절차나 진입금지구역 등을 합의하고 사절단이 머물 곳을 지어준 노르드는 프랑과 저택에 돌아갔다.

호위로 따라온 황군의 병사들이 건물의 안전을 확인한 뒤에야 유이링은 간신히 프랑과 이야기를 나눌 시간을 얻을 수 있었다.

【앗! 어, 어서 오세요! 황녀님!】

자기 방을 나름대로 꾸며놓은 프랑이 어색하게 웃으면서 그녀를 환영했다.

유이링은 귀엽게 장식된 방의 분위기와, 거기에 안 어울리는 듯 어울리는 하얀 골렘을 보고 잠깐 몸을 움츠렸다.

【저 골렘은요?】

【앗, 제 호위에요. 믿음직하죠?】

의자를 당겨주다가 말하는 프랑. 유이링은 작게 키득거렸다.

【정말이네요. 어딘지 모르게 귀엽기도 하구요. 아, 오늘은 이렇게 불러주셔서 고마워요, 언니.】

【아, 음. 네. 제가 황녀님의 언니인지는 아직 잘 모를 일이지만요. 헤헤.】

프랑은 목을 매만지며 웃었다.

그녀의 방 앞까지 황녀를 배웅한 바이츠니아의 황군들은 간단히 목례하고 문을 닫았다. 저 2명이 그녀들이 대화하는 동안 호위를 맡은 이들이었다.

그들은 프랑의 골렘에 시선을 줬다가, 별 신경 쓸 게 못 된다고 여긴 듯─사전에 상의한 일이긴 했다─ 호위 업무에 종사하러 떠났다.

유이링은 권해진대로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사실은 말이죠? 저도 저희 언니의 얼굴은 잘 기억나지 않는답니다.】

프랑은 딱히 눈이 휘둥그레지거나 하진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기억이 선명하다면 유이링의 언니와 프랑을 착각할 수는 없을 것 아닌가. 그녀들이 기적적으로 닮은 게 아닌 한은 말이다.

【네에……. 역시 그러셨군요.】

【우후후. 그야 한참 더 어릴 적의 추억인걸요? 언니의 초상화라면 있지만요.】

유이링은 가져온 초상화를 보여주었다.

액자는 황녀의 개인 소유물 치고는 고급스럽지 못했다. 하지만 프랑의 눈으로 보기에도 소중하게 간직했다는 걸 알 수 있는 초상화였다.

어릴 적의 모습에, 서방국가에서는 비교적 희귀한 머리색도 있어서였을까? 확실히 착각해도 이상하지 않겠다고 프랑은 혼자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저희 어마마마는요, 니다벨리르 출신의 드워프셨대요.】

【네. 저희 남편도 그러실 듯 하다더라구요.】

【정말로? 듣던대로 울프헤딘 백작께선 감각도 대단하시네요!】

능숙한 칭찬에 프랑은 자기 일처럼 헤실거렸다. 그게 재밌다는 듯 유이링은 숨 죽여 몰래 웃었다.

그러던 그녀의 낯빛이 살짝 어두워졌다.

【어마마마는 원래는 궁녀로 들어오셨는데. 아바마마의 성은을 입고 후궁이 되셨대요. 그렇게 저희 언니랑 저를 낳아주셨구요.】

이야기하는 유이링은 표정이 별로 밝지 않아서 프랑은 질문을 삼갔다.

아직 자신이 백작 부인이란 실감이 잘 안 드는 그녀도 황족의 복잡한 권력투쟁은 알고 있었다.

【언니는…… 저랑 같이 어마마마의 궁전의 마당에서 숨바꼭질을 하다가 홀연히 실종됐어요. 저는 그래서 지금까지 언니가 죽었을 거라곤 생각할 수 없었죠.】

눈을 감으면 아직도 기억난다. 숨바꼭질을 하며 숨어 있을 언니를 몇 시간씩이나 오기를 부려가며 찾던 어릴 적의 그녀가.

그때 유이링이 늦지 않게 언니의 실종을 어른들에게 알렸다면, 혹시 결과는 달라졌을까?

그런 가정도 이미 수천 번은 반복한 번뇌였다.

【그렇지만 프란체스카 부인은…… 저희 언니가 아닌 모양이네요.】

유이링은 감았던 눈을 뜨며 웃었다.

【……알고 계셨나요?】

【제 얘기를 들으신지도 반나절이 지났는걸요? 조금이라도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드셨다면 지금 같은 표정은 짓지 않으실 테니까요】

정곡을 찔린 프랑은 눈을 깔았다.

그녀는 기억하고 있는 어머니의 얼굴을 쏙 빼닮았고, 아주 어릴 적부터의 추억도 가지고 있었다.

【아마도 부인은 어릴 적의 추억이나 부모님의 얼굴이 선명하신가 봐요?】

【……네. 황녀님의 언니 분은, 몇 살 때?】

【제가 8살 때니까, 언니는 10살이셨네요.】

고개를 젓는 프랑. 유이링은 그럴 줄 알았단 듯 쓴웃음을 지었다.

10살 때 실종된 유이링의 언니가 프랑일 수는 없었다. 프랑에게는 10살보다 훨씬 어렸을 시절의 소중한 추억이 몇십 개나 있었으니까.

【아틀란티스라는 섬으로 시끌벅적하다는 얘긴 들었어요.】

유이링은 정말 나쁜 짓을 했다는 듯 말했다.

자신이 느꼈을 실망이나 상처를 내색하지 않는 그 표정이, 프랑에게는 더없이 슬프게 느껴졌다.

【어떤 일이었는지는 상상이 가네요. 백작께선 알고 계신가요?】

【……네.】

【그렇군요……. 이래서야 제가 아니라고 한들 장즈췬은 네, 하고 물러서 주지는 않겠네요.】

탄식한 유이링이 앳된 기가 남은 얼굴에 의지를 드러냈다.

【하지만 그럴 순 없죠. 아바마마가 무슨 생각이신지는 몰라도, 저는 당장에라도 귀국하겠어요.】

【──아뇨. 그러면 저희가 곤란해집니다.】

문밖의 살기가 등을 돌리고 앉은 유이링의 등을 관통했다.

─덜컹!!

쐐애애액─!!

호랑이에게 노려봐진 것처럼 굳어버린 황녀의 등.

그 무방비한 몸에 문을 단숨에 열어젖힌 황군의 창이 날아들었다. 싸울 줄 모르는 황녀는 절대로 살아남을 수 없을 빠르고 기습적인 공격이었다.

─채앵!!!

피치 못할 황녀의 죽음을 멈춘 건 프랑이었다. 가터벨트에서 나이프를 뽑은 그녀가 황군의 창을 그의 몸 째로 뒤로 튕겨냈다.

【크윽……!!】

신음하며 후퇴한 황군은 창에 힘을 주었다.

기습이 저지당한 게 상당히 예상밖이었던 걸까. 그는 뱀처럼 혀를 날름댔다.

【저희가 짐작했던 것보다 반응이 빠르시군요, 부인. 혹시 알고 계셨습니까?】

【저희 그이가 그러더라구요.】

─샤악. 프랑은 새 나이프를 꺼내며 말했다.

【돈 많은 사람은 패가 나쁘면 블러프를 치고, 여차할 때는 판 자체를 엎으려 든다고.】

【호.】

황군 병사들은 일심동체로 감탄했다. 정확하게 목적을 간파당한 이들이 보여줄 법한 탄성이었다.

그들의 목적을 눈치챈 유이링은 몸을 떨며 중얼거렸다.

『……황녀인 제 죽음을, 이 나라에 개입할 명분으로?』

『그렇게 됐습니다. 황녀님.』

그 결과를 추리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유이링의 언니?

그런 건 증거도 없고, 명분으로 삼기엔 3류 중의 3류였다.

하지만 다음 한 걸음을 위한 발돋움이 된다.

노르드가 ‘뻥카’라고 명명한 언니 소동은 핑계다.

억지를 부려서라도 휴스로이트에 상륙하면, 그 뒤에 다른 방법을 만드는 것도 누워서 떡먹기다. 황족으로서 가치없는 하프 드워프를 버림말로 쓰는 것도 예정된 계획 중 하나였다.

『그럴 수가…… 거짓말이죠?! 위춘, 라오펑!』

유이링은 일어나며 호소하듯 외쳤다.

『제가 어릴 적부터, 10년이 넘도록 줄곧 저를 지켜줬잖아요! 그런 당신들이라서 이 여행길에도 함께 와 달라고 부탁했는데, 대체 어째서……!』

이름까지 기억할 만큼 친한 호위들.

그래서 유이링은 배신감에 앞서 불신을 품었다. 유이링이 아는 그들은 이런 짓을 꾸미거나 회유에 넘어갈 사람들이 아니었다.

『제가 울프헤딘 경의 영지에서 죽어도 그것이 무고한 죽음이었다고 역설할 방법은 없어요! 이런 어설픈 방법으로 뭘 이루겠다는 말인가요?!』

『염려 마십시오. 가시는 길 외롭지 않게, 백작 부인도 함께 보내드리지요.』

들이민 창으로 방을 제압하듯 황군들을 프랑과 유이링을 압박했다.

황녀에 절실한 호소에 대해서 일언반구의 대답도 없이 말이다.

『그러면 필시 애처가인 백작의 분노를 살 터. 그 뒤로는 저희가 그에게 살해당하면 완벽하군요. 방해하는 황군을 죽이고 황녀님도 죽였다. 그렇게 논변할 수 있죠.』

유이링은 시리도록 차가운 계획에 전율했다.

쌍방에서 정당함을 주장하면 그 진흙탕 싸움은 누가 무고하건 상관없는 방향으로 굴러간다. 누가 옳은지 말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로 말이다.

누구도 설전으로는 패배를 인정하지 않을 분쟁.

그렇다면 창칼로 우열을 가릴 수밖에.

유이링의 죽음은 아틀란티스의 소유권 분쟁이 흐지부지해질 만한 전쟁의 발단이 되는 것이었다.

위춘은 이쯤 하면 됐냐는 듯 창끝을 까딱거렸다.

【부인. 비명은 요란하게 부탁드립니다. 백작은 자기 방에서 아무 것도 모르고 자고 있다더군요. 늦잠을 잔 주역배우는 깨워줘야지 않겠습니까?】

【위춘!!】

【아프지 않게 보내드리지요. 가만히 계십시오.】

친절하게 미소짓는 남자들과, 그것에 대비되듯 비참하게 울먹이는 황녀.

그 비극적인 언쟁 속에서, 제 3자처럼 서 있던 프랑은 눈을 반개했다.

【……그렇게 해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조종해 온 거구나.】

황군들의 발이 잠시 멈추었다.

【남을 믿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야. 믿었다가 배신당한 경험이 있으면 더 그렇구.】

노르드가 논문을 도둑맞았던 것처럼 말이다.

프랑은 입 밖에 내지 않은 말을 마음 속으로만 읊조렸다.

【그러니까 나는 생각했어. 남을 의심하면서도 믿어줄 수 있는 사람은 무척이나 강한 사람이라구. 그건 아무 생각없이 남을 믿거나 의심하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니까.】

위춘과 라오펑은 마치 프랑의 말의 진의를 읽으려는 듯 그녀를 노려보았다.

【남의 도움은 필요하면서 아무도 믿고 싶지는 않다니. 그래선 두 번 다시는 배신당하기 싫다고 억지를 부리는 거랑 마찬가지잖아.】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군요.】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나눠주는 게 그렇게나 무서워?】

프랑은 그들의 눈을 들여다보며 우아하게 손을 당겼다.

【가엾은 사람. 당신과 당신이 섬기는 누군가는, 그만큼 나약한 거구나.】

【……방금 전에 한 말은 취소하지.】

─쿵!!

황군들은 얼굴을 몬스터처럼 일그러트리며 돌진했다.

【너는 그놈이 보는 앞에서 찬찬히 죽이겠다!!】

그 분노를 연민하듯이 바라보던 프랑의 손에서 나이프가 뛰쳐나갔다.

하지만 황군의 무예는 나이프 한 자루 막지 못할 정도로 모자라지 않았다.

─쩌어엉!! 그들의 창이 나이프를 쳐냈다.

생각했던 것보다도 묵직한 위력에는 놀랐지만, 위춘과 라오펑은 막힘없이 좌우로 치고 들어갔다. 프랑이나 유이링. 어느 쪽이건 잡을 생각이었다.

【엎드려요!】

프랑은 유이링을 넘어트리다시피 하며 눕히고서 위춘의 앞을 막아섰다.

‘그렇다면 황녀는 이쪽이군.’

라오펑은 벽을 박차며 빈 공간을 달렸다. 위춘이 건방진 하프 드워프를 제압하는 동안 황녀를 죽여둘 생각이었다.

“GOGOGOGO──!!”

창을 날카롭게 빛내는 라오펑을 장식물처럼 서 있던 골렘이 가로막았다.

라오펑은 코로 웃었다. 골렘을 갖고 그를 막을 생각이라면 무척이나 깜찍한 발상이라고밖에 말할 도리가 없었다.

황녀의 호위로 뽑힐 만큼 실력 있는 그였다.

라오펑은 랜턴의 빛을 일도양단하며 골렘의 팔 깊숙이 창을 꽂았다.

──챙!!!!!!

그리고 그 깊숙한 곳에서, 그의 창은 형광색의 마나를 불똥처럼 튀기면서 멈췄다.

【……뭐?!】

【뭘 그렇게 놀라?】

골렘의 뻥 뚫린 눈과 입에서 마나가 뿜어졌다.

〈백토인형〉에 숨구멍을 트고 숨어 있던 사람이 마법을 발동한 것이다. 당황한 그가 창을 뽑아내려고 했지만 붙잡힌 창대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까각! 강철 창을 우그러트린 노르드가 웃었다.

【부부가 같은 방을 쓰는 게 그렇게 신기한가?】

─투쾅!!!

라오펑의 배에 앞차기가 직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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