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육포 더럽게 맛있네.〉
─우적. 건조식량을 씹던 카에디의 말에 동료인 외교관이 급하게 입을 가렸다. 웃음을 참고 있는 것이었다. 카에디도 그에게 이끌린 것처럼 웃었다.
〈우리 신세가 그렇지. 신입은 어쩌고 있대?〉
〈저축해서 집 사겠다는 걔? 싸구려 식량 샀다가 세상 다 산 표정이더라.〉
카에디는 다들 겪는 고통에 혀를 내둘렀다.
외교관은 현지에서 밥을 얻어먹지 않는다.
서방국가 전체에 통하는 불문율이었다. 독을 탄 식사가 배부되는 일은 거의 없지만, 수면제와 약 몇 개를 섞어서 머리를 몽롱하게 하거나 혀를 마비시키는 수작을 부린 전례는 있었다.
아예 식재료 중에서 저런 약효를 내는 음식으로 배부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외교관들은 개인식량을 지참한다. 만에 하나 있을 옹졸한 수작이나 그걸 지적하는 행위에 드는 기력 낭비를 막아야 했으니까 말이다.
‘싫은 문화야, 정말.’
회담이 끝날 때까지는 건식으로 떼우고, 전별회에서 거창하게 얻어먹는다.
그게 국가 간의 외교의 암묵의 룰이었다.
그리고 이번에 들어온 신입은 항해할 때부터 쭉 같은 싸구려 육포를 씹다가 정신이 나가버렸다는 모양이다. 신입이 자주 저지르는 실수였다.
〈그래도 외출은 자유라서 좀 낫네.〉
〈그건 그래.〉
간첩질을 막고자 보통은 숙소 밖으로 못 나가게 하는 일도 잦은데, 이 아틀란티스는 밖에 나가는 건 자유였다. 따로 거주지도 아니기 때문이다.
덕분에 고고학회의 사절단은 흥분해서 산책─을 빙자한 관광─으로 바쁘다던가.
각국 사절단의 외교관들도 담소를 나누면서 국제정세에 대해서 나누거나, 시답잖은 얘기를 떠들고 있을 것이다. 카에디는 육포를 뱉고 기지개를 켰다.
〈나도 이 망할 육포 때문에 신물이 나네. 잠깐 산책이나 하고 오자.〉
〈산책~? 카에디, 기껏 2인 1실인데…… 응?〉
동료가 음흉한 눈을 하며 카에디를 안았다. 픽 웃은 그녀는 사내연애 중인 동료의 콧잔등에 딱밤 한 대를 놓아주었다.
〈아서라. 외무대신한테 된통 깨지고 싶어? 너 출세 안 할 거야?〉
〈씁……. 알았어. 같이 산책이나 하자고.〉
외교관들이 묵는 숙소에서 암살이 벌어질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 그래도 혹시 모른다는 마음에 두 사람은 어깨를 맞대고 숙소를 나왔다.
〈으~ 음! 밤바람이 기분 좋네!〉
〈비린내가 익숙해서 그런 거 아냐? 누가 인생 절반을 배 위나 항구에서 보내는 외교관 아니랄까 봐.〉
시답잖은 소리를 하는 동료에게 니킥을 먹여준 카에디는 머리를 넘기며 즐거운 마음으로 해안을 산책했다. 그러던 그녀의 눈에 웬 여성이 눈에 띌 때까지는.
‘게르마니아의 외교관?’
복장을 보면 그랬다. 바다에 쪼그려 앉아 계속 머리를 흔들고 있었다.
카에디는 동료와 마주보며 고개를 모로 꼬다가, 별 생각 없이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카에디가 타고 난 영적인 감응력이 아무런 위기를 고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저기…… 괜찮으신가요?〉
그녀의 근처로 다가간 카에디가 물었다.
상대 역시 다른 나라의 사절이었다. 만약 뭔가 문제가 생긴 거라면 방치해둘 수도 없다. 나중에 이 일로 외교적 문제가 되도 곤란하니까.
〈혹시 뭔가 곤란하신 일이 있다면……〉
─우적! 우적! 우적!!
카에디가 말을 걸어도 여성은 돌아보지 않고 두 손에 쥔 무언가를 무아지경으로 먹어댔다. 그 모습에서 불안함을 느낀 카에디는 섬칫하게 물러섰다.
그리고 한 발자국 물러서고 나서 눈치챘다.
─우적!!
─우적우적!!
게르마니아 외무관은 사람의 팔을 먹고 있었다.
〈……아, 으?〉
〈카에디!!〉
그녀의 애인이 비명을 지르듯 카에디를 감쌌을 때, 게르마니아의 외무관이 고개를 돌렸다. 사람의 몸에 파리의 얼굴을 붙여놓은 듯한 외모였다.
곤충의 겹눈이 뒤룩거리며 더듬이가 곧추섰다.
【Kua──!!!!】
〈꺄아아아아앗──!!!!〉
괴물의 턱이 사람 머리를 삼킬 만큼 벌어졌다.
─으적! 생살 씹는 소리가 요란하게 터져나왔다.
***
벌레들에게 조종당하는 바이츠니아의 사절단을 보이는 족족 제압하고 구속해가면서, 나랑 프랑은 약속한 장소로 대쉬했다.
【어디로 가시는 건가요!】
【문제를 해결하러요.】
유이링에게 대답해주면서 커브를 꺾었다.
저택에 침입한 자가 있다는 걸 알리는 사인은 각 방마다 달려 있다.
아내들에게 얘기도 해뒀고, 같은 곳에 모여있던 그녀들도 약속장소로 갔겠지. 그렇게 내려가려던 나는 복도를 꽉 메운 사절단들을 발견했다.
“Cruc?”
“Crueeeeee──!!!”
닝기미 쓰벌, 무슨 좀비야?
부산으로 가는 기차가 배경인 좀비 영화가 떠오르는 건 왜일까.
“20명이야. 제압한 게 10명이니까 저 사람들로 마지막.”
감지능력을 돋구던 프랑이 중얼거렸다.
“그 장즈췬이라는 사람은 빼구.”
20명이라. 창칼로 무장한 황군이 8명은 있는데. 생각보다 본격적인 배치군.
“나쁘지 않네. 여기 묶어두고 가자고.”
나는 복도의 벽에 손을 얹었다.
바이콘들이 설치해준 보안 마법은 저택 곳곳에 함정처럼 깔려 있었는데, 이것들은 〈편찬대대〉급 침입자를 가정한 마법이 대부분이었다.
포박하거나 봉인하는 수단조차 너무 강력하다.
대부분이 일반인인 사절단에게 쓰면 전멸이다.
“운이 좋군. 안 다치고 끝나겠어. 댁들도, 나도.”
“Syaaaauuuuuuu!!”
사절단과 황군 병사들이 달려드는 걸 보며 나는 복도의 마법을 발동했다.
─삑!
기척을 읽고 경고해주는 마법은 키아라 수준의 은신능력을 가진 사람한테는 통하지 않았지만, 이 저택에 깔린 보안 마법까지 허술하진 않다.
마나를 넣자 복도의 벽, 바닥에서 기둥이 중구난방으로 솟았다.
지이이이잉─!!!
기둥은 머리를 흔드는 초음파를 날리며 인력을 발동했다.
“Cuec?!”
─후욱! 쿵!!
사절단은 자석에 붙는 것처럼 기둥에 달라붙어서 구속됐다. 마그네틱 인간 바퀴벌레 끈끈이었다. 저 인력은 버둥거릴수록 위력이 늘어난다던가.
하지만 가만히만 있으면 압력에 다치지 않는다.
“좀 자고 있어. 이따가 깨워줄 테니.”
접근해서 수면가스를 뿌렸다. 버둥거리며 나를 공격하려던 이들은 마나를 돋구며 버텼지만, 계속 퍼붓는 가스와 초음파에 곧 기절했다.
‘시발, 폭발할까 무서웠네.’
그렇게 안도한 내가 가스를 끊었을 때였다.
“Oaaaaac!!!!”
갑자기 문관으로 보이는 사절단이 고개를 들며 날뛰기 시작했다.
그것 뿐이라면 다시 재우면 그만이다.
“Oaaaaac!!! Oaaaaac!!!”
하지만 그의 얼굴이 인간에서 벌레로 변해가는 건 전혀 좋지 않았다.
안색을 굳힌 나는 빠르게 그 문관을 제압했다. 브류나크의 창대로 머리를 후려치고 다시 가스를 뿜어서 혼절시키자 외모의 변형은 멈췄다.
【샤, 샹쓰이……!!】
유이링은 문관의 얼굴을 보고 입을 틀어막으며 경악했다.
위춘과 라오펑은 그녀의 눈을 가려줬다. 그러는 그들의 안색도 좋지는 않았다. 나는 문관이 기절한 걸 확인하고 그의 맥박을 짚었다.
인간과 벌레가 뒤섞인 모습.
진찰하는 입장에서 좋은 기분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변형은 나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기에 그냥 모른 척 넘어갈 수 없었던 것이다.
‘타타르니아에 갔을 때만 해도 이런 건 없었어.’
새 벌레인가? 아니면 그때는 쓰지 않았을 뿐?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건 변한 이유가 아니라 다른 점이었다. 나는 기감을 최대한 돋구며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듯 눈을 감았다.
일렁…!
느껴진다. 그의 몸을 휘젓는 역겨운 마나가.
눈을 뜨고 오딘의 눈을 발동하자 서서히 보였다. 기존에 없던 특수한 벌레였다.
마나를 쓰지 않고 남을 조종할 수 있다는 점이 심장 빨갱이 사상충의 최대 장점이다. 도핑 검사에 걸리지 않는 스테로이드처럼 은밀한 악용이 가능하니까.
하지만 지금 육체변화를 일으킨 벌레는 아니다.
‘마나로 병사를 강화하는 벌레.’
발동하면 바로 들키는 타입의 기생충이었다.
다른 첩자들이 이 벌레를 쓰지 않은 이유는 그거겠지. 눈에 확 띄는 병사보다는 은밀한 첩자가 더 무섭고 위험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 혼란을 일으킨다는 쓸모로는 아주 좋지.’
동료가 순식간에 벌레로 변해버린다니?
보통 사람은 절대 제정신을 유지할 수 없다. 나 같아도 주변인이 그렇게 되면 정신이 나가버릴 게 분명했다. 제정신 내성굴림에서 펌블이 뜰 거라고.
강함과 별개로 정신력 자체를 후벼대는 모랄 빵 공격!
나는 문관의 목에서 손가락을 떼고 중얼거렸다.
“흑마법으로 되살린 언데드보다 끔찍하군.”
하지만 충왕대군 입장에선 안타깝게도, 상대가 나빴다.
─푹푹! 나는 점혈하는 것처럼 문관을 찔렀다.
“얕봤구나. 울프헤딘의 역사를.”
예전에 베로니카나 유니콘 앨리스의 저주를 풀어줬을 때랑은 다르다.
지금의 나는 훨씬 진보한 마법사이자 전사였다.
아틀란티스 레이드에 앞서서 바이콘들의 저주를 수십 번 씩 고쳤을 때, 처음 느꼈던 특이한 감각.
오딘의 눈과 달인의 경지는 전엔 느끼지 못했던 마나의 움직임을 감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몽글…!
내가 벌레로 변한 부분을 만지자, 뜨거운 물에 밀가루를 푼 것처럼 저주의 마나가 뭉쳐들었다.
그 응고된 마나를 달인의 감각으로 파악하고서 점혈로 짚는다.
베로니카에게 처녀 알레르기를 유발하고 간지러워하던 부분을 긁어줬을 때랑 똑같다. 긁지 않고 점혈로 내부의 응고화된 마나를 부술 뿐.
나는 점혈로 마지막 마나를 부수며 뇌까렸다.
“벌레로 변신하는 개조인간은 내 취향 아니야.”
─파스스!
문관의 얼굴에서 벌레의 외골격이 벗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