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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쾅!!!
골렘 안에 숨어 있던 나는 기습 석사당수로 텅 빈 배를 후려깠다. 라오펑이라고 불리던 황군의 두 눈이 게게 풀리면서 위액 같은 걸 토해냈다.
【골렘의 눈코입 안쪽은 비어 있었을 텐데!!】
【투명 마법이래!】
프랑은 노르드의 등장에 당황한 위춘의 멱살을 붙잡았다. 창으로 반격하기 힘든 인파이트. 체격의 차이를 역으로 이용한 엎어치기였다.
하지만 체격보다 더 큰 차이는 완력에 있었다.
위춘의 몸이 바람에 연 날리듯 회전했다.
『어억!!』
─콰지직!! 위춘은 머리부터 땅에 메다꽂혔다. 그 정도로 죽거나 기절할 일은 없는 게 황군이지만, 제압할 시간을 버는 데에는 충분했다.
【프랑!!】
【알고 있어!! 〈백토인형〉!!】
프랑은 2층 바닥을 부수고 모내기 당한 위춘을 골렘으로 포박했다. 나도 룬 마법으로 야수회귀의 마나를 크게 벌려서 손처럼 펼쳤다.
“석사박궤.”
─텁! 강철보다 질기고 단단한 마나 가죽이 라오펑을 포박했다.
취이익─! 추가로 손에서 수면 가스를 뿜어내며 재우기까지 하자 위춘과 라오펑은 속절없이 의식을 잃고 실신했다. 제압 완료였다.
정예황군도 생각보다 별 거 없군.
아니면 우리가 인류 기준으로는 상당히 레벨 업 한 뒤여서일수도 있고.
【후윽, 흑……】
긴장이 풀린 유이링은 팔뚝을 안고 주저안았다.
【황녀님!】
【……솔직히, 아직도 믿겨지질 않아요.】
내가 제압한 황군을 살피는 동안 프랑이 그녀의 등을 쓰다듬어주었다.
황망해질 만 했다. 예전부터 그녀를 지켜줬다던 호위들이 정치적인 이유로 창끝을 돌린 걸 넘어서 죽이려 든 것 아닌가. 단순한 배신 이상이겠지.
【제게 그리도 다정하던 호위들이 저런 속내를 감추고 있었다니……. 저는 앞으로 누구를 믿어야 할까요? 제가 반평생 동안 기른 안목은 쭉쩡이나 다름 없었는데.】
【아뇨. 마냥 그렇지는 않을지도 모릅니다.】
【……네? 백작님, 지금 뭐라고…?】
당혹하는 유이링을 냅두고 촉진을 끝냈다.
‘고민해야 할 건 여기서부터다.’
나는 냉정하게 이해득실을 따졌다.
편집증처럼 감시한 적의 동향과, 바이츠니아에서 겪어본 일들. 그리고 샤오라이라는 이름의 피해자에게서 들은 이야기…….
그런 것들이 내 엘리트 대갈통을 빠르게 오갔다.
‘충왕대군이란 새끼가 찾아온 이후의 사절단은 완벽하게 통제했을 자신이 있다.’
변수는 가능한 차단했다. 내 손이 닿는 범위에 한해서는 말이다.
하지만 정말로, 100% 확실한가?
지금이 아니라 과거에 벌어졌을 가능성까지 다 막아냈다고 볼 수 있나?
‘그렇진 않지.’
나와 가족들을 위해서는 그냥 이 황군들의 목을 비틀어버리고, 배신당한 황녀를 꾀어내는 편이 더 이성적인 판단일 수도 있을까.
유이링의 귓가에 속삭일 달콤한 말들이 몇 개나 떠오르긴 했다.
─실종된 언니를 찾는 걸 도와줄 수 있다. 실종 이후의 행방 정도는 찾아내자.
─이게 황제의 뜻이라면 본국에 가는 건 자살행위다. 우리 곁에 남아라.
─프랑을 언니라고 인정해라. 이 사건을 빌미로 삼으면 두 ‘황녀’의 신분을 앞세워서 바이츠니아에 내정간섭을 가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렇게 해서 그녀를 유혹하고, 남이 소금을 친 상처를 닦아내고 치료해줘서 환심과 믿음을 산다.
표독스럽기로 유명한 고양이들도 다친 걸 치료해주면 은혜를 기억한다. 세상에 내쳐진 듯 느끼고 있을 유이링을 위한 ‘가족 놀이’는 충분한 의미가 있었다.
달콤한 말을 속삭이면 유이링은 우릴 믿고 따를 것이다.
절대 벗어날 수조차 없다. 그녀의 세상에 남은 유일한 보금자리니까.
눈에 훤히 보이는 가짜지만, 가시 돋친 현실과 비교하면 아주 안락한 환상이다. 그야말로 이세계 판 매트릭스인 것이지. 존나 빨간약 틴틴도 없는.
선택지의 갈림길에서 나는 프랑과 눈을 맞췄다.
“……노르. 원한다면 얼마든지 다시 말해줄게.”
그녀는 싱긋 웃었다.
“언제나 네 곁을 따라갈 거야. 그게 내 꿈인걸.”
“……그랬지.”
황녀의 마음과 상처. 그리고 신분적 가치.
어느 것이 지켜줄 더 가치가 있고, 우리 가족을 위한 일일까.
좆도 고민할 거 없는 일이었다.
나는 손가락에 힘을 불어넣었다.
“지건 64장.”
─파바바바박!!!
가속의 룬까지 붙인 팔이 속사포처럼 황군들의 경락을 짚었다.
【구에에에에에에엑……!!!】
눈을 부릅뜬 위춘과 라오펑이 바닥에 토를 했다. 호위 중에 싸우다 토할까 봐 밥을 든든하게 먹진 않았던 걸까? 위액 섞인 액기스가 쏟아졌다.
【아.】
자기 방에 토를 하는 황군을 본 프랑의 얼굴이 굳었다. 나도 아, 하고 당황했다.
미안. 피차 방이 더러워질 건 생각 못 했네.
【……이따가 마법으로 깨끗하게 해 줄게.】
【으, 응…….】
프랑은 벌쭘하게 끄덕거렸다. 황망한 유이링을 데리고 토를 피해서 침대로 올라가는 그녀였다.
그리고 정신을 차린 황군들이 고개를 털었다.
『쿠엑, 큭! 쿨럭…! 여, 여기가 대체 어디요?』
『아. 안심하십시오. 병원입니다.』
나는 비슷한 환자─샤오라이의 후일담─을 떠올리면서 손을 털었다.
『입으로 못 나온 건 화장실에서 나온다네요. 좀 역겨운 경험이겠지만 죽는 것보다는 낫겠죠 뭐.』
『화, 화장실?』
『……음. 백작님께 잠깐 여쭙고 싶소만.』
어벙한 위춘이랑 비교되게 라오펑은 인상을 팍 쓰며 냉정하게 사고했다.
나한테 까인 명치가 쑤시고, 둘 다 프랑의 침실에서 구속당한 상황!
보통은 정신을 못 차릴 상황에서 그는 턱짓으로 자기 토사물을 가리킨 것이다.
『이거, 저희가 뱉은 거요?』
토사물 안에 반쪽난 벌레들이 굴러다녔다.
굴라나뢰크의 고독.
충왕대군이 수족에게 심는 벌레였다. 수면가스 탓에 자폭의 신호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몸 속에 제압된 상태로 점혈에 뒤져버린 것이었다.
『예. 심장 빨갱이 사상충이라고 하죠. 군대에서 예방접종을 안 받으신 모양이군요. 아, 여기 이건 구충제입니다.』
게르마니아 어를 못하게 된 그들의 구속을 풀어주고 회복 포션을 배부했다.
『허. 귀신이 곡할 노릇이군.』
『어, 망했다. 나 오늘 근무 있었는데?』
『그게 여길 지키는 거잖냐, 멍청아.』
그들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포션을 마셨다. 정황 상 모든 일의 전말을 눈치챈 유이링이 그들에게로 달려들며 울음보를 터트렸다.
『위춘! 라오펑!』
『으헉?! 황녀님! 이러시면 곤란하다니까요!』
『병사한테 안겨붙는 건 제발 미취학 아동일 때까지만 해 주십쇼.』
제 3자가 봐도 그들의 대화에서는 무척 크나큰 신뢰를 느낄 수 있었다.
어깨를 으쓱한 나는 메달을 통해서 바이콘 마법사단과 아내들 앞으로 연락을 넣고, 포옹하는 황군과 유이링을 지나서 프랑의 방의 창문을 열었다.
거듭 말하는데, 세상에 100% 확실한 건 없다.
노력과 개인의 능력으로 막지 못하는 사태는 꼭 위기와 불행이라는 타이틀을 달고선, 운명이라는 뒷배를 믿고 양아치처럼 으스대는 것이었다.
천 년의 노고도 작은 불행과 만남으로 조진다.
한순간에 멸망해버렸던 이세계의 창조주들처럼 말이다.
촤악─! 커텐을 걷어내자 창밖에 아틀란티스의 모습이 나타났다.
화르르르르륵─.
사절단이 묵고 있는 건물들이 불타고 있었다.
누가 트러블 관련해서는 재수 없는 몸 아니랄까 봐, 예상했던 최악의 사태는 이미 발생해 있었다.
‘애미 시발.’
이래서 일부러 사절단이랑 격리해서 저택에다가 데려놓은 거였는데.
하지만 내가 어찌 알고 막겠는가?
굴라나뢰크가 촉수를 뻗은 나라라면, 알 상태의 벌레 같은 걸 몸에 넣어뒀을지도 모르는데. 존나 좆만한 알 같은 건 내 투시안으로도 못 찾는다고.
‘고르갈리아 외무대신한테 쌔빈 마법이면 찾을 수 있었는데…… 상황이 안 좋았군.’
유이링이 심장 빨갱이 사상충에 감염되지 않은 건 프랑이 방에 들이기 전에도 이미 확인했었다.
단지, 황군 소속의 위춘과 라오펑.
이들에게는 처음부터 벌레가 심어져 있었다. 나 역시 알고 있었고.
그래도 유이링이 말하긴 원래는 저런 성격들이 아니었다지 않았나. 충왕대군이 벌레 알만 복용시키고 평소에는 방치해둔 것이다.
애초에 황군 전체를 그런 식으로 통제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유이링이 저들을 호위로 동반한 오늘, 벌레를 깨웠다.’
다시 말하자면 충왕대군은 전황이 돌아가는 꼴을 보고 나서 더 효과적인 판단을 했다는 말이었다.
‘바이츠니아 때랑은 다르다. 충왕대군 본인이 이 땅에 있어.’
충왕대군은 눈 뜬 장님이 아니다.
샤오라이 때처럼 맘대로 휘젓고 다녀도 눈치를 못 챌 리는 없다.
이걸 한 발 더 나아간 발상으로 생각해봤을 때, 위춘과 라오펑이 제압된 시점에서 그놈이 행동에 들어갈 건 불 보듯 당연한 결말.
내가 그들을 죽일까 하고 망설인 건 그래서였다.
아예 죽이고 시치미를 떼면, 충왕대군도 자신의 존재가 발각된 걸 눈치채지 못하고 행동을 자제할 것이었으니까.
밑밥을 치지 못하게 수면 밑으로 대비를 해뒀던 것도 그래서다.
프랑을 유이링의 언니라는 주장.
바이츠니아의 외교적 술수.
황녀를 살해하고 프랑을 건드리거나, 그러는 척 해서 나의 분노를 유발한다.
사람의 머리는 동시에 두 상대를 증오하거 어려웠다. 바이츠니아 황실에 분노가 쏠리면 은밀하게 숨어 다니기 편할 거라고 여겼겠지.
이렇게 2겹 3겹으로 위장한 채, 굴라나뢰크로서 품은 진짜 목적은 치밀하게도 숨겨둔 것이었다.
‘내가 다른 데 정신이 팔려서 자길 방치해주길 바란 거다.’
그 사이에 내 영지민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벌레 몇 마리를 심어두면 된다.
정기적으로 먹여줘야 하지만, 설비를 갖추면 저 심장 빨갱이 사상충을 기르는 건 가능할 것이다. 충왕대군의 진짜 목적은 이쪽이었을까.
‘나를 죽이기 위한 포석이겠지. 정성스러우시군.’
나는 한숨을 쉬는 대신 나지막히 혀를 찼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권력, 정치를 고려하지 않고 힘 싸움을 할 수 있지.’
어떤 의미로는 장점이다. 찾아내서 죽여버리면 땡이니까.
바이츠니아의 사절단을 족친 뒤, 나를 변호해줄 가장 강력한 외교적인 증인이 생기지 않았나. 황녀 유이링을 바라보던 나는 위춘과 라오펑을 불렀다.
『바쁘신 와중에 죄송하지만, 상황이 급하므로 빨리 진찰료를 받고 싶군요.』
『예? 아, 옙. 그런데 제가 서방국가의 돈이…』
『설마 제가 현찰을 달라고 할까요.』
내가 살짝 자리를 비키자 아틀란티스의 화재가 그들한테도 보였나 보다. 밤을 밝히는 화재를 본 황군들은 눈빛을 가라앉혔다.
상황이 빠르게 돌아가는 것을 눈치 못 챌 만큼 어리석진 않았던 모양이다.
‘저택에 사절단이 있는데 아틀란티스를 노렸다.’
그러면 충왕대군의 생각도 대충 알 만 했다.
‘내가 자기 정체를 훤히 꿰고 있다는 걸 알고서, 정면에서 붙기 전에 불판부터 키워놓은 거겠지.’
스릉─.
나는 브류나크를 뽑았다. 프랑도 나이프를 들고 일어섰다.
방문 밖에 유이링의 시종이 눈을 번들거리면서 찾아왔던 것이다.
『K, kkk, Ke?』
그녀의 눈은 흰자위만 꾸륵거리는 게, 딱 봐도 조종당하는 상태였다.
『Kueeee──!!!』
『벌레 퇴치 스프레이.』
취이이익─!!
나는 달려드는 시종을 수면 가스로 제압했다. ─쿵! 시종은 무력하게 기절했다. 제압이야 프랑이 골렘으로 숨 구멍만 터 놓고 포박해두면 되겠지.
쿵쿵쿵쿵─!!
『Keeeeeeeeeeeee──!!!』
『Cueeeeeeeeeeee──!!!』
문제는 우리 집에 세스코 방문 서비스가 필요할 것 같다는 점인데.
몰려오는 바이츠니아 사절단 친구들! 암살자를 막으려고 설치해놓은 방범 결계도 저렇게 대놓고 움직이면 별로 의미가 없다.
저택에 설치한 결계로 요격한다면 모르겠는데, 저 사람들을 죽일 수는 없잖은가.
나는 팔을 풀며 브류나크를 회전시켰다.
『진찰료는 개꿀잼 비밀조직 근무 썰입니다.』
느그 황녀님 델꼬 따라오면서 썰 좀 풀어 봐.
적에게 들킨 스파이는 죽거나, 전향하거나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