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까드득!!!!
카에디는 생살이 으깨지는 소리를 남의 일처럼 들었다.
하지만 절대로 남의 일이 아니었다. 그녀를 밀쳐내고 벌레 인간에게 팔뚝을 물린 사람. 그건 다른 누구도 아닌 카에디의 연인이었으니까.
〈Kuaaaaaa!!〉
〈카에디!! 일어나!! 일어나서 도망쳐!!〉
손톱을 할퀴는 벌레 인간을 막으면서 카에디의 연인이 고함쳤다.
냉철한 이성이 그녀를 일으켰다. 전투력이 없는 카에디가 남아 있어도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 바보가 아니고서야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큿……!〉
하지만 이성만으로 연인을 버리고 가는 게 가능하다면, 사랑에 눈이 멀어 죽는 연인의 이야기가 발에 치일 만큼 흔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카에디는 끝내 연인을 버리고 발을 떼지 못했다.
〈으랴아아앗──!!!〉
퍼엉─!
마나를 끌어올린 카에디는 가문에서 배우다 만 어설픈 마법을 벌레의 얼굴에 때려박았다.
“Kiiiiiiiiiiiiiiii──!!”
벌레로 변한 외교관은 불이 무서운 듯 버둥댔다. 카에디는 그 틈에 연인의 손목을 낚아챘다.
〈머, 멍청아!! 도망치라니까 뭘 하는 거야!!〉
〈그딴 개소리를 지껄일 여력이 있으면 달리는 데에나 써!!〉
황망해하는 연인의 팔을 붙잡고 카에디는 뒤로 도망쳤다.
숙소다. 울프헤딘 백작의 마법사들이 경비를 서 주는 숙소라면 분명 안전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서 달려가던 카에디는 힘이 빠진 듯 멈춰섰다.
거친 호흡을 뱉던 그녀의 얼굴이 울먹거리듯이 일그러졌다.
〈……시발, 늦었나 보네.〉
“Kigic!! Kigic!!"
“Kigic!! Kigic!!”
─딱! 딱!
위협하는 것처럼 턱을 울리며 벌레로 변한 인간들이 카에디를 포위했다.
처음부터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쳐도 살아날 희망은 없었던 것이다.
“Kuaaaacc──!!!”
벌레로 변한 사절단은 뭔가 해볼 틈도 안 주고 달려들었다.
연인을 위해서 자기를 희생하고, 연인을 버리고 도주하지 못했다.
자기가 생존할 가능성을 낮추는 선택만 골랐던 바보 천치들의 결말이었다. 카에디는 헛웃음조차 짓지 못하고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젠장. 올해 쯤에는 결혼하고 싶었는데.〉
〈흠. 그럼 저도 결혼식에 불러주시겠습니까?〉
〈……네?〉
부질없는 군소리에 생각도 못한 대답을 듣고서 카에디는 눈을 부릅떴다.
─콰앙!!!!
“Kyaaaaaaaa──?!”
바람이 터져나오며 물수제비처럼 벌레 인간들이 사방으로 날아갔다.
그렇게 포위망을 완전히 날려버린 남자가 그녀 앞에 착지했다. 남성 치곤 키가 몹시 작은 모험가였다. 창백한 안색이 심히 인상적이었다.
카에디의 연인은 모험담의 팬이 주인공을 만난 것처럼 비명을 질렀다.
〈키, 키아라 콜리도!!!〉
〈네. 한물 간 노땅입니다. 혹시 울프헤딘 경인 줄 아셨다면 죄송하군요.〉
키아라는 신발 앞코로 바닥을 두들기며 말했다.
〈숙소를 옮기려고 하던 차에 낭만적인 고함을 듣고 찾아왔습니다. 제가 나이 치고는 귀가 밝은 편이라서.〉
바보처럼 굴던 두 연인의 소란이 사태를 파악하고자 이동하던 키아라에게 들리고, 기적적인 구원을 부른 것이었다.
〈그, 그── 아!〉
입을 벌리고 있던 카에디는 등 뒤에서 일어나는 벌레 인간을 발견하고 경고해주려고 했다. 하지만 그보다 빠르게 벌레 인간이 번개를 쏘아냈다.
키아라는 보지 않아도 전부 꿰고 있다는 것처럼 등 뒤로 수도를 휘둘렀다.
─콰아아앙!!!
상식을 벗어난 근력이 공기를 터트리며 번개를 박살내고 벌레 인간을 기절시켰다.
하지만 그런 공격을 뿜어낸 키아라는 얼굴빛을 굳혔다.
〈……마법이라. 감염자의 능력을 이어받았군요. 상상 이상으로 위험하네요.〉
〈그, 그!! 모험가 길드 연합총장님!!〉
〈네. 모험가 길드 연합총장입니다.〉
뚱딴지 같은 대답에 잠깐 말이 막힌 카에디는 빽 소리쳤다.
〈숙소 쪽에! 그게! 제 일행이랑 상황을 알 법한 사람들이 있어서요! 그리고 그! 푼돈일지도 모르지만 총장님께 드릴 보수도 준비해드릴 수 있어요!〉
〈돈 좀 없으셔도 버리고 가진 않습니다. 저는 그게 싫어서 파티도 안 구하거든요. 아, 유물 몇 개 좀 쓰겠습니다. 저한테 업혀 계세요.〉
두 사람을 멘 키아라는 소지하고 다니는 유물을 발동했다. 카에디는 발이 땅에 질질 끌리지 않게 다리를 살짝 들었다.
〈제가 키가 작아서 미안합니다. 방향은요?〉
〈부, 북서쪽! 아니, 저, 저쪽이요!〉
〈북서쪽의 저쪽이군요. 네. 알겠습니다.〉
콰앙─!!
마스터 클래스의 모험가는 2명을 업고 순식간에 건물을 뛰어넘었다.
카에디는 살인적인 가속에 기절하는 줄로만 알았다가, 키아라가 발동한 유물이 그녀들을 지켜주는 물건이라는 걸 눈치챘다.
〈여기군요.〉
대쉬하던 키아라는 사절단의 숙소를 발견하고서 그대로 뛰어들었다.
룬의 결계가 외부인의 침입을 막고 있었지만 100년 가깝게 모험한 모험가는 그냥 황금시대의 낡은 유물을 하나 더 발동했다.
3명의 몸은 유물의 힘으로 결계를 통과했다.
─톡. 소리도 거의 안 나는 착지였지만, 등장이 하도 화려하다 보니 생존자들의 이목이 모였다.
〈연합총장!〉
〈아셰라드 박사.〉
두 사람을 내려놓은 키아라는 자신을 알아보는 학자에게 손을 흔들었다.
〈재회를 기뻐하기엔 공기가 좀 매캐합니다만, 아무튼 반갑습니다.〉
〈당신이 여길 어떻게?!〉
〈모험가 길드의 대표로 왔어요.〉
〈혼자서 오신 거에요?!〉
〈일흔 살을 먹은 노총각을 놀리시는군요. 저는 가슴이 아파졌습니다.〉
얼빠진 대화를 듣던 카에디의 연인은 헛웃음을 지었다.
〈와, 진짜, 소설 그대로네……〉
─쿠웅! 취한 사람처럼 쓰러지는 그. 깜짝 놀란 카에디는 그를 흔들고, 이마를 짚었다가 화상마저 입을 듯한 뜨거움에 크게 놀랐다.
〈왜, 왜 그래?! 야! 일어나 봐!〉
〈혹시 그 친구, 벌레 인간에게 물렸나?〉
시끄럽게 군 탓일까. 키아라보다 더 키가 작은 순혈 드워프가 달려왔다. 복장은 외교관이었지만 목에 건 성표는 성직자의 증표였다.
니다벨리르의 사절단일까. 카에디는 침을 삼켰다.
〈……네, 네. 하지만 좀비도 아니잖아요! 물린 정도로 감염되거나 하지는!〉
〈감염이 아닐세. 기생이지.〉
니다벨리르의 외교관은 손수건을 펼쳤다. 얇은 천에 실처럼 가는 벌레가 뭉개져서 죽어 있었다.
〈벌레로 변한 인간에게 물리면 몸 속으로 이런 기생충이 파고들려고 하더군. 좀비보다 악질이야. 마법내성과 무관하게 물리기만 하면 기생당하니.〉
〈고독이라는 주술이군요.〉
아셰라드와 대화하던 키아라가 벌레를 살폈다.
〈곤충형의 몬스터를 저주와 주술적인 의식으로 강화했어요. 마나는 품고 있지 않지만 존재 자체가 마법 생물이나 다름없겠습니다.〉
〈고독이라는 주술은 나도 들어본 적 있소. 이 벌레의 습성도 아시오?〉
〈버섯실밥 벌레라는 아즈테카의 고유종입니다. 원래는 균류를 먹은 동물이나 몬스터에게 기생해서 행동을 조종하는 벌레죠. 모험가 길드는 플래티넘 클래스의 몬스터로 분류했습니다.〉
강해서가 아니라, 퇴치나 예방이 어렵기 때문이었다.
아즈테카의 오지를 탐험하려면 병충해를 막는 게 가장 중요하니까.
〈그걸 골렘처럼 인공지능을 설계하고 자동으로 조종하고 있다는 건가?〉
드워프 외교관은 손수건을 다시 감쌌다.
〈조종당하는 인간은 행동이 단락적이야. 두뇌나 척수를 조종해 사람의 사고를 조종하는 걸로 보이더군. 동족끼리는 죽이지 않고, 새끼를 칠 둥지를 찾아내서 번식하는 거지.〉
〈번식……?〉
카에디는 숨을 쉬는 것도 잊고 연인을 바라봤다.
그가 물린 팔에서 알이나 기생충이 스며들었다면──
〈잘라내야 하네. 늦기 전에〉
스릉─.
우직한 드워프는 단호하게 도끼를 내밀었다.
도끼날의 예기(銳氣)에 카에디의 연인은 몽롱한 와중에도 입가를 비틀었다.
〈부탁, 드립니다…….〉
〈아뇨. 환부를 자를 건 없습니다. 이 상처로는 출혈과 2차감염도 위험하고요.〉
비장한 각오는 존중해줄 만 했지만, 아즈테카의 병충해는 몇 가지인가 답안이 나왔다. 키아라는 품 속의 〈아공간〉 두루마리에서 앰플을 꺼냈다.
〈생명력을 빨아들이는 약입니다. 미스릴 클래스 몬스터의 혈액이죠.〉
〈크흐흐……. 독이, 아니구요……?〉
〈표현과 용법 나름이네요. 이 저주는 매개체를 가리지 않기에 팔에 주사하면 기생충도 연쇄작용에 괴사할 겁니다. 사람에게 치명적이지 않을 정도는 희석한 약이고요.〉
앰플을 입에 문 키아라는 외교관의 팔을 끈으로 강하게 묶었다.
〈주사해도 되겠습니까? 양산이 어려워서 조금 비쌉니다만.〉
〈목숨보다는, 싸겠죠……〉
그는 고민하지 않고 승낙했다.
키아라의 말을 믿은 것도 있지만, 이런 고열에 시달리면서 팔을 자르는 것보다는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모험가에게 의지하는 게 더 생존률이 높을 것이었다.
〈현명한 판단이십니다.〉
푸슉─!
키아라가 앰플 주사기를 놓자 그는 기절하듯이 잠들었다.
뽑은 앰플을 무슨 기념품이라도 된다는 것처럼 간직하는 연인을 어이없게 바라보다가, 카에디는 부르튼 눈을 비비고 깊이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총장님.〉
〈그냥 키아라라고 부르세요. 모험가 길드 연합 총장은 많이 길지 않습니까.〉
하프 드워프 모험가는 손을 닦고 일어났다.
〈그리고, 니다벨리르의 외교관 분?〉
〈나도 페를로라고 부르시오. 격식을 따질 때가 아니니.〉
〈예, 페를로 씨. 제게도 상황 설명을──〉
〈언제까지 병신같이 입만 다물고 있을 거야!!〉
키아라는 눈을 껌뻑거리며 입을 다물었다.
숙소 한 구석에서 나르메르-나일의 외교관으로 보이는 여인이 누군가를 후려갈겼다. 왼팔이 없는 게르마니아 인이 힘없이 나뒹굴었다.
페를로가 얼굴을 경련시켰다.
〈……혹시 야트라우의 강은 여자를 표독스럽게 만드는 성분이 있나?〉
〈야트라우 남쪽 지방 여성분들이 좀 거칠기는 하더군요. 얘기를 들어보죠.〉
키아라가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목소리를 키울 정도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휘익! 고함을 치던 여인은 무기력한 외교관의 멱살을 잡아 세웠다.
〈네 친구들이 판데믹의 시발점이잖아!! 세상 다 산 표정 짓지 말고 설명을 해!! 다리 장애인처럼 앉아만 있으면 문제가 해결되냐!!〉
〈…………………….〉
〈대답하란 말 안 들려?! 이 개새끼가 끝까지!!〉
외교관 치고는 불 같은 성정의 여인이 한 번 더 주먹을 휘두르려고 했을 때였다. ─퍽! 그 사이에 끼어든 누군가가 그녀의 주먹을 얼굴로 받아냈다.
강함의 차이가 상당했는지 맞은 쪽은 전혀 아파하지 않았지만, 여인은 놀라서 물러섰다.
〈뭐, 뭐야?〉
〈죄송합니다. 여러분들끼리 싸우지는 말아주셨으면 하는 마음에.〉
그의 머리에 솟아난 양의 뿔을 보고 나르메르-나일의 외교관은 당황했다. 바로 어제 그가 아틀란티스를 정화하는 걸 보았기 때문이었다.
〈……울프헤딘 백작의 마법사단?〉
〈……아직 정식 편제는 없었습니다만, 그것도 크게 틀린 표현은 아니군요. 어쨌든 손님 분들께 도움을 받아서는 저희 주인님께도 누가 됩니다.〉
─슥. 입가를 문지르며 말하는 바이콘 청년.
〈이 결계 안은 안전합니다. 아직 구출되지 못한 분들은 저희 일족의 전사들이 동분서주하고 있는 상황이니 조금만 인내해 주십시오.〉
〈그래서 저 빌어먹을 자식이 세상 모르게 졸고 있는 걸 냅두자고요?〉
그녀의 손가락이 넋이 나간 게르마니아 인 외교관을 가리켰다.
바이콘 마법사는 고개를 저었다.
〈출혈과 상처, 정신적인 충격으로 이성을 찾을 경황이 아니겠죠. 대화할 의지가 있다면 저희들이 마법으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세이라!〉
〈여기 있습니다, 레이틀린.〉
높은 곳에서 사주경계를 하던 바이콘족 여인이 내려왔다.
그녀는 넋이 나간 게르마니아 외교관과 이마를 맞대고 주문을 외웠다.
【신은 만언(萬言)의 기원이니(ōs byþ ordfruma ǣlcre sprǣce)──】
만언신의 힘을 빌리는 주문. 노르드가 베로니카에게 천공신의 후예에 대한 이미지를 보여줬을 때 썼던 것과 같은 마법이었다.
영창하던 그녀가 이마를 떼고 말했다.
〈게르마니아에서 한 번 비슷한 홍역을 치렀던 적이 있다고 합니다.〉
〈거, 거 보라구요!〉
〈함께 쉬던 동료가 갑자기 달려들어서 감염이 시작된 겁니다. 주기적인 건강 검진을 의무화했는데도 벌레를 찾아내지 못했기에 안심했다더군요.〉
〈……알 상태에서는 발견이 거의 불가능한가.〉
절절하게 중얼거리는 레이틀린. 키아라는 턱을 쓰다듬다가 말했다.
〈거기까지 알았으면 방법이 생겼군요.〉
〈콜리도 경?〉
〈버섯실밥 벌레는 수명이 짧습니다. 파괴적인 생존법은 그 때문이에요. 주술로 강화하기까지 한 벌레의 수명은 길어봤자 1~2달이 아닐까요.〉
나르메르-나일의 외교관은 뜨악한 얼굴로 입을 벌렸다.
〈두, 두 달 정도 내버려둬야만 낫는다고요?〉
〈그건 아닙니다. 방치했다가는 그 전에 피해가 확대되겠죠.〉
키아라는 생각하다가 부정했다. 그렇게 해 봤자 영양실조로 기생당한 사람들은 1달 안에 사망하고 말 것이다. 치료에는 별도의 수술이 필요하다.
새로 알아낸 사실의 의의는 그게 아니다.
〈즉, 이 벌레를 조종한 누군가는 게르마니아에 심어둔 첩자의 벌레를 새로 심지 못했단 겁니다. 이 판데믹은 일회성의 테러일 뿐이죠.〉
레이틀린의 눈이 빛났다.
〈벌레술사가 원격 조종은 하고 있지 않다. 즉, 단순한 작전으로도 유인해서 생포할 수 있다…?〉
〈대단하십니다.〉
키아라가 박수를 쳤다. 정답을 맞춘 그에게 헌사하는 긍정이었다.
─뒤적.
레이틀린은 품을 뒤적거렸다. 그도 베로니카를 통해서 충왕대군이라는 작자의 이야기는 들었다. 그 추악한 심성에 대한 경멸에도 공감했고.
샤오라이라는 인물은 정기적으로 모여서 벌레의 알을 섭취하고, 인격을 유지한 상태로 굴라나뢰크에게 봉사할 지식을 습득했다지 않았나.
‘교육 절차를 거치지 않고, 통제도 받지 않으며 방치된 상태.’
주인없는 감염자는 벌레 수준의 지성밖에 없다.
아니, 조종하는 존재부터가 벌레 아닌가.
내버려뒀다가 충왕대군이 지배 하에 둬서 조종했다가는 손쓸 도리가 없다.
유인 작전의 가치를 고려한 그는 결론을 냈다.
〈좋습니다. 실행하죠.〉